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8 01:49:30

엘레오노레 막달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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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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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 제국 레오폴트 1세의 제2계후
팔츠노이부르크의 엘레오노레 막달레네
Eleonore Magdalene von Pfalz-Neubur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leonore_of_Pfalz_Neuburg.jpg
<colbgcolor=#ffcc20><colcolor=black> 이름 엘레오노레 막달레네 테레제
(Eleonore Magdalene Therese)
출생 1655년 1월 6일
신성 로마 제국 베르크 공국[1] 뒤셀도르프
사망 1720년 1월 19일 (향년 65세)
신성 로마 제국 오스트리아 대공국 호프부르크
재위 신성 로마 제국 황후
1676년 12월 14일 ~ 1705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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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cc20><colcolor=#000> 배우자 레오폴트 1세 (1676년 결혼 / 1705년 사망)
자녀 요제프 1세, 마리아 엘리자베트, 마리아 안나, 마리아 테레지아, 카를 6세, 마리아 요제파, 마리아 막달레나
아버지 팔츠 선제후 필리프 빌헬름
어머니 헤센다름슈타트의 엘리자베트 아말리
형제 요한 빌헬름, 카를 3세 필리프, 알렉산더 지기스문트, 프란츠 루트비히, 마리 조피, 마리아 안나, 필리프 빌헬름, 도로테아 조피, 헤트비히 엘리자베트
종교 가톨릭 }}}}}}}}}

1. 개요2. 생애
2.1. 유년기2.2. 결혼2.3. 신성 로마 제국의 황후2.4. 말년
3. 가족관계
3.1.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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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성 로마 제국황제 레오폴트 1세의 세번째 황후. 포르투갈의 왕비 마리아 소피아와 스페인의 왕비 마리아 안나의 언니이자, 스페인의 펠리페 5세의 왕비 엘리사베타의 큰이모이다.

팔츠-노이부르크[2]의 엘레오노레 막달레네라고 불리곤 하며 일반적으로 노이부르크의 엘레오노레 막달레네라고 부른다.

2. 생애

2.1. 유년기

1655년 1월 6일에 팔츠노이부르크 궁정백 필리프 빌헬름[3]의 장녀이자 17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신학을 중심으로 하는 경건한 환경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문학과 신학에 정통했으며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특히 신학에 몰입했는데, 신앙심이 매우 깊었던 엘레오노레 막달레네는 활발한 자선 활동으로 유명했다. 엘레오노레 막달레네는 종종 자신의 물건을 빈민에게 주었으며 돈이 생기면 곧바로 기부했다. 그리고 매일 병자들이 있는 곳을 방문해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종교적인 의미로 금식을 하거나 육체적 고행을 하기도 했는데, 이와 함께 매일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점차 우울하고 자기비하적인 성격이 되었다.

2.2. 결혼

1676년 4월 8일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레오폴트 1세의 두번째 황후, 오스트리아의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가 사망했다. 살아남은 자식은 첫번째 아내 마르가리타 테레사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한 명이 전부였던 레오폴트 1세는 후계자 생산을 위해 곧바로 신붓감을 찾았다. 그리고 두 번째 아내를 구할 때 거론되었었던 엘레오노레 막달레네가 낙점되었다.

본래 한미한 신분이었던 필리프 빌헬름[4]의 딸이 황후가 된 것은 팔츠가 오스트리아와 동맹이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선제후 반대파들의 공작으로 엘레오노레 막달레네가 못생기고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아 황후 후보에서 제외되었으나, 레오폴트 1세가 보낸 의사가 그녀가 건강하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초상화로 실제 외모까지 확인한 레오폴트 1세는 두 번째 아내가 사망한 지 딱 반 년이 되는 1676년 10월, 엘레오노레 막달레네와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엘레오노레 막달레네는 수녀가 되길 원했지만 기뻐하는 부모님의 뜻에 순응하기로 했다.

1676년 12월 14일에 파사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엘레오노레 막달레네는 결혼식 3일 전에 레오폴트 1세와 처음 만났는데, 황제를 영접한다는 게 황공해 만나자마자 바로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레오폴트 1세가 그녀를 일으켜 주면서 두 사람은 나쁘지 않은 분위기에서 식을 올리고 1677년 1월 7일에 에 입성했다.

2.3. 신성 로마 제국의 황후

엘레오노레 막달레네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신을 해 레오폴트 1세에게 아들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결혼하고 십여 년이 지난 후에야 임신으로 미뤄진 대관식을 치를 수 있었다. 1679년에 빈에 전염병이 창궐해 황실은 프라하로 피난을 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나면서 다시 피난을 가야 했다. 그리고 국내의 혼란이 잠잠해지기도 전에 오스만 제국침공으로 나라가 더 큰 혼란에 빠졌다. 국내외로 어수선한 가운데 1690년 1월 19일에 이르러서야 엘레오노레 막달레네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후로 대관식을 치를 수 있었다. 대관식을 치를 때에 엘레오노레 막달레네는 열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레오폴트 1세와 엘레오노레 막달레네는 슬하에 10명의 아이를 두었고 이중 5명만이 성인으로 자랐다. 딸들의 이름 앞부분에 모두 '마리아'가 붙는데, 이는 신앙심 깊은 엘레오노레 막달레네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의미에서 붙인 것이다. 이때 이후로 모든 오스트리아 여대공들의 이름 앞에 '마리아'가 붙게 되었다.

그녀는 잘 교육받고 지적인 여성으로서 남편의 비서 일을 수행했고, 황제 부부는 국정을 함께 논했다. 일례로 레오폴트는 아내가 문서들을 개봉하고 읽어주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1705년 5월 5일에 레오폴트 1세가 숨을 거두었다. 몹시 슬퍼하던 엘레오노레 막달레네는 여생을 상복을 입고 지냈다.

2.4. 말년

1711년에 큰아들 요제프 1세가 요절했다. 스페인에 있는 둘째 아들 카를 6세가 돌아오기 전까지 엘레오노레 막달레네는 섭정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카를 6세가 도착하자 은퇴해 종교 활동에 전념했다.

1720년 1월 1일, 한 하녀가 궁정 예배당으로 향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엘레오노레 막달레네를 발견했다. 침대로 옮겨진 엘레오노레 막달레네는 두 며느리의 간호를 받다가 1720년 1월 19일에 6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관은 본인의 뜻에 따라 '가엾은 죄인, 엘레오노레 막달레네 테레제'라고 쓰여진 단촐한 나무 관으로 준비되었다.

3. 가족관계

3.1.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자녀
1남 요제프 1세
(Joseph I)
1678년 7월 26일 1711년 4월 17일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빌헬미네 아말리아

슬하 1남 2녀
1녀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 총독 마리아 엘리자베트
(Maria Elisabeth, Governor of the Austrian Netherlands)
1680년 12월 13일 1741년 8월 26일
2녀 포르투갈의 왕비 마리아 아나
(Maria Anna, Queen of Portugal)
1683년 9월 7일 1754년 8월 14일 주앙 5세
슬하 5남 1녀[5]
3녀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
(Archduchess Maria Theresa)
1684년 8월 22일 1696년 9월 28일
2남 카를 6세
(Karl VI)
1685년 10월 1일 1740년 10월 20일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슬하 3녀[6]
4녀 마리아 요제파 여대공
(Archduchess Maria Josepha)
1687년 3월 6일 1703년 4월 14일
5녀 마리아 막달레나 여대공
(Archduchess Maria Magdalena)
1689년 3월 26일 1743년 5월 1일


[1] 필리프 빌헬름의 즉위 이후 팔츠 선제후국동군연합을 이루었다.[2] 팔츠 비텔스바흐 가문의 방계 가문.[3] 그가 팔츠 선제후가 된것은 1685년이다.[4] 선제후가 무슨 한미한 신분이냐고 반문할 텐데 전임 선제후였던 지메른 분가의 카를 2세가 죽기 전에는 지지리도 가난했다. 팔츠 선제후가 되면서 신분이 급 상승한 셈.[5] 스페인의 왕비 바르바라, 주제 1세, 페드루 3세[6] 마리아 테레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