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재판관 (국회 선출, 대통령 임명) | ||||
신창언 국회 선출(민주자유당), 김영삼 대통령 임명 | → | 권성 국회 선출(한나라당), 김대중 대통령 임명 | → | 이동흡 국회 선출(한나라당), 노무현 대통령 임명 |
권성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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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11B2B><colcolor=#E6B366> 前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재판관 권성 權誠 | Kweon-Seong | |||
출생 | 1941년 8월 14일 ([age(1941-08-14)]세) | ||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 청송리[1] | |||
현직 | 청강학당 훈장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명예 이사장 | ||
재임기간 | 헌법재판소 재판관 (국회 한나라당 몫 선출 / 김대중 대통령 임명) | ||
2000년 9월 15일 ~ 2006년 8월 13일[정년] | |||
제12·13대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 | |||
2008년 3월 31일 ~ 2014년 1월 27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911B2B><colcolor=#E6B366> 가족 | 배우자 박인숙, 슬하 3남[3] | |
학력 | 서울남대문초등학교 (졸업) 공주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 56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 | ||
경력 | 제8회 사법시험 합격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원 판사 대전지방법원 판사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전지방법원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수석심의관 대법원 사법제도발전위원회 연구실장 방송위원회 위원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부장판사 서울지방법원장 제36대 청주지방법원장 제2대 서울행정법원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2000.09. ~ 2006.08.) 헌법재판소 헌법실무연구회 회장 법무법인 대륙 상임고문 변호사 제12·13대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 (이명박 정부) 초대 인하대학교 로스쿨 원장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이사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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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 前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역임한 인물이다.신숙희 대법관의 외삼촌이다.[4]
2. 생애
충청남도 연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한나라당 추천 국회 선출로 2000년부터 2006년까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내고 정년퇴임하였다.[5] 그 후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 2008년 초대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2010년 제7대 인간성 회복 운동 추진협의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할 당시 이완용 증손 재산 재산반환소송 승소판결을 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5.18내란음모사건의 항소심 재판을 맡았으며 재판 기록을 공개하기도 했다. 공개된 재판 기록에는 청와대와 대기업의 총수와의 커넥션에 의한 정치자금의 공여를 자세하게 표기되어 있어 권성이 부정 부패에 단호함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 헌법재판소 재판관 재임 중
헌법재판관 재임 당시 “간통죄는 위헌”이라는 등 소수의견을 많이 냈으나 호주제와 국가보안법 고무·찬양 조항에 대해 합헌 의견을 내는 등 보수성향을 보여 왔다. 또 언론관계법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규정과 신문·방송 겸업금지 조항 등에 대해서는 위헌 의견을 냈다.2001년 옛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당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던 김홍신 의원을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던 박혁규 의원과 서로 맞바꾸는 내용의 사·보임을 단행했고,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던 건강보험 재정분리를 김 의원이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이만섭 국회의장은 한나라당이 제출한 사·보임 요청서를 그대로 허가해 이에 김 의원은 반발하여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냈다.
2년이 넘는 심리 끝에 2003년 10월, 재판관 8대1 의견으로 김 전 의원의 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관 다수의견 8인은 '국회의장이 국회의 의사를 원활히 운영하기 위해 상임위원회 구성원인 위원의 선임 및 개선에 있어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고 그의 ‘요청’에 응하는 것은 국회 운영에 있어 본질적 요소'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권 재판관은 다수의견이 아닌 소수의견 1인으로 주목되었는데 '국회의원의 정당에의 예속이 일반적 경향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현상이 대의제 민주주의 원리를 부정하고 그 틀을 뛰어 넘는 원칙의 변화를 의미한다면 이것은 결단코 용납될 수 없다' '국회 본래의 사명인 입법을 위한 심의·표결에 관한 한 본회의에 있어서든 상임위원회에 있어서든, 국회의원이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표결하는 권한은 불가침·불가양의 권한이다. 따라서 의원 본인이 원래 속한 상임위에서 계속 활동하기를 원하면 위법하거나 부당한 행위를 하지 않은 이상 본인 의사에 반해 강제로 위원회에서 사임시킬 수 없다. 김홍신 의원에 대한 소속 정당 지도부 및 국회의장의 사·보임 행위는 김 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과 상임위 활동권을 침해해 위헌이다.' 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오신환 사보임 논란..권성 前 재판관 소수의견 주목
2004년 3월 12일 선고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6] 재판관 의견에 관하여 구체적인 의견표시를 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있었지만 탄핵 당일 추측과 10년 후의 취재 결과에서 모두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3명이 인용, 5명이 기각, 1명이 각하했다고 한다. 여기서 인용 3인에는 한나라당 추천 선출인 권성 본인을 포함해 이상경[7], 김영일[8] 재판관이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위법이 있었고 국회가 결의를 했다면 인용해야 한다며 탄핵에 찬성했다고 전해진다.
여담으로 퇴임하는 해인 2006년 1월, 모친이 별세했다. #
4. 재판관 퇴임 후
재판관 퇴임 이후로는 이석기 내란선동 사건 때엔 정부 대변인을 하면서 언론중재위원장과 인추협 이사장직을 내려놓은 것은 소속 단체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함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소홀함이 없었다는 평가다. 청강은 권성의 호이다. 권성의 가족들은 현직 검사이며 판사로 재직 중으로 법조인 집안이다.2016년 인터뷰에서 2012년 봄,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 시절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기도 했다. 당시 회상으로 "평소에 혈압이 높지 않았는데, 건강에 자신을 가지고 너무 무리했던 것 같다"며 "걷는 것도 불가능했고,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했지만 재활을 거쳐 이젠 많이 회복됐다"고 했다. 법률신문
최근 근황으로는 2022년에도 정치, 사법 현안에 관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권성 前 재판관 '국민스승, 추대
속담이 근거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을 짚어보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상식과 그 허실을 살펴 내 손자, 손녀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사조와 유행이 지금과는 많이 다른 시대를 살아온 81세의 할아버지가 바삐 공부하느라 가족 사이의 대화 시간도 부족한 손자 손녀들에게 훈계조로 재미없게 잔소리 같은 말을 하기는 싫었다. 그 보다는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말을 차라리 글로 써 두고 뒷날 그들이 시간 날 때 읽어보게 하는 것이 더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쓴다.
사실 자라나는 어린이와 성장하는 젊은이를 상대로 책을 쓰기는 매우 조심스럽다. 그들의 저항심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왜 저항심을 가질까 생각해 본다. 우선 그들의 독립정신이 그렇게 만든다. “간섭은 싫다.”, “지시는 싫다.”, “알아서 한다.”라는 그들의 마음과 기분 때문에 그렇다.
둘째는 그들의 자존심이 그렇게 만든다. “나도 안다.” “나도 할 수 있다.” 이런 자존심이 심리적 저항을 일으킨다.
셋째는 많은 어른들이 정직하는 못하다는 그들의 비판적 인식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정직을 좋아하고 정직한 사람을 존경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고 믿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은 점점 자라나면서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정직하지 못한, 어른들의 위선적인 처신을 보고 실망하고 불신을 키운다. 훌륭하다고 온갖 좋은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행동은 그와 달리 엉뚱하게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어른들에게 반감을 갖는다. 말뿐임에 대한 저항심이 부지불각 중에 좋은 말조차도 듣기 싫게 만든다.
넷째는 지식과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뒤처진 어른들의 느려터짐 때문이다. 노인들은 뒤떨어져 젊음을 따라갈 수 없다. 그 격차가 그들은 답답한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수정과 보완 작업을 천천히 하던 중 2022.1.2. 뇌경색이 발생하였다. 뇌출혈이 발생했던 2012년 3월 1일로부터 10년 만에 다시 뇌경색까지 겪게 되었으니 유감이다. 그러나 81세의 나이를 생각하면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다행히 가느다란 혈관이 막혀 비교적 증세가 가볍다고 한다. 서울대병원 신경과에 입원하여 일주일 여 치료를 받은 뒤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받으라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재활 치료 전문병원에 1월 11일 입원하여 현재 치료중이다. 이 책의 수정과 보완 작업을 미처 마치기 전에 입원을 하게 되어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81세의 나이를 생각하면 역시 아쉬울 것도 없다. 입원 중에 지루한 시간을 그나마 보람 있게 보낼 방법을 궁리하다가 병실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이용해 이 책의 마무리를 시작했다. 더 이상 병이 악화되기 전에 그리고 생을 마감하기 전에 이 책이나마 집필을 완료하여 내손자녀 및 인연 있는 젊은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보완이나 교정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이 정도로 끝내기로 했다. 오늘로 원고 작업을 마친다. 나머지 일은 막내 아들 내건에게 맡긴다.
2022. 3. 28 《상식을 찾아서》편저자 권 성
사실 자라나는 어린이와 성장하는 젊은이를 상대로 책을 쓰기는 매우 조심스럽다. 그들의 저항심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왜 저항심을 가질까 생각해 본다. 우선 그들의 독립정신이 그렇게 만든다. “간섭은 싫다.”, “지시는 싫다.”, “알아서 한다.”라는 그들의 마음과 기분 때문에 그렇다.
둘째는 그들의 자존심이 그렇게 만든다. “나도 안다.” “나도 할 수 있다.” 이런 자존심이 심리적 저항을 일으킨다.
셋째는 많은 어른들이 정직하는 못하다는 그들의 비판적 인식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정직을 좋아하고 정직한 사람을 존경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고 믿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은 점점 자라나면서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정직하지 못한, 어른들의 위선적인 처신을 보고 실망하고 불신을 키운다. 훌륭하다고 온갖 좋은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행동은 그와 달리 엉뚱하게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어른들에게 반감을 갖는다. 말뿐임에 대한 저항심이 부지불각 중에 좋은 말조차도 듣기 싫게 만든다.
넷째는 지식과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뒤처진 어른들의 느려터짐 때문이다. 노인들은 뒤떨어져 젊음을 따라갈 수 없다. 그 격차가 그들은 답답한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수정과 보완 작업을 천천히 하던 중 2022.1.2. 뇌경색이 발생하였다. 뇌출혈이 발생했던 2012년 3월 1일로부터 10년 만에 다시 뇌경색까지 겪게 되었으니 유감이다. 그러나 81세의 나이를 생각하면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다행히 가느다란 혈관이 막혀 비교적 증세가 가볍다고 한다. 서울대병원 신경과에 입원하여 일주일 여 치료를 받은 뒤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받으라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재활 치료 전문병원에 1월 11일 입원하여 현재 치료중이다. 이 책의 수정과 보완 작업을 미처 마치기 전에 입원을 하게 되어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81세의 나이를 생각하면 역시 아쉬울 것도 없다. 입원 중에 지루한 시간을 그나마 보람 있게 보낼 방법을 궁리하다가 병실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이용해 이 책의 마무리를 시작했다. 더 이상 병이 악화되기 전에 그리고 생을 마감하기 전에 이 책이나마 집필을 완료하여 내손자녀 및 인연 있는 젊은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보완이나 교정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이 정도로 끝내기로 했다. 오늘로 원고 작업을 마친다. 나머지 일은 막내 아들 내건에게 맡긴다.
2022. 3. 28 《상식을 찾아서》편저자 권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