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三國史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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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문 및 문헌기록상 신라 최초로 성씨를 사용한 왕은 진흥왕임 * 29~31권까지 연표 * 32~40권까지 잡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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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匹夫.필부는 신라시대 장수이다.
2. 생애
660년 10월 고구려군이 칠중성을 포위하였다. 당시 칠중성 성주는 필부(匹夫)였는데, 태종 무열왕이 충성스럽고 용맹한 인재로서 백제, 고구려, 말갈의 침입을 막아낼 수 있는 유능한 인재를 수소문해 직접 앉힌 뛰어난 장수였다고 한다.고구려군에 맞서 필부는 약 20일 간 수성전을 펼쳤다. 고구려군은 신라군의 사기가 높아 함락시킬 수 없겠다며 포위를 풀고 철군하려 했는데, 고구려와 내통한 대나마(大奈麻) 비삽(比歃)이 몰래 고구려에 사람을 보내 칠중성 안의 식량이 떨어졌고 힘이 다했으니 다시 공격한다면 항복할 것이라고 알렸다. 고구려군이 이에 다시 칠중성을 공격했고, 필부는 전말을 눈치채고 비삽의 목을 베어 성 밖에 던졌다.이에 성 내 군사에게 고하기를,
“충신과 의로운 사람은 죽어도 굽히지 않는다. 힘써 노력하라! 성의 존망이 이 한 번의 싸움에 있다.”
이에 병든 사람까지 모두 일어나 성에 올라 싸웠다. 그러나 고구려군이 바람을 타고 화공을 하며 공격해 왔고, 병사의 기세가 피로하고 지쳐서 죽고 부상당한 자가 절반이 넘었다. 필부 등은 상처로 피가 흘러 뒤꿈치를 적실 정도까지 활을 쏘며 싸우다 죽었고 무열왕은 이 소식을 듣고 통곡하고 필부에게 급찬의 관등을 추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