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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동찬의 선수 경력을 서술한 문서.2. 삼성 시절
김한수를 1루수로 밀어내고 주전 3루수로 뛰던 시절. 2004 or 2006년으로 추정된다. |
공주고등학교 재학 시절 팀의 유격수와 4번타자 겸 에이스로서 활약했고, 삼성에 지명될 당시 3루수로서 지명하는 등 김한수의 후계자로 키우려고 했으며, 실제로 김한수가 2008 시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코치 연수를 떠난 이후 그의 등번호였던 5번을 물러받았다.
키 180cm에 체중 80kg로 야구선수로서는 큰 체격은 아니지만 일발 장타력을 갖춰 당시 김응룡 감독이 아꼈던 선수로, 비록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였지만 다른 선배들을 제치고 4번타자로 기용된 일도 있었다.
2.1. 2002 시즌
데뷔 시즌이었던 2002년에는 시즌 막판 1군에 올라와 5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홈런을 하나 기록하기도 했고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던 2002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며 우승반지를 획득하였다. 즉, 당시 우승 멤버 중 막내.2.2. 2003 시즌
2003년 시즌 막판 당시 유격수 틸슨 브리또가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하고 9월 3루수 김한수가 발목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하자 1군에 올라와 내야 한 축을 담당했다.2.3. 2004~2005 시즌
브리또와 재계약을 하지 않으며 유격수 자리가 공석이 되자 이듬해인 2004년부터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차지만, 이듬해 삼성에서 박진만을 영입하며 조동찬은 3루수로 포지션을 옮기게 되었고 따라서 3루를 지키던 김한수는 1루수로 이동하게 되었다. 애초 조동찬을 김한수의 후계자로 키우려던 코칭스태프의 계획대로 된 셈.위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이 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긴 하나 부상으로 인해 경기에서 빠지는 빈도가 많은 편, 즉 유리몸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오죽하면 조동찬의 별명 중 하나가 "조쿠다스"일 정도.
2.4. 2006 시즌
2006 시즌부터 조영훈과 함께 세트로 묶여 조조브라더스나 조평신으로 통하며[1] 박한이와는 쌍두마차를 결성하여 팀을 이끌었다. 원래는 강동우가 차지하고 있었지만 강동우가 두산으로 이적하자마자 쌍두마차로 활약하게 된다.[2] 2006년부터 결성된 쌍두마차는 2009시즌 후 본인의 군입대와 박한이의 FA 선언으로 인해 보기 힘들어질뻔 했으나, 박한이의 아슬아슬한 FA 잔류계약과 그의 군입대 연기 to the 군면제로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김명민과 무척이나 닮아서 조명민이라는 별명도 있다.2.5. 2007~2009 시즌
2007 시즌 경기 도중 3루로 쇄도하는 과정에서 수비수와 부딪히며 발목에 큰 부상을 당하게 되고 시즌을 통째로 날리게 된다. 해당 경기가 바로 부상의 전설이 시작된 경기로 보는 견해가 종종 있다. 2007~2009 시즌 3년 동안은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출장도 못 한다.괴물, 헤라클레스를 팔씨름으로 이길 만큼 좋은 힘을 가지고 있었고, 팀 내에서 가장 빠른 100m 기록을 가질 정도로 뛰어난 주력도 소유하고 있으며, 공주고 시절 에이스였던 것처럼 좋은 어깨와 더불어 좋은 수비력까지 가진 그야말로 포텐 충만한 선수였으나, 5툴 플레이어가 되기에 딱 하나 모자란 것이 있으니 바로 컨택. 게다가 틈만 나면 발동하는 그놈의 유리몸 본능까지...[3]
어느정도 검증된 유망주이다보니 많은 팬들이 그의 건강한 복귀를 애타게 기다리는 와중에도 더이상 일어설 수 없을거라는 예상을 하는 팬들도 종종 있었다. 2007~2009년 동안의 조동찬을 바라보는 삼성팬들의 시선은 그야말로 복잡미묘.
2.6. 2010 시즌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예비 엔트리에서 탈락하고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예비엔트리에서 탈락하자마자 엄청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4월 타율이 .234, 5월 타율이 .264였는데 6월 타율이 .350, 7월 타율이 .362. 조평신에서 동찬신으로 승격, 예비 엔트리를 3명을 늘리는 과정에 이 성적을 기반으로 탑승할 수 있었다.조동찬이 맹타를 휘두르면서 3루를 차지하자 3루를 보던 박석민이 지명타자로 밀려나고, 지명타자를 보던 최형우는 외야로 밀려나고, 외야를 보던 강봉규는 2군으로 밀려나는 포지션 대이동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아무런 군소리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활약을 펼치는 중.[4]
여담으로 비 때문에 홈런이 날아간 적이 있다. 그것도 보름 사이에 두 번이나 겪었다. 관련기사 김첨지에 이은 조첨지.
양신은 자신은 18년동안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동찬이는 두 번이나 겪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조동찬 본인은 이에 대해 박동희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비만 오면 가슴이 쓰리다고 말하기도.
2010년 6월 30일 롯데와의 경기에서는 생애 첫 끝내기 홈런을 쳤다. 그날 조동찬은 끝내기 홈런 뿐 아니라 호수비를 거듭하며 경기를 지배했는데, 마침 그 날은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이 대구구장에서 밀리터리 유니폼을 입었던 날이었다. 이 때문에 롯데팬들은 안그래도 밀리터리 유니폼 패배 징크스가 있는데 왜 남의 홈까지 가서, 그것도 군대라면 눈 뒤집힐 조동찬 앞에서 밀리터리를 입었냐며 한탄하기도.
그리고 기어코 도하에 이어 다시금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에 선발되었다.
조동찬은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9타수 5안타 2볼넷 2도루 1타점 2득점, 타율 .263, 장타율 .316, 출루율 .333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패로 뒤진 10월 1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2:4로 뒤진 9회말 2사 2, 3루의 찬스에서 폭풍삼진을 기록하며 다시 조평신으로 회귀했다.
조동찬은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8타수 2안타 4볼넷 1득점, 타율&장타율 .250, 출루율 .500을 기록했고, 팀은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조동찬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27타수 7안타 6볼넷 2도루 1타점 3득점, 타율 .259, 장타율 .296, 출루율 .394를 기록했다.
2.7. 2011 시즌
지난해와 달리 박석민이 3루수로 나설 수 있게 되며, 내야 유틸리티로 자리가 밀려났다. 그러던 중 5월 11일 손가락 부상으로 1군에서 제외되었다. 손가락이 낫는가 싶으면 허리가 아프고, 허리가 낫는가 싶으면 다시 손가락이 아픈 등 진정한 유리몸이 어떤가를 보여주며 팬들의 속을 썩였다.6월 25일 1군에 복귀했다. 그동안 부진했던 신명철이 2군으로 가며 2루수나 박석민이 수비를 볼 수 없을 때는 3루수로 기용될 예정. 사실 그동안 신명철이 부진할 때를 대비해 2군 경기에 출장할 때 거의 2루수로 출장했다.
조영훈과 함께 조평신으로 회귀한 시즌. 시즌 타율이 .216으로 멘도사 라인이 코앞에 보이는 타격을 보여주며 사실상 대수비 취급을 받았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1, 2차전은 대주자로 3차전은 대타, 4차전은 선발 2번타자로 출장하여 4타수 무안타 1볼넷 1사구(死球) 1도루 1타점 1득점 출루율 .333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2.8. 2012 시즌
타격감이 살아나며 2011시즌 팀의 엄청난 고민이었던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찼다. 당연하지만 신명철은 한동안 2군에서 시즌을 보냈다.4월 1일 두산과의 시범경기에 선발출장, 5타석 5타수 5삼진을 기록하였다. 이로써, 한 경기 삼진 다섯 개(통칭 한삼다)라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다.
4월 14일 넥센과의 경기 중 스윙을 하다 옆구리 통증으로 교체되어 다음날 2군으로 내려갔다. 애초에는 3주 진단을 받았으나 2군에 내려간지 1달 조금 넘은 5월 18일에 2군 경기에 출장했다. 그나마도 1경기 나오고 허벅지 근육통으로 1군 복귀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명불허전 유리몸. 5월 27일 1군에 올라왔다.
6월 26일 SK와의 경기에서 2사 만루에서 평범한 뜬공 플라이를 날렸으나 김강민이 조명탑 때문에 타구를 놓쳐서 운좋게 3타점 2루타를 때렸다.[5] 이로 인해 야갤에서는 조동찬 태양권 작렬시켰다라고 반응을 보여 뜬금없이 조동찬진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8월 3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2회 번트 자세를 취한 상황에서 눈 바로 밑을 맞는 헤드샷을 당하면서 부상을 당했다. 40바늘을 꿰멨다는데 실은 맞은 부위가 얼굴이다 보니 미관을 위한 것이고 다른 부위였다면 5바늘 정도로, 당초 공을 맞았을 때 다들 우려했던 바와 달리 그리 크지 않은 부상이었다. 붓기만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문제가 없어 롯데와의 주말시리즈에서 남은 2경기만 결장하는 데서 그쳤다.
조동찬은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서 선발 2루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하여 20타수 3안타 1볼넷 1도루 1타점 2득점, 타율 .150, 장타율 .200, 출루율 .15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하여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9. 2013 시즌
자세한 내용은 조동찬/선수 경력/2013년 문서 참고하십시오.2.10. 2014 시즌
2013년 8월경에 입은 무릎 부상이 아직 완치되지 않아서, 1월 전지훈련 도중 귀국해야 했다. 결국 외야 기용이 고려되던 야마이코 나바로가 2루를 맡게 되었다. 야마이코 나바로가 7월까지 미친 타격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그의 입지는 불안해졌다.6월 11일부터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했는데, 아직 무릎 통증이 남아 있는 탓인지 3루수와 지명타자를 오갔다. 그나마 지명타자로 출장할 때도 경기 도중에 교체된 적도 많았다. 7월 하반기 들어 몸상태가 완벽해져 8월 1일 KIA 타이거즈와의 주말 3연전을 앞두고 1군에 복귀했다. 류중일 감독은 내야 유틸리티 역할을 맡길 예정이라고. LG 트윈스와의 주중 3연전에서 스윙하다가 허리에 담이 온 박석민 대신 3루수로 선발 출장할 가능성도 있다.
8월 1일 광주 KIA전에서 주전 3루수로 근 1년만에 복귀했다. 이날 성적은 4타수 2안타 1득점 1도루 1볼넷. 멀티 히트를 기록했으며 그 중 하나는 2루타였을 정도로 복귀식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러나 8월 말 팀이 부진한 가운데 개인적으로도 타석에서 활약이 저조하여 욕을 먹고 있다.
9월 4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앤드류 앨버스를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쳤다. 지난해 6월 22일 LG전 이후 436일만의 홈런.
10월 7일 LG 트윈스전에서 3회말 수비를 하다가 허리를 삐끗해 4회초 김태완으로 교체됐다. 그리고 10월 8일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FA 선언하고 원 소속팀 협상 마지막날인 11월 26일 총액 28억에 삼성과 계약했다.
처음에는 '너무 많이 받는다', '박한이 불쌍하다' 등등으로 까이는 듯 했다. 하지만, 배영수와 협상이 결렬되고, 도리어 팀을 깎아내리는 언플을 많이 하니까, 배영수에게는 '주제 안맞게 팀을 나가네'라고 하고, 조동찬에게는 '역시 주제에 맞게 계약을 했군'이라는등 비난의 화살은 빗겨간 상황. 조동찬이 28억을 받는데 비해 배영수가 21억을 받는 상황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끼는 팬들도 있었으나, 삼성에서는 한화보다 선발 보장을 제외하고 대우는 컸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선발보장이란 한화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FA 계약 후 조동찬은 기회보다 가족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2015년 1월에 딸이 태어나면서 슬하에 1남 2녀를 두게 됐는데, 이 와중에 타팀으로 이적하면 가뜩이나 세 아이를 키워야 할 아내가 타지에서 적응도 해야 하니, 그 부분을 걱정했다고.
시즌 이후 식을 올렸는데,처음에 결혼할때 바빠서 식을 못한 상태로 애까지 낳아 기르다가 지각으로 식을 올린듯. 물론 혼인신고는 이미 끝낸 상태다.
2.11. 2015 시즌
1차 전지훈련이 시작되기 1달 전부터 전지훈련지인 괌에서 개인훈련에 매진했다. 그런데 오키나와 2차 전지훈련 중 왼쪽 무릎에 물이 차는 증상 때문에 현지 병원에서 두 차례나 물을 뺐으나 계속 물이 차올라 국내에서 치료를 받기로 하며 2월 10일 귀국했다. 정밀 진단 결과 왼쪽 무릎 연골 손상으로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을 받아 결국 2월 23일에 수술을 받았다[6]. 이후 7월 19일에 나온 기사로는 캐치볼과 정면 펑고를 받을 정도까지 회복이 되었고 7월 말부터 티배팅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9월 1일 류중일 감독은 조동찬에 대해 아직 뛰는 데 무리가 있다며 연내 복귀를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무릎수술로 박았던 핀을 제거했다고 한다.2.12. 2016 시즌
1군 전지훈련에는 참가했지만 무릎 상태가 안 좋아서 오키나와 전지훈련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그대로 괌에 남아 2군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다. 시범경기가 말미로 접어든 3월 26일 1군 선수단에 합류했고, 당일 SK와의 경기에서 7번 2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이미 주전 2루수는 백상원으로 낙점됐지만 그래도 1군 개막전 엔트리에는 포함됐다.
4월달에는 안타 3개에 타율이 0.111에 불과할 정도로 실망스러운 수준의 타격을 보여줬지만, 5월 5일 아롬 발디리스가 2군으로 내려간 후 주전 3루수로 자리 잡으면서 안타를 차곡차곡 적립하다가 5월 22일 NC전에서는 무려 2홈런 4타점을 올렸다. 1점 뒤진 9회초 2사 2루에서 헛스윙 삼진으로 마지막 기회를 날려먹긴 했지만.
5월 29일 SK전에서는 1회 선제 적시 2루타를 치며 그날의 수훈선수가 되었다. 타순이 이제 5번까지 올라갈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타율이 낮았던 4월에도 점점 날카로운 타구가 많았기에 어느 정도 반등할 거라는 반응도 있었다.
5월 31일 1회초 2:0에서 3:0으로 달아나는 시즌 7호 홈런을 쳤다!! 팀은 4:1로 승리했으며 5월 31일 현재 96억 박석민보다 홈런이 더 많다![7] 발디리스 와도 자리없 ...진 않고 조동찬이 2루로 가고 백상원이 백업으로 빠질듯.
6월 3일 12회초 2사 만루에서 로사리오의 유격수 땅볼을 제대로 송구하지 못해 내야땅볼이 되어 팀 패전의 원인이 됐다. 심창민의 첫 패전이기도 했으며 이후 12회말 2사에서 포크볼에 연신 헛스윙질을 해서 삼성팬들에게 역적 소리를 들었다.
더불어 삼성팬들은 조동찬이 주 포지션이 유격수가 아니고 3루수인 만큼 4회에 유격수 김재현을 뭐하러 대타 썼냐고 류중일도 비난 하고 있다.[8]
6월 4일 1사 만루에서 병살타, 2사 만루에서 삼진을 기록한 후 오른쪽 대퇴사두근 통증으로 교체됐다. 6월 5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대신 김상수가 콜업되었다. 6월 25일 1군에 복귀했고, 복귀하자마자 다시 장타를 양산하고 있다. 문제는 답이 없는 하위타선. 6월 26일 kt전에서 2회 무사 1, 2루 상황인 첫 타석에서 적시타를 쳤고, 이후 김재현의 내야 땅볼 때 홈으로 들어오면서 상대 포수와 충돌해 왼쪽 엄지손가락을 다쳤다. 비록 심판 합의 판정을 통해 득점이 인정되긴 했으나 3회초 김상수로 교체됐고, 경기 후인 6월 27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이후 재활하며 7월 27일 2군에 출장 예정이었으나, 허리 통증으로 무산되었다. 8월 2일부터 2군 경기에 출장했고 5일 1군에 복귀했다. 그런데 8월 타율이 너무 좋지 않다... 최근 3경기간 계속 무안타되었다...
8월 말 현재 문제가 되는 건 타격하며 계속 배트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박석민이 삼성 시절 손가락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주곤 했었는데 조동찬도 손가락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듯.
9월 25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8회말 1사 주자 없는 가운데 5대5 동점 상황에서 이보근의 초구를 받아쳐 결승 솔로홈런을 날렸다. 이 홈런으로 2006년 이후 10년만에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게 되었다.
10월 3일 대구 LG전을 앞두며 무릎, 허벅지 통증으로 말소되며 기어이 팀의 30번째 부상 말소를 채웠고 본인은 3번째로 말소되었다.
2.13. 2017 시즌
2월 1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연습경기에서 7번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4타수 2안타 1삼진을 기록했는데, 2안타가 홈런 하나, 2루타 하나.4월 한달간 기록 | |||||||||||||||
경기 | 타수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볼넷 | 삼진 | 병살타 | 도루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5 | 63 | 26 | 5 | 0 | 3 | 8 | 9 | 5 | 14 | 2 | 0 | .413 | .457 | .635 | 1.092 |
개막전 경기, 팀의 주장 김상수의 부상으로 인해 개막전 선발 2루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개막전에 얼굴을 보게 되었다.. 유격수로는 강한울이 투입되었다. 상대 선두타자를 상대로 호수비를 보여 좋은 출발을 알렸으나 결국 팀은 졌고, 본인도 좋은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4월 1일, 본인 만은 9번타자에 출중한 역할을 했다. 첫 타석에선 강한울의 안타에 이은 희생번트, 두번째 타석에선 2루타, 그리고 몸에 맞는 볼로 출루까지,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못했고, 9회에 본인 없이 팀 타선이 터지기는 했으나 마무리 투수의 부진으로 2점차 패배.
그가 제대로 미쳤다. 총 23경기 나와서 선발출전 무안타 경기가 5경기에 그치고, 심지어 최근 스윕패 당했던 KIA 투수진을 상대로 12타수 8안타의 맹타를 펼쳤으며 29일 SK전에서도 4타수 3안타 1홈런을 추가하며 타율 4할 OPS 10할에 도달했다.
5월 한달간 기록 | |||||||||||||||
경기 | 타수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볼넷 | 삼진 | 병살타 | 도루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2 | 69 | 17 | 4 | 0 | 3 | 9 | 9 | 7 | 12 | 1 | 3 | .246 | .342 | .435 | .777 |
2일 경기에서는 팀이 2:1로 지고 있던 2회말에 동점을 알리는 솔로홈런을 날리며 현재 팀의 장타자임을 증명했다.
6월 한달간 기록 | |||||||||||||||
경기 | 타수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볼넷 | 삼진 | 병살타 | 도루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2 | 72 | 17 | 4 | 0 | 1 | 7 | 7 | 2 | 14 | 1 | 0 | .236 | .276 | .333 | .609 |
2일 기아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선발 4번타자로 출장해 홈런을 날리는 등 맹활약하면서 KIA의 4번 금지어하고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팀도 조동찬의 활약에 힘입어 5-1로 승리를 거두었다.
6월 29일 기아전에서 2루수로 선발출장. 1회 평범한 2루수 직선타를 흘리고, 2사만루에서 이상한 1루송구로 결국 아웃판정이 번복되는데 일조하는 등 행복수비를 선보이며 힘들게 시작하던 재크 페트릭의 멘탈을 날려버리는데 일조했고, 결국 페트릭은 14실점으로 무너졌다.
7월 한달간 기록 | |||||||||||||||
경기 | 타수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볼넷 | 삼진 | 병살타 | 도루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0 | 59 | 12 | 2 | 0 | 2 | 5 | 7 | 6 | 15 | 2 | 0 | .203 | .288 | .339 | .627 |
7월 5일 포항 롯데전에서 손승락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만들어냈다.
잦은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내야 유틸리티라는 장점이 무색할 정도로 수비력에 있어 상당히 나빠진 모습을 보인다. 더군다나 양다리의 길이가 달라서 2루수비를 못보는데 한숨은 만날 2루수비로 넣는다.
8월 한달간 기록 | |||||||||||||||
경기 | 타수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볼넷 | 삼진 | 병살타 | 도루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1 | 63 | 21 | 6 | 0 | 1 | 6 | 11 | 1 | 12 | 2 | 0 | .333 | .364 | .476 | .840 |
9월 한달간 기록 | |||||||||||||||
경기 | 타수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볼넷 | 삼진 | 병살타 | 도루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3 | 27 | 9 | 2 | 0 | 0 | 0 | 3 | 1 | 5 | 0 | 0 | .333 | .357 | .407 | .765 |
9월 23일 한화전에서 5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해 4타수 2안타로 시즌 100안타를 기록했다. 개인 통산 2번째로, 2005년 이후 12년만의 100안타다.
올 시즌은 122경기에 출장하며 2006년 이후 11년만에 100경기 이상 출장, 세 자릿수 안타,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오랜만에(...) 부상을 안 당하고 꾸준히 출장하며 타격은 그럭저럭 힘을 보탠 시즌이었으나, 부상의 후유증과 노쇠화로 인해 수비력이 완전히 아작나 버렸다. 3루수와 2루수, 유격수 모두 소화하기 힘든 상태가 되어 버렸다. 내년부터는 사실상 박한이와 함께 지명타자로 전업을 하게 될 듯. 김성훈이라는 내야 백업이 등장했고, 손주인도 재영입되었고, 이승엽이 은퇴함으로 지명타자 자리가 비기 때문이다.
2.14. 2018 시즌
FA 4년 계약 마지막 해. 2루수 주전 자리는 강한울이나 김성훈에 내주고 박한이와 함께 지명타자 자리를 두고 경쟁을 할 듯 하다. 김한수 감독이 일단 시즌 초에는 박한이에게 기회를 준다고 한 터라, 대타나 플래툰으로 나오게 될 듯.하지만 그간 보여준 타격이나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장점으로 올시즌에도 부상만 없으면 무난히 100경기 이상 출장할 전망이다.
3월 24일 개막전에는 박한이에게 밀려 출장하지 않았으나, 3월 25일에는 플래툰으로써 선발 출장했다.
3월 30일 10대 8로 역전당한 12회말까지 남아있던 마지막 야수였다가 박해민이 낫아웃으로 살아나간 1사 1루에서 대타로 나왔으나 우익수 뜬공으로 허무하게 물러났다.
4월 11일 현재 타율과 출루율, 장타율이 무려 .158이고 OPS는 .316를 기록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타율이 아니라 OPS이다. 부상 이후 주루와 수비는 기대할 수 없는 수준인데 타격마저 개판이 된 것이다. 당연히 팬들은 제발 좀 2군으로 내리자고 외치고 있는데 문제는 김한수 감독이 2군으로 내려버릴 생각조차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4월 23일 박한이, 이지영과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1군에서 빠진지 1달만인 5월 23일에 당일 선발로 내정된 장원삼과 1군에 등록됐다. 우타 대타 역할을 하던 배영섭이 손목을 다쳤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조동찬은 1군에서 빠진 1달간 2군에서 6경기 밖에 출장하지 않았는데다가 타율도 .214로 부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군에 다시 올라왔다.
5월 29일 팀이 크게 뒤지고 있는 상황에 대타로 나와 솔로홈런(1호)를 쳤다.
5월 30일에는 대타로 나와 병살을 쳤다.
5월 31일에는 1루수로 출장해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6월 14일에는 3루수로 출장해 0타수 0안타 3볼넷을 얻으며 활약했다. 18일 배영섭과 함께 1군에서 제외됐다.
퓨처스리그에서도 7월 10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출장 경기가 없다. 아무래도 시즌 종료 후 은퇴 제의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9월 8일 형 조동화의 은퇴식 때 아쉽게도 은퇴식에 오지는 못해 영상 편지로 대신했다. # 이제는 혼자만 현역 선수로 남게 되었...을줄 알았으나 2018 시즌 종료 후 방출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 향간에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본인도 은퇴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3. 국가대표 경력
3.1.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커리어 첫 A대표팀 승선. 병역특례를 위해 미필 선수를 우선 선발했기에 엔트리에 승선할 수 있었던 것. 하지만 대표팀은 그 유명한 도하 참사로 대만과 일본에 밀려 동메달에 그치고 쓸쓸하게 귀국하면서 조동찬의 첫 A대표팀 경력은 아쉽게 끝났다.3.2.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예비 엔트리에서 탈락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예비엔트리에서 탈락하자마자 엄청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4월 타율이 .234, 5월 타율이 .264였는데 6월 타율이 .350, 7월 타율이 .362.이라는 미친 활약을 펼쳤고 예비 엔트리를 3명을 늘리는 과정에 이 성적을 기반으로 탑승할 수 있었다.그리고 기어코 도하에 이어 다시금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에 선발되었다. 예전 걸사마처럼 내야유틸 + 대주자로 활용될 듯. 내야 멀티가 가능하고[9], 발이 빠르기 때문.[10]
아시안게임에서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홍콩과의 예선 2차전에서는 정근우와 교체되어 들어와서 사구를 맞고 1득점했으며, 파키스탄과의 예선 3차전에서는 2루수로 선발출장하여 3타수 1안타 2타점을 올렸다. 그리고 대만과의 결승전에서는 볼넷으로 나간 이대호의 대주자로 나와, 포수와의 홈 승부에서 혼신의 슬라이딩을 날림으로써 7번째 득점을 올렸다. 그 뒤에 최정과 교체되는 바람에 타석에는 한번도 못서봤지만, 어쨌건 우승함으로써 드디어 군 면제 달성.
[1] 조영훈이 조평신 1호기, 조동찬이 조평신 2호기라 불렸다, 조평신의 순서가 어떻게 정해졌는지는 조영훈 문서 참조. 이후 2012년 조영훈이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면서 삼성에는 2호기만 남게 되었다.[2] 삼성의 기본 쌍두마차는 김종훈 - 김한수로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삼성의 쌍두마차로 이끌게 되었다. 참고로 삼성은 기본 쌍두마차와 신 쌍두마차로 한국시리즈 우승 3번을 거두었다.[3] 조동찬의 유리몸 본능을 하나하나 말하자면 밤새도록 말해도 모자르겠지만, 그 많고많은 유리몸 중에서도 가장 황당했던 부상은 2010년 시즌 초반의 어느날 실책을 저지르고 난 뒤에 남아서 펑고 연습을 받았는데 그 펑고 연습을 받다가 쥐가 나버렸다. 그리고 바로 2군행. 하지만 그 2군행을 마치고 돌아온 조동찬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4] 사실 이 포지션 대이동의 가장 큰 원인은 박석민의 손가락 부상 때문이었다. 고질적인 손가락 부상을 달고 살았던 박석민은 이 해에 유독 손가락 통증이 심했고 결국 시즌 중반부터는 수비 훈련을 거의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포지션이 지명타자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양준혁의 부진 이후 지명타자로 자주 출장했던 최형우는 남은 시즌 동안 좌익수로 고정이 되었고, 강봉규는 성적이 시망.[5] 사실 2아웃 상황에서 뜬공을 날렸으니 주자들은 당연히 무조건 홈까지 들어가는 플레이를 했으나 김강민이 이걸 놓쳐서 순식간에 주자 일소 3타점 2루타로 둔갑한 것이다.[6] 참고로 조동찬이 이 수술로 무릎 수술만 2차례 받은 줄 아는 팬들이 있는데, 문선재와 충돌했을 때는 재활만으로 충분하다는 진단을 받아 당시에는 수술하지 않았다.[7] 여담으로 이날 박석민은 1점차 9말 1사 1루에서 병살타를 쳤다.[8] 류중일 감독은 이상하게도 이 당시 한화만 만나면 이해할 수 없는 경기운용을 반복하면서 중요한 고비마다 미끄러졌다. 당장 왕조시절의 마지막 시즌인 15시즌 페넌트레이스조차 부상자가 속출하던 전시즌 꼴찌팀 한화에 6승 10패를 기록했을 정도니...[9] 앞서도 언급했듯 내야 전 포지션, 외야 전 포지션에 출장해 본 경험이 있다.[10]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병역특례에 실패한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기 때문에, 동갑내기 친구 안지만과 손 잡고 보험 삼아 상무에도 지원해 합격했다. 다행히 둘 다 병역특례를 받으며 상무에 갈 필요는 없어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