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7 15:48:12

경복궁 하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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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경복궁
<colbgcolor=#bf1400> 경복궁 하향정
景福宮 荷香亭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건축시기 창건연대 미상 (1959년 추정)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NISI20130905_0008612071_web_59_20130905162806.jpg
<colbgcolor=#bf1400> 하향정
파일:external/img.seoul.co.kr/SSI_20130930164809_V.jpg
하향정에서 낚시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

1. 개요2. 존폐논란3. 청동 용 발견

[clearfix]

1. 개요

경복궁의 건축물. 이름 '하향정'은 '연꽃(荷) 향기(香) 정자(亭)'란 뜻이다.

정확한 위치는 경복궁 내 국보 제224호 경회루(慶會樓) 연못의 북쪽 변인데, 분명 조선시대 건물 같으나 위치 선정이 조악하기 그지없다. 건물 자체는 준수하나 벽에 너무 가깝고, 접근할 수 있는 동선이 매우 열악하다. 경복궁 내 어떠한 정보란에도 설명되지 않고 언급도 되지 않았으며 인터넷 검색으로도 정보를 찾기가 힘들다. 경복궁을 꼼꼼하게 탐방한 사람이라면 의아하게 여길 법하다.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문화재청으로서든 대한민국 정부로서든 숨기고 싶은 건물이기 때문이다. 하향정은 조선시대에 지은 것도, 조선 왕실에서 지은 것도 아니다.

이 건물의 정체는 이승만 대통령이 경복궁 내에서 휴식하고 낚시를 하고자 지은 정자이다. 광복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얼마 지나지 않아 만들어 정확한 연혁조차 모르는데, 일설에 의하면 6.25 전쟁 개전 보고를 하향정에서 받았다고 한다. 보고를 받은 곳이 경회루 혹은 창덕궁 후원이라는 설도 있다.

2013년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하향정은 대목장 제74호였던 배희한(1908~1997)이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1959년에 지었다고 한다. 그때 건립했음이 사실이라면, 이승만 대통령이 6.25 전쟁 개전 보고를 들은 곳은 하향정이 아니다.
또한, 서울을 처음으로 점령하였던 북한 제 7사단의 지휘관이 이곳에서 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2. 존폐논란

이승만은 전주 이씨 양녕대군파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 부활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공화제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막상 본인은 경복궁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하향정에서 휴식을 취했다. 현대의 대통령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엄청난 역풍에 휩싸였겠지만, 전후 복구와 경제 발전에 집중한 터라 문화재 보존과 같은 가치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할 때였고, 다들 그냥 하향정이 마치 조선왕조 시절부터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이 사실을 알리고 철거하자고 주장하여 널리 알려졌다.

이승만 대통령 지지 여부에 관계없이 문화재를 훼손한 짓거리라고 철거를 요청하는 주장과, 이 또한 역사의 일부분이고 이미 60년도 더 된 건물이면 그 자체가 문화재이니 그냥 보존해야 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문화재청으로서는 어느 쪽도 편들기 곤란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새.

이승만도 초대 대통령으로 역사고, 그렇게 따지면 후원에 있는 청와대와 경복궁내 일제시대 때 건축한 걸 관리사무실로 그대로 쓰고 있는 건물, 박물관, 카페, 화장실 다 없애야 된다. 이것만 시비하는 건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하는 이야기다.

3. 청동 용 발견

파일:경회루 연못출토 청동용 2.jpg
1997년, 경회루 못 바닥에 쌓인 흙을 걷어내는 작업을 하던 중 11월 8일 하향정 동쪽 옆 축대 아래에서 구리합금으로 만든 용이 나와 화제가 되었다. 인부들이 못 바닥에 깔린 큰 돌을 치우자 그 안에서 뻘에 파묻힌 용이 나왔다. 발견 당시에는 용이 좌우로 나뉘고 머리가 없었지만, 11일에 발견장소로부터 1 m쯤 떨어진 곳에서 머리가 나왔다. 언론들은 소식을 동년 동월 13일에 전하였다.

그렇게 발견된 금속 용은 길이가 146.5 cm, 무게는 66.5 kg이었다. 학자들은 고종 4년(1867) 흥선대원군이 경회루를 확장하던 때에 만들어 넣었으리라 추정했다. 1865-66년에 씐 《경회루전도慶會樓全圖》에 경회루를 중건하며 주역의 원리에 따라 짓되, 을 막기 위하여 경회루 못 북쪽에 구리로 만든 용 2마리를 넣는다는 내용이 있다. 1997년에 발견된 용이 경회루전도에서 넣는다고 한 구리용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또다른 구리 용이 경회루 못 바닥에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문화재전문가들은 부정적이었다. 이미 1960년대에 준설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만약 또다른 용이 있었다면, 준설작업 때 뻘에 파묻혀 발견되지 못한 채 그대로 버려졌을 거라고... 경복궁에서 화재방지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부적 등이 발견되었으므로, 구리 용도 (경회루전도의 기록대로) 불을 막으려는 주술적인 용도로 만들어 넣었을 가능성이 높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문화재>의 1998년 31권에 실린 "경복궁 경회루 연못 출토 용조각물의 과학적 분석"(강형태 등 3인)에 따르면, 구리용의 몸체는 청동, 수염은 황동인데, 몸체의 재질에 포함된 납은 한반도 북부, 수염의 납 성분은 일본 기후현 토치보라(栃洞) 광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해당 유물은 지금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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