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7 14:04:53

카츠라다 미야비

하라다 미야비
[ruby(原田 雅, ruby=はらだ みやび)]
파일:dhshwkzlalzhxhirl.jpg
<colbgcolor=#000><colcolor=#FFFFFF> 성명 카츠라다 미야비 (桂田雅) (출생명)[1]
에구치 미야비 (江口雅) (개명)[2]
하라다 미야비 (原田雅) (개명 / ~현재)[3]
출생 1998년 7월 19일 ([age(1998-07-19)]세)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
직업 사회운동가
배우자 하라다 타케시(1975년생)
가족 카츠라다 사토시 (아버지)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상세
2.1. '츠루하시 대학살' 선동 연설
3. 기타 극우 활동4. 활동 중지 시기5. 극우 활동 재개6. 여담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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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사회운동가.

인종차별주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강경한 극우 혐한 성향을 표출하며 관련 집회에 자주 참여하고 있다. 재일 한국-조선인을 상대로 증오 범죄를 선동하고 백색테러를 저질러온 극우 성향의 과격파 활동가 카츠라다 사토시의 맏딸이다. 아버지를 따라 혐한 시위에 참가하면서 정도가 심한 혐오 연설로 눈길을 끌었다.

부모의 이혼과 자신의 결혼에 따라 성씨를 두 번 바꾸어 개명하면서 현재 본명은 '하라다 미야비'이지만, 일본 현지에서도 여전히 출생명 '카츠라다 미야비'로 잘 알려져 있다.

2. 상세

무려 10대 시절부터 일본극우단체 활동가 겸 정치깡패로 활동하면서 재특회의 회원이자 애국 하리마 여회(愛國播磨女会)의 회장이기도 했다.[4]

2010년대 기존의 과격, 괴상한 일본 넷 우익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젊은 애국녀' 이미지의 나팔수 역할을 했으며, 일본 각지에서 혐한 집회를 선동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극우 활동을 쉬는 도중, 2010년도 후반부터 2020년에는 아예 트위터에서 친한 성향 발언을 보이면서 잠적한것을 보아 예전처럼 활동을 재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해보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은 2021년도부터 다시 극우 활동을 재개하겠다 선언하며 복귀했다. 현재는 남편의 활동지를 따라 군마현에서 헤이트 스피치 활동을 하고 있다.

2.1. '츠루하시 대학살' 선동 연설


2013년, 길거리에서 난징 대학살이 아닌[5] 츠루하시 대학살을 일으키겠다고 악을 쓰는 연설을 하여 행인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네티즌들을 경악하게 한 중학생으로 주목을 받았다.[6] 게다가 츠루하시는 오사카 내에서 재일한국인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인데, 거기에 가서 대놓고 혐오 테러 협박을 한 셈.

21세기에 거리에서 외국인에 대한 살인선동하는 행위 자체가 국제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미친 상황[7]인데, 나름 선진국이라는 일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또 그것이 제지당하지 않고 상당수 시민의 호응을 받았다는 것은 당시 일본이 얼마나 우경화되어 혐한에 미쳤었는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8]

사실 말만 하고 실제로 실행은 안 했으므로 미수라고 보기도 어렵다. 입만 살은 쫄보나 다름없는 셈이다. 애초에 인터넷상에서도 온갖 증오 발언을 내뱉지만 실제로 실행한 사람은 별로 없어 넷 우익이라는 비아냥도 받은 건데, 이때 실제로 거리에 튀어나온 이들을 보고 '거리로 나온 넷 우익'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더 웃긴 건, 후술되어있듯 시간이 지난 후엔 본인도 이 발언에 대해 그렇게 좋게 생각하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3. 기타 극우 활동

아래에서도 서술하였지만 집안 자체가 대안 우파 활동으로 유명한 데다가 아버지가 극우계에서 나름대로 악명높은 인사라서 그런지, 초반에는 아직 어린 학생이면서도 독자적인 단체를 만들었을 때 꽤 사람이 모이기도 하고 직접 다른 단체에도 가입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극우 운동가였다.

기본적으로는 아직 학생이었기 때문인지 넷 우익이 중심이 되는 재특회 등 넷 우익 단체들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어떻게 미성년자가 극우 활동가로 행세하냐면, 상기한 대로 미야비의 아버지는 일본에서도 특히나 폭력적인 극우 활동으로 유명한 카츠라다 사토시라서 그렇다. 카츠라다 사토시는 이전부터 자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가두연설을 하는 걸로 유명했는데, 그런 아버지 밑에서 직접 보고 배운 게 극우 활동이니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도 미야비의 여러 극우 연설 영상이 퍼지며 나라 망신, 일본의 수치라는 반응과 "이게 어떻게 애국심이냐? 그냥 인종차별이지!", "저런 인간들 때문에 일본의 이미지가 바닥으로 망가진다!"라며 미야비를 강하게 비판한 사람도 있는 반면, 극우 계열은 그때 당시에는 한류에 빠진 현대의 일본 여학생들과는 달리 현실을 알고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며 칭송하였다.[9] 허나 201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미야비 본인도 한류에 빠져 친한 성향을 보이게 되면서 본인이 그렇게 욕하던 K-POP에 빠진 일본인들과 사실상 별 다를 게 없어졌다.

그리고 2018년 2월, 그의 아버지는 도쿄 조총련 본부에 총을 쏘는 백색테러를 저지르다가 몇 개월 후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

4. 활동 중지 시기

2018년 12월 20일,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을 시작으로 혐한 발언이 점점 줄어들었다. 트윗의 내용을 대충 보면 "별로 자기는 한국의 전부가 싫지 않다"고 발언했다. 트윗 내용[삭제됨] 그리고 일본을 좋아하는 한국인도 딱히 싫어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일본인같은 외국인도 다 상관 없다는 뜻이다. #[삭제됨]

하지만 2019년 8월 한일 무역 분쟁으로 인해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있을 때, "미야비가 대신이라면 한국이랑 절교하겠나요?" 라는 질문에 "별로 좋을 것도 없으니 절교할 것" 이라는 대답을 한 걸로 보아트윗 내용[삭제됨] 아직 반한 성향은 남아있는 듯 보였으나, 2020년 1월경에 본인의 트위터에 한글로 쓴 트윗을 올리고 #[삭제됨] 2월 19일 새벽엔 한국을 사랑한다고 한국에서 살고 싶다며 고백하였다.

이 외에 한국의 코스플레이어의 히프노시스 마이크의 코스프레 사진을 리트윗한 적도 있으며, 한국의 부녀자들과 교류도 하고 있는 것과 코로나19가 끝나면 방탄소년단을 덕질하러 한국에 놀러 가고 싶다고 고백한 것으로 보아, 이쯤 되면 혐한에서 완전히 친한으로 돌아서게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아직 혐한 세력들과도 교류는 하고 있는 듯하다. 아무래도 미야비를 팔로우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넷우익이다 보니 본인도 이게 신경 쓰이는지 트윗을 썼다가도 금방 지워버린다. 사실, 넷 우익들은 찬양하다가도 자신들 마음에 안들면 그 순간 바로 시비를 걸고 극단적인 경우 테러까지 일으키는 위험한 자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하다.

혐한에서 친한 성향으로 전향한 것에 대해서 일본 현지에서는 반응이 영 좋지 않다. 외국인 살인 선동 연설을 하며 인종차별을 해 온 영상이 타국에도 퍼지면서 "제대로 나라 망신을 시킨 주제에 이제와서 K-POP을 좋아하고 한국을 사랑한다고 태세전환 하는 게 말이 되냐?"라는 반응이 많다.

이러한 행적으로 미야비가 다시 극우 활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였으나...

5. 극우 활동 재개

2021년 본인의 페이스북을 개설하며 극우 활동을 재개하였고, 활동명을 남편의 성을 따른 '하라다 미야비'로 바꾸었다. #

2022년 2월 22일에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에 다케시마 즉시 반환을 호소하는 항의문을 보냈다는 인증 사진을 개시했다. #

2024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헤이트 스피치 활동까지 재개했다. 군마현 이세사키시에서의 극우 연설 현장에서 미야비를 보았다는 목격담이 올라오고, 1#2# 헤이트스피치 연설 장면이 X에 올라왔다. 연설 영상 참고로 해당 헤이트스피치 연설의 내용은 군마현의 "강제동원 조선인 추도비" 철거 반대 시위 중[14] 해당 시위를 극우 단체가 방해하며 "(철거가 싫으면) 일본에서 나가라!", "더럽고 냄새나는 것들!"이라고 발언하였다고 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한국을 사랑한다고까지 발언했던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곤 믿겨지지 않는다. 게다가 과거 츠루하시 대학살 선동 사건을 스스로 언급하며 자기가 츠루하시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지칭하며 떠들기까지 했다고.#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향의 전향이라니 기가 찬다는 반응과, 역시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국의 유튜버 호카손의 삭제된 영상들 중에서 이 이야기를 다룬 영상이 있었는데, 당시 영상에서 '일뽕들은 그렇게 일본을 사랑하니까 보고 배워라'라고 하면서 상단의 츠루하시 대학살 선동 영상을 인용했다. 그러던 미야비가 2020년 1월부터 한국어로 트윗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셀카를 찍어 올리고 "귀여워?"라고 한국어로 트윗을 올린 것과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한국어 트윗을 올린 것도 인용했다. 본 문서에서 미야비가 친한으로 돌아선 듯 하다고 쓰였던 문단을 인용하면서 '이런 추측 좀 하지 말자'라고 저격했다. 어찌 보면 호카손의 말이 맞아떨어진 셈.

6. 여담

BL계 작품에 꽤나 깊이 빠진 부녀자이기도 하다. 최근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히프노시스 마이크인 듯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추정되는 야마다 이치로의 코스프레를 하고 싶다고 트윗하기도 하였다. 2020년 2월에는 누루데 사사라를 좋아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자신이 태어나 살고 있는 간사이 지방의 래퍼 캐릭터여서 좋아한다고 밝혔다.

성향은 전형적인 극우 및 넷 우익이었다. 재일교포는 일본에서 혜택을 받고 살고 오히려 일본인들이 일본에서 차별을 받으며 산다는 주장부터,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면 나라가 붕괴하니 여성은 참여하면 안 된다는 성차별적인 발언까지 넷 우익들의 주장과 아주 흡사하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어느 정도는 생각이 달라진 것으로 보였다가 또 전향했다.
배우자가 극우 단체 간토숙(奸討塾)의 숙장(塾長)인 하라다 타케시이다. 페이스북 활동 재개 이후 대부분의 극우 활동을 함께 하고있다. 1975년 4월 15일생으로, 미야비와 23살 차이다.

골초이며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게 담배를 피우는 것이라고 한다.

활동 중지 시기에는 무슨 일을 하고있냐는 질문에 간병인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게게게의 키타로 6기 애니판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오노자키 미코토의 모티브가 되었다.[15]

7. 관련 문서



[1] 한국 한자음으로 읽으면 '계전 아'. 다만 한국일본어 표기법에 따르면 '가쓰라다 미야비'로 적어야 옳다. 아버지 카츠라다 사토시의 표기 역시 마찬가지.[2] 한국 한자음으로는 '강구 아'.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카츠라다 사토시의 성을 버리고 어머니의 성 '에구치'씨를 따라 개명하였다.[3] 한국 한자음으로는 '원전 아'. 하라다 다케시와 결혼하면서 그의 성 '하라다'씨를 따라 개명하였다.[4] 하리마는 '鍼間'이라고도 쓰며 효고현의 옛 이름인데, 주요 활동지 역이 효고현이기 때문에 붙은 듯하다.[5]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선 난징 대학살이 아닌 관동 대학살을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6] 당시 현장에서 해당 연설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어느 일본인 네티즌은 잘못된 걸 잘못되었다고 교육하지 못한 일본 사회가 이런 괴물을 만들어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7] 영국, 독일 등 국민선동죄 및 증오발언 처벌법이 있는 국가에서는 위와 같은 연설만으로도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8] 이런 식의 노골적인 혐한 선동은 2010년대 중반까지 불타오르다가 제3차 한류 열풍이 분 2017년 이후 일본 내 법적 제재 등이 겹치면서 비교적 잠잠해진다.[9] 특히 이 영상에서는 유독 넷 우익들이 많이 모여있다.[삭제됨] [삭제됨] [삭제됨] [삭제됨] [14] 해당 추도비는 결국 철거되었다.# 사족으로 해당 추도비가 철거된 직후의 모습은 헬기 촬영을 한 아사히 신문에 의해 세상에 공개되었다.[15] 오노자키 미코토 역시 미야비처럼 중학생 신분으로 거리의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특정 집단(요괴)을 혐오하는 발언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현재는 자신의 아버지와 같이 지내고있지 않다는 점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