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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봉 喜望峰 | Cape of Good Hope | Kaap die Goeie Hoop | |
희망봉의 항공 사진. | |
지도 | |
<colbgcolor=#363><colcolor=#fff> 위치 | 남아프리카 공화국 웨스턴케이프 주 케이프타운 (케이프 반도) |
높이 | 87 m |
형태 | 반도, 곶 |
쾨펜의 기후 구분 | 지중해성 기후 (Cs)[1] |
[clearfix]
1. 개요
희망봉(喜望峰, Cape of Good Hope, Kaap die Goeie Hoop)[2]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위치한 곶으로, 대서양과 인도양의 경계 중 하나이자 수에즈 운하 개통 이전 클리퍼 항로(Clipper route)[3]에서 케이프타운 중간 기항지의 지리적 표징으로 애용되었던 지형이다.이름은 1488년 이 곳을 통과한 포르투갈 항해사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카부 다 보아 에스페란사(Cabo da Boa Esperança)'라고 한 것을 영어로 번역한 '케이프 오브 굿 호프(Cape of Good Hope)'가 근대에 일본어로 중역되었다가 다시 일본식 한자어로 한국어에 수입[4]된 것인데, 일본 국내에서도 정확히 어떤 문헌 또는 저자가 이 표현을 먼저 썼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한편 중국어로는 '호망각(好望角; Hǎowàngjiǎo)'라 부른다.
2. 특징
세간에는 희망봉이라는 이름의 유명세와 아프리카 대륙 끝으로 튀어나온 반도와 같은 인상 덕분에 "아프로-유라시아의 최남단이 희망봉"이라는 인식이 있으나, 실제로 최남단은 아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최남단은 희망봉에서 남동쪽으로 더 내려온 아굴라스 곶(Cape Agulhas)이며, 아굴라스 곶 가운데서도 곶 자체가 아니라 곶 서쪽의 해안 절벽이 최남단이다. 해당 해안가 도로변에는 아프리카 최남단을 기념하는 상징물이 있다. 이마저도 아프로-유라시아 대륙 본토만을 따졌을 때의 이야기이며 외딴 섬들을 포함하면 프린스 에드워드 제도에 속해 있는 마리온 섬이 진짜 최남단이다. 물론 프린스 에드워드 제도는 무인도이기에 정주민이 존재하는 지역 가운데 최남단은 아굴라스 곶이 맞기는 하다.희망봉은 항해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고 아프리카의 지리 역시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시절에 '드디어 최남단에 도착했다'고 착각해서 붙인 이름이다. 세계지도를 보면 명명한 당시 항해사들의 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유럽에서 출발해 장장 1만 km에 달하는 아프리카 서해안을 지나, 대륙이 끝나고 처음으로 동쪽으로 도는 곳이 희망봉이기 때문. 거기다 돌출된 곶인지라 저 끄트머리에서 배를 꺾으면 지금껏 오던 항해로와는 다르게 바다만 펼쳐진 느낌을 준다.
전 세계 해운업과 해양사에도 중요한 곳이다. 이 곳을 통과하는 클리퍼 항로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봉쇄될 경우 유일한 대체 항로이기 때문이다. 파나마 운하를 가로지르는 항로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가로질러야 하는 훨씬 먼 경로인데다가 파나맥스 제한 때문에 통과 가능한 선박도 제한되어있고 통과 시간도 오래 걸린다. 북극항로의 경우 겨울에는 아예 항행이 불가능하며, 가능하더라도 유빙 등이 선박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에 쉽게 택할 수 있는 경로가 아니다.
3. 역사
한때는 1488년에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비(非)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으로서는 이곳에 처음 도달했다고 알려졌지만, 현대 역사학계에서 제기된 설 중에는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a)에 있는 기록에 따라,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네코 2세(Necho II)의 명을 받고 항해에 나선 페니키아인들이 기원전에 이미 도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5] 탐험의 시기는 네코 2세의 통치 시기인 기원전 600년 경 즈음으로 추정된다.요약하자면, 페니키아 항해사들이 이집트 파라오 네코 2세의 명령을 받아 이집트 동쪽의 홍해를 출발하여 시계 방향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돌았다는 것.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페니키아인들이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적도를 넘어가니 태양이 북쪽에 떠있었다고 언급했다더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실제로 남반구에서는 한낮에 태양이 북쪽에 떠있기 때문에 정말로 희망봉을 돌았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물론 헤로도토스는 당시 남반구의 천문 현상에 대해 알지 못했으므로, 본인은 해당 전언에 대해 '믿을 수 없다'고 기록했지만, 실제로는 매우 정확한 증언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언급된 해당 기록은 다음과 같다.
He, when he had made an end of digging the canal which leads from the Nile to the Arabian Gulf, sent Phoenicians in ships, charging them to sail on their return voyage past the Pillars of Heracles till they should come into the northern sea and so to Egypt. So the Phoenicians set out from the Red Sea and sailed the southern sea; whenever autumn came they would put in and sow the land, to whatever part of Libya they might come, and there await the harvest; then, having gathered in the crop, they sailed on, so that after two years had passed, it was in the third that they rounded the Pillars of Heracles and came to Egypt. There they said (what some may believe, though I do not) that in sailing round Libya they had the sun on their right hand.
그(네코 2세)가 나일강에서 아라비아 만까지 운하를 파는 일을 마쳤을 때, 페니키아인들에게 '헤라클레스의 기둥'과 북해(지중해)를 지나 이집트로 다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페니키아인들은 홍해를 출발하여 남쪽 바다로 나아갔다. 가을이 오면 그곳이 리비아(아프리카)의 어디가 되었건 정박하여 곡물을 경작하여, 추수하고, 곡식을 비축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 일을 반복하며 항해를 진행하기를 2년, 드디어 3년째 되던 해에 '허큘레스의 기둥'을 통과하였고, 이집트에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는데(누군가는 믿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아프리카를 돌면서 항해할 때, 태양이 그들의 오른편에 있었다고 한다.
헤로도토스, 《역사》 중
그(네코 2세)가 나일강에서 아라비아 만까지 운하를 파는 일을 마쳤을 때, 페니키아인들에게 '헤라클레스의 기둥'과 북해(지중해)를 지나 이집트로 다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페니키아인들은 홍해를 출발하여 남쪽 바다로 나아갔다. 가을이 오면 그곳이 리비아(아프리카)의 어디가 되었건 정박하여 곡물을 경작하여, 추수하고, 곡식을 비축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 일을 반복하며 항해를 진행하기를 2년, 드디어 3년째 되던 해에 '허큘레스의 기둥'을 통과하였고, 이집트에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는데(누군가는 믿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아프리카를 돌면서 항해할 때, 태양이 그들의 오른편에 있었다고 한다.
헤로도토스, 《역사》 중
여기서 말하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전통적으로는 지브롤터 해협을 뜻한다고 알려졌으며, 지브롤터 해협 근처에 있던 어떤 신전의 기둥을 뜻한다고 보는 설, 혹은 지중해의 다른 지리적 상징이나 오늘날의 카나리아 제도를 지칭한다는 설도 있다.
한편 고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기의 그리스인 항해사인 키지코스의 에우독소스는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서 아프리카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서 인도까지 항해하는 여정에 올랐는데[6], 이때 오늘날의 희망봉으로 추정되는 위치 불명의 곶을 발견했다고 기록을 남겨서 이에 대한 진위 여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7]
포르투갈의 탐사대보다 수십 년 이전에 작성된 프라 마우로 지도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아프리카 남단이 표시되어 있으며, 이 지역의 지리 자료가 대부분 아랍 출처라는 것을 고려하면 아랍권의 항해사들은 아프리카의 남단에 대해 알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8] 그러나 아랍인들은 이미 향신료 무역로를 독점하고 있었기에 굳이 희망봉에서 포르투갈로 가는 항로를 중요시 않았고, 이에 따라 희망봉을 기록한 1차 사료도 소멸한 것으로 추정된다. 애초에 포르투갈의 탐사대도 아무 가망도 없이 무작정 남방 항로를 개척하러 간게 아니라 남방 항로에 대한 소문을 들어 간 것이니.
어쨌거나, 1488년에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이곳에 도달하였을 때는 '폭풍의 곶'으로 이름 붙였으나 항해를 지원한 포르투갈 왕실의 조언에 따라 희망봉(Cabo da Boa Esperança)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곳을 지나는 항해자들이 인도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리고 전술했듯이 이곳이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이라고 오해받은 것도 있고, 아프리카 해안의 항해에서 동쪽 방향으로 항해하게 되는 첫 관문이라서[9], 이런 이름이 붙은 것도 있다. 대항해시대의 유럽 항해사들이 인도로 가기 위한 필수 코스기에 이 지역을 독점하다시피 한 포르투갈이 막대한 이득을 보았다. 이 때문에 스페인에서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게 신항로를 찾으라는 임무를 주기도 했다. 165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케이프타운[10]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식민화하였다. 나폴레옹 전쟁 중이던 1806년에 영국이 점거하였으며, 1814년에 네덜란드와의 협정으로 영국령이 되었다. 근대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짧은 항로가 생기자 대부분 시장을 잃었고, 현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이름을 날린다.
2019년에는 수에즈 운하의 통행세가 대폭 인상되고, 아덴 만의 해적들에게 선박이 나포될 우려도 있어서 1600년대처럼 희망봉을 돌아 유럽으로 가는 배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2021년에는 수에즈 운하 에버 기븐호 좌초 사고 때문에 많은 화물선이 희망봉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2023년에는 예멘의 후티 반군이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명분으로 홍해와 인도양을 오가는 민간선박을 공격하자 희망봉을 택하는 선박이 늘고 있다.##
[1]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케이프타운 인근에서만 이 기후가 나타난다.[2] 영어명 Good Hope를 의역해 '바랄 희(希)'가 아닌 '기쁠 희(喜)'로 쓴다.[3] 쾌속 범선인 클리퍼 선이 이용하던 루트라는 뜻으로, 오랜 항해 기록에 따른 해저지형 및 바람 방향 등이 익히 알려져 있어 보편적으로 쓰이는 항로를 말한다.[4] 오늘날의 통상적인 한국어 번역이었다면 'cape'는 '봉우리'보다는 '곶'에 가까우므로 '희망곶'이 되었을 것이다.[5] 아직 정설은 아니다. 이들이 실제로 희망봉에 도달했는지 알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탐험 기록은 물리적인 증거가 동반되기 전까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천문학적 기록이 너무 확실해서 사실상 인정받고 있는 추세이다.[6] 참고로 이 항해는 결국 실패하여, 에우독소스는 북아프리카로 회항했다.[7] 영어 위키백과의 서술에 의하면, 주류 역사학계 내에서는 이 기록에 대해 부정론이 우세하다고 한다. 이 서술대로면 에우독소스는 서아프리카 일대의 비슷한 지형을 보고 착각한 듯하다.[8]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는 심지어 오렌지 강의 존재도 표시가 되어 있는데, 이 강은 희망봉 서쪽에서 대서양과 만나는 강이다. 따라서 적어도 아랍인들이 희망봉의 존재를 알 뿐더러 오렌지 강이 있는 나미비아 국경 근처까지는 항해를 하고 기록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9] 나이지리아 앞바다에서도 동쪽으로 항해하는 부분이 있지만(아프리카 대륙 서부의 움푹 들어간 부분), 거기서 동쪽으로 갔다가 또 남쪽으로 내려가야 되니까 이 일대를 항해하는 이들에게는 딱히 의미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서아프리카 지역의 부족이나 국가를 상대로 무역하는 이들이면 모를까, 여길 그냥 지나가기만 하는 이들에게는 지루한 항해가 계속 이어지는 곳으로 보였을 터다. 게다가 이 시기쯤 되면 이미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더듬더듬 내려가는 항해보다는 크로노미터(육분의)나 별자리 등을 활용하여 나이지리아 앞바다 정도는 횡단해주는 항해술을 보이기도 했다. 바르톨로뮤 디아스, 바스코 다 가마도 지리상의 알려진 곳까지는 모두 대양을 어느 정도 질러서 내려갔다.[10] 네덜란드어나 아프리칸스어로는 카프스타트(Kaapstad)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