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11 15:18:32

제3지대/대한민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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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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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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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정주영, 박찬종, 이인제, 정몽준, 안철수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제3지대에 대해 다룬다.

대한민국민주당계 정당보수정당이 1990년 삼당합당 이후 양당 체제를 구성해 왔다.[1] 이 때문에 거대 양당에 반대하는 제3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으며, 일부는 실제 창당으로도 이어졌다.

성향은 상황, 세력 등에 따라 제각각이지만 대체적으로 거대양당 비판과 중도주의 표방,[2] 지역 홀대론, 인물론, 무당층과 정치적 무관심층 포섭을 기조로 두는 편이다. 이 같은 특수성 탓에 국회에서 제1당을 노리기 보단 유의미한 의석을 얻어 캐스팅보트를 노리는 경우가 많다.

2. 역사

한국에서 제3지대라 불린 정당의 역사를 보면 많은 국민적 요구가 뒷받침된다기보다는 으레 일정 비율은 있는 양당 정치에 질린 내부의 불만과, 꾸준하게 제3지대를 요구하는 민심을 파고 들어 정주영, 김종필, 이인제, 손학규, 안철수 등 독자적인 세력을 꾸릴 만한 정치인과 강력한 물주들이 연합하여 생기기 시작한 경우가 많은 편이었다. 대한민국의 정당법 특성상, 정당 설립과 지역당 구성등 정당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드는 돈이 민주주의 국가들 중에선 가장 크고, 그나마도 당명과 정당 유지를 위해 꾸준히 선거 때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득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지역 몰표건 전국적인 팬심이건 득표를 해올 유력한 중앙정치인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

이중에서도 사실 의석수나 지속성 측면에선 안철수, 김종필 외엔 크게 유의미한 세력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주영의 정당은 정주영이 돈이 많아서 당세는 꽤 셌으나 정주영 본인이 정치인으로써는 함량 미달이다 보니 그 기간이 짧았고(물론 정주영 본인의 정치 행보만 따지자면 대북사업 등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지긴 한다), 심지어 김종필도 60년대부터 정치를 시작해 주류 스펙트럼에서 놀다 점점 밀려나서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제3지대로 간 양반인걸 고려하면 사실 정계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풍을 일으켜 그것도 꽤 장기간 정치 세력을 유지한 케이스는 안철수가 거의 유일하다. 그것조차 2020년대 들어선 거의 꺼져가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을 따르는 정치인도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숭고한 이유를 가지기보단 그냥 거대 양당이 싫어서 혹은 그 내부의 정쟁에서 패한 이후 나온 이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큰 규모를 갖췄던 일부 제3지대 정당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보수정당의 안티테제라 할 만한 특징도 가지고 있었다. 제3지대 정당이라고 평가받는 세력은 모두 전국정당을 운영할 수 있는 운영비를 댈 수 있는 유력한 자본가가 한명은 필수적으로 있고, 대표가 될만한 전국구 정치인과 관련된 강력한 지역 기반 하나를 얹고, 다른 지역기반에서 높은 중도 확장성 덕에 양당을 위협할 수 있을 수준의 성과[3]를 낸 적은 종종 있었지만 결국 선거구제 문제 등으로 인한 양당 정치의 한계상 정당의 지속 가능성에서 문제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4]

이 때문에 한국 정당사에서 제3지대 정치세력은 지나친 고비용 정치 특성상 극우건 청년이건 정체성 정치를 주로 하는 정당은 대부분 누군가의 자본 지원을 받아도 꾸준한 득표를 책임질 전국구 정치인이 없어서 늘상 실패하고, 특정 지역기반을 바탕으로 한 홀대론 혹은 거대양당을 비판하는 대안정당에서 출발한 경우가 대다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늘 구심점이 될 지역 보스급 보수 정치인이 한 명 씩은 있고, 지역 자본이 십시일반 모으면 어떻게든 정당 하나 만들 정도의 돈은 충당이 되기 때문이다.[5]

2.1.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 제14대 대통령 선거

제3지대라는 명칭이 등장하지는 않던 시절이었지만, 90년대엔 대안정당격 제2야당으로 활동했던 정주영통일국민당이 존재했다. 통일국민당은 한국의 첫 제3지대 정당으로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정주영이 反YS, 非DJ 지역인 강원도[6], 충청도, TK, PK를 중심으로 공략해 제3신당으로 자리매김한 정당이었고 92 총선에서 신승을 거뒀으나, 92 대선에서 패배를 기점으로 몰락한다. 대선 패배 이후 정주영이 통일국민당을 탈당하면서 당은 구심점을 잃고 말았고, 대다수의 당직자들이 민주자유당으로 이동하였다.

같이 출마한 정주영의 존재감이 강해 묻히는 경향이 있지만, 박찬종신정치개혁당 또한 나름 돌풍을 일으켰다. 14대 대선에서 지역 기반도 없는 군소정당 소속으로 오직 박찬종이라는 이름값 하나로 6%를 득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러나 신정당은 박찬종 1인에 의존하는 정당이라는 한계가 있다.

이때문인지 신정당은 낙동강 오리알이 된 통일국민당과 합당해 신민당(1994년)을 창당한다. 그러나 김동길과의 갈등으로 인해 창당대회 과정에서의 각목 난투극으로 인해 이미지가 손상되었으며, 그 후 김동길은 정계를 은퇴하였고, 박찬종은 계속되는 선거 낙선으로 인해 정계를 은퇴하고 만다.

1995년, 민주자유당에서 갈라져나온 김종필을 위시한 충청권 올드보이들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다. 자민련은 '정통보수론'을 내세워 민주자유당을 저격하였으며, 충청 지역주의를 자극하는 '핫바지론'을 내세워 지지기반을 만들었고, 96 총선으로 세를 불려 97 대선에선 DJ와 손을 잡으며 제2야당과 이후 공동여당 역할도 한동안 어느 정도 수행했으나, 오직 충청권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한계가 있었으며, 전국정당과 지역정당에서 갈피를 못 잡으며 좌고우면하다 결국 17대 총선 국면에서 김종필의 낙선과, 심대평국민중심당 창당으로 인해 구심점을 잃어 해산하고 만다.

2.2. 제15대 대통령 선거 ~ 제17대 대통령 선거

신한국당이인제 후보는 이회창이 이긴 97 경선 결과에 불복한 뒤 신생정당인 국민신당을 창당해 제3의 후보 길을 걷는다. 처음에는 이회창을 제치고 여론조사 2위에 오르는 기염을 보였으나 신생정당의 조직력 한계로 중장년층의 지지를 잃어 3위로 추락한다. 그러나 김대중이회창 둘 다 불신하는 청년들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해 19.2%를 득표한다. 이후 신한국당으로 돌아가진 못하니 DJ에게 가서 실제 2002 민주당 유력 대선후보로도 거론되었지만,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역습을 당하며 대권 자리를 또 내주고 만다. 이후 2007 대선 국면에서는 빈껍데기 정당이 된 민주당(2007년)을 빈집털이 하면서 대선 후보로 출마했으나 0.7%의 득표율을 받고 유력 대권주자로서의 위치를 상실한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 탈락자들이 모여 결성한 민주국민당(2000년)이 창당되었다. 김윤환, 조순, 이수성 등 거물 정치인들이 모여있던 정당이었으나, 의석을 2개밖에 건지지 못하며 참패하였다. 그나마 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과 함께 삼중 연립정부를 이뤘던것이 큰 족적이라 볼 수 있다.

2002 대선 국면에서 제3지대 진영으로 분류되었던 후보로는 정몽준, 박근혜, 이한동 세 인물이 있었으며, 정몽준은 노무현과의 단일화, 박근혜는 한나라당으로 복당, 오직 이한동만이 하나로국민연합을 창당해 독자 출마하게 된다. 그러나 이한동은 0.30%라는 저조한 득표율로 낙선하고 만다.

2007 대선 국면에서는 창조한국당문국현 후보가 공약의 경쟁력이 강하다는 이유로 이명박정동영도 불신하는 청년층들의 대안으로 떠올랐고, 특히 인터넷에서의 지지세가 강해 인터넷 대통령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결과는 5.83%로 다소 아쉬운 득표율을 얻었으나 20대에서 15.9%를 득표해 3위를 기록하면서 청년층에서의 지지가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창조한국당은 문국현의 지역구 당선과 비례대표 2석을 얻으면서 나름대로의 성과를 얻었으나, 정반대의 성격인 자유선진당과의 교섭단체 설립으로 인해 개혁 성향의 지지층을 잃어버렸으며, 문국현 대표의 공직선거법위반으로 인한 국회의원직 박탈로 인해 몰락하였다.

2.3. 제18대 대통령 선거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2012년 정계 입문 이후 본격적인 대권주자로 떠오른 안철수는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한 대선이 끝난 이후 젊은층과 진보, 중도층의 지지를 등에 업고 12월에 '국민과 함께 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를 출범한다. 이른바 새정치연합은 창당 선언과 동시에 민주당, 새누리당의 지지율을 흡수하고 단숨에 26%라는 지지율을 얻게 된다. 그러나 윤장현, 윤여준 등 과거 자민련의 실패 이유로도 지적되던 올드보이 영입에만 골몰하게 되고 지지율이 허수라는 비판까지 띄며 주춤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3월 2일 돌연 민주당과 합당을 하며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다.

그러나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이 일어나며 천정배, 안철수, 박주선, 김한길 등은 다시 제3지대론을 꺼내든다. 그러면서 각자 국민회의, 국민의당, 통합신당 등 정당을 창당하고 후엔 다들 국민의당으로 합당한다. 국민의당은 20대 총선에서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38석이라는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게 되나 2017 대선 이후 민주당에 지지층을 뺏기며 또다시 부진을 낳게 된다.

한편, 보수진영은 20대 총선의 패배에 이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당시 새누리당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친박과 박근혜가 국민의 지지를 잃어버렸음이 만천하에 알려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개칭한 후에도 당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비박계들이 새로 정치판을 짜기 위해 뭉친 세력으로, 김무성, 유승민, 정병국, 원희룡, 정운찬 등이 주력이었다. 주력 중 친이계는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하며 제3지대론을 주장하고 친무, 친유계는 바른정당을 창당하나 결국 자력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만 입증한 채 얼마 가지 않아 자유한국당으로 합당되거나 사라진다. 그나마 이후 총선을 통해 친박계 의원들이 몰락하고 비박계가 당권을 장악하긴 한다.

어쨌든, 서로 부진을 겪고있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서로 합당해 바른미래당을 창당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국민의당 내부의 호남계가 이탈하였고, 지방선거에서의 참패로 인해 내분이 생겨 결국, 보수계는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하고 훗날 미래통합당으로 합당되었고, 안철수 역시 바른미래당을 빠져나와 국민의당(2020년)을 창당하였다. 국민의당은 21대 총선에서 비례 3석이라는 애매한 성적표를 받았고,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안철수가 후보로 등판했으나, 여론조사에서 밀려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를 하였다. 결국 2022 대선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하고, 국민의당도 국민의힘에 흡수합당 되면서, 사실상 안철수 스스로 극중주의, 새정치론을 포기하게 되었다.

한편, 바른미래당에 잔류한 손학규 대표는 제3지대 통합과 관련해 “한국정치의 구조를 바꾸기 위한 제3지대 중도 통합은 대안신당, 민주평화당 등 기존 정당과의 통합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지만, 이들 정당과의 통합은 필수적 요소”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위해, 민생중심의 실용적 중도 개혁 정치의 발전을 위해 저를 바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호남을 구심점으로 하는 정당으로 탄생한 민생당은 2020년 2월 24일 바른미래당, 대안신당, 민주평화당과 무소속 의원 등이 통합하여 창당하게 된다. # 그러나 민생당 손학규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제21대 총선에서 완패하게 된다. # 이후, 민생당은 영향력 없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2.4. 2023년 제3지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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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유력 정치인 + 지역기반을 기본으로 깔고 갔던 기존의 제3지대 정당과 달리, 오직 거대양당을 불신하는 무당층 포섭만을 기조로 두는 것이 특이점이다. 다만 기존의 제3지대 공식에 따라 유력 정치인 + 지역기반 형식으로 표현해보자면 개혁신당 측은 이준석 + 경기남부 정도로 치환이 가능하고 새로운미래 측은 이낙연 + 호남 (광주·전남·전북) 정도의 표현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는 개혁신당만 절반의 성공을 거두긴 했다. 새로운미래김종민 공동대표가 당선되었으나 세종특별자치시 갑에서 알 수 있듯 어부지리의 결과였고, 이낙연 공동대표는 광산구 을에서 선거비 보전도 받지 못하는 수준의 처참한 성적과 자유통일당녹색정의당보다도 낮은 비례대표 득표율을 받으며 향후 정치 생명이 매우 위태로워졌다. 반면 개혁신당이준석 대표가 화성시 을이라는 험지에서 3자 구도를 깨고 승리했으며, 예상보다 다소 낮은 비례대표 득표율을 얻었으나 결국 봉쇄조항을 뚫고 2명의 비례대표 후보를 당선시켰다. 그러나 국회의원을 3명밖에 배출하지 못한 탓에 단독 원내 활동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2.5. 제21대 대통령 선거 ~ 현재

22대 총선 이후 살아남은 개혁신당은 이후 새로운미래김종민이 탈당하면서 원내 유일 제3지대 정당이 되었다. 이후 개혁신당은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이준석 후보를 출마시켜 8.34%를 득표했다. 특히 출구조사상으로 20대 남성에서는 1위를 기록하는 등 괄목할 성과도 이루어냈다

3. 정당 목록

4. 주요 사례

정부/국회/선거 정당 주요 인물 성과 비고
14대 총선

정주영 35석
1회 지선

[[자유민주연합|
자유민주연합
]]
김종필 4명
15대 총선 50석
국민의 정부 연립정부 [7]
2회 지선 4명
국민의 정부

김윤환 연립정부 [8]
3회 지선

[[자유민주연합|
자유민주연합
]]
김종필 1명
4회 지선

[[민주당(2005년)|
민주당
]]
한화갑 2명
18대 국회

이회창 공동교섭단체 [9]


문국현
5회 지선

이회창 1명
20대 총선

[[국민의당(2016년)|
국민의당
]]
안철수 38석
20대 국회

[[민주평화당|
민주평화당
]]
정동영 공동교섭단체 [10]


[[정의당|
정의당
]]
심상정


[[바른미래당|
바른미래당
]]
손학규 공동교섭단체 [11]


[[민주평화당|
민주평화당
]]
정동영


박지원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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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 정부 국민의 정부
역사 틀:제3지대의 계파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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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년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보면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이 300석 중 283석(민주-180석, 국힘-103석)을 챙겨 의석을 양분했다.[2] 물론 진짜 중도인 경우도 있고, 그냥 좌우 지지층 흡수하고자 중도 코스프레를 한 경우도 있었다. 예외적으로 자유민주연합은 대놓고 강경보수를 표방했다.[3] 대선에서 득표율 15% 이상(선거비 전액 보전 가능 수준) 득표, 총선에서 단독으로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를 구성, 지선에서 광역자치단체장을 최소 한 석 이상 얻는 경우를 말한다.[4] 예시로,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은 정주영이 탈당하자 맥없이 무너져버렸고,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호남 토호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분열되어버렸다.[5] 이 때문에 현재 지방소멸 가속화로 인해 언젠가 대한민국에 완전히 지역정당이 생존 불가능하게 될 상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 서울과 경기의 경우는 이미 양당이 다 먹고 있어 제3지대를 할 파이가 나오지 않고, 나머지 메가시티 후보 도시들의 지역 재정상태는 날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6] 본인 고향이기도 하다. 정확하겐 이북에 있는 강원도 통천군 지역이 고향.[7] DJP연합으로 인한 연립정부 구성[8] 자유민주연합과 함께 3당 연립정부 구성[9] 공동교섭단체인 선진과 창조의 모임 출범.[10] 공동교섭단체인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 출범.[11] 무소속 1명과 함께 공동교섭단체인 민주통합의원모임 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