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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프랜시스 클라라 클리블랜드 프레스턴[1] Frances Clara Cleveland Preston |
출생 | 1864년 7월 21일 |
미국 뉴욕 주 버팔로 | |
사망 | 1947년 10월 29일 (향년 83세) |
미국 메릴랜드 볼티모어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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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장로회 |
최종 당적 | |
재임 | 제22대 대통령 배우자 |
1886년 6월 2일 ~ 1889년 3월 4일 | |
제24대 대통령 배우자 | |
1893년 3월 4일 ~ 1897년 3월 4일 | |
배우자 | 그로버 클리블랜드 (1886년 결혼 ~ 1908년 사별) 토마스 J. 프레스턴 주니어 (1913년 재혼) |
자녀 | 장녀 루스 클리블랜드 (1891~1904) 차녀 에스더 클리블랜드 (1893~1980) 삼녀 매리언 클리블랜드 (1895~1977) 장남 리처드 폴섬 클리블랜드 (1897~1974) 차남 프랜시스 그로버 클리블랜드 (1903~1995) |
1. 개요
미국의 제22·24대 대통령 배우자.2. 상세
1886년 백악관에서 열린 그로버 클리블랜드와의 결혼식 |
프랜시스 클리블랜드는 뉴욕에서 변호사 오스카 폴섬의 딸로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친구였던 그로버 클리블랜드와 어린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다. 폴섬이 사망한 후, 클리블랜드는 프랜시스와 그녀의 어머니를 돌보았다. 웰스 칼리지(Wells College)에 진학한 프랜시스는 이후 클리블랜드가 대통령 재임 중이던 1886년에 그와 결혼하였다. 클리블랜드와의 사이에서 5명의 자녀를 두었고, 남편의 재임 기간 동안 그녀는 백악관에서 자녀를 양육하며 가정과 공적인 역할을 조화롭게 관리했다. 남편이 재선에 실패한 후 사생활로 돌아가 아이들을 키웠으며, 그가 다시 대통령이 된 후에도 자녀를 돌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재선 후에 어린이 교육, 특히 유치원 건설에 힘썼으며, 퇴임 후에도 그녀는 교육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사회활동을 지속하여 모교인 웰스 칼리지 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클리블랜드가 사망한 후 1913년에 교수 토마스 J. 프레스턴과 재혼했다. 그녀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군사 준비를 옹호하는 등 사회 활동을 이어갔으며, 1947년 사망하여 첫 남편 클리블랜드와 함께 프린스턴 묘지에 안장되었다.
3. 여담
- 프랜시스는 미국 역대 최연소 대통령 배우자로, 당시 49세였던 클리블랜드와 21세에 결혼했다.
- 클리블랜드는 비연속적으로 두 번의 대통령 임기를 지냈으며, 프랜시스 또한 멜라니아 트럼프와 더불어 퍼스트레이디를 중임한 인물이다.
[1] 결혼 전 성 폴섬(Fols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