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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표(1889)

제1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홍남표
洪南杓 | HONG NAM PYO[1]
파일:20221021_165831.jpg
<colbgcolor=#E40001><colcolor=#fff> 출생 1889년 4월 17일
경기도 양평군
사망 1950년 6월 3일
북한 일대
묘소 애국렬사릉
학력 서울 중앙학교 (졸업)
1. 개요2. 생애3. 장의위원회 구성4.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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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공산주의 독립운동가, 북한의 정치인.

2. 생애

1889년 4월 17일,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중앙학교 졸업 후 1910년 혁명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후 만주로 떠나서 1920년부터 빨치산 활동을 하였으나, 1921년에 체포되어 2년간 수감되었다.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에 참여하여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고, 1926년 6.10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상하이로 망명,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1932년까지 활동했으나 다시 체포되어 7년간 수감되었다. 1939년에 석방되었으나 1940년에 다시 체포,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없다는 조건 하에 8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1943년에 서울에서 공산주의 지하 그룹을 조직하여 투쟁하다가 1944년 7월에 또 검거되었다. 해방 후 1945년 9월, 조선인민공화국 교통부장에 선출되었다.

1945년 11월, 조선공산당 조직 재건의 일환으로 전국농민조합총연맹 전국대회에 참석하였다. 이어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 의장으로 회의를 사회하였다. 1946년 12월 9일, 남로당 중앙위원회-중앙감찰위원회 연합회의에서 남로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6년 미군정에 체포되어 4개월간 복역하였다.

이후 월북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에 남로당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1948년 8월, 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9월 9일, 최고인민회의 1기 1차 회의에서 초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49년 6월 28일, 조국전선 중앙위원회 1차 회의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49년 6월, 남북로당이 합당되어 조선로동당이 출범하면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유임되었다. 남로당 주요 당원 중 최고참 원로 당원으로 상당한 명망을 누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다가 6.25 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6월 3일, 오후 7시 30분에 계속 앓아온 중병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당중앙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연명으로 부고를 발표, "홍남표 선생의 서거는 평화적 조국통일을 쟁취하기 위한 자주적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조선인민에게 있어서 커다란 손실로 된다. 조선인민은 조국과 인민을 위한 투쟁에 바친 홍남표 선생의 공로와 업적을 길이 기억할 것이다."라고 추모했다.

이후 한참 있다가 2005년 11월에야 애국렬사릉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반일애국렬사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애국렬사릉의 안장 서열이 꽤 좋은데 조명록, 김양건, 손종준과 같은 열에 묻혀있다.

3. 장의위원회 구성

4.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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