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Rooftop Koreans / 지붕위의 한국인[1]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에 걸쳐 발생했던 LA 폭동 당시 대부분의 시민들과 경찰, 소방 등의 공권력까지 패닉에 빠진 가운데 주로 세탁소와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한국인 이민자들이 폭도들로부터 자신의 가게를 지키기 위해 자경단을 조직해 총기로 무장하고 코리아타운을 사수해낸 데서 유래한 용어다. 북미권 네티즌 사이에서는 아예 밈으로 자리잡아 있다.
북미에서는 총기 관련으로 인지도가 높은 사건인데, "국가가 시민을 버린 경우 시민이 국가의 역할을 대체해야 한다"는 미국 수정헌법 2조의 이념을 모범적으로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NRA, 대안 우파, 공화당 지지자층 등에서 총기 규제에 반박하는 사례로 30년째 사골처럼 우려먹고 있으며, 사실상 2020년대에 가지는 인지도는 이쪽에서 기인한다. 2010년대에는 아예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질 정도였으며, 조지 플로이드 시위 당시에 이 사건이 재점화되기도 했다.
2. 유래: LA 폭동 당시 한인 자경단 활동
LA 폭동 당시 경찰 등 공권력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었고 특히 한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던 곳이 흑인 밀집지역 바로 앞이었기 때문에 현지 한인 사회의 피해가 심각해졌다. 일례로 1992년 5월 3일자 LA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한 총포상 점주는 "일대에 경찰차가 4대나 있었는데, 총소리가 나자마자 1초도 안 돼 죄다 도망가서 솔직히 실망했다"고 인터뷰할 정도였다.
2010년대에 만들어진 LA 폭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L.A. Burning(불타는 LA)"에선 당시 한인 타운의 총포상 직원이었던 데이비드 주(David Joo)의 증언이 상세히 담겨 있는데 폭동 발발 당시 고용주였던 금은방 사장 리처드 박(Richard Park)이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했다. 도와줄 수 있겠느냐?" 하는 연락을 하자 아무 고민 없이 나왔다고 한다.[2] 리처드 박은 위의 영상에서 데이비드 주의 뒤에서 아킴보로 권총을 소지하고 쏘는 모자 쓴 남성이다.[3]
데이비드 주가 금은방으로 가 보니 현장에 경찰차가 막고 무장한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는 걸 보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총격전이 시작되자마자 경찰은 순식간에 도망갔고 결국 자신들이 직접 가게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위의 인터뷰에선 위트 넘치게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총을 쏘며 방어하면서도 정말 무서웠다고 한다. 중간에 총탄이 머리 근처로 날아오자 머리를 방어하려고 팔을 들어올리기도 하는 등 확실히 공포를 느끼는 모습이 나온다. 다만 오히려 무서웠기 때문에 누가 고개만 내밀어도 제압사격을 가하는 등 더욱 확고하게 대처했다고 한다. 데이비드 주의 증언에 따르면 습격은 정작 시위의 주체인 흑인들보다는 생뚱맞은 히스패닉 폭도들이 많았다고 한다. 즉, 진짜 시위대라기보다는 시위로 인한 '치안 공백'의 허점을 노린 사회 하층민들의 날강도짓이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치안 공백이란 표현은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인근 경찰 병력들이 싸그리 철수해서 북쪽의 부촌구역으로 빠져나간 상황이라 다운타운을 포함한 LA 시내 전체가 정말로 경찰이 한 명도 없는 공백상황이었다.
결국 공권력의 공백 속에 자신들을 지켜줄 이가 하나도 없게 되자 당시 한인 가게 주인들은 자경단을 조직하고 총기와 탄약을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폭도들과 공성전을 벌였다. 뉴스에 방영된 동영상 중 가장 유명한 동영상은 "가주마켙''의 주인과 점원들이 소총과 산탄총, 글록 17 등으로 무장하고 거리를 경비하며 권총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가주마켙에서 가주는 캘리포니아 주를 가리키는 표현이며 이 가게는 현재도 LA에서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옥상에서 총을 들고 총격전을 하면서까지 강력하게 경비를 서는 모습을 보여주자 폭도들이 알아서 피해갔다. 이렇게 폭동 속에서도 털리지 않고 정상영업을 계속한 가게들은 옥상에서 총 들고 지킨 곳들이었다.
재미 한국인들은 피해가 크긴 했지만 대처도 빨랐다. 사건 당시 한인 AM 라디오 채널인 라디오 코리아는 제보를 받으면 "OO에 피해가 생겼으니 가서 도와주십시오."라고 실시간 중계를 했고 이에 한인청년단과 해병대 전우회로 이루어진 자경단이 지원을 나가는 식이었다. 무릎팍도사 이장희 편에 당시의 일화가 자세하게 나오는데, 이 구호활동으로 인해 당시 가수 이장희가 사장으로 있었던 라디오 코리아는 미국 사회의 주목을 받았고 당시 대통령이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가 위로와 감사인사 겸으로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폭도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공격받고 마비되었던 경찰, 소방 등 공권력도 한인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한 폭도들을 막은 루프 코리안은 미국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영웅훈장을 받았다. 여하튼 이런 노력 덕분에 폭도들 역시 시가전을 굳이 감수할 이유가 없어서 저항이 거세 자신들이 되려 죽겠다 싶으면 금방 달아났다.
사실 처음 한인들 사이에서도 자기들이 직접 총을 들고 가게를 지켜야 하는가 아닌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오갔다. 총격전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이를 지키려면 결국 총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도 총기 규제가 강한 지역이라 한인들 내부에서도 그러다 독박쓰는 거 아니냐는 여론과 우리는 권리가 있다는 여론이 맞선 것이다. 한인들은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등이 섞여 있어 권리 숙지가 안 되었고 무기 소지에 대해 모두 같은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먼저 언급된 라디오 코리아에서도 맞서 싸우라는 방송을 내기 전까지 상당한 숙고가 필요했으며 그걸 시행했을 때는 이미 수많은 건물들이 불타고 다수의 한인들이 흑인들과 히스패닉들에게 약탈당한 후였다.
미국에서 극찬을 받는 사례이고 특히 그 시절 한인 타운의 자경 활동을 직접 봤던 미국 경찰관들에게는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당시 공공기관 중에서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이 경찰서와 소방서였는데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에 폭도들이 총을 쏴서 불 끄러 가는 것을 막았던 일까지 있었다. 공권력과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공격당한 이유는 당시 폭도들은 걸리는 대로 때려부수고 싶어 안달난 위험 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각급 소방서들은 선별적으로 장비와 인원을 파견해서 스스로를 폭도들로부터 방어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인 자경단들이 총을 들고 와서 이들을 지켜주었다. 즉, 경찰조차도 제 몸을 사릴 정도로 궁지에 몰렸을 때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었기 때문에 미국 공직 사회에게 매우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줬다. 그래서 LAPD와 한인 사회의 관계는 매우 좋은 편이다. 이후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에서 한인 커뮤니티의 이익을 대변해 주는 사례도 많아졌다.
이 사태 이후 미국에서 한인들의 입지가 더욱 커졌고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에서도 극찬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당이나 이익 단체가 이 사례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사태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당시 여러 인종들이 고루 피해를 입었지만 유독 한인이 이렇게 강경하게 대응하게 된 것은 자기 가게를 지켜야 한다는 업주의 입장도 있겠으나, 6.25 전쟁을 겪으면서 북한이라는 적성세력의 존재로 치안 문제에 대해서는 유독 보수성이 강한 한국 문화의 특성도 크게 작용했다.
당연히 한인 사회만 폭도들에게 맞서 무장하고 저항한 것은 아니다. 히스패닉계 마을에서도 텃밭을 지키려는 갱단들이 폭도들에 맞서 저항하자 폭도들이 잽싸게 물러났다. 다만 원래부터 적대 세력으로부터 자기 지역을 지키려고 총질을 일삼던 갱단이 (비록 폭도라고는 하지만) 엄연한 시민이었던 이들을 상대로 저항하는 것보다는 '선량한 준법시민이 스스로의 생존과 사회질서의 회복을 위해 결연하게 들고 일어났다.'는 쪽이 훨씬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한인들이 무장하고 저항하는 것에 비해 별로 주목받지 않았을 뿐이다. 애당초 미국은 영국의 불합리한 처사를 견디다 못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독립한 국가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불의에 맞서 들고 일어난 올바른 저항'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다. 람보 시리즈, 인디펜던스 데이 시리즈처럼 미국 액션 영화들 중 '은퇴한 군인인 주인공이 한적한 마을에서 가족들과 평화롭고 조용히 살려 했으나 마을을 위협하는 악당들이 등장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다시 무기를 꺼내든다'는 클리셰가 유난히 많이 나오는 것도 이런 행동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역사적 전통의 영향이 매우 크다. 공교롭게도 실제로 당시 한인들 중에는 6.25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에서 실전을 치른 경험이 있는 참전용사 출신들도 있었기 때문에 이 클리셰에도 정확하게 부합한다.[4]
당시 LA 해병 전우회 회장의 인터뷰. 자경단은 예비군들이 주도하여 군대식으로 운용되었으며 개중엔 베트남 전쟁 참전자들도 많았다. 1분 3초부터 인터뷰가 시작된다. 4분 10초~4분 14초를 보면 중년 이상으로 보이는 남자가 차를 타고 다니며 순찰대로 보이는 사람에게 "사람한테는 총 쏘지마!"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있는대 이들의 무장이 어디까지나 방어가 목적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직후 "그 때 총을 쏘고 그래도 저희는 사람을 겨냥하진 않았어요. 방어용이지."라고 인터뷰한 게 나온다.
데이비드 주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총격전이 끝나갈 무렵의 영상으로 방송사가 영상을 찍기 전 더 격렬한 총격전이 있었다.
당시 한인 타운의 한인들의 총격전 영상. 이 영상은 영화 "프리덤 라이터스"의 극초반부에 삽입되기도 했고, 영화 "더 퍼지"의 소개 영상에서도 나왔다.[5] 그만큼 미국 사회에서는 굉장히 인상 깊은 사건이었다는 방증이다. LA 폭동때의 한인들은 징병제로 인해 대부분의 성인 남성들이 군 복무 경험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6.25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 참전 경험자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시가전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1992년이면 6.25 전쟁으로부터 40여 년, 베트남 전쟁으로부터 20여 년이 지났을 때다. 가게를 지키던 40대 이상의 중년 한인들이라면 충분히 참전용사 출신들이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재미동포가 생계곤란으로 인해 이민한 사례였기 때문에 베트남 전쟁 파병을 지원해 수당을 받은 사람도 많았다.
한편으로 위의 영상 속 기자는 인종차별적인 태도로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한국인 가게 주인들이 총기를 들고 자신의 가게를 지키는 상황인데 이 기자는 그들(영상의 한국인들)이 폭력 사건을 벌이고 있다는 식으로 흥분하여 소리치고 있다. 예컨대 "그들은 마구 총을 쏴대고 있습니다!" 같은 뉘앙스. 이 때문에 영상 댓글도 기자의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욕하는 것이 태반이다. 뉴스 진행자가 중간중간에 한인의 방어권을 변호하고 사실을 정정하는 모습도 나온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자동차를 방어물로 쓰고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는 등 좀 더 체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상. 지붕 위에 올라간 사람은 UZI 기관단총을 소지하며 경계하고 있다.
왜 한국인들이 스스로 무장해야 했는지 호의적인 관점에서 조명하는 영상이다. 한인 사회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회고한 내용과 당시 사람들의 인터뷰를 실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선도 담겨 있다.
여담으로 당시 많은 가게들이 피해를 입었으나 오히려 팔리지 않던 재고 몫까지 보험 처리를 통해 보상받아 이득을 본 가게들도 많았다. 그러나 탈세 등의 목적으로 판매기록을 엉터리로 조작하던 가게들은 신고한 만큼만 보상받아서 큰 피해를 입었다.
한인들 사이에서는 교포들의 피해를 걱정하면서도 인종차별 이슈도 이해한다는 태도가 공존했으며 오히려 교민들 사이에서도 일부 여론이 흑인들을 무시했던 정황에 대한 반성이 많이 나왔다. 한인 사회에서 흑인 사회를 경멸하고 인종차별적인 태도로 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한인들끼리만 교류하는 고립적인 태도로는 미국에서 살 수 없음을 깨달은 이유도 타 인종과 공존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인 교회는 그동안 다른 커뮤니티와의 교류 차원에서 여러 봉사활동을 많이 했으나 이후 봉사활동 등을 더 늘린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역 인종주의, 즉 흑인들이 다른 소수민족에 대한 공격성을 보이는 태도를 두고 지적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사실 흑인 커뮤니티는 한인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아직 비주류였던 히스패닉[6] 및 다른 소수인종들과도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대응도 일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경찰들은 한인 자경단을 가게를 지키려는 것이 아니고 무장보복을 하려고 했던 것으로 오인했던 것인지는 모르나 단순히 가게를 지키려고 했던 몇몇 이들을 체포했고 무기를 압수했으며 방어하고 있는 상점에서 해산시켰는데 그 상점은 방어자들이 해산된 다음에 불타버렸다. 앞서 나온 총기와 관련해서 대부분이 사실 권총 같은 게 아니라 AR-15 등 소총 계열로 무장했단 주장이 나온 근거로도 한 가게가 방어력이 취약해 털려서라고 한다. 보석 가게가 털리자 그 보석 가게 사장이 자신이 운영하던 총포상에서 총을 싸게 뿌렸고 한인들이 단체로 그걸로 무장했다는 것이다. 당시 공권력의 대응 방식은 전체적인 불신으로 이어졌고 2014년 퍼거슨 소요 당시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다 보니 자주 비판을 받았다. 물론 퍼거슨 소요 당시에는 미국 대통령이 주방위군 육군 투입을 미룰 것을 지시하는 등 여러 이슈가 있었지만 약탈당한 가게들 입장에서는 생명이 걸린 문제였다. 그래서 이 사태를 보는 시각 중에는 LA때나 퍼거슨때나 정부가 나아진 것이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LA 한인들이 만든 LA 폭동에 관한 다큐멘터리. LA 폭동을 겪었던 한인 사회를 중심으로 그려져 있어 당시 대응상황을 볼 수 있다. 영어 버전도 있다.
산탄총으로 무장하고 지붕 위에서 경계를 하고 있는 한인.
새로 불거진 부작용으로 폭동 이후에는 대부분의 한국 남성이 군대 경험이 있어서 총기류에 능숙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흑인들이 강도짓을 할 때 총으로 위협하고 물건을 빼앗는 방식이 아니라 일단 쏴죽이고 터는 식으로 대응했다는 씁쓸한 뒷얘기가 있다.#
LA 폭동 때, 직접 총을 들고 참가한 루프 코리안 중 한 명인 데이비드 주라는 재미교포가 LA 폭동 25주년을 맞아 미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는데, 한국 사회에 알려진 것처럼 가짜 총이나 BB탄을 들고 쐈다는 일은 전혀 알지 못하고 실탄이 들어간 진짜 총을 가지고 쐈으며, 미국 언론들은 한국인들이 폭도들한테 총을 쏘는 장면만 보도하고 폭도들이 한국인들한테 총을 쏘는 장면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고 씁쓸한 회고를 남겼다.출처
3. 인터넷 밈으로서
루프 코리안은 인터넷 밈으로 재발굴 되기 전에도 NRA 등의 조직들의 이념의 유서 깊은 논거였고 2010년대 들어 미국의 대안 우파 네티즌들 사이에서 밈으로 활발히 쓰이고 있다. #미국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급등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밈으로서는 특히 미국의 총기규제 논란과 관련하여 규제 찬성 측에서 "수정헌법 2조는 서부 개척 시대에나 유효했던, 구시대적인 조항이다."라는 주장에 반대파들이 "오늘날에도 제 기능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박하면서 루프 코리안을 예로 들며 더 나아가 "이런 상남자들이야말로 헌법에 규정된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한 진정한 미국인(true Americans) 아니냐?"며 동화주의에 기반한 '미국적 가치'를 역설하기도 한다.
반면 다문화주의와 흑인 인권 운동을 지지하는 리버럴 진영 네티즌들은 이 밈을 '힙스터 인종차별(Hipster racism)'이라고 여겼다. 힙스터 인종차별이란 밈, 풍자, 만평 등 유머러스하거나 가벼운 농담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은연 중에 인종차별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태를 비판하는 용어. "백인 권력이 한인과 흑인이 싸움 붙은 걸 밈으로 소비하면서 미국적 가치 운운한다.", "근본적인 원인인 인종 문제에 대한 담론은 어디 가고 폭도들 총으로 쏴 죽이자는 이야기만 하고 있냐?"고 비판한다.
2020년에도 총기 관련 유튜버들에 의해 '(총기를 방어 목적으로 사용했던) 루프 코리안' 이야기가 꾸준히 언급되었다. 이 밈에 대한 찬사는 물론 '한국인들이 용감하고 멋있게 활약했다'는 칭찬이며 총기소지와 관련된 정치적 근거로도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LA 폭동은 국가의 치안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그나마 남은 공권력이 국가의 시민을 버린 사건이다. 수정헌법 2조에 근거하여 주어진 인민의 무장 권리를 바탕으로 자기 방어권을 행사하여 국가의 보호에서 내팽겨쳐진 한인들이 국가의 치안 역할을 스스로 대신 수행한 것이며 여기에는 상당히 복잡한 미국만의 문제가 얽혀 있고, 미국과는 전혀 다른 역사와 환경속에서 자란 한국인들의 의식에 기반한다.
자유를 중요시하는 미국인의 관점에서는 공권력이 개인을 보호할 수 없을 경우 인민이 스스로 무장하여 자신의 존재할 권리를 행사하는 것도 당연하다. 한편 그 뒤에는 자유를 강조한 나머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권리에 대한 침해(이 경우, 자신의 권리 신장을 명분삼아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도 쉬워져 서로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약육강식의 장이 벌어지는 모순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교육이 마련되어 미연에 동기가 발생하지 않아야 하지만 미국의 교육체계도 경제, 정치, 문화적으로 다양한 문제가 얽혀 정상적인 기능이 저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인들이 즉각 지붕위에 올라가 총을 들고 싸운 것도, 믿었던 시 정부의 공권력과 주류 백인이 한인의 보호의무를 방기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다. 그럼에도 대안 우파들은 자신들이 정부를 만들어 시민들을 관리하고 통제하고자 하면 당연히 의무를 져야할 시민의 보호를 저버린 책임은 뒤로 쏙 빼놓고 "쟤들은 위기상황에 스스로를 지키는 미국적 가치를 실천하네?"라는 결과만 뽑아서 한인을 모범적 소수의 사례라며 칭찬하는 이중성을 보이는 것이다.
즉 수정헌법 2조가 제 구실을 한 사건임은 변함없지만 달리 이야기하면 1700년대, 1800년대 서부에서나 예상했을 법한 일이 1990년대에도 발생할 정도로 미국 사회가 정체 혹은 퇴보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3.1.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가 격화됨에 따라 SNS 등지에서는 미니애폴리스는 이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농담과 진담이 섞인 글이 올라왔다. 실제로 미국 전역에서 엄청난 약탈이 발생하였으며 몇몇 한인 점포는 또 털렸다고 한다.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총기 구매율이 높아졌다는 기사가 쏟아질 때부터 루프 코리안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따른 보복성 범죄를 우려해 중국계들이 방어용으로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가 이후 중국인으로 자주 오해받는 일본계, 한국계 등도 덩달아 무장했다. 그러다 폭동이 LA로도 퍼져나가자 루프 코리안은 30년만에 재현되었다.
비단 한국계 미국인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무장 경비원을 고용해 사업장을 지키는 사례가 발견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경비 임무를 수행하던 경비원이 폭도와 충돌했다가 매도당하는 불명예가 일어나기도 했다.
해당 이야기가 재생산되는 것에 대해서 현지 한인 커뮤니티는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일단 LA 경찰과 주방위군은 이번에는 절대 LA 폭동 당시와 같은 허술한 관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찰들과 주방위군을 한인 거주지역에 대거 배치시켜 방어했으나 LA같이 큰 규모의 한인타운이 없어서 지역 내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다른 지역의 한인들은 자체적으로 무장하고 경계했다. 전국적으로 폭동이 일어나던 와중이라 원래도 경찰 인력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부족해서 자경단의 도움을 받는 판인데 시민들이 경찰 불복종을 했으니 치안공백으로 범죄자들이 어부지리를 얻었다. 트럼프의 주장대로 폭동에 배후가 존재하고 군이 투입되어야만 하는 상황이 맞다면 경찰 인력이 결코 여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경찰들만으로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은 분명하다. 물론 한인 가게들만 무장하고 사람들을 경계한 건 아니다. 다른 가게들도 폭도들에게 털린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도들의 상당수는 저소득층이라 자기들에게 익숙한 가게부터 먼저 털려고 들었기 때문에 그런 곳에 가까이 있는 소수인종 자영업자들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3.2. 한국에서의 반응
한국에서는 미국에서 루프 코리안 밈이 유행한다는 것이 알려지기 전부터 LA 폭동 중 한인들의 자기 방어 활동에 대해 잘 알려져 있었으며 정치적 성향을 막론하고 위기 상황에서의 한국인의 단결력, 군필자들의 활약, 정당한 자기 방어적 관점 등을 통해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한 한국인의 단결력과 함께 미국인들의 호의적인 평가들이 첨부되었으며 이는 LA 폭동이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 미국 공권력의 무능함, 국가 주도 인종차별과 같은 무거운 주제와 담론보다는 '한국인의 대단함'의 관점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았다.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 이후 루프 코리안 밈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알려지고 주요 언론을 통해 기사화된 후에도 당시 루프 코리안들의 용기와 단결력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밈으로서의 활용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도 이런저런 시선이 뒤섞여 있다. 대체적으론 한국인들의 단합력과 용기에 대해선 좋게 평가하지만 민감한 인종갈등에 활용되는 것은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은 편이다. 주요 방송사들이 유튜브 채널들을 통해 루프 코리안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영상들을 제작해 수십만의 조회수를 얻으면서 호응을 끌었다. 다만 밈 자체가 한국인들을 조롱하며 가볍게 여기는 인종차별적인 밈으로서 소비되고 있다고 하였으나 인종차별이란 무거운 담론에 루프 코리안들이 이런 식으로 소비되는 것이 옳냐, 그르냐에 대한 문제일뿐 미국의 대안 우파 네티즌들이 루프 코리안을 칭송하는건 진심이므로 잘못된 접근이라고 할 수 있고 일부 비판받기도 했다. 설문자가 한국인을 조롱하는 밈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위의 변질된 폭력성에 대해 주목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미국의 대안 우파 네티즌들과 비슷한 시각을 내비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은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깊은 나라이고 시위에서 폭력은 특수한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하며 그 대상도 공권력으로 한정되었다. 때문에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무차별적인 폭력과 약탈로 점철된 흑인 시위를 이해하지 못한다. 시위를 촉발시킨 조지 플로이드 사건 역시 범죄자의 인권과 법 사이에서 후자를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대중들에게 잘 동정을 얻지 못하고 있다.
4. 대중매체에서
- 김유미 작가 소설 원작(1991)으로 1992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억새바람>의 후반부에서 이 사건을 비중있게 다루었는데 해당 부분은 원작 소설에 안 나오는 오리지널 에피소드다.
- 2010년작 SBS 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에서 손혁(차승원)이 윤혜인(수애)를 이 사건 때 만난다.
- 영화 더 퍼지의 도입부 한 비디오에서 권총을 들고 다른 사람을 쏘는 퍼지 비디오가 LA 폭동 당시의 한인들의 모습이다. 짧은 머리의 남자가 상술한 데이비드 주, 옆에 있는 캡 모자를 쓴 사람이 그의 고용주 리처드 박이다.
- 2022년 2월 3일 방영된 SBS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다.
[1] 한국에서는 루프 코리안(Roof Korean)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나 'Rooftop Koreans'가 정확한 표현이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의 문서명도 'Rooftop Koreans'이고 구글 검색결과도 더 많다.[2] 사실 이 부분은 현지 미국인들이 신기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로, '집'이 공격을 당한 것이라면 이웃으로서 도와줄 수도 있긴 하지만 '직장'이 공격을 당한 것이라면 그건 사장이 사설경비원을 고용해서 해결할 문제이지 직원을 불러내서 해결하는 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한다면 한창 영업 중인데 직장이 공격을 당해서 생존을 위해 '현장에 있던' 사장과 직원이 협심해서 대응할 수도 있기야 하지만 이미 일 다 끝나고 퇴근한 직원을 '도로 불러내서' 싸우니까 신기하게 여기는 것이다. 허나 당시 한인들은 물론 현대의 한국인들은 이것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데 이는 한국에서는 직장 또한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고 여기는 풍조가 있어서 가능했던 행동이다.[3] 데이비드 주가 일하는 총포상과 더불어 금은방도 동시에 운영했다. 사실 유통망이 좋지 않은 경우엔 거주지 주변에 모든 종류의 가게가 다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한 가게가 다른 일도 겸업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하다. 한국도 교통망이 개선되기 전인 1960-70년대까지는 옷가게가 과일을 같이 팔거나 철물점이 옷 수선도 같이 하는 경우가 흔했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지나치게 넓다 보니 이런 현상이 현재진행형이다. 땅이 더 넓은 캐나다와 러시아는 자연환경상 인간이 살만한 공간이 많지 않아 인구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이러한 현상이 덜하다.[4] 90년대 초였기에 6.25 용사들은 젊어도 60대였다. 월남전 용사들은 4-50대.[5] 다만, 더 퍼지는 사람들이 철저히 자신의 재미를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는 상황을 그린 영화이니만큼 이 장면을 쓴 것은 논란의 소지가 다소 있다. 해당 장면의 진실을 알고 나면 '퍼지 데이 기간에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모습'으로 인식하겠지만, 진실을 모른 상태에서 보면 '퍼지 데이 기간에 사람들을 죽이려고 공격하는 모습'으로 인식할 위험이 있기 때문.[6] 멕시코계 미국인은 원래 캘리포니아나 뉴멕시코, 애리조나, 텍사스 등의 지역이 멕시코 영토였으며 미국으로 넘어와 수가 많았으나 그 때는 세력화되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