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내가 히틀러라니!의 등장인물.2. 설명
대한제국 의친왕의 차남이자 영선군의 양자인 흥영군 이우로, 실제 역사와 달리 히틀러에 빙의된 주인공의 도움으로 구출되어 독립운동을 하게 된다. 사실상 후반부의 주인공이다.3. 작중행적
3.1. 본편
히틀러에 빙의된 주인공이 광복군을 도와주라고 보낸 군사고문 오토 스코르체니와 한국광복군 요원들에게 구출을 받아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나서는데, 관동군의 731 부대[1]를 털고 전선에서 조선인 병사를 회유시키는 등, 광복군 내에서 입지를 키워가는 활약을 보이다가 아키히토 황태자를 납치하여 조선총독부와 조선군과 협상하여 해방을 이뤄낸다.소설에서는 히틀러(주인공)가 실제 역사와 달리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에 선전포고하지 않고 도리어 일본군 정보를 미국에 적극적으로 넘겨줘서 전황이 현실 역사 이상으로 미국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정보 제공을 받자 미국도 처음에는 지나칠 정도로 퍼줘서 작중 어니스트 킹 제독과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히틀러가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고급정보를 이렇게 마구잡이로 퍼주는지'를 매우 수상하게 여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유가 없어서 농담조로 '니미츠 출신[2] 때문이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왔을 정도. 일단 정보 제공 자체는 '우리 미군을 태평양 전선에 묶어둬서 유럽 전선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 같다'라는 합리적인 추측을 하였지만, 미국이 놀랄 정도로 모두 정확해서 오히려 더욱 의심하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엔 루즈벨트가 정보 제공을 무시하게 했지만, 정보를 받지 못했다가 참패해서 꼭지가 돌아버린 킹을 비롯한 군부의 요구로 인해 이를 수용하게 된 것이다.
과달카날, 필리핀 탈환전[3] 등은 물론이고 이오지마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에서도 실제보다 적은 피해로 작전에 성공한다.
결정적으로 핵탄두 개발이 아직 완료되지 않아서 이 시점의 일본은 몰락 작전이 진행되면서 막장을 향해 가는 도중이었다. 때문에 대다수의 재한일본인들이 대한민국에 남았고,[4] 심지어 조선 주둔 일본군의 경우는 상당수 장병들이 혈서까지 써서 새로 창설되는 대한민국 국방군에 들어간다.[5]
한반도를 무혈 접수하면서 큰 희생을 줄이게 된 미군은 이우에게 경제 및 정치적인 지원을 하였고, 주인공이 있는 독일쪽에서도 본격적으로 군사장비를 원조해주고, 군사고문도 진성독일군인 오토 슈코르체니에 그 후임도 페르디난트 쇠르너라서, 국군은 상당히 독빠스럽게 변해간다.[6]
하지만 임정이나 광복군이 들러리가 되는 건 실제 역사와 그리 다르지 않으며, 이승만이 정치적으로 영향력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정치적인 욕심을 감추지 않은 이우는 한국의 대총통으로 집권한다. 재집권도 문제 없었다지만[7] 실제 역사상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포지션이다.[8] 현실에서도 독립투사나 혁명영웅이 장기집권 독재자로 변질된 경우는 굉장히 많다. 게다가 작중의 이우는 광복군 시기부터 이범석과 같이 행동했는데, 이범석은 독립투사이며 파시스트이기도 했다.[9]
주인공과 이우 때문에 소설 속의 한국은 분단국가는 아니지만, 어느 면에서는 분단국가보다 못한 막장국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경제기술대국이긴 하지만, 아프거나 집안에 일이 생기면 일단 군복무를 중지하고 귀가시켰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남은 복무기간 동안 재입대해야 하며, 묘사로는 보조업무에 투입시키지만 뷰티풀 군바리처럼 여성징병제도 시행 중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대한제국의 황제[10]으로서는 훌륭한 명군이었지만 대한민국의 대총통으로서는 낙제인 인물로 볼 수 있다.
3.2. 외전
한국사 외전 부분에서는 거의 이우와 그 아들 이종[11]이 반은 주인공.본편에서 간단히 언급했듯이 독일의 지원을 받은 이우가, 미국의 몰락 작전으로 일본이 멸망해가는 사이에 한국을 자기 휘하의 병력으로[12] 해방시키고[13] 그 인기를 몰아 대한민국 초대 대총통 선거에 당선되어[14] 집권한 후 현실 세계의 이승만+박정희+전두환+리콴유+블라디미르 푸틴+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되어 한국을 1947년부터 1987년[15]까지 40년간 철권통치한다.[16]
이 과정에서 재한일본인들을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삼아 중용하는데, 특히 군부와 학술 교육계[17]에 일본인 장교와 학자들이 많이 잔류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제국의 군국주의 문화가 한국에 계속 뿌리박는다. 단지 '충성의 대상'이 '일본 덴노'에서 '이우 대총통'으로 바뀐 것뿐이다. 패전한 일본 입장에서는 일본인들이 덴노 헤이카 반자이가 아닌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는 어이가 빠지는 상황이다. 귀화한 어떤 일본인들은[18] 대동아공영권의 진정한 실현을 위해 대한민국과 이우에 충성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나 위안부 피해자 등 일제의 피해자들이 원역사보다 더 나은 삶과 좋은 대우를 받으며 사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의 여파로 한국 독립 직후 70만명 수준이었던 '일본계 한국인'은 1965년 베트남 전쟁 시기에는 140만까지 늘어났다. 인구 통계에 잡히지 않았던 조선 주둔 일본군 전역자 다수가 한국에 정주하고, 중국 대륙에서 탈출한 이들과 일본 본토에서 전후에 이주한 이들까지 포함된 결과다. 사족으로 '주인공'이 '바뀐 역사'로 '돌아온 시점'에서 정부가 내놓은 한국의 인구 통계는 대략 1억. '한국인'이 9400만, 화교 300만, 일본계 250만, 러시아계 50만이라 한다.[19]
게다가 김일성이 이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20]을 빌미로 공안통치를 벌인다.
해방 후 만주 지역의 상황은 좀 복잡하다. 대한방위군이 일본군 소탕을 위해 미군과 함께 만주에 출병, 1년여에 걸쳐 잔적 소탕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중국은 국공내전이 일어나고, 미국은 불개입을 천명하고 일본군 잔당을 추적하는 동안 만주 전체가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 영역이 된다. 그리고 그 후원을 받는 김일성은 좌익계열세력을 귀합하여[2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선포하며 간도[22]에 자리를 잡는다.[23] 결국 테러를 일삼는 김일성을 잡는다는 핑계로, 간도까지 점령하였다고[24] 설명한다.[25] 새로 편입한 지방은 발해도로 명명. 한국 정부는 중국이 발해도가 한국 영토임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고는 중국과의 어떠한 관계 개선도 없다는 입장이다.[26]
이우는 실제 역사의 사사오입 개헌과 비슷한 일을 벌이고,[27] 베트남 파병[28]의 철수를 위한 반전 시위에서 경찰의 발포 여파로 여론이 돌아서며 총선에서 참패를 하여 국회와 대립하게되는 등 혼란스러워지자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폐쇄, 개헌을 일궈내 10월 유신과 비슷한 정권이 된다.[29]
이후 실제 역사의 5.18 민주화운동이 이 세계에서는 1980년 평양시에서 일어나며, 1000명이 넘는 시민 희생자가 발생한다.[30] 그 여파로 4.19 혁명, 6월 항쟁처럼 민주항쟁이 일어나 이우는 퇴임하지만 대총통 권력은 리콴유-리셴룽 부자처럼 이우의 차남[31] 이종이 부총통을 거쳐[32] 국민투표에 의해[33] 권력을 승계, 다음 총통이 되어 2017년까지 30년[34], 도합 70년을 통치한다.[35]
이 과정에서 대총통 선거권은 군복무를 무사히 마친[36]/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학교[37] 및 사회생활을 성실히 한 사람[38]에게만 주어지도록 법과 교육제도와 교육과정에 손을 썼으니, 야당이 선거에서 이긴다는 거 자체가 꿈이다.
이우 본인은 퇴임 후 1991년 노환으로 사망했고, 이후 2012년 이종의 장남 이헌이 부통령으로 임명되며 '제2차 이씨 왕조'[작중표현]가 이어진다.[40]
결국 한국은 일본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의 대한민국+일본 포지션을 잡아 핵무기도[41] 보유하고[42] 대중국 포위망의 맹주가 되어 잘 나가지만 국민들의 정치적 자유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커다란 싱가포르 같은 전체주의 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다만, 이세계의 동아시아 국가 중에는 한국이 가장 사정이 낫다.[43]
4. 숨은 흑막?
숨었다란 표현이 의아하지만 광복군에 들어온 이후 활동상황을 생각하면 이미 권력을 잡기 위한 행동들이 본편과 외전에서 여럿 나타난다.한반도로 먼저 전개하여 여기에서 광복군 및 미군 병사와 부사관을 대체할 인력을 관동군을 격파하고 얻어낼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이미 OSS에서 추진된 넵코프로젝트에 참여한 한국인 중 유일한 박사의 유한양행을 통해 더 쉽게 한반도 장악이 가능하고 미군 수뇌부한테 백인 병사와 부사관 피해를 우려하는 여론을 대체하기 위해 유색인종으로 대체함과 그 부족분을 한국인으로 메우는 걸 제시. 일본 열도 절멸이란 희대의 독소전 상호 학살을 동북아에서 재현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가 최소한으로 피해를 줄이려는 의도도 있지만 통제 못 할 군사적 경험을 가진 세력들의 등장을 바라지 않는 이우의 정치적 행위가 드러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다가 김영옥 대위에게 한반도 신생 정부 참여를 권유하지만 자기는 미국인이라 가족의 모국을 돕는 건 생각하지만 국적을 바꾸면서 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이우는 그 '가교'를 부탁하는 것이 아닌 '그런가'로 말을 마친 점에서 미국의 민주주의와 결별하겠다는 의도도 드러난다고 해석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4지대에서 수하로 있던 공산주의 세력을 비호하는 인식이 만주 진격 이전까지 나오지만 그 사이에 독일군 고문들이 이우한테 공산세력이 한 유럽에서의 이중적 행위를 이우한테 안 말했을까란 의문에서 한번 제대로 공산세력의 자폭으로 만주를 장악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통제하기 쉬운 한반도와 그 이북 일부만을 장악하고는 반세기가 넘는 군사적 대치로 권력을 쥐겠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거기에 베트남 전쟁 파병에서 베트남을 아예 친한국가 혹은 안남도로 만들 기회가 분명히 있었다. 이용상의 후손들인데 호치민이 위기에 처했던 토지개혁 실패와 결부한다면 한국은 미국이 알래스카와 NOTO를 얻듯, 중국을 양면에서 견제할 지역을 획득하여 범동아시아 반공방파제라는 이득을 더욱 취할 수 있었고, 다양한 월남산 농수산물을 얻을 기회도 많았다. 단순히 파견한 것은 자본 및 군 장교들 다양한 전투 경험, 20대 남성의 온전한 상태 불능을 바랜 의도적인 상황이란 설명도 가능하다.
[1] 이 때 작전의 효율성을 위해서 당시 기갑 교육부대인 공주령학교를 지휘하던 홍사익과 접촉하기도 한다. 이 때 이우가 '관동군의 방역급수부(731부대의 대외 명칭)를 공격할 예정'이라고 말하자 '고작해야 전염병을 예방하고 식수를 공급하는 곳인데 왜 굳이 공격합니까?'라고 말하며 의아해한다. 홍사익과 같은 고위 장교조차 731 부대의 실체를 몰랐다는 설정인데, 실제로도 731 부대의 정체는 일본군 내에서도 극비 중의 극비였다.[2] 독일계 미국인[3] 이 때 깨알같이 리처드 윈터스, 데이비드 웹스터 등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나와서 매우 익숙한 이름의 제101공수사단의 부대원들이 등장한다. 역사가 바뀌면서 101사단이 태평양 전선에 투입된 모양이다.[4] 현실에서도 36년이란 세월이 지나면서 일본 본토가 더 낯선 재한일본인도 많았기에, 떠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다.[5] 현실에서도 38선 이남의 조선 주둔 일본군은 미군에 항복하기 전까지 자신들이 가진 위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문서 참고.[6] 작중 대한민국의 시점에서 보면, 자기들도 양면전쟁으로 골치아픈 상황이었는데도 아무것도 없었던 암울한 광복군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어준 유일한 열강인 독일이야말로 진정한 혈맹일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극도의 친독 국가가 될 것이며, 한국 국방군 또한 당연히 진성 독빠가 될 것이다.[7] 이우는 부정선거를 하지 않았음에도 직선제로 치러진 선거에서 각각 95%, 85%, 79%라는 상당히 높은 득표율을 얻어 당선되었다.[8] 다만 이우 본인은 권력세습을 제외하면 측근들이나 친족들에게 특혜를 주기는커녕 감사원을 동원해 부패사범과 관료들을 때려잡고 감시하는 등 현실의 독재자들과는 달리 부정부패를 전혀 벌이지 않았다.[9] 실제 역사의 이우는 평소 나폴레옹을 동경했다고 하며, 포병 병과로 지원한 것도 나폴레옹을 의식해서였을 수 있다고 큰아들 이청 역시 회고한 바 있다. 역사상 나폴레옹의 행적을 생각해 보면, 원 역사에서의 이우도 해방 후까지 살아남아 기회가 되었다면 정치적 야심을 발휘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10] 독일과 미국의 지원이 있었지만, 그 지원을 토대로 오토 슈코르체니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거나 한국을 독립시키고 아시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만든 건 분명한 이우의 능력이다.[11] 원역사에서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여 브라운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 중 1966년 12월 25일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12] 다만, 조선총독부와 조선군(조선주둔일본군)사령관에게 항복을 받아낼 때, 임시정부의 이름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일본 왕공족에 일본군 대좌라고 명시되어 있었다고 이승만이 언급.[13] 여기선 광복절이 6월 29일.[14] 이우는 사실 대총통 선거에 출마하지도 않았고 출마할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바란 게 대한제국을 복구하는 거였지, 대한민국의 대총통이 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우가 가만히 있는데도 그 지지자들(온갖 잡다한 패들이 다 들어가 있으며, 이우는 이들에 대해 그저 자길 내세워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할 뿐인 자들은 궤짝으로 줘도 필요없다고 평한다)이 뒷공작을 벌였다. 유력한 후보였던 여운형은 선거 직전에 암살당한 상황에, 이승만은 미국에 아부만 했지 독립에 기여한 게 있냐, 김구 선생은 너무 완고하다, 박헌영은 그동안 그놈들이 한 짓이 있는데(굴라그, 대숙청, 우크라이나 대기근, 카틴 학살 등등이 있다.) 빨갱이를 뽑을 거냐....라며 의원들 표를 모으고, 거부 지주들에겐 이우는 젊어서 정치에 관심도 없는데다 잘 모르니 다루기 쉽다, 자기가 일본군 대좌에 황족 대우 받았는데 설마 다른 사람들한테 친일했다고 야박하게 굴겠냐....라며 설득했다.[15] 새로운 대총통 선거는 1987년에 이루어졌으므로 실질적으로 42년인데, 이우가 권력을 내려놓은 것은 1985년이었다.[16] 그런데 이 세계의 한국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이우는 왕족에다 일본 황태자를 사로잡아 한국을 독립시켰으며 경제적으로 최빈국이었던 한국을 아시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만들었으니 이 세계의 한국인들에게는 신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이다. 김구나 이승만이 남북 통일에 한강의 기적까지 이뤘다고 생각해보자. 어찌 보면 명목상이어도 민주정이 된 것만 해도 다행일지도...[17] 학계는 나름 비정치적인 분야라고 해서 일본인들이 쫓겨나지 않았는데, 이게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18] 군인들은 물론 교수들도 포함.[19]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 부분이 서술될 때, 주인공의 눈에 띄인 신문기사 제목이 '아직도 메워지지 않은 민족감정'이다.[20] 보통 조공으로 약칭하며, 이 세계에서는 알 카에다나 다에시 수준의 테러단체로 전락.[21] 실제 역사에서 좌익 계열인 조선독립동맹의 당군(黨軍)인 조선의용군이 북한군으로 흡수되었다. 조선의용대 문서 참고.[22] 간도 문서에 보면, '보통 우리가 말하는 간도는 두만강 북쪽 지역의 동간도를 의미한다.'라고 설명하며,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가 대충 맞아 떨어진다 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이 개념과 비슷하게 설정한 듯하다.[23] 간도가 북한의 영토로 귀속되는 것이 논의된 적이 있다는 주장이 있긴 하다. '간도' 문서의 3.5.1. 북한과 간도 문단 참고.[24] 그래도 둔화 지역은 남아서 조공의 근거지로 남아, 이후 줄기차게 싸우게 되었다.[25] 외전에서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될 때의 설명. 이전 이우 문서에는 '연변' 지방을 병합했다고 표현되어 있었다.[26] 영토란 바뀌기 마련이며, 그 땅을 지배할 명분과 능력이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이우의 시각에서 서술된다.[27] 이미 3번째 연임중인데, 아직 남은 임기에 대한 재신임을 받고, 이후 대총통 임기를 12년으로 늘이는 개헌안이 사사오입 개헌과 동일한 논리로 가결된다. 야당이 자유당이라는 게 아이러니한 부분.[28] 이쪽의 베트남 전쟁도 발발 원인은 같다. 다만 비시 프랑스와 자유 프랑스의 대립이 더 길고 격렬하게 진행되었기에, 대프랑스 투쟁은 훨씬 쉽게 끝났다.[29] 직선제 폐지. 10월 유신의 통일주체국민회의처럼 민족대회의에서 대총통 선출.[30] 그러나 이것은 이우의 의사가 아닌 평양시 내무부장관이 그의 눈에 들기 위해 독단적으로 전투경찰 여단 병력을 동원해 벌인 짓이었다. 평양의 전화선이 모두 끊겼기에 서울에서는 사건 이후 며칠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으며, 시민들이 격노한 이우는 내무부장관과 여단장을 공개총살시킨다.[31] 장남 이청은 미국에서 지내며 일부러 권력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32] 10월 유신과 비슷한 개헌 이후에 임명한다.[33] 공교롭게도 여기서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사건이 발생되어 결국 선거에 승리.[34] 3선 개헌과 비슷한 개헌을 한다. 다만 연임에 대한 제한 해제. 결국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선거에 의한 연임 가능.[35] 정확히 말하자면 이우는 1947년 처음 6년 임기의 대총통에 당선되어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하여 3선을 했고, 집권 3기 4년차에 임기를 12년으로 늘려서 재선을 했으니 1987년까지 정확히 40년간 집권했다. 이종은 1987년 대선에서 처음으로 승리한 뒤 6년 중임제로 하여금 5선, 즉 2017년까지 30년간 집권했다.[36] 주인공 시점의 서술에 의하면, 징병검사에서 신체 및 정신감정을 받아 1등급이면 현역 징병, 2등급이면 자원입대 가능, 3등급이면 의경 지원이 가능하다. 모두 군복무로 인정해준다.[37] 의무적으로 가입 및 활동을 해야하는 대한소년단, 대한청년단이라는 학생조직에서는 단체활동을 통해 국가주의 의식과 복종심을 주입하며, 의무교육 12년동안 국가가 빚은 틀에 맞춰져간다 고 한다. 적은 돈이지만(과자값 정도라고 표현된다....) 수당도 나오는 데다 우수자는 표창장도 받고 성적에도 반영된다고 한다. 이게 본격화된 건 '이종'이 실권을 쥐기 시작한 70년대부터. '이우'는 국민의 충성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서 이런 작업을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38] 작중 서술에 의하면, 일정 기간 이상 공공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한 자에게도 주어진다. 앞서 서술한 학생조직활동으로 봉사도 포함. 그러니까 어지간해서는 선거권이 주어진다. 다만 그 과정이 서술했듯 세뇌에 가까운 국가주의.[작중표현] 사회는 점차 권위주의적인 분위기가 되어갔고, 명군이 선정(善政)을 베풀고 있으니 정권교체 따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라는 주인공의 판단으로 작중에 표현된다. 현실의 북한의 김씨왕조 3대 세습과 비교하며 주인공이 한탄한다.[40] 우상화된 국가에 대한, 국가 원수에 대한 충성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라는 주인공의 판단이 서술된다.[41] 완전 자력 개발은 아니고, 슈코르체니가 이우의 특사 자격으로 독일의 실권자 하이드리히와 비밀 회담을 하여 독일의 지원을 받게 되어 실물 핵탄두로 20kt급 20발, 1Mt급 5발(총 25발)을 제공받고 아예 제조기술까지 이전받아 70년대부터 핵보유국이 된다. 물론 이후에 1년에 20발(!) 수준의 자력 양산 능력을 갖춘다. 최종적으로 300발 보유 목표라고 특급기밀이라면서 이우가 이종에게 이야기.[42] 현실의 이스라엘이 유지 중인 Neither Confirm Nor Deny, (국제적으로)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정책 - 전략적 모호함을 취하고 있다.[43] 일본은 몰락 작전으로 완전히 망해 베트남 수준의 국력만 겨우 유지 중이며 중국과 러시아는 원래 세계 7, 80년대 수준에 원래 세계서도 막장인 북한은 ISIS 같은 테러단체 수준으로 몰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