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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노 리베라/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마리아노 리베라

1. 개요2. 뉴욕 양키스
2.1. 아마추어 시절2.2. 1995 시즌2.3. 1996 시즌2.4. 1997 시즌2.5. 1998 시즌2.6. 1999 시즌2.7. 2000 시즌2.8. 2001 시즌2.9. 2002 시즌2.10. 2003 시즌2.11. 2004 시즌2.12. 2005 시즌2.13. 2006 시즌2.14. 2007 시즌2.15. 2008 시즌2.16. 2009 시즌2.17. 2010 시즌2.18. 2011 시즌2.19. 2012 시즌2.20. 2013 시즌
3. 연도별 성적
3.1. 정규시즌3.2. 포스트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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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리아노 리베라의 선수 시절을 기록한 문서.

2. 뉴욕 양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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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아마추어 시절

파나마의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고기잡이 배를 타며 고기잡이를 하며 지냈다. 어릴 때는 유격수로 활동했으나 그를 눈여겨본 양키스 중남미 담당 스카우터가 투수로 전향을 권유하여 투수로 전향했다. 공의 구속은 80마일 중반대에 머물렀지만 스카우터들은 유연한 투구 모션과 제구력을 보며 성공을 확신했고, 결국 리베라는 1990년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다. 입단했을 때 받은 금액은 고작 2000달러. 입단 후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 능력, 특히 빠르면서도 각이 큰 슬라이더를 가다듬으며 팀의 유망주로 급부상하였고 1995년부터 선발 투수로서 본격적인 메이저리그 생활을 시작했다.

2.2. 1995 시즌

선발 투수로선 썩 좋지 않은 편이었으나 1995년 디비전 시리즈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인상적인 투구를 보이며 불펜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2.3. 1996 시즌

1996년부터 구원투수로 보직을 옮겨 셋업맨으로 활약하였고 사이 영 상 투표에서 3위에 오른다.

1996년 시즌 출발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초반에는 추격조로 시작했지만, 4월 19일 캔자스시티와의 경기에서 3이닝 퍼펙트로 홀드를 기록하면서 조 토레 감독의 신뢰를 얻게 된다. 이틀 쉬고 22일에도 3이닝 퍼펙트, 3일 쉬고 26일에도 3이닝 퍼펙트를 던졌다. 특히 하루 쉬고 28일에도 3이닝 퍼펙트, 또 하루 쉬고 30일에 2이닝 퍼펙트를 던지는 등 놀랄 만한 회복력을 보인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토레 감독은 언급한 바 있다.[1] 결국 4월 19일부터 5월 21일까지 26이닝 무실점, 이 기간 동안 15이닝 무피안타를 기록하며 필승조로 완전히 자리를 굳히게 된다.

특히 1996년 시즌 양키스 선발진은 이닝 이터가 사실상 앤디 페티트 한 명이었고 데이비드 콘이 부상으로 한동안 이탈했기 때문에 중간계투진 역할이 중요했는데, 구원진도 밥 위크먼과 제프 넬슨이 모두 4점대 방어율을 찍으며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태였다. 때문에 이 시즌 리베라는 이기는 경기에서 선발투수와 웨틀랜드 사이를 이어주는 불펜 소년가장 역할이나 다름없었다. 특정 중간계투 투수를 마음껏 굴리는 조 토레 감독의 성향이 시작된 시기가 바로 이 시즌인데, 리베라는 이 시즌에 등판한 61경기 중 3이닝 투구가 8경기, 2이닝 이상 투구가 27경기에 달할 정도로 멀티 이닝 필승조로 정말 원없이 굴렀다. 순수 구원 이닝으로만 107.2이닝 투구.

당시 AL 사이 영 경쟁 선발 투수들의 성적이 매우 저조했던 걸 감안해도, 세이브 5개에 불과한 불펜 투수가 사이 영 1위 표를 받은 사례는 이 때의 리베라가 유일하다. 당시 양키스 마무리는 1996년 월드시리즈 MVP였던 존 웨틀랜드였고 뛰어난 마무리 투수였기에 96 시즌 후 FA가 된 웨틀랜드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리베라를 마무리로 하는 건에 '보스'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결사 반대를 했었다는 후문이 있다.[2] 그러나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 등 여러 관계자의 설득을 통해 셋업맨이었던 리베라가 마무리를 맡게 되었다. 이때까지 리베라는 커터를 던지지 않았고, 심지어 마무리가 된 1997년 전반기까지도 커터가 없었다. 이때의 리베라는 90마일 중반대의 강속구와 슬라이더를 앞세워 탈삼진을 잡아내는 파워 피처였다. 마무리 전업 극초창기에는 3경기 연속 불을 지르는 대실수를 하는 바람에 모든 양키스 팬덤에서 미친 듯이 까였으나[3] 이때 감독"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일 마무리는 바로 너다."라는 말에 버텨낼 수 있었다고 한다.

2.4. 1997 시즌

그리고 토레의 약속대로 1997년에 팀의 마무리 역할을 맡게 되었고, 시즌 초에는 3블론을 저지르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으나 조 토레의 신임으로 1.88의 평균자책점과 43세이브를 기록하며 리그 최상급의 마무리로 도약하게 된다. 그러나 1997 ALDS 4차전에서 샌디 알로마 주니어에게 동점 홈런을 맞은 것은 흠. 결국 이 시즌의 양키스는 1995년에 이어 다시 디비전 시리즈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2.5. 1998 시즌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을 대표하는 구종인 커터를 장착하면서 철벽 마무리에 등극하는데, 이 해에도 ERA 1.91 36세이브를 달성하며 맹활약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13과 1/3 이닝을 던지며 6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대활약, 6세이브 중 3개는 1998 월드 시리즈에서 거둔 것이며 4차전에 등판해 뉴욕 양키스의 우승을 결정짓는 헹가래 투수가 된다.

2.6. 199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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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월드 시리즈 우승 확정 후
1999년, 마리아노 리베라는 페넌트레이스에서 45세이브를 거두고 포스트시즌에서 상대가 누구든 상황이 어떻든 밸붕캐수준으로 틀어막기까지 했는데도 심지어 7월 말 경 기록한 자책점을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4차전 9회의 문을 본인 손으로 닫을 때까지 단 1점도 실점하지 않았다. 그렇게 리베라는 월드 시리즈에서도 기간 내내 애틀랜타 타선을 엿 먹이면서 1승 2세이브를 거둬 월드 시리즈 MVP로 선정되었다. 또한, 98년과 99년 포스트시즌에서 각각 10경기와 8경기씩이나 등판해 투구하는동안 자책점이 0이었다.

2.7. 2000 시즌

2000년에는 ERA는 2.85로 지난 시즌에 비해 대폭 상승하였으나 36세이브를 기록하며 포스트 시즌까지 든든하게 양키스의 뒷문을 지켜주며 3-peat 달성에 기여했다.

2.8. 2001 시즌

2001년, ERA 2.34에 50세이브를 기록하며 정규 시즌에는 든든한 수호신의 위용을 떨쳤으나,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루이스 곤잘레스에게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며 뼈아픈 WS 준우승의 아픔을 맛보게 되었다. 다만 이걸 절대 리베라의 탓을 해서는 안되는게, 리베라는 WS 7차전 이전에 등판한 PS 10경기에서 15이닝동안 무실점 무블론이라는 압도적인 투구 내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애초에 리베라가 없었으면 월드 시리즈 7차전까지 오지도 못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 이렇듯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매우 아쉽게 준우승의 고배를 마시면서 양키스의 4-peat 도전은 아쉽게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2.9. 2002 시즌

2002년에는 ERA 2.74에 28세이브밖에 거두지 못했다. 부상으로 풀시즌을 치르지 못하며 리베라답지 않은 성적을 냈다.

2.10. 2003 시즌

2003년에는 다시 절치부심하여 40세이브 ERA 1.66으로 리베라다운 성적을 냈고, 포스트시즌 역시 단일 포스트시즌 최저 WHIP인 0.44로 미친 활약을 보였으나 팀은 플로리다 말린스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을 내주고 만다.

2.11. 2004 시즌

2004년에는 86경기 53세이브 ERA 1.94로 양키스 단일 시즌 최다 경기 출장, 최다 세이브를 기록한 투수로 남게 되었고, 미네소타의 외계인라이벌 팀의 에이스에 이어 사이영 3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포스트시즌 역시 과연 리베라였다가 ALCS 4차전과 5차전에서 연속으로 블론세이브를 범하고 말았고 팀은 보스턴 레드삭스에 밀려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고배를 마셨다.

2.12. 2005 시즌

2005년에는 43세이브 ERA 1.38로 더욱 철벽 마무리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바톨로 콜론[4]에 이어 사이영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에서 ERA 3.00으로 부진하며 디비전 시리즈에서 고배를 마셨다.

2.13. 2006 시즌

2006년에도 34세이브 ERA 1.80으로 여전히 철벽 마무리였고 포스트시즌에서도 1경기 1이닝을 안타 하나 맞았지만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다만 팀은 2년 연속 디비전 시리즈에서 고배를 마셨다.

2.14. 2007 시즌

2007년에는 30세이브 ERA 3.15로 리베라치고는 매우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절치부심하여 철벽으로 활약하지만 팀은 또다시 디비전 시리즈에서 고배를 마셨다.

2.15. 2008 시즌


2008년 9월 22일, 구 양키 스타디움의 마지막 경기. 세이브 상황이 아닌 7-3으로 리드하던 9회 초에 등판하여 브라이언 로버츠를 1루 땅볼로 잡아내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구 양키 스타디움은, 85년 동안 26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화려한 역사를 만들어내고 리베라가 문을 닫았다.[5]

2.16. 2009 시즌

2009년, 지난 시즌 종료 후 어깨 수술의 여파 때문인지 5월 7일 기준으로 12경기 등판하여 피홈런 4개 및 평균자책점 3.97을 기록 중이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감을 되찾아 가고 있다. 그리고 6월 28일 뉴욕 메츠 원정에서 8회 말 2사 1, 2루 상황에서 등판하여 1⅓이닝 동안 안타 1개를 맞았지만 무실점으로 승리를 지켜내면서 시즌 18세이브째를 챙겼다. 그러면서 트레버 호프만에 이어 ML 역대 2번째로 500세이브 돌파라는 기록을 썼다. 또한 9회 초에는 2사 만루에 타자로 들어서서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를 상대로 볼넷을 골라내 밀어내기로 커리어 첫 타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전반기는 평균자책점 2.43 23SV/24SVO를 기록하면서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7월에는 평균자책점 0, 10SV를 기록하면서 최고의 폼을 과시했으며, 8월에도 평균자책점 0.79와 8SV를 기록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시즌 최종 성적은 평균자책점 1.76, 44SV/46SVO, WHIP 0.90을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는 더욱 철벽 같은 피칭을 선보였다. 10월 25일 ALCS LA 에인절스전 1실점을 제외하고는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12경기 16이닝 WHIP 0.94 15탈삼진, ERA 0.56과 5SV를 기록하며 환상적인 피칭을 이어갔다. 거기다 마쓰이 히데키의 고질라 모드가 발동되면서 커리어 5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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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2010 시즌

2010년 5월 16일, 미네소타 트윈스전에서는 그랜드슬램을 허용하면서 평균자책점 제로 행진이 중단됐으며, 시즌 첫 블론세이브를 범했다. 또한 만루 홈런을 맞은 것은 통산 4번째로, 2002년 7월 15일 이후 거의 8년 만이다. 또한 이 피홈런으로 인해 리베라는 홈에서의 51연속 세이브 성공이 중단되며 에릭 가니에와의 타이 기록에 만족해야 했다. 이날 경기 전까지 리베라가 홈에서 마지막 블론세이브를 범한 것은 2007년 8월 14일이었다. 또한 리베라는 2005년 5월 7일 이후 처음이자 통산 4번째 밀어내기 볼넷도 허용했다.

이후 6월에는 24타자 연속 범타 처리라는 기록을 썼으며, 2010년 7월 1일 기준으로 11연속 세이브 성공과 함께 15경기 17이닝 연속 무실점(피안타율 .074 WHIP 0.41)을 이어가고 있다. 7월 1일 현재까지 시즌 평균자책점 0.89, 피안타율 .118, WHIP 0.59, 18SV를 기록하면서 40세라고는 믿기지 않는 상당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전반기 최종 성적은 평균자책점 1.05 20SV WHIP 0.64를 기록했다. 8월까지도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커리어 하이를 새로 쓰는 듯했다. 하지만 9월에 평균자책점 4.76에 3차례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고전하면서 막판에 스탯을 깎아먹었는데, 시즌 최종 성적은 평균자책점 1.80, WHIP 0.83, 33SV를 기록했다.

2010년에 3년 4500만 달러 계약이 종료되어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는데 같은 해 자유 계약 선수가 되어 팀과 계약에 난항을 겪은 데릭 지터와는 다르게 한국 시간 12월 3일 2년 3000만 달러에 재계약을 마쳤다. 이 과정에서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LA 에인절스 등이 3년 기간에 총액이 더 높은 계약을 제시했지만 핀스트라이프가 좋다는 이유로 단칼에 거절하고 양키스와 적절한 금액에 계약 연장을 체결했다. 덕분에 데릭 지터는 골수 양키스 팬들에게조차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라이벌인 보스턴에서 오퍼가 들어오자 리베라는 "오 나에게 관심 가져 줘서 고마워" 하면서 나름대로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2.18. 2011 시즌

새로운 계약의 첫 해인 2011년, 여전히 양키스의 마무리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4월 중순까지 WHIP 0.48 7세이브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며 블론세이브를 기록하지 않는 등 환상적인 활약을 이어갔다. 그러나 19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전과 24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 연속으로 부진하면서 블론세이브를 기록했고, 평균자책점도 순식간에 0에서 2.53으로 올랐다. 이후 다시 5월 중순까지 세이브와 무실점을 이어가며 다시 안정감을 되찾았다. 그러다 5월 18일 볼티모어전에서 다시 털리며 블론세이브를 범했다. 한편 5월 25일,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통산 1000번째 등판을 가졌다. 1이닝 무실점을 펼치며 팀의 7-3 승리를 지켰다.

6월에는 블론세이브 없이 10경기 10이닝 8세이브 평균자책점 0.90 WHIP 0.70을 기록하며 언터쳐블의 모습을 보였다. 특히 6월 마지막 3경기에서는 출루 허용 자체가 없었다. 그러다 7월 3일 뉴욕 메츠전에서는 1실점을 내주면서 간만에 블론세이브를 기록했지만, 다른 경기들에서는 무실점 피칭을 선보였으며, 9일 탬파베이 레이스전에서는 1이닝 무실점 세이브를 기록하며 전반기를 마무리했다. 전반기 성적은 평균자책점 1.85 WHIP 1.00 22세이브 4블론으로, 40대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후반기 들어서도 7월에 모든 세이브 상황에서 세이브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

8월에는 슬슬 체력이 딸리는 것인지 7일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 블론세이브를 범하더니, 9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전에서는 1이닝 2피안타 1피홈런 2실점을 기록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11일 에인절스전에서는 세이브를 기록했지만, 실점을 기록하며 3경기 연속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평균자책점도 2.40으로 많이 상승했다. 그래도 8월 남은 경기에서는 6경기 5세이브 무실점을 기록하며 슬럼프를 딛고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2011년 9월 13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1이닝 2K 무실점 세이브를 기록하면서 트레버 호프만의 뒤를 이어 사상 2번째 600세이브 마일스톤을 달성했고, 17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전에서 1이닝 1K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트레버 호프먼과의 세이브 타이 기록을 썼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9월 19일에 미네소타 트윈스전에서 통산 602세이브를 달성, 메이저리그 올타임 세이브 리더가 되었다. 미네소타 트윈스전 9회 초 풀 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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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602세이브를 달성하자 축하해주는 양키스 동료들

시즌 최종 성적은 평균자책점 1.91 44세이브 5블론 WHIP 0.90을 기록하며 41살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포스트시즌에는 ALDS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에서 2경기에 등판해 1.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준수한 모습을 보였으나, 팀은 시리즈 스코어 3-2로 탈락했다.

2011년이 끝나고 불혹을 넘긴 마당에 수술대에 올랐다고 한다. 그간 좋지 않았던 성대 때문이라고. 팔꿈치 수술인 줄 안 사람들은 전부 뒤집어졌다.

2.19. 2012 시즌

2012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시즌 개막전 탬파베이 레이스전에서 0.1이닝 2실점 블론세이브를 범한 것을 제외하곤 여전히 나이가 무색케 하는 피칭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2012년 5월 3일 배팅 연습에서 외야 수비를 하던 도중 플라이 볼을 잡는 과정에서 오른쪽 무릎을 다쳤고, 정밀 검사 결과 십자인대가 파열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진단 받았다. 3명의 의사에게 정밀 검진을 받고 합병증까지 있다는 이야기로 많은 팬들이 걱정했으며, 종아리 혈전을 발견해 그 부위 역시 수술을 받게 될 예정이다. 6월 12일에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고, 선수 본인은 본의 아니게 은퇴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지만 이렇게 끝을 보는 건 역시 아쉬운지 은퇴 의지를 표명했던 당초 입장과는 달리 "I will be ok. I will be back."이라는 말과 함께 2013년 복귀를 선언했다! '가장 위대한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

2012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 Enter Sandman과 함께 등판하여 공 한 개를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

2012년 시즌 종료 후 1년 1000만 달러 재계약에 합의하였다. 그리고 2013년 초, 2013년을 끝으로 은퇴할 것이라 천명하였다. 그렇게 원정 경기마다 리베라의 마지막 시즌을 기념하는 선물과 기부 등을 통해, 정말 모 옹의 마지막 해임을 알려주었다. 2012년 치퍼 존스가 은퇴할 때도 정말 엄청난 선물 공세가 이어졌었는데, 리베라도 원정 경기 때 상대하는 홈 팀 관중들이 어마어마한 환대를 보였다. 이에 '이 정도 받아먹었으면 은퇴 번복은 못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선물을 퍼주는 것이라는 농담도 돌았다. 실제로 리베라는 2000년대 후반부터 스프링 캠프 때 "올해까지만 하고 은퇴할 거임"이라는 인터뷰를 매번 하곤 했다.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번복한 건 아니기에 은퇴 번복이라고 까기는 애매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은퇴 번복이라 할 수 있는 행동을 종종 했기에 더더욱 이런 느낌이 강하다.

2.20. 2013 시즌

2013년, 부상 복귀전이었던 4월 4일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 1실점을 기록했지만, 세이브를 달성하며 약 11개월 만에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리고 만 43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즌 초부터 블론 세이브 하나도 없이 세이브 기록을 이어나가며 5월 16일 기준으로 16세이브를 기록하며, ML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5월 28일 뉴욕 메츠와의 서브웨이 시리즈 2차전에서 시즌 첫 블론 세이브와 패전을 기록했다. 이후 6월 8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는 통산 630번째 세이브를 기록했다.

2013년 전반기 동안 세부 스탯을 보면 피안타율 .265에 WHIP 1.25로, 여태껏 보여준 것에 비해서는 약간 불안했지만 평균자책점 1.83과 30세이브 32탈삼진을 기록하면서 그야말로 나이를 잊게 하는 활약을 했다. 그리고 생애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올스타에 선정되었는데, 아메리칸 리그가 3:0으로 앞서고 있던 올스타전 8회 말에 자신의 등장 곡인 Enter Sandman과 함께 기립 박수를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 1이닝을 삼자범퇴로 막고 올스타전 MVP로 선정되었는데 이 올스타전 MVP 수상으로 리베라는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최초로 MVP를 수상하는 불펜 투수가 되었다.

7월 30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원정에서도 은퇴 기념 행사가 이루어졌다. 재키 로빈슨의 아내인 레이첼 로빈슨의 인터뷰 영상이 전광판을 통해 방영되었으며, 다저스는 1만 달러를 리베라 재단에 기부하는 동시에 리베라 사진이 들어간 낚싯대를 선물했다. 이날 다저 스타디움에는 사무엘 잭슨을 비롯해 코비 브라이언트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이 경기를 관전했다.[6] 그리고 9회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무실점으로 처리하며 자신의 통산 642세이브 째를 기록했다. 시즌 34세이브.

8월 7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과, 10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에서는 2경기 연속으로 거하게 털렸다. 2경기 모두 실점을 허용하며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1.56에서 2.08로 급증했다. 그리고 11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에서 등판하여 선두 타자 미겔 카브레라에게 추격의 솔로 홈런을 맞은 데 이어, 1사 후 빅터 마르티네스에게 동점 솔로 홈런을 허용하며 블론세이브를 범했다. ML 데뷔 후 커리어 최초 3경기 연속 블론세이브. 시즌 평균자책점도 2.44까지 올랐다. 이번 시즌 블론세이브가 5개인데 최근 11경기에 무려 4개를 기록 중이며, 이 기간 동안 평균자책점 5.25에 홈런을 4개나 허용하며 급격하게 구위가 저하된 모습이다.

9월 11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 1.2이닝 무실점 세이브를 기록하면서, 통산 650번째 세이브를 달성했다. 시즌 42세이브를 기록하면서, AL 세이브 부문 선두 짐 존슨과 1개 차이로 줄였다. 다음날 세이브를 달성하며 AL 세이브 부문 공동 선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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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식에서 메탈리카와 함께 영구결번을 기념하는 리베라
2013년 9월 22일 일요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그의 은퇴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기사 시즌 잔여 경기가 6경기나 남아 있었지만[7]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일요일에 은퇴식을 한 것으로 보이며, 여기서 그의 등번호도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이 행사에는 조 토레 전 양키스 감독, 마쓰이 히데키, 데이비드 콘, 버니 윌리엄스, 티노 마르티네스, 호르헤 포사다 등 예전 동료들과 더불어 리베라의 등장 음악인 Enter Sandman을 부른 메탈리카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 그리고 전 구단 영구결번 42번의 주인공인 재키 로빈슨의 부인인 레이첼 로빈슨 여사와 딸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덤으로 앤디 페티트도 이날이 은퇴 선언 이후 양키 스타디움 마지막 등판 경기였기 때문에 팬들에겐 남다른 하루가 되었을 듯하다. 이날 리베라는 1.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경기는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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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의 마지막 등판. 이처럼 감동적이고 명예로운 장면은 야구 역사를 통틀어서도 드물 것이다.

9월 26일,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양키 스타디움에서의 마지막 경기 8회 1사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울려퍼진 Enter Sandman과 함께 등판했다. 9회 2사까지 출루 허용없이 아웃 카운트 4개를 잡은 후, 리베라가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퇴장할 수 있도록 양키스 더그아웃에서는 투수 교체 사인을 보냈다. 그런데 리베라를 교체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간 건 감독이나 투수 코치가 아닌 앤디 페티트데릭 지터. 둘이 걸어나오는 모습을 본 리베라는 잠시 웃음을 지어봤지만 이내 페티트에게 안겨서 펑펑 울었고, 이 장면에 전미가 울었다. 내려올 때부터 커튼 콜이 끝날 때까지 모든 관중이 일어나 떠나는 세이브 왕에게 기립 박수를 쳤고, 리베라는 모자를 벗으며 화답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지터와 페티트가 올라간 것은 조 지라디 감독의 아이디어로, 이를 위해 미리 심판진에게 양해도 구해뒀다고 한다.

이후 시즌 마지막 원정인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 잘하면 리베라가 외야수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사가 나왔다. 조 지라디 감독이 3연전 중 한 경기에 리베라를 중견수로 1이닝 정도 쓸 의향이 있는데, 8회에 중견수, 9회에 마무리로 나올 가능성이 언급되기도 했다. 기사 하지만 리베라 본인 스스로가 더 이상 등판할 계획은 없다라고 밝혔으며(기사),[8] 휴스턴과의 시즌 마지막 3연전에서도 리베라가 중견수로 나오는 일은 없었기에[9] 결국 9월 26일 양키 스타디움 등판이 리베라의 메이저리그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시즌 후반에 접어들며 역시 나이는 어쩔 수가 없는 건지 구원 실패가 꽤 많이 늘긴 했다. 평균 자책점도 2008년 이후로 제일 안 좋지만, 수비 무관 평균 자책점인 FIP는 3.05로 1998년(3.48)과 2000년(3.28) 다음으로 가장 높은 기록이다. 피홈런율(0.84), 홈런/플라이 볼 비율(10.2%) 모두 메이저 경력 평균의 약 1.6배[10]에 육박하며, 무엇보다 블론 세이브가 7개이다. 팬그래프에서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안 좋은 기록이다. 물론 자책점과 FIP, 블론세이브 모두 리베라치고는 좋지 않다는 거지, 보통 투수가 저 정도라면 준수하다 못해 생애 최고 수준의 기록이다. 그렇게 2013 시즌 최종 성적은 6승 2패 44세이브 ERA 2.11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아름답게 그라운드를 떠났다.

마무리 투수이지만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으로 규정 이닝(1000이닝)을 돌파했기 때문에 통산 조정 평균 자책점이 1위이다(205).[11]그런데 이는 그만큼 등판도 자주 했다는 소리이기에 보스턴 중심 타선에게 어느 정도 패턴이 간파되어 시즌 초 간혹 헤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부러 홈 플레이트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몸쪽으로 붙어 들어오는 커터를 공략하지만 그럴 경우엔 그냥 바깥쪽으로 제구를 하기 때문에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래도 불혹이 넘어선 나이에도 여전히 메이저리그 최고급의 마무리로 활약했다. 야구에서 마무리 투수로 장수한다는 것은 매우 대단한 일인데, 기록의 내용도 전설.

2004년 팀 동료였던 크리스 니코스키리베라에 대한 회고

통산 성적은 19시즌 동안 1115경기 82승 60패 652세이브(역대 1위)[12], 1283.2이닝,[13] ERA 2.21(라이브볼 시대 1위)[14], 조정 ERA 205(역대 1위), fWAR 39.2, bWAR 56.3, WPA 55.75,[15] 1173K, K/9 8.22, BB/9 2.01, K/BB 4.1, HR/9 0.5를 기록했다. 엄청난 커리어

3. 연도별 성적

3.1. 정규시즌

파일:MLB 로고.svg 마리아노 리베라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95 NYY 19 5 3 0 0 67⅔ 5.51 71 11 30 2 51 1.507 84 0.3 0.2
1996 61 8 3 5 26 107⅔ 2.09 73 1 34 2 130 0.994 240 4.3 5.0
1997 66 6 4 43 0 71⅔ 1.88 65 5 20 0 68 1.186 239 2.0 3.7
1998 54 3 0 36 0 61⅓ 1.91 48 3 17 1 36 1.060 233 1.2 2.8
1999 66 4 3 45 0 69 1.83 43 2 18 3 52 0.884 257 2.1 3.5
2000 66 7 4 36 0 75⅔ 2.85 58 4 25 0 58 1.097 170 1.9 2.6
2001 71 4 6 50 0 80⅔ 2.34 61 5 12 1 83 0.905 192 3.2 3.3
2002 45 1 4 28 2 46 2.74 35 3 11 2 41 1.000 163 1.4 1.6
2003 64 5 2 40 0 70⅔ 1.66 61 3 10 4 63 1.005 267 2.5 3.6
2004 86 4 2 53 0 78⅔ 1.94 68 4 12 5 66 1.081 232 2.5 4.2
2005 71 7 4 43 0 78⅓ 1.38 50 2 18 4 80 0.868 308 2.9 4.0
2006 63 5 5 34 0 75 1.80 61 3 11 5 55 0.960 252 2.2 3.9
2007 67 3 4 30 0 71⅓ 3.15 68 4 12 6 74 1.121 144 2.0 1.9
2008 64 6 5 39 0 70⅔ 1.40 41 4 6 2 77 0.665 316 3.0 4.3
2009 66 3 3 44 0 66⅓ 1.76 48 7 12 1 72 0.905 262 2.0 3.5
2010 61 3 3 33 0 60 1.80 39 2 11 5 45 0.833 241 1.8 2.4
2011 64 1 2 44 0 61⅓ 1.91 47 3 8 2 60 1.097 226 2.2 3.2
2012 9 1 1 5 0 8⅓ 2.16 6 0 2 0 8 0.960 203 0.4 0.4
2013 64 6 2 44 0 64 2.11 58 6 9 1 54 1.047 190 1.3 2.5
MLB 통산
(19시즌)
1115 82 60 652 28 1283⅔ 2.21 998 71 286 46 1173 1.000 205[16] 39.1 56.6[17]

파란색은 구단 내 역대 1위, 빨간색은 MLB 역대 1위.

3.2. 포스트시즌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18] 이닝 ERA 탈삼진 WHIP ERA+ 팀 성적
1995 NYY 3 1 0 0 - 5.1 0.00 8 0.75 무한 DS 탈락
1996 8 1 0 0 - 14.1 0.63 10 1.05 769 WS 우승
1997 2 0 0 1 - 2 4.50 1 1.50 99 DS 탈락
1998 10 0 0 6 - 24.1 0.00 11 0.60 무한 WS 우승
1999 8 2 0 6 0 12.1 0.00 9 0.81 무한 WS 우승
2000 10 0 0 6 0 15.2 1.72 10 0.70 278 WS 우승
2001 11 2 1[19] 5 0 16 1.13 14 0.88 385 WS 준우승
2002 1 0 0 1 0 1 0.00 0 1.00 무한 DS 탈락
2003 8 1 0 5 0 16 0.56 14 0.44 769 WS 준우승
2004 9 1 0 2 0 12.2 0.71 8 0.79 625 CS 탈락
2005 2 0 0 2 0 3 3.00 2 0.67 143 DS 탈락
2006 1 0 0 0 0 1 0.00 0 1.00 무한 DS 탈락
2007 3 0 0 0 0 4.2 0.00 6 0.64 무한 DS 탈락
2009 12 0 0 5 0 16 0.56 14 0.94 833 WS 우승
2010 6 0 0 3 0 6.1 0.00 2 0.63 무한 CS 탈락
2011 2 0 0 0 0 1.1 0.00 1 0.00 무한 DS 탈락
통산 16시즌 96 8 1 42 0 141 0.70 110 0.76 667 WS 5승2패 2CS 7DS
빨간색은 MLB 역대 1위.


[1] 조 토레 감독은 양키스의 1990년대 후반 다이너스티를 이끈 업적과 특유의 인화력과는 별개로 스캇 프록터로 대표되는 불펜투수 혹사라는 그림자가 존재하는 감독이며 1996년 리베라는 순수 불펜으로 100이닝을 넘겼다. 리베라의 긴 커리어는 리베라 개인의 뛰어난 내구성이 주 요인이다.[2] "시퍼런 애송이를 어케 믿어! 웨틀랜들 잡앗!! / 진정하십쇼 보스! / 리베라 빨리 올라가!" - 당시 보스는 자숙기간... 최훈의 MLB 카툰에서[3] 존 웨틀랜드는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해서도 괜찮은 활약을 했다. 당연히 전년도 주전 마무리이자 월드시리즈 MVP와 재계약하지 않고 시즌을 치르는 것도 걱정될 일인데 그 자리에 새로 들어온 뉴비가 제대로 공백을 메꾸긴커녕 3경기 연속으로 불이나 지르고 있었으니 폭발하는 것이 당연했다.[4] 이 해 사이영 상 수상자이긴 했지만 원래라면 무조건 요한 산타나가 가져갔었어야 했는데 투승타타에 의해 강탈한 사례로 꼽힌다.[5] 마지막 승리 투수는 앤디 페티트, 양키스의 마지막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데릭 지터.[6] 사무엘 잭슨은 경기에 앞서 다저스 라인업을 소개했고, 호날두는 시구에 임했다.[7] 덕분에 처음으로 현역 선수가 영구결번에 지정되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8] 양키 스타디움 마지막 경기에 대한 기억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은 마음과 2012년 십자인대 부상 재발 우려가 겹쳤기 때문이다.[9] 커티스 그랜더슨이 3연전 모두 풀 타임 중견수로 활약했다.[10] 메이저 평균 피홈런율 0.50, 홈런/플라이 볼 비율 6.5%[11] MLB닷컴의 비율 스탯 규정 이닝은 2000이닝.[12] 1시즌에 30세이브를 20년 연속 해도 깰 수 없고 40세이브로도 15년 이상이 걸리고 MLB 역대 단일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으로도 10년 이상이 걸리는 이 대기록은 MLB에서 다시는 나오기 힘든 불멸의 기록으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2022년 기준 기록 경신을 노려볼 만한 현역 투수는 크레이그 킴브럴켄리 젠슨 정도뿐이지만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13] 통계 사이트에서는 투수의 비율 스탯 규정 이닝을 1,000이닝으로 잡지만 MLB에서는 2,000이닝으로 잡는다.[14] 다만 이는 마무리 투수이기에 마무리 투수 한정으로만 평가된다.[15] fWAR은 불펜 투수들 중 2위와 10 이상, bWAR은 6, WPA는 20이상 차이가 난다.[16] 규정 1000이닝 이상[17] 이 성적이 정말 경이로운 것이 양키스가 아무리 명투수가 거의 없다해도 뛰어난 성적을 기록한 선발투수들은 몇 있는데 그들을 거의 제치고 WAR 2위를 기록한 것이다. 불펜투수는 성적만큼이나 누적 이닝이 중요한 WAR을 쌓는데 선발에 비해 이닝이 적어 굉장히 불리하기 때문에 불펜투수로서 WAR 56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기록이다.[18] mlb.com 공홈에선 1999년부터 집계[19] 7차전 이전 까지만해도 무실점 무블론의 엄청난 마무리였지만, 결국 7차전에서 1점 차를 지켜내지 못하며 역적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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