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1 15:14:15

고구려(소설)/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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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호평3. 비판
3.1. 미천왕 편3.2. 고국원왕 편

1. 개요

김진명의 역사소설 《고구려》의 평가를 서술한 문서.

2. 호평

소설적인 측면에서 재미있다는 평가가 꽤 많다. 무엇보다 가장 큰 호평 요인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구도가 확실하게 잡혀 있다는 점이다. 인덕과 의지의 남자 을불, 본능과 힘에 충실한 모용외, 책략과 용병에 능숙한 최비의 삼파전 구도가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스토리 상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이 삼파전 구도의 중심에서 뛰어난 지모로 능란하게 편을 오가며 움직이는 주아영을 두고 을불과 모용외 사이의 삼각관계가 구축된다. 여기에 소청과 같은 조연들도 단순히 일회성 캐릭터로 묻히지 않고 어떻게든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인물들의 내면을 묘사하기보다 우선 행동으로 드러나는 직선적이고 시원시원한 전개도 김진명식 서술의 강점. 스토리가 전개되는 역사적 무대를 고구려와 그 주위, 엄밀하게 말하자면 요동과 요서에 국한시키고 삼국통일, 팔왕의 난, 영가의 난 등 중원의 대형 사건들은 을불과 모용외와 최비가 이루는 삼파전 구도의 단순한 들러리로 몰아넣어서 스토리의 밀도를 높였다. 스토리가 철저히 지배자의 입장에 집중되고, 그것에 조종당하고 목숨까지도 내놓는 민초와 군사들의 인간적 입장에 대한 서술은 외면되고 있다는 것도 스토리의 밀도를 한층 높인다.

더불어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캐릭터 자체는 다양하지만 파악하기 쉬운 편이고, 틀에 박힌 기존의 무협-사극 전개를 따라감으로써 독자들의 진입 장벽이 낮은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된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정형화된 전개를 답습하지는 않고 일정하게 변용하여 역사적 전개에 맞추는 모습을 보인다. 다른 김진명의 소설들과 달리 스토리의 저변에 깔린 국수주의적 감정이 그에 대한 혐오감을 느낄 만큼 노골적으로 표출되지도 않는 편이다. 소설 내의 직접적인 서술보다는 배경이나 인물의 성격 따위로 작가의 생각이 드러나는 편.

3. 비판

여기까지 읽었다면 알겠지만, 위에서 이 소설이 호평받는 요인으로 꼽힌 것들은 거의 동일하게 이 소설이 까이는 요인이기도 하다. 등장인물 각각이 지니고 있는 개성은 강하지만 그것이 인물 내부의 고민과 심리 상태를 무시한 채 평면적으로 그려지는데다, 인물의 내적인 동기와 성장을 그려내지 못하다 보니 독자들이 감정을 이입하거나 심정적으로 이해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한 마디로 개성이 강하고 능력도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초인으로만 만들어져 인간성이 배제되었기에 그것이 매력으로 승화되지를 못한다. 이렇게 보면 을불은 그저 운만 더럽게 좋은 호구, 최비는 머리는 좋은 것 같은데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녀석, 모용외는 성깔 더러운 근육머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너무 극단적인 방식으로 성격을 나타낸다.

이러한 면은 스토리가 워낙 시간을 휙휙 뛰어넘기 때문에 부각되는 면도 있는데, 인물들이 내면적으로 성장하고 바뀌는 모습을 보여줄 공간 자체가 워낙 부족하고 단선적이다. 그렇다 보니 스토리상의 깊이가 부족하고 스토리가 인물들의 극한적인 추종이나 대결로만 치달아 도무지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가 가장 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바로 5권의 스토리로, 이러이러하게 아편의 힘을 빌어서 정신을 차린 모용황이 고구려로 침공하여 나라가 무너지는데 그런 와중에도 고국원왕은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는 모습을 못 보여주고 백기만 들고 앉았고 급기야 부모님이 잡혀가고 아내가 잡혀가고 이러이러하게 굴욕을 참아낸 끝에 겨우 모용황이 물러났는데, 20년 뒤로 시점이 바뀌며 모용황과 전진은 쇠락해 있었다.

스토리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그 바깥에 있는 배경을 다 잘라버린 것도 문제다. 물론 작가는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무엇을 넣고 빼야 하는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지만, 모두에게는 각자의 배경이 있고 그에 따른 일정한 사정이 있는 법인데 이 소설에서는 스토리의 매 단계에서 오직 그 배경과 그 문제만이 전부인 양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천왕 편에서 등장하는 고구려의 모습은 요동과 숙신과 낙랑이 전부고 낙랑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밖에 안 그려지기 때문에 스토리 상의 밀도는 있을지언정 이 시기 안팎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설명이 부족하다. 단순히 여기에서 그친다면 모르겠지만 그 과정과 파장이 생략되어 상술한 '기승결'의 뜬금포로 분출했다.

국수주의 정서도 위에서 지적된 평면화라는 문제와 결합되어 여전히 스토리 내에서 문제가 되는데, 낙랑군은 사백 년 동안 고조선의 유민들을 노예로 부리고 핍박하며 고구려로부터도 정기적으로 철을 갈취해가는 악의 축으로 그려지고 급기야 종국에는 고조선의 유민들을 인간 방패로 내세우는 악당이 된다. 선비족 또한 모용외는 막강한 힘으로 기분대로 살인과 방화를 저지르고 남들을 핍박하고 오만하게 설치며, 모용황은 추악한 어머니로부터 사생아로 태어나 아비를 죽이고 왕위에 올라서는 고구려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 논밭에 불을 지르고 학살을 저지르며 자신도 화상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는 부정적인 인물이다.

역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사악한 외세의 이미지를 강조한 것인데, 김진명은 고구려를 집필하기 전인 2005년에 을지문덕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 <살수>를 썼다. 살수 서문에서도 작가는 "요즘 사람은 삼국지는 알지만 고구려는 모른다"고 주장했으며, 을지문덕을 사모하는 여성 캐릭터를 수 문제가 태자 양용에게 환웅을 섬기던 무녀를 범하게 해서 태어났다는 설정을 붙였다.
사내들을 이어 여인들, 그리고 소년들까지 몰려들었다. 하나같이 비장한 얼굴로 낙랑성을 향해 양팔을 벌리고 선 이들의 모습에 성벽 위의 군사들은 미친 듯이 활을 쏘았지만 아무도 피하거나 움츠리지 않았다.
─ 『고구려』 3권.

이와 반대로 고구려의 낙랑 침략은 동포인 고조선의 유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 정의로운 전쟁으로 그려진다. 그 군주인 미천왕은 굶주린 백성들에게 몸소 밥을 퍼주고, 우경법을 개선하거나 스스로 쟁기를 들고 농사를 짓기도 하며, 몸소 밤잠을 자지 않고 군사를 조련하는 데 매진하는 등 시종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급기야 고조선의 유민들을 인간 방패로 마주한 앞에서는 고노자가 그들의 희생을 종용하고, 유민들은 그에 호응하여 자발적으로 화살받이가 되어 낙랑성의 성문을 밀어젖힌다.

그리고 까이는 요인은 이 밖에도 많지만, 역시 제일은 역사 왜곡이다. 역사 왜곡의 예시는 여기에 있다.

3.1. 미천왕 편

  • 엉터리로 고증된 인물 군상들
원래대로라면 수실촌 음모네에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그만두고, 압록강에서 재모와 소금장수까지 하다가 숙박비 때문에 이마저도 박살나는 등 갖은 고생을 다 겪다 창조리에게 구해진 을불이 여기에서는 낙랑에서 기연을 만나질 않나, 신성에서 비무대회에 우승하지 않나, 숙신에서 반군을 결성하는 등 무협지의 주인공으로 바뀌었다. 이건 뭐 봉상왕을 피해 숨어 다니기는커녕 아예 찾아 달라고 안달을 하는 셈. 심지어 전령으로 위장해 왕궁에 잠입해서 봉상왕을 암살하려 하니 어쌔신이 따로 없다. 삼국사기에서도 을불의 고생담과 창조리의 반정은 그 상황 묘사가 자세한 편인데 이걸 싸그리 뒤집었으니... 기록 자체가 워낙 극적이라, 남은 기록에 살만 붙여도 소설적인 재미를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고 멋대로 비틀었는지 의문이다.

왕준이 기발하게 오나라의 장강 방어선을 무력화시킨 일[1]두예의 휘하에 있던 최비가 한 것으로 돌리고, 그 뒤로 최비가 사마염의 총애를 받았다고 하는데... 천하통일 이후에 그대로 정줄놓사마염의 상태로 볼 때 글쎄올시다? 게다가 여기에서는 최비가 298년에 동해왕 사마월의 권세를 등에 업고 낙랑군을 감찰하러 왔다가 낙랑태수를 죽이고 그대로 낙랑을 꿀꺽하는 것처럼 묘사되는데, 실제로는 팔왕의 난이 한창이던 311년에 유주의 군벌이던 왕준(王浚)이 처남이랍시고 동위교위에 앉혀주었던 낙하산 인사였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오히려 최비가 팔왕의 난을 조종하고 왕준이 최비의 들러리인 것처럼 서술되어 있으니, 왜곡도 이런 왜곡이 없을 지경. 한 마디로 최비는 낙랑과는 전혀 무관하다.

또 실제 역사에서의 최비는 자신을 후원해주던 왕준이 석륵에게 죽임당하자 평주자사로 자립하며, 중원에서 망명해 오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안 오고 죄다 모용외에게로 가버리자 고구려와 다른 선비족 부락들을 끌어들여 모용외를 박살내려다가 역으로 모용외에게 관광당해 고구려로 도망치는 인물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오히려 모용외와 의형제를 맺었다가 미천왕에게 낙랑군을 빼앗기니 적은 아군이 되고 아군은 적이 된 기묘한 왜곡.

모용외는 단순한 야만족 추장이 아니라 상당한 개념인이었다. 물론 혈기방장하던 초기에는 겁 없이 진나라를 수시로 노략질하고 부여까지 초주검으로 만들어놓는 패기를 선보였지만, 21세에 진나라에 항복하면서부터 농업과 양잠을 장려하고 중원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팔왕의 난영가의 난으로 중원이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도 끝까지 진나라에 충성하는 포지션을 취했으며, 내정에 성공하고 지식인을 공경해 최비를 제치고 망명 지식인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이러한 모용외의 내적 성장은 소설적으로도 흥미로운 부분인데 여기에서는 힘과 본능만 믿고 날뛰는 완벽한 야만족 우두머리를 연출하고 있다. 문제는 그 힘과 본능이 기묘하게 적절하다는 것.

모용외 휘하의 배억, 고첨, 양탐, 봉유, 봉추, 서방호, 황보급 등은 인물들은 다 어디가고[2] 원목중걸과 배의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일단 배의(裴疑)는 배억(裴嶷)을 오독한 결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제는 고국원왕 편인 5권에서 따로 배억이 나온다는 것. 원목중걸의 경우에는 그 비중이 엄청나게 큰데도 불구하고 애당초 저런 이름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게 문제. 이름을 '중걸'이라 부르는 꼴을 보면 성이 '원목'이라는 복성인데, 애당초 중국에는 원목이라는 성씨가 없다. 게다가 왕망 이래로 중국에서 두 글자 이름 보다는 외자 이름이 대세였다는 점도 신경쓰면 지는 거다.
  • 기타
고구려가 부족연합적 성격을 띤 나부 체제에서 보다 행정적으로 정교한 방위부 체제로 재편된 것이 언제적 이야기인데, 아직도 절노부니 소노부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조불은 절노부 사람, 소우는 소노부 사람이라고 하는데 삼국사기에는 조불은 북부 사람, 소우는 동부 사람이라고 언급되는 것과 합치되지 않는다. 고구려 정치사에 대한 작가의 이해가 일천함을 보여주는 요소.

을불이 방황하던 중 어느 현자로부터 국제 정세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데,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돌궐이 언급된다. 돌궐은 6세기에 유연의 부용 종족으로 처음 등장하는데 작중 시점은 290년대. 또한 사마천이 한무제에게 궁형을 당했으니 사기를 편찬하면서 한무제의 눈치를 보았다는 떡밥을 던지는데, 사마천이 그래서 잘도 항우와 여후를 본기에 넣어주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신성에 어마어마한 양질의 철광이 있다고 나오는데, 실제로 요동에서 철이 나오는 곳은 한참 남쪽인 개평과 해성 일대다.

3.2. 고국원왕 편

  • 어불성설인 중원 정세
고구려에게 현도군을 빼앗긴 손정과 노창이 5천여 패잔병과 함께 동진으로 도망치자, 모용외는 낙랑 패잔병을 공격하여 박살내고 손정의 목을 베어다가 노창에게 들려서 동진으로 보내어 도망친 최비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에 사마예가 벌벌 떨면서 전국옥새를 반띵해서 모용외에게 보낸다는 어이가 승천하는 전개를 선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난리통에 전국옥새를 흉노에게 빼앗긴 상황이었고, 모용외는 동진에 충성을 맹세하고 작위와 관직을 받아 중원에서 망명해 온 사족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처지였다. 화북을 장악한 석륵이 모용외에게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하자, 모용외는 그 사신을 잡아다가 동진으로 보내버리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이미 화북은 석륵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고, 때문에 모용외와 동진은 직접 국경을 맞대지 않고 있었다. 모용외와 동진이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바닷길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동진으로 가던 모용외의 사자가 풍랑을 만나 침몰했을 정도. 즉 모용부가 아무리 강성하더라도 둘 사이에 있는 석륵의 세력이 멀쩡한 이상 동진에게는 전혀 위협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모용외가 무서워서 사마예가 벌벌벌 떨고, 최비의 공작으로 우문부와 단부와 고구려가 뭉쳐서 모용외를 공격할 때 진나라도 5만 군사를 보내어 요동에 있는 모용외를 공격한다는 것은 말다.

이후 소설에서는 최비가 창조리의 계책에 따라 석륵을 꼬드겨서 모용외의 배후를 치도록 하고, 이로 말미암아 모용외는 석륵과의 전투에 정신을 쏟느라 고구려와의 전쟁을 지속하지 못했다고 서술한다. 모용외와 석륵 사이에 벌어진 전쟁은 10년 동안이나 이어졌고, 그 결과 석륵은 모용외에게 관광당한 나머지 치명상을 입고 목숨이 위중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거짓이다. 석륵은 한번도 모용외와 싸운 적이 없었고, 다만 앞서의 사신 사건 이후 단 한 번 우문부로 하여금 모용외를 치도록 시켰을 뿐이었다. 석륵은 병으로 죽었고 그마저도 모용외가 죽은 뒤의 일이었다.
  • 모용황에 대한 악의적 중상
이 소설에서 모용황은 탄생부터 대단히 비천하고 더러운 것으로 묘사된다. 주아영 외의 어떤 여자와도 검열삭제를 하지 않겠다며 금딸하던 모용외가 도저히 욕정을 참지 못하고 여자라고도 부를 수 없는 비천한 장애인 추녀에게 그것을 풀어서 모용황이 태어났다는 것인데, 모용황이 저승에서 작가를 고소미를 먹일 수준이다. 실제 역사에서의 모용황은 모용외가 단부의 공주를 아내로 맞아서 낳은 첫 번째 자식이었으니, 원래는 한 나라의 공주님이던 인물이 소설에서는 졸지에 천민 장애인으로 바뀌고 말았다.

나아가 장성한 모용황은 이러한 성장 환경으로 인해 수많은 악덕의 집결체로 묘사된다. 자신의 이복형 모용광을 눈도 깜짝하지 않고 죽여버리는 냉혈한이자, 반란으로 모용외의 자리를 찬탈하고 사실상 아버지를 살해하다시피 하는 패륜아이며, 수확을 앞둔 고구려의 농토에 불을 질러서 수많은 백성들을 죽게 만드는 테러리스트이고, 부하들을 자신이 꼴리는 대로 죽이고 살리는 창천항로 풍의 막장 리더다. 급기야 모용인의 난을 진압하던 중 주아영의 화공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몸의 반쪽이 화상으로 문드러지고, 이로 말미암아 한참 동안 고통받다가 아편의 힘을 빌어서 간신히 제정신을 차린 다음에 고구려를 무너뜨리고자 모든 것을 내던지는 복수귀가 된다.

정리하면 슬럼가에서 밑바닥 인생으로 자라나 성격은 냉혈한에 행적은 패륜아요, 하는 짓은 테러리스트, 말하는 것은 창천항로, 생긴 것은 투 페이스, 몸은 약쟁이, 바라는 것은 복수이니 정말 빌런다운 부정적인 요소는 있는 대로 죄다 모아놓았다.
  • 고국원왕에 대한 은유적인 비방?
한 마디로 정리가 가능한데 확신범

실제로는 주변국들이 너무 강해지고 시대가 안좋아 고생을 했던 고국원왕을 희대의 평화주의자로 바꿔놓았다. 일단 고운 마음을 가졌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너무 지나쳐서 그야말로 눈새다. 태자 시절부터 전쟁 직전의 모용외에게 사자로 가 화친을 요청하다가 죽을 뻔하는 등 싹수가 노랗더니, 왕이 되어서는 모용황이 논밭을 불태우는 테러를 저질러도 화친만 요청할 뿐이고, 주아영이 화공으로 모용황을 반쯤 죽여놓았는데도 하는 짓이라고는 모용황에게 고개 숙여 사죄한다. 심지어 환도성이 털릴 때에는 신하들이 또 화친하자고 할까봐 단웅곡에 유폐시켜 놓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걸 또 탈출해서 모용황에게 항복해버린다. 심지어 어머니와 아내를 포로로 잡아가고 아버지의 무덤을 파헤치는 것도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허락한 것이라고...[3][4]

이 역시 정리하자면, 나라의 이란 자가 테러도 무시하는 무능에 테러리스트 보스에게 고개 숙이는 호구, 자기 맘에 안든다고 나라의 인재들도 버리는 꼰대에다가, 자기가 자초해놓고 신하들에게 화풀이하는 찌질이로써 백성을 위한답시고 테러범들에게 항복, 아버지 무덤이 부서지고 어머니, 아내가 납치되는것도 방관하는 패륜아암군이다.

즉,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의 예라고 할수있다.
또한 상식을 벗어나는 행위를 백성을 위해서라며 계속 정당화 시키는데 이것을 보았을때 위에서 서술했듯 확신범과 상당히 유사하다. '자신의 행동만이 오직 옳다.', '지금의 피해는 잠깐일뿐 시간이 지나면 나의 뜻이 평화라는걸 알게 될거다.' 라는 의도를 지닌게 훤히 드러나기 때문.

요약을 했을때 대게의 확신범들은 자신만이 옳고, 자신만이 정의이자 대의라고 주장하며 '언젠가 후손이나 동료들이 내뜻 알아주겠지?' 라는 결과를 기대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며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준다. 소설 내의 고국원왕도 그런 식으로 나온다. 시도때도 없이 백성을 위해서라면서 적국의 테러를 눈감으며 백성의 위협이 되는 적국의 왕을 승전 직전에 살리고 절을 하며 나중에는 자기 마음대로 항복을 해 조상들이 만들어준 평화를 박살내는 온갖 패륜행위를 저지른다. 정말이지 으로 태어나면 안되는 인물.

게다가 작중에서 구부의 입을 빌어 고국원왕에게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을 보면 한심한 수준이다. 앙숙인 두 사람에게 서로 따귀를 때리게 시키면 서로가 점점 더 세게 따귀를 때리지 그 짓을 멈추지 않는다면서, 차라리 내가 몇 번 따귀를 맞아주고 이 짓을 끝내겠다는 것.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비유가 말이 안 되는 게, 이건 전쟁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짓이다. 칼잡이의 육참골단에 비유해도 모자랄 판이니, 따귀는 부적절한 비유다.

뿐만 아니라 고국원왕이 치양으로 쳐들어가서 백제와의 전쟁을 일으킨 것도 근초고왕이 먼저 도망친 사기를 내놓으라고 시비를 걸자, 혈기를 참지 못한 이련이 제멋대로 백제를 침공한 것이라고 미화했다. 이에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포위하자 고국원왕은 단기필마로 백제군을 향해 달려가다 헤드샷을 당해 쓰러진다. 한 사람의 백성(사기)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은 것이라고. 실제 역사에서는 고국원왕이 먼저 백제를 침공한 것이다. 일본서기와 종합해 볼 때, 근초고왕이 지금의 전라도 일대를 경략하는 사이 고국원왕이 근초고왕의 뒤통수를 후리다가 역관광을 당했다는 것이 학계의 견해. 사기는 근구수왕 문서에 잘 나와 있듯이 백제인으로 고구려에 망명했다가 고구려군의 첩보를 백제에 제공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고국원왕이 하는 짓은 오히려 김진명이 고국원왕을 까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4편이고 5편이고 간에 죽을 때까지 고국원왕을 편드는 백성이 한 명도 안 나온다. 신하들에 의해 유폐당할 정도니 이쯤 되면 왕으로서는 볼 장 다 본 셈이다... 그나마 죽은 뒤에는 백성들이 근초고왕에게 돌을 던지면서 고국원왕만이 자신들의 왕이라고 외치긴 한다.
  • 고무와 고구부의 존재감
모용외와 미천왕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여자로 변장한 고무가 모용외의 진중에 잠입해 모용외에게 치명상을 입힌다는 전개는 당연히 창작이다. 애당초 모용외가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던 와중에 죽었다는 것부터가 기록에는 없는 설정이고, 소설에서는 모용외와 미천왕이 비슷한 시점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정작 미천왕은 331년, 모용외는 그로부터 다시 2년이 지난 333년까지 멀쩡히 잘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어서 훗날 소수림왕이 되는 구부가 342년 즈음에 중원을 순방하는데 이때 훗날의 근초고왕을 도와 준 다음, 세 치 혀로 연나라의 재상 송해를 죽였다고 하니 이 무슨... 송해는 345년까지도 멀쩡히 살아만 있었다. 또 여기에서 구부가 치는 드립이 걸작인데, 송(宋)이라는 국명은 갓 쓴 나무, 즉 장승에서 비롯되었고 장승은 치우로부터 비롯되었으니 이는 조선의 왕 치우가 하남성을 정복한 데에서 비롯되었다나. 이는 사실 구부의 개드립이었지만 진실을 밝혀 두자면, 송의 갓머리(宀)는 쉽게 부르는 속칭이고 사실 갓이 아니라 '집 면'자다. 지붕과 벽을 그린 상형자며 집을 의미한다. 설문해자에서도 서현의 주석에 宋을 '나무로 집을 만들어서 사람이 사는 바(木所以成室 以居人也)'라 하고 있고, 갑골문에서도 집 안에 나무가 있는 형상인데 이는 집 가운데 뜨락에 심어서 가문의 흥성을 기원하는 신령스런 나무를 뜻한다. 나중에 이런 의미는 사라지고 성씨와 국호로만 쓰인다. 치우가 조선의 왕이라는 말이 거짓임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리고 훗날 백제가 평양성을 포위한 상황에서 고국원왕이 전사했을 때 백제가 군사를 물린 이유가 구부가 나서서 근초고왕더러 위에서 설명한 빚을 갚으라고 해서란다. 최소한 중학교 때 국사만 제대로 배웠더라도 나올 수가 없는 개드립이다.


[1] 오나라는 장강을 타고 내려오는 진나라 함선을 막기 위해 장강에 쇠말뚝을 박아놓고, 쇠사슬을 쳐서 물길을 막아버렸다. 이에 진나라 군대를 이끌던 왕준이 뗏목을 만들어서 쇠장대가 뗏목에 박히게 하고 기름 먹인 뗏목에 불을 질러 쇠사슬을 녹여버렸다는 비교적 유명한 이야기. 이게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사건이기 때문에 삼국지연의 막바지 부분에도 나온다.[2] 이들 중에서 배억, 고첨, 봉추, 황보급 정도만 스쳐 지나가듯이 이름만 언급된다. 모용황의 부하로는 봉혁, 모여니, 한수, 석종, 난발 등이 스쳐 지나가듯이 이름만 등장한다.[3] 사실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수없는 행동이다. 백성을 위한다고 항복을 한다? 그것도 나라의 왕이? 왕이 항복을 한다면 그 나라는 멸망이다. 식민지가 난무했던 20세기보다도 더 가차없고 참혹하던 군주제의 시대에 왕이 항복하고, 태후가 납치되고, 선왕의 무덤이 도굴되는 것도 백성을 위해서라는건 왕이 미친거다. 무엇보다 말이 안되는건 멸한 나라에 백성들은 짐승만도 못한 노예가 되어 승리한 나라에서 비운의 삶을 살게 된다. 즉, '수천수만의 백성들'이 노예가 될 판국에 '백성을 위해서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나 지껄이는 암군이라 할수있다.[4] 실제 기록에는 '고국원왕이 홀로 단웅곡으로 달아나자, 모용황이 추격하지 않고 사신을 보내어 왕을 불렀으나 왕이 나오지 않았다. 모용황이 돌아가려 하는데 한수가 고국원왕의 아버지의 시신을 싣고, 어머니를 인질로 잡아 돌아가서 고국원왕이 스스로 항복하도록 만들자고 건의하니 모용황이 이것을 받아들였다'고 똑똑히 적혀 있다. 즉 실제 고국원왕은 저항했으나 어머니와 아버지의 유체때문에 그런거지 백성을 위한다는 앞뒤가 맞지 않은 말을 하는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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