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9 23:01:03

16번째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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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6th republic of the Soviet Union

소련(1922년~1991년)과 긴밀하게 유착했거나 합병이 고려되었던 국가들을 비하하는 용어.

제2차 세계 대전 시기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는 17번째 공화국으로 폄칭되었지만 1956년에 카렐리아-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러시아에 흡수되면서 16번째 공화국이라는 명칭이 자리잡았다.

2. 실제: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에스토니아발트 3국 점령으로 소련에게 합병될 때 16번째 공화국으로 편입되었다.[1]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소련의 16번째 공화국은 에스토니아다.

3. 역사적 후보

3.1.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미국에 51개의 주가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과 다르게 소련에는 16개의 공화국이 있었던 적이 있다. 카렐리야-핀란드 SSR은 소련에 16개의 공화국이 있었던 시절에 소련의 공화국이었으나 없어졌다.

본래 카렐리야-핀란드 SSR은 소련이 핀란드 전역을 합병하고자 하여 세운 공화국이었지만 소련이 이러한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서 그 존재 의미가 희박해졌으며 해당 지역은 그 이전에도 카렐인핀란드인들의 수가 100만 명에 훨씬 못 미칠 정도로 적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겨울전쟁계속전쟁 후 소련에 그대로 남기보다 핀란드 본토로 이주하는 것을 택했기 때문에 인구의 다수를 러시아인들이 차지하게 되면서 가뜩이나 약했던 존립 명분이 더더욱 위태로워졌다. 차라리 러시아 SFSR 산하 타타르스탄 ASSR을 분리, 승격시키는 것이 인구 수를 보았을 때 더 타당했을 지경이었다. 결국 카렐리야-핀란드 SSR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핀란드와의 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1956년에 해체되었고 러시아 SFSR 산하 카렐리야 ASSR로 재편되었다.

3.2. 투바 인민공화국

건국 후 살차크 칼바크호레코비치 토카의 집권기부터 소련의 압력이 컸던 국가로 1944년에 소련 합병을 결의했고 소련도 이를 수락했지만 독자적인 투바 소비에트 공화국을 수립하는 게 아니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에 흡수되면서 16번째 공화국이 되지 못했다.

3.3. 몽골 인민공화국&내몽골

소련은 만주 작전 당시 하얼빈, 뤼순러시아 제국 당시 조차지를 유지하려고 시도했고 북만주 및 만주 전역에서 옛 러시아 제국의 영향권을 재획득하려고 하였으며 자신들의 위성국이었던 외몽골(몽골 인민공화국)과 소련 점령지에 포함되어 있는 내몽골(구 몽강연합자치정부)을 합쳐 몽골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란 이름으로 소련으로 편입시키려고 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3.4. 동투르키스탄

성스차이한족 중국인으로써 신강군벌의 통치자가 되어 신강성에서 군벌로 할거하면서 중국-소련 간에 반독립상태를 유지하게 되었으며 친소 정책을 펼쳐 소련군이 진주하여 신강은 실질적으로 소련의 속령이 되어 위구르를 동투르키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합병시키려고 하였지만 독소전쟁 초기 소련이 불리해지자 성스차이가 소련과 손절하여 반소, 반공 정책을 취함으로써 불발되었다.

3.5. 소련 점령하 만주

만주 전략 공세 작전으로 소련군이 만주 지역을 점령한 후 중화민국과의 협상을 거쳐 옛 제정 러시아의 권리였던 중동철도, 여순항 조차권 등을 다시 인정받게 되었다. 국공내전에서 중국공산당이 승리한 후에도 중국국민당이 체결한 대부분의 조약을 제국주의 조약이라고 묵살했던 것과 달리 이 조약은 당연히 상전인 스탈린을 거스를 수 없으므로 유지되었다.

만주의 실세였던 가오강, 라오수스 등은 아예 만주에서 만주 소비에트 공화국을 수립하고 만주가 소련에 가입하는 안을 제기했으나 카이로 회담에서 선언된 만주의 중국 귀속에 이미 소련도 동의한 마당이었고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항구적으로 박살나는 것은 너무 자명했기 때문에 스탈린은 장쭤린이나 할 법한 발상이라고 빈정대면서 이를 거절했다. 소련은 1955년 만주에서의 특권을 중국에 반환하였다. 가오강은 이후에도 만주에서 독자세력화를 시도했다가 마오쩌둥에게 찍혀서 숙청당한 후 음독자살했다.

3.6. 동폴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90년리투아니아가 독립에 착수하자 리투아니아 동부의 폴란드계 리투아니아인들은 독립 리투아니아에서의 문화적 탄압을 우려하여 폴란드계 자치 지역들을 수립해 나갔고 벨라루스 흐로드노의 폴란드계 지역들과 합쳐서 '동폴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는 방안을 소련에 전달했는데 리투아니아 폴란드계 자치 지역의 지도자 얀 치에하노비치(Jan Ciechanowicz, 1946–2022)는 이러한 제안을 두고 소련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독대하기도 하였다. 이 독대의 내용 자체는 전해지지 않지만 고르바초프는 리투아니라 독립 시도를 약화시키기 바랐고 고르바초프는 이러한 내용을 폴란드 대통령[2]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에 전달하여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

하지만 민주화된 폴란드의 정치세력 중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하던 이는 없었고 곧이어 소련 자체가 사라지면서 무산되었다. 설령 이뤄졌다고 한들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 3국이 독립해 나가던 와중의 신생 공화국이 "16"번째 공화국이었을지 또한 불명이며 만약 소련이 무너지기 전에 16번째 공화국으로 지정되었더라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벨라루스간의 갈등요소가 될 가능성이 컸다.

4. 별명 혹은 멸칭

4.1. 불가리아 인민공화국

냉전 시기에 소련과 친밀한 관계여서 16번째 공화국이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했다. 당장 그 유명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티토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태반은 소련 덕분에 집권한 거 치고 프라하의 봄알렉산데르 둡체크, 1956년 헝가리 혁명너지 임레, 폴란드 인민공화국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처럼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엔베르 호자,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게오르게 게오르기우데지와 후임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까지 공산화된 거 치고 발칸반도 일대는 차라리 친중을 하면 했지 소련한텐 영 삐딱하게 구는 공산주의 정권들이 많은 걸로 유명했다. 그 와중에 그나마 소련 말 고분고분하게 잘 듣고 나머지 동구권 국가들과 같이 행보를 맞춘 게 게오르기 디미트로프[3]와 후후임 토도르 지프코프의 불가리아라서 이런 말이 나온 것이다.

심지어 토도르 지프코프는 불가리아를 진짜로 소련의 16번째 공화국으로 편입할 것을 권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는 진지한 주장이라기보단 경제원조와 같은 영역에서 소련과 협상 중에 써먹은 전술이었다는 것이 사학자들의 중론이다.[4]

지프코프는 불가리아와 소련의 관계를 '같은 폐로 호흡하고 같은 피가 흐르는 하나의 몸'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는데 사실은 그런 말이 나올 만큼 해외여행을 하기 힘들었던 소련인들이 그나마 쉽게 해외여행하러 갈 수 있던 나라가 불가리아였다 보니 휴가철이 될 때마다 불가리아 휴양지에서 소련인들을 쉽게 볼 수 있어서 그런 표현이 나왔던 것이기도 했다.#

4.2. 핀란드

핀란드는 겨울전쟁제2차 세계 대전(계속전쟁) 당시 소련침략으로 큰 타격을 입어 2차대전 이후 명목상 중립국이었으나 소련의 바로 옆에 위치했기 때문에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친소 성향이 강하여 서방으로부터 공공연히 16번째 공화국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상세한 사항은 핀란드화 참조.

5. 기타

아직까지도 얘기가 나오는 미국51번째 주와는 달리 소련이 1991년붕괴했기 때문에 대체역사물이 아닌 이상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용어다.

미승인국가이긴 했지만 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까지 포함하면 16번째 국가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셈이 되지만 미승인국가라는 점과 공식적인 소련의 공화국이 아닌 자치 공화국이었기 때문에 체첸을 16번째 공화국으로 보는 경우는 잘 없다.

6. 관련 문서


[1] 1940년 8월 7일, 카렐리야-핀란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성립됐고 8월 9일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소련으로 편입되었다.[2] 폴란드 인민공화국의 국가수반이기도 하였다.[3] 다만 그 또한 집권 말기에 대유고슬라브주의에 경도되어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가입을 논하다가 스탈린의 암살로 의심되는 급사를 당했다.[4] Christopher Nehring; Bulgaria as the Sixteenth Soviet Republic?: Todor Zhivkov's Proposals to Join the USSR. Journal of Cold War Studies 2022; 24 (2): 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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