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12-21 00:34:31

김창훈(야구)

파일:/image/003/2012/10/11/NISI20121011_0007161791_web_59_20121011203615.jpg
이름 김창훈(金昌勳)
생년월일 1985년 10월 3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대전광역시 서구
출신학교 대전가장초-천안북중-천안북일고
포지션 투수
투타 좌언좌타
프로입단 2004년 한화 이글스 1차 지명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4~2009)
두산 베어스 (2010~2014)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한화 이글스 시절2.3. 두산 베어스 시절
3.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한화 이글스, 두산 베어스 소속의 투수.
임현준과 더불어 몇 안되는 좌완 언더핸드 투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천안북일고 시절 고2 때까지만 하더라도 전도유망한 좌완 투수였으며 정교한 제구력으로 타자들과 승부했다.[1] 고3이 되자 구속이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 이상 징후를 감지한 한화 이글스 스카우트 팀에서는 김창훈 대신 세광고 우완 투수 송창식을 1차 지명으로 찍으려 했으나 여러 이유로 김창훈을 1차 지명하게 된다.[2]

그리고 받은 계약금은 4억 2천만 원으로 북일고 2년 후배 유원상이 2006년 입단하기 전까지 한화 구단 역사상 신인계약금 최고액수였다.[3][4]

2.2. 한화 이글스 시절

입단 첫 해인 2004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31경기 42⅔이닝 3승 2패 2홀드 평균자책점 7.17을 기록하면서 폭망했다.[5] 저 성적인데도 유독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잘 하긴 했다.

2005년 1군 2경기에 등판하고 나서 시망. 이유인 즉슨 140km/h도 못넘는 구속에 안습한 구위를 커버하기 위해 투구폼을 개조했다가 부작용으로 부상을 입게 된 것.

이후 트레이드될 때까지 1군 승격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2008 시즌에 공익복무를 시작했다. 공익복무 도중 모친상을 당하는 등 이래저래 마음고생도 심했다.

2.3. 두산 베어스 시절

공익근무 복무 중이었던 2009년 11월 이대수를 상대로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됐다. 한화 이글스 팬들은 먹튀 가 떠났다는 것에 환호를 했다. 이 때 군 복무 중인 좌완 투수라 해서[6] 윤근영인지 김창훈인지 논란이 있었는데 결국은 김창훈이었다.[7] 이 트레이드는 이대수의 앞길 터 주기라는 트레이드라는 것이 중론. 나중에 한대화 감독이 언급하면서 알려졌다.

2010년 시즌이 끝난 후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지 팔 각도를 낮추며 좌완 언더스로로 전환을 시도하였다. 최적의 투구 폼을 찾기 위해 팔 각도가 사이드암과 언더스로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다.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차근차근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그래도 노경은을 치유한 김커피가 김창훈을 다잡아 주었다고 한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⅓이닝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1이닝 1피안타 1볼넷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18.00,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3경기 1⅓이닝 1피안타 1볼넷 1탈삼진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13.50, 1패를 기록했다.

2011년 8월 14일, 6회 2사 2루에 등판해 좌투수 킬러 이양기를 초구 몸에 맞는 볼로 출루시켰고, 바로 강판되었다. 후속 투수 고창성이 적시타를 허용해 시즌 첫 패를 떠안았다.

2012년 초에는 1군과 2군을 왔다갔다하였다. 6월 2군에서 좌완 불펜으로 활약하며 탈삼진을 조금씩 잡아내는 모습을 보이며 7월 다시 1군으로 콜업되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 플레이오프 4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도합 네 타자를 상대하여 1이닝 1피안타 무실점, 3홀드를 기록하며 제몫을 다했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했다.

이후에는 별 다른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한 채 2014년 7월 24일 박민석, 윤도경과 함께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됐다.

3.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4 한화 31 42⅔ 3 2 0 2 0.600 7.17 52 9 25 22 36 34 1.688
2005 2 2⅔ 0 0 0 0 0.000 13.50 6 2 1 3 6 4 2.250
2006 1군 기록 없음
2007
2008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09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0 두산 9 7⅔ 0 0 0 0 0.000 3.52 4 2 3 8 3 3 0.913
2011 27 12⅔ 0 2 0 2 0.000 6.39 11 2 12 11 9 9 1.658
2012 28 21⅔ 1 1 0 2 0.500 2.08 9 0 14 15 5 5 0.969
2013 3 2⅔ 0 0 0 0 0.000 3.38 4 1 4 3 1 1 2.625
2014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9시즌)
100 90 4 5 0 6 0.444 5.60 86 16 59 62 60 56 1.489


[1] 1년 선배로 마운드에 우완 투수 안영명, 유격수 겸 주장을 맡았던 나주환이 있다.[2] 북일고는 한화그룹이 운영하는 재단 소속 학교이다. 때문에 한화 구단 내에서는 북일고 파벌과 비북일고 파벌이 대립을 세우고 있다는 설이 돌며, 신인선수 지명이나 코치진 채용 부문에서 성적이나 실적에 상관없이 북일고 출신을 우선적으로 뽑는 경향이 있었다.[3] 참고로 현재 한화 구단 역사상 신인계약금 최고액은 바로 2011년 입단한 이 주작범.[4] 김창훈이 입단하기 전에는 대졸 투수 이성갑의 3억 7천만 원이 최고액이었다.관련기사 그러나 프로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사라져 먹튀로 평가받고 있다.[5] 반면, 송창식은 그해 풀타임 선발로 뛰면서 140이닝을 소화하며 8승을 기록함으로써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6] 한국프로야구는 군 복무 중인 선수의 트레이드가 금지되어 있어 추후 발표하는 선수라는 형식을 취했다.[7] 윤근영한화 이글스가 포기할 리가 없었다. 제구는 안 되더라도 빠른 볼은 던졌으니까.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김창훈 문서의 r23 판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