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12:14:38

삼식잠항수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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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ruYu-1945.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IJA_Yu1-1943.jpg
三式潜航輸送艇
[1]

1. 개요2. 개발 배경3. 개발 과정4. 성능5. 실전6. 여담7. 미디어에서의 등장

1. 개요

삼식잠항수송정은 일본 제국 육군의 잠수정으로 통칭 마루유라고 불린다.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의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로 육군 소속 잠수정이라는 특종선 병형과 함께 세계 역사상 유례 없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2]

통상형인 유1형과 개량형인 유2형이 계획되었고, 유1형의 경우 유1급/유100급/유200급/유300급 4종류로 나뉘어져 대전 중 총 38대가 제작되었다. 유2형은 우시오라는 이름을 달고 시작함인 1번함이 건조중이었으나, 결국 완성되지 못하고 종전을 맞이했다.

2. 개발 배경

이런 기형적인 잠수함이 탄생하게된 배경에는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이 있다. 전쟁 당시 일본군은 미군의 공격에 수많은 수송선들을 잃었다. 분명히 해군에서는 미 해군 함대를 격멸시켰다 말했지만 수송선의 피해는 계속 늘어났고, 보급품 수송을 담당하던 해군에서는 "너희들 때문에 우리 배만 축나잖아? 이런 건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대응했다.[3] 결국 육군 측에서 궁여지책으로 해군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수단을 개발해야 했다. 대책에 골몰하던 일본 육군은 잠수함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물자를 수송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실 이미 태평양 전쟁에 돌입하기 전부터 일본 육군과 해군은 각자 자체적인 수송선단을 꾸리고 있었으며, 서로 상대방의 수송선단을 호위하던 육군 전투기가 격추되거나 해군 호위함이 격침될 때마다 전력 손실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면서 마찰을 빚어왔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육군 소속 수송용 잠수함이라는 기형적인 함선이 탄생할 수 있었다.

3. 개발 과정

설계/제작 단계부터 완전히 극비로 진행했으며, 아군인 해군에조차 비밀로 부쳤다. 독일의 수송용 잠수함[4] 도면을 참고하거나 민간 잠수함 기술자 등의 협력을 받아 개발을 진행해 나갔다. 이후 이 사실이 해군의 귀에도 들어갔고, 설계도를 본 해군 관계자는 안 만드는 게 낫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건조는 주로 육군 기관차 공장에서 이루어졌다. 나중에 해군이 육군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보러 갔더니, 그 당시 해군에서도 활용하지 못했던 모듈식 건조공법[5]을 적용해 해군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잠수함 건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개발과 건조 양면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모습을 보자 이 함선이 진수되거나 또는 침몰하거나 양쪽 모두 해군의 위신에 먹칠을 할 존재였기 때문에 해군 측에서는 마지못해 건조와 승무원의 훈련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6]

사실 원래 해군 자체적으로 잠수 수송선을 건조할 계획을 세우면서 해군 인원이 부족하니 잠수함 운용 인원은 육군에서 해군에 넘겨달라고 요구했지만 육군에서는 자신들의 병력을 해군에 전속시키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것이 자체 건조를 시작하게된 이유 중 하나였다. 때문에 육군이 직접 수송용 잠수정을 건조한다고 하자 해군도 내심 반기는 분위기였다. 다만 육군이 잠수함을 건조하기 위해 해군의 잠수함 건조용 강재를 요구할 수도 있어서 전전긍긍했는데, 해당 자재는 육군이 전차 생산량을 줄여서[7] 자체적으로 조달했기 때문에 이 문제도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개발한 마루유는 4곳의 기업에서 발주를 받아 건조했다. 3곳이 일본 내지의 중공업체였고,[8] 그리고 나머지 1곳이 인천 소재의 조선기계제작소였다. 조선기계제작소에는 유300번대의 건조가 할당되어 유3001번부터 유3010번까지 총 10척 주문이 들어갔고, 그 중 유3003까지 3척이 완성되어 일본으로 조달되었다. 건조 과정에서 많은 양의 자재 수탈이 있었고, 얼마나 악랄하게 수탈했는지 유300번대의 3척이 나머지 자매함들보다 훨씬 좋은 퀄리티로 완성되었다며 노고를 치하받을 정도였다. 심지어 이 중에서 유3001번은 적함으로 오인한 수송함의 충각 공격을 받았음에도 침몰하지 않은 채 버텨냈고, 이후 연습함으로 전용되었다.네이버캐스트 링크[9]

4. 성능

"그거 잠수가 되긴 하냐?"
- 경순양함 '키소'의 승무원.[10]

전장 40m에 배수량 230t, 한 쌍의 1,850마력 디젤엔진과 1,200hp 전기배터리를 장착했고 수상에서 13노트 수중에서 6.5노트로 항해가 가능했고 최대 80m의 잠항심도를 기록하며 10노트로 15,000해리를 항해할 수 있었다. 배수량 230t이면 당시 일본군 해군에서 운용하던 순잠형 잠수함의 약 1/10, 본격 잠수항모I-401에 비하면 거의 1/20 수준이었다. 한국 해군 잠수정과 비교하면 돌고래급상어급의 중간 사이즈 정도된다.

오로지 수송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뢰관이 장착되지 않았고, 4식 37mm 함포 1문과 경기관총 5정이 무장의 전부라 사실상 전투에 대한 대비는 거의 전무했다. 그리고 느린 속도에 잠항이 가능한 거리도 매우 짧은 여러가지로 문제투성이의 물건이었다. 주임무인 수송조차 함체의 크기가 작다보니 설계 시 요구되었던 만족스러운 물자 수송이 불가능했다. 너무 작은 크기는 함내 설비에도 영향을 주어,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어 드럼통요강처럼 썼다고 한다. 당시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일본 해군 잠수함들이 거의 대부분 화변기를 설치한 것과 비교하면 열악했다.

다만 무게중심이 아래에, 부유중심이 위에 있어 절대로 함이 전복 되지 않는 구조였고, 이를 이용해 일반적인 함선으로는 항해가 불가능한 태풍 속을 데굴데굴 굴러가며 항해하여 수송작전을 성공시킨 사례도 있다. 또한 내압갑으로 육군 전차에 사용되는 16mm 장갑을 사용해서 이론상으로는 해군의 몇몇 잠수함보다도 깊이 잠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테스트 심도 100미터까지 달성했지만 간신히 잠수만 한 것으로 유의미한 항해는 불가능했다.

잠항방식의 경우 서서히 전진하며 미끄러지듯이 잠수하는 해군 잠수함과는 달리 수직으로 가라앉는 듯한 모양새였다. 원래 그런 방식으로 잠수하는 민간용 잠수정이 설계 베이스였기 때문이다. 시험항해 현장에서 육군 조작요원들이 처음 조작한 터라 트림 조절을 잘못해서 심하게 흔들렸다고 한다. 그래도 시험항해 때는 해군 잠수함 교관과 해당 잠수정의 원형이 된 민간 잠수정 설계가의 협조를 받았다고 한다.

5. 실전

초반에는 주로 해군의 정규 잠수함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수송작전에 참가했지만, 날이 갈수록 미군의 대잠전력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해군 잠수함의 손실이 늘어나자 해군 측의 눈칫밥이나 먹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결국 잠수함을 이용한 육해군 합동 수송작전은 취소되었다.[11]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나름대로의 메리트(?)를 가지고 있었고, 해군 눈치를 안 보고 육군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는 잠수함이었기에 전장 여기저기에 투입되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였다. 특히 해군 잠수함의 반도 안 되는 크기 덕분에 제공권을 미군에게 장악당한 상태에서도 활발히 수송&장병 구출작전을 펼칠 수 있었고, 위에도 언급한 대로 악천수 속에서도 수송 작전을 성공시키는 등, 일본 육군에게는 행운의 여신 취급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죽어라 수송해봐야 수상함에 비해 워낙 수송량이 적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했던지라 전황에 영향을 크게 주지는 못했다. 마루유 선단이 고생해서 목적지에 도착해 내려놓은 물자라고 해봐야 금방 소비해 버릴 분량이었으니까.

운용기간 동안 수직잠항 때문에 두더지라고 놀림받았다거나,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나뭇가지와 수풀로 위장을 한 채 항해를 했고, 당당히 일장기를 내건 채 미군함의 코앞을 스쳐 지나갔음에도 미군이 오히려 당황해서 공격을 하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하는 등의 특이한 일화가 많았다.

6. 여담

야마토의 마지막 출격 시 마루유급 한 척이 등현례[12]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그걸 본 야마토 승조원들이 답례 경례로 화답하자 이 보잘것 없는 배에 경의를 표해줬다면서 승무원들이 감격해서 울 정도였다. 그러나 직후에 야마토가 일으킨 파도가 마루유를 덮치는 바람에 전부 다 젖어버렸다고 한다.

참고로 이 등현례 때문에 생긴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한 마루유급 정장이 실수로 육군 고관 앞에서 해군식 경례를 해 버리는 바람에 좌천, 그 바람에 다른 동료들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로 영전하러 갈 때 배웅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한다.[13]

태평양 전쟁 말기 마루유를 건조한 유일한 조선 소재 기업인 조선기계제작소는 원래 철도차량, 엔진 등을 주로 만들던 회사였다. 해방 후 정부에 귀속되어 국영기업인 (주)한국기계로 바뀌었고, 1976년 대우그룹이 인수하여 대우중공업이 되었다. 대우그룹 해체 이후에는 두산그룹에 매각되었고, 나중에 현대중공업그룹에 재매각된다. 현재는 HD현대인프라코어의 공장으로 고스란히 쓰이고 있다. 조선기계제작소에서 마루유를 짓던 노무자들이 거주한 조선소 인근 쪽방촌은 오늘날의 행정구역상으로 동구 만석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속칭 '아까사끼(赤崎)촌'이라는 이름으로 2015년까지 남아 있다. 한글 명칭으로는 괭이부리마을로,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되는 바로 그 달동네이다. 재개발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언제 착공이 될 지 기약이 없다.

7. 미디어에서의 등장

함대 컬렉션에서 잠수함 마루유(함대 컬렉션)로 등장. 잠수함이긴 하지만 주로 운개수로 쓰이는 존재.


[1] 건조가 완료된 삼식잠항수송정과 1943년 히다치 제작소에서 건조중인 유I형 유1급 1번함 유1. 왼쪽 끝에 서 있는 일본인 기술자와 비교해 보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다. 갑표적이랑 묘하게 비슷하다.[2] 사실 '육군에 소속된 잠수함'의 사례로는 남북전쟁 당시 남군이 운용한 수동잠수정 헌리함도 있다. 하지만 해당함은 양산 계획 없이 시험용으로 1척만 건조되어 진정한 의미의 군함으로 보기에는 애매하다. 그리고 첫 항해에서 바로 침몰했기 때문에 이렇다할 이력이 없다.[3] 나중에서야 해군에 심은 스파이로부터 해군이 궤멸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4]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 초반에 중립국이었던 미국과의 교역을 위해 2천톤급 잠수 수송선을 3척 건조했었다.[5] 함체를 머리/몸통/꼬리 3파트로 나누어 부분적으로 건조한 뒤 레일로 운반해서 최종 건조장에서 전기용접으로 마무리했다. 오늘날의 모든 잠수정들과 잠수함들이 이런 모듈 방식으로 건조된다. 1:45에 모듈을 이어붙이는 과정이 나온다. 참고로 유보트로 유명한 독일의 경우 전쟁 막바지가 되어서야 이 기술을 적용할 수 있었다.[6] 육군에서 차출된 잠수함 승무원들을 히로시마 잠수함 학교에 입학시켜 훈련을 받도록 했다.[7] 실제로는 전차를 증산해봤자 전력에 유의미하게 도움이 되지 못했고, 생산 페이스 자체가 조달된 자재를 소화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생산과정에서 기계가 아닌 손으로 만드는 비중이 너무 커서 숙련공들이 매우 중요했는데 이미 이런 숙련공들을 죄다 총알받이로 소모한 후였기 때문에 새 노동자들의 숙련도들이 바닥을 쳤고 암만 자재를 조달해 전차 생산을 지시해도 전차의 증산은 지지부진했던 까닭이다. 어차피 전차가 많아봐야 허구한 날 박살나기만 하고 미군 전차를 제대로 잡지도 못하니 아예 전차를 감산하고 남은 여유 자재를 보급선 유지를 위한 수송 잠수함 건조로 돌리는 것은 나름 합리성이 있는 제안이었다.[8] 유1번대는 위의 사진에 나온 대로 히타치 제작소, 유100번대는 일본제강소 히로시마 공장, 유200번대는 안도철공소 츠키시마 공장에 각각 배당되었다.[9] 참고로 조선(造船)학자인 김재근의 저서 '배의 역사'의 후기에 따르면, 이 배의 설계에 참여하면서 조선(造船)의 역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인천에서 생산된 유300번대의 설계에 그의 설계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10] 당시 키소에 타고 있었던 승무원의 이야기에 따르면 조롱 반 걱정 반으로 물어봤다는 듯. 그런데 자료에 따라서는 키소는 그때(1944년 7월 18일) 요코스카에서 입거한 상태였다보니 키소가 아닌 그날 마닐라에서 싱가포르로 출항고 그 다음날 미군 잠수함에게 격침당한 오오이였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11] 사실 육군에서 마루유 만들고 있을 때 해군에서도 수송용 잠수함으로 波101형과 伊361형을 건조하고 있던 상황이었다.[12] 일반적으로 해상 사열시 승무원이 제복을 입고 경례하는 그것. 대함경례와 비슷하다.[13] 팔꿈치를 직각으로 뻗어 경례하는 육군식 경례와 다르게 해군식 경례는 팔꿈치를 몸에 붙이는데, 이는 함선 내부가 좁기 때문에 생긴 관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딱히 육군식 경례와 해군식 경례가 따로 나뉘어있지는 않았다는 설이 유력하기에 신빙성은 낮다. 육군식 경례와 해군식 경례를 구분하는 풍조는 훗날 일본 밀덕들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실제로 그 야마모토 이소로쿠마저 육군식 경례로 알려져 있는 각잡힌 경례를 하는 사진이 굉장히 많이 남아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Yamamoto_last_image_alive.jpg ← 사망 사흘 전 라바울에서 촬영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