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4 13:13:52

미얀마-방글라데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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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미얀마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이전2.2. 21세기
2.2.1. 2000년대2.2.2. 2010년대2.2.3. 2020년대
3. 상호 교류, 교통 교류4. 대사관5. 관련문서

1. 개요

미얀마, 방글라데시의 관계에 다한 문서. 방글라데시와 미얀마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로힝야족 문제로 갈등이 존재한다.

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이전

"우리는 정크선을 타고 15일간 항해한 끝에 바라흐나카르[1] 지방에 도착하였다. 이곳 사람들의 입은 흡사 개의 입같이 생겼다. 그들은 미개인으로서 힌두교건 다른 어떠한 종교건 믿지 않으며 해변가에 갈대를 세우고 풀로 이엉을 얹은 집에서 살고 있다. 남자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벌거숭이다. 그러나 간혹 한두 사람은 음경과 고환을 감싼 갈대 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있다. 그들과 함께 벵골이나 자바섬에서 온 일군의 무슬림들이 특정 구역에 살고 있다."

이븐 바투타

오늘날 미얀마는 불교 국가이지만 중세까지만 해도 불교는 북부 내륙 지방을 중심으로 유행했고 해안 지방은 매우 낙후되어 따로 항구도시 같은 것이 건설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한국이나 일본과 다르게 전통적으로 미얀마 역사상 도읍들은 깊은 내륙에 위치해 있었다.

근세 벵골 지역은 세계에서 1인당 GDP가 높은 지역이었던 반면# 미얀마는 매우 낙후되고 호전적인 부족들이 거주하던 지역이었고 미얀마 밀림의 부족들은 정기적으로 방글라데시 치타공 지역을 약탈하였다. 미얀마 부족민들의 배타주의로 인해 중국 윈난성-미얀마-방글라데시를 잇는 교역로는 거리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였다.

두 나라들은 영국(대영 제국)의 지배를 받아서 인도 제국의 일부였으며, 벵골인의 일파인 로힝야인들이 미얀마에 정착하기도 했으나 영국으로부터 땅을 받는 등 미얀마인들과의 갈등이 있기도 했으며, 지금도 로힝야 문제로 번졌다. 로힝야족은 자신들의 주장대로 아랍인 무역상들의 후손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얀마 측의 주장대로 불법 이민자들의 후손도 아니다.

근세 아라칸의 왕국들은 벵골 술탄국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는데, 근세 당시에는 갠지스 강 하류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던 반면 아직 미얀마는 매우 낙후된 상황이었고, 아라칸 지역의 불교 왕국에서는 불교를 믿는 왕이 벵골 술탄국에게 조공을 바치고, 무굴 제국의 통치자나 벵골 나와브를 모방하는 일이 많았다. 15세기 아라칸의 므락우 왕국에서는 한 쪽에는 버마 문자, 한 쪽에는 페르시아 문자를 새긴 주화를 주조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물론 아라칸인들은 벵골 술탄국 측에 순순히 조공만 바친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다카치타공을 침공하고 약탈하면서 포로들을 붙잡아오곤 했다. 전근대 열대 밀림지대는 땅을 개간하기 힘든데다가 수인성 질병 등의 이유로 노동력이 항상 부족하였고, 이들에게 있어서 치타공 등에서 잡아온 벵골인 포로들은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이 외에도 상당수의 무슬림 군인이나 기술자들이 아라칸의 불교 왕국에서 용병 혹은 가신으로 봉사하였다.[2]

아라칸인들은 고아(인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포르투갈인들을 끌어들여 벵골 해안지대에서 해적 행위를 벌였다. 무굴 제국의 주요 세입원 중 하나인 동벵골 지역이 계속해서 공격을 받자 무굴 제국의 아우랑제브는 6천여 명의 군대와 288척의 배를 보내 치타공 지역을 다시 점령한 후 군대를 주둔시켰다.

아우랑제브와 황위 계승 전쟁을 벌이다 패배한 샤 슈자가 아라칸으로 피신한 적이 있는데, 망명을 받아주기로 약속한 아라칸 왕국 측에서 갑자기 샤 슈자 가솔들의 재산을 약탈하면서 충돌이 일어났고, 샤 슈자의 가신들은 죽거나 아니면 포로가 되어 아라칸 왕국의 군인이 되었다.

약 1백년 후 1785년 버마의 꼰바웅 왕조므락우를 정복하자 라카인주 지역 주민 중 35,000여 명이 난민이 되어 치타공 지역으로 몰려왔다. 이렇게 피난해온 사람들 중 상당수는 오늘날 방글라데시의 불교를 믿는 산악 소수민족인 줌머족에 편입되었다.

당시 벵골 지역은 플라시 전투 이후 영국 동인도회사가 관할하던 구역이었고, 영국은 버마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꼰바웅 왕조 군대가 다카를 공격하자 영국군은 벵골 세포이를 동원하여 버마의 꼰바웅 왕조를 멸망시키고 자국 식민지에 편입시켰다. 영국군과 벵골 세포이는 미얀마 정글에서 군사작전을 펴는 와중에 모기로 인한 수인성 질병으로 3만여 명이 사망하였다.

두 지역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되었으며 이후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되었을 때 미얀마는 처음으로 방글라데시 독립을 인정했다.
물론 독립 이후 로힝야 문제 뿐 아니라 영토 분쟁도 있는 편인데 방글라데시 남부와 미얀마 서부 사이의 섬들을 두고 영토 분쟁이 있기도 했었기에 갈등이 있는 편이기도 하다.

1996년 미얀마를 탈출하여 방글라데시로 가려는 난민선이 뒤집혀 60명이 사망했다. #

1999년 미얀마 민주화 국제회의에서 카말 호세인 방글라데시 전 외무장관도 미얀마 군부독재를 비판했다. #

2.2. 21세기

2.2.1. 2000년대

2001년 1월 두 나라 간의 국경 문제로 인한 긴장이 고조되었다. #

2.2.2. 2010년대

2015년 5월 17일 미얀마는 로힝야 난민 관련 문제에서 책임을 회피했으며 로힝야가 방글라데시 이주자라며 로힝야인들에게 국적을 부여하지 않았다. #[3]

2017년 1월 아웅산 수치는 방글라데시에 특사를 파견했다. #

2017년 1월 12일 방글라데시는 미얀마에게 로힝야 난민을 데려가라고 언급했으며, 난민 송환 논의가 시작되었다. #, #

2017년 8월 30일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로 피난한 로힝야 난민들이 1만 8천여명이 되었다. #, #

2017년 9월 방글라데시로 도피한 로힝야 난민들이 6만, 12만, 13만, 15만 등으로 늘어났으며 총 21만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 #, #, #

2017년까지만 해도 방글라데시인들과 로힝야인들은 잘 지내려했고 방글라데시는 로힝야 난민들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으나 2019년부터 방글라데시인들은 로힝야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많이 변하기도 했다고 한다. #

2.2.3. 2020년대

2022년 9월. 미얀마에서 발사된 포탄에 방글라데시 국경 지역 난민촌의 로힝야족 7명이 죽거나 다쳤다.#

3. 상호 교류, 교통 교류

다만 두 나라 모두 가난하다보니 무작정 갈등만 할 수 없어서 어느 정도의 교류도 있는 편이다.

양곤 국제공항과 비만 방글라데시 항공의 항공 노선이 이어져 있다.

4. 대사관

다카에 미얀마 대사관이, 양곤에는 방글라데시 대사관이 세워져 있다.

5. 관련문서



[1] al-Barahnakar 미얀마 네그라이스(Negrais) 곶 부근의 아라칸 지방으로 비정됨[2] 이들의 후손들을 바로 캄만(Kaman)족이라 한다.[3] 2012년에도 미얀마는 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에서 불법월경한 민족이라며 국적을 주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