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21:26:31

다케다 츠네야스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다케다 츠네야스
竹田恒泰 |Tsuneyasu Takeda
파일:im다케다츠네야스g.jpg
본명 다케다 츠네야스([ruby(竹,ruby=たけ)][ruby(田,ruby=だ)][ruby(恒,ruby=つね)][ruby(泰,ruby=やす)])
출생 1975년 10월 24일 ([age(1975-10-24)]세)
도쿄도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가족 증외고조할아버지 메이지 덴노 (1852 ~ 1912)
친증조할머니 마사코 내친왕 (1888 ~ 1940)
친할아버지 다케다 츠네요시[1] (1909 ~ 1992)
친할머니 산죠 미츠코 (1915 ~ 2013)
아버지 다케다 츠네카즈 (1947 ~ )
모 다케다 마사코
여동생 다케다 츠네시 (1978년생)
아내 (2015년 4월 19일 결혼)
(2016년생)
직업 정치평론가, 작가, 자영업자
학력 게이오기주쿠 유치사 (졸업)
게이오기주쿠 보통부 (졸업)
게이오기주쿠 고등학교 (졸업)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 (법률학과 / 학사)
직업 주식회사 익스체인져스 CEO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정규채널)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쇼츠용)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요리일상)

1. 개요2. 집안3. 행적4. 비판 및 논란5. 저서

[clearfix]

1. 개요

1975년 10월 24일, 도쿄도 출생. 일본의 남성 작가이다.

케이오주쿠 계열의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케이오주쿠는 일관제 학교라서 초→중→고로 에스컬레이터식으로 진학하고, 대학교도 내부 진학이라는 명목으로 따로 입학 시험을 보지 않고도[2] 게이오기주쿠대학으로 입학이 가능하다.[3] 법학부 법률학과로 입학해서 학사 졸업했다.

오사카 ytv의 '거기까지 말해도 되는 위원회인가?'(そこまで言って委員會)('좋은건가?, 되는건가?'라는 의미의 (いいんかい이인카이)와 위원회의 발음(이인카이)가 같은 것을 이용한 이름)[4], DHC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2. 집안

본래 천황가의 종친이며 다케다노미야의 일원이다. 부계로는 스코 덴노의 장남 요시히토 친왕(榮仁親王)의 18대손으로 나루히토의 38촌 황야(皇爺)다. 조부 항렬겨레붙이를 황야라고 한다. 여기에 어쨌든 천황의 황야니 아저씨 항렬을 황숙(皇叔)이라 한다. 세계(世系) 및 항렬을 표로 갈무리면 다음과 같다.
부계 세계표(世系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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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 덴노 (북조 3대)
(1334 ~ 1398)
후시미노미야 요시히토 친왕
([ruby(伏見宮榮仁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よしひとしんのう)])
(후시미 1대, 1351 ~ 1416)
후시미노미야 사다후사 친왕 (추존 천황, 후시미 3대)
(1372 ~ 1456)
고하나조노 덴노 (102대)
(1419 ~ 1471)
후시미노미야 사다츠네 친왕
([ruby(伏見宮貞常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さだつねしんのう)])
(후시미 4대, 1426 ~ 1474)
고쓰치미카도 덴노 (103대)
(1442 ~ 1500)
후시미노미야 쿠니타카 친왕
([ruby(伏見宮邦高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くにたかしんのう)])
(후시미 5대, 1456 ~ 1532)
고카시와바라 덴노 (104대)
(1464 ~ 1526)
후시미노미야 사다아츠 친왕
([ruby(伏見宮貞敦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さだあつしんのう)])
(후시미 6대, 1488 ~ 1572)
고나라 덴노 (105대)
(1497 ~ 1557)
후시미노미야 쿠니스케 친왕
([ruby(伏見宮邦輔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くにすけしんのう)])
(후시미 7대, 1513 ~ 1563)
오기마치 덴노 (106대)
(1517 ~ 1593)
후시미노미야 사다야스 친왕
([ruby(伏見宮貞康親王, ruby=ふしみのみや さだやすしんのう)])
(후시미 8대, 1547 ~ 1568)
사네히토 친왕 (추존 천황)
(1552 ~ 1586)
후시미노미야 쿠니노부 친왕
([ruby(伏見宮邦房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くにのぶしんのう)])
(후시미 9대, 1566 ~ 1622)
고요제이 덴노 (107대)
(1571 ~ 1617)
후시미노미야 사다키요 친왕
([ruby(伏見宮貞淸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さだきよしんのう)])
(후시미 10대, 1596 ~ 1654)
고미즈노오 덴노 (108대)
(1596 ~ 1680)
후시미노미야 사다유키 친왕
([ruby(伏見宮貞致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さだゆきしんのう)])
(후시미 13대, 1632 ~ 1694)
레이겐 덴노 (112대)
(1654 ~ 1732)
후시미노미야 쿠니나가 친왕
([ruby(伏見宮邦永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くになが)])
(후시미 14대, 1676 ~ 1726)
히가시야마 덴노 (113대)
(1675 ~ 1710)
후시미노미야 사다타케 친왕
([ruby(伏見宮貞建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さだたけしんのう)])
(후시미 15대, 1701 ~ 1754)
간인노미야 나오히토 친왕
([ruby(閑院宮直仁親王, ruby=かんいんのみやなほひとしんのう)], 1704 ~ 1753)
후시미노미야 쿠니요리 친왕
([ruby(伏見宮邦賴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くによりしんのう)])
(후시미 18대, 1733 ~ 1802)
간인노미야 스케히토 친왕 (추존 천황)
(1733 ~ 1794)
후시미노미야 사다요시 친왕
([ruby(伏見宮貞敬親王, ruby=ふしみのみやさだよししんのう)])
(후시미 19대, 1776 ~ 1841)
고카쿠 덴노 (119대)
(1771 ~ 1840)
후시미노미야 구니이에 친왕
(후시미 20대, 1802 ~ 1872)
닌코 덴노 (120대)
(1800 ~ 1846)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요시히사 친왕
(기타시라카와 2대, 1847 ~ 1895)
고메이 덴노 (121대)
(1831 ~ 1867)
다케다노미야 츠네히사 왕
([ruby(竹田宮恒久王, ruby=たけだのみやつねひさおう)])
(다케다 1대, 1882 ~ 1919)[5]
메이지 덴노 (122대)
(1852 ~ 1912)
다케다노미야 츠네요시 왕
([ruby(竹田宮恒德王, ruby=たけだのみやつねよしおう)])
(다케다 2대, 1909 ~ 1992)
다이쇼 덴노 (123대)
(1879 ~ 1926)
다케다 츠네카즈
([ruby(竹田恒和, ruby=たけだつねかず)], 1947 ~ )
쇼와 덴노 (124대)
(1901 ~ 1989)
다케다 츠네야스[6]
(1975 ~ )
상황 아키히토 (125대)
(1933 ~ )
천황 나루히토 (126대)
(19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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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계 세계표(世系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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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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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덴노 (122대)
(1852 ~ 1912)
다이쇼 덴노 (123대)
(1879 ~ 1926)
마사코 내친왕
(1888 ~ 1940)
쇼와 덴노 (124대)
(1901 ~ 1989)
다케다노미야 츠네요시 왕
([ruby(竹田宮恒德王, ruby=たけだのみやつねよしおう)], 1909 ~ 1992)
상황 아키히토 (125대)
(1933 ~ )
다케다 츠네카즈
([ruby(竹田恒和, ruby=たけだつねかず)], 1947 ~ )
천황 나루히토 (126대)
(1960 ~ )
다케다 츠네야스
(1975 ~ )
}}}}}}}}}

모계로는 다케다노미야 츠네히사 왕(恒久王)에게 시집을 간 메이지 덴노의 딸 마사코 내친왕의 증손자이기에 메이지 덴노의 외현손자다. 그렇기에 모계로는 나루히토에게 삼종제(三從弟)[7]가 된다. 본인이 구황족 집안 출신임을 엄청 자랑하며 책도 천황제에 대한 책도 출판할 정도로 천황과의 관계를 강조하지만 알고 보면 남남에 가까운 길카리다. 특히나 일본처럼 종법(宗法)이 없고 항렬을 안 따져서 길카리는 거의 남이나 다름없이 지내는 사회에서 보면 굳이 덴노하고 엮는 것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정도다. 일본이 패망하고 미군이 점령하면서 방계 미야케를 다 잘라내고 화족제도도 폐지해서, 한국에서도 1975년에 태어난 사람이 고종 황제의 먼 친척이라고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닌다고 하면 좀 이상하게 보는 거랑 비슷하다. 후술하겠지만 8촌이 그나마 가까워서 그런지 모계로 자신의 핏줄을 자랑한다.

다케다노미야 가문은 1947년에 신적강하를 당한 구 황족 가문이다. 할아버지인 다케다노미야 츠네요시 왕(竹田宮恒德王)[8]는 악명 높은 731 부대에 부대원으로 복무했다는 이력이 있다. 아버지는 일본올림픽 위원회 회장이었는데 도쿄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뇌물죄 의혹을 받고 2019년 3월에 관련 직에서 모두 퇴임/사임하는 식으로 대충 처리하였다.

본인 책을 출판할 때는 소개말에 '구황족의 자손'. '메이지 덴노현손'이라는 선전문구를 집어넣고, 『구황족이 말하는 천황의 일본사(舊皇族が語る天皇の日本史)』에서는 스스로 구황족이라고 자칭했는데, 정확히 따지면 구황족이 아니다. 왜냐하면 츠네야스 아버지 츠네카즈는 집안이 황족을 이탈한 후에 태어나서 생애 한 번도 황족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화족도 아닌데, 화족 관련 규정에 의하면 화족은 장자 세습이라 3남인 츠네카즈가 태어날 때 여전히 세습친왕가, 화족이 존재했다면 3남인 츠네카즈는 화족이 될 가능성이 적다. 종종 남자 자손이 많은 집안은 대가 끊어진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서 대가 끊긴 가문의 조상 제례의식을 대행하는 봉사손 식으로 화족 직위를 얻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건 제법 드문 일이며 무엇보다도 1947년 신적강하의 대상은 메이지 덴노 직계 황족들을 제외한 모든 세습친왕가, 조선왕공족, 화족 전부를 대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황족의 지위를 내려오는 순간 화족으로 내려간 게 아니라 그대로 일반인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츠네카즈가 태어났기에 그는 형과 누나가 황족이었던 독특한 내력을 가진 일반인에 불과하다. 이런 츠네카즈의 장남인 츠네야스는 결국 일반인의 아들에 불과하지만 조상이 구황족이었던 것을 들먹이며 구황족의 자손이니 하는 식으로 핏줄을 자랑하며 자기 포장술로 이용하고, 극우들은 이러한 모순을 알면서도 자기들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하니 믿어주는 척을 하는 것 뿐이다.

3. 행적

"한국인은 자국 맥주는 너무 맛이 없어서 인기가 없고 일본 맥주가 맛있어서 잘 팔리고 인기가 있는데, 일본 맥주를 못 마시면 미쳐서 발광한다"는 발언을 했다. 또한 일본 맥주 수출을 금지시키면 한국이 애걸복걸을 할 거라고 큰 소리를 쳤다. 이후 2019년 7월부터 시작된 일본 불매 운동에서 일본 맥주가 사실상 제 1타깃이 되면서 일본 맥주 수출이 0원이 되었다. 일본 맥주는 상표에 일본어가 써있어서 알아보기 쉽고, 유럽 맥주나 크래프트 맥주[9]라는 대체제가 워낙 많다. 일본에서는 그 원인을 제공한 놈으로 지목받고 '일본 맥주회사들은 이 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라'며, SNS상에서 실컷 욕을 먹었고, 한국 인터넷에선 맥주좌라고 불리게 되었다. 다케다는 이에 대해 무반응 모르쇠로 일관했다.

2020년 2월 코로나 19 사태로 한국의 대구광역시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자, 한국은 의료붕괴가 일어났다고 기뻐 날뛰었다. 그리고 햐쿠타 나오키와 함께 "일본은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수가 인구수 대비로 전세계에서 가장 낮다".[10] "이런 일본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서로 자화자찬을 했다.[11] 그러나 12월 말에 일본의 감염확진자 수는 20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 수도 3천 명을 넘어서면서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인구수 대비 감염 확진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이에 대해 다케다는 맥주 수출 사건 때에서도 그랬듯이 마치 코로나 사태는 애시당초 아예 없었던 것처럼 언급을 회피했다.

2013년에 가수 카하라 토모미와 단기간 교제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기간에 전 AKB 멤버였던 하타케야마 아리사와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것이 들통나서 결국 헤어졌다.

아베 신조 총리가 "나라에 공헌한 사람을 초대"한다는 명목으로 국민 세금으로 본인 지지자와 후원자들끼리 파티를 벌린 사실이 밝혀져서 논란이 된 '벚꽃을 보는 모임'에 평소 아베 총리와는 친한 사이인 햐쿠타 나오키와 함께 초대객으로 참석했다.

라멘집을 경영하고 있다. 한창 일본 불매운동을 전개할 때는 유튜브에서 한국인은 불매운동은 겉으로만 하는 것이고 요즘도 중국인 한국인 관광객은 자신이 경영하는 라멘집에 와서 잘도 라멘을 먹는다고 불매운동을 비웃은 적이 있다. 그가 운영하는 가게 주소는 여기다. 타베로그 평점은 3.59점으로 평범한 편이다.

2020년 4월 19일에는 <そこまで言って委員会NP>에 출연해서 올림픽 연기에 대해 "올림픽은 기원전 8세기에 시작했는데 올림픽을 한 이유가 올림픽을 하면 역병이 멈췄기 때문"이라면서, "올림픽을 하면 역병을 막을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그런 만큼 함께 출연한 패널도 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또 하냐는 식으로 웃어 넘겼다.

유튜브의 본인 채널에서는 역사학 전공도 아닌데도 일본과 한국의 고대사 강의를 하고 있다. 그 출전도 인터넷 혐한 자료를 주워 모은 것에 불과하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弥生時代編⑥~半島に先行した日本の稲作文化~ 한반도보다 일본이 먼저 벼농사를 지었고, 그 당시 발전한 일본이 한반도로 건너가서 철기 문화도 전파하고, 한반도는 일본에 복종하는 꼬붕 국가였다는 식이다.[12] 패전 이후 일본 고대 사학계에서 비판받고 논파된 황국사관을 그대로 지껄이니 일본 고대 사학자는커녕 역사를 조금만이라도 알고 있는 자들이 들어도 혀를 찰 만한 어처구니가 없는 짓이다.

2020년 6월 5일, 나고야 CBC의 고고스마(ゴゴスマ) 월요일 고정패널에서 하차한다고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밝혔다. 얼마 전 아이치현 지사인 오무라 히데아키[13]소환하자고 외치는 단체에 주요 회원으로 참여하였는데, 이후 나고야 CBC 측에서 출연을 삼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CBC와 모기업인 주니치신문의 논조를 감안하면 더 이상 극우 인사가 자신들 방송국에 출연하는 걸 못 참아주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4. 비판 및 논란

정치적 사상은 극우다. 일본 황족과 관련된 인물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극우활동을 한다. 구 황족들은 물론이고 현 황족들 중에서 잠정적 극우로 취급받고 있는 후미히토조차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극우 세력들을 이용할 의도로 극우 행세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정도로 유독 황족들은 극우파들을 배척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구 황족들이 신적강하를 당한 것도, 현 일본 황실이 막장이 된 것도 전부 극우파들이 추종하는 군국주의자들이 일으킨 전쟁 때문이니, 극우파들을 좋게 볼래야 좋게 볼 수 없다.

일본 내에서 상당히 유명한 혐한으로 속한다. 한국에서는 김경주 교수와 일본군 위안부 관련 주제에서 한국을 폭력단이라 비하한 것과#, 한국은 법치국가가 아니다, 한국에 일본 맥주를 팔지 않으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거란 발언으로도 유명하다. 영상[14] 이 발언대로 진짜로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옛날부터 한국과 단교해야 하고, 어쩌다 한국과 만나더라도 아주 철저하게 무시해야 하며, 굳이 얘기 나눌 거면 눈 인사에서 그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일본이 한국을 영구적으로 식민지배하지 못 해서 아쉬워한다.#

유튜브에서 증오표현을 일삼아 채널 구독자가 15만에 달했지만 차별 등을 이유로 삭제당했다. # 자기는 "출신 민족 차별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것은 언론 테러" 라며 채널을 다시 만들었으며 구독자 수 20만을 넘었다. 물론 유튜브의 내용은 예상대로 한국을 모욕하는 내용이다. #

정작 한 한국 영화[15]를 보고는, 잘 만들었다고 칭찬한 적도 있다. 밑에 있던 우익 패널에게 배신자 소리 들었다. 영상뉴스 기사.

혐한 서적도 썼다. #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위안부 동상을 보고 '있지도 않은 것'이라며 위안부 사실을 부정하였고 # 코딱지 형(形) 집행(執行) # 이라며 조롱하였다. 관련 일본 뉴스 기사 2014년 한국을 방문하여 소녀상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트위터에 올리면서 위에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했던 행동과 비슷한 짓을 한 것으로 보이나 정확히 무슨 행동을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

자기가 나온 JTBC 뉴스 영상도 본 모양이다. JTBC 뉴스 영상을 보며주며 한국 지상파 방송에 진출하였다며 영상을 올렸다. #

사실 다케다 츠네야스는 극우 혐한적 행보 이외에도 구설수에 많이 올랐던 인물인데, 자신의 부친이 일본 올림픽 위원회 회장인데도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기간 도중 본인 트위터에 "메달을 깨무는 행위는 메달에 대한 모욕일 뿐더러 품위도 없다[16]", "메달을 못 땄으면서 즐거웠다고 말하는 건 말이 안된다", "국비로 선수를 육성하는 목적은 선수 개인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라며 올림픽의 기본 정신을 무시하는 망언을 하기도 했을 뿐더러, 2018년에는 2020 도쿄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의 뇌물 혐의로 부친이 수사를 받게 되자 "닛산의 전 회장인 카를로스 곤의 보복"이라는 등 망언[17]을 거침없이 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부친이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애를 쓴 이유가 고작 한국보다 먼저 아시아에서 하계 올림픽을 두 번 개최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라고 쓴 트윗이 발굴되어[18] 여러 사람의 어이를 날려버렸다.출처[19] 이 외에도 연예인들과의 스캔들이 여러 번 있었던 등, 사생활과 언행에서 논란거리를 자주 빚어 구 황족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킨 탓에 일본 내에서도 부정적인 여론이 많은 편이다. 심지어 구 황족이라면서 열차에서 옆에 앉은 여고생을 몰래 도촬했으며, 이걸 블로그에 당당하게 인증을 했다. 특히 가장 큰 비판거리는 걸핏하면 황실을 팔아먹는 것으로, 이러한 지적은 스스로 우익이라 자처하는 이들에게서도 나올 정도다. 이러한 황실팔이 예로 표현의 부자유전이란 전시회에서 쇼와 텐노의 사진이 타는 영상을 전시하자 이것을 두고 자신이 쇼와의 친척이라 깊은 상처를 받았고 다른 황족도 마찬가지며 일반인이면 유족이 소송을 할 건데 황족이니까 소송을 안 거는 걸 악용하는 비겁한 짓이라고 분노하였다. 한편으로 천황제가 일본에서 어떤 구실을 하는 건지 보여주면서 이렇게 일본 황실을 들먹이는 것이 일본 황실의 평판에 도움이 될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여계 천황을 적극적으로 반대해서, 여성 차별자라는 비판도 듣는다. 2019년 11월 5일에 테레비 아사히의 모닝 뉴스(モーニングショー, Morning News)에 나와서 변호사 칸노 토모코([ruby(菅野朋子,ruby=かんのともこ)])가 여계 계승을 부인하는 것이 성차별이라고 하자[20] 그는 (여계 계승을 인정하는 것은) 천황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일갈하였다. 모계 계승은 역성혁명이라는 말이 맞지만[21] 모계를 불허하면 성차별이라고 하는 주장을 역성혁명하자는 거냐고 쏘아 붙인 건, 천황제 자체가 일본의 성차별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트집잡힐 여지가 있다. #[22] 본인은 여성 차별이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반론하기도 하였다.#[23]

거기에다가 일본 우익들조차도 구 황족 출신자를 부마로 삼는 조건으로 허용하자는 의견이 높은 여성 덴노조차도 여계 덴노로 가는 길이라면서 강하게 반대하는 등[24] 전통적 우익[25]보다는 극우 및 넷 우익에 가까운 사고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위와 같은 행실 때문에 일본에서는 그를 소개할 때 ‘넷 우익의 아이돌’, ‘넷 우익들에게 유명한’ 이란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본인은 자신을 넷 우익과 연관지어 칭하는 걸 달갑지 않아하는 듯 하다. 이건 다른 극우들도 마찬가지인데, 넷 우익은 같은 우익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고 일본 내에서도 평판이 매우 나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봐도 넷 우익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넷 우익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이들이 많다.

이미 자신은 인터넷이 아닌 지상파 중심으로 활동을 하기 때문에 넷 우익하고는 전혀 다르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신은 우익이 아니라 중립인데, 세상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우익으로 착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해당 발언 이후에 언론 등을 통해서 하는 말들은 그냥 넷 우익들의 주장들을 그대로 답습했다. 게다가 이미 재특회 등 극우 및 넷 우익쪽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

2019년 10월 한 언론 보도에서 아베 총리가 자민당이 야당이던 시절에 한 황족 관계자와 친분을 쌓아서 황실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소리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일본 내에서는 해당 기사에서 나오는 황족 관계자를 이 사람으로 사실상 확정하고 있을 정도로 아베와의 친분을 대놓고 어필하고 다니는 인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베 총리가 건강 문제로 총리를 사임한 이후 자신이 출연하는 방송에서 아베의 근황 같은 걸 종종 전달하기도 했고, 다시 총리에 오른 이후 본인이 출연하는 방송에 게스트로 와달라고 부탁하자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서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게스트로 올 정도로 서로 상당히 친밀한 관계로도 유명하다.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발생한 이후로 방송, 트위터, 유튜브 방송 등을 통해서, 코무로 케이를 두고 "황실을 이용하지 말라"고 하는 등 강하게 비난하면서 이번 결혼 문제를 핑계로 여성 미야케, 여성 덴노, 더욱 더 나아가 여계 덴노까지도 부정하고 구 황족의 전면 복귀만을 강하게 주장했다. 일본 우익들 사이에서는 황족 팔아먹고 사는 다케다나 코무로나 뭔 차이가 있냐면서 잔뜩 비꼬며 저 놈이 원래 같으면 황족이라고 칭할 수도 없는 주제에[26]에 황족이 되고 싶어서[27] 미쳐 날뛰는 거 아니냐면서 조소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여성차별하는 혐한 넷우익 정도로 통한다.

참고로 이 인간이 자기를 소개할 때 '메이지 덴노의 현손'이라고 발언하지만 전술하다시피 엄밀히 말해서 현손이다. 메이지 덴노의 제6황녀 마사코 내친왕이 다케다노미야 츠네히사 친왕[28]에게 시집을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계 계승이 역성혁명이라고 극렬 반대하면서 자신은 여계로 황족이랍시고 핏줄팔이를 해서 돈을 벌고 영향력을 확보하니 실로 이중잣대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이것이 여계 계승이 역성혁명이라는 지당한 말설득력을 떨어뜨리는 건 당연한 일.

이 인간이 주장하는 것처럼 부계로 자신의 집안과 현 덴노 일가와 얼마나 가까운지를 설명하려고 들면 무려 남북조시대인 1370년대 경의 스코 덴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겨우 현 직황족과의 접점이 생기니 스코 덴노의 19대손이라고 하거나 메이지 덴노의 33촌 족자(族子)라고 하든가 다이쇼 덴노의 34촌 족제(族弟)라고 하거나 쇼와 덴노의 35촌 황숙(皇叔)이라고 하거나 상황의 36촌 황야(皇爺)라고 하든가 그것도 아니면 금상의 37촌 황증대부(皇曾大父)[29]라고 해야 옳다. 물론 여계 계승이 만세일계를 해치는 역성혁명이란 상식도 제대로 못 자리잡은 일본 사회에서 37촌인데다 신적강하종친의 손자인 길카리를 종친으로 인정해 줄리는 더더욱 만무하다. 함부로 일본 황실을 들먹여서 욕되게 한다는 비판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다. 그러니 여계가 역성혁명인 걸 알면서도 자신은 여계로 핏줄팔이를 하는 모순을 견딜 수밖에 없다.

신적강하당한 황족 가문들 자체가 부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식으로 현 황족과의 촌수가 매우 멀고, 그나마 현 황족과 10촌 이내라는 구 황족 가문들도 따지고 보면 전부 메이지/쇼와 덴노의 딸과 결혼해서 외가 기준으로 10촌 이내고, 나머지 가문들의 경우 현 황족과 20촌 내외인데, 이마저도 레이겐 덴노의 딸이자, 히가시야마 덴노의 동복 여동생인 후쿠코(福子) 내친왕이 후시미노미야 14대 당주 구니나가(邦永)와 결혼하여 후시미노미야 구니이에 친왕의 증조부인 사다타케(貞建)를 낳아 외가 기준으로 20촌 내외이지, 친가 즉, 부계 기준으로는 30촌이 넘어가 매우 멀다는 것이 황실에 해박한 전통적 우익들의 공통된 주장.

이 인간이 항상 물고빠는 그 구황족 기준으로 봐도, 이 인간은 구황족을 자칭할 수도 없다. 메이지 시대의 황실전범과 화족령을 기준으로 보면,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설령 진짜로 구황족의 황족 복귀가 실현되더라도 그 대상은 현 당주의 외아들이자, 이 인간에게는 사촌 형인 다케다 츠네타카(竹田恒貴)가 되지 신적강하가 없었어도 아버지 츠네카즈가 자발적으로 신적강하를 신청해서 백작[30]위를 받아서 백작가 후계자가 되었을 것이다.[31] 만일 츠네야스가 황족이 된다고 결정나는 순간, 본인이 그동안 한 발언 등으로 코무로 케이 이상으로 논란이 되어 일본 황실이 개망신을 당할 것이 뻔하다.

5. 저서

책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대놓고 국뽕을 들이키는 책이다. 일본인은 자국이 얼마나 휼륭하고 대단한 지를 모르다며, 일본인으로 태어난 것에 자긍심을 갖자는 내용이다. 놀랍게도 그 해에만 3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요약하면 무한론(無韓論)으로, 일본에게 한국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 무시하자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정작 본인은 한국에 관심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한국을 깎아내리려고 드는 예가 "독도의 수호신이 마징가 Z파쿠리(로보트 태권 V)", "에비센의 파구리 과자인 새우깡에서 쥐머리가 나왔다'" 등 혐한 넷우익이 모여서 떠드는 2ch에서 퍼졌던 내용으로, 날조되고 왜곡된 네타가 많다. 평소 이 인간이 어떤 곳에서 정보를 얻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그의 가문은 패전 후 미국에 의해 일반인으로 몰락해서였는지 미국에 대한 원한은 매우 깊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극우파들은 한국과 다르게 미국에 대해 마냥 우호적인 시각을 드러내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미국의 전쟁 책임 이라는 책을 출간했었다. 유튜브에서도 자신을 친미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을 원폭투하한 전범국이라고 주장한 것은 물론 진주만 음모론도 열렬히 지지한다.

[1] 731부대 복무 이력이 있는 전범이다.[2] 정확히 말하면 내부 진학시험이라고 해서 교내에서 면접과 시험을 보긴한다.[3] 이런 시스템 때문에 일본의 일관제 학교는 유치원, 초등학교 입학때부터 한국의 대학입시 빰칠 정도의 입시경쟁이 벌어지고, 치맛바람이 엄청나다. 즉 그만한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상류층, 부유층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그들만의 리그이다. 일본 정재계의 고위층은 대부분 이런 일관제 시스템을 타고 성장한 족벌들이다.[4] 요미우리 TV는 일본 지상파 방송국들 중에서 가장 강경한 우파 성향의 논조를 보인다.[5] 서장자[6] 보다시피 항렬과 나이의 괴리가 매우 심해서 츠네야스가 나루히토보다 15살이나 어린데 항렬만 2대가 높아 조부뻘이다.[7] 8촌 아우[8] 1909~1992, 위에 나온 마사코 내친왕의 아들.[9] 특히 국내 크래프트 맥주가 2010년대 들어 성장한 것도 있다.[10] 전체 인구수에서 사망자수를 나눈 것으로 10만명 당 일본은 0.3명이라며 자랑했다. 그러나 14억 인구의 중국은 도시를 봉쇄하고 의료붕괴까지 온 참담한 사태를 겪고 8만 5천여 명의 확진자에 5천명에 가까운 사람이 사망했는데도, 인구수로 나누면 0.2명이라서 일본보다 더 낮은 결과가 나온다.[11] 그러나 4월 중반에 접어들면서 한국은 감염 확진자 수가 1자리 수로 낮아졌는데 반해 일본은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가 한국을 넘어서고 심지어는 21일 자로 길거리에서 쓰러져 죽은 변사자가 코로나로 죽은 것으로 판명되는 사건뿐 아니라 이런 식으로 자택이나 노상에서 사망하고 그 후에 코로나 양성으로 판명난 변사자 숫자가 3월 중순에서 22일까지 15명이나 된다. 심지어 12월 쯤에 3차 대유행이 시작되어 한국에서 확진자 수가 천 명 안팎으로 나올 때도, 일본은 나라 전체도 아니고, 도쿄 한 곳에서만 천 명 단위로 확진자가 나오는 등,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전혀 아니다.[12] 이런 주장은 최근에 생긴 것은 아니고 거슬러 올라가면 17세기 에도 시대에 시작한 고쿠가쿠(國學)라 해서 중국과 조선의 세계관과 유교에서 탈피해서 고대 일본사의 프로파간다용 역사책 일본서기고사기를 숭상하며 일본은 신(神)의 나라로 일본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이고 가장 휼륭한 나라라며 국수주의에 취한 역사관이 있었다.[13] 자민당 출신이며 현재는 무소속이다. 중도우파 성향이긴 하나 한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기도 하였고,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위안부 소녀상 전시 중단 문제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 한다면서 전시 중단 반대 입장을 내놓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일본 극우 세력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혔다.[14] 국내에 화제가 된 것은 2019년 1월 요미우리 TV 프로그램에서의 발언이었으나, 해당 영상은 방송국이 저작권을 가지고 있기에 재편집되어 업로드된 영상들도 삭제되어 부득이 이 인물이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의 영상으로 대체함.[15] 몽타주(영화)[16] 실제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당시에 메달을 깨무는 행위가 일시 금지된 적은 있는데, 품위 때문이 아니라 은메달을 딴 선수가 시상식에서 메달을 깨무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치아가 나가는 사고가 벌어져서 금지했을 뿐이다. 이런 규제도 당대에만 잠깐 있었을 뿐이니, 모욕이니 품위없는 짓이니 하는 것부터가 올림픽에 대해 쥐뿔도 모른다고 인증하는 멍청한 짓이다.[17] 이 부친은 IOC 위원 및 JOC 회장 자리를 2019년에 임기 완료라는 형식으로 사임하였다.[18] 역설적으로 일본 황실을 비롯한 일본의 상류 사회가 얼마나 한국을 신경쓰는지를 자백한 셈이다.[19] 그래도 어머어마한 으로 한국이기긴 이겼다.[20] 그러니까 성차별을 안 하려면 왕조가 모계로도 이어져서 Y염색체의 일관성을 깨야 한다는 거다.[21] 동아시아는 모계 성 따르기를 모성(冒姓)이라고 부르며 평민조차 그릇되게 여겼다. 당연히 왕조의 여계 계승은 없었고 여계를 계승이라고 생각하기는 더욱 없었다.[22] 더욱이 일본이 종실을 빼고 서양자를 들이는 형태로 모계 성 따르기가 활발해서 왕조의 여계가 계승이 아닌 역성혁명이라는 상식이 일본에서는 공감받기 조금 어려우며 또한 동아시아는 평민조차 여계를 금지하는 대신 신적강하 또한 금지되어서 종실(宗室)의 번창과 계승을 보장하는데 일본은 이도저도 아닌 게 문제다.[23] Y염색체의 일관성을 끊는 걸 허용해야 성차별이 아니라는 관념이 답답하긴 할 거다.[24] 틀린 말은 아닌 게 그렇게 따지면 신적강하된 후손들이 싹 다 계승권이 생긴다.[25] 새로이 등장한 극우 및 넷 우익과 한국을 향한 목표는 같지만 한국에 확고하게 우월감을 품고 우에까라메센(上から目線)을 유지하는 점에서 그들과 태도가 다르다. 이들은 일본에서 서양자가 활발하기에 여계 계승이 만세일계를 깨는 역성혁명이라는 생각을 못한다.[26] 츠네야스의 부친은 전 가주의 3남(또 5명의 형제들 중 유일하게 신적강하 후에 출생)으로 태어났기에 만일 신적강하가 안 되어도 성인이 되자마자 자발적으로 신적강하해서 화족 가문을 창시했을 확률이 높다.[27] 츠네야스는 신적강하 후에 태어난 3남의 장남이기 때문에, 구 황실전범이나 현행 황실전범에 근거하여 아무리 잘 봐주어도 구 황족보다는 구 화족에 가까운 존재라는 게 전통적 우익들의 기본적 판단이다.[28] 현 가주의 할아버지이며 츠네야스에게는 증조할아버지에 해당.[29] 보다시피 직계가 세대 교체가 더 빠르다.[30] 미야케에서 처음으로 왕이 신적강하를 신청하면 후작위를 부여하고, 그 이후부터는 백작위를 준다는 불문율이 있었다.[31] 당주 츠네타다의 장남 츠네타카 가문이 거부해도 당주의 남동생 츠네하루 가문에는 남자가 둘이나 있지만, 여기도 문제가 있는 것이, 츠네하루의 장남 츠네아키가 대마초 소지죄로 체포된 경력이 있어서 이쪽으로 넘어가더라도 논란이 커질 것이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