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7 17:06:55

옥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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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옥소리
Ok So-ri
파일:/pds/200902/18/23/a0113023_499be1981459a.jpg
본명 옥보경 (Ok Bo-kyung)
출생 1968년 12월 24일 ([age(1968-12-23)]세)
부산직할시 동구 초량동
(現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본관 의령 옥씨 (宜寧 玉氏)
신체 164cm, 45kg[1], B형[2]
가족 아들, 딸 2명
학력 동일중앙초등학교 (졸업)
경원중학교 (졸업)
서초고등학교 (졸업)
종교 가톨릭 (세례명: 가브리엘라)
데뷔 1987년 태평양 CF

1. 개요2. 활동3. 출연작
3.1. 드라마3.2. 영화
4. 수상 후보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박철과의 이혼 및 간통죄 소송
5.1.1. 무산된 연예계 복귀5.1.2. 이후 근황
6.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ncache.ilbe.com/a4cd2af88a0ae7c985e9220db894ef9d.jpg

대한민국의 前 배우.

2. 활동

파일:옥소리 리즈2.jpg
파일:옥소리 리즈3.jpg
전성기

1987년태평양 화장품 광고를 통해 데뷔했고, 이후 배우로 활동했다.

90년대 활동 당시 옥소리는 아름다운 외모로 유명했다. 1980년대의 대표 미인이었던 선배 여배우 황신혜 조차 옥소리를 보고 "내가 유일하게 미모를 인정하는 여배우"라고 했을 정도. 덕분에 옥소리는 화장품 브랜드 아모레의 메인 모델이었고 옥소리(사운드 카드) 광고에도 출연했다.[3]

영화배우로 활동할 당시 옥소리는 심혜진, 배종옥, 고 최진실 등과 함께 미래가 기대되는 여배우 4명 중 1명으로 꼽혔었다. 그 중에서 특히, 옥소리와 고 최진실은 서로 단짝이었다.[4] 실제로 최진실은 옥소리가 출연한 영화 구로아리랑을 보고 배우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데뷔작이자 첫 주연을 맡은 영화 구로아리랑에서 옥소리는 구로공단 여공 역을 맡았는데 신인 배우치고는 괜찮은 연기력을 보여줬다. 상대역은 이경영이었으며 최민식, 신은경이 영화의 조연으로 출연했다. 구로아리랑은 최민식이 가장 아끼는 영화 3편 중 1편으로 알려져있다.

두번째로 주연을 맡은 작품 비오는 날 수채화강석현, 이경영, 방은희 등이 함께 출연했고 독립영화사에서 제작한 영화였다. 해당 영화를 통해 옥소리의 청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외모가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주목을 받아 옥소리를 보기위해 수 많은 남성팬들이 극장을 찾은 결과 비오는 날 수채화는 단관개봉시절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7만명을 동원하는 큰 히트를 기록했다. 다만, 데뷔작과 달리 옥소리의 연기력이 부족하고, 발음이 부자연스럽다는 지적 또한 있었다. 그러나 배역 자체가 청순한 여대생 역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어색한 연기가 캐릭터와 잘 어울렸다.

세번째 주연 작품은 대종상 작품상 수상작인 고 곽지균 감독의 젊은날의 초상으로 정보석, 이혜숙, 배종옥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했다. 부잣집딸 여대생 혜연 역을 맡았는데 여주인공 3명 중 처음 등장하며 실질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이었다. 전작처럼 연기력 논란도 없었으며 오히려 제29회 대종상과 제11회 청룡영화상에서 공동주연배우인 배종옥과 함께 여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기까지 했다. 다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옥소리의 영화 필모그래피를 보면 출연한 영화들의 감독들이 박종원, 곽재용, 곽지균 등 훗날 명감독으로 평가받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옥소리는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있던 여배우였다.

1992년부터 옥소리는 활동 무대를 TV 드라마로 옮겼고 사랑을 위하여, 영웅일기, 옥이 이모 등에 출연하여 나름 인기있는 여배우로서 활동을 지속했다. 1996년에는 카루나를 통해 영화계로 복귀하여 비구니 역을 맡아 긴 머리카락을 눈물과 함께 삭발하는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1996년 12월, 드라마 영웅일기(1994년)에 함께 출연한 동료 연기자 박철결혼하였다.

옥소리는 1998년 2월 25일부터 3월 19일까지 총 8부작으로 방영되었던 SBS 드라마 옛 사랑의 그림자 출연을 마지막으로 연예계 활동을 접었고 1999년, 박철과의 사이에서 딸 1명을 낳았다. 두 사람은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별다른 구설이나 소문이 없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연예계의 대표적인 원앙 부부로 알려져 있었다.

심지어 파경을 맞기 1년전이자 결혼 10주년 때인 2006년에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 리마인드 웨딩까지 하였고 옥소리는 2007년 4월 30일부터 인기 라디오 DJ로 활약하던 박철의 영향을 받아서 SBS 러브FM에서 라디오 방송 《11시 옥소리입니다》를 진행하기도 했다.#

3. 출연작

3.1. 드라마

종합편성채널, 케이블PP(tvN, ENA 등.)[5], OTT(넷플릭스, 디즈니+ 등.)[6] 등 지상파 외 드라마는 한번도 출연한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출연할 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3.2. 영화

4. 수상 후보

  • 1991년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 후보 - 젊은날의 초상
  • 1991년 대종상 여우조연상 후보 - 젊은날의 초상
  • 1992년 KBS 연기대상 여자인기상 수상 - 사랑을 위하여
  • 1993년 KBS 연기대상 여자우수상 후보 - 사랑을 위하여

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박철과의 이혼 및 간통죄 소송

그러다가 갑자기 2007년 10월 9일, 두 사람이 이혼소송 중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박철이 옥소리의 간통 사실을 알고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 원앙 부부로 알려져 있던 두 사람이 실제로는 서로 말도 없이 산 쇼윈도 부부였다는 기사들이 나왔다.# 당시 이런 저런 소문이 퍼졌는데 옥소리의 간통이 있었으며, 그 상대에 대한 세간의 이야기가 많이 돌았는데, 이때 주로 언급되는 인물이 팝페라 가수이자 박철의 후배인 정세훈, 그리고 한국 특급호텔에서 셰프로 지내던 이탈리아인 요리사 G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졌다.

2007년 10월 28일, 옥소리가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 박철이 옥소리에게 이혼소송을 제기한 것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스스로 정세훈의 간통 사실을 밝히면서 G와의 관계는 부인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다.[8]

게다가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은 것은 박철의 탓이 크다며, 박철이 자신 몰래 사채까지 써서 빚이 생겼고 이를 알게 된 후 박철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그가 이혼을 단호하게 거절하며 자신에게 "차라리 다른 남자랑 만나라"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옥소리는 "11년간 잠자리 10번. 박철은 100명의 술집여자와 잠자리했다."는 발언까지 했다.

이런 옥소리의 행동이 상식적이지 않은것은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간통 사실을 밝힌것이다. 간통죄 문서를 봐도 알 수 있지만, 간통죄의 입증은 상당히 어렵다. 더구나 이후 위헌소송을 하기는 했지만, 현행법상으로 위법인 행동을 했다고 스스로 밝혔으니 이건 자수나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해서 박철은 옥소리가 정씨는 물론이고 G와도 간통을 했다고 하면서 그 증거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옥소리를 형사고소했고, 결국 2008년 1월 옥소리가 기소되었다. 이후 이혼소송은 간통소송으로 발전했다.

간통죄는 합헌, 위헌 논란이 거셌기에 옥소리는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한정 위헌을 포함하여 헌법재판소 재판관 5명이 위헌 의견을 냈지만 2/3인 6명에 미달되어 합헌 결정이 나면서 결국 정식재판이 진행되었다. 이 재판과정도 당대에 엄청나게 유명했는데, 피고인 옥소리와 정세훈의 주장이 대립하는 부분이 있고, 옥소리의 20년지기 친구 김모씨[9]는 박철 측 증인으로, 박철의 로드 매니저는 옥소리 측 증인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 실제로 박철이 룸살롱에서 잦은 술자리를 가지고 과소비를 하는 등 가정에 소홀했다는 것은 인정되었지만 박철도 간통을 했다는 것은 입증되지 않았고[10] 간통을 자백한 옥소리의 책임이 더 큰 것으로 판정되어 딸의 친권과 양육권이 박철에게 넘어갔으며 2019년까지 옥소리가 박철에게 양육비로 매달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게다가 옥소리는 간통죄로 징역 8월과 집행유예 2년, 같이 기소된 정세훈 역시 징역 6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2015년에 간통죄가 위헌 결정이 나면서 마지막 합헌 결정일(옥소리가 청구한 헌법소원의 결정일, 2008년 10월 30일)의 다음날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하였으므로 옥소리 등의 간통죄는 재심 및 형사보상 청구 대상이 된다.

5.1.1. 무산된 연예계 복귀

2011년, 옥소리는 요리사 G와 재혼해 자식들(1남 1녀)을 낳고 대만에서 거주하다가 2014년경, 대한민국 연예계 복귀를 시도했다. 옥소리는 2014년 3월 12일SBS 한밤의 TV연예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며 복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또한, 뉴시스 3월 20일 방송[11]tvN 현장토크쇼 TAXI에도 출연해 복귀를 시도했다.

연예계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자 3월 20일 밤에 방송된 JTBC 썰전 예능심판자에 출연한 허지웅은 이에 대해 강한 어조로 네티즌들을 비판하였다.
실질적으로 법적으로 절차가 끝난 타인의 가정사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면서 거기에 평가질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오만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면 되는 거 아닙니까. 민주공화국에서. (중략) 셀럽들의 사생활에 반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인용되는 대중들의 실체에 대해서 전부 유리멘탈에 엄청나게 완고한 도덕주의자에 자기는 요만큼의 흠결도 없었던 인생을 살았던 대단한 인간들같아요. (중략) 비단 옥소리 씨 뿐만 아니라 셀럽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면 좋겠어요! 한 명도 안 빼놓고. - JTBC <썰전> 허지웅 발언 중. 영상

하지만 당시 옥소리가 방송에서 법적 절차가 모두 끝났다고 주장했던 것과 달리 3월 21일일요신문이 단독으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당시 옥소리의 남편인 이탈리아인 G는 기소중지 중인 상태였다.[12]

결국 SBS 제작진과 tvN 제작진은 각각 "기소중지된 사실을 몰랐다. 알았으면 방송을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고, 허지웅은 방송 다음날 그 내용이 완전히 뒤집히는 바람에 오히려 역풍을 맞고 망신만 당했다.

이렇게 복귀가 무산되자 옥소리는 다시 대만으로 돌아갔다.

2015년 간통죄가 위헌 판결로 폐지되었으니 복귀를 못 할 이유도 없지만 여전히 대만에서 조용히 사는 중이다.

5.1.2. 이후 근황

2017년, 결국 G와도 이혼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지인의 말로는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았고 2014년 옥소리가 대한민국 연예계로 복귀하려 했을 때 이미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난 상태였다고 한다. 요리사 G는 대만 현지의 싱글맘인 여성과 재혼했다. 현재 대만에서 양육권 재판 진행 중이다.

그런데 새로운 보도에 따르면 요리사 G는 옥소리와 결혼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보도 이후의 인터뷰에서 옥소리는 결별을 ‘이혼’이 아닌 ‘이별’이라 지칭했고,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이별 통보로는 이혼이 성립되지 않는 점에서 '결혼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높다. 결혼식만 올리고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2018년 10월 13일 한국일보를 통해 요리사 G와의 양육권 전쟁이 마무리되었고 자녀를 두고 벌인 양육권 소송에서 옥소리가 패소했다는 근황이 전해졌다. 옥소리는 항소까지 하며 긴 시간 재판을 진행했지만 최근 1심과 같은 결과를 통보받았다고 한다. #

이후 2024년인 현재까지 그녀에 대해 어떠한 소식도 나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반인으로 조용히 살고 있는 듯 하다.

6. 여담

  • 박철과 결혼하기 전에 옥소리는 원래 동료 연기자 변우민과 연인 사이였다. 두 사람은 1991년 8월 3일 개봉한 영화 하얀 비요일에서 남녀 주인공으로 호흡을 맞췄고 이후 자신들이 연인 사이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연인임을 공표한지 얼마 되지않은 1992년 4월 12일, 변우민이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교통사고 환자와 진단서를 바꿔치기한 것이 들통나는 바람에 경찰에 잡혀 병역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는 사건이 발생했다.[13] 이때 옥소리는 첫 주연 드라마 사랑을 위하여에 캐스팅되는 등 한창 잘 나가던 중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이 한창 연애 중일 때 평소에 깐깐하기로 유명한 변우민의 어머니가 옥소리를 무척 못마땅히 여겨 아들이 옥소리와 사귀는 것을 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결국 이런저런 상황이 맞물려져 옥소리는 변우민과 헤어졌다.


[1] 네이버 프로필 기준.[2] #[3] 이 사운드 카드 이름이 배우를 의식했다는 말도 있으나 (출시와 배우 전성기가 겹친다.), 공식적으로는 언급이 없다.[4] 두 사람은 생년월일이 같다.[5] 물론 활동 할 당시에는 HBSJBS 제일방송 / 드라마넷 등 드라마를 제작하던 케이블PP가 있었으나, 외환위기 이후 자체제작을 멈췄다. 케이블PP의 드라마 제작이 다시 본격화 된건 그녀가 활동을 중단한 이후인 2012년에 나왔던 tvN응답하라 1997이 호평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6] 그녀가 다시 활동 재개를 시도하던 2014년 무렵엔 OTT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고, N스크린이라는 용어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OTT 서비스의 절대강자로 손꼽히는 넷플릭스는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이었다. 넷플릭스가 국내에 서비스를 시작한 건 2016년이며, 넷플릭스가 첫 국내 자체제작 드라마를 선보인건 2019년 킹덤 부터이다.[7] 전 남편인 박철과 함께 출연한 단막극이다.[8] 하지만 이후 국외로 도피한 G와 결혼까지 하고 자식까지 낳은 근황을 보이면서 G에 관해서 옥소리가 한 말은 전부 거짓임을 스스로 인증했다.[9] 옥소리가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이용되다가 증거가 잡혀서 자신도 박철에게 고소당할 처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나중에 밝혔다.[10] 사실 여부를 떠나 원래 간통을 밝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11] 당시 방송시각은 (목요일) 저녁 7시 40분.[12] 여기서 기소중지라는 이야기는, 상단에도 언급된 것처럼 G가 옥소리 간통사건 당시 당사자였는지 아닌지 부분이 법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G는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출국했기 때문에 국내미거주 사유로 검찰수사가 중단되었고 기소중지가 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근거가 전혀 없는 뜬소문이었다면 검찰측에서 기소중지를 요청하지 않고 불기소했을 것이고, 실제로 관계가 없었다면 G가 한국에 와서 수사를 받아서 검찰의 불기소처분을 받아내야 배우자인 옥소리의 상황이 깨끗해진다. 이게 안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딘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13] 당시 변우민은 연예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병역비리 논란으로 인해 사법처리를 받았다. 1992년 6월 2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으며 사건 이후 변우민은 방송사 출연정지 상태였다가 1995년 출연정지가 해제, 같은 해, SBS 드라마 '고백'으로 복귀했다.[14] 김옥빈도 자세히 보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