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9 22:34:21

필리프 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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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00> 필리프 앙리 그자비에 앙투안 드골
Philippe Henri Xavier Antoine de Gaulle
파일:Philippe_De_Gaulle.webp
출생 1921년 12월 28일
프랑스 파리
사망 2024년 3월 13일 (향년 102세)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 국립병원
복무 기간 1939년~1982년
부모 아버지 샤를 드골[1], 어머니 이본 드골[2]
형제자매 여동생 엘리자베트 드골[3], 안 드골[4]
배우자 헨리에트 드골
자녀 장남 샤를 드골
차남 이브 드골
삼남 장 드골
사남 피에르 드골
종교 가톨릭 (세례명: 필립보)
신체 194cm, O형

1. 개요2. 생애
2.1. 출생과 전간기2.2. 제2차 세계 대전2.3. 전후 해군 경력2.4. 정치 활동2.5. 사망
3. 기타4. 가족 관계

[clearfix]

1. 개요

프랑스군인이자 정치인.

2. 생애

2.1. 출생과 전간기

파일:external/ecole.nav.traditions.free.fr/offici1090.jpg
젊은 시절.

1921년 12월 28일 파리에서 프랑스 육군 장교샤를 드골의 첫째이자 유일한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같은 중학교(Collège Stanislas de Paris)를 다닌 뒤 프랑스 해군에 입대하기로 결정하고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2.2. 제2차 세계 대전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프랑스 침공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해군사관생도였다. 비록 먼저 영국으로 망명한 아버지 드골 장군의 호소문을 듣지는 못했지만 자력으로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를 탈출해 자유 프랑스 망명정부에 합류, 자유 프랑스 해군의 일원이 되었다.

2차대전 동안 그는 대서양 전투에 참전했다. 1943년에 소위가 되었고 어뢰정 MTB-96부장으로 근무했다. 1944년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자유 프랑스 해군 코만도 부대 소속 소대장으로 참전했으며 프랑스 해방전에 참가해 파리 해방 때도 참여했고, 1945년까지 보주에서 싸웠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34px-Philippe_de_Gaulle.jpg
해군 코만도 소대장 시절의 필리프 드골 중위.[5]

그는 이런 공로로 추후 무공 훈장과 레지옹 도뇌르 그랑 크루아 훈장을 받았지만 해방 훈장을 받진 못했는데 1944년 프랑스 해방과 함께 임시정부 주석이 된 드골 장군이 아들에 대한 서훈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드골 장군은 아들에게 "나는 내 아들인 너를 해방의 동지로 만들 수 없었다. 어쨌든 네가 내 첫 해방 동지였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는 말로 위로했다. 드골 제독은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았겠지만, 아버지와 아들 모두 정치적인 문제 제기를 우려해야 함을 알았기에 납득했다.

2.3. 전후 해군 경력

1948년에 대위로 진급하여 1952년 제6함대에 배속되었다. 1956년에 소령, 1961년에 중령이 되었으며 진급 전인 1960년부터 호위함을 지휘하며 첫 함장 이력을 쌓았다. 진급 후에는 해군 항공대로 들어가 전투기 조종사 자격을 취득하고 1964년부터 1966년까지 파리 지구 해군 항공대장을 맡았다. 1967년에 대령으로 진급하였고 1968년까지 유도탄 프리깃 쉬프랭 함의 함장을 지냈다.
파일:external/ecole.nav.traditions.free.fr/degaulle_passerelle.jpg
쉬프랭 함 함장 시절의 드골 대령.

1971년에 준장으로 진급하면서 제독이 되었고, 해상초계항공단을 지휘했다. 1975년에 소장, 1977년 대서양전대사령관 재직 중 중장으로 진급했다. 1980년 대장으로 진급하여 해군 감찰감을 지낸 뒤 퇴역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C_et_degaulle.jpg
대장 계급 시절의 드골 제독.

이력을 보면 아버지의 후광이 아예 없었다곤 보장 못하겠지만, 드골 제독 본인이 항해 장교임에도 스스로 전투기 조종사 자격을 따는 등 꽤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2.4. 정치 활동

파일:external/i-cms.linternaute.com/1734425-philippe-de-gaulle-fils-de-charles-de-gaulle.jpg
노년의 모습.

1986년부터 2004년까지 정치가로 활동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중도우파인 프랑스 공화국연합(Rassemblement pour la République, 약칭 RPR)에서 활동했고 말년인 2002년에는 중도우파인 대중운동연합(Union pour un Mouvement Populaire, 약칭 UMP)에서 상원의원으로 활동했지만 변호사를 지낸 1948년생인 장남이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에 입당할때 엄청나게 반대를 했다.[6] 이와는 별도로 2022 프랑스 대선에서 본인의 아버지인 샤를 드골 마케팅 열풍이 광풍으로 확산되었다. 물론 본인은 제발 아버지 이름 팔아서 정치하지 말라는 반응을 보였다.

2.5. 사망

2024년 3월 12일에서 3월 13일 밤 사이 앵발리드 국립병원에서 사망했다. 향년 102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필리프 드골은 그의 아버지에게 레지스탕스에 참가하라는 부름을 이미 예상했습니다. 해군, 제독, 상원의원인 그는 프랑스의 용기의 순간에 용기와 명예를 결코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족들에게 국가적으로 조의를 표합니다."라는 추모 메시지를 발표했다.

일간지 르 몽드는 이날 그에 대해 "프랑스 해군에서 뛰어난 경력을 쌓았지만 평생을 아버지의 그늘에서 살았다"고 평가했다.#

3. 기타

  • 샤를 드골의 세 자녀 중 가장 장수했다. 심지어 가장 먼저 태어났는데도 가장 마지막에 사망했다. 키도 194cm로 어마어마한 장신인데도 굉장히 장수한 편으로, 보통 키 190대 이상의 장신은 장수에 불리하다. 작은 여동생 안은 다운 증후군으로 고생하다가 20세에 죽었지만, 큰 여동생 엘리자베트는 나름 장수하다가 2013년 89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으로 보아 어쩌면 장수에 유리한 유전자를 타고 난 것으로 보인다.[7]
  • 엘리자베트의 남편이자 자신에게는 매부이며, 드골 대통령에게는 사위에 해당하는 알랭 브와슈는 육군 장교로 2차 대전 당시 드골 부자와 함께 자유 프랑스의 일원으로 참전했으며 1971~1975년 프랑스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하였다.
파일:external/www.charles-de-gaulle.org/philippe_DG.jpg
아버지(우측 인물)와 함께 찍힌 2차대전 중의 사진.
  • 아버지가 국가원수인 시절에도 계속 군복무를 한 관계로 전시상태가 아닌 평화시에 통수권자가 본인 아버지인 몇 안되는 사례기도 하다.[8] 여담으로 위 사진에 나온 것처럼 노년기를 제외한 젊은 시절의 외모는 아버지와 붕어빵이다.
  • 골초이다. 위의 해군 코만도 시절 사진을 보면 대놓고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4. 가족 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샤를 드골/가족 관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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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90.11.22 ~ 1970.11.9 (향년 79세)[2] 1900 ~ 1979 (향년 79세)[3] 1924 ~ 2013 (향년 89세)[4] 1928 ~ 1948 (향년 20세)[5] 미 육군으로부터 지원받은 피복과 장구류에 프랑스 해군의 정모계급장 등의 부착물을 혼용했다.[6] 그냥 반대한 게 아니라 소문에 의하면 장남 보고 "교황이슬람교로 개종하는 것과 같다"고 조롱했다고 한다. 현재는 장남조차 70살이 넘는 고령으로 정계에서 은퇴했다.[7] 비단 필리프 드골과 그의 여동생 엘리자베트 뿐만 아니라 드골 가문 내에서는 장수 유전자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증조부인 '줄리앙 필리프 드골'도 당시 기준으로 는 장수에 가까운 80세까지 살았으며, 아버지 샤를 드골 역시 80세까지 생존했다. 사촌 쪽으로 가면 더 심한데, 사촌인 '주느비에브 드골 앙토니오즈 (1920 ~ 2002)'(샤를 드골의 형인 '자비에르 드골 (1887 ~ 1955)'의 1녀)를 포함해 '로저 마리 자비에 조제프 드골 (1923 ~ 2007)'('자비에르 드골'의 2녀), '미셸 카일리아우 (1913 ~ 2000)'(샤를 드골의 누나인 '마리 아녜스 카일리아우 드골 (1889 ~ 1982)'의 1남. 여담으로 그녀도 장수했다.), '프랑수아 드골 (1922 ~ 2020)', '베르나르 드골 (1923 ~ )', '장 노엘 드골 (1925 ~ 2006)', '피에르 앙리 드골 (1926 ~ )'(이하 샤를 드골의 큰 남동생인 '자크 드골 (1893 ~ 1946)'의 아들들), '샹탈 가브리엘 잔느 마리 드골 (1929 ~ 2017)'(샤를 드골의 작은 남동생인 '피에르 드골 (1897 ~ 1959)'의 1녀) 등도 장수했거나 진행 중이다.[8] 전시상태에는 예비군들도 징집되므로 사례가 흔하지만, 평시에는 민주국가에선 약간 특이한 케이스다. 드골 부자 외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미국 대통령이던 시절에 아들 존 아이젠하워가 현역 육군 장교로 근무한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