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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역사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평택시

1. 개관

역사적으로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3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 기준선은 안성천과 진위천의 두 하천으로서, 진위천 서부의 광활한 평야지역(안중을 중심으로 한 서부)은 수원, 안성천 이북(진위, 송탄, 평택 시가지 일대)은 진위, 안성천 이남(팽성읍)은 평택[1], 이렇게 세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렇게 세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던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조선시대엔 저 하천들이 감조하천이라 바닷물이 들어오던 하천들로, 사실상의 바다로 보면 된다. 이는 조선시대의 교통 수단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던 대상들이었고, 자연스럽게 행정구역이 서로 다르게 되는 이유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팽성 밑에 있는 아산시 둔포에도 아산만 방조제가 건설되기 전 까지는 바로 동네 앞까지 바닷배가 들락날락 하던 곳이라 포(浦)라는 이름이 붙었고, 평택 한복판이라 할 수 있는 지금의 군문교(옛 군물포) 근처까지 바닷배들이 들락날락 거렸다. 아직도 세개의 권역으로 알게 모르게 서로 나뉘어져 있는 이유가 바로 하천을 비롯한 지형의 영향이다.

2.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

구 진위군 일대는 백제의 아술현(1914년까지 구 아산군 지역)에 속하였다. 그러다가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 이후 부산현이 되었다.[2] 한편 구 평택군 일대는 삼국시대 하팔현이었다.

통일신라 경덕왕 대에 부산현이 진위현으로, 하팔현이 팽성현으로 개칭되었다.

3. 고려

태조 때 팽성현이 평택현으로 개칭되었다.

공민왕 대에 진위현, 평택현은 충청도에 속하였다.

4. 조선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설명태조 때 진위현이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편입되었다. 평택현은 연산군 대에 처음으로 경기도로 편입되었다. 그 이유는 금표(왕 전용지, 민간인 출입 금지)의 지나친 확장으로 경기도의 관할구역이 축소되자, 평택·진위 등의 몇몇 군현을 충청도에서 떼어다 붙인 것. 중종 대에 다시 충청도로 복귀했으나, 고종 대에 이르러 진위군은 경기도로 다시 편입되었다. 그러나 평택군은 1914년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 여전히 충청남도 관할로 남아 있었다. 안중면은 충청도 직산현의 월경지였다. 당시의 안중면과 지금의 안중읍(면)은 중심지가 안중리라는 것만 빼면 다 다르지만.

파일:평택_1895년.png
구한말 평택, 진위, 수원의 행정구역 상황. 1906년 양성군과 직산군의 월경지는 주변 군현으로 편입되며 일괄적으로 정리된다.

5. 일제강점기

파일:평택_1914년.png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당시 평택·진위·수원의 일부를 통합하여 출범한 진위군의 행정구역 상황. 자세히 알고 싶으면 여기

1914년 진위군, 충청남도 평택군 및 수원군의 일부를 진위군으로 통합하면서, 현재의 평택시 영역이 확정되었다. 이 당시 진위군청은 북면(현 진위면)에 두었다가, 1926년 병남면으로 이전하였다. 1931년 병남면이 평택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34년 부용면과 서면이 팽성면으로 통합되었다.

이후 1938년 진위군이 평택군으로 개칭되고, 동시에 평택면이 평택읍으로 승격되었다.

6. 대한민국

파일:평택군 군기.svg 파일:송탄시기(1981-1994).svg 파일:평택시 시기(1986-1995).svg
도농복합시 출범 이전의 평택군, 송탄시, 평택시 깃발
파일:평택시 CI(1995-2020).svg
1995년 통합 이후 2020년까지 사용한 평택시 로고
해방 이후 1948년 북면을 진위면으로 개칭하였다. 1963년 송탄면이 송탄읍으로, 1979년 팽성면이 팽성읍으로 승격되었다.
  • 1995년 평택시·송탄시·평택군 통합 직전 행정구역 상황.
    파일:평택_1995년.png

1981년 송탄읍이 송탄시로 승격[6]되어 분리되었다. 1983년 안성군 원곡면 용이리, 죽백리, 청용리, 월곡리, 공도면 소사리가 평택읍으로 편입되었으며, 1986년 평택읍도 평택시로 승격되어 분리되면서 송탄시, 평택시, 평택군의 3개 행정구역이 공존하게 되었다. 1987년엔 화성군 양감면 고렴리가 청북면에 편입되었으며, 1989년 오성·청북·포승·현덕면의 각 일부를 떼어내어 안중면을 신설하였다. 그러다가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와 함께 송탄시, 평택시, 평택군이 다시 통합되어 오늘날의 도농복합형 평택시가 되었다. 이 때, 진위면 갈곶리, 청호리, 고현리의 일부가 오산시에 편입되었다. 이후 2002년 안중면이 안중읍으로, 2006년 포승면이 포승읍으로, 2016년 청북면이 청북읍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른다.

[1] 정작 현재의 평택 시가지는 원래 평택이 아니라 진위의 영역이었다.[2] 부산이라는 명칭 자체는 백제시대 기록에서도 나온다.[3] 지금의 진위면, 서탄면, 고덕면 중 두릉천 이남 지역, 송탄, 평택 동지역[4] 지금의 팽성읍. 역사적으로 평택은 쭉 충청도에 속했다. 1896년까지는 충청도 평택현, 1914년까지는 충청남도 평택군이었다.[5] 지금의 안중읍, 포승읍, 청북읍, 오성면, 현덕면, 고덕면 중 두릉천 이북 지역.[6] 읍 승격은 송탄이 평택보다 늦었으나, 시 승격은 오히려 송탄이 더 빨리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