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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벌린 입 ㅇ△ㅇ | 서건창 특유의 타격폼 |
넥센 히어로즈 No.14 | |
서건창(徐建昌 / Geon-chang Seo) | |
생년월일 | 1989년 8월 22일 ([age(1989-08-22)]세) |
출신지 |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
체격 | 176cm, 86kg |
학력 | 광주송정초 - 충장중 - 광주일고 - (동강대) |
포지션 | 2루수 |
투타 | 우투좌타 |
프로입단 | 2008년 신고선수 (LG 트윈스) |
소속팀 | LG 트윈스(2008 ~ 2009) 넥센 히어로즈(2012 ~ 현재) |
등장곡 | Jean Roch 'Can You Feel It' |
응원가 | Stephen Foster 'Swanee River'[1] 노브레인 '승리를 향해'[2] # |
보유 기록 | |
한시즌 최다 안타 | 201개[3] |
한시즌 최다 득점 | 135득점[4] |
한시즌 최다 3루타 | 17개[5] |
수상 기록 | |||||
2014년 한국프로야구 MVP |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 |||||
2012년, 2014년, 2016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2루수 | |||||
2014년 한국프로야구 타격왕 |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최다 안타상 | |||||
2014년 한국프로야구 득점왕 | |||||
2014년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 올해의 선수 |
넥센 히어로즈 역대 주장 | ||||
이택근 (2012.7~ 2015) | → | 서건창 (2016~) | → |
서교수
1. 소개
넥벤져스의 캡틴
히어로즈 역대 최고의 좌타자 [7]
넥센 히어로즈 소속의
2008년 LG 트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여 같은 해 6월 정식등록 선수로 전환됐지만 1경기 1타석 1삼진만 기록하고,팔꿈치 부상이 재발하여 수술대에 오르면서 방출되었다. 경찰 야구단에 지원했지만 탈락하여 육군 31사단 일반병(예비군부대 소총수)으로 군 복무를 했다.
2011년 9월에 병역을 마치고 신고선수 테스트를 받을 구단을 알아보다가 광주일고 재학 시 은사인 김선섭 감독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넥센 히어로즈의 테스트를 거쳐 신고선수로 재입단하게 되었고 2012년 기대 이상의 맹활약으로 또 하나의 신고선수[8] 신화를 쓰며 신인왕과 KBO 골든글러브를 동시에 수상했다.
그리고 2014년, 단일 시즌 200안타[9]를 위시한 수많은 기록을 제조해냈다!
▲ 서건창 응원가 |
2. 아마추어 시절
광주일고 시절에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중학교 때까지는 유격수였으나 어깨 부상 이후로는 2루수로 전향한다. 고교 시절의 평가는 공, 수, 주를 두루 갖춘 '야구를 알고 하는' 선수. 2학년이던 2006년에는 부상으로 거의 출장하지 못했으나 1학년 때부터 테이블세터를 맡았고 3학년 때는 주로 3번 타순에 출장했다. 광주일고1학년이던 2005년에 팀이 우승한 황금사자기에서 2번 타순에 출장하며 당시 1학년 타자 중에는 유일하게 두각을 드러냈다. 괜찮은 평가를 받던 선수라서 한 때 연고팀 KIA 타이거즈의 1차 지명감으로도 꼽혔고,[10] 지명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2008년 드래프트에서 미지명된다. 야구선수 치고 작은 176cm의 키와 어깨 부상 경력 때문으로 추정.
참고로 광주일고가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할 당시 멤버로는 강정호가 있다. 이 둘은 넥센에서 키스톤 콤비를 이루며 다시 만났으며, 2012 시즌 나란히 골든 글러브를 받고 2014 시즌 신기록을 쏟아내며 리그를 평정했다.
3. 프로 경력
3.1. LG 트윈스에서의 2008 시즌
LG 선수시절 때의 모습
1군 등록 당시 인터뷰 LG 1군 경기 당시 촬영된 모습.
대학교 진학을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의외로 LG 트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며 프로 선수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11] 때문에 애초부터 대학 진학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고려대학교 감독이었던 양승호 감독이 스카우트를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홀어머니 혼자 또 4년을 벌게 할 수 없다고 프로로 바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고교 시절에 발목을 잡았던 어깨 부상 때문에 이렇다 할 활약없이 2008년에 단 1경기에[12][13] 나온 후, 부상으로 방출당하고 현역으로 입대하면서 결국 프로 선수로서의 생활을 접는가 싶었다.
3.2. 넥센 히어로즈로
하지만 그는 광주 31사단에 현역으로 입대하여 군 문제를 미리 해결하고 제대한 뒤, 2011년 9월 광주일고 김선섭 감독의 추천으로 넥센 히어로즈의 테스트에 응시하게 된다. 김선섭 감독은 서건창이 제대한 뒤 제자를 광주일고 타격코치로라도 영입하려고 했었는데 프로에 다시 도전한다고 해서 NC 다이노스의 트라이아웃에 응시할 생각을 했던 서건창을 넥센에 우선 추천했다고 한다.서건창을 테스트에서 발탁한 사람은 당시 2군 감독이었던 박흥식으로[14] 그는 서건창에 대해 '아직 기량에는 부족함이 있었으나 절실함이 묻어 있다'고 평가하며 구단에 서건창의 영입을 추천하였다. 당시 박흥식 2군 감독이 구단 프런트에 한 이야기가, "딱 2천만 더 쓰자".(당시 신고선수 연봉이 2,000만원이었다.) 이에 구단은 서건창을 신고선수로 영입하였다.#[15][16]
이후 마무리 훈련에서부터 상당히 주목을 받아 전지 훈련도 모두 따라갔고, 연습경기에서 4할을 치면서 주목받더니 2012년 1월에 정식 선수로 등록되었다. 스프링캠프 인터뷰 기사 추가기사 당시의 사진
3.3. 2012 시즌
우여곡절 끝에 정식 선수로 등록되기는 하였으나, 넥센 히어로즈에는 주전 2루수인 김민성이 있기 때문에 1군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시즌 시작 전 김민성의 부상으로 인해 빠르게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2012년 시범 경기에서는 장기영을 대신해 1번타순에 기용되기도 하였다. 빠른 발과 안정적인 작전수행 능력을 인정받아 개막전에서부터 선발 라인업에 기용되었고 5, 6월 이후부터는 수비뿐 아니라 타격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넥센의 복덩이로 자리매김했다. "왜 LG가 저 친구를 버렸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이후로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준 결과, 도루 부문 2위(39도루)에 오르면서 2012년 신인상을 수상. 1경기만 뛰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뻔했던 선수는 일약 넥센의 신데렐라가 되어 2012년 최고 신인의 주인공이 되었다.
2012년 12월 11일 대부분의 팬들이 유력 후보로 생각하던 안치홍을 제치고 2루수 부분 KBO 골든글러브를 차지하며 신인왕과 함께 거머쥐었다. 공격 부문에서는 도루를 제외하고는 모든 스탯이 안치홍에 밀리는 편이었기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수상이었지만, 방출되고 신고선수로 다시 들어와서 주전으로 자리잡는데까지의 눈물겨운 스토리와 함께, 본인도 안치홍이 받아야 할 상이 내게 온 것 같다는 겸손한 자세로 수상소감을 밝힌데다가 이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어이없는 결과가 나온 덕분에 별 잡음 없이 넘어갔다
서건창/2012년 문서를 참조.
3.4. 2013 시즌
서건창/2013년 문서를 참조.3.5. 2014 시즌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 단일 시즌 200안타의 주인공이 되다
전설들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간 불멸의 시즌
타격왕, 안타왕, 득점왕의 삼관왕 그리고 2루수 최초로 시즌 MVP를 차지. 신고 선수 신화를 쓰다[17]
이제 야구팬들은 서건창을 말할 때면 2014년을 떠올릴 것이다. 서건창 개인에게도 한국프로야구 역사에도 남을 만한 시즌을 보내며 박병호, 강정호, 앤디 밴 헤켄과 함께 팀의 PO 직행을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201안타 분석&라이프 스토리
미생에서 완생으로, 박동희의 서건창 장문 인터뷰
넥센 팬덤을 넘어 '전국구'가 되면서 익히 알려진 순탄치 않았던 인생이 재조명받기도. 그의 인생을 영화로 만들자는 얘기도 있다. 굴곡있는 삶을 살아와서 영화화해도 충분할 듯.
서건창/2014년 문서를 참조.
3.6. 2015 시즌
6월 13일 경기에서 복귀하면서 드디어 기나긴 휴강이 끝났다!!!서건창/2015년 문서를 참조.
여담이지만, 최근 그의 부상을 안타까워했던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 팬들이 댓글 북을 만들어 소정의 선물과 함께 교수님께 조공을 바쳤다. # # # #
3.7. 2016 시즌
8월 11일 KIA전 끝내기홈런을 친후
병호 형도 없고 한준이 형도 없는 이러한 현실 속에 과연 이번 시즌엔 잘 해낼 수 있을까.
지난 시즌의 부상을 딛고 끝끝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 한 해. 16시즌 2루수 WAR 1위를 기록하며 선수 개인으로는 세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서건창/2016년 문서를 참조.
3.8. 2017 시즌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7011000381_0.jpg캡틴 2년차, WBC의 후유증을 떨치고 제자리를 잡을 것인가.
생에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WBC에 참가했지만 신통치 못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리그로 돌아와야 했다.
국대에서의 부진
서건창/2017년 항목 참조.
3.9. 2018 시즌
어느덧 캡틴 3년차에 접어들었다.4. 플레이 스타일
데뷔 초기, 타격폼을 바꾸고 14시즌, 치명적인 십자인대 부상을 당한 15시즌 이후의 스타일이 전부 차이가 있다.훈련을 통해 후천적으로 우투좌타가 된 선수는 태생적으로 타구의 비거리가 나오기 힘든 편이다. 따라서 많은 우투좌타 타자들은 정교함을 앞세운 레벨스윙 + 밀어치기 타법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은데, 서건창은 그와는 다르게 레벨스윙 + 당겨치기 타법을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변화구에는 상대적으로 대처하기 쉬우나, 1,2루간을 좁히는 가르시아 쉬프트에 취약했다. 2012시즌에는 홈런을 1개만 기록했을 정도로 장타력은 좋지 않았지만, 파워히터인 가르시아처럼 타구가 거의 우익수 방면으로 치우쳐져 있고 1,2루 땅볼 범타율이 상당히 높았다. 2012 시즌에는 .342의 출루율을 기록해 테이블 세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출루에는 강점을 보이지 못했고 13시즌에도 86경기 나와 .352에 그쳤다.
하지만 2014년 들어서 후술할 타격폼으로 바꾸고 타자로서 진일보 했다. 한시즌 최다안타인 201안타에 타율 .370, 출루율 .438, 장타율 .547, OPS .985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냈다. 아무리 타신투병 시즌이라도 1번타자가 이정도면 리그폭격급! 타격폼이 군더더기없이 간결해지고 배트 스피드가 빨라져 2, 3루투가 크게 증가했다.
주루는 넥센 입단 이후에는 염경엽 당시 주루코치의 지도를 통해 주루실력이 일취월장하여 14시즌까진 매시즌 20개 이상의 도루가 가능했디. 실질적 데뷔 첫 해부터 39 도루를 기록하면서 테이블 세터로서의 성공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때도 주루센스가 좋은 선수는 아니었다. 39도루를 기록하면서도 도실도 12개나 기록했고 커리어 하이인 2014년에 48도루의 이면에 17도실이 있었다. 대신 베이스를 돌 때의 가속이 좋아 타격 후 한 베이스를 더 진루하는 능력은 좋았다. 그래서 2012 시즌에는 3루타 10개로 1위, 2014년 17개의 3루타로 한 시즌 최다 3루타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15시즌 십자인대 부상 이후 주루능력도 크게 감수했다. 2016년 26도루에 무려 13도실 이었고 2017시즌에는 15도루에 그쳤다. 가속도도 줄어서 2014년처럼 2, 3루타를 양산하지도 못한다.
수비는 원래 범위만 넓고, 송구와 스킬은 안좋았는데 부상 이후 범위까지 저질이 되었다. 자세한 건 후술.
4.1. 타격폼
2012년 스윙 |
2013년 스윙 |
2014년 스윙 : |
2014년 스윙 : 정면에서 본 모습 |
2013년과 2014년 비교. 테이크백이 간결해졌다. 동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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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터뷰에서 말하길 배트 위치를 귀에서 가슴으로 내림으로서 투수 공을 기다리는 시간에 불필요한 힘이나 긴장감이 많이 없어지는 것 같다고.
이 타법으로 사회인 야구에서 '선생님' 소리를 들었다는 간증이 나왔다. 글
2014년 8월 19일 두산 베어스의 정수빈이 서건창의 폼을 따라하여 생애 첫 만루홈런을 쳤다. |
정수빈은 17일부터 폼을 비슷하게 가져가서 안타를 치더니 19일에는 만루홈런 포함 4타수 3안타 7타점을 올려 인생경기를 펼쳤다고. 서건창의 타격폼을 벤치마킹해서 효과를 보았다는 정수빈 인터뷰
9월 4일에는 서건창의 도플갱어 정수빈이라는 기사도 실렸다. #
10월 13일 197안타로 신기록을 세우면서 "국내에서 누구보다 공을 가까이에 놓고 치는 타자, 이론상으로는 완벽한 타격폼"이라는 기사가 났다.
한 종합무도인이 서건창과 정수빈의 폼을 비교하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직접 가서 읽어볼것. 링크
그리고 2015년에 장기휴강을 이유로 고향 팀에 숨어 있던 제자가 비슷한 폼으로 활약중이다.
2015년 다시 타격폼을 바꾸고 있다. 기사
그러나 효과는 영....
타구의 비거리는 늘어났으나, 그 결과로 외야수 앞 안타가 될 타구가 모두 외야 플라이가 되고있는 중이다. 그 후 다시 타격폼을 원래대로 수정했다.
9월 19일 지진으로 인해 자료화면행을 타면서 특유의 타격폼이 전국으로 퍼졌다.
4.2. 수비 구멍
수비에 있어선 고교 시절 당한 어깨부상의 여파로 강견은 아니지만,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좌우 수비폭과 빠른 수비전환능력을 살려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2012시즌에는 정규타석을 채운 2루수 중 최소 실책 (7개)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후 수비폭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어서 2012시즌에는 머리 위쪽으로 넘어가는 타구를 잘 처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글러브에서 공뺴는 동작이 느리고 송구 방향이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지적되었다.광주일고 선배인 강정호가 리그 정상급 유격수 수비를 보여줬기 때문에 넥센의 키스톤 콤비만큼은 여러 구단 중 정평이 나 있었다. 2013년 5월 1일 대 삼성 전에서 보여준, 주자 없는 상황에서 역모션으로 타구를 건져내고, 강정호에게 지체없이 토스 -> 강정호가 송구하는 2단 콤보 수비(!)는 강정호와 부상이전 서건창의 호흡을 잘 보여줬던 좋은 예.(38초부터 나온다. 아쉽게도 세이프 판정)
멋진 호흡 | "잡아야지~~"라고 지청구를 먹이는 건 덤(...) |
그러나 2015시즌 발목 십자인대 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될뻔 했다가 기적적으로 돌아온 이후 운동능력이 급감하면서 수비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부상 이전에도 좋지 않은 어깨와 부정확한 송구로 땅볼 처리에 항상 문제를 노출했고, 포구가 빼어나다 하기도 어려웠지만 뛰어난 운동능력으로 수비 폭만큼은 알아주는 선수였는데 내야 사령관 강정호가 피츠버그로 떠난데다가 본인 스스로도 멘탈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며 2루 수비에서는 구멍이 되었다.
그래도 2016시즌까진 마이너스는 아니었는데 2017시즌 운동능력이 더 떨어지면서 좌우의 수비폭이 상당히 좁아졌으며, 이로 인해서 빠른 타구에 대한 반응이 항상 한박자씩 느리다. 그리고 본인도 이걸 알고 있기 때문에 포구 후에 1루 송구를 서두르다 보니 악송구가 너무 빈번하게 나왔다. 서건창의 RAAwithADJ(평균 대비 수비 득점 기여, 포지션 조정)는 -2.36, WAAwithADJ(평균 대비 수비 승리 기여, 포지션 조정)는 -0.215로 10개 팀 주전 2루수 중 꼴찌다. 17시즌에는 서건창이 2루 수비 들어가면 팀에 손해였다. 타격에서는 여전했음에도 수비에서 까먹는 바람에 sWAR은 오히려 낮아졌다.
탈아시아급 유격수 수비 포텐이라던 이학주가 살인태클로 십자인대가 끊어진 다음에 운동능력을 상실하면서 커리어가 통채로 박살나기 직전인 것을 감안하면 그래도 타격 능력이라도 지켜내고 있는[18] 서건창은 그나마 다행인 셈이긴 하다. 단지 1루 악송구와 호리호리한 체격과 매치가 안되는 좁은 수비 범위를 매일 보는 넥센팬들이 울화통이 터질뿐. 근데 신기하게도 넥센을 제외한 타팀팬들한테는 여전히 서건창이 수비 잘하는 2루수로 인식되어 있다.
여기에 홈구장도 문제다. 서건창이 커리어를 보낸 목동야구장과 고척 스카이돔은 모두 수비에서 불리한 인조잔디 구장이다. 질낮은 인조잔디로 발생한 불규칙 바운드로 인해 천연잔디를 사용하는 타 팀의 2루수에 비해 수비에서 핸디캡을 가지게 되니 가뜩이나 안좋은 수비가 더 안좋아졌다.[19][20]
5. 트리비아
5.1. '서선생님'의 유래
2014년 시즌 초반에는 다른 타자들이 폭발하는 와중에 홀로 저조하여 안 좋은 평가를 들었으나, 5월 들어 넥센 타순이 1사 만루 병살, 2사 만루 땅볼, 2사 만루 후라이 등을 구우며 단체로 삽질할 때 서건창 홀로 치고 달리고 득점하는 맹활약으로 팀을 캐리하면서, 넥센 히어로즈 갤러리에서 한 갤러가 서건창에 관한 게시글에서 존칭을 붙이지 않으면 "서건창 선생님이 니 친구냐?"라고 꼬박꼬박 댓글을 달던 게 인기를 끌어 '서선생님'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다.
때마침 비 더 레전드가 흥하면서 매경기 안타를 치는 서건창이 비더레 유저들로부터 믿을맨 타자로서 회자되게 되어 호칭은 점점 진화해가고 엠팍 등 타 커뮤니티로도 퍼져나갔다. 서건창 선생님 갤러리 공지글이라든가, '프로페 서'의 등장, 급기야는 허구연의 "서건창은 스타 선수가 아니다"
2014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 200안타 등 각종 역사에 남을 대기록들을 달성하면서 '서선생님' 열풍은 쉬이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2014 프로야구 MVP를 수상하면서 남긴 소감
이 때의 성적[22]과 수상 경력[23] 등이 흑백차별을 끝내는데 큰 역할을 하여 메이저리그 전 구단 영구결번이 된 레전드인 재키 로빈슨의 그것과 매우 흡사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건창의 팬들은 그의 MVP 득표수(99표중 77표)과 재키 로빈슨의 명예의 전당 득표율(77.5%)이 거의 같은 것도 엮어서 화제로 삼고 있다. 이창섭 기자의 칼럼에서도 두 선수에 대한 비교가 언급되었다. 모바일캡처링크
5.2. 이야깃거리
- 2017년 4월 7일 팀 최초로, 역대 22번째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였다.
-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신고선수 입단을 선택했던 것. 아래로 여동생이 있다. 서건창의 뒷바라지를 위해 홀어머니가 파트타이머로 닥치는 대로 일했다고 하며, LG에서 방출당한 순간에도 어머니가 서건창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서건창이 2014년 만개한 이후, 어머니는 서건창이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너무 철이 일찍 들었다며 2014 프로야구 MVP 시상식장에서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 정찬헌과는 중-고등학교 동기로, 서건창이 처음에 LG로 간 것도 절친 정찬헌의 영향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 원래 별명은 '서겆창', '서멍창', '석연찮'[24] 등이었으나 2014년 팀이 부진한 시기에도 활약하면서 '서 선생님', '서센세'라는 별명을 얻었고, 여기서 파생되어 '서 교수님', '프로페 서', '서 총장님', '스페이 서'[25]까지 승격되었다.
그리고 1호 제자도 탄생했다
2014년 MVP 수상 소감 이후에는 백진(百進)이라는 호도 붙었다. 한편 인터뷰에서 항상 모범적인 답변만 계속 반복해 겆무새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새로운 인터뷰를 보았는데 예전에 본 것같은 기분이 든다고...2014년 포스트시즌 부진 때는 '서 시간강사', '서 조교' 라고도 불렸다(...)화려한 바리에이션건창반점이라는 별명도 유명하다.천안시의 시내버스 회사 중에도 "건창여객"이라는 회사가 있다교타자이기 때문에 홈런포를 뽑아내는 유형의 타자는 아니다 보니 홈런을 보기 거의 힘든데, 이대형이 홈런 치면 탕수육 쿠폰처럼 서건창도 홈런 치면 쿠폰적립이라는 드립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꾸준한 벌크업 시도로 이미 홈런개수가 10개를 넘었다.[26]
- 2014년 시즌 두산 베어스와 경기 때 홍성흔의 잘 맞춘 타구를 호수비로 잡아 냈다. 그 장면을 생중계로 보고 있던 홍성흔의 딸 홍화리는 원망을 담아 서건창의 이름을 적는 데스노트 명단자가 됐다(...)
조윤선[27]그리고 다음날 삼진을 당했다
사실은 부산대 출신 아이돌 배우라 카더라본인은 임시완 닮았다는 말이 쑥스러워서 싫다고 한다.사실은 좌우반전 화면이라 카더라
- 일본의 모여자배우를 닮았다.
- 최근 넥센 담당기자와 나눈 이야기가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교수님의 나라 걱정.twt
서 더 프레지던트 건창 ㅠㅠㅠ
- 꽤 잘생긴 얼굴이지만 한가지 흠이라면 머리 크기. 크보 대두로 유명한 양준혁,강민호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차이가 있는 편이다. 사실 입단 때만 해도 말라서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그렇게까지 크진 않았다. 또 얼굴은 큰데 키는 좀 작고, 벌크업해서 몸집은 의외로 있기에 유니폼말고 다른 옷을 입으면 비율은 그저 그렇다. 일례로 어느 기자가 컨셉사진으로 서건창을 눕혀놓고 야구공으로 몸을 둘렀는데, (작아서)금새 다 둘렀고 상자에 여전히 공은 수북히 남았다는 얘기가 있다.링크
6. 연도별 성적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이고 붉은 표시는 1위 기록이며, 파란 표시는 역대 최고기록이다.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sWAR |
2008 | LG | 1 | 1 | .000 | 0 | 0 | 0 | 0 | 0 | 0 | 0 | 0 | 1 | .000 | .000 | 0.01 |
2009 | 1군 기록 없음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4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sWAR |
2012 | 넥센 | 127 | 433 | .266 | 115 | 21 | 10 (1위) | 1 | 70 | 40 | 39 (2위) | 52 | 43 | .342 | .367 | 3.51 |
2013 | 86 | 316 | .266 | 84 | 13 | 2 | 0 | 53 | 18 | 26 | 44 | 29 | .352 | .320 | 1.72 | |
2014 | 128 | 543 | .370 (1위) | 201 (1위) | 41 (1위) | 17 (1위) | 7 | 135 (1위) | 67 | 48 (3위) | 67 | 47 | .438 (4위) | .547 | 7.92 | |
2015 | 85 | 312 | .297 | 93 | 24 | 4 | 3 | 52 | 37 | 9 | 43 | 24 | .381 | .429 | 1.53 | |
2016 | 140 | 560 | .325 | 182 (5위) | 30 | 7 (4위) | 7 | 111 (5위) | 63 | 26 | 79 | 58 | .406 | .441 | 4.45 | |
2017 | 139 | 539 | .332 | 179 (3위) | 28 | 3 | 6 | 87 | 76 | 15 | 68 | 68 | .403 | .429 | 3.75 | |
KBO 통산 (7시즌) | 706 | 2704 | .316 | 854 | 157 | 43 | 24 | 508 | 301 | 163 | 353 | 270 | .392 | .432 | 22.89 |
[1] 히어로 서건창 서건창! 워어어어~ 히어로 서건창 서건창! 승리를 위하여~(지금은 잘 안쓰고 있다.)[2] 히어로~ 서~건창 안타 서~건창 안타 오오오오오X4[3] 2014년 기록[4] 2014년 기록[5] 2014년 기록[6] 서건창이 임시완을 닮았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임시완이 드라마 속에서 누군가를 때리는 장면과 서건창이 3루타를 치고 3루로 뛰어 들어갈 때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단의 이야깃거리 문단 참고.[7] 히어로즈의 역사가 아직 짧고, 이상할 정도로 우수한 좌타자가 부족했던 점은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2018년 현 시점까지는 이에 비교라도 가능한 선수가 없다.[8] 넥센 히어로즈 최초의 신인왕이다.[9] 시즌 128경기제에서 나온 기록이다. 이를 현 144경기 체제로 환산하면 무려 시즌 226안타를 친 것이다. 흠좀무.[10] 당시 KIA는 2008년 1차 지명으로 군산상고 전우엽을 지명했다.[11]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야구장을 다니며 야구 선수의 꿈을 꾸게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서건창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아버지께서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12] 2008년 7월 23일 잠실 히어로즈전에 대타로 나와 송신영에게 삼구삼진을 당했다. 그리고 4년 후 서건창이 넥센으로 이적하고 송신영이 NC에서 트레이드되어 친정으로 복귀하면서 둘은 한 팀에서 뛰게 되었다.[13] 하지만 서건창의 이 역사적인 LG 1군경기는 자료영상이 없다. 이 경기 중계권을 가진 MBC ESPN이 원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던 이승엽의 경기를 중계하려다가 이승엽이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자 급하게 설기현의 풀럼 방한 친선경기를 편성해버렸기 때문http://job.dcinside.com/board/view/?id=sh&no=4195003&page=1. 비 예보가 있어서 돌려버린 듯(실제로 그 날 잠실에는 비가 왔다.) 담당자 선구안 보소[14] 박흥식은 이후 넥센의 1군 타격코치로 자리를 옮겼고, 2012년 넥센의 핵 타선 구축에 크게 기여한다.[15] 넥센이 창단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실시한 신고선수 테스트에서 유일하게 선발됐다. 이 여파 때문인지 이장석이 2013시즌 시범경기 중계 때 서건창을 NC에 뺏기지 않기 위해 신고선수 테스트 일정을 앞당겼다고 증언을 하기도 했다(...) 구라성이 강해 보이긴 하나, 서건창도 원래는 NC의 트라이아웃을 준비 중이었다는 인터뷰를 했던 걸 보면 결과적으로는 어느 정도 사실인 셈이다.[16] 넥센이 처음 실시한 입단 테스트라고 하는데 이미 2010년 말에 포수 허도환이 테스트를 거쳐서 신고선수로 입단한 전적이 있다. 허도환도 두산 베어스에서 방출된 후 팔꿈치 수술을 받고 일찌감치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친 상태라 서건창과 유사한 경우다. 단, 허도환의 경우 비공식적으로 본인만 실시한 입단 테스트였고, 서건창은 정식 트라이아웃이었으므로 입단테스트의 성격이 다르다. 일반 회사의 입사로 비유해 본다면 허도환은 특채로 들어온 것이고, 서건창은 공채로 들어왔다고 보면 된다. 넥센이 처음 실시한 입단테스트란 트라이아웃을 말한다. 이병훈 해설위원도 공개 테스트라고 말한 바 있다.[17] 신고선수 출신 타자의 성공신화 계보는 장종훈-박경완-김현수-서건창으로 이어진다.[18] 부상 이후에 수비뿐 아니라 주루에도 문제가 생겨서 도루 개수와 성공률도 모두 현저히 떨어졌다. 이젠 풀타임을 뛰어도 도루 20개 성공하면 많은 수준.[19] 이는 인조잔디 구장 시절의 마산 야구장에서 뛸 당시의 박민우도 비슷하게 겪은 핸디캡. 다만 박민우는 2루수치곤 큰 키와 큰 체격으로 인한 핸디캡도 같이 가지고 있었으며, 마산 야구장이 천연잔디로 바뀐 지금은 불규칙 바운드로 인한 실책성 플레이를 좀 줄었다. 다만 박민우도 서건창과 마찬가지로 구장 탓하기 전에 수비를 못하는게 맞다. 2017시즌 천연잔디에서 뛰었지만 수비스탯에서 마이너스 찍고 서건창 바로 위에 있는 선수가 박민우다.[20] 실제로 2017 WBC 당시 메이저리그의 전문가들과 현역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고척 스카이돔은 다른 미국의 인조잔디 구장에 비해 바운드가 더 크게 튄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이런 구장의 악조건을 생각하면 서건창의 수비가 결코 못 쓸 수준은 아니라는 것.[21] 2014년 한국프로야구 MVP 수상과 동시에 교수에서 총장으로확정.[22] 높은 타율, 200안타 이상[23] 신인왕 수상 2년 후 MVP수상[24] 2012 시즌 보여준 것도 없던 선수가 느닷없이 중용되는 것에 석연찮아하던 네티즌들이 붙인 별명[25] '서건창은 스타 선수가 아니다'라는 허구연 위원의 말에 '그 분은 별이 아니라 우주 그 자체다'라며 넥센팬들이 붙인 별명[26] 부상으로 온전히 시즌을 치르지 못했던 2015년에도 3홈런을 기록했으며 풀타임으로 출장한 2014, 2016시즌에는 각각 7홈런씩을 기록했다.[27] 참고로 서건창은 두산을 상대로 강한 선수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