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3 08:03:23

정크선


에 따른 범선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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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러커(Felucca)정크선(J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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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시대에 따른 분류3. 지역에 따른 분류
3.1. 사선3.2. 복선3.3. 광선3.4. 조선
4. 성능
4.1. 항해 성능4.2. 전투함으로서의 성능4.3. 그 외 단점

1. 개요

영어로는 junk ship.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사용되었던 목조 선박을 말하며, 영어권에서는 동아시아계 배를 모두 정크선으로 통칭하는 경우도 있다.

정크선의 어원은 중국 원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랍인 여행가 이븐 바투타의 기록에 원나라에서 가장 큰 배를 진극(眞克), 중간 것을 조(曹), 작은 것을 객극(喀克)이라 나누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중 진극의 중국 발음인 '전커'가 중동을 거쳐 서양으로 전래되면서 정크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혹은 배를 가리키는 중국어 '船(병음:chuán)'이 말레이어를 거쳐 서양인들에게 알려지면서 음운변화를 겪으면서 '정크'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정크선의 기원은 다른 나라의 배들과 마찬가지로 원시시대 독목주(통나무배)에서부터 기원한다. 한때 조지프 니덤은 중국배의 기원을 원시적인 대나무 뗏목에서 찾았고, 중국 배의 격벽구조도 대나무의 마디에서 기원했다고 보았으나 독목주의 발견으로 더 이상 깊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후 역사시대에 접어들면서 청동기 유물의 표면에 그려진 수전도나 극소수의 유물(배 모양 장난감이나 토용 등 부장품)을 기반으로 배의 모습을 추정한다.

명-청대의 정크선은 융극선이다.

종종 역사를 다룬 게임에서 ‘평저선’으로 번역되어나오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평저선과 정크선 번역이 혼재한다. 발번역 게임이나 번역기를 동원한 외국 문헌에서는 쓰레기 배라고 번역되어 웃음을 주기도 한다.[1]

이육사의 시에서도 언급된다.

2. 시대에 따른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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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한시대 삼판선 토우. 용도는 껴묻거리(부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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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프리에서 고증한 중국 한나라 때 수군의 모습. 그림 오른쪽 아래 노꾼들 주위에 나무로 된 방어판을 두른 배는 주가(走舸), 뽀족한 통나무를 얹은 배는 돌모(突冒)라고 부르는 돌격선이다. 중국 고대의 수전에 대해 다룬 병서에는 각 선박들의 기능과 수전 전술을 뭍의 전차 전술의 수상전판으로 보고 있다. 이때의 배들은 통나무배와 완전한 형태의 배의 중간인 준구조선에 속해서 현대의 배들과 생긴게 많이 다르다.

이후 당, 송 시대로 접어들면서 수전의 횟수가 늘고 조선술이 발달하면서 대륙스러운 거대 누각선들과 혁신적인 기술을 도입한 배들이 출현한다.

파일:external/www.uraken.net/13_02.jpg
거대 누각선의 모형. 배 주변의 베개(?)를 끼운 장대같은 것은 근접한 적선을 때려부수는 박간이라는 망치다. 수나라의 '오아'라는 망치 장착 전선이 남조 수군을 격파하는데 공헌했다.

파일:external/www.ebedejong.nl/shaggyback-tangship.jpg
당나라 시기 대형 누각선을 그린 오스프리 그림. 중국쪽 자료 중에는 이걸 은근슬쩍 한대로 올리려는 자료들이 있다.(...)

파일:external/www.ebedejong.nl/shaggyback-sungship.jpg
송나라 때 전선을 그린 오스프리 그림. 인력으로 움직이는 수차를 장착한 외륜선(왼쪽 위)과 몽동(몽충蒙衝)이 보인다. 페달식 외륜이 달리기도 했다.(오리배)

파일:external/en.academic.ru/Radpaddelsch.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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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의 차륜식 배 그림과 이를 고증해 그린 오스프리의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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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시기 삼판선을 그린 당시의 그림.

그러나 이런 대형선들이나 인력식 차륜선들은 안전성이 떨어져 대부분 해안 근처나 넓은 강에서 주로 쓰였고, 바다에서는 높이가 낮고 원양항해에 적합한 배들이 쓰였다.[2] 고려도경 34권 해도(海道) 객주(客舟)에도 중국의 사신선인 신주(神舟)와 객주(客舟)를 기록하면서 서긍이 자국인 선원의 증언을 기록한 것에 따르면 '뱃사공들은 교옥(㢗屋, 배 위에 설치하는 누각)이 높아지는 것을 극히 두려워하는데, 그것이 바람을 저항하여 전대로 있는 것의 편리함만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나온다. 참고로 객주의 교옥의 높이는 1장(丈, 약 3미터). 결정적으로 이 없어서 역풍에는 취약하고 순풍의 힘은 받지 못하는 구조였다.

또한 근세로 들면서 연안이나 강에서도 점차로 대형 누각선 종류는 쇠퇴하고, 비교적 작고 안정적/실용적인 삼판선(三板船)이 중심을 차지한다. 삼판선은 우리나라에 거룻배에 해당하는 갑판조차 없는 경우도 있는 단순하고 실용적인 배로, 홍콩의 유명한 수상가옥도 이 삼판선이다.

근현대에 들어서 서양식 배의 도입으로 중국 내에서도 전통 정크선은 점차 사라졌으나, 홍콩의 수상가옥이나 관광지의 유람선으로 현대화된 정크선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현대화된 정크선들은 서양식 선체구조를 절충하거나 받아들이기도 하며, 서양식 선체구조를 받아들인 정크선들을 영미권에서는 별도로 '로차(Lorcha)'라 부르기도 한다. 영문 위키백과에 따르면 1550년 마카오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OLLECTIE_TROPENMUSEUM_De_Chinese_zeilschepen_Yonken_Sin_Tong_Heng_%28links%29_en_Tek_Hwa_Seng_bij_Poeloe_Samboe_TMnr_10010680.jpg
로차(오른쪽)의 모습. 왼쪽은 보통 정크선. 우리나라의 한선이나 일본의 화선도 근현대시기에는 이렇게 변한 게 많다.

파일:external/image.shutterstock.com/stock-photo-chinese-junk-boat-416686.jpg
현대의 정크선형 유람선.

이와는 별개로 정크선식 돛만을 받아들인 정크 스쿠너(Junk Schooner)선도 있는데, 말레이시아에서는 지금도 쓰인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The_Naga_Pelangi_under_full_canvas.jpg
정크 돛을 달고 항해하는 모습.

3. 지역에 따른 분류

지역에 따라 분류할 때는 4가지로 나누는 게 일반적이다. 이때는 중국 북부의 사선(沙船), 푸젠성 지역의 복선(福船), 광둥성 지역의 광선(廣船), 저쟝성 근방의 조선(鳥船)으로 나뉜다.

파일:external/conf.ncku.edu.tw/image020.jpg
대표적인 중국의 해양선박들.

3.1. 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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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의 내부 구조. 편용골(배 밑바닥 가운데의 다른 바닥재보다 굵고 큰 부품)과 대랍(선체 좌우의 곡선을 이루고 있는 것), 격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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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을 그린 그림. 배 양옆의 날개같이 생긴 피수판이 보인다. 피수판 밑에 약간 볼록하게 튀어나온 선체 부분은 당송 시대부터 나타나는 대랍이다.

사선은 상대적으로 수심이 얕고 모래톱이 발달한 북부지역에서 많이 쓰였기에 바닥이 평평하고 용골도 보통 배와는 달리 납작한 편용골이다. 때문에 한선처럼 방향을 돌리기 좋고 수심이 얕은 데서도 뱃바닥이 걸릴 염려가 없다. 주로 연안 항해용으로 쓰이지만 동남아 지역에서도 사선과 관련된 벽화유물이 발견되어 원양항해도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사선에는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일종의 파도막이인 대랍과 안전성을 높여주는 피수판을 설치한다. 사선은 한선과 유사하지만,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당송 시기부터이다.

임진왜란기 조선에 파병되기도 했는데, 항해성은 좋지만 전투력이 떨어지는 설계라 명군은 판옥선을 빌려탔다고 한다.

3.2. 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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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파일:external/jsnews.jschina.com.cn/W020101021645467753075.jpg
복선의 단면

복선은 중국 푸젠성 지역에서 사용하던 유형의 정크선이다. 뱃머리에 그려진 똘망똘망한 눈이 특징으로, 항해시 돛만을 사용한다. 선체의 단면을 보면 선수는 첨저형이며, 선체 중간은 U자형으로 첨저원형의 곡선을 이룬다. 중국의 전통 선박인 정크선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인 형태의 배이며, 흔히 정크선이라 하면 나오는 배들은 대부분 이 복선이다. 정화의 대보선도 현재는 복선이라고 보고 있다.(신웬어우 저, 허일/김성준 역 '정화의 배와 항해'참조). 복선은 원양 항해시 적합하도록 활수창(活水艙, 부력창)이라는 독특한 밸러스트 탱크를 갖고 있다. 이 활수창은 선수나 선미에 위치하며, 만재흘수선 아래에 이와 연결된 구멍이 있다. 선수/선미가 수면 아래로 내려가면 작은 구멍으로 서서히 물이 들어오고, 수면 위로 올라갈 때는 서서히 물이 빠져나가 큰 파도가 칠 때도 배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복선 중 큰 것은 대(大)복선이라 하고, 초선(哨船), 동선(冬船)이라는 종류도 있으나 기본 구조는 같다.
  • 대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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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모형. 모형임에도 정말 크고 아름답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도 대형 복선류로 해당 선박 계열이 재현되어 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이런 기존의 대복선의 복원이 지나치게 부풀려진 거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3.3. 광선

광선은 구멍이 뚫린 개공타라는 특이한 키를 가지고 있다. 이런 형태의 키는 물의 저항을 줄여 조종이 쉬우면서도 키의 성능은 그대로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 또한 흘수가 크고 선체의 굴곡이 적고 길며, 선수가 뾰족하고 돛의 테두리를 철사로 튼튼하게 꿰어 항해력이 특히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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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공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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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선을 그린 그림. 배 앞부분의 젓가락같은 것은 삽판(揷板)으로, 수직으로 움직이며 배를 조종하는 데 쓰인다.

3.4.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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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복선이나 광선과 비슷하나 30미터 안팎의 길이의 노와 쌍돛을 단 규모의 쾌속선으로, 선수를 특히 좁게 만든다. 해남선(海南船)이라고도 한다.

4. 성능

4.1. 항해 성능

정크선의 항해 성능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화의 원양 항해로, 해당 항목의 내용처럼 정화함대가 아프리카까지 갔었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다.

또한 1847~1848년 정크선인 기영(耆英)호는 미국 뉴욕과 영국까지 세계일주에 성공하여 정크선의 원양 항해능력을 확실히 입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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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도착한 기영호를 다룬 당시 기사.

이러한 정크선의 항해능력은 기술적인 선진성에 기반을 둔 것으로, 유선형의 선체와 배를 지지하고 내수성을 키워주는 수밀격벽 구조, 가로활대를 넣어 역풍항해도 가능하게 만든 돛과 발달된 선미 고정식 수직타에 기인한 것이다.

수밀격벽 구조는 당송 시대부터 완전히 대중화되며(김재근의 설을 따름), 사고시 배에 물이 들어오는 것을 어느 정도 제한하는 한편 선체를 지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서양의 경우 용골과 늑골을 사용해 배를 지지했으며 18세기 말에 들어서야 수밀격벽이 채택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중국 원나라의 무역선인 신안 무역선에서는 배 밑바닥 용골 위에 수안(水眼)이라는 개폐 가능한 배수통로가 설치된 것도 선박 인양 결과 확인되었다.

중국의 선미 수직타는 2세기부터 등장하며, 서양은 12세기 코그선에 초보적인 수준의 선미 고정타가 등장하기 전에는 선미 양쪽에 노에 가까운 큰 키 두 개를 걸쳐놓는 측타(side rudder) 방식을 사용하였다.

한선들도 썼던 중국의 가로활대 돛은 원래 인도네시아 군도 지역의 토착 조선업자들이 기원전에 개발한 것으로, 활대를 넣어 조종이 쉽고 역풍항해가 가능하며, 똑같이 역풍항해가 가능한 아랍식 삼각돛(라틴세일)이 순풍시에는 일반 사각돛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것과 달리 순풍시에도 효율이 좋다. 그러나 돛 자체가 무겁다보니 약한 바람이 불면 성능이 낮아지며, 때문에 동양에서도 일반 사각돛이 같이 사용되었다.

즉 능파성이나 항행성 등에서는 충분히 효율적이었다. 또한 수십개의 돛들을 하나하나 조정해야 하는 유럽식에 비해 돛이 극도로 적어 소수 인력으로 운용할 수 있고, 다루는 난이도도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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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돛(junk rig)의 구조를 나타낸 그림.

4.2. 전투함으로서의 성능

전통 정크선은 의외로 싸움배로서의 성능은 여러 가지로 못 미더웠다. 물론 엄청난 위용의 고대/중세의 대형 누각선들이나 인력식 차륜선은 확실히 대단했지만 원양에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비단 중국 누각선뿐 만 아니라 서양 전열함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대항해시대 당시 각국의 실질적인 주력 싸움배는 죄다 프리깃함이었다. 인력 차륜선의 경우 사람의 힘으로 차륜을 움직이다보니 거친 바다에서는 안정성이 떨어지는데다 풍랑을 견뎌내야 했기 때문에 인건비가 많이 들었고, 이는 노와 돛에 비해 그다지 나을 게 없었다. 서양에서는 이미 고대 로마 시대부터 말이나 소로 수차를 돌리는 마력선이 개발되었고, 같은 원리의 배가 미국에서도 쓰인 적이 있지만, 기술적 한계는 여전해서 강에서나 좀 쓰이는 정도였다. 사실 항해성, 운용비 등을 맞추지 못하고 닥치고 덩치를 키우면 보기에 좋지 상시적으로 굴리기에 어려운 건 동서고금 공통이다.

또 원양에서도 활동하기 좋은 싸움배들은 비슷한 시기 한국이나 일본의 싸움배에 비해 특별히 좋다고는 볼 수 없었다. 삼국사기에도 고구려나 신라 수군이 중국 수군에 그렇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3] 오랫동안 북방 민족들의 남하를 저지하는 데 한몫했던 송나라 수군을 보자면 송나라의 베트남 침공 당시에 발렸다(...)[4] 이들은 오랜 기간 원나라를 저지했지만 남송 멸망 이후 그대로 흡수되어 원 수군으로 편입되었으나 일본 정벌 때 태풍에 휘말려 거의 전부 박살났다.(다만 쿠빌라이 칸이 무리하게 들들 볶아대서 급하게 찍어냈음은 고려해야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고려배를 탄 쪽은 반 이상 생환했다. 아니, 그 전에 고려 침공 때 고려의 피난민들이 모여있던 섬 지역을 공략하려다 삼별초에게 걸려 깨지고, 심지어는 피난민들이 섬과 자신들의 배에 간이 투석기를 설치하고 '좋아 한번 붙자!'식으로 나오니 쫄아서 싸움 한번 안해보고 튀기까지 했다.(...)(정진술 저, '한국해양사 고대편', 투석기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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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프리에서 고증한 원 수군. 훨씬 열악한 수준의 베트남 수군에게 발리고 있다.(...) 다만 저 그림에서 베트남 전함의 고증이 잘못되었는데, 목선 선체의 제작방식 문서에 나오듯 베트남의 소형선은 '투엔 난'이라 불리는 바구니 모양이고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중인 베트남 목선도 외형이 전혀 다르다.[5] 이 전투는 바익당 강 전투를 묘사한 것으로, 베트남군이 조차가 큰 강 하구 바닥에 말뚝을 박아 원 함대를 고정표적으로 만들어버린 상황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말뚝에 안 걸릴 정도로 작은 소형 보트를 타고 나와 멍청히 서 있는 원나라 함대를 격파한 것. 자세히 보면 물 위쪽으로 무언가가 삐죽삐죽 튀어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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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와 명 정규 수군의 대결을 그린 왜구도권(倭寇圖券). 왼쪽이 명군. 구분이 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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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당시 명군이 사용한 전투용 사선. 괜히 진린판옥선을 받고 싱글벙글한 게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명나라 이후 명청시대의 중국은 해금령을 내리며 아예 해양선박 쪽의 발전이 지체되었다. 또한 화포 시대에 들어서자 선박들은 기존의 항해성 외에 새로운 능력을 요구받았는데, 첫째로 화포를 쏴야 하며 둘째로 포탄을 맞아야 했다. 그러나 명청시대 이후론 별다른 발전이 없던 정크선은 설계단계부터 이를 고려하지 않아서 대포를 쏘니 배가 뒤집히고, 포탄 몇 발 맞으니 박살나고 등 참사가 벌어지는데, 유럽선과 맞선 비유럽선들이 자주 보인 모습이다. 결국 정크선은 선체 자체가 본격적인 함포전을 대비하지 못한 비서구권 함선의 전형 중 하나가 되었다.

일찍부터 강력한 화포로 무장한 고려 수군 및 조선 수군, 날렵한 선체를 사용한 고속함을 운영한 일본 수군, 포르투갈 카락선들도 애먹이던 종(Djong)을 민수용이건 군용이건 기본으로 굴려대던[6] 인도네시아 군도 세력들, 3~4급[7] 전열함 수준의 싸움배인 대효선(大效船)을 뽑아내던 베트남 수군에 비하면 동시대 중국 원양수군의 실적은 그야말로 초라한 수준이었으며, 이후 청대에도 딱히 괄목할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항해시대 찍던 유럽하고는 뭐 비교불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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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 당시 터져가는 청나라 전투선들. 당시 영국의 무장 상선과의 전투 후 남은 중국 배가 29척 중 달랑 3척이었는데, 영국 배가 물러갔다고 승전보로 기록되었다고. 흠좀무. 당시 영국 기록을 보면 '석회가루를 뿌렸다' 라는데, 생석회 가루가 안구나 땀흘린 피부에 닿으면 고열을 내니 유효한 전술이긴 했다... 사거리 수백m짜리 함포전 시대란 걸 빼면. 전술교리 자체가 수십미터 거리에서 활 쏘다가 붙어서 칼질하던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전투함으로서의 발전상은 고대 및 중세의 경우 강이나 연근해에서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으나 원양에서는 처참했고 근세로 가면 많이 뒤떨어졌다는 평가가 타당할 것이다.

물론 이는 중국이 해양 문화보다는 대륙 문화 중심인 것도 있었고, 민간 무역상/해적/화교들의 활동은 상당했다. 특히 중국의 유명한 여해적으로 치 카이(정일수)가 있다. 본래 매춘부였으나 유명한 해적두목 칭위와 결혼한 이후 칭위가 중국 조정에 의해 독살되자 당황하는 부하들을 모아 복수를 외치며 중국 역사상 최대의 해적세력이 되었다. 치카이는 5만이 넘는 부하들과 1,000여 척이 넘는 배를 몰고 다니며 남중국해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면서 불패를 자랑했으며, 결국 치 카이 때문에 남중국해에서 정상적인 무역이 불가능해지자 영국/포르투갈/중국이 3국 연합함대를 구성해야 했을 정도였다. 이에 치 카이는 중국에 무장을 해제하고 항복하는 대신 그동안 확보한 재물을 그대로 가진 채로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고 평화롭게 해산하였고, 이후 30년 간 남은 재산과 도박장 운영으로 편안하게 살다 편하게 죽었다. 다만 이 때 해적들이나 무역상들이 사용된 배도 본문에 나오는 일반적인 근세의 복선/광선/조선이었으며, 특별히 발전하거나 개량된 건 아니었다.

4.3. 그 외 단점

정크선은 만드는 방법이 상당히 복잡하였다. 정크선은 배를 만들 때 쇠갤리선과 비슷한 촉이음 방식으로 선체에 하나하나 작은 홈을 파 여기어 촉을 꽂아서 선체부품을 잇는 식으로 만들어 배를 만드는 데 공력이 많이 소모되었으며(목선 선체의 제작방식 문서 참조), 여기에 비교적 얇은 선체 위에 바다벌레의 침입을 막는 나무판을 얇게 덧붙이는 갑선(甲船)식으로 만들어 충격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조선시대 중국의 배를 도입하려다 포기한 이유가 바로 이 내구력 문제였다. 조운선 문서 참조.

또한 내부구조를 유지하는 격벽 역시 수밀성을 부여한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기술적 한계상 수밀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정크선의 수밀격벽이 정말 제대로 된 수밀능력을 가졌을지에 대해 부정적인 주장도 있다. 상식적으로도 당시 선박은 동서를 막론하고 나무를 짜맞추어 배를 만든 뒤 나무 사이에 생기는 미세한 틈에다 타르를 칠하거나 기름에 반죽인 석회(유회)나 기름먹인 나무껍질/천/ 등을 끼워넣어 물을 막는 식으로 만들었기에 그 한계는 안 봐도 뻔하다. 또 격벽을 설치하는 재료인 나무와 제작/설치시간을 너무 많이 먹었다. 때문에 원 간섭기 원나라는 일본 침공 당시 실패원인 중 하나로 중국의 배가 내구력이 약하다는 접을 꼽으면서 고려에서 배를 만들면 승산이 있다고 보았을 정도. 당시 중국에서 배를 급조한 것도 한 이유로 보지만, 같은 조건에서 만들어진 고려 한선의 생존률과 중국 정크선의 생존률 차이, 그리고 원 수군으로 송나라 수군뿐만 아니라 용병으로 고용된 중국 해적들도 많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1] junk가 영어로 쓰레기나 고물을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2] 이는 초기형 증기선들도 마찬가지로, 첫 수십년은 잔잔한 강에서 굴렸지 바다에서는 범선이 현역이었다.[3] 다만 백강 전투 같이 수천여척의 대규모 일본-백제 선단을 상대로 당 수군이 대승을 거둔 사례도 있긴 하다.[4] 다만 이쪽은 양쪽 모두 대승을 거두고 있다고 적고 있어서 무조건 송 수군이 발렸다고 하기에는 뭣한 면이 있다. 송월희녕전쟁 참고.[5] 위 그림은 같은 책의 캄보디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의 소형선 그림을 돌려썼다.[6] 당시 포르투갈 출신 약사인 토메 피레스의 기록에 따르면, 명나라의 중국인들은 종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 국가들의 해군을 상대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이들이 광저우에 직접 정박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종은 정크선 하나의 20배는 될 정도로 큰데다 함포로 무장하고 있어서, 수틀리면 한 척과 그 안에 승선한 병력만으로도 광저우 항구를 쑥밭 만드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다른 포르투갈인인 페르난두 피레스 드 안드라데의 기록도 이들 함선들이 만만찮음을 보여준다. 그는 드막 술탄국의 파티 우누스가 이끄는 함대가 1513년에 믈라카를 포위공격했을 때 종군했는데, 그들을 포위한 드막 함대는 30척의 종을 주력으로 약 100척이 몰려왔다고 한다. 이들 종들은 크기에서 포르투갈 카락선에 거의 밀리지 않는 300~600톤 크기였고, 그 중에서도 사령관 파티 우누스의 기함은 카락선의 거의 네다섯 배는 되는 사이즈였다고. 심지어 이들은 역청과 석회, 기름을 섞은 라피스란 도료를 피복재로 발라 놨기 때문에 포르투갈 함대가 쏜 대포 몇 방을 맞아도 끄덕도 안 했다. 그중에는 흘수선에 맞은 포탄도 있었는데, 전혀 피해를 주지 못했다. 나중에 보니 복합장갑처럼 세 겹의 외피를 갖추고 그 사이마다 크루세이도 금화 지름만한 두께로 라피스를 발라 놔서, 가장 강한 포탄도 외벽 두 겹을 벗겨내는 정도였을 뿐이지 관통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다만 이들은 주로 지역 봉쇄에 투입된 전열함같은 존재들이었기에, 이후 포르투갈은 화력을 강화하고 기동성을 살려 종을 상대했다. 이 성능에 감명받은 포르투갈 해군 제독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는 60명의 자바 목수를 고용해서 인도로 보내 선박을 수리하려고도 시도했다. 다만 이 계획은 고용된 목수들이 선상 반란을 일으켜 도망치는 바람에 이뤄지지 못했다.[7] 함포 16문 ~ 60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