최근 수정 시각 : 2023-12-22 10:54:07

1902 아이브록스 참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아이브록스 붕괴.jpg

1. 개요2. 상세3. 이후4. 유사 사고

1. 개요

1902 Ibrox Disaster

1902년 4월 5일 스코틀랜드 아이브록스 파크(현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에서 관중석이 붕괴한 사고.

2. 상세

당일 오후 3시 30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간의 브리티쉬 홈 챔피언쉽이 열렸다. 선수 전원이 프로선수인 역사상 첫 경기였고, 그만큼 팬들의 기대도 컸기에, 경기장에 68,000명에 달하는 관중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당시 관중석은 철근 위에 목재로만 만들어진 구조라 이 수많은 인원을 감당하기엔 부족했다. 거기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목재로 지을 땐 좀 더 튼튼한 적송을 이용하지만, 가격이 더 저렴하다는 이유로 덜 튼튼한 황송을 사용했다. 이렇게 지어진 관중석이 며칠 전 내린 폭우로 이니 약해진 상태였는데, 경기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경기를 조금이라도 더 앞에서 보겠다며 몰려들자 한쪽에 더 무게가 가해지면서 관중석이 버티지 못했다. 조인트 17개가 부서지면서 18m 크기에 달하는 큰 구멍이 생겼다. 관중들도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오후 4시경, 한쪽이 무너졌다. 수백명의 관중들이 12m 밑으로 추락했다.

사고를 본 인근 관중들은 충격에 빠져 관중석에서 빠져나왔다. 아예 경기장까지 내려간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기에 워낙 집중한 건지 사고를 못알아챈 관중들도 많았다.

이 사고로 25명이 사망하고 587명이 부상을 입었다. 2명은 현장에서, 23명은 치료 도중 사망했다.

3. 이후

사고에도 불구하고 약 20분간 경기를 멈춘 뒤, 경기를 계속 진행했다. 갑자기 경기를 취소하면 사람들이 빠져나오면서 부상자들을 구하러 가기가 더 힘들다는 이유였다.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하지만 FA측에서 이를 공식 경기로 인정하지 않아 5월 3닐 버밍엄의 빌라 파크에서 재경기가 열렸다.

2년 전에 관중석을 건설했던 건설업자는 구속되었으나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은 이 사고 이후에도 사건사고가 계속해서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1971 아이브록스 참사가 있다.

현재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에는 두 참사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

4. 유사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