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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야인시대)/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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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부3. 2부 전반
3.1. 광복 이후, 공산당편3.2. 6.25 전쟁
4. 2부 후반
4.1. 자유당편4.2. 군사정권편

1. 개요

야인시대의 등장인물 이정재(야인시대)의 행적에 관해 서술하는 문서.
전용 테마곡 - 달의 약속[1]

2. 1부

파일:이정재.jpg
배우 김혁
등장 에피소드 44~50화
파일:leejeongjae.jpg
1부의 형사양반[2]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 아마 체면을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걸 거야. 어쨌든 아주 영리한 자인 것만은 분명해.
문영철
고렇게 그냥 바윗덩어리 같은 놈은 처음이다. 잉? 모르긴 혀도 싸움도 보통 이상일 것이여.
김무옥
이천군씨름꾼 출신으로, 본래 지방 주먹패 장도리의 부하였다가 김두한의 부하가 되었다.

신영균의 제안으로 주먹패 네임드들이 부추겨서 얼떨결에 김두한의 왼팔 김무옥팔씨름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신영균이 자청해서 심판을 맡았다. 그러나 그를 압도할 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먹세계의 선후배 관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져준다. 하지만, 김무옥을 비롯한 주먹패 네임드들은 이정재가 팔씨름에서 일부러 져줬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이에 장도리는 이정재가 져준 것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하고 서로 어색한 분위기가 될 것을 무마하기 위해 "이정재가 졌으니 우리 쪽에서 술값을 내겠다." 라고 했다.#

중앙고등보통학교(중앙고보) 출신의[3] 고학력자[4]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는 등 다른 주먹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김무옥도 이정재가 팔씨름에서 일부러 져줬다는 사실을 눈치채면서 "이상한 놈여잉, 왜 져줬을까? 아따 그냥 내가 힘이 딸리더랑께잉, 그 속을 모르겠당께. 어찌보면 그냥 음험한 놈 같기도 하고 말이여."라고 말했고, 문영철은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다. 아마 네 체면을 생각해서 그렇게 한 걸 거야. 어쨌든 아주 현명한 자인 것만은 분명해."라고 하자 김무옥이 대답하면서 "그렇게 그냥 바위덩어리 같은 놈은 처음이다잉? 모르긴 혀도 싸움도 보통 이상일 것이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이정재가 미래에 얼마나 거물이 될 지 미리 알려주는 복선이었던 셈이다.

무전과에 고보 출신이라 김두한 덕분에 형사가 되어 가라데 교육 중에 사범과 제자를 능욕한다거나[5][6][7] 신영균의 부탁으로 문달영의 신상을 파서 증거를 확보한 다음 두 번째 첩과 뜨거운 밤을 보내고 같이 현자타임을 갖고 있던 문달영을 체포해서 거꾸로 매달고 밤새 때린다. 더 나아가 사법계 선임[8]미와 경부 앞에서 문달영을 심문한다.[9]

일제강점기 파트의 이정재는 과묵하며 함부로 속을 보이지 않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때문에 김두한은 굳이 이 주먹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아도 될 친구가 아니냐고 하며 김영태는 그렇긴 하다고 수긍한 뒤 그렇게 자기 속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친구들은 야심이 강한 법이라고 평가했다.(48화)

3. 2부 전반

파일:리덩대.jpg
배우 김영호
등장 에피소드 50화 선행출연 / 55, 124화를 제외한 모든 2부 에피소드[10]
파일:형사양반.png 파일:내가 고자라니 레귤러5.png
선행출연할 당시의 모습 2부의 형사양반
저런 이상한 경찰은 내 처음 봅니다. 저게 건달이지, 경찰입니까?
임화수[11]
그래! 정재는 풍채로 보나 체격으로 보나 건달이 딱인데 말이야!
김두한[12]

3.1. 광복 이후, 공산당편

광복 이후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던 친일파 경찰 문달영과 김태서를 붙잡고 빙그르르르 돌며 등장한다.[13][14]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는 시점에 정진영, 개코 등 청년기에서 중년기로 바뀌는 배역 교체가 각 배우들이 너무 닮아서 적절했고 위화감이 없어서 놀라웠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김두한과 더불어 이정재는 위화감이 있었다. 김두한처럼 배우의 나이 차가 큰 것 뿐만[15] 아니라 눈매나 얼굴 형이 명백히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다른 데다가, 외모 이외에 성격으로는 1부의 이정재는 과묵하고 무게잡는 이미지[16]였다면 2부 초반의 이정재는 털털한 동네 형 같았기 때문이다. 이후 전개를 보면 이정재의 1부~2부 전반과 2부 후반의 성격 변화는 의도된 것 같다.

1부에서는 그럴듯한 활약이 없으나, 2부에서는 김두한, 시라소니와 함께 3강 체제를 펼치며 극의 진행에서 대단히 중요한 흐름으로 급부상했다. 6.25 전쟁 후 김두한이 우미관패를 해산하고 정계로 진출한 뒤에는 아무래도 주먹에서 손을 씻게 된 김두한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17], 이정재의 극중 비중과 심리묘사 부분이 상당히 늘어나 2부 중반부터는 이정재도 김두한, 시라소니와 함께 주인공이 된다.[18] 실제로도 실존인물 이정재는 김두한에 버금가는 정치깡패계의 거물이었다.[19] 더불어 그 비중이 급격히 늘어난 만큼 2부부터는 극의 재미를 위해 엄청나게 많은 부분에서 미화되었음에 유의하면서 읽어야 한다. 또한 이정재의 싸움 실력이 실제보다 과장되었음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작중에서 이정재는 김무옥보다 힘이 앞서는 것으로 보아 김무옥보다 우위이지만 김두한이나 시라소니 등의 최강자에게는 한 수 아래로 묘사된다. 자세한 것은 하단의 문단 참조.

1부 마지막 무렵부터 경찰에 몸담아온 사람인데, 1부에서 김두한은 헌병대 사건에서 무사히 목숨을 건져 나온 뒤 조선의 주먹들이 징용에 끌려가는 것을 막고자 총독부와 협상을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서 얻은 총독부와의 연줄로 미와를 엿먹이려고 자신의 부하들 몇몇을 경찰 쪽에 집어넣게 된다. 이정재는 그 중 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이정재의 첫 등장은 김두한의 부하로서가 아니라 조선 주먹들의 징용대책회의에 참석하고자 경성으로 올라온 지방 주먹들 가운데 하나였지만, 실제 역사에서 이정재는 주먹 출신이 아니라 광목 장사를 하다가 김두한의 눈에 들어서 스파이 노릇을 하는 경찰로 취직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2부 시작쯤의 해방정국에서도 경찰 일을 계속한다. 네티즌들에게 합성 관련으로 많이 알려진 형사양반임화수, 곽영주의 첫 출연이 바로 이 당시의 일이다.[20]

해방 전에는 김두한의 부하였기 때문에 김두한에게 형님 대접을 하였으나, 해방 이후로 김두한이 이정재에게 나이도 자신보다 한 살 더 많으니 그냥 친구 먹자고 해서 김두한의 부하에서 말을 놓은 친구가 되며 김두한의 입장에서도 이념으로 인해 정진영과 갈라지면서 우군이 필요했기에 자신과 뜻이 맞는 이정재와 친해지게 된다. 주먹이 아니라 서열이라긴 뭣하지만 김무옥이나 문영철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신영균과는 원래 친구였고, 홍만길과는 상호존대하는 사이며 그 아래인 삼수, 휘발유, 김관철 등에게는 형님 대접을 받는다. 단 이정재가 경찰에서 일할 때는 별 일이 없었으나, 이정재가 자유당을 등에 업고 주먹패 두목이 되면서 이런 관계가 점차 변질되어간다. 시라소니와는 6.25 당시 부산에서 연을 맺어 의형제가 되기도 한다.[21]

정부 수립 직후에는 경찰에 몸담으면서 정진영을 비롯한 좌익들을 소탕하다가, 정부가 수립되며 그 나름대로 생각하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반민특위에도 참가하였다. 하지만 노덕술의 예측대로 반민특위의 해체 과정에서 고문만 당하다가 나오게 되고,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경찰[22]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흑화되기 시작한다. 김두한과의 술자리에서는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억울해."라고 푸념했고, 그 뒤에는 종로회관에서 만취한 상태로 무대 위에서 희망가를 부르는데 이정재가 망가지는 모습을 본 김두한이 옆에 있던 김영태에게 딱하다는 듯이 "정재가 저러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이후 이정재가 흑화했다는 것은 여러가지를 통해 알 수 있다.[23] 이정재가 붓글씨를 쓸 때 구겨버리거나, 가위표한 무풍지대나 사필귀정이 그렇고 김동진 사건 이후 이포역포(以暴易暴)도 그렇다.

자기가 경찰에 몸담고 있던 시절 대준 연줄로 드디어 경찰에 들어간 곽영주에게도 "연줄을 잡았으면 끝까지 잡고 놓지 마라."라는 충고를 남기고, 이것을 새겨들은 곽영주는 이승만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그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아 출세일로를 걷게 된다.

결국 80화 초기 친일반민족행위자 소탕에 실패하고, 친일파 겸 상관인 노덕술에게 잡혀 심한 고문을 당한 이정재는 경찰 일을 그만둔 뒤로는 완전히 세상만사에[24] 대한 미련을 떨친 듯 당시 여자나 하는 직업으로 취급되었던 포목점을 개업하고 소탈한 삶을 산다.

행적과는 별개로 2부의 이정재의 헤어 스타일은 흑화 전까지는 차분한 머리 스타일을 유지했지만, 포목점 개점 및 동대문 회장 취임 이후부터는 모히칸 스타일로 바뀐다.

3.2. 6.25 전쟁

그런데 81화에서 6.25 전쟁이 터졌고, 이정재는 조용히 살고 있는데 무슨 변이 있겠냐며 어영부영하다가 피난 기회를 놓치고 만다. 82화 방송 막판에 공산군이 서울을 점령하며 등장하는데. 이것을 보고 불길한 의미심장한 표정이 보이고 공산군은 그간 점찍어놓았던 사람들을 대거 학살하는데 그 명단에 전직 경찰들이 포함된 것을 보고 피난을 갔어야 했다고 후회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결국 83화 중반에 피난을 갈까 말까 하던 시점에 인민군 조사단원이 포목점을 습격, 이정재를 잡으러가자 도망치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되고 어쩔 수 없이 7:1로 싸우는데 5명은 나가리되고 다른 1명만 죽어라 패는 와중 다른 1명이 총을 쏘며 몸에 바람구멍 나기전에 조용히 가자고 항복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인민군 조사단원들이 이정재를 몰매를 때리고 묶어서 끌고가게되고, 지하에서 한때 경찰에 몸담았던 경력으로 인해 인공 치하 서울에서 또 다시 고초를 겪고 총살형 직전까지 이르렀는데[25], 나중에 부하가 된 김기홍의 활약으로 구조된다.[26]

그러다가 피난 중이던 기자양반도 상봉하여 함께 부산으로 내려온 이정재는 군수물품 가게를 하며 계속 조용히 살기를 희망했으나, 이때 도끼와 그의 패거리가 찾아와서 깽판을 놓는 통에 두 차례 싸우기도 했다. 첫 번째 싸움은 이정재의 압승으로 끝났지만[27], 두 번째 싸움 때는 도끼 패거리가 무기를 가지고 여러 명이서 이정재를 공격하여 밀리는 중에 시라소니가 난입했다. 실제로 이때 이정재는 부산 깡패 5명에게 당했지만, 드라마상에서는 5명을 쓰러뜨리고 20명이 몰려와 밀리다가 시라소니가 끼어들어 둘이 함께 힘을 합쳐서 20명으로 제압하게 나온다. 참고로 실제로는 시라소니가 부산의 주먹패 중 하나였던 용가리파 조직원 5명에게 다굴당하고 있는 이정재를 구해줬었다.

이후 김기홍을 비롯한 지인들과 임화수, 도끼를 비롯한 부하들의 거듭된 설득도 있었고 자기 자신도 마침내 내면에 숨어있던 여러가지 복잡한 심리[28]가 발동, 곽영주의 빽과 임화수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이정재의 명성을 듣고 몰려온 주먹패들을 규합해 동대문 상인 연합회를 조직하여 회장직에 오른다.(86화)[29] 이후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가 부하들과 함께 세력 확장에 힘을 써 서울 자체를 휘어잡는 거대한 주먹패로 부상하기 시작한다.[30]

4. 2부 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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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적 하야시 미와 정진영 이정재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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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자유당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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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상인 연합회의 출범
나 이정재요, 반갑소. 잘해봅시다.[31]
하지만 이정재의 행보 및 결말이 어찌될 것인지는 6.25 전쟁이 끝나기 직전, 이정재의 임시 집에서 김두한, 시라소니, 이화룡이 송별회를 하는 장면에서 이미 암시가 있었다. 이정재가 수많은 주먹패를 규합하여 상인 연합회를 만든다는 소식에 시라소니와 김두한은 대규모 주먹패를 다스리는 것은 힘든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이화룡 역시 시라소니의 말에 동의하였다. 특히 김두한은 권력과 결탁해 봤자 내쳐지기도 쉽다며 이정재에게 조언을 한다. 이정재는 그리 주의깊게 듣지 않았지만, 훗날 이정재파가 어찌되었는지 생각하면 김두한과 시라소니의 조언은 지극히 옳았다. 그리고 의도된 장면인지는 알 수 없지만 김두한, 시라소니, 이화룡은 흰색 또는 옅은 갈색의 옷을 입고 있는 반면, 이정재만은 검은색 조끼를 걸치고 있어서 다른 인물들과 크게 대비가 된다. 이후 켈로 부대원들에게 점포 양도 및 자본금 500만 환을 요구하는 시라소니가 이정재의 부하들에게 다굴을 당해 반병신이 되어 명동파와 대립하게 되었다. 이때 시라소니 린치 사건을 주도했던 이석재에게 뺨을 때리고 격노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성격이 차분한 편인 이정재가 그렇게 크게 화를 내는 장면은[32] 얼마 되지 않는다.[33][34] 심지어 사형 집행을 받을 때도 미소를 띠고 시종일관 담담한 태도를 보일 정도로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모습을 보면 분명 성격이 이전과 많이 뒤틀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시라소니가 교관으로 있는 켈로 부대원들에게 이억일과 함께 집단 린치를 당해 거의 반죽음 상태가 되었다.[35] 그런데 이 린치 사건 역시 시라소니의 지시 없이 켈로 부대원들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1차 린치에서는 이석재 이외에도 동대문 간부 거의 전원이 시라소니 린치에 참가했기에 이석재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었지만, 문제는 이석재가 이정재나 다른 간부들의 허락도 없이 자기 멋대로 시라소니가 입원한 병실로 들어가 쇠몽둥이로 두 다리를 분질러 버렸다는 것이다. 아무리 주먹 조직 세계라지만 상도덕이라는 것이 있음에도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다친 중환자에게 2차 테러를 가한 이석재는 비열한 짓거리를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정재도 길길이 날뛰며 이석재에게 화를 냈다.[36][37] 이석재의 이런 만행으로 인해 시라소니 린치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었던 이정재가 죄를 다 뒤집어쓰게 된다.

드라마상에서는 이후 시라소니가 재활해서 이정재에게 도전, 막상막하로 겨루던 중 이정재가 스스로 시라소니에게 항복하고 사죄를 하자 시라소니는 마음을 바꾸고 이정재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물러간다. 실제로 시라소니는 총으로 이정재를 죽이려다가 마음을 바꿔 포기하고 종교에 귀의하였다. 또 원작 소설에서는 이 시점쯤에 김두한이 전쟁이 이정재의 마음을 황폐해지게 했다는 언급을 하는데, 정말로 이정재가 6.25 이후 흑화한 게 PTSD 증세였을 수도 있다.

이후 세력을 늘리기 위해 이기붕의 부탁으로 자유당 정권과 결탁하여[38]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 이정재 자신은 정치가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향 이천의 민심을 얻는 작업을 병행한다. 그러나 자유당이 제3세력 암살 등을 의뢰하는 등 지나치게 막장으로 흐르자 김기홍은 조만간 자유당이 망할 거라며 이기붕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이정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 일을 언제 배신할지도 모르고 또 이미 배신할 기미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으며, 다른 사람들의 눈밖에 나기 시작한 김동진에게 맡겨버리는 실책을 저지른다. 더군다나 안 그래도 이미 이 일이 있기 전부터 임화수는 이정재한테 김동진이 배신할 기미가 보인다며 뒷말을 하기 시작했었다. 심지어 임화수는 김동진을 동대문 사단에 직접 스카웃한 입장임에도 그러했다. 김동진이 다른 사람들의 눈밖에 난 건 그렇다 쳐도 하다하다 김동진을 스카웃한 임화수마저 먼저 김동진에 대해 배신할 조짐이 보인다며 뒷말을 할 정도였는데, 김동진한테 이런 큰일을 맡겼으니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동대문파는 조직 전체가 어려움에 빠져 자유당과의 유착이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시점에서 위기를 타개할 목적에서 김기홍이 다시 한 번 조언을 한다. 비록 이 시점에서 뒤늦게 김기홍의 말대로 한다 해도 이전의 실책으로 일이 커질 대로 커진 탓에 아예 손해를 안 볼 수는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39], 그래도 재기의 여지는 있었고, 애시당초 김기홍의 진언대로 했다면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정재가 그 조언을 듣지 않자 크게 실망한 김기홍은 이정재와 결별해 동대문을 떠난다. 김기홍이 떠나자 몇몇 간부들은 그를 도로 잡아오자고 주장하지만, 이정재는 자신이 옛 정을 생각해서 그냥 보내준 것이라며 만류하고 불문에 붙인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정재는 6.25 시절에 이어 김기홍 덕에 두 번이나 살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거기에 김동진을 서둘러 처단하지 말고 일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라는 김기홍의 조언을 무시하고 단성사 저격 사건을 일으켜 이석재가 옥고를 치르게 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자유당과 맞서 싸우는 김두한과의 사이가 엄청나게 나빠졌다. 예전만 해도 김두한과 서로 같이 식사도 할 정도로 친했으나, 나중에는 아예 국회의사당에 쳐들어가서 김두한과 박터지게 싸우는 지경에 이른다. 이때 싸움은 대등하게 흘러갔지만, 이정재가 몇 번 정타를 맞는 등 조금 밀리는 기색을 보이자 유지광이 권총을 꺼내며 김두한에게 적당히 하라고 협박했고[40] 허탈해진 김두한은 둘에게 쓰레기가 되었다며 싸우고 싶지 않아졌다고 물러난다.

김동진을 견제할 목적으로 이정재는 수양 중이던 유지광을 불러서 화랑동지회를 맡기도록 한다. 이정재는 유지광에게 존대하고 사돈이라고 불렀는데, 실제로 두 사람은 인척 관계였다. 이정재는 유지광을 전적으로 신뢰했고 유지광 역시 이정재에게 오야붕으로 절대 충성하여 그에게 많은 권익을 주었다.

이리하여 이정재는 자유당과 곽영주의 힘으로 화랑동지회로 세를 늘리면서 상황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하지만 자유당에서 동대문파에게 장충단집회 방해 사건을 사주했고, 수습이 어려워지자 유지광을 구속시켜야 한다고 했는데, 이정재는 의리를 내세워 최대한 이기붕을 설득하고자 했으나 애당초 정치인이었던 이기붕은 깡패들간의 의리 따위는 고려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소모품이라고 하며 자기 보신부터 우선하라는 이기붕의 태도에 크게 당혹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기붕은 이정재를 정치적인 가치로써 계속 이용해야 했기에 유지광에게 가벼운 징역 선고와 더불어 수감 생활 중에 이런저런 편의를 제공해 주는 등 이정재의 화를 일시적으로나마 잠재웠고, 이정재 역시 국회의원 당선 때까지만이라도 아무 생각 말고 개처럼 살자고 다짐했기에 이 문제는 조용히 넘어가게 되었다.

물론 이정재가 자유당 정권에 개처럼 줄곧 이용만 당하고 산 것은 아니었다. 이화룡과의 충돌을 앞두고 충정로 도끼 사건을 계기로 자유당의 권력을 한 번 더 빌리기도 했었다. 동대문 내부에서는 우리가 명동파에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으며 주먹계의 통일을 이루었다고 자화자찬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자유당에서는 점점 커져가는 이정재를 경계하고 있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기붕은 자신의 거주지[41]가 속한 서대문구 을 지역에서 당선 가망이 매우 낮다는 조사결과를 받게 된다[42]. 이에 주변 측근들은 이정재를 더 이상 키워주면 안된다고 말하며 이천 출마를 설득했고, 그 말에 넘어간 이기붕은 장경근과 한백수를 보내 이정재에게 출마 포기를 종용하게 된다. 하지만 이정재 입장에서는 절대로 양보할 수가 없는 것이, 이정재는 이천군 국회의원 오로지 하나만 바라보며 지금까지 동대문파를 이끌고 자유당을 위해 할짓 못할짓 다 해왔었다. 장경근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닥치시오!!"라고 외치며 분노할 정도였으니 결국 자유당은 경찰력을 동원하여 이천에 파견나가 있는 동대문파 조직원들을 하나하나 잡아들이며 이정재를 협박하게 된다. 이에 이정재는 토사구팽당한 분노로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해 자유당에게 복수하려 했으나, 곽영주의 설득[43]과 권력의 힘에 굴복하고 만다. 그간 온갖 불의를 알면서도 저지른 자신을 하늘이 어떻게 도울 수 있었겠느냐는 한탄과 함께 후보 등록 마감시간 20분을 남겨놓고 입후보권 포기 각서에 도장을 찍고 만다. 말 그대로 죽 쒀서 이기붕 준 꼴.

사실 이 시점에 이를 때는 이전에 김기홍을 내쳤던 이정재도 점점 민심을 잃어가던 자유당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고, 국민들에게 온갖 욕을 쳐먹던 상황에 지쳐있던 참이었다.[44] 이정재는 여러모로 고뇌하면서도 이천에서 국회의원이 되는 꿈 하나만을 보면서 계속 자유당의 뒤치다꺼리를 했고, 국회의원이라는 최종 목표를 마지막으로 완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처지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지막 목표였던 국회의원 자리를 토사구팽당하며 빼앗겨버렸다.

이로서 남자로서의 모든 야망을 포기한 이정재는 부와 권력에 대해 염증을 느껴 집에서 칩거하고 있었는데, 자유당에서 한백수 실장이 좋은 낭보를 들고 왔다며 찾아온다. 경북 도지사와 정부 부처의 차관, 치안국장 등을 거론하며 국회의원 선거를 양보한 대가를 후하게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게 얼핏 보면 괜찮은 대우 같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알맹이 없는 쭉정이이자 날개 꺾인 이정재를 끝까지 털어먹을려는 고도의 정치술수에 가깝다. 경상북도 도지사는 보수정권의 핵심 텃밭 지역으로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꽤 괜찮아 보이나, 1950년대 후반 당시에는 지방자치제가 아닌터라 도지사 이하 지방단체장들은 지금과 달리 투표가 아닌 중앙정부에서 임면(任免)하는 관선제였고, 그만큼 언제든지 다시 또 내쳐질 수 있는 한직이었다. 그리고 차관 쪽은 예나 지금이나 관련 실무자가 맡는 게 관례인지라 주먹으로 살아온 이정재로서는 아무런 할 일이 없었다. 그나마 치안국장은 중앙 권력에 밀착한 막강한 자리이나 이정재가 언급하였던 대로 '시키는 대로 선거판이나 왔다갔다하다가 온갖 잡일이나 하다가 뭐 엉뚱한 바람이 불면 쓰러지거나 병신이 되는' 사실상 총알받이 관직이었다.[45] 이처럼 자유당은 이정재의 국회의원 당선 기회를 뺏은 것도 모자라 동대문 사단까지 해체하여 자신들이 뽑은 새로운 후임자 신도환에게 이정재의 조직을 넘겨줘 다시 한번 정치깡패 조직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이것을 간파한 이정재는 출소한 유지광을 독대하여 자신뿐만 아닌 주먹계 전체의 위기라고 상황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자신이 은퇴함과 더불어 임화수 밑에서 계속 일해줄 것을 부탁한다. 유지광은 자유당의 처사에 경악하면서도 이정재의 결정에 의문을 품지만[46] 이정재는 유지광에게 임화수가 오래 못 갈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일단은 따르라고 했다. 당시 임화수는 동대문파 서열 2위였던 데다가 이정재가 회장이 되는데 창업 공신으로서 큰 기여를 한 것도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동대문파 내에서 정계의 높으신 분들과의 연줄과 빽, 인맥, 그리고 자본력을 모두 갖추고 있던 사람은 임화수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이 당시 임화수는 정계를 대상으로 한 엄청난 로비 공작과 곽영주의 빽을 이용한 결과로 문교부 장관 입각설이 계속해서 돌고 있었다. 또한 이정재는 유지광이라는 확실한 후계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즉 일단 자신이 물러나면 정계의 연줄이 있는 임화수를 차기 회장으로 만들어 조직과 부하들을 토사구팽의 위험에서 구해준 후, 위기가 진정되고 임화수가 문교부 장관이 되어 동대문 회장직에서 물러나면 자신과 사돈 관계이자 세력도 강하고 똑똑하고 다른 조직원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유지광이 조직의 새 회장이 돼서 조직을 다시 번영시킬 계획이었다.

어쨌든 이정재는 그렇게 회장직을 임화수에게 넘겨준 뒤 명예 고문으로 물러난 조열승, 이석재와 함께 주먹계를 떠나 교외에서 흉가를 발견한 뒤[47] 그 집을 헐어 작은 저택을 짓고 직속 경호원이었던 이억일과 함께 농사를 짓는다. 이때 한때 친했으나 이후 사이가 멀어져 버렸던 김두한과 기회가 된다면 다시 만나고 싶다며 김두한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김두한의 낙선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유당에서 완전히 마음이 떠나 조열승, 이석재 등과 함께 자유당의 실정으로 민생이 파탄난 상황을 보면서 자유당을 떠나길 잘했다며 안도하기도 했다.[48]

하지만 주먹계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3.15 부정선거와 그로 인해 4.19 혁명이 발생하고, 세상이 바뀌어 그간 비호받던 주먹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령이 내려지며 불과 얼마 전까지 동대문파 회장이었던 이정재에게도 경찰들이 찾아온다. 측근들은 속히 도피하길 권했지만 이정재는 자존심도 있고 이미 주먹계를 떠난데다 부정선거는 자신의 소관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믿고 당당히 경찰들의 체포에 응한다. 그리고 새로이 들어선 민주당 정권 하에서 일단은 징역 8개월의 선고를 받고 무사히 넘어가는 듯했으나, 곧이어 다시 재판을 받고 징역 10년으로 형이 증가한다.

4.2. 군사정권편

이후 해가 바뀐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박정희의 군사 정권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이후 민심을 얻기 위해 깡패들을 일벌백계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군사정부에 의해 이전의 판결이 취소되고 혁명 재판부에 인계, 다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시라소니가 자신이 다굴당한 일을 없었던 일이라고 증언하며 어지간하면 풀어달라고 부탁하고[49], 유지광이 스스로 이정재의 죄를 뒤집어쓰려고 하는 등 주변인들이 이정재를 살리려고 노력했기에 이정재는 가벼운 벌만 받거나 금방 풀려날 것처럼 보였다.[50] 그러나 임화수가 자신만 살려고 화랑동지회 일을 낱낱이 불어버렸고[51], 단성사 저격 사건 때의 살인교사 건이 발목을 잡으며 임화수, 유지광, 최인규, 곽영주, 돼지와 함께 나란히 사형 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이정재. 처음 일반 법정에서 8개월을 언도받고 일시 가출옥했던 그는, 다시 민주당 정부에서 조사를 받고 10년을 받았다가 다시 혁명 재판부에 인계됐다. 하지만 본인은 물론 사람들은 그의 죄가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 다시 한 번 화랑동지회 사건으로 최악의 국면을 맞게 된다.
야인시대 122화 中 내레이션
그렇게 다른 화랑동지회 일당과 같이 조리돌림을 당할 때[52] 군중 속에서 있던 김두한을 보고 쓴 웃음을 짓고는[53] 가던 길을 마저 걷는다. 이에 김두한은 이정재의 이런 비참한 모습에 "이런 건 아니야!"라고 울부짖는다.

그 이후 마지막까지 자신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다가 혁명검사부에서 자신을 소환했다는 말을 듣고 "그럼 그렇지, 죄 없는 사람을 사형시킬 리가 있나."라고 했으나, 사실은 이정재 자신의 사형을 집행하러 가는 것이었다. 면회를 하러 가는 듯 하다가 사형 집행장 앞에서 두 경관에게 붙들리자 순간 당혹한 기색을 보였으나, 이내 담담히 오늘이 집행일이냐고 묻고는 집행장으로 향한다.[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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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김두한의 절친이자, 동대문오야붕은 파란만장한 야인과 정치인의 인생을 끝마치고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다. 그 때가 1961년 10월 19일의 일이었다.[56][57]
그때...가 의원 시절이었을 때...정재를 눌렀어야 했어...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말이야...그랬다면 이렇게 죽지는 않았어..이렇게는 죽지 않았다고..이건 너무 허망해! 너무 허망해! 너무...! 정재...... 이정재! 넌 그렇게 죽을 놈이 아니었어, 인마!
이정재의 죽음을 접한 김두한이 시라소니, 이화룡과 함께 술을 마시며 남긴 눈물 섞인 평
이정재의 처형이 집행된 후, 이정재의 죽음을 애도하는 술자리를 가진 김두한, 이화룡, 시라소니는 이정재의 최후에 씁쓸함과 허망함을 느꼈다. 이정재와 원수 사이가 되었다가 그를 용서했던 시라소니는 이정재를 살리려고 애쓴 노력이 허사가 된 것에 허탈감을 느꼈고, 마찬가지로 이정재가 동대문 사단과 함께 몰락하는 순간까지 철천지 원수 관계를 유지했던 이화룡조차 간단히 인생째로 사라져버린 이정재의 최후에 혀를 차며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주먹황제라 칭송받던 그의 최후가 비참하다며 건달이 정치에 엮이려 드니까 이런 최후를 맞는 거라고 안타까워했으며 김두한은 이정재가 정치 깡패의 길을 걷는 것을 막지 못한 걸 후회하며 이정재의 죽음을 울부짖듯 애도했다.

야인시대의 메인 빌런[58] 중에서도 김두한이 아닌 제3의 인물에게 제거된 유일한 인물이다.[59]


[1] 피아노 버전, 결투 버전. 상당히 많은 명곡들이 있는 야인시대의 OST에서도 슬프고도 웅장한 분위기의 테마곡은 한때는 김두한의 친구였고, 주먹계를 호령할 정도로 승승장구하였으나, 결국 정치계에 배신당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의 모습이 겹쳐져 많은 호평을 받았다.[2] 근로보급대 창설 이후, 김두한이 조선인들끼리의 잘못은 조선인 형사들이 처리하게 해달라고 일본 총독부에 요구하여 고보학력에 전과가 없는 이정재가 형사를 맡게 된다. 그 이후 문달영의 비리 혐의를 조사하여 엿을 제대로 먹인다.[3] 사실 이정재는 김영태와 마찬가지로 휘문고보 출신이다. 중앙고보를 다니다 휘문고보로 전학했다.[4] 일제강점기 당시에 고등학교를 나온 인재는 상당히 고학력에 속했다. 김영태도 휘문고등보통학교 출신이다.[5] 처음에 사범한테 무술 실력은 범죄자와의 결투에서 생각보다 큰 도움이 못되고 실전능력이 중요하다는 발언을 하여 무도인이라면 자존심 구겨질 만한 말을 대놓고 해버리자 열이 받은 사범이 직접 대련을 하려고 했으나 이정재와 같은 공간에서 가라데 수련을 하던 제자 한명이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면서 나선 탓에 그가 대신 이정재와 붙게 되었고, 제자와의 결투에서 초반에 일부러 맞아줘서 형편없는 척 하다가 곧 씨름 기술 비슷하게 상대를 공격하더니 마지막으로 파일드라이버를 날려버린다. 그리고 사범과 한 판하자고까지 말했다.[6] 초반엔 그 제자에게 일방적으로 털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야인시대 강자의 클리셰 중 하나인 "상대의 기량을 파악하기 위해 맞아줘 봤다" 를 시전한 뒤 역으로 보내 버린다. 그런데 이정재가 맞고 일어날 때의 표정연기가 침착하긴 커녕 너무 심각해서 맞아준 게 아니라 진짜 당황한 거 아니냐, 설렁설렁해도 이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세서 개빡겜해서 이긴 게 아니냐는 반응이 있다. 애초에 경찰 교관인데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닐 것이다.[7] 사실 사범의 말과는 달리 그 당시의 가라테는 유도와 쌍벽을 이루는 대일본제국의 자랑스러운 무도는 아니었다. 가라테는 일본 본토가 아닌 1916년에 오키나와에서 당수라는 이름으로 갓 건너온 무술이었기에 사람들의 인식은 그다지 좋지 못했고 그러한 인식은 1929년에 공수도로 이름을 바꾸고 1933년에 공식적으로 일본 무술로 인정 받은 이후에도 한동안 이어진다. 물론 지금은 엄연히 일본의 대표 무술이며 자국민들은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인정과 사랑을 받는다. 고로 해당 회차는 고증 오류라고 볼 수 있으며 태권도로 인해 무술에 유독 국가관을 투영하는 한국인들 중심의 사고가 반영된 연출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가라테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감은 어제 오늘이 아니니깐 말이다.[8] 미와는 이 상황에 불같이 항의라도 했지, 이놈은 선임임에도 불구하고 이정재의 기세에 다른 부하들과 함께 뒤에서 잔뜩 쫄아서 덜덜 떨고 있었다. 김두한에게 싸대기를 때리던 상황, 김이수를 폭행하던 상황과는 대조되는 상황이다.[9] 미와도 문달영이 방심한 것에 대해 진짜로 화난 건지 별다른 구제를 해주지 않았다.[10] 124화에서는 회상으로만 등장했다.[11] 62화에서 이정재가 조열승을 쓰러뜨리고 동대문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간 것에 대한 뒷담이다.[12] 위 임화수와 이어지는 대사는 아니다. (애초에 임화수와 김두한은 직접 만난 적이 없다.) 51화에서 이정재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첫인상을 김영태에게 말할 때는 "배운 것도 많고 주먹패로 썩기엔 아까운 친구입니다."라고 상반된 평가를 했다. 작중 이정재가 다재다능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담당 배우인 김혁과 김영호의 외모 차이가 커서 작가가 은근히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13] 다만 이들을 잡고 돌리기 시작할 때는 청년 이정재의 김혁이 연기하고 한 번 돌고 씬이 지나간 이후에 김영호로 바뀐다.[14] 우미관 패와 서로 반대편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는데, 후에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복선이라고 볼 수도 있다.[15] 막말로 사람들이 김두한의 김영철로 너무 일찍 바뀌는 까닭에 충격을 먹었다. 해방 후의 김두한은 고작 20대 중후반이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시청자나 연기자 입장에서 좀 찝찝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까지는 말도 안 되지만 어쨌든 낭만 주먹이라는 기름칠을 하며 무기 없는 폭력을 미화해주었으나, 2부부터는 무기를 쓰는 테러나 준전쟁, 각종 범죄 행위들을 하고 다니는 터라 그런 식으로 미화가 불가능했다. 작중 분위기 일신이라는 측면에서 배우 교체는 적절한 시점이긴 했다. 김영철이라는 배우 자체가 김두한의 말년을 염두에 둔 배역이라 이 당시는 확실히 이질감은 있었으나 이는 시라소니나 다른 배역들도 마찬가지다. 흔히 배역이 바뀌는 장면이 시청률이 떨어지는 장면이라 하지만 실은 1부와 2부는 분위기나 내용부터가 다른 작품이 되어버려서 라이트 시청자들이 떠난 것이다. 이러한 작품 분위기에는 오히려 원래 나이 대 보다 더 많은 배역들이 소화하기 더 적절한 부분도 있다. 결론은 미스 캐스팅은 아니라는 것.[16] 무게잡는 젊은 캐릭터는 후반에 등장하는 유지광이 가져간다.[17] 다만 어디까지나 야인시대의 주인공은 당연히 김두한이다.[18] 오프닝에서도 김두한 바로 다음에 나오는 인물이 이정재이다. 그 시라소니마저도 제치고 말이다.[19] 해방 정국 때는 김두한이, 자유당 정권 때는 이정재가 정치깡패 최종보스라고 보면 된다.[20] 참고로 계급은 경위인 모양이다. 이정재의 수발을 들어주는 부사수인 김형사가 주임님이라고 호칭하는데, 주임은 보통 경위에게 붙이는 호칭이다. 다만 처음에는 조개옥 경기도 경찰부장이 경사로 시작하자고 언급했던 걸 보아 후에 진급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김형사는 순경들에게 고문을 지시하는 모습이 있는 것으로 보아 경사 계급으로 보인다.[21] 장사를 하던 이정재의 가게에 불량배들이 와서 시비를 걸자 싸움이 났고 지나가던 시라소니가 합류해 이정재와 함께 불량배들을 격퇴한다. 감사의 의미로 마련한 술자리에서 자신은 두한의 친구고, 두한이가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모신다면 본인한테도 형님이라며 형님 대우를 한다.[22] 줄거리에서는 아예 공산당이란 누명을 쓰고 경찰직을 잃었다고까지 표현한다. 공산당을 소탕하는 일을 담당해서 미군정으로부터 미움까지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23] 김관철, 홍만길, 신영균, 문영철이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배신 당한 마냥한 허탈한 표정이였다.[24] 종로회관에서 김두한과 우미관 일행들이 술을 걸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특히 "나라에서 친일파를 처단하는 게 일인데 왜 반대가 되었냐?"라면서 이정재를 위로하는 한탄을 한다.[25] 특히 근로보급대 시절 김두한의 서기로 있던 시절과 반민특위 시절 친일파를 풀어줬다는 오해가 있었다. 김기홍이 구출 할 때 군관으로 분장해서 반민특위 당시의 오해를 이용해 풀어준다. 남반부의 친일파들을 모조리 풀어줬다면서 그거에 대해 조사할 일이 많다는 내용으로 구출한다.[26] 이미 인민군 조사단원들이 눈치를 채고 쫓았으나 냄새를 맡은 운전병이 "하아따~ 성님~ 인제 이놈의 괴뢰 군복 좀 벗어제껴 버리면 안되겠으라우?"라고 하는데 이때 이정재가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김기홍이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고 깜짝 놀란다. 실제로는 이정재를 쫓지 않았고 저 상황을 속은 지휘관이 대신 처형되었다고 한다.[27] 밥 짓다가 나와서 싸우는 바람에 다시 들어왔을 땐 냄비 안의 밥이 삼층밥이 되어있었다.[28] 앞서 말했듯이 자신이 추구하는 정의를 위해 반민특위에 참가도 하였으나 현실 앞에 좌절했다. 그리고 노덕술은 이정재에게 고문 도중 "힘이 곧 정의"라고 말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말은 이정재의 흑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29] 87화 초반에 김기홍이 사실 언젠가는 김두한이도 해결을 해야 할 상대가 될 거라는 것에 이정재가 그게 무슨 말씀이냐며 의문을 표하자 같은 하늘 아래 태양이 둘일 수는 없을 거라고 답한다.[30] 그 전까지 가장 큰 세력이었던 종로파는 보스 김두한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31] 88화에서 동대문 상인 연합회를 출범하는 장면에서.[32] 그 외에 국회에서의 격투 때 김두한의 조롱에 패배감을 느꼈을 때와 자유당이 이정재에게 선거구를 내놓으라 할 때다.[33] 근데 이는 이정재로서는 당연히 화가 날 만한 상황인데, 물론 시라소니가 다짜고짜 동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할 수 있는 자리와 장사 밑천의 금액을 요구하는 등 솔직히 무례한 부탁을 하긴 했어도 그 정도는 서로가 잘만 합의를 하면 타협점을 가질 수가 있던 상황이었는데 굳이 시라소니를 유인해서 집단 린치를 가하고 거기에 더해서 병실까지 찾아가 끝장을 내놨으니 작중 이정재의 성격에 화가 나면 났지 그냥 넘어갈 위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34] 심지어 애초에 시라소니 린치의 경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라소니의 안하무인격 태도가 원인인 만큼 그걸 걸고 넘어지면 아무리 이화룡과 명동패라고 해도 쉽사리 움직일 수는 없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병실까지 찾아가서 끝장을 내놨으니 겨우겨우 말리던 명동파를 말릴 명분까지도 스스로 없앤 꼴인 만큼 절대 가벼히 넘길 문제가 아니었던 것도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35] 상대가 상대인 만큼 이정재와 이억일도 고전 끝에 쓰러지긴 했지만, 켈로 부대원들 역시 수십 명 가까이가 덤비면서도 반절 이상이 나가떨어졌기 때문에 아무리 그래도 특수부대원들이 너무 약하게 나온 게 아니냐는 말이 많다. 물론 켈로 부대원들은 군인 출신이라 무려 기관단총까지 준비해뒀기 때문에 이정재가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참고로 여기서 군 특수부대인 켈로 부대에 대해서 조그마한 커버를 쳐주자면, 이정재와 이억일을 습격하러 갔던 켈로 부대는 진정한 의미의 켈로 부대 정예 요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당시 켈로 부대원들은 대장인 시라소니가 데리고 있는 일명 시라소니파와도 같은 입장으로서 시라소니가 멀쩡하던 병원에 있던 최소한 최측근들은 그의 근처에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켈로 부대는 특수 부대로서 대외적으로 알려진 정보가 없을 정도로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부대인 만큼 부대원들의 수가 당연히 많을 리도 없을 것이고, 시라소니라면 자신의 최측근 중 하나가 안 보이면 바로 알 수도 있을 텐데 부하들이 이정재 습격을 말하기 전까지 낌새도 못 챈 것을 보면 최측근이라기보다는 측근은 측근인데 주로 따로 움직이는 별동대 정도가 맞을 듯하며 사실 그 정도면 부대원들 절반이 이정재와 이억일에게 나가떨어졌다고 해도 딱히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36] 이는 당연한 게 시라소니에 대한 린치의 경우 앞서 연급한 것처럼 이전에 시라소니의 안하무인격 행동이 원인이었던 만큼 변명의 여지라도 있었으며, 이화룡도 화는 나러라도 동대문의 주먹패들을 제외하면 딱히 건드리지도 않고 있었으나 이석재의 저 행동을 계기로 동대문이라면 사업장이던 뭐던 초토화를 내도록 한 것만 봐도 답이 나오며 시라소니 린치까지만의 문제라면 이정재가 명동을 찾아가서 석고대죄를 하던 뭐를 하던 명동패와의 전쟁을 어떻게해서든 멈출 수도 있었겠지만 이석재가 사건을 키워버려 그럴 수가 없어졌으니 화가 날 수밖에는 없다.[37] 더욱이 애초에 동대문의 세력이 얼마나 거대하고 강해도 명동패보다는 한 수 아래라고 평가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명동파가 아주 작정하고 덤벼들면 동대문에게 불리할 수밖에는 없던 상황인 만큼 이석재가 얼마나 섣부른 판단을 한 것이지 잘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더욱이 작중에서 이화룡은 "내 명동패는 김두한의 우미관패를 제외하면 조선 팔도에서 따라올 조직이 없다!"라고 했고, 실제로도 동대문파는 명동을 힘으로 평정할 수 없었다고 한 시점에서 명동파가 얼마나 강한 조직인지를 잘 알 수 있었는데 그런 명동파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당장 작중에 나온 명동파와 동대문파 이 두 조직의 최강자이자 최고 오야붕이라던 명동의 이화룡과 동대문의 이정재조차도 김두한의 최측근인 김무옥, 문영철과 비슷한 실력인 것만 봐도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38] 전쟁 중 대통령 직선제를 찬성하는 관제 시위는 곽영주의 개인적 부탁이었다. 이기붕은 휴전 후 명동파에게 먼저 사업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하고 차순위였던 동대문파에게 제안이 왔다.[39] 김동진 건에서 시간을 지체하면 주먹계의 평판이 떨어지는 걸 감수해야 하고, 자유당과 거리를 두면 그에 따라 어느 정도 조직에 타격을 입거나 어찌저찌 타격을 입지 않는다 쳐도 그 동안의 특혜(?)는 포기해야 한다.[40] 유지광 입장에서는 싸움판 자체를 파토내는 게 최선이다. 이정재는 이미 건달이 국회로 쳐들어가 국회의원과 싸움박질을 벌였다는 데서부터 이미 여론의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어쨌든 싸움박질을 했으니 최소한 이기기라도 하면 자존심이라도 세울 수 있었을 텐데 패배하게 된다면 자존심도 무너지고 욕은 욕대로 먹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41] 현재의 4.19혁명기념도서관 자리, 당시에는 서대문구 소속이었다.[42] 다만 기존의 선거구인 서대문구 을에서는 자유당의 최규남이 과반이 넘는 득표로 당선되었다.[43] 곽영주 왈 : 천하의 무서운 것 없는 이 곽영주도 이기붕 그 사람만은 어떻게 못합니다. 그 사람은, 다음 대통령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44] "이번은 양보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자."라는 곽영주의 설득에 다음이 어딨느냐며 소리친 것을 보면 이정재 역시 자유당의 몰락을 어느 정도 깨닫고 있었던 듯하다. 다만 자기 생각보다도 더 빨리 망하고 말았지만. 여담으로 곽영주 역시 임화수와의 술자리에서 은근히 자유당이 곧 파멸할 것 같다는 속내를 보이기도 했다.[45] 자유당에서는 당시 치안국장이자 자기들의 핵심 간부였던 김종원까지 일하는게 시원찮다며 내쫓을려고 했다.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을 계기로 김종원을 총알받이로 삼아 희생양으로 만들고 자기들만 살려고 했던 것. 자기 편도 내쫓은 상황은 이정재도 마찬가지다.[46] 거기에 나머지 유지광의 부하들도 못마땅해하며 밀어버리자고 제안한다.[47] 이 흉가에 얽힌 사연이나 터가 매우 안 좋아 다른 인물들은 매우 우려했으나 이정재는 신경쓰지 않고 그곳에 터를 잡는다.[48] 이때 민생이 나락으로 떨어졌음을 묘사하기 위해 꿀꿀이죽 이야기가 나온다. 이석재는 주먹계를 떠나서 이천 지역의 고아들을 후원하고 있었고 예전의 난폭하고 거칠었던 성질에서 매우 침착해지고 차분한 성격으로 바뀌었다.[49] 원래 이때 이정재는 시라소니의 용서에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만 드라마상에선 눈물을 삼키는 장면으로 나왔다.[50] 작중 이정재를 담당하던 사람이 운이 좋다고 말하거나 임화수를 담당하던 검사가 이정재의 죄는 가볍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51] 이외에도 본인이 회장일 당시의 악행까지 이정재의 탓으로 돌렸지만 당시 신설된 폭처법에 의하면 화랑동지회 건만으로도 사형 요건이 충족된다.[52] 이정재(조직폭력배) 항목에 있는, 교과서에도 실렸던 그 유명한 사진을 그대로 영상으로 재현했다.[53] 이전에 김두한을 그리워하면서 다시 만나고 싶었다고 얘기했는데 드디어 김두한을 만났지만, 군중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하는 비참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자 김두한을 반가워하면서도 이런 자신의 비참한 모습으로 인해 쓴웃음을 지은 듯하다.[54] 조리돌림을 당하기 이전에 간수로부터 죽산 조봉암이 사형당하기 전에 머물던 감방이었다는 곳이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참고로 무풍지대에서는 유지광이 간수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었다. 철문을 열고 면회라고 하는 장면은 실제로도 사형을 집행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면회라고 말하는 등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는다.[55] 실존 인물 이정재가 남긴 유언은 이와 좀 다른 뉘앙스였는데, 자신도 일단 잘못이 있기에 억울하다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자신을 무고했던 부하들에게 최소한 자기 잘못은 인정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56] 실제 역사에서는 돼지 신정식도 같은 날에 집행되었다.[57] 이 해설은 무풍지대의 임종국 해설도 똑같이 나왔다.[58] 사실 야인시대의 빌런 설정이 억지스러운감도 있다. 구마적이나 이정재 등은 같은 주먹으로의 정체성이라도 있고, 미와는 빌런에 알맞는 행동을 하나 박정희는 그냥 김두한의 말년에 독재를 하던 사람일 뿐 김두한만을 노리는 악역도 아니고 빌런이라 하긴 애매하다. 애초에 박정희는 김두한이 똥물을 뿌린 시점에서는 직접 등장하지도 않았고 계속 언급만 되고 끝이다. 박정희 쪽은 김두한에게 별 관심이 없는데 김두한 쪽에서 똥물을 뿌리고 하니 대통령으로 대응했던 거지 유독 김두한에게만 악역이었던 것은 아니다. 야인시대가 처음엔 특촬물처럼 시작하다 보니 빌런을 지정해 분류를 하여 이를 끝까지 억지로 맞추다 보니 생긴 억지인 듯한데, 마지막엔 역사물이 되는데 여기서도 억지로 빌런으로 끼워맞추니 이상해지는 것이다.[59] 구마적은 김두한이 쓰러트렸고, 하야시는 김두한과 화해를 하였고, 미와는 더 이상 도망갈 수도 없어 김두한 앞에서 자살, 정진영은 김두한에게 사살되었다. 박정희는 김두한보다 늦게 죽었고 무엇보다 이정재를 처형시킨 그마저 제3의 인물에게 살해되는 인물이니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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