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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리그 및 대표팀 |
스파르타 로테르담 | |
Sparta Rotterdam | |
<colbgcolor=#fff><colcolor=#e50020> 정식 명칭 | Sparta Rotterdam |
별칭 | De Kasteelheren (The Castle Lords) De Rood-Witte Gladiatoren (The Red-White Gladiators) |
창단 | 1888년 4월 1일 ([age(1888-04-01)]주년)[1] |
소속 리그 | 에레디비시 (Eredivisie) |
연고지 | 로테르담 (Rotterdam) |
홈구장 | 헷 카스테일 (Het Kasteel) (11,027명 수용) |
회장 | 레오 라위스 (Leo Ruijs) |
감독 | 마우리스 스테인 (Maurice Steijn) |
주장 | 아딜 아우아사르 (Adil Auassar) |
공식 웹사이트 | |
우승 기록 | |
에레디비시 (1부) (6회) | 1908-09, 1910-11, 1911-12, 1912-13, 1914-15, 1958-59 |
에이르스터 디비시 (2부) (1회) | 2015-16 |
KNVB 베이커 (3회) | 1957-58, 1961-62, 1965-66 |
클럽 기록 | |
최고 이적료 영입 | 마르코 부거스 (Marco Boogers) (1994년, From RKC 발베이크, 44만 €) |
최고 이적료 방출 | 마빈 엠네스 (Marvin Emnes) (2008년, To 미들즈브러 FC, 400만 €) |
최다 출장 | 핌 두스뷔르흐 (Pim Doesburg) - 471경기 (1962-1967 / 1970-1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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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에 소속된 프로축구클럽으로, 1888년 4월 1일에 15세 전후의 청소년들이 창단하였다. 축구클럽으로는 최초로 홈경기를 홍보하고 입장료를 받았으며, 1927년에는 구장에 최초로 조명시설을 설치하기도 하였다.2. 역사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클럽답게 초창기 1부 리그에서 5회, KNVB컵에서 3회 우승하였다. 특히 1910년대에는 전국리그에서 4회나 우승을 차지하는 등 AFC 아약스 다음가는 강팀이었으나 이후 재정난으로 침체하였다. 1950년대에 다시 뛰어난 선수들을 받아들이면서 1958년에 처음으로 KNVB컵 우승을 이뤘고 후에 1958-59시즌엔 44년만에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에레디비시 출범 이후로는 첫 우승이기도 하였다.이듬해, 에레디비시 챔프자격으로 참가한 첫 유로피언 컵에선 8강의 성적을 냈는데, 1라운드에서 스웨덴의 명문 IFK 예테보리와 격돌하였고 홈에서 3-1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정에서 1-3으로 패배하여 재경기 끝에 3-1로 이겨 8강진출에 성공했다.[2] 그리고 8강에선 스코틀랜드의 명문 레인저스 FC와 맞닥뜨리게 됐는데. 홈에서 2-3으로 패하고 원정에서 1-0으로 이겼다. 지금이라면 원정다득점 규칙으로 인해 레인저스가 다음 라운드 진출이였지만 이때는 원정 다득점 규칙이 없었기 때문에[3] 스타르타 로테르담은 8강에서도 재경기를 하게 된다. 결국 재경기에서 레인저스가 3-2로 스파르타를 꺾으며 준결승에 진출, 스파르타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챔피언스리그 무대는 8강에서 끝마치게 된다.[4]
리그 우승이후엔 강등위기를 겪었던 1964년을 제외하곤 1980년대 후반까지 항상 중상위권을 전전하였고, 그사이엔 1962년에 두번째 KNVB컵 , 1966년에 KNVB컵 마지막 우승을 일구어낸다. 이때 컵대회 우승자격으로 참가한 UEFA 컵 위너스 컵에선 스위스 클럽들을 만나 조기에 탈락하였다. 1970-71시즌엔 인터-시티 페어스컵에 참가하였고 3라운드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을 만나 탈락한다. 80년대에도 간간히 UEFA 컵에 참가하기 하였다. 그러나 90년대를 기점으로 다시 전력이 약화하여 중하위권에 머무르기 시작했으며, 1995년에는 창단 뒤 처음으로 2부 리그로 떨어질 뻔 하였다. 1999∼2000년 시즌에도 11승 4무 19패를 기록하며 13위에 머물렀다. 상황은 더 악화됐으며, 매 시즌을 강등권 경쟁에 부딪히다가 결국 2001-02시즌 창단 후 역사상 처음으로 2부리그로 강등이 된다.
2004-05시즌에 2부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에레디비시에 복귀하지만 여전히 중하위권에서 벗어나질 못하였고, 2010년에 또다시 2부리그로 강등을 당한다.
그렇게 2부리그에 지내다가 2015-16시즌에 구단 역사상 첫 2부리그 우승을 이루어내며 다시 에레디비시로 복귀한다. 2017-18시즌에 17위를 기록했으며 플레이오프 결과 강등되었다.
2018-19시즌 2부리그에서 2위를 거두며 다시 승격하는데 성공했다.
2021-22 시즌 강등권과 단 2점차이로 잔류에 성공했다.
2.1. 요약
- 1부/에레디비시: 1956-2002, 2005-2010, 2016-2018, 2019- (58시즌)
- 2부/에이르스터 디비시: 2002-2005, 2010-2016, 2018-2019 (10시즌)
3. 이야깃거리
- 연고지는 자위트홀란트주(州) 로테르담, 클럽 애칭은 '성(城) 클럽(Castle club)'이다. 연고지가 같은 구단으로는 페예노르트 로테르담과 엑셀시오르 로테르담이 있지만, 스파르타 로테르담은 엑셀시오르오 함께 페예노르트에 밀려 인기가 덜하고 전적도 부진한 편이나 유소년클럽을 잘 관리하여 많은 선수가 유럽의 여러 명문클럽에서 활동하고 있고, 규모 면으로 보면 엑셀시오르보다는 큰 편이다.
- 스파르타는 본의 아니게 아약스의 유니폼 디자인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아약스가 창단될 무렵에 스파르타가 흰빨상의에 검은색 하의를 입은 유니폼을 쓰고있었는데, 아약스도 비슷한 유니폼을 쓰고있었기에 네덜란드왕립축구협회에선 나중에 창단된 아약스에게 유니폼을 바꾸라는 압박을 하였고, 이리하여 아약스하면 떠오르는 흰색바탕에 가운데 큰 빨간줄무늬의 유니폼이 탄생하게 된것이다.
- 같은 로테르담을 연고지로 하는 페예노르트와는 앙숙관계이며, 페예노르트가 라이벌인 아약스하고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약스 서포터는 로테르담의 진짜 대표는 스파르타라고 얘기하고 다닌다.[5]
[1] #[2] 이 당시엔 승부차기가 없었다. 승부차기는 1970년대를 전후로 등장하였기 때문[3] 원정 다득점 규칙은 1965년 도입된다.[4] 물론 스파르타의 행보는 8강에서 멈출수 밖에 없었다. 스파르타를 제낀 레인저스는 준결승에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게 도합 12-4로 개발살이 나며 탈락했는데, 그렇게 레인저스를 박살내었던 그 프랑크푸르트조차도 저승사자 군단 레알 마드리드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는 결국 페렌츠 푸스카스에게 4골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에게 3골을 얻어맞으며 7-3 스코어로 패하였고, 준우승에 그친다. 때문에 스파르타는 오히려 험한 꼴 안본게 다행일지도...[5] 물론 이건 다 옛말이다. 최근 스파르타 로테르담 출신 감독인 마우리스 스테인이 아약스 창단 역사상 최악의 기록들을 매번 갱신하면서 아약스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 되면서 현재 두팀의 관계는 애매모호 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