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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츠 오이겐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오스트리아의 군인에 대한 내용은 사부아 공자 외젠 문서를 참조하십시오.파일:external/www.modelshipgallery.com/IMG_0005.jpg
1/350 모형으로 재현한 프린츠 오이겐
아드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아드미랄 히퍼블뤼허프린츠 오이겐자이틀리츠뤼초
1. 개요2. 제원3. 함생
3.1. 건조 배경3.2. 실전
4. 최후5. 미디어에 등장6. 관련 문서

1. 개요

프린츠 오이겐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 크릭스마리네(해군)의 아드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3번함이다. 이름은 사부아 공자 외젠독일어식 표기에서 유래되었다. 1차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의 테게트호프급 전함인 SMS 프린츠 오이겐의 이름을 계승하였다. 전쟁 내내 비스마르크 추격전에 참가하여 비스마르크가 후드를 격침시키는데 공헌을 했다. 이후 동부전선의 포격지원에 나서다가 전쟁이 끝나면서 미 해군에게 압수당한다. 이후 크로스로드 작전에서 미국의 렉싱턴급 항공모함 새러토가, 일본의 나가토급 전함 나가토 등과 함께 가라앉는다.

2. 제원

건조 1936년 4월 23일
진수 1938년 8월 22일
취역 1940년 8월 1일
최후 1946년 12월
기본배수량 16,970t
만재배수량 18,750t
전장 212.5m
21.7m
흘수 7.4m
승조원 1,382명
무장
주포 20.3cm SK/C 34 60구경장 함포 8문
대공포 10.5cm SK/C 33 65구경장 12문
대공기관포 3.7cm Flak 43 연장기관포 6기
2cm Flak 38 단장기관포 8정
어뢰무장 53.3cm 어뢰발사관 12관 (3x4)
장갑
현측장갑 80mm
갑판장갑 50mm
포탑 전면 105mm
아드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의 자매함이니 스펙이 비슷하다. 자세한 정보는 문서 참고.

3. 함생

3.1. 건조 배경

독일이 재무장을 선언할 무렵인 1933년, 당시 독일 해군의 처지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패배한 독일은 1918년에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심한 규제를 받고 있었고, 그나마 남아있던 배들은 스캐퍼플로 독일 대양함대 자침 사건으로 인해 파괴된데다가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되어 독일 해군은 거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이 조약으로 인해 독일 해군에게 남는 것은 대부분 도이칠란트급 전함과 같은 이미 구식화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몇척과 SMS 엠덴과 같은 구식 군함들 뿐이었다. 따라서 독일은 재해권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거의 약소국 해군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33년, 독일이 재무장을 선언하고 베르사유 조약이 무용지물이 되어나가자, 독일은 영국 해군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두기 위해 함선 몇척을 더 건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때, 독일 해군에게 금과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소련이 급격하게 세력을 키우게 되자 이를 견제할 국가가 필요했는데, 그중 하나가 독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영국-독일 해군조약이 체결되어 함선의 보유를 어느정도 보유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은 Z 계획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수립하여 전함 2척(비스마르크급 전함)과 중순양함 3척(아드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건조에 착수한다. 물론 이 3척의 중순양함에 프린츠 오이겐도 포함되어 있다.

원래 프린츠 오이겐은 계획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중순양함 아드미랄 히퍼 1척과 히퍼의 설계를 적용한 15cm(5.9인치) 포를 장착한 경순양함 2척을 건조하고 끝낼 계획이었으나, 소련 해군에서 180mm 주포 를 장착한 키로프급 순양함이 취역을 하자 계획을 급히 수정하여 중순양함 3척 건조 계획을 세운다. 이에 따라 프린츠 오이겐에 대한 건조 명령이 내려졌다.

1936년에 건조 명령이 내려졌고, 4월 23일, 킬 항구의 게르마니에베르프트(Germaniawerft) 조선소에서 건조가 시작되었다.

1938년에 진수식이 이루어졌고, 그로 부터 1년 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다. 당시 전황이 급했기 때문에 건조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1940년 거의 완성되어갈 무렵에 하필 야간에 영국 공군에게 공습을 받게 되었다. 다행히도 피해가 경미했기 때문에 8월 1일, 프린츠 오이겐은 정식으로 취역한다.
파일:external/www.admiral-hipper-class.dk/galleugenlaunch02.jpg
진수식이 진행되고있는 프린츠 오이겐.

3.2. 실전

전술했듯 취역 전에 1940년 7월 1일에 킬에 대규모 폭격이 퍼부어졌다. 이때 프린츠 오이겐도 경미한 손상을 입었다.

1941년 5월, 프린츠 오이겐은 전함 비스마르크와 함께 라인 연습 작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18일, 고덴하펜을 출격해 스카게라크 해협을 통과해 북해로 나오게 되었다. 24일,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은 덴마크 해협에서 영국 해군 순양전함 HMS 후드(Hood)와 교전하게 되었다. HMS 후드는 비스마르크의 공격에 의해 두동강 나면서 격침되었다. 이때, 프린츠 오이겐도 영국 해군 전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에 주포를 명중시켰다. 자세한 내용은 비스마르크 추격전 문서 참조.

그후, 프린츠 오이겐은 비스마르크와 헤어지게 된다. 이때가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프린츠 오이겐은 6월 1일 항구에 입항하게 되고, 7월 1일 공습으로 손상되었다.

그리고 1942년 2월 11일에서 13일 까지 '켈베로스 작전(Operation Cerberus)'-통칭 채널 대쉬(Channel dash)라고 부른다.- 에 참가하게 되었다.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와 함께 가게 되었는데 이 작전은 영국의 도버 해협 눈앞을 통과한다는 매우 대담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프린츠 오이겐은 상처 없이 통과하였다.

1942년 2월에 노르웨이로 이동했다. 그러나 2월 23일 트론 하임 앞바다에서 영국 잠수함 트라이던트 호가 발사한 어뢰중 1기가 함미에 명중하였다. 다행히 침몰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항해 불능이 되었으며, 7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다. 프린츠 오이겐은 트론 하임항까지 예인되어 응급수리에 들어갔으며, 5월에는 킬 항으로 수리를 받기 위해 독일로 향했다. 영국 해군의 공격을 빠져 나가서 5월 18일에 킬에 도착하였다. 곧바로 함미 수복 작업에 들어갔으며, 1942년 말에는 전선에 복귀하였다. 그 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까지 발트해에서 활약하였으나, 경순양함 라이프치히(Leipizig)와 충돌사고를 일으켜 함수가 손상되었다.

4. 최후

프린츠 오이겐은 격전의 한중간에서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전까지 살아 남은 행운의 함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종료된 후 전리품으로 미국에 넘겨져 미분류 다용도함 USS 프린츠 오이겐(USS Prinz Eugen, IX-300)으로서 미국 해군에 편입되었다. 조사와 시험을 마친 프린츠 오이겐은 크로스로드 작전 원자 폭탄 실험의 표적 함대에 배치되었다. 1946년 7월의 '에이블'과 '베이커' 실험에서 침몰하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잔류 방사능이 강하여 수리하지 못하였다. 이후 콰제린 환초로 옮기는 도중에 얕은 여울에서 전복되어 좌초되어, 현재도 그 위치(북위 8°45'9.49", 동경 167°40'59.60")에 놓여 있다.구글맵 링크

1978년, 프린츠 오이겐의 좌현 프로펠러가 인양되었으며, 이 함 승조원 출신 참전자들의 요청에 따라 독일로 반환되어 라뵈(Laboe)의 독일 해군 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2018년 프린츠 오이겐의 연료탱크에 남아 있던 잔존유를 회수하였다.#

유럽 해전에서 구르며 살아남았고, 종전 후 핵무기 실험에서도 버티다가 좌초되어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으로 인해 높은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맷집이야 당시 해군조약에서 중순양함은 규격 1만톤으로 제한했으나 프린츠 오이겐은 이를 어기고 1만 5천톤 규격이었으니 맷집이 좋은 거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설계 문제로 배수량값을 전혀 못하였고, 배수량과 비교하면 우월한 맷집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미군에서 똑같이 탈조약형으로 만든 중순양함들과 나란히보면 과대평가가 있다. 그리고 독일 해군은 애초에 유보트를 활용한 통상파괴전 이외에 대규모 함대 운영을 한 것도 아니라 프린츠 오이겐이 살아남기에는 난이도가 낮은 편이었다.[1] 오히려 더 치열한 태평양 전쟁에서 구르고도 살아남은 포틀랜드급 중순양함 포틀랜드가 프린츠 오이겐보다 더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5. 미디어에 등장

6. 관련 문서


[1] 물론 전쟁 말기에 끝도없이 항구를 폭격하러 오는 폭격기를 피하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실제로 경순양함 쾰른이 이렇게 격침되었다.[2] 아드미랄 히퍼도 높은 편인데 얘는 더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