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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우사관/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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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학자/정치인/언론인
2.1. 가세 히데아키(加瀬英明)
2.1.1. <추한 한국인> 출판
2.2. 고보리 게이이치로(小堀桂一郎)2.3. 나카니시 데루마사(中西輝政)2.4. 니시오 간지(西尾幹二)2.5.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2.6. 사쿠라이 요시코(櫻井よしこ)2.7.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2.8. 와타나베 쇼이치(渡部昇一)2.9. 후지오카 노부카쓰(藤岡信勝)2.10. 무로타니 가쓰미(室谷克実)2.11.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2.12. 미쓰하시 다카아키(三橋貴明)2.13. 후루타 히로시(古田博司)2.14. 다케다 츠네야스(竹田恒泰)2.15. 하타 이쿠히코(秦郁彦)2.16. 하나다 가즈요시 (花田紀凱)2.17. 아리마 테츠오 (有馬哲夫)
3. 군인
3.1. 다모가미 도시오 (田母神俊雄)
4. 넷 우익계 신보수/혐한론자
4.1. 다카다 마코토(髙田 誠)4.2. 교모토 가즈야(京本和也)
5. 만화가/소설가/방송인
5.1. 햐쿠타 나오키(百田尚樹)5.2. 사토 후미코(佐藤文子)5.3. 마츠모토 히토시(松本人志)5.4. 미우라 루리(三浦瑠麗)
6. 비일본계 일본 우익사관론자
6.1. 대한민국6.2. 서구권
6.2.1. 토니 마라노(Tony Marano)6.2.2. 켄트 길버트(Kent Gilbert)6.2.3. 피피(フィフィ, Fifi)6.2.4. 막스 폰 슐러(Max von Schuler)6.2.5. 제이슨 모건(Jason Morgan)6.2.6. 존 마크 램지어(John Mark Ramseyer)6.2.7. 안드리 나자렌코(Андрій Ігорович Назаренко)
6.3. 중화권
6.3.1. 금미령(金美齡)6.3.2. 황문웅(黃文雄)6.3.3. 석평(石平)6.3.4. 손향문(孫向文)6.3.5. 리 소테츠(李相哲)
7. 참고 자료8. 관련 문서

1. 개요

일본의 극우사관을 제창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학자 및 작가 등을 정리한 목록이다.

2. 학자/정치인/언론인

2.1. 가세 히데아키(加瀬英明)

1936년 12월 22일 ~ 2022년 11월 15일

부친은 구 일본 제국-일본국의 외교관이었던 가세 도시카즈. 이 인물에 대해서는 일본군/인물에 짧게 서술되어있다. 모친은 일본흥업은행총재 오노 에이지로(小野英二郎)의 딸이다.[1]

게이오기주쿠대학을 졸업 후 미국의 예일 대학, 콜롬비아 대학에서 유학하였고, 1968년부터 1970년까지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초대편집장으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연애했던 여인중에는 재일한국인도 있었는데, 죽을때까지 철처히 갈취하려는 목적이었다. (시사IN) 해당 기사에서는 의문사 설을 제기하고 있다.

후소샤를 대신하여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약칭 새역모)의 교과서를 간행하는 지유샤(自由社)[2]의 대표이사이며, 우익잡지 월간 자유의 편집의원대표이다. 또 일본의 전국 우익조직 '일본회의(日本會議)'의 대표위원이며 도쿄본부장이다. 일본에서는 '외교평론가'라는 직업으로 소개되어 있지만, 외무성(한국의 외교통상부)에서 근무한 기록은 전혀 없다.

2014년에는 <영국인 기자가 본 연합국 전쟁사관의 허망>이라는 책의 일본어판에서 인용된 헨리 스톡스 NYT 전 도쿄 지국장의 발언을 난징 대학살 부정론으로 날조한 사건이 있는데, 헨리 스톡스의 발언을 번역한 것은 후지타 히로유키지만, 가세 히데아키가 일본어판 출판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있다. #

주전장에서도 당연히 까는 대상으로 등장. 주전장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포르노처럼 과도한 관심을 가지게되는 '멍청한 문제' "라면서 일축했고 "중국이 붕괴하면 한국은 일본밖에 의지할수 없다. 그러면 한국은 자동으로 친일국가가 된다. 한국은 버릇없는 꼬마처럼 귀여운 나라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나라."라며 고도의 집착을 보이는듯한 조롱을 했다. 난징 대학살 부정론은 덤.

2022년 11월 16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2.1.1. <추한 한국인> 출판

1993년에 일본에서 박태혁이라는 가명을 써서 <추한 한국인>(출판사: 코분샤)[3]이라는 책을 썼는데, 30만부나 팔렸다. 책의 내용은 익명의 한국인 저자가 쓴 자기 비판서 형식으로, 일제의 한국통치를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한국인에게 식인습관이 있다는 등의 비상식적으로 왜곡된 내용도 담겨 있다. 그러나 도쿄 특파원 소속으로 활동했던 어느 한국 언론의 한국인 기자에 의하여 이 책의 실 저자가 카세라는 사실이 밝혀져 큰 파문이 일었으며, 이후 이 파동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입국이 금지되었다. 웃기게도 이 파동으로 인해 입국을 금지당하기 전까지 그는 군사정권 시절 청와대를 넘나들며 대일외교의 파이프라인을 자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한국에서 열린 학술회의등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가 한국 관련 자료를 수집한 경위는 당시 대한통운 직원의 아들이 일본 불법체류문제로 인해 고민하고있었는데, 그 직원 부친에게 "아들의 비자 서류를 준비할테니, 한국 전통 문화 및 역사에 관한 자료를 준비하라"라면서 비자서류를 미끼로 자료를 수집해서 이 책을 쓰는데 보탬이 된다. 그 대한통운 직원의 아비는 이런 미끼에 말려들었을 줄도 몰랐을것이다.
(그것이 알고싶다/SBS뉴스 내용)

이후 <추한 한국인>은 재특회 등 일본 내의 신흥 우익에게는 거의 경전처럼 취급되는 책이다. 특히 혐한초딩들의 재일교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대부분 이 책의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재일교포들의 발생원인에 대한 내용을 들 수 있는데 <추한 한국인>에서는 한국을 완전히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도로 묘사하며 재일교포들도 자발적으로 그런 한국을 빠져나와 "살기 좋은" 일본으로 몰려온 것으로 설명한다. 물론 개소리이다. 현대 재일교포 상당수는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한국인 전쟁 피해자들의 후손이다. 다만 알려진 거와 달리 대부분 재일교포가 일제 징용만으로 끌려왔다는 소리는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는데 관동지진,3.1운동전에는 제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다수의 노동자가 건너왔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농촌의 급속한 지주화로 인한 잉여 노동력의 일본 유입이다. 물론 관동지진이후 치안유지의 명목으로 제주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입국(?)이 철저히 통제되었다. 그리고 중일전쟁 시기부터 노동력이 부족한 군수기업에 몰빵을 넣었다. 당연히 대우는 좋지 않고.

김완섭, 오선화(고 젠카), 최기호 등의 일본에서 활동하는 반한 작가들을 배후에서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뉴스위크 국제판에서 일본의 침략을 옹호, 미군 기록에 위안부는 창녀라고 적힌 점을 들먹여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다만 유의할 점이 있다면 저 뉴스위크 국제판은 미국 본토가 아닌 미국 외의 국가에 세계적으로 나가는 판본이다.

하지만 1996년 추한 한국인 2를 썼다가 전권과 달리 판매가 부진했고 덤으로 이 책을 썼다는 다른 인물과 저작권 수익 분쟁을 벌이면서 이게 일본인이 한국인 가짜 이름으로 쓴 게 더 확실하게 일본에서도 드러났다. 우습게도 이전만 해도 박태혁이란 한국 이름을 들먹이며 혐한우익들이 한국인의 진지한 자기 고백이라고 개드립치다가 이런 일이 벌어지자 일본인의 진지한 한국인 연구라고 역시나 개소리로 싹 태도를 바꾸며 옹호하고 있다. 덤으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90년대 초반에 다룬 바 있는데 진짜 박태혁이라는 재일교포가 나와서 이 쓰레기 책자 때문에 내가 억울하게 욕을 먹는다고 분노에 찬 말을 일본어로 쏟아부으며 인터뷰하기도 했다...
당시 SBS 박수택 기자의 취재와 그 뒷이야기를 다룬 기사 (미디어오늘)

2.2. 고보리 게이이치로(小堀桂一郎)

1933년 ~

도쿄도 출신. 도쿄대학 문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86년부터 1995년까지 도쿄대학 교수를 지낸다. 95년부터는 메세 대학 일본 문화 학부 언어 문화학과 교수로 취임하여 2004년에 정년 퇴직해 지금은 명예 교수로 있다. 극우사상을 주장하는 대표 학자 중 한 사람으로서, 역사 갈등이 불거진 1980 년대 초부터 역사 문제에 대한 활발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극동군사재판을 비판하며 소위 '자학사관'에서의 탈피를 주장한다. 극우단체인 '일본회의'의 부회장, '교과서 정상화 국민회의', '천황폐하의 방한(訪韓)문제를 생각하는 모임' 등의 다양한 정치활동에 참가했다.

2.3. 나카니시 데루마사(中西輝政)

1947년 ~

쿄토대학 및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한 국제정치학자. '반격하는 보수에 의한 일본의 재생'을 주장하며 왕성한 집필과 강연을 하는 대표적인 우익학자이다. 일본은 '해양국가'이며 따라서 영미식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황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국내에서 출판된 책 중 유명한 것으로는 <대영제국 쇠망사>가 있다.

2.4. 니시오 간지(西尾幹二)

1935년 ~

도쿄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독문학자이다. 보수계 문화인으로서 1970년대 후반부터 일본 내의 외국인 노동자의 법적 폐해 등에 관하여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우익 논객으로 등장하였다. 1996년 후지오카 노부카쓰(藤岡信勝)와 함께 새역모 창설을 주도하고 1997년에 새역모 초대회장을 맡았다. 하지만 2006년 1월 "젊은 사람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새역모를 탈퇴했다.

2.5.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1956년 ~

일본 국제기독교대학(ICU)을 졸업하고, 도쿄기독교대학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레이타쿠(麗澤)대학 객원교수, 모라로지연구소 역사연구실장/교수. 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 회장이다. 납북 문제, 납북 일본인 문제와 관련해선 선구자격인 인물로 근 30여년 이상을 이 문제에 매진해왔다. 납북자 문제에 대해 아베 신조 총리에게 많은 고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래서 시마다 요이치(島田洋一), 이토 테쓰오(伊藤哲夫), 나카니시 데루마사(中西輝政), 야기 히데쓰구(八木秀次)와 함께 아베 신조의 브레인 5인조의 한 사람이라고 도쿄신문이 보도하기도 했다.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간 연대를 주장하고 있으며, 일본 보수와 한국 보수의 중개자 역할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일본 보수이지만 사쿠라이 요시코와 같이 한국 보수에 대해서 만큼은 호의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진보에 대해서는 적대적이다. 한국어가 유창하며 조갑제와의 친분으로 조갑제닷컴에도 빈번히 출연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도 일본내 입지가 있는 논객이며 '강제연행설'과 '성노예설'을 부정하는 입장이다. "위안부 첫 증언자인 김학순 씨는 부모에 의한 인신매매의 경우였음에도 아사히신문정신대로 강제연행당했다고 조작해 보도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가 해당 기자에게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2.6. 사쿠라이 요시코(櫻井よしこ)

해당 문서 참고

2.7.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

1930년 ~ 2014년

도쿄대학 법학부에 재학하고 있던 중 외교관 시험에 합격한 외교관 출신의 외교평론가이다. 새역모 찬동자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 태국 대사 등을 역임했다. 친미 우익의 대표 논객으로서 '오카자키 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했다. 자민당 기관지에 항상 기고나 대담 기사가 나올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2.8. 와타나베 쇼이치(渡部昇一)

1930년 ~ 2017년

영어학자. 일본 조치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일본 우익 논단의 일각을 점하는 사람으로서 전문 영어학 이외에 엄청난 수의 역사 이론, 정치, 사회 평론을 썼다. 유명한 우익 월간지인 <WiLL>을 포함하여 우익 사상을 전하는 대부분의 매체에 기고했다. 일본 최대 우익조직인 '일본회의'의 기관지에 늘 수필이나 대담을 게제한 적이 있다.

1996년을 기점으로 사실상 지금의 혐한 고젠카를 만들어낸 인물로 고젠카를 고발한 PD수첩 방영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2.9. 후지오카 노부카쓰(藤岡信勝)

1943년 ~

홋카이도대학 교육학부를 졸업했으며, 현재 우익 학자들의 총본산지인 다쿠쇼쿠(拓殖)대학 '일본 문화 연구소'의 객원교수로 있다. 소위 '자학사관'을 부정하는 '자유주의사관 연구회'의 설립자이다. 1996년 니시오 칸지와 함께 새역모를 설립하였다. 2005년도판 새역모 역사교과서의 대표 집필자를 지냈으며, 현재 새역모의 이사이다. 과거를 반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한국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계속해서 표현하고 있다.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줬다"는 망언을 시전한 장본인.

2019년에 개봉한 영화 주전장에서 이 인물과의 인터뷰가 나왔는데 “국가는 사죄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는 예를 들어 그것이 진실이라고 해도 사죄를 하는 순간 끝입니다”라는 황당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출처

2.10. 무로타니 가쓰미(室谷克実)

1949년 ~

한국을 싸잡아 비난할 정도의 악명높은 인물로도 알려진 인물이다. 지지통신 정치부 기자를 거쳐 동사의 서울특파원을 지내기도 했고 2009년에 정년퇴직했다. 이 사람은 한국을 맹비난하는 책을 여러 차례 낸 적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저서로는 <한일이 터부시하는 반도의 역사>가 있고, 2013년 <악한론(또는 오한론)>을 출판해서 신극우파들에게 흥행했으며, 이는 제2의 혐한류 신드롬에 비견될 정도다. 이후 악한론의 후속작인 <매한론>, <보한론> 등 ○한론 시리즈를 출판했고 이것도 꽤 흥했다.

2024년 7월 28일에는 산케이신문의 자매지인 주간후지에 “파리 올림픽 보도가 적은 한국, 선수단은 도쿄 올림픽의 60%, 단체 종목은 여자 핸드볼뿐”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칼럼에서 "스포츠 강국이라고 자부해온 한국 언론이 파리올림픽 동향을 작게만 전하고 있다"라며, "파리올림픽에 참여하는 한국 선수단 규모가 도쿄올림픽 당시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에게 파리올림픽은 침한(침몰하는 한국)의 상징"이라고 발언했다.

또 "도쿄올림픽 당시 한국 언론은 개막 몇 달 전부터 방사능 대국 일본을 찾아다니는 데 혈안이 됐다"며 "그에 비해 이번에는 눈에 띄는 경기장 소개 예고 기사도 없다. 때려잡아야 할 야만국 일본에서 존경해야 할 문화대국 프랑스로 무대가 옮겨졌냐"라며 도쿄올림픽 당시 한국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도 원색적으로 비난해 국내에서 논란이 되었다.

2.11.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항목 참조.

2.12. 미쓰하시 다카아키(三橋貴明)

1969년 11월 22일 ~

트위터

경제평론가, 컨설턴트('중소기업진단사'라는 국가 자격#을 가지고 있다). 본명은 나카무라 다카시(中村貴司). 도쿄도립대학 경제학부 졸업.

경제인답게 경제적으로 한국을 많이 깠었다. 한때 한국경제는 붕괴한다고 노래를 불렀던 수준. 그의 옛 주장은 과거의 대표적인 책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부 그의 주장은 한국 내에서도 제기된 주장이기도 하여서 맞는 말처럼 보였으나, 대부분 진영이 다른 언론사에서 팩트 체크되거나 정부 해명 자료로 올라와 틀린 주장이 많았었고, 우려되었던 부분들도 오히려 경제적으로 득을 보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폐기된 주장들이 많았었다.

한 때 그의 주장이 일본 우익 방송사들 입맛에 맞았는지 한 때 방송 출연도 많이 하였으나 한국이 붕괴되기는 커녕 1인당 GDP가 일본을 위협하고 차세대 산업들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등 오히려 성장을 해서 요즘에는 부르지도 않는다. 아예 혐한 레퍼토리는 2014년 4월에 위의 무로타미 기쓰미랑 공저한 "망상대국 한국을 비웃다" 를 끝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고, 그 이후로는 혐중, 반이민, 반세계화 노선으로 갈아탔다.

일본이 국가부채로 재정파탄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그의 주요 주장이고, 아베노믹스에 대해서는 2013년 중반 까지는 옹호했었지만, 이후 아베노믹스의 직접적인 이론적 기반을 구성하는 전 일본은행 부총재 이와타 키쿠오 등을 필두로 하는 소위, 리플레이션 학자들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 위의 무로타니와 같이 쓴 책(이라기 보다는 대담집)을 포함해 같은 우익사관 학자들과 교류했었으나, 위에 상기한것 과 같이 노선을 갈아타고 나서는 교류가 아예 없어졌다. 아베노믹스를 신자유주의의 연장선에 있다고 하면서 신자유주의도 비판하며, 서민이 풍요롭게 살지 못하는 악순환에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8년 1월에 10대(!)인 부인을 폭행한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석방되었다.

2019년 경부터는 아베 정권에 대한 불만이 많아졌는지 몰라도 혐한 발언은 거의 안하고 있으며, 주로 아베에 대한 비난 위주의 발언만 쏟아내고 있다.

2.13. 후루타 히로시(古田博司)

1953년 ~

요코하마 출신. 게이오기주쿠대학에서 동양사학 석사를 전공한 뒤, 현재 쓰쿠바대학에서 인문대학 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은 도와주지도, 가르치지도, 엮이지도 않는다(助けない、教えない、関わらない)"라는 "비한삼원칙(非韓三原則)"을 주장하며, 1980~1986년까지 연세대학교, 한양대학교에서 일본어 강사로 한국에서 체류한 경험이 있다. 1,2차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 위원과 간사로 재직했다. 성향상 우익으로 분류되는 산케이 신문에 기고하고 있으며, 대표저서로는 <동아시아 반일 트라이앵글> 등이 있다.
산케이신문 기고와, 실제 대학 수업에서 "한국은 일본과 싸운 적이 없기 때문에 국가적 정통성이 없다"는 발언 등으로 한국을 까고 있다.

한반도에는 나무통 만드는 기술도, 바퀴를 만드는 기술도 없는 미개한 사회라며 망언을 지껄인 적도 있었다. 심지어 조선시대를 잉카 제국에 빗대기도 했다. 남미의 잉카 문명까지 비하하는 걸 보면 일본과 유럽을 동일시하는 듯.

2.14. 다케다 츠네야스(竹田恒泰)

  • 해당 문서 참조.

2.15. 하타 이쿠히코(秦郁彦)

1932년 ~

일본의 역사학자(일본근현대사 전공)다. 니혼대학 법학부 교수를 지냈다. 일본 내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및 정부 책임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니시오카 쓰토무와 더불어 대표적으로 인용하는 학자이다. 요시미 요시아키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 운영에 있어 일본정부와 일본군의 책임을 주장하는 논의를 부정하는 내용의 여러 저서를 발표해왔다. 당연히 위안부 모집 등에 있어 일본 정부의 개입을 인정했던 고노담화에 대해서도 부정한다. 그래도 학자인 만큼 나름대로는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주장을 하는터라 오늘날 일본 우익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논리[4]에 있어 사상적 뒷받침을 하는 학자라 할 수 있다. 이에 아베 신조 정권의 고노담화 검증팀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는 일본 보수와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난징대학살 문제와 관련해 학살이 일어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 희생자가 ‘최대 4만명’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731부대 문제로도 부당한 인체실험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며 종전시에 증거인멸을 위해 마루타를 살해했던 것도 사실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도조 히데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며, 연합군에 의한 도쿄재판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재판을 했더라도 전범으로 처벌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16. 하나다 가즈요시 (花田紀凱)

2.17. 아리마 테츠오 (有馬哲夫)

1953년 ~

와세다 대학 사회학부 교수. 위안부 부정 발언을 하여 논란을 일으킨 존 마크 램지어를 옹호하면서 '위안부는 모두 합의계약을 했다’는 제목의 위안부를 부정하는 내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신의 SNS에 “한국인은 일본인에게 조선인 위안부 문제로 사과하라고 한다. 배상금도 내놓으라고 한다. 어쩐지 매우 이상하다”면서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 병사에게 ‘고맙다’고 한마디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올려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이전에는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방지 조례에 대해 “서울이나 부산에 새로운 조례를 만들어 달라”라며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해도 좋지만, 한국인은 일본인에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넷 우익을 제외한 많은 일본 네티즌들은 그를 비판하는 상황.

이에 일본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단체 '무빙 비욘드 헤이트'에서는 해당 교수의 해임을 요구하는 청원을 올렸지만, 그는 오히려 한국 배후설을 주장하며 이를 부정하고 있다.

2022년 1월 12일에는 자신의 트위터에 '만약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다면 역사 문제로 인한 한국의 괴롭힘이 없었다'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미사일도, 중국의 군사적 팽창도, 난사(스프래틀리 제도·베트남명 쯔엉사군도)·시사 군도의 군사기지화도, 타이완 위기도, 북방영토(쿠릴 4개 섬)의 문제도 없었을 것”이라며 일본이 전쟁에서 이겼다면 평화로운 아시아가 됐을 것이다.'라는 발언도 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일본 네티즌들은 이런 그의 발언에 대한 큰 비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2022년 2월 24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일본은 만주 침공을 알고있기 때문에 당신들의 심정을 잘 안다는 발언을 했으나 그 당시 일본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러시아와 같은 입장이었다고 욕을 먹었다.

3. 군인

3.1. 다모가미 도시오 (田母神俊雄)

군관 출신이지만 그의 주의주장은 일본 극우사관과 꽤 통하기 때문에 일단 이쪽으로도 분류한다. 특정 발언으로 현역에서 경질된 이후 그의 발언수위는 막나가고 있다. 상세는 해당 문서 참조

4. 넷 우익계 신보수/혐한론자

이들은 '학자'라고 보기에는 그냥 대중선동이 탁월한 쪽에 가까우나, 일본 우익 주요인물의 기재목적으로써 이 문서의 꼭지중 하나로 임시처리함.

4.1. 다카다 마코토(髙田 誠)

1972년 ~

대외적으로는 桜井 誠(사쿠라이 마코토)라는 이름을 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재특회로 인해서 한국인에게 혐한초딩끝판왕격으로 각인된 인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4.2. 교모토 가즈야(京本和也)

1988년 3월 2일 ~

유튜브 채널
트위터

통칭 KAZUYA(가즈야)라고 불리며, 홋카이도 출신에 생년을 보면 알겠지만 우익사관론자중에서는 꽤 젊은 피에 속하나 학력은 고졸로 높지 않은 편이다. 2012년부터 니코니코동화, 유튜브 등의 <KAZUYA channel>에서 신보수주의와 혐한을 설파하고 있다. 위의 재특회-일본제일당 우두머리인 다카다 마코토에 비하면 한국인에게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일본 유튜브 인기 동영상 순위에도 자주 올라오며, 구독자수가 60만을 돌파하는 등 일본 넷우익 사이에서 유명하다.

채널에 들어가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한국으로 치면 윾튜브에 상응하는 존재라고 해도 이상할게 없다. 윾튜브가 폰으로 글을 읽으면서 자기 의견을 말하듯이 가즈야 역시 애플 아이패드로 주로 일본 야후 뉴스 기사를 읽으면서 자기 의견을 말한다. 차이가 있다면 윾튜브는 컷 편집으로 영상 호흡이 빠르게 전개되는 반면, 가즈야는 컷 편집이 없다. 개인 방송뿐만아니라 가끔 DHC TV에도 출연하기도 한다.

주요 저서로는 <일본에서 제일 알기 쉬운 보수의 책>, <이게 이상해 '반일' 한국 그들이 구라를 칠수록 일본이 득을 보는 법칙> <일본인이 알아야 할 '전쟁'이야기> 등이 있다. 책뿐만 아니라 데일리 신쵸, 후지-산케이 계열 석간지 zakzak에도 글을 기고한다. 전후 70년(2015년)에는 야스쿠니 참배 모임까지 기획하고 홋카이도 사루후쓰의 조선인 강제징용 추도비의 설립을 저지[5]할만큼 행동력도 있는 편이다.

성향이 성향인지라 유튜브 계정 정지도 당할뻔 했으나 며칠 뒤에 부활하여 지금까지 채널 운영 중이다. #

야마오카 데쓰히데(山岡鉄秀)라는 호주 유학파 극우 평론가와 함께 '일본 에어야당'(日本エア野党の会)[6]라는 보수단체를 조직했으며, 다카다 마코토가 건강문제로 은퇴하면 그의 포지션을 물려받을 것이 유력하다. 또한 다카다가 창립한 일본제일당 또한 교모토가 창립한 정당인 에어야당에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도 여행도 왔다. 김치를 굽는 것과 일본 인터넷에 떠도는 한국 표절 과자와 고기 구울 때 김치도 굽는 게 인상 깊었던듯하다. 말로만 듣던 위안부 동상 보고 신기했는지 사진도 찍었다.

사랑의 불시착도 봤다고 한다.#

사카모토 다이스케 전 중의원 의원과 친분이 있는지 사카모토의 사무실이 개업하자 쿄모토가 축하하러 왔다.#

5. 만화가/소설가/방송인

5.1. 햐쿠타 나오키(百田尚樹)

소설 '영원의 제로'의 작가로 대표적인 혐한 인사 중 하나이다. 한국의 위안부나 중국의 난징 대학살에 대하여 '두 사건은 없었다'라고 주장했으며, '조선인들은 한문을 썼는데 한문을 문자화시키지 못해서, 일본에서 만든 교과서로 한글을 배포했다.', '일본인이 한글을 통일시켜서 지금의 한글이 됐다'.와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한국인의 목을 베어야한다든지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한글 표시를 보고선 구역질이 난다고 말하는 등 인종차별을 일삼기도 했다 다만 2020년대에 들어서는 혐한보다는 혐중에 더 집중하고 있다.
이후 극우 정치단체인 일본보수당을 창당하여 당수로 재직중이다.

5.2. 사토 후미코(佐藤文子)

1965 ~

일본의 만화가. 대표작은 소년탐정 김전일으로 유명하다. 위안부의 부정적인 발언을 하거나 대동아공영권이나 일본군의 정당성 대해 긍정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작가가 사이비 종교인 행복의 과학을 믿은 영향으로 보인다.

5.3. 마츠모토 히토시(松本人志)

1963 ~

일본의 코미디언. 그의 발언에 따라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 작자는 박근혜 정부 당시 체결된 합의로 다 끝났다는 입장을 하며, 위안부 조롱 및 대한민국의 해군을 비하를 한적도 있었다. 이후 본인은 성폭행 논란으로 기소되어 코미디 및 방송에서 퇴출되었다.

5.4. 미우라 루리(三浦瑠麗)

1980 ~

일본의 국제정치학자. 일본도 징병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 근거로 한국을 자주 언급하였다.

6. 비일본계 일본 우익사관론자

6.1. 대한민국

6.1.1. 김완섭

독립운동가를 테러리스트[7]·폭력집단으로 부르고, 조선총독부를 찬양하며, 한국인들은 일본제국의 식민지배에 감사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전형적인 일본 극우사관의 동조자이다.

6.1.2. 고 젠카

한국 출신이지만 친일·혐한 활동을 하다가 일본으로 귀화했다. 역사 쪽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며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제국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일본 극우사관과 접점이 있다. 다만 진지한 의미에서의 극우사관보다는 한국인들의 생활습관이나 식습관, 문화 등을 비하하는 등 말초적인 혐한 활동에 치중해 있는 편이기는 하다.

6.1.3. 최기호

1923년 ~ ?

스가모 상업고등학교(現 지바 상과대학) 졸업을 했다고 알려져있으며 가야대학교 사학과에 객원교수로 잠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생년월일로 미루어보아 청년기 초반까지 일제강점기를 보낸 적이 있다. 현세대 한국인 출신의 혐한 작가들 중 일제강점기를 몸소 겪은 드문 경우이다. 친일 발언을 할 때는 일본어로 한다고 한다. 대표 칼럼으로 상술한 지유샤에서 발간하는 우익 잡지 '지유'에서 <신화시대부터의 한일교류사(神話時代からの日韓交流史)>, <이씨 조선의 멸망에서 한일합방까지(李氏朝鮮の終焉から日韓併合まで)>가 있으며, SAPIO에도 기고를 한 적이 있다. 대표 저서로 <한국 타락의 200년사(韓国 堕落の2000年史―日本に大差をつけられた理由)> 등이 있다. 위의 두 인물에 비하면 덜 알려진 편이나, 과거 한겨레신문에서 신친일파를 까는 기사를 냈을 때 위의 두 인물과 묶어서 이니셜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관련기사(한겨레신문, Circa 2003)

그의 경험담일본 극우사관 문서에서 언급된 '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강점기의 진실'에 전재되기도 하였다. 실제 인터뷰 출처는 해당 블로거가 밝히지 않고 있다.

동명이인의 기업인 최기호와는 무관하다.

6.1.4. 신시아 리(필명)

197X~. 항목 참조. 인터넷에서만 활동하기에 개괄적인 프로필을 제외하면 자세한 실명이나 정체[8]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는 일본으로 이주.

6.1.5. 윤서인윤서인 사단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일제강점기를 미화하는 전형적인 한국형 일본 극우사관의 동조자들이다 대표적으로 윤서인 포함 팩맨TV지식의 칼이 있다 세명다 MBC에서 친일파라고 저격한 인물들이다.영상1,영상2

독립운동가들을 '게으른 사람들'이라 주장하며 '열심히 산' 친일반민족행위자들보다 못하다고 비하하는 등 역사 인식에도 문제가 많다.[9]

이들의 만행은 2022년 3월 1일 시사기획 창을 통해 다시한번 더 드러났다.

6.1.6. 황교익

일본 극우사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재화한 인물.

조선이 청나라의 일부인 중화민족의 땅이였고, 일본은 단지 한국을 일시적으로나마 독립국으로 해방시켰다는 사관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제국주의 침탈행위를 변명하고 포장하기위해 써먹던 내선일체 더 나아가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한다.[10]
원문은 https://www.facebook.com/groups/765847417114236/permalink/787998261565818/

더군다나 한국에서는 토착문명이 없고 일본에 의해서 문명이 들어섰다는 류의 일본기원론과 한국미개론 날조를 즐긴다.

이후 한국 음식을 비하하는 사실도 드러내었고 또한 국내 정치 관련해서 논란의 이야기들을 계속 하면서 논란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6.1.7. 이영훈

일단 가장 논쟁의 여지가 많은 식민지 근대화론은, 비록 반론의 여지는 많다지만 어쨌든 학술적인 자유의 범위에 속한다고 봐줄 수 있다. 그러나 이영훈의 주장은 식민지 근대화론, 즉 '일본제국이 한반도를 근대화시켰다'는 사실 관계를 넘어 "그러니 한국은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에 가까운 논조를 띄고 있어서 문제다. 독도 문제나 위안부 문제에서도 일본의 주장을 상당 부분 답습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제국이 한국인을 학살한 적이 없고, 타 국가에서 식민지 문제에 대해 사과나 배상이 없다고 주장하는 등, 식민주의에 있어서 전적으로 일본을 옹호하고 있다. '이승만 TV'를 운영하며 이승만을 상당히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모순되게도 이승만의 일본 비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6.1.8. 류석춘

안중근극우 테러리스트로, 위안부매춘부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안중근은 비록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긴 했지만 후대의 민족주의와는 거리감이 있는 인물이었으며,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한중일 삼국의 우의를 강조하고 동양평화론을 제창하는 등 시대를 앞서나간 선구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안중근의 일기나 재판 당시의 주장을 보면,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일본 천황과 정계의 눈을 가려 협력할 수 있는 세 나라가 서로 적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지[11] 흔히 알려진 것처럼 "조선 땅에 발 디딘 일본놈 수괴 죽여버리자" 같은 극우 민족주의적 사고의 발로가 아니었다. 어찌 보면 안중근이야말로 현대 대한민국이 아시아 민주주의 연대의 관점에서 일본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선구자 격인데, 엉뚱한 비판을 하고 있는 셈. 또한 이러한 관점은 안중근을 단지 자국 총리를 암살했다는 이유만으로 전후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극우 테러리스트로 단정하는 일본 극우사관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6.1.9. 한승조

일본 우익언론인 산케이 신문의 자매지인 세이론(正論) 2005년 4월호에 "공산주의·좌파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 병합을 재평가하자"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였다. 글의 내용 중에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구절 등이 문제되어 대한민국 내 여론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사망 상태(2017년 7월말 돌연사)

6.1.10. 이우연

이영훈과 마찬가지로 반일 종족주의 공동저자 중 한 명으로, 강제동원을 부정하며 강제징용당한 조선인들은 일본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았다며 조선인 노동자들이 힘들었다는 것은 역사왜곡이라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류석춘의 위안부 망언을 옹호하는 게시글을 작성했으며 이를 비판한 사람들에게 '위안부가 무슨 살아있는 신이냐'며 발언을 하였다. 그 밖에도 극우인사인 후지키 슌이치의 도움으로 UN에서 '일본에 의한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말해 논란이 되었으며 소녀상 철거 운동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램지어를 옹호하면서 램지어를 비판한 학자들에게 '한국 역사와 일본 역사를 모르는 백인들까지 나서 이 소란이 일어났다'라는 발언을 하였다.

6.1.11. 정안기

2015년 고려대학교 강의에서 “위안부는 많은 돈을 벌었고, 일제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기초를 닦았다”, “우리 국민이 야스쿠니 신사를 증오해서 불쌍하고, 위안부는 강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자원봉사활동의 현장이라고 발언했다” 등 일제강점기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여 비판을 받았다. 이영훈, 이우연과 마찬가지로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이기도 하다.
2024년 광복절에 '테러리스트 김구'라는 책을 출판하여 김구를 '다수의 인명을 살상한 세계적 암살자'라고 칭해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6.1.12. 변희재

미디어워치의 창립자. 이용수 위안부 피해자를 가짜 위안부라고 주장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그 밖에도 위의 니시오카 쓰토무를 비롯한 일본 내 극우세력과 연대를 맺고 있다.

6.1.13. 황의원

미디어워치의 대표. 존 마크 램지어의 위안부 발언 논란에 많은 학자들이 비판을 하자 학자들에게 '외부인은 나서지 마라'라는 내용의 압박성 이메일을 보냈다. 이 후 다른 뉴스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위안부 피해자를 강남 성매매로 비유하였다. 그리고 이용수 위안부 피해자를 가짜 위안부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현재도 소녀상 철거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인물들 중 하나로 변희재와 마찬가지로 니시오카 쓰토무를 비롯한 일본 내 극우세력과 연대를 맺고 있다.

6.1.14.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의 소장으로 위안부 증거는 왜곡이고 성노예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인물로, 소녀상 철거 운동에 적극 참여한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극우여성단체인 나데시코 액션과 연대를 맺기도 했으며, 램지어의 위안부 망언 논란에 대해 그를 옹호한 적이 있다. 그리고 과거 위안부 관련 문제로 호사카 유지를 규탄하는 시위를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빨간 수요일'이라는 위안부를 부정하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현재는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이라는 극우단체[12]의 대표로서, 위안부 사기극을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위안부 소녀상에 철거 마스크와 비닐을 씌우고, 흉물 피켓을 붙이는 등 반달리즘을 주도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24년 6월 21일, 검찰에 불구속 송치된 상황이다.

6.1.15. 지만원

지만원/논란과 비판 참고. 위의 한승조의 친일 발언에 동조한 적이 있으며, 과거 진중권과의 토론회에서 김구는 빈 라덴과 같은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 외에도 2019년 한일무역분쟁에 관련해 소녀상이 부끄럽다면서 강제 징용 건과 관련해 징용이 긍정적이었다는 망언을 한 적도 있다.

6.1.16. 방자경

6.1.17. 주옥순

대한민국 엄마 부대의 대표. 한일 위안부 협상 당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본을 용서하자는 시위를 주도하면서 '자신의 딸이 위안부로 끌려가서 강간당해도 일본을 용서해줄 것이다'이라는 망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거기다 한일 무역 분쟁 당시 문재인을 비난하면서 아베 신조에게 사과한다는 말을 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평화의 소녀상 철거 시위에 같이 참가를 할 뿐만 아니라, 위안부까지 부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위의 이우연, 김병헌과 같이 독일 베를린으로 가서 위안부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며, 평화의 소녀상 철거 시위를 주도하였다.

6.2. 서구권

6.2.1. 토니 마라노(Tony Marano)

1949년 ~

이탈리아계 미국인. 일본 외 외국인중에서는 국제적으로 넷 우익의 주의주장을 설파하는 사람이다. 원래는 그냥 공화당 보수주의자였으나, 일본의 포경에 대한 씨 셰퍼드 등의 대응을 비난하기 시작하면서 혐한/넷 우익으로 주화입마한 것으로 여겨진다. 자세한 것은 와패니즈 및 링크된 항목 참조.

6.2.2. 켄트 길버트(Kent Gilbert)

1952년 ~

1972년 일본에 모르몬교 선교사로 건너온 후 일본에서 연예계 배우 활동과 변호사 활동을 하는 미국인. 극단적인 혐한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강제성을 부정하고, 한국의 날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헌법9조 개정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일본 극우 매스컴에 자주 등장한다.

6.2.3. 피피(フィフィ, Fifi)

1976년 ~

일본에서 활동 중인 이집트인 배우로 혐한 방송등에 출현하는 등의 혐한 활동을 하고 있다.#

6.2.4. 막스 폰 슐러(Max von Schuler)

독일계 미국인으로 1974년 미군 해병으로 일본에 온 후 일본에서 배우 활동을 했다. 역사 연구가라고 주장하며 <'일본을 위협하는 통일조선(코리아)의 악몽'>이라는 책을 냈으며 그 외 저서로는 <미국인이 말하는 미국이 숨기고 싶은 일본의 역사>, <미국인이 말하는 일본인 숨겨 둘 수없는 미국의 붕괴>등이 있다. 

6.2.5. 제이슨 모건(Jason Morgan)

일본에서 활동중인 미국인 학자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의 입장을 옹호하고 위에 나온 하타 이쿠히코의 저서를 영어로 번역했다.

2021년 나온 존 마크 램지어일본군 위안부 논문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6.2.6. 존 마크 램지어(John Mark Ramseyer)

1954년 ~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의 미쓰비시 교수[13]로. 전문분야가 일본경제이며 일본군 위안부가 자발적인 성노동자였다는 논문과 관동 대학살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들이 범죄자들이었다며 이를 옹호하는 논문을 썼다.## 그리고 이런 논문들은 결국 필화를 일으켰다. 존 마크 램지어 위안부 논문 게재 논란 참조.

6.2.7. 안드리 나자렌코(Андрій Ігорович Назаренко)

1995년 ~

일본에서 활동중인 우크라이나인 정치평론가. 유로마이단 시위 참가 경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2014년 유학생으로 일본에 온 뒤 야스쿠니 신사에서 개최된 포럼에 참가한 뒤 일본 우익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반러에 기반을 둔 친일, 혐한 성향을 보이고 있으며 DHC TV에 출연했다. 그의 주장대로 유로마이단에 참가했다면 아조프 대대 내지 프라비 섹토르 류의 반데라주의 성향 우크라이나 극우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한국의 통일교 소속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6.3. 중화권

6.3.1. 금미령(金美齡)

1934년 ~

대만어로는 낌비렝(Kim Bi-leng), 일본식 독음은 긴 비레이. 대만출신으로 현재는 일본국적자이다. 타이베이에서 여고를 졸업한 후 와세다대학 영문학과에 유학했다. 1962년에 중국으로부터의 대만 독립을 추진하는 대만청년사(후에 대만독립 건국연맹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에 가입한다. 대만인인 남편 주영명(周英明)은 국민당에 대한 반정부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일본에 근거를 둔 대만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6.3.2. 황문웅(黃文雄)

1938년 ~

대만민남어으로는 응분횽(N̂g Bûn-hiông), 한자 병음으로는 황원슝(Huáng Wénxióng). 이름인 문웅은 일본어로 후미오라고 훈독할수도 있으나 보통 고 분유우라고 음독하는듯 하다. 대만인이다. 일본에서 와세다대학, 메이지대학 등에서 수학하고 이후 대만에서 <중국의 몰락>이라는 책을 지하 출판하여 유명해졌다. 주로 반중 활동만 해 왔으나, 한일 역사갈등이 커진 이후에는 반한 활동도 하고 있다. 그리고 유신정당 신풍이라는 듣보잡 극우정당으로 정치활동도 소량 하고 있는듯 하다.

특히 공자식인설, 중국인 인육 기호설을 현대에 주도적으로 확대재생산했다.[14]

같은 한자를 쓰는 황문웅과 혼동하지 말 것. 이 사람도 대만인이다. 이 사람은 1937년생이고 대만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다. 출신 학교도 국립정치대학코넬 대학교라는 후덜덜한 학벌을 자랑한다. 1937년생 황문웅은 현재 대만 인권 증진 협회 회장 및 각종 환경단체의 여러 지위를 역임하고 있다.

6.3.3. 석평(石平)

1962년 1월 30일 ~

표준중국어 발음으로는 스핑. 다만 보통 일본내에서는 일본에서의 중국인명 읽기 관례상 독음으로 세키헤이라 읽는다.

중국계 우익논객으로 위의 대만인들과는 달리 대륙출신이다. 청두에서 태어났고 문화대혁명으로 교사였던 부모가 하방당하면서 의원이었던 할아버지 집에 머물면서 할아버지에게 몰래 논어를 배웠다. 북경대학교 철학부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간 뒤에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그대로 극우논객이 되었다. 사가미하라 장애인 시설 흉기 난동 사건에서 트윗으로 헛소리싸지른 경력이 있다.

6.3.4. 손향문(孫向文)

중국인 일본 이민자 만화가로, 일본식 독음은 손 교분이며 한어병음으로는 쑨샹원이라고 한다. 역시 중국 본토 출신이다. 중국에서의 예술대학 입시가 실패후 일본 만화계에 등단을 노리나 그것도 안되자 일본 애국 비즈니스에 호소를 노리고 일본 우익사관 입맛에 맞는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관심병.
자세한건 #를 참고하자. 작품으로는 <야마토 나데시코가 간다>등이 있다.

6.3.5. 리 소테츠(李相哲)

조선족 출신 귀화 일본인.

7. 참고 자료

이 문서 내용의 많은 부분은 <우경화하는 神의 나라>(노 다니엘 저, 랜덤하우스, 2006)에서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8. 관련 문서



[1] 존 레논의 아내 오노 요코와는 사촌남매 관계다. 오노 에이지로의 아들 중 한명인 에이스케가 요코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션 레논이 보였던 추태도 친척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말이 있기도 했다.[2] 1973년 이시하라 호키(石原萠記, 1924-2017)가 설립한 출판사이다. 참고로 이시하라 호키는 본디 일본 사민당에서 활동했던 사민주의자였다가 우익으로 전향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3] 코단샤의 자회사이다. 애시당초 코단샤 자체가 2차대전 시기 군국주의 선전용 잡지를 내놓았던 '대일본웅변회' 출판사가 전신이며, 지금도 '슈칸겐다이'같은 잡지의 논조는 우익 성향에 가깝다.[4] 단순 성매매이다 or 모집 및 운영에 있어 발생한 문제는 민간(특히 조선인 업자)의 책임이다[5] 이 추도비는 마을 토박이었던 미즈구치 고이치 옹이 강제징용 흔적과 유골을 발굴하고 추진하려 했으나 추진 시점에서 다른 마을사람들에게 '마을의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좌초되었다. 이 배후에는 넷 우익이 상당히 작용했다는 의혹이 있다.참고로 쿄모토의 고향도 홋카이도다.[6] 영문명칭은 "JAPAN HERB TEA PARTY"이다. 대놓고 미국의 티 파티를 의식한 당명.[7] 다만 엄밀히 따지면 테러리스트라는 표현 자체가 틀린 건 아니다. 실제로 독립운동가들 중에는 당당히 자신들을 테러리스트로 소개했던 사람들도 있다. 다만 당대엔 테러리스트라는 표현 자체에 현대의 부정적인 의미가 덧씌워지기 전으로, '테러(공포)'를 수단으로 신념을 관철하려는 사람들 전반을 일컫는 표현이었다. 반면 김완섭은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투쟁 활동이 오늘날의 광신적 테러리즘과는 명확히 구별됨에도 불구하고, 지난 세기를 거치며 테러리스트라는 표현의 함의가 변화해온 것을 무시한 채 의도적인 왜곡하기에 비난받는 것이다.[8] 다만 MBC 실화탐사대의 취재에 따르면 40대 한국인 치과의사는 맞다고 한다.[9] 정작 일본 제국 시기 일본인들조차도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고 잡아들이긴 했지만, 대체로 식민지 조선 입장에서 나름대로 의기는 있는 사람들이라고 인정했었던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할 따름이다.[10] 청일전쟁과 한일합방조차도 조선을 형제민족으로 여겼기에 행했다는 주장.[11] 물론 이것도 실상은 이토 히로부미가 도리어 온건한 입장이었고, 일본 내지에는 정한론과 한일병합을 주장하는 강경파들이 득세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다소 오판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당대 기준으로 여전히 한국의 독립국화와 아시아주의 연대를 지지하던 일본인들이 없던 건 아니었고, 안중근 스스로도 어쨌든 처형당하는 순간까지 그런 희망을 놓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토 히로부미 본인은 온건파인 것과는 별개로, 한일합병을 절대로 포기한 적이 없다.[12] 여담으로 이 단체의 회원 중 하나는 부산에 있는 소녀상 뿐만 아니라 강제징용노동자상에 각종 반달리즘을 저질렀고, 이를 본인이 활동하는 일베에 인증한 적이 있다.[13] 공식 직함이다. 일본 미쓰비시 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14] 사실 이것도 원조는 따로있는데 다이쇼시대 교토대학 동양사학파의 시조라 불리는 일본의 중국역사 관련 교수인 구와바라 지쓰조(桑原隲蔵)라는 자의 논문 <지나인들 사이에서의 식인육 풍습>(circa 1919) 에 기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