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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알자노 제국 마술학원 · 제국 궁정 마도사단 특무분실 | |
능력 | 전투력 · 마술 · 광대의 세계 | |
가족 | 양부모 세리카 아르포네아 · 친부모 불명 | |
하위 문서 | 특징 · 인간관계(특무분실) · 떡밥 · 어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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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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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글렌이 몸 담고 있던 장소인 만큼, 필연적으로 다른 단원들과는 갈등, 충돌,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2반 학생들 다음으로 가장 방대하고 밀접한 관계다. 특무분실은 임무 지시 때, 종종 2인 1조로 팀을 묶어 수행할 때도 있는데 각자의 궁합을 보고 배치한다. 가령, 알베르트는 근접 전투 위주인 글렌을 보조해 압도적인 초장거리서 빈틈없는 저격을 통해 지원을 넣어줄 수 있는 반면, 중거리 전투 위주인 세라는 바람을 조종해 글렌의 부족한 화력을 보충해주는 식이다.
글렌도 나름 동료애가 있어서 알자노 제국 마술학원에서 강사직을 할 때에는 이 시절을 몇 번 회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정의의 마법사라는 그의 꿈을 지지해주던 세라가 살아 있었고, 각각의 충돌은 잦아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서로를 격려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칫하면 사망하기 일쑤인 엄동혹한의 환경에 모두가 정상적으로 남기란 어려웠다. 알베르트는 철저한 완벽주의자의 성향과 임무에 맹목적인 가치를 두고 있으며, 버나드는 전투만의 쾌감에 중독된 천생의 전투광이고, 그나마 정상인인 크리스토프조차 특무분실에 입대한 기간이 짧은 편이다.
히로인들의 경우, 이쪽 문단 참조 바람. 저티스 로우판의 경우, 특무분실 소속은 아니지만 관계가 깊기에 예외적으로 이 문서에 서술한다.
2. 알베르트 프레이저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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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아니꼽지만 믿음직한 맏형 노릇이다. 평상시에나 시도때도 없이 싸우는 악우지 전투 시만큼은 최고의 듀오다. 사실 악우라곤 해도, 상사인 이브에 비하면 싸우는 일이 그다지 많다고 볼 수는 없다. 감정을 표출하는 일이 적어 겉으로 잘 드러나진 않으나, 글렌을 전우로서 인정하고 있고 행동이 앞서는 글렌을 뒤에서 보조해주고 지지하는 것도 알베르트였다. 그것은 현 시점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군 시절, 분야 가리지 않고 서로 승부를 자주 했는데 그때마다 글렌이 졌다.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일반적인 마술사들은 수련에 기대지 않아 대체로 신체를 단련한 글렌이 우위에 설 수 있지만, 알베르트는 그런 빈틈조차 없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근접전에서도 강하다."라는 알베르트의 말처럼, 체격상으로나 힘과 속도로나 알베르트가 근소하게 우위에 있다. 에테르 괴리증에 걸린 리엘을 두고 벌어진 데스매치에서도 알베르트가 글렌에게 패했던 것은 무심코 리엘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에 마지막 순간, 망설였기 때문이다.
이미 알베르트와 글렌의 관계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도 움직임을 맞출 수 있는 수준이다. 약 4천 미트라 떨어진 자이드 발토스의 지휘봉을 저격할 절호의 찬스임에도 알베르트가 저격하지 않았다. 그러자 지휘봉이 나무에 가려서 저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글렌이 방향을 틀어 자이드가 나무 밖으로 보이도록 유도했다. 조준점을 찾은 알베르트는 4천 미트라 거리에 있는 자이드의 지휘봉을 적확하게 저격하는 것도 모자라, 글렌이 맞지 않도록 궤도를 살짝 비꼈다. 그 옆에서 함께 시각 관찰을 보조하던 시스티나는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지켜본 채 이미 서로 신뢰한다는 수준을 넘어서 이심전심의 영역이라며 경악스러워할 정도였다.
수상할 정도로 임무에 진심인 알베르트의 모습을 보고 가끔 기겁하기도 한다. 분장과 성대모사는 기본에 복장까지 완벽히 구비해서 빈틈없이 잠입하는 알베르트는 글렌이 봐도 딱히 수상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현지인으로 오해하기 쉬울 정도다. 일단 적어도 부끄럽다는 자각은 있는지 글렌이 힘들지 않냐고 반문하면 딱히 반박은 하지 못하고 본론부터 들어간다. 그 경비가 삼엄하다는 알자노 제국 마술학원에조차 문제없이 잠입을 해내는 것은 물론, 학생식당에서 프라이팬으로 점심식사를 조리하는 프로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다.[1] 잡상인, 요리사, 페인트공, 청소부 등, 직업도 참으로 가지각색이다.
저티스 로우판과는 결이 다르지만, 사소한 정의관에 있어서는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자주 충돌을 빚은 이유이기도 했다. 이상주의자인 글렌은 십이면, 십 모두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한없이 모색했지만, 현실주의자인 알베르트는 나머지 십을 모두 구할 수 없으니, 적어도 나머지 하나를 버리고 아홉을 구하겠다는, 절대 서로 타협할 수 없는 정의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는, 글렌은 글렌대로 알베르트의 굳은 신념을 강철의 의지 같다며 속으로 동경을 표했고 알베르트도 글렌의 가치관을 존중하듯 차가운 현실 속에 계속 항거하는 글렌을 눈부시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갈등의 기로에 서게 된 알베르트는 결국 글렌처럼 되진 못했다.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인가, 하는 딜레마는 결국 현실로 다가와 고심 같은 걸 할 여유를 찾을 리 없었다. 결국 알자노 제국의 흉악한 비밀을 깨달은 알베르트는 도대체 진정한 선은 무엇이고, 진정한 악이란 무엇인가? 라는 회의적인 의문에 휩싸여 있었다. 여왕 알리시아 7세를 암살했다는 정보를 흘린 알베르트를 글렌이 잽싸게 추격해왔고 마침내 그와 대치한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글렌은 그를 수차례 주먹으로 설득해 끝내 힘겨운 승리를 쟁취했다. 서로가 가치관의 선봉장을 상징하듯, 알베르트가 글렌에게 유일하게 패배한 이 사건은 훗날 그의 인생관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며 알베르트가 망설이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었다.
세라의 죽음으로 글렌이 군에서 잠적한 이후로, 한 마디 말도 없이 떠난 것에 주먹 한 대로 퉁칠 정도로 대인배의 면모도 있다. 일단 글렌과 나름 가까운 사이였는데도, 소식도 없이 떠난다는 것은 임무 도중 동료들의 사망율을 높이는 정도로밖에 간주되지 않는다. 보충해도 모자랄 판국에 기존 인원에 공백이 생기면 남은 단원들은 위협이 가시화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현실을 부정하고 이상을 추구하는 자와 현실을 직시하는 자의 가치관 대립은 무엇이 더 옳은 것이냐라기보단, 더 합리적인 방법을 위해 어떤 고찰이 선행되어야 할까, 와 같은 생산성 있는 질문이 필요하다. 글렌과 알베르트의 관계는 이러한 끝없는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차츰 진전되는 두 사람의 변화를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상반된 면모가 있는 두 사람이지만, 바크스 브라우몬처럼 갱생의 여지가 없는 절대 악인 경우 극도로 경멸한다는 것도 하나의 공통점이다. 알베르트의 신념은 단지 가능한 상황에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구할 수 있는 사람의 목숨조차 경시한 채, 논리만 주먹구구식으로 설파한다는 것은 당연히 그의 이치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글렌이 루미아를 구하러 가야 해서 자리를 떠난 사이, 대놓고 알베르트는 바크스를 향해 아예 쓰레기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떠난 글렌 대신 알베르트가 그런 버크스를 완전히 끝냄으로서 알베르트의 가치관은 보다 구체화됐다. 오히려 글렌보다도, 그가 바크스에게 걸맞는 응징을 내리기 위해 나섰다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글렌이 마술강사로 자리를 완전히 굳히고 나서는 교사로서 글렌을 신용하고 있다. 무심코 옛 버릇처럼 천사의 가루 사건을 조사하려 한 글렌에게 너는 네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지적한 것은 글렌이 교사로서의 역량이 결코 낮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2] 오히려 알베르트는 이전에도 납치된 루미아를 글렌과 함께 구하러 갈 때, 그가 어떻게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지 지켜보았다. 그리고 건넨 첫 마디는 "흥, 제법 교사다워졌군." 이었다. 결국 글렌이 알베르트에게 졌던 마음의 빚을 털어내고 교사로서 자리잡았던 것은 그의 공도 적잖이 있는 셈이다.
알베르트의 재능을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 글렌 입장에서는 왜 그가 그런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글렌은 순수한 마술 실력으로서는 삼류인 반면, 초일류 혹은 특무분실의 에이스 소리를 자타공인 인정받는 알베르트는 현실에서 절망한 글렌과는 달리, 막강한 힘과 굳은 결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글렌이 간과했던 것은, 단 한 사람의 힘만으로 세상은 그리 쉽게 좌지우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해관계가 그물망처럼 얽히고 설킨 알자노 제국은 물론이요 바로 이웃나라인 레자리아 왕국조차 몇 번의 전쟁을 치르면서 그것은 분명해졌다. 결국 그가 그렇게 좆던 이상이 달콤한 과실 같은 유혹일 수도, 강한 동기부여일 수도 있다.
동요해서 결심이 흔들릴 때마다 알베르트가 글렌을 떠올린 것은 이렇게 막강한 힘을 지닌 그조차 결국 한 명의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후반부에서는 진정한 파트너로서 거듭난 두 사람이 각자 복수귀로서 살 수 있지 않게 됐고, 정의의 마법사에 집착하는 현실도피에서 벗어나 세상에 변혁의 바람을 가져오는, 진정한 의미의 마법사 그 자체를 좆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3. 세라 실바스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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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첫사랑, 그리고 작가가 공언한 「글렌의 숨겨진 가장 강대한 적」이다. 그녀의 죽음으로 서사가 시작되었으니, 그야말로 변마금이라는 작품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인 셈이다. 둔감해서 여성들의 호감을 흘려넘기는 글렌이 유일하게 이성적으로 좋아했으며, 한 번 엄한 현실 앞에서 좌절된 꿈도 글렌을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그녀를 보고서 다시 일으킬 수 있었다. 심지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작품에 끼친 영향력은 가장 막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로인들을 모두 종합해도 세라 한 명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남다른 애절한 관계를 보여주었고, 이 좁디좁은 빈틈에 히로인들이 낄 틈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세라가 글렌을 좋아하는 정도는 그 순애보 찍는 루미아와 필적한다. 그런데도 세라와 달리, 글렌이 루미아의 호감을 깨닫지 못한 이유는 세라는 학생이 아닌 성인이라는 점과 무려 그 세 배가 넘는 시간을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그래봐야 그런 세라도 혼자서 전전긍긍하다 속내를 나중에서야 고백했다는 것은 변함 없었지만 말이다. 그마저 얼떨결에 글렌을 위해 싸우겠다고 본심을 뱉었다가, 나중에는 둔감의 극치를 달리는 글렌이 이미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되고 쑥스러워 입을 다무니, 헐레벌떡 도망친 것이다. 작가는 후일담에 아예 세라가 죽어 있는 지금도, 히로인들의 애매한 입지가 위태로운데, 살아났을 때는 승산조차 없을 것이다. 라고 나중에 못을 박아버렸다.
세라가 글렌의 꿈을 지지해주었듯이, 글렌도 실바스 일족들과 함께 알디아로 돌아가길 소망하던 그녀의 소박한 꿈을 응원하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알디아의 공주라는 신분상, 그리고 레자리아 왕국과의 지정학적 특성을 이유로 꿈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한 것을 넘어 0에 가까웠다. 허나, 동질감을 느낀 글렌이 진지하게 응해주자 세라도 그에게 호감을 품은 것이다. 이러한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는 빠르게 가까워졌고 후일에는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서로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또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글렌의 앞길을 가로막는 역할로 등장해 망가진 현실에 지친 글렌에게 안식처라는 공간을 제공함과 동시에 현실도피를 하도록 의도한 바가 있었다. 세라의 목숨을 앗아갔던 불구대천지수, 저티스 로우판이 사라지기는커녕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 돌아와 시종일관 글렌과 협공한 그의 세 여제자들을 가지고 놀듯 압도했으니 글렌 입장에서는 상황이 가히 절망적이었다. 글렌의 본심을 대강 파악한 저티스는 그를 꿈 속 세계로 빠트려서 세라와 조우하게 해 주었고, 세라는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모처럼 다시 만난 글렌을 꿈 속 자체에 가두려고 했다. 그녀의 의식이 글렌을 억지로 붙들어놓지 않았다면 글렌은 더 쉽게 빠져나왔겠지만, 오히려 그러했기에 글렌은 오랫동안 스스로도 끊임없이 던져왔던 질문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결국에는 앞으로 나아가고픈 글렌을 억지로 붙잡지 못해 보내주었다. 글렌 입장에서는 정말로 지금껏 만난 누구보다도 뼈에 새긴, 강력한 적인 셈이었다.
글렌이 피를 보는 일에 싫증을 느낀 만큼, 세라도 그에 못지 않게 회의감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와중에 꿋꿋이 앞으로 전진하며 분투하는 글렌을 보면서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시기상으로 본다면, 세라는 군에 남기로 먼저 마음을 굳힌 뒤에 글렌이 연심을 자각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그녀만을 위한 정의의 마법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말해, 글렌이 세라를 좋아하기 한참도 전부터 세라는 그를 좋아하고 있었던 셈이다.
글렌을 고향인 알디아에 데려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 말에는 숨겨진 속뜻이 있다. 알디아에서 바람의 전무녀로 태어나는 전사는 결혼을 전제로 허락받기 위해, 배우자가 될 사람을 함께 알디아로 데려와 바람의 신에게 신성한 의식을 치루어야만 하는 원칙이 있었다. 당연히 글렌에게 알디아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 위한 이유도 있을 테지만, 그녀의 글렌에 대한 애정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사실상 프러포즈였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로 세라는 글렌과의 결혼 생활을 꿈꾸기도 했고 말이다.
집행관 현역 시절에 글렌은 살기에 절여져 있던 나머지, 살기의 응집체인 이블 카이즐의 옥약을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그것을 사용해 인간 말종이라는 말도 아까운 쓰레기를 처리했지만 같은 인간을 사살했다는 데 환멸이 난 글렌은 구역질을 하고, 고통에 찬 절규를 질렀는데 세라가 금세 달려와 그런 글렌을 껴안아주었다. 심지어 토사물로 옷이 더러워지는 와중에도! "많은 사람을 구해줬잖아, 전부 글렌 군 덕분이잖아!" 라고 필사적으로 호소하는 세라 덕분에 글렌은 잠시 진정했다. 그 뒤에도 그녀의 도움을 받아 옥약의 제조법을 손에 익히거나, 더러운 기분을 떨쳐내는 등 여러모로 세라에게 의지한 것이 적지 않았다.
사별한 사이라도, 하필이면 글렌이 고백을 다짐한 바로 그 날에 불행하게 목숨을 잃는 바람에 많은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만약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면, 글렌이 그답지 않은 로맨틱한 고백을 해주었을 때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행복해하며 승낙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사실상 후일담 격이 23권, '남원의 알디아 속 꿈 이야기'인데, 세라가 꿈 속에서 멀쩡히 산 채 글렌과 연인 관계로 등장했다. 심지어 약혼까지 마친 예비 부부로! 하지만 절망적인 현실에서 무모하게 도망쳐온 글렌은 세라와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을 내비치며 헤어져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눈물겨운 이별을 할 때, 세라는 "저기, 글렌 군! 언젠가 다시 환생한다면, 그 때는...!" 이라고 처절하게 울면서도 환생을 기약했다.
세라의 죽음 자체가 글렌에게는 자살 직전까지 갔을 정도로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와 한동안 그녀의 무덤 앞에 갈 용기는 내지도 못했다. 그녀가 죽는 광경이 트라우마가 되어 매일 밤 재수없는 악몽을 꿀 때마다 글렌을 덮칠 때도 있었다. 유일하게 자신을 지지해주는 세라를 지켜주지 못했으니, 글렌 입장에서는 삶의 의미를 포기하고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듣지 못했던 유언이 줄곧 생각나, 결정적으로 세라는 과연 무얼 대가로 죽었는지[3] 미궁에 빠져버리는 셈이 되므로, 당시 글렌은 죽지 못해 살던 셈이었다.
변마금이라는 서사는 결국 글렌이 사랑하던 여인인 세라의 죽음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학생들을 도맡는 강사가 된 뒤부터 글렌은 제자들의 꿈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정작 자신의 꿈에 대해서는 제자리걸음만 계속할 뿐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 글렌과 대조적으로, 오롯이 자신만의 정의로서 이상을 실현하려는 저티스가 글렌의 허점을 꿰뚫어보고 남긴 조금은 널 위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말은 작품의 심장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그대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꿈의 형태는 변해도 상관없으니, 그곳까지 계속 걸어갈 수만 있다면 괜찮다는 것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꿈에 대한 기대는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해질지 몰라도, 보다 구체화되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으로 다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전투력이 특출났고, 그중에서도 특히 바람 마술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글렌은 호감과는 별개로 그녀를 특무분실에 득실거리는 괴물 중 하나라고 일고했다. 풍술 실력에 한해서는, 세라 이상의 사람은 전 지구상에서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독보적인 역량인지 알 수 있다. 그녀가 사역하는 바람의 정령은 글렌의 광대의 세계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덕에 글렌과 함께 가장 많이 둘이서 팀을 이루었다. 어찌 보면 급격하게 가까워진 이유도 이러한 배경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겠다.
요리에도 소질이 있어 글렌은 틈만 나면 그녀에게서 식사를 얻어먹는 버릇이 있었다. 특히, 알디아의 향토 음식인 향신료를 아낌없이 넣은 음식에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동년배 친구인 이브와 비교해보면 실력의 차이는 절망적일 정도로 극명하다. 이브가 손수 만든, 한때 요리였던 것을 먹고 복통으로 실려간 적이 있는 글렌은 홍차 농도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이브를 보고 세라의 요리를 거론하며 더럽게 못 탄다고 혹평을 내렸다.
글렌이 세라를 부르는 별명, 하얀 개는 별다른 뜻이 없다. 정말로 개처럼 머리카락이 부들부들하고 머리 한쪽에 꽂힌 깃털 장식이 강아지 귀처럼 생겼기에 그렇게 붙혔나 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세라가 이 별명으로 불리길 싫어해서 글렌 보고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닥달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안 부를 글렌은 아니었다. 나중에 사이가 깊어져서야 별명인 하얀 개 대신 세라라고 본명을 부르기 시작했다.
첩자가 정보를 빼간 렉텀 공국으로 둘이서 신혼부부로 위장했을 무렵, 이때는 더욱 좋아할 대로 좋아진 상태라 아예 이브가 발 벗고 나서서 둘이서만 투입되는 것을 반대했다. 그렇다고 딱히 명분도 없었지만, 단순히 하나밖에 없는 친구를 빼앗길 것 같다고 말이다. 결국에는 반대에 부딪혀 글렌과 세라가 그 역할을 수행했고, 교묘한 주변 상황을 이용해서 글렌이 애정 행각을 하도록 유도하는 세라의 모습이 가히 압권이다.
의외의 기믹은, 세라는 보고서를 썼다 하면 중구난방이 되어 결론을 못 낼 정도로 형편없는 편인 반면, 글렌은 이브 말마따나 정갈하고 정석대로 썼다는 것이다. 귀찮아서 보고서를 작성하기 싫어하는 글렌을 세라가 혼내는 구도인데도, 실력은 오히려 세라 쪽이 뒤떨어진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점이다. 그러나 글렌을 좀처럼 인정하기 꺼렸던 이브는 "차라리 군인 말고, 선생이나 되지 그래?"라고 비꼬았다. 그리고 훗날, 글렌은 이러한 적성을 살려서 정말로 교사가 되었다.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글렌 입장에서는 세라에게 어린애 취급 받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머리를 쓰다듬는 것조차 세라 본인만 즐기고 있지 글렌의 반응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 세라가 스스로를 '누나'라고 지칭하며 가르치려는 듯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한 명의 남자로서 비춰지고 싶은 이유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애당초 정의의 마법사라는 허황된 꿈을 계속 꾸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자신이 보호받고 싶은 게 아니라, 사랑하는 세라를 지키주기 위해서였다.
글렌 입장에서는 세라와 닮은 시스티나와의 연관성을 빼놓을 수 없다. 닿지 못할 꿈에 진심이라는 것, 눈부신 백발과 은발, 글렌을 챙겨주듯 쉬지 않는 잔소리까지. 작중 중반까지도 글렌은 시스티나에게서 세라를 떨쳐내지 못해 줄곧 하얀 고양이라는 별명을 자기암시 삼아 세라와 구분 지으려 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시스티나가 세라의 성격을 다른 결로 계승하면서도 어엿한 한 명의 마술사로서 성장하면서 말끔하게 사라졌다. 딱 하나 닮지 않은 게 있다면, 가슴 밖에 없다. 이 점을 의식해선지, 글렌의 집에서 조금 수위 높은 잡지가 뭉텅이로 쏟아져 나왔을 때는 시스티나가 글렌에게 왕가슴을 좋아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궁지에 몰린 글렌은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없다면 대놓고 좋아하겠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물론 그를 기다리는 것은 철저한 응징이었을 뿐. 공교롭게도, 실제로 글렌이 의식한 인물들은 세리카, 이브, 세라 등 전원 거유가 공식 설정이다.
자칫하면 저승길 건널 뻔한 글렌의 목숨을 무려 두 번이나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다. 첫 번째로, 흡혈귀인 카밀라라는 소녀를 구원해주지 못해, 피를 갈망하는 그녀에게 글렌이 속죄하듯 코앞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마냥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세라는 망설임도 없이 몸을 과감하게 던져 그를 구하고 대신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천사의 가루 테러 사건이 두 번째로, 저티스에게 패배한 글렌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또 다시 천사의 검에 대신 관통당해 글렌을 구하는 대신 본인이 사망했다.
이렇듯 둘도 없는 소중한 관계였으니, 세라를 거론하며 글렌을 자극하는 행위는 글렌 입장에서는 신성불가침 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대표적으로, 저티스는 시스티나를 세라에 빗대 대용품이지 않냐며 조소했는데 순간적으로 글렌 주위의 공기가 싸해지며 표정이 험악하게 돌변했다. 그리고 꺼낸 첫 마디가 페지테 따위 내버려두고 너부터 죽여줄까. 당연히 저티스도 아차 싶었는지 실수라며 얼버무리고는 황급히 말을 주워담았다.
4. 버나드 제스터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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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나이에 알자노 제국 마술학원에 조기입학한 글렌의 재능을 알아본 인물이다. 글렌이 제국 궁정 마도사단에 입대할 수 있었던 것은 버나드가 쓸모없다고 여겨 거르려던 글렌을 눈독 들이고 포섭했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압도적인 역량으로 특무분실에 차출되는 경우가 일반적인 걸 생각해보면, 글렌을 조커의 일종으로 날카롭게 파악했던 버나드의 눈은 결과적으로 탁월했다.
더욱이 글렌에게는 기본적인 마도사로서의 전투 방식과 센스, 그리고 쓸 만한 카드를 어떻게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지 알려준 전투의 스승이다. 후일에 스스로가 학생들의 스승이 된 글렌은 이러한 지식을 완벽하게 익혀서 학생들이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불꽃의 배 사건으로 페지테 전체가 위험에 빠졌을 때 부재 중인 글렌 대신 침착하게 학생들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주고서 전투에 참여하도록 독려한 참된 스승이기도 하다. 도박과 속임수를 가르쳐준 것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글렌이 군에서 잠적하고 무도회에서 다시 재회했을 당시에는 글렌에게 어떠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걸 짐작한 듯, 더 이상 깊이 추궁하지 않았다. 글렌은 처음 버나드를 만났을 때부터 그를 영감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버나드의 나이가 설정집 기준, 60살이니, 글렌과는 사실상 할아버지와 손자 뻘이다.
짓궃은 면이 있어 글렌을 자주 놀리기도 한다. 일례로, 명목상으로는 엄연히 임무인 신혼부부 투입 작전에 글렌과 세라가 투입되자 글렌에게 몰래 한다는 소리로 매일 밤, 원숭이처럼 해대면 그만이라느니 또는 이번 밤이 남자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꼬드겼다. 물론 정작 글렌이 평소 버나드를 바라보는 시선은, 정도가 아주 심한 호색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서 철저하게 무시로 일관했다. 틈만 나면 여기저기 추파를 던지고 다니는 버나드의 또다른 이명은 다름아닌 슈퍼 바람둥이다.
훈련 당시에는 글렌을 무척 혹독하게 굴렸다는 묘사가 있었다. 어떤 지원자가 와도 버티지 못하고 중도포기한 그런 지옥 같은 훈련을 버틴 유일한 인물이 글렌 뿐이었다고 버나드가 직접 인증 마크까지 박았다. 대부분 마술에 편승해 신체 단련을 소홀히 하는 다른 일반적인 마술사들과 달리, 글렌은 쓸 수 있는 마술에 한계가 있어 오히려 틈만 나면 수련을 했던 덕이 컸다. 그러고 보면, 프로 선수 견줄 수준의 복싱도 버나드에게서 배웠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실력은 꽤나 출중해서, 추상일지 9권, '열혈청춘의 권투 대회' 편에서는 글렌이 권투의 유망주와 싸워 이긴 뒤, 우승금을 거머쥐었다.[4]
5. 크리스토프 프라울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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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무난한 관계를 형성해 마찰이 없었다. 크리스토프가 글렌의 군 생활이 거의 끝물에 입대한 탓에 동료로서 활동한 기간이 긴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글렌의 꿈인 정의의 마법사를 세라와 함께 존중해준, 보기 드문 동료였다. 글렌은 크리스토프를 믿음직한 후배라고 생각하고 있고, 크리스토프 역시 글렌의 실력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글렌에 대한 평가는 "글렌 선배는 평소라면 몰라도, 실전에는 강한 사람이니까요."였다.
첫 접점은 무역도시 하노이에서 괴짜 과학자가 하늘의 지혜 연구회와의 연줄로 골렘을 위시로 하여 폭동을 일으킨 것이 계기였다. 당시 크리스토프는 미처 대피하지 못한 채 제국군 사관학교에 입후보생으로 있었는데, 그의 절친이자 제1실 단원 베어도 납치되어 건물에 갇힌 상황이었다. 눈앞에서 수많은 혼란을 목도하고도 크리스토프는 오히려 사명을 꺾지 않고 지원요청을 하러 멀리까지 긴급으로 파견을 나온 도중, 특무분실 단원들과 처음 만났다.
여러 기상천외한 그들의 기교를 보게 된 크리스토프는 처음에는 괴물들만 득실대는 특무분실에서 홀로 덜떨어졌다는 베어의 말을 듣고서 조금이나마 글렌에게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세라와 함께 글렌과 적의 본진으로 난입한 뒤, 그가 고유 마술 광대의 세계를 발동해 마술을 발동하지 못하도록 원천차단해 제압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일류 마술사임에도, 적은 맥을 못 추리고 상처 하나 없는 글렌에게 제압되었다. 크리스토프는 오히려 글렌이야말로 가장 적으로 돌려선 안 될 인물이라고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이러한 일을 계기로, 안면이 있던 두 사람은 빠르게 친해졌는지 나중에는 세라에게 발렌타인 데이 초콜릿을 받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글렌에게 크리스토프가 대놓고 두 사람의 관계를 뒤에서 대놓고 등을 떠밀어줄 정도로 진전됐다. 당연히 글렌의 반응이야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지 몰라 황당할 뿐이었다. 비록 짧긴 했지만 세라는 크리스토프와도 아는 사이였고, 그 일이 군을 탈퇴하고 잠적한 글렌과 관련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천사의 가루를 뒷처리하는 과정에서, 세라 씨의 일은 안타깝게 됐다고 당시 글렌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나중에 다시 알자노 제국 마술학원에서 탈퇴한 글렌과 재회했을 때는 별 말 없이 이해한다고 말하는 등, 글렌보다 어린 나이인데도 너그러운 대인배의 면모도 있다.
예의도 발라 거의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항상 존댓말을 고수한다. 심지어 대치하는 적, 글레이시아 이시즈를 상대로도 존칭을 사용했다. 그러나 딱 한 번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여왕인 알리시아 7세, 즉 크리스토프가 가장 동경하고 추앙하는 인물을 모욕했을 때다. 맹목적으로 떠받드는 것이 일종의 종교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수준인데, 만약 알리시아 7세를 거들먹거리든,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한다면 금세 태도가 돌변해 존댓말 따윈 집어치우고 말투가 험악해진다. 가령, 알리시아의 짓궃은 장난에 말려든 글렌이 루미아와 일주일 간의 동거를 지시받자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었는데, 옆에서 보좌하던 크리스토프는 "아무리 글렌 선배라도 그건 용납 못합니다." 같은 소리를 진지하게 했다(...).
마술에 지나친 기대와 이상을 믿고 왔던 글렌과 달리, 그보다 어린 크리스토프가 일찍이 혹독한 환경에 적응해 문제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그 심지가 가상한 부분이다. 글렌이 사소한 일에서도 사사건건 다른 단원들과 충돌하는 일이 잦았던 반면, 크리스토프는 동료들은 물론 다른 부서에서도 그를 포섭하기 위해 러브콜이 왔을 정도로 장래가 촉망받는 인재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다른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오히려 분위기를 환기해주기도 하는 등 정말로 나이가 열일곱이 맞나 싶을 정도다.
6. 저티스 로우판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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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 너도 이젠 알잖아? 글렌. 너와 난 절대로 섞일 수 없는 불구대천의 적이라는 사실을...
저티스 로우판
불구대천지원수. 이 한 마디로 요약이 가능하다. 처음 특무분실에 글렌이 입대했을 당시만 해도, 그럭저럭 표면적인 사이였지만 엇갈리는 정의관 탓에 사이는 점점 나빠진다. 임무 도중에 충돌을 자주 빚어 싸울 뻔한 적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저티스의 말처럼 영원히 섞이지 못하는 물과 기름인 것이다. 글렌과 티격태격하지만 때로는 서로를 신뢰하는 알베르트는 귀여운 수준이다. 둘 모두 진정한 정의를 실현하는 정의의 마법사가 되려 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공유하지만, 정작 깊이 들어가보면 세부적인 부분부터 완전히 다르다.저티스 로우판
그렇게 시작부터 불안했던 관계는 저티스의 검에 세라가 글렌 대신 희생해 목숨을 잃으면서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글렌은 완전히 저티스를 원수로 낙인찍고는 방심한 그의 목숨을 한 번 앗아갔다. 자존심에 흠집이 난 저티스는 영혼을 반으로 쪼개 살 수 있었지만, 분해하기보다는 도리어 자신의 예상과 계산에서 자꾸만 벗어나고 엇나가는 글렌을 이레귤러의 결정체로서 바라보며 그와의 숙명적인 대결을 꿈꾸어 왔다. 그를 이기는 것은 자신이 아니면 안 되며, 다른 약자들은 글렌의 숭고한 정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모양새다. 따라서 한때는 동료였던 이브가 글렌을 삼류라고 깎아내리자 글렌을 모욕한 걸 후회하게 해주겠다면서 노골적인 살기를 드러내 이브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다.
오히려 저티스는 글렌의 발자취가 어째서 계속 그가 자신하는 수비술을 빗나가는지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 제국이 사악한 악령들을 담기 위한 요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세상의 하나가 운명 공동체로 엮여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다른 마술사였다면 현실에 수긍하고 금세 다른 길을 모색했겠지만, 적어도 글렌은 그러지 않았다. 글렌에 대한 미래를 어떠한 것도 예측할 수 없어진 저티스는 그 후부터 하나의 빅매치를 완성하기 위해 차근차근 갈피를 잡기 시작했다.
글렌과 유난히 자주 엮이는 이유 역시, 한때 글렌과 저스틴이라는 이름의 어린 저티스는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허나, 그 시절의 글렌은 무구한 어둠에 대적하는 정의의 마법사였고, 저스틴은 처음 만나 생소한 그를 따라다니며 자연스레 사제관계로 발전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글렌이 방심한 척 어둠의 핵을 유도해내 모든 마술적 자취들을 제물삼아 그를 쓰러뜨리려는 찰나, 저스틴이 볼모로 붙잡혔다. 인간성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던 글렌은 결국 저스틴을 함께 없애지 못해 무구한 어둠에게 패하게 되었고, 어려진 채 알 수 없는 이세계로 굴러 떨어졌다. 뒤를 따라온 무구한 어둠에게 모든 힘을 쏟아부으며 항전했지만 끝내 패배, 그를 동경한 저스틴은 마지막 남은 인간성이 패배의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현재의 시점으로 건너와 특무분실에 입대했다.
어쨌거나, 저티스 입장에서는 스승을 패배하게 만든 무구한 어둠을 없애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그간 글렌이 펼친 눈부신 활약을 지켜본 뒤에는 조금 선후관계가 뒤바뀌었다. 무구한 어둠보다도 자신의 능력을 능가한 현재의 글렌을 뛰어넘길 원해서 세계가 휘말릴 만한 사건을 벌여 둘만의 무대를 마련했다. 당대 정의의 마법사로 군림하던 글렌과 저티스 앞에 있던 글렌은 동일인물이기에, 그를 무찌르면 그가 정의의 마법사를 뛰어넘게 되는 셈이다. 펠로드 베리프의 수작질로 평행세계로 갔다가 돌아온 뒤부터 이미 저티스는 글렌이 스승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듯, "너는 이제부터 시작이겠지만. 내가 이 자리에 있으니 괜찮아." 라는 발언을 몇 번 내뱉은 바 있다. 결국 사망하기 직전, 남긴 말은 자신이 글렌처럼 되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는 않는 악당이었지만, 그럼에도 지켜본 시스티나와 글렌은 외로워 보인다는 감상을 남겼다.
이러한 부분은 천사의 가루만 있다면, 수를 제한없이 뽑아낼 수 있는 인공 천사들을 통해 잘 나타난다. 글렌은 여태껏 동료들과 함께, 혹은 그들이 등을 지켜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반면, 저티스는 독선적으로만 이루는 정의가 아니면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주의였다. 제한적으로나마 타인과 협력한 사례는 잠깐 있었지만, 결국에 나중에 두 발로 서 있는 것은 저티스였다. 또한, 결과주의와 인간찬가의 면모도 공존해서, 현실에서 도피해 꿈속으로 세계인들을 가두려 한 펠로드 베리프를 궤변이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페지테를 바쳐 무구한 어둠으로부터 세계를 지킬 수 없다면 분기세계를 통째로 갈아넣어 바치면 그만이라고 주장하는 저티스에게 반박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5]
글렌은 구할 수 없는 모든 사람들까지 구하려고 애쓰는 데 반해, 저티스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딱하다기보단, 당연하게 여기는 쪽이다. 더 나아가, 미래의 가능성까지 거의 맞힐 수 있는 한 미래에 장애물이 될 요소조차 철저하게 뿌리를 뽑기까지 한다. 반면, 글렌은 그런 저티스를 비열하고 위선적이라고 느끼며 노골적으로 혐오하는 시선을 보여준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렇게 된 데엔 사정이 복잡하다. 그렇게 간단할 수 있다면, 저티스가 내린, 진정한 선의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글렌이 못 꺼낼 리가 없었다.
사정을 적당히 봐주는 글렌과 대조적으로, 저티스는 악이라면 악, 모두를 철저하게 혐오한다. 특히나, 가장 증오한 것은 하늘의 지혜 연구회로 과거 특무분실 시절의 그에게 회색 열쇠로 꾈 궁리를 하면서 혐오감이 극에 치달았다. 이는 인간은 그 자체로 성장하는 유일무일한 존재이며, 어떤 시련 속에서도 쓰레기통 속 장미처럼 활로를 찾는 인간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마음을 포기하고 유혹하는 어떠한 객체도 떨쳐내는 것이 저티스가 생각하는 인간의 가장 이상적 모습인데, 글렌은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6] 반면, 인간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불완전성도 위의 조건을 어기지만 않는다는 가정 하에, 성장할 수 있는 동기로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요컨대, 글렌은 현실적인 이유로 막히면서도 억척스럽게 이상을 고집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저티스의 정의관은 알베르트와 그 결은 같아도,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알베르트를 온건파에 빗댄다면, 저티스는 과격파에 가깝다. 실제로 저티스를 뒤이어 알자노 제국의 비밀을 알게 된 알베르트가 제국을 배신하기 직전까지 갔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기인한다. 저티스는 알베르트의 그런 내면을 꿰뚫어보듯, 너도 진실을 알면, 나와 같은 편에 서게 될 거라고 이야기했다. 차이점이라면 알베르트는 글렌의 설득이 그나마 통했지만, 저티스는 끝까지 자신만의 정의를 관철하다 마침내 글렌의 정의를 뛰어넘게 되었다. 비록 그 동료들이 합세한, 모두의 정의에게는 패했을지라도, 저티스는 그것만으로도 후련한 듯 소멸했다. 결국에는 본인이 그토록 원하던 목표를 이루고 죽은 셈이다.
말투에서조차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저티스는 대체로 주먹구구식으로 말을 내뱉고, 퍼즐을 끼워맞춰봐라 하는 식으로 상대방의 반응을 즐기는 반면, 글렌은 물불 가리지 않고 오히려 직설적으로 말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마저 있다. 이러다 보니, 글렌도 처음에는 저티스가 하는 말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퍼즐이 완성되며 그의 말이라면 수긍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었다. 그야말로 작가의 말을 대변하는 캐릭터요 작중 인물들 중 최고의 지능을 가졌다고 할 만하다.
이러한 점에서 세라를 바라보는 이유가 각기 다른 것은 특기할 만하다. 글렌이야 세라를 좋아하니 말은 필요 없지만, 저티스만큼은 유독 싫어할 이유가 없는 그녀를 명백하게 마녀라는 멸칭으로까지 불렀다. 이렇듯 저티스의 판단 기준은 세 가지라고 정의할 수 있다. 첫 번째, 글렌처럼 약하지만 한편으로는 신념과 의지가 뛰어날 것. 두 번째는 역량은 뒷받침되지만 그걸 견딜 만한 강인한 정신이 없는 것이고, 세 번째는 역량도 충분하고, 굳은 심지까지 있으면서 고생을 불사하는 것이다. 글렌을 첫 번째로, 세라를 두 번째로, 알베르트를 세 번째로 보면 그의 기준에 충족된다.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저티스에게 있어 긍정적으로 비춰지지만, 두 번째에 포함되는 세라는 노력하지 않는 자로 보여지기에 경멸한다는 것이다.
7. 엘자 빌리프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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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릴리 마술여학원으로 리엘의 비호를 하러 갔을 때, 처음 등장해 지금까지 꾸준히 한솥밥을 먹는 사이다. 특무분실의 집행관으로, 넘버 10 《운명의 수레바퀴》로 활동하고 있는 현역이다. 옛 특무분실 집행관들과 친분이 있는 동시에 꾸준히 협력하는 글렌과는 사이가 영 껄끄러운데, 중간에 리엘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어서다. 글렌의 제자인 리엘을 가족을 몰살한 일루시아 레이포드로 오인해 한바탕 싸우고 난 뒤에는 오해가 풀리더니 아예 그쪽 계열로 캐릭터성을 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엘자가 좋아하는 리엘은 글렌한테 호감이 있으니, 관계가 꼬여 삼각관계로 변모하게 된 아상한 모양새다. 더욱 서글픈 것이 리엘은 엘자를 절친으로서의 감정만 있지 일체 연애 감정 따윈 찾아볼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엘자 입장에서는 리엘을 챙겨주고 보호해주는 글렌을 그녀의 스승으로서 나름 존경하고 경의를 표하지만, 그와 별개로 리엘의 호감을 독차지하는 글렌을 동시에 은근히 견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게 수준이 좀 심해서 리엘과 친하게 대화라도 한다 싶으면, 어마무시한 살기를 내뿜어 글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엘자는 르바포스 세계관, 그러니까 마술사가 주류인 변마금의 배경에서도 검술을 특출나게 잘 다루며 그 실력은 리엘과 한끗 차이일 정도로 프로의 기량을 가지고 있어 글렌도 그녀의 검술 실력만큼은 가감없이 칭찬한다. 엘자도 허구한 날, 갈라져서 싸우는 성 릴리 마술여학원의 여학생들을 유일하게 통합한 글렌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는 건 물론, 옛 특무분실 집행관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글렌을 절대로 허투루 보지 않는다. 특무분실 집행관 중, 보기 드물게 (리엘 관련된 것만 아니라면) 글렌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원래 비가 오면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듯이, 엘자는 리엘과 화해하고부터는 일편단심 그녀를 보면서 뺨을 붉힌다는 묘사가 있다. 주변으로 가면 장밋빛 기류가 생겨 글렌조차 끼어들 틈이 없다. 나름 동생처럼 여겨왔던 리엘이 정작 엘자와 어울려 다니자 글렌은 살짝 쓸쓸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1] 알베르트는 아벨로 살아갈 시절에 이미 고아원 동생들을 위해 요리를 어린 나이에도 문제없이 해냈다.[2] 세라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어 글렌은 그 자리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이상하긴 했다.[3] 마술에 평생을 쏟아부은 글렌이 목표를 정의의 마법사가 아닌, 그녀를 지켜주겠다는 것으로 변했는데 막상 그녀가 죽어 갈피를 못 잡은 것이다.[4] 그러나 상대가 비교적 새파랗게 어렸고, 글렌보다 어린 나이에 재능도 꽃피웠기에 글렌은 애써 차지한 상금을 그에게 헌금했다. 애당초 글렌도 치열한 접전 끝에, 간발의 차이로 승리한 것이기도 했다.[5] 여기서 칭하는 분기세계란, 단순히 한 세계를 넘어 모든 시간대에 존재하는 세계상을 뜻한다. 즉 과거의 세계도 제물 대상에 포함된다는 이야기다.[6] 라자르 아스틸이 가족들의 몰살을 계기로 흑화해 아세로 이엘로로 타락했을 때는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 그에게 오히려 인간이야말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고결한 존재라며 거창한 담론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