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01 21:51:54

이희수(야구인)

파일:fUIKLKl.jpg
이름 이희수(李熙洙 / Hee soo Lee)
생년월일 1948년 1월 17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부산광역시
학력 성남고등학교
포지션 2루수
소속팀 농협
지도자 북일고등학교 감독 (1977)
북일고등학교 코치 (1977~1981)
북일고등학교 감독 (1982~1983)
롯데 자이언츠 수비코치 (1984~1986)
빙그레/한화 이글스 수비/작전/수석코치[1] (1987~1994)
한화 이글스 2군 감독 (1995~1996)
한화 이글스 작전코치 (1997)
한화 이글스 수석코치 (1998)
한화 이글스 감독[2] (1998~2000)
성남고등학교 감독 (2003~2006)
1999년 한국프로야구 우승 감독
김재박(현대 유니콘스) 이희수(한화 이글스) 김재박(현대 유니콘스)

파일:HanwhaEagles_Brandlogo2.png
빙그레/한화 이글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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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 현재
1대
배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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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김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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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강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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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이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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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대
이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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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유승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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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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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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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김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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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대행
이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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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한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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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감독
1999

1. 소개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이자, 前 야구감독.

2. 선수 경력

1948년 당시 미군정기하의 부산부[3] 에서 태어났다. 부산 대동중학교 1학년까지는 배구를 했으나 키가 작아서 중학교 2학년 때 야구선수로 전향했고, 부산공고에 진학하나 이 후 서울 성남고에 전학했다. 졸업 이 후 농협 야구단에 입단해 주전 2루수로 활약했고 국가대표 상비군으로도 뽑혔으나 비교적 젊은 만 28세에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1977년 북일고 감독으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영덕 감독이 부임하면서 코치로 밀려났다. 이 때 4년간 코치로 경험을 쌓으면서 우승도 일궜고, 김영덕 감독이 OB 베어스 창단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자 북일고 감독직에 복귀, 화랑대기 2연패를 달성한다.

1984년 고향팀 롯데 자이언츠의 코치로 부임해 강병철 감독과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팀의 첫 우승을 일군다. 그러나 1986년 강병철 감독이 롯데와 재계약에 실패하자[4] 롯데를 떠나 빙그레 이글스 수비코치로 부임했다. 그 시기의 감독이 김영덕, 강병철로 모두 그와 호흡을 맞춘 적이 있었던 인물이기 때문에 감독의 변화와 상관없이 계속 코치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1998년 7월, 강병철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한화 감독직에서 중도 해임되자 감독 대행에 부임해 시즌을 마무리하고, 그 해 11월에 정식으로 후임 감독에 부임한다. 1999 시즌은 양대리그로 치러진 첫 시즌인데, 단일리그 기준으로는 리그 4위에 불과한 성적이었지만, 양대리그 체제에서 크로스 토너먼트로 치러진 PO의 특성이 팀에게 대단히 유리하게 작용했다. 바로 정민철, 송진우, 이상목으로 이어지는 막강 선발진과 최강 중무리 구대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플레이오프에서 4전 4승으로 두산 베어스를 일축하고 한국시리즈에 올라 롯데를 상대로 4승 1패를 거둬 92년의 한국시리즈 복수를 함과 동시에 이글스 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 쥔다. 이 우승은 현재까지 빙그레&한화이글스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 기록이다(2017년 기준)

하지만, 그 이듬해에는 매직리그 3위로 추락하는데, 꼴찌였던 SK 와이번스는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를 가지고 시즌을 꾸리던 절대 약체였고, 따라서 이는 사실상 꼴찌라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전년도 우승에도 불구하고 재계약에 실패, 팀을 떠나게 된다. 여기에는 1999년 당시 일어난 한 사건도 영향을 끼쳤다. 1999년 5월 21일 경기에서 구대성이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 판정에 불만을 품고 항의를 하다가 퇴장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경기 후에 이희수 감독이 당시 구심이었던 이영재 심판의 얼굴을 때린 것이다. 이 때문에 1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게 된다. 그런데 당시 2위였던 LG와 7경기 차로 뒤지던 한화는 이때부터 치고 나가기 시작 결국 매직리그 2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 당시 감독대행으로 경기를 지휘한 인물이 당시 수석코치였던 유승안이었다. 유승안은 이 때 능력을 인정받고 팀의 감독에까지 오르지만, 그 때의 성적은...

한화 감독에서 물러난 뒤 모교인 성남고 감독을 맡으며 고교야구계에 복귀, 2004년 청룡기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당시 제자였던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고교야구 최초의 4연타석 홈런으로 이름을 날린 박병호이다. 2006년 지도자 은퇴를 선언하고 홍우태 코치에게 성남고등학교 감독직을 넘겼으며, 같은 해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시타로 나온 바 있다. 구대성의 은퇴식 당시에도 초대받아 참석했으며, 2011년에는 KBS대전에서 한화 이글스 라디오 중계 해설을 맡았으며, 한동안 KBO 육성위원장으로 일하다가 물러났다.

한국시리즈 우승 경력이 있는 감독 중 경력이 가장 짧았다. 1999년 당시 귀뒷부분에서 종양이 자라나기 시작하고 결국 이듬해 수술을 했던 것.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루었으나 하필 그때 건강상의 문제가 터진데다 성적 추락까지 겹치면서 재계약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 이후 트레이 힐만 감독이 경력 2년만에 우승을 하고도 가족 건강 문제 때문에 팀을 떠나게 되어 우승 감독중 최단기 감독 경력을 넘겨주게 되었다.

2015년 10월 1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한화 이글스 경기 전에 열린 송지만의 은퇴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밖에도 한화 이글스 관련 야구다큐에도 종종 얼굴을 비춘다.

2018년 10월 19일 11년만에 열리는 한화의 포스트시즌 경기의 첫 번째 시구자로 참석한다.


[1] 각 시기 불분명. 다만 초기에는 수비코치였고 1993년경 수석코치라는 뉴스가 나온다.[2] 대행 시절 포함.[3]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에서는 충남 출신이라고 되어 있다. 1999년 우승 당시 한겨례 신문에 부산출신이라 나옴.[4] 당시 롯데 프런트는 강병철과는 재계약할 예정이었으나, 이희수 대신 이광환을 수석코치로 영입하려고 했다가 강병철의 반발로 접었다. 그러나 이희수의 재계약 협상을 앞두고 강병철이 "희수 계약금을 애 과자값 정도로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농담삼아 말하자 모기업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강병철과 이희수의 목을 동시에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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