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다 슈이치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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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베스트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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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시미즈 S펄스 No. 57 | |||||
곤다 슈이치 [ruby( 権田 修一, ruby=ごんだ しゅういち)] | Shuichi Gonda | |||||
<colbgcolor=#f08300> 출생 | 1989년 3월 3일 ([age(1989-03-03)]세) | ||||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7cm / 체중 84kg[1] | ||||
포지션 | 골키퍼 | ||||
주발 | 오른발 | ||||
소속 | <colbgcolor=#f08300><colcolor=#fff> 유스 | FC 도쿄 (2001~2006) | |||
프로 | FC 도쿄 (2007~2016) → SV 호른 (2016 / 임대) 사간 도스 (2017~2018) 포르티모넨스 SC (2019~2022) → 시미즈 S펄스 (2021 / 임대) 시미즈 S펄스 (2022~ ) | ||||
국가대표 | 38경기[2] (일본 / 2010~ ) | ||||
SNS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5px" {{{#!foldin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colbgcolor=#f08300><colcolor=#fff> 역대 등번호 | 일본 대표팀 - 12, 23 FC 도쿄 - 1, 19, 20, 34, 37 SV 호른 - 33 사간 도스 - 33 포르티모넨스 SC - 16, 57 시미즈 S펄스 - 21, 37, 57 | |||
후원사 | 아디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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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축구 선수. 시미즈 S펄스 소속 골키퍼다.2. 클럽 경력
2.1. 프로 입단 이전
농구선수 출신의 부모님 밑에서 자라 가와사키시의 소학교에서 골키퍼로 축구를 시작했다. 소학교 시절에 가나가와현 대표로 선발된 경험이 있다. 소학교 졸업 이후에는 요코하마 F. 마리노스, 가와사키 프론탈레, 쇼난 벨마레 등 카나가와 현의 프로팀들로부터 유스팀 가입을 권유받았지만, 소학교 시절 FC 도쿄 스텝에게 공짜 표를 받아 FC 도쿄 경기를 직관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어 FC 도쿄 중학생 유스팀에 가입했다. 중학생 시절 2003년 클럽 유스 선수권대회에서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2.2. FC 도쿄
2005년 10월부터 1군팀 연습에 참가하기 시작하여, 2007년부터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1군팀에 정식으로 승격했다. 2007년 시즌 말 벤치 멤버로서 공식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08 시즌까지 팀의 서브 골키퍼로 지냈지만, 2009년 초에 주전 골키퍼인 시오타가 부상으로 장기 이탈하게 되면서, 개막전 스타팅 멤버로 기용되어 공식전에 데뷔하게 됐다. 리그 데뷔전에서 4실점, 그 다음 라운드에서도 3실점했지만 3라운드부터 침착하고 안정된 플레이를 보이며 프로 첫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사실상의 데뷔시즌인 2009 시즌에 15개의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팀의 5위 약진에 공헌했다. 리그컵에서도 전 경기에 출장하여 활약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 당시 FC 도쿄 클럽 회장으로부터 MVP급의 활약이란 평가를 받았다.
2010년도 개막전부터 주전 골키퍼로 기용됐지만, 팀의 성적이 곤두박질 치면서 J2리그로 강등 당하고 말았다.
J2리그로 강등되고 맞은 2011 시즌에는 부주장을 맡았다. 시즌 당초에는 주전으로 나섰지만, 2012 런던 올림픽 예선 멤버 소집으로 대표팀으로 떠난 사이, 시오타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겨, 국가대표이면서도 클럽에선 후보라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시즌 막판 다시 주전 자리를 되찾게 되지만 1년 동안 시오타와 주전 경쟁을 하게 됐다. 팀은 압도적인 성적으로 J2리그에서 우승을 거두고 1년만에 J1리그 승격을 이루었다.
J1리그로 복귀한 2012 시즌은 새롭게 취임한 란코 포포비치 감독으로부터 "일본 최고의 골키퍼" 라는 평가를 받아 전폭적인 신뢰를 얻으며 주전으로 기용됐다. 하지만 시오타와의 주전 경쟁은 계속 됐고, FA컵에서는 곤다 대신 시오타가 기용됐다. 시즌 종료후에는 분데스리가의 슈투트가르트와 세리에 A의 엘라스 베로나의 훈련에 참가하기도 했다.
2014 시즌은 높은 선방율로 팀 실점을 대폭 줄이는 데 성공했고 2015 시즌부터는 경쟁 상대였던 시오타가 오미야 아르디자로 이적하게 되면서 등번호 1번을 물려받았다. 전반기 전 경기 출전을 달성했지만, 7월에 훈련중 당한 부상으로 시즌 종료시까지 복귀하지 못했다.
2.2.1. SV 호른 (임대)
2016년 1월, 혼다 케이스케가 실질적인 구단주를 맡고 있는 오스트리아 3부 리그의 SV 호른으로 임대 이적하게 됐다. 곤다를 데려 오기 위해 구단주인 혼다가 직접나서 FC 도쿄구단과 곤다를 설득했다고 한다.
2016년 3월 4일, 처음으로 선발 출전한 라피드 빈 2군팀과의 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다음 라운드에서 경기중 골정상을 입었고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2016-17 시즌 리그 6라운드 경기에 출전하여 부상에서 복귀했다. 이후 2016년 12월 임대 이적 계약이 종료되어 FC 도쿄로 복귀했다.
FC 도쿄와는 2017년말까지 계약이 남아있었지만, 2017년 1월, 곤다 본인은 유럽 도전을 희망하여 계약해지를 FC 도쿄 구단에 요청했다. 구단은 곤다의 의향을 존중하여 계약을 해지 해주기로 했다.
2.3. 사간 도스
유럽 클럽에서 뛰기를 희망했지만, 이적팀을 찾을 수 없었고, 2017년 2월에 일본으로 귀국하여 여름 이적 시장이 열리기까지 무소속으로 남을 것을 각오했지만, J1리그의 사간 도스로부터 입단 제안을 받아, 사간 도스에 입단하게 된다. 자신의 꿈을 존중하여 계약을 해지해준 친정팀 FC 도쿄와 맞붙게 된 2017 시즌 리그 5라운드에서는 친정팀 서포터들 앞에서 결과적으로 의리없는 이적을 하게된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무릎 끓고 사죄했다. 이때의 심정에 대해 곤다 본인은 무릎 꿇고 사죄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응원하던 FC 도쿄 서포터중 한명이 자신의 FC 도쿄 시절 유니폼을 들고 울고 있는 것을 보고 심정적으로 버틸 수 없어서 눈물을 보인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2018 시즌 팀이 부진한 가운데 좋은 활약을 보이며 팀의 J1리그 잔류에 기여했고, 시즌 종료 후 J1리그 우수선수상을 수상했다.
2018년 12월 말 본인을 둘러싼 이적설에 관한 인터뷰에서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난 아직 사간 도스 선수다" 라고 밝혔으나 2019년 1월 포르투갈 언론이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의 포르티모넨스 SC로의 이적이 확정적이라고 보도했다. #
2.4. 포르티모넨스 SC
그리고 2019년 1월 29일, 포르티모넨스 SC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 이적은 좋지 못한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간 도스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고 가와시마의 뒤를 이어 국가대표 주전으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포르티모넨스에서는 '벤치 신세'는 커녕 벤치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이적 후 약 4개월만인 5월 18일, 리그 최종라운드인 SC 브라가전에서 선발 골키퍼로 출전하며 1군 데뷔전을 가졌다. 패널티킥 하나를 포함해, 2골을 내주며 팀은 0-2로 패배했다.
19-20 시즌 전반기는 세컨드 골키퍼로 줄곧 벤치를 지켰으나 리그 20라운드부터 붙박이 주전 골키퍼로 출전하여 총 13경기 16실점 세번의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다시 주전경쟁에서 밀렸고 임대 방식으로 2021시즌에 J리그로 리턴한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유력한 팀은 제대로 된 주전 골키퍼가 없는 시미즈 S펄스다.
2.5. 시미즈 S펄스
2020년 12월 25일, J1리그 시미즈 에스펄스로 임대 이적이 확정됐다. 등번호는 37번을 받았다.2021년 2월 27일, J1리그 개막전인 가시마 앤틀러스전의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면서 2년 만에 J리그에서 선발 출전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시미즈로 완전 이적했다. 등번호는 21번.
2021년 12월 23일, 완전이적했다.
2022년 5월 7일, J1 통산 300번째 경기에 출전했다.
3. 국가대표 경력
2004 U-17 챔피언십에 선발되며 처음으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2007 U-20 월드컵에 선발됐지만 십자인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2008 U-19 챔피언십에도 참가했다. U-20 월드컵 참가권이 걸린 8강전에서 구자철, 김영권, 김승규 등이 있는 대한민국 대표와 맞붙게 되었고 슈퍼 세이브를 연발하며 분투했지만, 유지노, 조영철, 최정한에게 3실점하며 완패했다.
2009년 12월 21일 AFC 아시안컵 최종예선 예멘전 멤버로 뽑혀 1월 6일 예멘전에서 성인 대표팀 경기에 데뷔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성인 대표팀의 부름을 받아 서드 골키퍼로 자리 잡았고 2011 AFC 아시안컵에도 참가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일본의 4강 진출에 기여했지만 4강[3]전에서 불안한 모습으로 역전패에 기여했고 한일전에서도 2실점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4]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에 선발되어 서드 골키퍼로 참가했지만, 본선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다.
2015년 AFC 아시안컵 대표로 선발됐지만 컨디션 난조로 최종 명단에서 제외됐다.
2018년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 체제로 바뀐 후 3년 만에 국대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이후 대표팀에서는 히가시구치 마사아키와 슈미트 다니엘과 경쟁 체제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9년 1월 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1차전 투르크메니스탄전에 선발 출전했다. 3-2로 일본 대표팀이 승리하긴 했지만 수비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의외로 2실점을 했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중거리 슛으로 실점을 허용한 것에 대해 본인의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
이후로도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결승 진출에 공헌했지만 카타르와의 결승전에서 3실점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프로티모넨스 SC 이적 후 소속 팀에서 벤치에도 들지 못하면서 2019년 3월 A매치에서도 제외됐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 부임 후 히가시구치 마사아키, 다니엘 슈미트와 함께 줄곧 대표팀 골키퍼 3인방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신인 골키퍼 나카무라 코스케에게 밀렸다.
2019년 6월 엘살바도르, 트리니다드 토바고와의 평가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다시 대표팀에 소집됐다.
독일과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다비트 라움을 2연속으로 덮치는 반칙으로 PK를 내줘 선제골을 허용했다.[5] 하지만 이후 페널티 지역에서 4연속 선방에 성공하는 역대급 명장면을 보여줬고 PK 실점을 포함한 독일의 유효 슈팅 9개 중 8개를 선방하여 2:1 깜짝역전승을 이끌며 MOM으로 선정되었다.
코스타리카와의 2차전에서는 유효 슈팅 단 하나를 막지 못하면서 0:1 패배를 막지 못했다. 포물선으로 느리게 가는 공에 팔을 뻗어 봤지만 손에 맞고 실점했다.
스페인과의 3차전에서는 알바로 모라타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나머지 공격을 모두 막아내며 독일에 이어 스페인까지 2:1로 잡아내고 팀이 조 1위로 16강에 오르는 큰 공을 세웠다. 일본에 패한 독일은 조별에서 탈락했다.
크로아티아와의 16강전에서도 토미야스 타케히로의 실책으로 나온 1:1 상황을 막아냈지만 이반 페리시치의 헤더에 실점했다. 그러나 이후 루카 모드리치의 중거리 드롭슛을 날아올라 막아냈다. 이후 승부차기까지 갔으나 한 번도 막지 못하고 패배했다.[6]
이후로는 과거 자신이 가와시마 에이지의 뒤를 이었듯이 다니엘 슈미트. 오사코 케이스케, 나카무라 코스케 등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준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 본인을 이어 주전 골키퍼로 자리를 잡은 스즈키 자이온이 온갖 실수로 결국 대회를 8강에서 마무리하게 한지라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 오죽하면 스트라이커 가뭄을 극복하지 못하고 클로제를 한계까지 부려먹었던 독일처럼 일본도 골키퍼 가뭄을 극복하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곤다 슈이치를 한계까지 부려먹으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4. 플레이 스타일
골키퍼로서 종합적인 능력치가 높은 선수로 특히 뛰어난 반사 신경에서 나오는 선방 능력이 출중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확실한 육각형 골키퍼라는 평이다. 단점으로는 가끔 집중력이 떨어지는 플레이를 보이는 점과 감정적이고 직설적인 성격 때문에 상대 선수와 다투거나 멘탈이 흔들리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는 점.5. 기록
5.1. 대회 기록
- FC 도쿄 (2007~2016)
- J리그 디비전 2: 2011
- 천황배 JFA 전일본축구선수권대회: 2011
- J리그컵: 2009
- 스루가 은행 챔피언십: 2010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AFC 아시안컵: 2011
- EAFF 동아시안컵: 2013
5.2. 개인 수상
6. 같이 보기
시미즈 S펄스 2019 시즌 선수 명단 | |||||||
등번호 | 국적 | 포지션 | 한글 성명 | 일문/로마자 성명 | 생년월일 | 체격 | |
1 | GK | 니시베 요헤이 | 西部 洋平 | 1980.12.01 | 187cm/79kg | ||
2 | DF | 타츠타 유고 | 立田 悠悟 | 1998.06.21 | 191cm/81kg | ||
5 | DF | 카마타 쇼마 | 鎌田 翔雅 | 1989.06.15 | 172cm/68kg | ||
6 | MF | 타케우치 료 | 竹内 涼 | 1991.03.08 | 173cm/67kg | ||
7 | MF | 무사카 미츠나리 | 六平 光成 | 1991.01.16 | 176cm/66kg | ||
8 | MF | 이시게 히데키 | 石毛 秀樹 | 1994.09.21 | 170cm/69kg | ||
13 | GK | 로쿠탄 유지 | 六反 勇治 | 1987.04.10 | 188cm/80kg | ||
14 | MF | 쿠스카미 준페이 | 楠神 順平 | 1987.08.27 | 171cm/63kg | ||
15 | MF | 미즈타니 타쿠마 | 水谷 拓磨 | 1996.04.24 | 162cm/62kg | ||
16 | MF | 니시자와 켄타 | 西澤 健太 | 1996.09.06 | 171cm/67kg | ||
17 | MF | 카와이 요스케 | 河井 陽介 | 1989.08.04 | 166cm/59kg | ||
18 | DF | 에르시뉴 | Elson Ferreira De Souza | 1989.11.30 | 180cm/78kg | ||
19 | FW | 히라츠카 진 | 平墳 迅 | 1999.05.19 | 181cm/78kg | ||
20 | MF | 나카무라 케이타 | 中村 慶太 | 1993.06.30 | 180cm/73kg | ||
21 | GK | 타카기와 토오루 | 髙木和 徹 | 1995.04.15 | 185cm/81kg | ||
22 | MF | 헤나투 아우구스투 | Renato Augusto Santos Junior | 1992.01.29 | 185cm/77kg | ||
23 | FW | 키타가와 코야 | 北川 航也 | 1996.07.26 | 180cm/77kg | ||
25 | DF | 마츠바라 고 | 松原 后 | 1996.08.30 | 182cm/72kg | ||
26 | DF | 후타미 히로시 | 二見 宏志 | 1992.03.20 | 179cm/75kg | ||
27 | DF | 이다 타카히로 | 飯田 貴敬 | 1994.08.31 | 179cm/74kg | ||
30 | FW | 카네코 쇼타 | 金子 翔太 | 1995.05.02 | 163㎝/58kg | ||
31 | GK | 우메다 토고 | 梅田 透吾 | 2000.07.23 | 184cm/79kg | ||
33 | MF | 이누이 타카시 | Takashi Inui | 1988.06.02 | 169cm/59kg | ||
34 | MF | 타키 유타 | 滝 裕太 | 1999.08.29 | 168cm/61kg | ||
35 | DF | 이토 켄타 | 伊藤 研太 | 1999.05.12 | 177cm/62kg | ||
36 | MF | 니시무라 야스후미 | 西村 恭史 | 1999.11.04 | 185cm/73kg | ||
37 | FW | 타카하시 다이고 | 髙橋 大悟 | 1999.04.17 | 163cm/55kg | ||
49 | FW | 도글라스 | Dyanfres Douglas Chagas Matos | 1987.12.30 | 184cm/80kg | ||
구단 정보 | |||||||
구단주: 하야카와 이와오 / 감독: 시노다 요시유키 / 구장: IAI 스타디움 니혼다이라 | |||||||
출처: 시미즈 S펄스 / 최종 수정 : 2019년 5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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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야스 하지메 |
[1] 일본 축구 협회 공식 프로필[2] 2022년 12월 5일 기준[3] 멕시코전에서 오츠 유키의 선취점으로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코너킥으로 동점골을 먹더니 후반전에는 상대의 슈팅을 막아내고 역습으로 이어가기 위해 수비에게 굴려줬더니 그 선수가 개인기를 시전하다 그대로 뺏기고 이어진 완벽한 슈팅에 실점, 후반 추가시간에 추가골마저 먹고 패배했다. 중요한 것은 이 경기 전까지 일본은 런던 올림픽 축구에서 무실점으로 순항 중이었다.[4] 다만 멕시코전과 한일전 모두 곤다는 할만큼 했다. 특히 한일전에서 구자철의 추가골까진 활약이 그리 좋지 못했으나 이후 박주영의 드리블을 태클로 저지하고 김보경의 슈팅을 쳐냈는데 골대 맞고 튕겨나온 점 등 후반전에는 명실상부한 일본의 에이스였다. 곤다가 각성하지 못했다면 일본은 4:0 이상으로 대패했을 것이 틀림없었다.[5] 첫번째 방어 이후 일어서려다 라움의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덮치는 모양새가 되었다. 본인으로선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론 라움의 공격을 방해한 형태이기 때문에 PK를 받게 되었다.[6] 그래도 골대를 맞고 실축한 마르코 리바야의 슛은 방향을 읽었다.
분류
- 1989년 출생
- 2009년 데뷔
- 세타가야구 출신 인물
- 농구 선수 자녀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남자 축구 골키퍼
- FC 도쿄/은퇴, 이적
- SV 호른/은퇴, 이적
- 사간 도스/은퇴, 이적
- 포르티모넨스 SC/은퇴, 이적
- 시미즈 S펄스/현역
- 일본의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
-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참가 선수
-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참가 선수
- 일본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참가 선수
-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참가 선수
- 일본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일본의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참가 선수
-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라질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