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27 04:42:37

한국프로야구/1990년/신인드래프트

KBO 리그 신인드래프트
1989년 시즌 1990년 시즌 1991년 시즌

1. 개요2. 1차 지명3. 쌍방울 특별지명4. 2차 지명5. 드래프트 평가6. 이모저모

1. 개요

1990년 KBO 리그 신인드래프트 (공식 명칭: 199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 신생팀 쌍방울의 특별지명으로 진행되었다.

2. 1차 지명

1차 지명은 1989년 11월 6일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2명을 뽑았다. 이전 해와 비교하여 한 명이 더 줄어든 것으로, 다음 해에는 1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연고지가 겹치는 MBC와 OB는 11월 4일에 1차 지명을 확정지었다.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1차 지명자
MBC 청룡 김동수(서울고-한양대, 포수)
이병훈(선린상고-고려대 외야수)
OB 베어스 임형석(서울고-한양대, 내야수)
김경원(동대문상고, 투수)
쌍방울 레이더스 박찬홍(군산상고-원광대, 투수)※
최해식(군산상고-건국대, 포수)
롯데 자이언츠 김도형(마산상고-경성대, 투수)
공필성(마산상고-경성대, 내야수)
삼성 라이온즈 이태일(경주고-영남대, 투수)
최현준(대구고-한양대, 투수)
태평양 돌핀스 최광천(인천고-원광대, 투수)
김경기(인천고-고려대 내야수)
빙그레 이글스 김성한(북일고 투수)
지화동(북일고-동국대, 내야수)
해태 타이거즈 정회열(광주일고-연세대, 포수)
이호성(광주일고-연세대, 외야수)

3. 쌍방울 특별지명

1989년 11월 신생팀 쌍방울은 2차 지명에 앞서 10명을 지명했다.
  • 투수 : 구대진(대전고-경남대), 김기완(동대문상고-한양대), 정윤원(동대문상고-한양대), 최태곤(동래고-동아대), 김석기(광주일고-연세대)
  • 포수 : 공봉구(영흥고-영남대)
  • 내야수 : 김경수(서울고-연세대), 김호(마산고-경성대)
  • 외야수 : 장희현(대구고-한양대), 윤혁(배재고-고려대)

4. 2차 지명

2차 지명은 1989년 11월 29일 KBO 사무실에서 열렸다.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라운드 롯데 MBC OB 삼성 태평양 빙그레 해태 쌍방울
1 손길호
(포철공고-성균관대,
내야수)
최우석
(신일고-중앙대,
투수)
서준룡
(광주상고-성균관대,
내야수)
김우현
(광주상고-성균관대,
외야수)
이용호
(서울고-건국대,
투수)
진상봉
(마산고-경성대,
외야수)
기영록
(광주상고-연세대,
포수)
정인조
(광주상고-건국대-상무,
투수)
유충돌
(진흥고-성균관대,
내야수)
2 김종헌
(경주고-경성대,
외야수)
구동환
(충암고-상무,
외야수)
조정수
(광주일고-동국대,
투수)
장길영
(경주고-계명대,
투수)
강광회
(제물포고-건국대,
외야수)
박상익
(중앙고-단국대-한국전력,
외야수)
패스 임기정
(전주고-고려대,
포수)
3 전봉석
(마산상고-경성대,
포수)
김선진
(광주일고-연세대,
내야수)
김상진
(청강고,
투수)[1]
주동욱
(제물포고,
투수)
최용철
(인천고-연세대,
내야수)
패스 패스 전성호
(오산고-중앙대,
투수)
4 패스 김성재
(대구상고-영남대,
내야수)
한형탁
(포철공고,
투수)
박홍철
(신일고-중앙대,
내야수)
김력
(경남상고-동아대,
투수)
패스 패스 김종수
(대구상고-경남대,
투수)
5 패스 박승암
(서울고-인하대,
투수)
김만조
(마산상고,
투수)
패스 조웅천
(순천상고,
투수)[2]
패스 패스 김영운
(경북고-계명대,
내야수)
6 패스 오정민
(신일고-성균관대,
투수)
패스 패스 조영상
(인천고,
투수)
패스 패스 소상필
(마산고-경성대,
외야수)
7 패스 김명환
(동산고-경희대,
투수)
패스 패스 정운영
(장충고-동국대,
내야수)
패스 패스 패스
8 패스 김종철
(군산상고,
투수)
패스 패스 패스 패스 패스 패스
9 패스 김성일
(서울고-한양대,
외야수)
패스 패스 패스 패스 패스 패스
10 패스 박종욱
(광주일고-동국대,
외야수)
패스 패스 패스 패스 패스 패스

5. 드래프트 평가

  • 쌍방울 레이더스 : 시작부터 잘못 꿰인 단추. 유래없는 흉작 드래프트였던 한 해에 창단하기로 한 죄로, 10명이나 되는 우선 지명자 중에 1군 주전급으로 성장한 것은 김호 단 하나뿐이었다. 1차 지명조차 뽑을 선수가 없어 박찬홍은 지명 포기했고, 최해식은 전종화, 박경완에 밀려 백업을 전전하는데 머물렀다. 그나마 해태가서 실적을 올렸으니... 다행인가?
  • 롯데 자이언츠 : 좋지 않은 시기의 꼴찌. 꼴찌 팀에게 2차 지명 1라운더 지명권을 두 장 주는 제도가 남아있었으나, 쌍방울이 1차 지명 이후 10명의 특별지명을 뽑아가는 바람에 그대로 망했다. 그래도 공필성이라는 허슬플레이어를 얻은 점으로 만족해야할까. 물론 공필성의 수비력은... 박동희가 왜 1차 지명에 없나 생각할 수 있는데, 박동희는 이미 4년 전 부산고 졸업 당시 1차 지명을 받은 상태였다.(당시 1차 지명은 10명)
  • MBC 청룡 : 다이스 갓은 실재한다. 1차 지명에서 동시에 지명한 선수가 또 한 번 등장한다. 거물 포수 김동수는 OB와 MBC의 지명을 동시에 받게 된다. 그러나 MBC는 OB와의 동전 던지기에서 또 승리했다.(...) 1차 1순위에서 김동수를 뽑은 MBC는 1차 4순위에서 외야수 이병훈을 지명하며 쏠쏠한 드래프트 성과를 얻었다. 4순위 김성재는 전년도 드래프트에서 빙그레의 지명을 받았으나 입단하지 않고 다시 지명받은 선수.
  • OB 베어스 : 미래를 대비한 지명. 앞서 썼듯, 더럽게 운이 없는 OB 구단답게 결국 동전던지기에 패배, 1차 2,3순위 지명을 획득한 OB는 내야수 임형석을 지명한다. 임형석은 이후 1992년에 대폭발, 26개의 홈런을 기록한 뒤 장렬히 산화,[3] OB 베어스 반짝 전설 중 한 명으로 남게 된다. 3순위 지명자인 김경원은 연고지 내 고졸 선수의 경우 지명없이 뽑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명한 케이스로, 김경원이 대학을 목표로 두고 있었기 때문에 지명권이 보존된다는 점을 이용하여 미리 지명한 것이다. 다음 해부터는 1차 지명이 1장으로 줄어든다는 점도 고려한 것이다. 김경원은 이후 중앙대학교를 중퇴하고 입단해 1990년대 OB 베어스의 수호신으로 활동한다.
  • 삼성 라이온즈 : 1990년대 삼성 암흑기의 전조. 연고지 내에 전국구 선수가 없어진지는 좀 됐지만, 이 해에는 영남대 에이스 이태일을 제외하면 썩 좋은 선수가 없었다. 결국 한양대에서 좋은 평가를 받던 최현준을 지명했지만, 최현준은 이렇다 할 성적을 기록하지 못한다.
  • 태평양 돌핀스 : 미스터 인천과 인천야구의 허리. 김경기의 태평양 입단은 인천 야구 팬들의 오매불망의 숙원이었다. 인천 야구의 대부 김진영의 아들이었던 그는 인천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인천의 슈퍼스타였다. 이외에 특기할 선수로 순천상고를 졸업하고 연습생으로 활동하다가 지명받은 조웅천이 있다. 조웅천은 이후 20년 가까이 인천에서만 활동하며 인천야구의 허리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 빙그레 이글스 : 유능한 백업요원 장착.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갖고 있던 당시의 강력했던 빙그레 이글스였기 때문에 이 해에 좋은 선수를 많이 뽑지는 못했지만 성적은 적절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1차 지명자 지화동과 2차 1라운더 진상봉은 둘 다 좋은 백업 선수였고, 한 시즌 정도는 주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명에 매우 인색한 빙그레는 고작 이 해에 1차 지명자 두 명과 진상봉만을 영입하는데 그쳐 1990년대 중반 암흑기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화로 바뀐 이후에도 신인 지명의 소중함을 모르고 같은 실수를 한 번 더 반복하게 되는데... 그 결과가 5886899이다.
  • 해태 타이거즈 : 2차 지명 따위 버려도 선수는 들어온다. 1차 지명으로 정회열이호성이라는 걸출한 신인을 지명한 해태는 운영상의 이유로 2차 1라운드만 지명하고 모조리 패스하는 패기를 보인다. 그리고 정회열과 이호성은 1990년대 중반 해태 타이거스의 전성기를 이끌어 나가게 된다.[4] 그런데 한 선수가 은퇴 후 최악의 흑역사를 쓴다.

6. 이모저모

  • 드래프트 풀이 상당히 좋지 않았던 해이다. 1차 지명에서 쓸만한 선수가 나가고 난 뒤에 뽑은 특별지명에서조차 1군 주전 급 선수가 한 명, 2차 지명에서 5년 이상 1군에서 활동한 선수는 조웅천뿐이었다. 이것은 연고 지역 고졸 선수 우선 영입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이는데, 싹수가 보이는 고졸생들이 장종훈, 박정현 등의 성공에 힘입어 대거 프로로 진출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 쌍방울 레이더스의 1차 지명자 박찬홍은 지명 포기되었고, 다른 1차 지명자인 최해식은 박경완에 밀려 백업을 전전하다가 장채근과 트레이드 되면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며 해태 타이거스 90년대 중반의 전성기의 1등 공신이 된다.
  • 태평양 돌핀스의 2라운더 강광회는 후일 심판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 OB 베어스의 3라운더 김상진은 원래 연습생 신분으로 마산 연고지의 선수였으나, 롯데 자이언츠의 양해를 구하여 3라운드에 지명하면서 소유권을 확정지었다. 이러한 연습생 지명과 양해 시스템은 당시로써는 일반적인 것으로써, 이 해에 지명된 다른 연습생의 대표적인 사례가 순천상고 출신으로 해태 타이거스의 양해를 받아 지명된 태평양 돌핀스의 5라운더 조웅천을 들 수 있다.
  • 쌍방울 레이더스의 특별 지명자 구대진은 구대성의 형이다. 그리고 대전제일고 야구부 감독으로 고교 야구부 내 폭력에 연루되어 오점을 남겼다.
  • 삼성 라이온스의 1차 지명자 이태일은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유일한 신인 투수가 되었다.
  • OB 베어스의 1차 지명자 임형석은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였으며 1992년 홈런 레이스에 뛰어들 정도로 반짝했으나 이후 시즌에서는 부진하며 한 해 반짝 스타의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1] 1989년 연습생 입단[2] 1989년 연습생 입단.[3] 항명파동에도 연루되어 있던것이 방출에 한몫했다.[4] 정회열은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주전포수로, 이호성은 1990-2000 시즌까지 주전외야수로 활약하다가 2001 시즌 후 은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