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병원 始華病院 SHIHWA MEDICAL CENTER | |
<colbgcolor=#ea6175><colcolor=#fff> 국가 | 대한민국 |
분류 | 종합병원 |
개원 | 1998년 4월 |
재단 | 남촌의료재단 |
원장 | 강승일[1] |
주소 | 시흥시 정왕동 군자천로 381 |
홈페이지 | 시화병원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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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촌의료재단에서 운영하는 시화지역[2] 사립 종합병원이다.- 협력병원
2. 역사
부천에 개원의로 있던 흉부외과 전문의 최병철 현 이사장[3]이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동기들과 함께 당시 막 조성되어 지역 의료가 취약하던 시화 지역에 최초의 종합병원을 세운 것이 시초이다.최병철 이사장은 개인의원에서 일반 진료를 보면서도 언젠가 본인의 전공을 살려 수술할 수 있는 큰 병원을 세우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고, 의원이 예상보다 크게 성업하며 개원 3년차에 새 병원 부지를 물색하게 되었다. 인천 계산동과 시화지구를 놓고 고민하였으며, 현실적으로 인천의 땅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아직 개발 중이고 불모지에 가까운 시화로 부지를 결정하였다. 일개 개원의 혼자서 종합병원 개원을 감당하기엔 어려워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동문인 문용식[4]과 이준호[5]와 힘을 모아 개원을 추진하였다.
막상 공사에 돌입하자 여러 문제가 발생했는데, 첫째로 해당 지역이 간척지라 밑으로 파내려가면 갯벌이 드러나기도 하고 조수간만의 영향으로 뻘이 밀려와 토압으로 지지대가 무너지는 등의 어려움이 있어 공사가 수차례 중단되었다. 다행히 시공사에서 여러가지 공법을 강구하여 공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둘째로 공사 중에 맞은편 부지에 비슷한 규모의 병원을 만들겠다는 이들이 나타나 공사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바로 앞에 비슷한 규모의 종합병원을 개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시화병원 측에서 설득을 시도했고, 결국 해당 부지를 매입하는 조건으로 합의했고 이에 이미 모든 자금을 끌어왔던 최병철 이사장 및 동료들은 금융기관 대출을 포함해 추가적으로 자금을 쥐어짜서 부지를 매입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바로 공사가 진행 중이던 1997년 IMF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건축 자재비가 3-4배 정도로 치솟아 시공사에서도 포기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공사를 진행하던 창경종합건설 이제남 대표이사[6]가 시화병원을 마무리 짓기로 마음을 다잡아 공사를 마무리 짓게 되었다. 그러나 그 외에도 IMF의 여파로 CT, MRI 등의 의료장비를 리스하기로 계약했던 삼성GE 측에서 외환위기로 인한 환율 급상승으로 부담이 커지자 위약금을 물면서라도 기존 리스 계약을 파기하려고 하였고, 장비 없이 진료를 볼 순 없기에 최병철 이사장은 천신만고 끝에 당시 벤처 1세대 기업 중 하나였던 (주)메디슨에서 개발한 의료장비를 대신 리스해올 수 있었다. 끝내 1998년 4월 시화병원이 11개 진료과, 33실의 입원실, 그리고 148 병상 규모로 개원하였으며, 당시 전국에 개원을 준비하던 종합병원이 7-8군데 있었으나 결국 IMF의 여파로 시화병원만 끝내 개원에 성공하였다는 얘기가 있었다.
당시 의료법상 산부인과가 종합병원 승격에 필수적이었으나, 시화병원은 개원 당시 산부인과를 갖추지 않아 승격이 불가하였고 결국 1999년 7월 산부인과까지 준비하여 종합병원 승격을 이뤄냈다[7].
병원이 자리를 잡게 되며 2001년 안산시 월피동에 120 병상 규모의 동안산병원을 개원하고 이준호 원장이 독립해나갔으며, 2007년 안산시 단원구에 350 병상 규모의 단원병원을 개원하고 5년간 최병철 이사장이 직접 경영을 맡다가 2013년 문용식 원장에게 경영권을 이양하고 독립시켰다.
3. 진료과목
- 감염내과
- 내분비내과
- 소화기내과
- 신장내과
- 심장혈관내과
- 혈액종양내과
- 호흡기내과
- 부인과
- 소아청소년과
- 정신건강의학과
- 외과
- 신경과
- 신경외과
- 정형외과
- 성형외과
- 재활의학과
- 마취통증의학과
- 심장혈관흉부외과
- 응급의학과
- 직업환경의학과
- 영상의학과
- 병리과
- 진단검사의학과
[1]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성애병원 정형외과 수련.[2] 시흥시와 화성시 중간의 정왕동 지역을 말한다.[3] 본래 흉부외과를 꿈꾸다 현실적인 이유로 안과를 선택해 수련했지만, 수련 중에 심한 폐결핵으로 폐절제 등 집중치료를 받으며 생각을 바꿔 중도포기하고 흉부외과로 다시 수련 받았다고 한다.[4] 당시 서울 상암동에서 서울성모의원을 영업 중이었다.[5] 서울 개봉동에서 이준호내과를 운영 중이었다.[6] 이후 용인서울병원 이사장이 되었다.[7] 다만 산부인과 개원 첫날부터 40대 노산모가 양수색전증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으며, 결국 1년 정도만 운영하다 의료법이 개정된 후 부인과만 남기고 폐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