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15 11:53:09

서용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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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의정
익헌공(翼獻公)
서용보
徐龍輔
출생 1757년(영조 33)
사망 1824년(순조 24)
재임기간 제220대 영의정
1819년 2월 19일 ~ 1820년 7월 24일
(음력 순조 19년 1월 25일 ~ 순조 20년 6월 15일)
시호 익헌(翼獻)
본관 대구 서씨[1]
여중(汝中)
심재(心齋)
붕당 노론 (청명당, 벽파)
부모 부친 - 서유령(徐有寧)
모친 - 진천 송씨 송의손(宋宜孫)의 딸
부인 반남 박씨 박지원(朴志源)의 딸
자녀 (양자) - 서대순(徐戴淳)[2]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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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후기의 문신.

고조부정성왕후의 아버지인 달성부원군 서종제이다.

2. 생애

영조 말기 1774년에 문과에 급제해서[3] 정조, 순조시대에 주로 활동했다.

정조 4년(1780년) 규장각 대교에 임명되었고, 곧바로 초계문신이 되었다. 정조 9년(1785년)에 이조참의와 성균관 대사성을 번갈아 오르게 되고, 정조 12년(1788년)에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그리고 정조 16년(1792년)에 사헌부 대사헌이 되었고 그 다음해에 경기도 관찰사에 임명된다. 참고로 이 경기도 관찰사 시절 때 정약용과 사이가 멀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흥미롭게도 서용보 본인이 관찰사에 파견된 시기 즉 전라도와 경기도 관찰사 시절에는 자신이 파견된 지방의 폐단을 밝혀내고 그러한 폐단을 방조한 지방관들을 탄핵시키는 데 앞장 선 인물로 실록에는 기록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경기도 관찰사 시절 때는 정조가 엄청나게 자주 부를 정도였고, 정조 18년(1794년)에는 경기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규장각 직제학을 겸하기도 한다.

그리고 정조 19년(1795년) 총융사에 오르며 정조의 을묘년 행차의 중요 역할을 맡았으나 일 처리가 늦는다고 하여 곧바로 파직되기도 한다. 물론 이 때 당상에 오르게 되었고 곧바로 선상대장으로 복귀하였다가 또 다시 탄핵당하기도 한다. 물론 곧바로 복직하여 정조 20년(1796년)에 이조참판에 오르고, 이후에 형조 참판, 사헌부 대사헌, 홍문관 부제학을 거쳐 정조 23년(1799년)에 예조판서에 오른다. 그리고 곧바로 이조판서에 오르고 정조 24년(1800년)에 의정부 우참찬으로 내의원 제조를 겸하게 되는데 이 때 바로 정조 독살설의 주요 인물로 떠오르게 된다. 물론 그는 실록의 기록만 보면 정조의 신임을 받은 대표적 신하였기에 그가 정조 독살에 관여했다는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고 실제 정조의 어찰이 발견되면서 정조 독살설은 완벽하게 파훼된다.

이후 순조가 즉위할 때 우의정에 오르게 되는데 최연소 우의정이었던 이덕형에는 못 미치지만 이쪽도 승진이 빨라서 44세의 나이에 우의정에 올랐다. 이는 당시 수렴청정을 하던 정순왕후 김씨의 총애 덕이었고 정순왕후가 그의 정승 임명 이유를 밝히기도 한다. 그리고 순조 2년(1802년)에 좌의정으로 승진 임명되면서 승승장구를 달리나 했으나 순조 3년(1803년)에 탄핵을 받게 되면서 조정에서 멀어지게 되고, 정순왕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순조 4년(1804년) 판중추부사가 되어 조정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순조 5년(1805년)에 사은사가 되어 그 다음해 연경에 다녀온다. 그리고 이 공으로 다시금 좌의정에 오르지만 귀향을 청한다. 다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대신에 우의정으로 다시 임명되는 선으로 마무리 된다. 하지만 곧바로 자신의 아버지와 관련된 문제가 터지게 되면서 1806년 최종적으로 조정에서 물러나게 되고 고향에 칩거하게 된다. 그러다 13년만인 순조 19년(1819년)에 영의정으로 임명되면서 다시금 조정에 복귀하나 그 다음해인 1820년에 병으로 사직하게 되고 그 이후 4년만인 1824년에 결국 죽게 된다.

3. 여담

  • 정조 초기에 정약용과 같이 일했는데, 1794년 경기도 관찰사 시절에 정약용이 암행어사로 가서 서용보의 비리를 고발하는 바람에 파직되어 사이가 틀어졌다는 썰이 있다. 실제로 1794년에 관찰사에서 물러난건 사실인데 실록에는 왜 물러났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다. 업무 보고가 늦어서 문책 받은 기록은 남아있는데 시점상 정약용이 암행어사로 파견되기 몇달 전 이야기다.

[1] 전첨공(典籤公) 경수(景需)파 22세 보(輔) 항렬[2] 동생 서응보(徐應輔)의 아들[3] 당시 한국나이로 18에 과거 시험에서 소과와 대과를 1년 만에 급제했다는 기록이 있다.[4] 암행어사 중에 정약용이 끼어 있다.[5] 정확히 따지면 서용보의 양아들이자 서응보의 친아들인 서대순의 손자가 서광범이므로, 서응보가 친증조부이겠지만 어쨌든 족보상으론 서용보가 증조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