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히사히토의 영유아기부터 소학교(초등학교) 시절, 그리고 이후 약간의 후일담을 다루는 문서.2. 유치원과 초등학교 생활
,할아버지 아키히토 덴노, 할머니 미치코 황후, 어머니 키코 비 등과 함께. |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는 고대하던 손자가 태어나자마자 아이쿠(愛育) 병원[1]으로 달려왔고, 이후로도 하나뿐인 손자와만 휴가를 함께 보내고 식사를 하는 등 유독 각별한 애정을 보여 왔다.
2010년 4월, 히사히토 친왕은 가쿠슈인 유치원이 아닌 국립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유치원에 입학했고, 3년 후인 2013년 4월에는 역시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초등학교로 진학했다.
2008년부터 황족이 가쿠슈인대학이나 가쿠슈인여대가 아닌 외부 대학으로 진학하는 사례가 생기기 시작했고[2] 이전에도 가쿠슈인 유치원이 아닌 다른 유치원에 다닌 황족은 몇 있지만[3], 가쿠슈인 초등과가 아닌 다른 초등학교에 입학한 황족은 히사히토 친왕이 처음이다. 같은 시기 큰누나 마코 공주도 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예술과학과에 진학하여, 남동생과 함께 화제가 되었다.
예상을 뒤엎은 진학에 대하여, 부모인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는 "다양한 또래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거기에 더불어 키코 비가 오차노미즈여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던 인연 또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당시 오차노미즈여대는 여성 교원·연구자의 자녀를 부속학교에 받아들이는 특별 입학제도가 있었는데, 히사히토의 모친인 키코 왕세제비가 이 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입학시켰다는 설명이다. 공교롭게도 이 제도는 히사히토의 합격이 정해지기 딱 1년 전에 시작됐고 현재는 폐지된 지 오래다.
또 유명 사립유치원에 입학하려면 추첨 등을 통해 1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통과해야 하지만, 히사히토는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입학했다. 게다가 실제 오차노미즈여자대학의 석박사 과정 등의 연구원은, 대개 자녀들을 별도의 교직원 및 연구원 전용으로 마련된 탁아시설에 맡기는 것으로 유치원을 대신한다. 부속유치원에는 보내지 않으며, 초등학교는 각자의 거주지에 맞춘 학군에 보낸다. 이들이 별도의 전용 탁아시설을 이용하는 이유는, 학교 문제도 있지만 유치원보다 탁아시설이 어린 자녀들의 등하원을 시키기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이 탁아시설은 정식 부속유치원이 아니므로, 부속초등학교로의 에스컬레이터 식 진학이 불가능하다. 후술할 유치원 부정입학 논란이 이는 이유가 이것과도 연관이 있다.
그 외에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조총련계 스파이가 가쿠슈인의 교직원이어서 차남 내외가 가쿠슈인을 피했다는 카더라도 있는데, 히사히토가 학업 부진이란 소문이 공공연하게 떠도는 걸 보면, 가쿠슈인 유치원 입학을 아키시노노미야 부부가 거부한 게 아니고 입시에서 떨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2년 여름, 당시 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예술과학과 3학년이던 큰누나 마코 공주(왼쪽),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 3학년이던 작은누나 카코 공주(오른쪽)와 함께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아버지 후미히토 친왕, 어머니 키코 비와 함께. |
2013년 4월 7일자로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초등학교에 진학하였다.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유치원에 이어 진학한 것으로, 또 다시 가쿠슈인이 외면받아 화제가 되었다.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는 아들의 진학에 대해, 유치원 입학 때와 마찬가지로 "또래 아이들과의 폭넓은 교류를 위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오차노미즈여대 부속학교는 중학교까지만 남녀공학이고 고등학교는 여고이다. 따라서 히사히토 친왕이 입시를 치러 타 고등학교로 진학할지,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여고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할지, 부속남고를 세울지, 향후가 주목된다.
단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여고는 매우 전통 깊은 명문 여학교인지라, 남녀공학 전환에 대해서는 동창회 등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오차노미즈여대 총장 무로후시 키미코(室伏きみ子)부터가 오차노미즈여대 부속학교들을 쭉 거쳐 오차노미즈여대 이학부를 졸업한 사람이라, 부속여고의 남녀공학 전환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길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2017년 4월 위의 추측에 대해 실제로 시도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부속여고의 강력한 반발로 남녀공학 전환 시도가 불발로 끝나자, 오차노미즈여대와의 자매결연 관계를 이용하여 쓰쿠바대학 부속중학교에 무시험 전형으로 진학한다는 추측이 있다고 한다.
2013년 3월, 아버지 후미히토 친왕, 어머니 키코 비, 작은누나 카코 공주와 함께 이세 신궁을 참배하는 히사히토. 큰누나 마코 공주는 영국 유학 중이라 없었다. |
2013년 3월 25일에는 가족과 함께 이세 신궁에 참배했고, 이후로는 부모와 함께 역대 천황들의 무덤 및 오키나와현의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하여 전몰자 묘역을 참배했다. 또한 키코 비는 히사히토의 교육에 무척 신경쓰고 있으며, 장차 도쿄대학에 보내려 한다고 한다. 도쿄대학에서 추천입학 전형을 도입하려고 검토 중이라는데, 이게 장래 히사히토 친왕을 염두에 두고 하는 일이라는 말도 있다.사상 최초의 ‘도쿄대 출신 덴노’가 되려는 것 아니냐는 것.
실제로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유치원에 입학할 때, 다른 아이들은 시험을 치르고 입학했는데 히사히토만 혼자 무시험 전형으로 입학했다는 걸 보면, 아예 불가능한 상상도 아니다. 전술했듯 히사히토가 지원한 '연구원 자녀를 위한 부속유치원 무시험 특별전형' 자체가 히사히토의 입학 시기에 맞춰 신설된 것이었고, 지원자도 히사히토 단 1명 뿐이었다고 한다. 상술했다시피 애초에 오차노미즈여대의 일반 연구원들이 아무도 자녀를 부속유치원에 보내지 않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히사히토의 유치원 입학에 대해 부정입학 논란이 있다.
그러나 도쿄대학이 추천입학 전형을 도입하고 히사히토가 이를 이용해 도쿄대 입학을 시도한다면, 이에 대한 비난과 반발이 전국적으로 쏟아져 나올 공산이 매우 크다. 아무리 일본 사회가 일본 황실에 대하여 왈가왈부하기를 꺼린다지만, 히사히토의 큰누나 마코 공주가 국제기독교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한 걸 두고도 "엄마 빽으로 학위를 받으려 한다!!"며 비난이 쏟아졌는데, 국제기독교대학조차 명함도 못 내밀 초명문인 도쿄대학에 추천입학한다? 황족이건 뭐건 간에 일본인들이 피꺼솟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가 국제기독교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그러했지만, 히사히토가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유치원에 입학할 때부터 의혹 투성이임에도 애매모호하게 넘어간 전적이 있다. 또 가쿠슈인 유치원에 입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도저히 시험을 치러 합격할 정도가 되지 못해서 가쿠슈인에서 입학을 거절했기 때문에 부랴부랴 뒷돈으로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유치원에 입학시켰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애초에 황족과 화족을 위한 학교였으며 학군 내에 있는 가쿠슈인을 놔 두고, 유치원부터 저렇게 타 학교, 그것도 국립대학 부속학교에다 넣는다는 것부터가 모순이다.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학교는 아키시노노미야 궁저가 있는 주소지 기준으로는 통학권 외의 지역이다. 즉 해당 학군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소학교나 유치원 등의 원서도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황족들이 대학은 몰라도 초ㆍ중ㆍ고등학교만큼은 가쿠슈인에서 다니는 것이 이 때문이다. 설립 의도도 의도지만, 무엇보다 통학권 내에서 학교를 보낼 수 있기 때문.
그리고 애초에 처음에 가쿠슈인 유치원에 본인들이 지원도 안 했던 것이 사실이라면, 외부 진학반이 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가쿠슈인의 요청으로, 중학교부터는 가쿠슈인 중등과(남중)에 다닐 것"이라는 등의 언플이 나올 리가 없다. 즉, 도쿄대학 건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3. 이지메
2014년 4월경에 "히사히토가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초등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한국에서는 보도된 적이 없지만 다음 카페에서 '히사히토'로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 중 3개가 이지메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내용인 즉, 히사히토의 어머니 키코 비가 2013년 2학기 말(히사히토가 1학년 때) 학부모 회의에서 "이 교실에 이지메라든가, 따돌림을 당하는 어린이가 있는 듯합니다만,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요?"는 요지의 발언을 해서 학부모들이 동요했고, 그 다음에는 담임을 따로 만나 "히사히토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만, 제대로 해주시겠습니까?"라고 항의까지 했다는 것. 또 그 학부모 회의가 있은 후 PTA 활동으로 학교를 방문한 키코 비가 다시 담임을 만나 험악한 표정으로 "제대로 대응해 주십시오."라고 몇 번이나 항의했다고 한다. 같이 있던 학부모들이 다 놀랐다고.
기사에 나온 설명을 보면 이지메의 형태는 사촌누나 아이코 공주가 당한 경우처럼 폭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주변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른바 은따로 보인다. 같은 나이대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쓰는 등, 분위기에 맞지 않는 어색한 언행을 한다고.
이에 대하여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초등학교에서는 히사히토 친왕의 담임 교사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함구령을 내린 상태이다. 아래는 그 번역본.
기자: 히사히토가 이지메를 당하는 것 같습니다만?
담임 교사: ('히사히토'라는 낱말을 듣는 도중에 표정을 흐리며) "그런 얘기는 학교 쪽에서 하지 않도록 단단히 얘기를 들어서… 미안합니다."
기자: 키코 비가 학부모회 등에서 선생님한테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만?
담임 교사: …
질문에 부정하는 일은 없었다. 학교 측에 취재를 신청했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파악해 두지 않았고, 개개 아동의 일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없기 때문에… 용서해 주십시오."(오차노미즈여자대학 홍보팀)
담임 교사: ('히사히토'라는 낱말을 듣는 도중에 표정을 흐리며) "그런 얘기는 학교 쪽에서 하지 않도록 단단히 얘기를 들어서… 미안합니다."
기자: 키코 비가 학부모회 등에서 선생님한테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만?
담임 교사: …
질문에 부정하는 일은 없었다. 학교 측에 취재를 신청했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파악해 두지 않았고, 개개 아동의 일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없기 때문에… 용서해 주십시오."(오차노미즈여자대학 홍보팀)
현재까지 궁내청에서 히사히토의 이지메 문제에 대해 아이코 공주 때처럼 공개적으로 대책마련을 촉구한 적은 없다. 그래서 현재는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히사히토가 제 아무리 황위 계승 서열 3위의 귀한 황손이라 해도 일반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깊게 관계하고 싶지 않은 존재인 것은 맞다는 것이다.
일반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아이들은, 특히나 남자아이들끼리 놀다 보면 넘어지거나 몸싸움을 할 수도 있는데 그냥 황족도 아니고 유일한 후계자인 히사히토가 아들의 친구로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더군다나 당일 키코 비가 "장래에 천황이 될 아이를 왕따시키고도 너희들이 무사할 거 같냐!!"는 식으로 난리를 치고 갔으니 아이들이나 부모들이나 더욱 엮이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나 학부모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정작 이 소식이 전해졌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학교에 나오질 않아 얼굴도 못 보는데 무슨 소리를 하냐?!"였다고 한다. 후술하겠지만 히사히토는 학교에 거의 등교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는데, 심지어 유치원 때도 거의 등원하지 않는단 얘기가 있었다고.
기사에 따르면 히사히토는 또래들보다 몸집이 작고[4] 침착한 성격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차차기 천황 즉위가 기정사실화되어 있고 황족인 만큼, 사촌누나 아이코 공주 못지않은 억압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어마어마한 기대와 부담감이 한 몸에 집중되어 있는 히사히토이니만큼, 키코 비의 과민반응일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다.[5] 실제로 키코 비는 히사히토의 교육뿐 아니라 경호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한 예로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초등학교 운동회 때는 학부모라도 사전에 허가받은 사람만 입장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했으며, 많은 경찰들이 동원되어 삼엄한 경호를 펼쳤고, 기자들의 관심도 지대하였으나 취재도 불허하고 비공개로 행사를 치렀다. 너무나도 엄격한 보호에 시아버지 아키히토 덴노와 시어머니 미치코 황후도 당혹스러워 하였으며,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초등학교의 학부모 및 인근 주민들의 불만도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 일본 황족이 학창 시절에 이지메를 당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황실을 떠받드는 일본 사회의 특성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실제로 히사히토의 고모 구로다 사야코도 그렇고, 사촌누나 아이코 공주도 가쿠슈인 초등과 시절 이지메를 당한 적이 있다. 또한 다른 황족들도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증언이 여럿 있다. 노리노미야 사야코 공주는 학우들로부터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라면서 폭언을 들은 적도 있다고 한다.[6] 또한 이지메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위의 히사히토의 경우처럼 신분 때문에 대하기 부담스러워서 주변에서 거리를 두기도 한다.
다른 남성 황족도 비슷한 심경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히사히토 역시 그런 경우일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은 평생 독신으로 산 인물인데, 가쿠슈인에서 그러한 폭언을 듣고 상처를 입은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앞으로 자신이 낳을 후손들이 대물림으로 그런 소리를 듣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본인은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맹세했으며, 정말로 그 맹세대로 살았다. 요시히토 친왕의 형인 토모히토 친왕도 비슷한 고충을 겪었다.
4. 2015~2016년
부모와 작은누나 카코 공주와 함께 공무에 나오곤 하는데, 또래 남자아이들에 비해 여전히 키나 몸집이 작았다. 어쩌면 주변환경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감 때문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일지도.그런데 꼭 스트레스와 억압을 원인으로 보기도 어려운 게, 전시회 영상에서 보청기로 추정되는 도구를 낀 사실이 드러났다.[7] 하지만 실제 보청기인지는 불명이며, 통신을 위해서 귀에 끼는 도구일 수도 있다.
히사히토가 청각장애나 발달장애 등을 앓고 있다는 소문이 도는 것처럼 아이코 공주도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발달장애라는 소문이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잘 웃지 않고 낯을 가렸기 때문. 나루히토 황태자는 직접 아이코 공주(당시 3세)가 뛰어노는 모습을 촬영해서 영상을 공개하여 루머를 해소하려 하기도 했고[8], 여기에 초등학생 때는 이지메를 당해 등교거부를 하고, 중학생 때는 거식증으로 인해 불규칙적으로 등교해서 이런 발달장애에 대한 소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또한 "아이코 공주가 발달장애로 인해 카게무샤까지 쓴다"고 주장하는 어떤 일본인 블로거도 있었다. 특히 황태자 일가를 지지하거나 차남 일가를[9] 지지하는 일본의 황실 중심 블로그들은 이런 악의적인 의혹을 심하게 제시한다. 발달장애 소문은 황족한테 생기는 일종의 루머라고 보아야 한다. 이후로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동년배의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고도 하는데, 여학생들 사이에서 "히사히토와 결혼하면 황후가 되는 거잖아?"라는 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히사히토와 친하게 지내는 여자아이를 이슈로 삼아 "저 아이가 미래의 황후가 되는 거 아냐?"[10]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만, 누나들에 비해 아버지 후미히토에게 꽤나 오냐오냐 떠받들려서 자라고 있다. 그 때문에 누나들이 아버지에게 "더 혼내라"고 눈치를 준다는데, 특히 작은누나 카코 공주는 아버지에게 불만을 많이 표현한다고 한다. 이렇게 편애하는 경우, 장래에 형제자매끼리 사이가 안 좋아질 수도 있다. 사실 히사히토는 아들이길 바라고 태어난 아이인 만큼, 누나들의 질투를 받을 수도 있는 입장이다.
그러나 히사히토 역시 고충이 있다. 어머니 키코 비는 히사히토에게 게임을 금지시키고, TV 프로그램 시청도 뉴스와 다큐멘터리 외에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조차 다 금지한다고 한다. 교육 프로그램만 보면서 자란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과연 친구를 제대로 사귈 수 있을 지가 의문이다.[12]
실제로도 히사히토와 그나마 친하게 지내는 편인 같은 반 아이들은, 유독 배려심과 인내심이 강하고 상냥한 성품의 여학생들이라고 한다. 활달하고 사교성 좋은 보통의 여학생들과는 물론이고 특히나 같은 남학생들과는 전혀 가까이 지내지 못하고 있으며, 상술한 이지메 사건 이후로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키코 비가 이렇게 아들을 엄격하게 교육하는 이유는, 그녀 나름대로의 경쟁심과 압박감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일본 황족들 사이에서 히사히토와 유일하게 비슷한 또래인 5살 위의 사촌누나 아이코 공주는 우수한 모범생인 걸로 유명한데다, 그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 역시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외교관으로 활약한 희대의 수재이자 유능한 커리어우먼이었다. 그에 비해 키코 비는 우수한 모범생이긴 했어도 직장 경험도 없는 고전적인 비(妃)라는 인상이 강하고, 주간지 기사에 실린 아이코 공주의 성적 찬양을 보며 애태운다는 소문이 있다. 이에 대해 키코 비는 공식적인 입장은 없지만, 자신의 아들이 아이코 공주에게 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거란 소문이 있다.
아무튼 히사히토 역시 엄청난 고충을 겪어야 할 듯. 히사히토는 아들이기 때문에,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지만 학업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누나들과 정반대의 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다. 기사가 이럴 정도면 키코 비의 극성이 엄청나긴 한 듯하다.
2016년 2학기가 시작되어도 저능아에 학습 부진아라는 소문이 돌고 있으며, 학교에 거의 가지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아이코 공주의 자폐설은 아이코 공주의 우수한 성적 덕분에 금방 가라앉은 것에 비해, 제대로 된 정보가 나오지 않는 이상 히사히토 친왕에 대해서는 쉽게 소문이 진정되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히사히토가 태어난 이래로 아키히토 천황과 미치코 황후 부부가 노골적으로 유일한 손자 히사히토를 편애했는데[13], 언젠가부터 히사히토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보도도 없고 히사히토에 대해 언급하는 일도 확연히 적어져서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당장 일반인들 중에서도 "만 20세 생일[14]이 되어 성년 기념 기자회견을 할 때는 소문의 진위가 판명이 날 테니, 그때까지 두고 보자"는 의견이 가장 온건한 의견이니 말이다.
애초에 아이코 공주와 다르게 히사히토에 대한 보도 규제가 심하다 보니, 사진 한 장 제대로 보도되는 일이 잘 없다. 그래서 말로만 "우수하고 상냥하다."라고 떠들어 봤자 증거가 없으니 저런 소문이 도는 게 당연하다. 성적표는 고사하고, 하다 못해 아이코 공주처럼 공부를 하거나 악기 연주를 하는 각종 영상이 시시때때로 쉽게 공개되거나 도촬되는 상황도 아니니 말이다.
가장 문제는 현재까지 성적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인데, 전술했듯이 이 일가에서는 "가쿠슈인의 요청으로, 중학교부터는 가쿠슈인 중등과(남중)로 진학할 것"이란 언플을 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외부 진학을 할 생각이라면 중학교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므로 어느 정도 준비가 필요한데, 그 준비 상황이나 진학 가능한 중학교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초등학교 4학년의 성적이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성적표가 공개되지 않는 것도, 키코 비가 "장래에 천황이 될 아이에게 성적이 무엇이 중요하냐!"고 난리를 쳐서 성적표를 일부러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초등학교의 학부모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떠돈다고 한다.
궁내청 문화제에 출품한 작품에 계산 실수가 나왔다. 여기서 자신이 제작한 신호등의 신호 주기를 계산한 것이 나오는데 각 신호 시간별로 적색 53초 / 직진. 우회전 33초 /청색 51초 / 황색 3초 / 합계 120초로 주기가 움직인다고 써 놓았다.
2018년 봄에 공개되었다는 위의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초등학교 운동회 사진만 해도, 2년 만에 공개된 사진이다. 궁내청은 당일 히사히토가 참여한 4개의 종목 중, 기사 사진이 올라와 있는 '태풍의 눈'이라는 종목 1개에 대해서만 촬영을 허가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번 운동회에서 히사히토가 참여한 종목은 큰 공 굴리기, 주머니 던지기, S자 달리기, 태풍의 눈. 태풍의 눈을 제외하면 종목 명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모두 일반적으로 저학년생들이 참여하는 종목이다.
그런데 저학년 종목을, 특히나 매스게임도 아닌 종목들을 개인이 별도 연습을 했다고 해도 꽤나 우스운 상황인데, 정말로 "가족들과 연습해서 참가했다"고 언론플레이를 해댔다. 그것도 단체종목을 말이다! 사실 아니할 말로 '큰 공 굴리기'만 해도, 사촌누나 아이코 공주의 경우 가쿠슈인 유치원 운동회에서 했던 영상이 있을 정도이다.
게다가 궁내청의 촬영 허가도, 동영상이 아니라 사진 몇 컷만 허용했다. 왜 이 종목에만 촬영을 허가한 건지, 게다가 영상은 안 되고 사진만 허용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사실 운동신경이 떨어지는 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차이의 측면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다. 또 운동신경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니, 운동신경이 떨어지는 것은 나쁘거나 문제가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저리 꽁꽁 숨기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운동 실력이 좋지 않다는 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다고 의심할 수 밖에 없다.
히사히토 친왕의 등교 현황과 관련해서는, 상술한 이지메 사건 당시만 해도 1년 동안 많이 등교해 봐야 1~2주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종이공작을 해서 숙제로 출품하는 작품에 한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그 나이 또래에 맞지 않는 대단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대부분 싸늘하다.
우선 제작 과정과 관련한 영상이 없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게다가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 교실에 두고 가져가지 못하게 하는 가쿠슈인 초등과와 다르게,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초등학교는 만들던 것을 집에 가져갈 수 있다. 때문에, 작품들을 본 많은 일반인들이 '보나마나 아키시노노미야 궁저의 직원들이 도와줬을 거야.'라고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2017년 12월에 출품한 작품은 대놓고 '가족, 직원과의 합작'이라고 해놨다. 댓글 중 '궁내청 직원 혼신의 역작'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후미히토 일가에 대해서는 찬양만을 늘어놓는 언론조차도 이 작품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침묵한다는 것. 분명 딱 봐도 그 또래 아이가 만든 거라 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작품들인데, 왜 침묵을 택했을까?
문제의 종이공작 사진. 6세이던 2012년 즈음에 출품한 작품으로, 소학교 1학년 정도의 나이임을 감안했을 때 굉장히 뛰어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언론은 침묵했다. |
2016년에 들어서는 큰누나 마코 공주, 작은누나 카코 공주와 묶여 '바보 3남매'라고 불리고 있다. 이전부터 두 누나는 화려한 성적표 때문에 '바보 자매'라고 불렸는데, 최근에 히사히토의 성적 논란까지 더해서 '바보 3남매'라고 불리는 것이다.
2016년 11월 20일, 히사히토와 키코 비가 타고 가던 차가 교통사고를 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다행히 두 모자는 다친 곳이 없다고 하는데, 사고 원인을 두고 "교통신호 청색불 통과 같은 특혜가 없이 천황 일가와는 다른 규제를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에는 왕위 계승자인 남자가 둘이나 있는데 왜 특권이 없냐?!"는 키코 비의 시위와 자작극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기사가 난 초기에는 "단풍철을 맞아 사적으로 등산 가는 길이었다"는 대목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이 부분이 기사에서 빠졌다고 하며,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를 한 마디도 안 했기 때문에 당연히 일본 여론은 싸늘하다.
5. 2017년
나루히토 황태자가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면, 후미히토 친왕을 황태제로 대우하겠다고 발표되었다.2018년도부터 오차노미즈여자대학의 자매결연 학교인 츠쿠바대학 부속중학교로 무시험 입학 제도가 발표되었다.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초등학교 학생 몇 명[16]을 선발, 츠쿠바대학 부속중학교로 진학시키는 제도라고 한다.
히사히토가 다니는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초등학교 및 부속중학교까지는 남녀공학이지만, 부속고등학교는 여고이다. 때문에 남학생들은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초등학교 남학생들은 대부분 이 문제 때문에, 중학교부터 이미 외부 중학교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중학교에는 여학생 수가 남학생의 약 2.5배나 된다. 여학교에 가까운 분위기상, 남학생들은 상냥하지만 어른스럽고 선이 가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히사히토는 다른 남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중학교 입시 준비를 위해 4학년 때부터 가정교사를 구하려고 했다.[17] 하지만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어머니 키코 비의 악명(?) 때문에, 개인 과외 선생님을 구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여고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려 했으나, “일본 최초의 여학교'라는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오차노미즈 동창회의 반대가 강했다. 오차노미즈여대에 부속남고를 설립하는 방안도 고민했으나, 그 역시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자매결연 대학의 부속중학교에 진학하는 것으로 노선을 바꾸었다.
편자치 75[18]라는 입시명문 츠쿠바대학 부속중학교에 무시험 서류 심사 입학하는 전형이, 히사히토의 한 학년 위부터인 2018년도부터 시작되어 히사히토가 입학한 후인 2019년도까지만 적용된다고 한다. 당연히 이 이야기가 보도되자 일본에서는 여론이 좋지 않다.
일단 히사히토가 차기 천황 자리를 확정 지으려면, 이 성적과 관련된 문제가 2번의 고비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2020년에 가쿠슈인 여자고등과를 졸업하는 사촌누나 아이코 공주의 대학입시 결과. 만약 아이코 공주가 진짜로 도쿄대학 또는 그 외 일본의 명문대, 혹은 외국 유학으로 그에 비견되는 대학으로 간다면, 안 그래도 극성인 어머니 키코 비의 압박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2번째는 2025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본인의 대학입시 결과. 가쿠슈인 대학으로 가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아이코 공주의 대학입시 결과가 안 좋은 경우가 아닌 이상 '구색 맞추기'라는 쪽팔림을 감수해야 한다. 안 그래도 가쿠슈인은 황족 버프를 너무 심하게 몰아주는 것으로 일본인들의 입방아에 오른 지 오래다. 당장 1984년 가쿠슈인 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입학한 아버지 후미히토부터가, 후미히토의 성적이 커트라인이어서 1984년도 가쿠슈인 대학 입학생 수가 대폭 늘었다는 것이 사실상 정설이다.
작은누나 카코 공주도 학과까지 신설[19]해 가며 입학한 가쿠슈인대학을 1년 반만에 중퇴하고 국제기독교대학으로 옮기고, 가쿠슈인 대학에서의 학점을 순 어거지로 덧붙였는데도,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대외적으로는 "(유치원부터 쭉 가쿠슈인에서만 다녀) 새로운 환경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중학생 때부터 가쿠슈인대학이나 가쿠슈인여대[20]가 아닌 다른 대학에 가고 싶었다."라느니, "국제기독교대학의 수준 높은 영어교육과 폭넓은 교양교육(liberal arts)에 매료되어서"라느니 하며 다른 이유를 대도, 사실상 황족에겐 특혜 주기로 소문난 그 가쿠슈인의 최소 성적 조건보다도 낮은 성적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그 판국에 가쿠슈인에 간다면(…)
그리고 키코 비가 히사히토의 중학교 입시처럼 특별전형을 도쿄대학에 만들려 시도한다면, 일본인들이 폭발할 것이 확실하다. 당장 키코 비 본인의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박사학위 논문을 공개하지 않는 거나, 마코 공주의 박사학위 진학도 "황족의 공무도 해야 하는데, 아예 전문성을 갖추고 몇 년을 해도 딸까말까인 박사학위가 장난으로 보이나?"라며 비판적인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그건 가쿠슈인 특유의 황족 버프와 더불어 '황족들이 다니는 학교의 특수한 이유', 그리고 어차피 둘 다 황위 계승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구색 맞추기를 참아넘긴 거지, 도쿄대학은 엄연히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일류대학이다. 즉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본인의 실력으로만 승부해도 합격을 장담하기 어려운 대학인데, 그런 대학을 황족이라는 이유로 성적도 내놓지 않으면서 들어간다고 생각해보자.
물론 황실회의로 히사히토의 승계를 확실시했으니 정말 큰 이변이 없는 한 히사히토가 황위를 계승할 것이다. 황위 같은 것은 어른의 사정이 더 많이 개입이 되니까. 다만 히사히토가 계속 성적 및 보도 규제에 대한 의혹("발달장애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등을 납득이 갈 만큼 해명하지 않고 이대로 쭉 간다면 대학 진학 등과 겹쳐져 일본 국민 여론이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될 수 있다.
어쨌거나 세대는 교체되게 되어 있고, 젊은 층들에서 황족을 니트 취급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제법 있기 때문. 황실도 국민의 여론을 받아 먹고 사는데, 히사히토에 대한 논란이 너무 많으면 일본인들이 계속 의혹의 시선을 보낼 것이고, 점점 부정적인 여론이 늘어나 결국은 "저럴 바에 황실을 왜 존치하느냐"는 여론이 일어날 수 있다. 히사히토 다음 대부터는 어찌될지 모르나, 히사히토가 살아 있는 한 이런저런 의혹들로 일본인들이 황실을 곱게 보지 않고 지지도가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히사히토가 공무에 오면, 사람들이 겉으로는 웃어주어도 속으로는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6. 2018년: 부모의 자녀교육 문제로, 큰누나와 함께 논란의 중심에 서다.
얼마 전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소학교 6학년 운동회 영상이 공개되었다. 2년 만에 공개된 것인데, 여기서 후미히토와 히사히토 부자(父子)가 서로 멀리서 제스처를 나누는 모습이 나왔다. 기사에서는 작전이라고 표현했지만[21] 참고로 이 운동회에서는 큰 공 굴리기와 기마전 등 4개 종목에 참여하였는데, 어째서인지 보도 사진은 큰 공 굴리기를 하는 사진만 나왔다 댓글들이 우회적인 표현으로 "수준이 낮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현재 큰누나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로 아키시노노미야 궁저가 사실상 살벌한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살벌한 분위기가 중학교 입시를 앞둔 중요한 시기에 있는 히사히토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키코 비가 노력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역시 영향이 없을 수는 없는지, 2018년 8월 31일에 야후재팬 기사에 놀라운 내용이 떴다. 키코 비가 히사히토에게 야리가다케 산의 정상을 혼자서 등반하도록 시켰다는 것. 사진은 찍히지 않았고 목격자와 궁내청 관계자의 말만 나왔지만, 당시 경호원을 비롯해 키코 비까지 아래에서 지켜보고 히사히토 혼자서만 올랐다고 한다. 문제는 그 산 정상이 사다리와 쇠사슬로 올라가야 하는, 초등학생에겐 힘들고 위험한 구간이었다는 점이다.[22] 헬멧은 쓰고 있었다지만, 궁내청 관계자는 "장차 천황이 될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게 되면…"이라면서 굉장히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원래 후미히토 내외와 궁내청은, 평소 히사히토에게 학교 운동회에서조차 위험한 종목은 시키지 않을 정도로 과잉보호를 한다. 그런데 키코 비가 갑자기 '스파르타'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이런 수단을 낸 것은 맏이인 마코 공주의 결혼 소동으로 아키시노노미야 家의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면서 히사히토의 교육에 조바심을 느꼈기 때문.[23] 훌륭하고 씩씩하게 자라게 하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2019년에 입학 예정이었던 츠쿠바대학 부속중학교에 험준한 등반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것을 대비한 것도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운동회 종목을 들먹이면서 무리라는 뉘앙스의 댓글을 단 사람도 있고,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부터 해결하라"는 말과, "강제로 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라거나, "큰누나가 고집있게 자란 것처럼, 히사히토도 그렇게 자랄 것이 보인다" 등의 온갖 혹평이 보인다. 일단 사다리와 쇠사슬로 등반하는 것은 전문 산악인도 조심조심해야 하고, 성인이어도 전문가가 아니면 위험하다고 간주된다. 그런 곳을 평소 또래 수준에 맞는 운동도 시키지 않으면서 '천황이 될 유일한 후계자'라고 느닷없이 오르게 한 것은, 일반인 시선에서 안 좋게 보일 수 밖에 없다. 좌우간 이 사건을 통해 키코 비의 아들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부담감, 자율적이지 못하고 어머니의 품 안에서 억압당하고 있는 히사히토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기사에 따르면, 9월 중순 이후부터 정계에서 "황태자 부부에게 히사히토를 맡겨 제왕학을 가르치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24] 마코 공주의 결혼 소동 때문인지, 이번에는 그 궁내청도 생각을 해 보고 있다고. 어쨌든 히사히토는 차기 천황 직위를 물려받을 후계자인데, 부모가 다 이 모양이고 누나들도 모범적이지 못하니, 큰아버지 내외의 슬하에서 자라는 것이 더 좋겠다는 의견. 1월부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과 등산 사건이 벌어지고 난 이후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히사히토가 곧 사춘기에 진입하기 때문에, 이 시기를 놓치면 다시금 제대로 교육할 기회가 날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상당히 진지한 모양이다. 후계자를 잘 키우고 있다고 어필하려던 키코 비의 의도가 완벽하게 역효과를 낸 셈이다.
키코 비가 히사히토에게 오르라고 시킨 구간은 나루히토 황태자가 오른 적이 없다고 한다. 내용에는 "키코 비가 '황태자도 못 오르는 곳을 내 아들은 오른다'고 어필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식으로 서술해 놨다. 그런데 실상은 나루히토 황태자도 충분히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거기까지 가는데에는 등산로가 좁아서, 자신이 갈 경우 입산 통제 때문에 일반인들이 불편을 겪을 것이기에 안 간다고 한다. 실제로 히사히토가 거기에 가는 바람에 입산 통제로 일반인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고 한다. 기사의 말미에는 "일반인의 불편을 고려하지 않는 이런 식의 교육이 과연 제왕학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고 써놨다. 키코 비가 조급했던 나머지 실수한 것이다.
이 사건은 궁지에 몰린 키코 비의 처지에 그녀 자신의 편협한 황족관이 겹쳐 역효과가 나고 만 사건이다. 게다가 유일한 후계자를 자신의 교육 성과를 어필한다는 이유로 그런 위험한 곳에 보냈으니 이번에야말로 황실, 궁내청, 정치인들이 뒤로 넘어갈 만큼 기함을 하고 언론에 정보를 흘리는 등 대놓고 논의에 들어갈 만도 했다.
아무리 일본 황실이 막장이라 해도, 친부모가 버젓이 있는 아이를 교육 문제로 그동안 척을 지던 다른 집으로 보낸다는 논의부터가, 후미히토와 키코 비가 얼마나 불신을 받고 있는지 잘 보여준 것이다.
6.1. 이유
그러나 일본 뉴스 댓글을 보면 "이미 늦었다"거나, "마사코 황태자비의 병 회복이 먼저"라거나, "그냥 상왕 부부에게 보내라"거나, 아예 "아키시노노미야 家를 황실에서 퇴출시키라"는 의견도 보인다. 일본 여론이 히사히토를 나루히토 일가로 보내는 것에 대해서조차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제 와서 황태자 일가에 후계자를 떠맡기려 한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일본 국민의 여론보다도 결론을 내리는데 고려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아주 많다.첫째. 댓글에도 나왔지만 마사코 황태자비의 병 회복이 덜 된 상태기 때문에 섣불리 히사히토를 맡기기가 곤란하다.
아이코 공주는 마사코 황태자비의 유일한 친자식이었기 때문에, 병이 있었다 한들 애착과 모정으로 제대로 키울 수 있었다. 그런데 히사히토는 태어나 준 덕분에 황위 계승 부담에서 벗어나게 해준 조카이기는 해도 친자식이 아니다. 친자식이 아닌 것도 문제고, 태어나는 바람에 아이코 공주의 즉위를 물 건너가게 한 점도 문제이며, 결정적으로 아이코 공주를 양육했던 마사코 황태자비는 아직도 아프다. 자녀교육을 잘 했다는 이유로 아픈 사람에게 후계자를 맡긴다는 발상부터가 앞뒤가 안 맞는다.
둘째, 후미히토 일가와 사이가 나쁜 황태자 일가가, 특히 나루히토 황태자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히사히토가 태어난 후, 궁내청을 비롯한 일본 황실은 마사코 황태자비와 아이코 공주를 대놓고 들러리 취급하며 앞장서서 논란을 일으키고 집요하게 괴롭혔다. 심지어 나루히토에 대해서도 소 닭 보듯 하였다. 후미히토 내외의 거만한 태도와 형 부부에 대한 무시로, 결국 황태자 내외도 남동생 내외에게 등을 돌렸다.
나루히토 입장에서는 후계자가 없다면서 온갖 구박을 하고 무시를 하고 피해를 입힌 사람들이, 이제 와서 "친부모가 교육을 못한다"며 후계자를 맡아 달라고 하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루히토는 아내와 딸에 대한 애정이 극진하기로 유명한데, 히사히토를 받아들일 리가 없다. 설사 아키히토 덴노의 명령으로 받아들여도, 자신이 천황이 된 뒤에는 "아이는 친부모에게서 커야 한다"며 다시 돌려보낼 가능성이 크다.
만약 정말로 히사히토가 나루히토 일가로 오게 된다면, 오히려 히사히토의 존재 때문에 또 한 번 마사코 황태자비와 아이코 공주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마사코 황태자비는 자녀교육 문제로 비난을 듣던 키코 비의 전철을 그대로 탈 수 있고, 아이코 공주는 사촌남동생의 등장으로 집안 내 위치가 낮아져 언론에서 천대받을 수 있다. 나루히토도 이것을 모를 리 없기에, 아내와 딸을 지키기 위해 히사히토가 오는 것을 결사 반대할 것이다.
셋째.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는 아이들을 직접 길렀기 때문에, 히사히토를 친부모와 떼어 놓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못할 수 있다.
천황의 결정이면 따를 수밖에 없지만, 사실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가 이런 일에 간섭을 할지도 미지수다. 이런저런 생각이야 많겠지만, 천황 내외는 아들들의 가정 문제에 대해 후계자 출산과 차기 황위 계승 문제 외에 개입한 적이 없다. 히사히토의 교육 문제도 후계자 문제이기는 하지만, 오랜 전통을 깨고 아이들을 직접 옆에서 양육했기에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 "아이는 친부모 옆에서 자라는 것이 좋다"는 것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넷째. 후미히토 내외가 히사히토를 나루히토 내외에게 쉽게 보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제일 큰 걸림돌이다.[25] 후미히토와 키코 비는 히사히토 덕분에 호의와 인기를 누렸다. 특히 키코 비에게 히사히토는 황실로 시집온 이래 거둔 최고의 결실이자 자랑이고 자존심이다. 키코 비 입장에서는 그런 아들을 지금까지 적이었던 나루히토 황태자 내외에게 보낸다는 것은, 지금까지 쌓아 온 공든 탑이 전부 무너지는 것은 둘째치고, 그나마 남은 마지막 자존심까지 잃는 것이다. 후미히토도 자기 아들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에 나루히토 황태자와 마사코 황태자비를 이혼시키네 마네 할 때, "마사코 황태자비의 아이코 공주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이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었다. 즉, 부모의 아이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의미가 의외로 큰 무기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히사히토를 황태자 일가로 보내는 것에 대한 후미히토 내외, 특히 키코 비의 반발이 극심하면 이 논의는 없던 일이 될 수 있다.
어쨌든 히사히토는 태어날 때부터 엄청난 관심과 더불어 온갖 걱정거리를 떠안더니, 결국 부모 때문에 처지가 나빠지게 되었다. 아키히토 덴노의 양위 발표로부터 시작되어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으로 폭발한 후미히토 일가의 위기는, 앞으로 히사히토를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명운이 갈리게 된다.
6.2. 2018년 하반기
2018년 하반기 즈음부터의 사진과 영상을 보면, 초등학교 6학년(12살)이 된 히사히토는 얼굴에 생기가 없고 욕구불만에 차 있는 표정이다. 어릴 때는 그래도 잘 웃는 밝고 귀여운 얼굴이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뭔가에 잔뜩 억눌린 기미가 보인다. 최근에 올라온 음악회에 대한 뉴스 댓글에도 이런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무래도 이제 어느 정도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자신이 어느 위치인지 자각할 때고, 집안 상황도 안 좋다 못해 굉장히 냉랭한 분위기[26]라니, 그 영향을 받는 듯. 거기에 큰누나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 이후 이들의 활로는 사실상 히사히토뿐인지라, 어머니 키코 비의 과도한 집착과 억압이 강화되는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또 다른 기사에서는 "아키시노노미야 내외가 히사히토를 츠쿠바대학 부속중학교로 입학시키는 방안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큰누나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으로 인하여 아키시노 일가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만이 폭발하며 예전부터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의 무분별한 특권 행위 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결국 츠쿠바대학 부속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것. 일단 중학교는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중학교로 내부진학하고, 고등학교는 차후에 고려하려는 것이다.
한편 이듬해(2019년)에 가쿠슈인 여자고등과 3학년이 되는 아이코 공주는 여전히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고, 도쿄대학, 츠쿠바대학, 조치대학, 히토츠바시대학 등의 명문대학을 노릴 수 있는 성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코 공주가 그냥 가쿠슈인 대학으로 내부진학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우선 아이코 공주는 2019년부터 '천황의 유일한 자녀'가 되고, 사촌언니 마코 공주가 외부 대학(국제기독교대학)으로 진학했다가 캠퍼스 커플로 만난 코무로 케이 때문에 분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아이코 공주도 장래 대학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교제하다가 결혼 이야기까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에 대비해, '코무로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들어갈 수 없는 가쿠슈인 대학이 최선이다'라는 이유이다.
7. 2019년
2월 4일 일본 보도에 의하면, 히사히토의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중학교 내부 진학이 확정되었다. 3월에 초등학교를 졸업, 4월부터 중학교에 진학한다. 내부 진학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공식적으로는 "친숙한 환경과 연속성 등을 중시한 결과"라고 밝혔다. 그러나 많은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후미히토 일가에 대한 불신감이 강한 나머지, 이러한 보도에 대해서도 곧이곧대로 믿지 않으며,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이후 나온 기사에 따르면 히사히토의 내부 진학을 두고 후미히토는 아들의 학교 환경이 바뀌지 않아서 안심했으며, 히사히토는 이과 계열 과목에 자신있어 하며, 채소 재배 등과 같은 농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히사히토를 옹호하는 자들은 "히사히토가 적어도 중학교 졸업 이후에는 어찌되었든 간에 차기 천황 후계자로서 황족에 특화된 가쿠슈인 고등과(남고)에 진학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은 "히사히토도 누나들처럼 문제를 일으킬 것 같다"면서, "아이코 공주를 황태녀로 삼고, 후미히토 집안을 강제로 황적이탈시키거나 아니면 이들 집안에 주어지는 금액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2017년 7월 어머니 키코 비와 하지마 섬을 방문했는데, 이는 "도쿄의 섬을 보고 싶다"는 본인에 희망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관계자에 따르면 히사히토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도쿄를 비롯한 지역과 전쟁 관련 역사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2월 9일자 기사에 따르면, 키코 비는 미래의 천황이 될 히사히토를 훌륭하게 키우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코무로 케이가 히사히토의 매형이 되는 것을 마이너스 요소로 보고 있어,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장기화 되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 히사히토 역시 큰누나 마코 공주와 잘 지내는 일이 적어졌다고 한다.
3월 15일,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작은누나 카코 공주도 3월에 국제기독교대학 예술과학과를 졸업했다.) 4월에는 예정대로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중학교에 내부진학한다.
히사히토가 오차노미즈여대 부속중학교에 내부진학하는 이유에 대한 기사가 나왔는데, 그 기사에 따르면 2018년 여름 무렵부터 키코 비는 히사히토의 내부진학을 결정했다고 한다. 또한 작년 여름에 있었던 스파르타 제왕학의 일환인 등산은,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은 히사히토가 또래에게 뒤지지 않는 체력과 담력을 키울 겸 천황에 오르는 큰아버지 나루히토 황태자[27]와 거리를 좁히기 위한 목적으로 한 키코 비의 의도라고 한다.
초등학교 졸업에 대한 뉴스와 함께 궁내청은 몇몇 사진과 졸업문집도 공개했으나, 그동안 일본 국민들이 공개해주길 원하던 초등학교 성적 같은 건 일절 공개하지도 않고, 공개한 자료들도 여러가지 의문만을 남긴 것들이었다. 졸업문집의 내용도 과연 갓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이 쓴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급 용어들로 채워져 있었고, 히사히토의 자필이라고 소개한 글씨도 "초등학생의 글씨라기보다는, 성인 여성이 어린이 흉내를 낸 듯한 느낌이다. 너무 깔끔하다."라는 게 일본인들의 지적이다.
많은 일본인들은 많은 의혹들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는 초등학교 시절 성적도 단 하나도 공개하지 않았으며, 또래보다 상당히 체격 차이가 나며, 무엇보다도 집안 자체가 여러가지 문제가 많은 히사히토가 나루히토 황태자의 무남독녀인 아이코 공주를 배제하고 황실 서열 2위가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터진 이후에도 후미히토 일가를 옹호하는 극소수 우익들조차도, 후미히토의 방임형 교육과 탈가쿠슈인 교육 방침을 지속하는 것에 대해서 과연 후미히토가 히사히토를 차기 천황으로서 키울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3월 15일 히사히토는 어머니 키코 비와 함께 증조할아버지 쇼와 덴노, 증조할머니 고준 황후의 묘소를 참배했다. 다음날인 3월 16일에는 고쇼에 자리한 궁중삼전(宮中三殿)을 참배해서 초등학교 졸업을 선대에게 보고했다. 한편 큰누나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이 지속되는 와중에, 작은누나 카코 공주까지 국제기독교대학 졸업식에서 경솔한 발언들로 논란을 빚었다. 언니를 옹호하는 발언에다, 자신의 결혼 상대는 공개하지 않겠다는 등등.
3월 30일 주간지를 통해 드디어 히사히토의 성적 수준이 알려졌다. 기사에 의하면 히사히토의 성적은 중간 정도로, 작년 8월부터 국영수를 비롯한 음악, 미술, 가정, 체육까지 시험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일본인들은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그 정도 성적이라면 그나마 진학처나 히사히토의 장애 관련 의혹 등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데 충분했기에 공개해도 무방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실은 친누나들처럼 낙제에 가까운 성적을 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후 나온 추가보도에 따르면 히사히토는 공부벌레가 아니라는 듯하다.
히사히토의 고등학교 및 대학 진학처에 가쿠슈인 고등과(남고)와 가쿠슈인 대학은 제외될 것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 후미히토가 가쿠슈인 자체에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후미히토가 가쿠슈인 고등과에 다니던 당시, 후미히토 본인은 다른 대학에 가려고 했으나 아버지 아키히토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가쿠슈인 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해서 억지로 가쿠슈인에 다녔기에, 후미히토는 지금까지도 가쿠슈인 동창회에도 나가지 않을 정도로 싫어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러한 보도에 대해 "후미히토의 성적을 감안하면, 후미히토는 황족이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본인 성적으로는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좋은 대학을 넘보려고 했고, 아버지 아키히토 덴노가 제동을 건 것이다."라고 보고 있다. 다만 성적문제만이 아니라 '동생을 형보다 더 높은 대학에 보낼 수 없다'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5살 터울의 형이자 황태자인 나루히토가 가쿠슈인 대학 출신이기 때문이다.[28] 물론 그렇다고 나루히토가 성적이 부족했던 건 아니고, 그 시대에는 황태자가 황실학교인 가쿠슈인 외의 학교를 택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루히토 황태자는 가쿠슈인 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대학원에 유학,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참고로 주간지에 의하면 히사히토가 지망하는 고등학교는 (논란 때문에 부속중학교에 넣으려다 그만둔) 츠쿠바대학의 부속고등학교이며, 히사히토가 지망하는 대학은 도쿄대학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는 키코 비의 친정아버지 가와시마 타츠히코가 도쿄대학 출신이며 후미히토 역시도 도쿄대학 연구원에서 한동안 특별연구원으로 활동하는 등, 도쿄대와 인연이 있어서라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저건 단순한 명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위에 언급된 무시험 전형이 시행되는 기간이 어느새 '5년 한정'으로 늘었다. 히사히토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 해에 시행되어 이걸로 중학교에 보내려 했으나 여론 눈치에 무산되자, 은근슬쩍 연장하여 고등학교 갈 때가 될 때까지 제도를 유지시켜 써먹으려는 것이다(...)
2019년 5월에 큰아버지 나루히토 황태자가 새 덴노로 즉위했고, 사촌누나 아이코 공주는 이듬해 4월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일어일문학과[29]에 입학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아이코 공주는 도쿄대학, 츠쿠바대학, 조치대학, 히토츠바시대학 등의 명문대학들도 노릴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나루히토 덴노의 (유일한) 자녀이자 경호상의 문제, 그리고 장래 신랑감 등의 여러 문제로, 결국 전통적 황실학교인 가쿠슈인에 계속 다니기로 한 것.
[1] 도쿄에 있는 산부인과ㆍ소아과 전문 병원. 아키히토 덴노의 막내 숙모 미카사노미야 유리코 비가 총재를 맡았던 사회복지법인 소속의 병원이다. 히사히토 친왕 외에도 유리코 비의 손녀 쓰구코 공주, 센게 노리코, 모리야 아야코도 아이쿠 병원에서 태어났고, 아야코 또한 아이쿠 병원에서 장남 모리야 조를 낳았다. 히사히토 친왕이 아이쿠 병원에서 태어난 후, 아이쿠 병원에서 출산하려는 부모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2] 2008년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에 입학한 쓰구코 공주, 2010년 조사이(城西) 국제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아야코 공주.[3] 고모 구로다 사야코, 칠촌 고모 아키코 공주와 요코 공주는 가쿠슈인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에 다른 유치원을 다녔다. 또 칠촌 고모 쓰구코 공주, 센게 노리코, 모리야 아야코는 가쿠슈인 유치원을 다니지 않고 다른 유치원을 다녔다. 물론 모두 초등학교는 가쿠슈인 초등과를 다녔다.[4] 이는 남자여서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 후미히토 친왕이 황실에서 최장신(178cm)이니, 나중에는 키가 클 가능성도 크다.[5] 또한 키코 비는 어린 시절의 많은 시간을 외국에서 보낸 귀국자녀라는 것도 감안해 볼 필요가 있다. 비록 두 딸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는 학창 시절에 왕따 문제는 없었으나, 둘 다 성적이 나빴고, 대학 입학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있었던 것을 보면, 꼭 학업성적이 자식교육의 척도는 아니지만 키코 비의 자식농사 실력이 그렇게 썩 좋다고 보기는 힘든 듯. 아이코 공주의 경우 등교거부를 하기 전까지 개별적으로 학교에 항의하는 경우도 없었고, (물론 당시 마사코 황태자비가 여러 사정으로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기도 했다) 마사코 황태자비가 며칠 간 함께 등하교를 하고 수업을 참관하며 해결했다. 또한 아이코 공주는 이런 저런 루머와 왕따에 시달리면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6] 20세기 중반부터 후반에 가쿠슈인의 황족 학생들이 유독 괴롭힘을 많이 당했는데, 그중 직계 왕자&공주들에게 가해지는 괴롭힘이 제일 심했다. 알다시피 가쿠슈인은 황족과 화족(귀족)들만 다닐 수 있는 황립학교였다가, 패전 후 평민에게 개방된 후로도 금수저 집안의 자녀들이 많이 다녔다. 따라서 가쿠슈인 학생들은 본인부터가 이미 부유한 환경에서 공주와 왕자처럼 자랐기에 진짜 왕자&공주를 동경하는 마음이 딱히 없었으며, 그뿐이 아니라 시대가 힘들었던 시대인지라, 하는 일도 없으면서 내 부모가 낸 세금으로 품위유지를 하는 황족들이 아니꼬왔던 것.[7] 키코 비와 궁내청의 입장에서, 유일한 후계자의 치부를 드러낼 리가 없기 때문.[8] 나루히토 황태자의 이러한 대응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평일 낮에도 아기와 놀아줄 수 있는 아버지'와 '뚜렷한 병명도 없으면서 몇 년이고 집에서 쉴 수 있는 어머니'가, 뼈빠지게 일해도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빠듯한 일반 서민들 눈에 곱게 보일 수가 없었다. 실제 일본인들도 이렇게 비난했다.[9] 특히 "일본 황실은 만세일계로 내려왔다"며 부계 계승을 지지하는 우익 블로거들이다.[10] 일본 황실로 시집오기 전의 쇼다 미치코, 오와다 마사코, 가와시마 키코는 모두 집안도 본인의 재능도 우수했기에 신데렐라 컴플렉스라는 말은 그리 적절하지 않다. 참고로 그녀들은 다들 뛰어난 사람들이었지만, 일본 황실의 매운 시집살이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11] 그런데 이 기사에 대해서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초등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를 모욕했다!!"는 의견이 어느 블로그에 올라온 적이 있다.[12] 굳이 이야기하자면, 이런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고 자라도 성인이 되어서 어떻게 될 지는 모른다. 사람이라는 게 꼭 교육 환경에 따라 성격이 정해지는 것만은 아니듯이, 히사히토가 어떤 사람으로 자랄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13] 그리고 그만큼 아이코 공주는 찬밥 신세라는 소문이 있었다.[14] 히사히토는 2026년 9월 6일에 만 20세 생일을 맞는다. 이때 큰누나 마코 공주는 35세, 작은누나 카코 공주는 32세가 되어 있겠지만, 이 나이면 시집가서 황적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높으니, 실질적으로는 이 무렵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에 황족 자녀는 히사히토만 남을 가능성이 높다.[15] 한국은 우측통행인 반면 일본은 좌측통행이므로, 일본에서의 우회전이 한국에서의 좌회전에 가깝다.[16] 히사히토와 친한 아이들 몇 명을 선발, 함께 진학시키려는 듯하다. 가쿠슈인 중등과(남중)로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17] 경호 문제 때문에, 일반 아이들처럼 학원에 다닐 수는 없다. 사촌누나인 아이코 공주도, 가쿠슈인 여자중등과 시절 수학이 다른 과목보다 좀 약해서 가정교사를 초빙했다.[18] 커트라인이 전국 상위 0.62%라는 뜻이다.[19] 문학부 교육학과.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학과다. 카코 공주가 가쿠슈인 여자고등과를 졸업하고 가쿠슈인대학에 입학하던 2013년도에 신설되었다. "카코 공주의 입학에 맞추어 신설한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 가쿠슈인에서는 "이전부터 교육학과 신설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렇게 된 것뿐이다"라고 밝혔다.[20] 가쿠슈인대학이 가쿠슈인여대보다 더 규모가 크고 수준이 높다.[21] 영상을 보면 수어처럼 보인다.[22] 참고로 야리가다케 산의 높이는 3,180m다. 북알프스 산맥은 사망 사고도 많이 속출하는 곳이기도 하다.[23] 이 해 히사히토는 여름방학 동안 히로시마의 원폭 추모공원이라던가 여러 군데를 어머니 키코 비와 단 둘이서 다녔다. 키코 비가 히사히토에게 제왕학을 공부시킨다고 데리고 다니는 것.[24] 사실 이 논의 자체는 막장 시월드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대한민국 유튜브의 썰에 보면 막장 시월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그 중 하나가 '조카를 며느리에게 맡기려는 시부모'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히사히토를 황태자 부부에게 맡기자는 논의가 바로 이 소리다.[25] "후미히토 내외 부재중 아이코 공주와 마사코 황태자비가 혼자 있는 히사히토를 걱정해 동궁으로 부르려 했지만, 후미히토 내외의 궁인들이 키코 비의 후환이 두려워 반대하여 무산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던 걸 생각하면, 아키히토 내외가 받아들인다면 의외로 나루히토 황태자 측에서는 임시양육이라던가 하는 형태로 거절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26] 그나마 집안 식구들이 모이는 식사시간에도 조용하게 지내려고 하며, 부모들 중 하나가 말을 하려고 하면 바로 큰누나 마코 공주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으로 돌아가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27] 나루히토 황태자는 전반적인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등산도 좋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28] 예나 지금이나 황실은 서열로 돌아간다. 예를 들어 1994년에 키코 비가 차녀 카코 공주를 임신했을 때, 히사코 비가 "형님(마사코 황태자비)이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았는데"라며 한소리 한 적도 있다.[29] 고모 구로다 사야코가 졸업한 학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