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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국어 | 바미안 계곡의 문화 경관과 고고 유적†[1] |
영어 | Cultural Landscape and Archaeological Remains of the Bamiyan Valley | |
프랑스어 | Paysage culture et vestiges archéologiques de la vallée de Bamiyan | |
국가·위치 |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주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2003년 | |
등재기준 | (i)[2], (ii)[3], (iii)[4], (iv)[5], (vi)[6] | |
지정번호 | 208 |
다리어: مجسمههای بودا در بامیان (Mojassamehā-ye Budā dar Bāmiyā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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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프가니스탄 바미안 주에 위치했던 고대 아프가니스탄의 석굴사원 및 불상 2구로 2001년에 탈레반에 의해 파괴되었다. 파괴된 후인 2003년에는 이 석불이 있던 벽감과 주변에 있는 100개가 넘는 동굴, 크고 작은 불상들, 요새 유적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됨과 동시에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에 지정되었다.1974년 조선일보의 <서역 3만리> 제목으로 바미안 석불을 취재한 특집 연재기사[7]에 따르면, 서양에서 온 히피들이 들어와서 살기도 했다.#
2. 역사
2.1. 특징
바미안의 석굴사원은 아프가니스탄의 힌두쿠시 산맥 절벽을 파서 만들었다. 절벽 양끝에 거대한 불상이 각각 있었는데 서쪽에 있는 불상은 높이 55m, 동쪽에 있는 불상은 높이 38m로 서쪽의 것이 더 크고 조금 더 나중에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서쪽의 불상이 잘 알려져 있으며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파괴 전, 후의 불상도 서쪽의 불상이다.
6세기 아프가니스탄 지역이 불교 문화권이었던 시절[8]에 만들어진 불상이며 그리스 조형 미술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양식이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도 간략히 언급된다.[9] 이렇듯 아주 유서 깊고 위대한 불교 유산이었다.
2.2. 파괴
바미안 석불 파괴 행위는 탈레반의 만행들 중에서도 가장 악명높은 사례 중 하나로 손꼽힌다. 1996년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은 첫 교령으로 우상숭배 성격을 지닌 모든 영상물/사진의 소각 및 금지를 내렸고, 1998년 바미안 점령 후 불교 유적지 파괴를 수차례 선언하며 점령 첫날부터 로켓포로 소석불을 파괴했다. 2001년 2월 26일 탈레반 최고 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는 아프간 내 모든 불상은 우상숭배 금지 율법에 따라 파괴되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로켓포, 탱크 등을 동원한 불상 파괴 작업이 아프가니스탄 곳곳에서 벌어졌다.(KBS <세계는 지금> 보도영상)[10]
바미안 석불 역시 수일에 걸친 다이너마이트 폭파 작업 끝에 산산조각나고 말았으며 석불의 파편들은 파키스탄으로 실려가 골동품상들에게 팔려나갔다. 파괴 당시 탈레반 측은 바미안 현장 취재를 허용치 않았다가 3월 18일에야 폭파 장면이 실린 비디오테이프 영상을 공개했는데, 이는 미국 CNN을 통해 처음 보도되었다.#
파괴 후 멀리서 본 바미안 서쪽 석불 | 파괴 후 멀리서 본 바미안 동쪽 석불 |
UNESCO에서는 이 위대한 문화유산의 파괴에 항의하였으며, 불교 문화가 발달한 동아시아권 국가들이 이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은 탈레반 측에 자신들이 바미안 석불을 구매한 후 일본으로 옮기겠다는 제안까지 했으나 끝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심지어 파키스탄, 이란,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 국가들마저도 바미안 석불 파괴를 극렬하게 반대하였다.[11] 또한 이슬람 협력기구 대표단도 불상 파괴령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쿠란에서도 이슬람이 등장하기 전에 만들어진 타 종교 건축물들은 파괴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적혀 있기에[12] 이런 식의 반달리즘은 이슬람교 율법에조차 어긋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귓구멍을 틀어막은 탈레반 귀에 그런 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모하마드 오마르의 말에 의하면 사실 아프가니스탄에 불교도가 남아있는 것도 아니니 처음에는 파괴할 생각이 없었지만 '서양인들이 민중보다 석불에 더 신경을 쓴다'는 이유로 격노하였고, 특히 '서양에서 들어온 원조가 빈민구제 목적이 아닌 불상보존 목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분노가 극에 달해 파괴를 결정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행동의 책임을 서양의 위선 탓으로 돌렸다. 정작 모하마드 오마르 본인은 빈민 구제에는 관심이 없고 이슬람 근본주의에 입각한 각종 기행을 저지르는 데만 집중했으니 내로남불에 불과하다.
그동안 바미안 석불을 보호해 온 것은 시아파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인 하자라족이었는데, 하자라족은 호라즘 왕조를 무너뜨리고 페르시아권(아프가니스탄 포함)을 지배한 몽골 제국 군인의 후손이라는 점과, 시아파라는 점 때문에 수니파를 믿는 아프가니스탄의 다수민족인 파슈툰족에게 탄압을 받아왔으므로, 파슈툰족으로 구성된 수니파 극단주의 집단인 탈레반의 입장에선 바미안 불상을 파괴함으로써 종교적 민족적 내부 응집을 노렸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반대쪽에서도 종교적으로 응집했다는 것.
파괴 전 사진을 봐도 불상의 얼굴이 없고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있는데 사실 바미안 석불은 탈레반 이전에도 오랜 세월 외부 세력과 자연적 조건에 의해 조금씩 훼손되고 있었다. 몽골 제국의 황제 칭기즈 칸의 군대는 나무로 붙인 안면과 팔을 태우고,[13] 무굴 제국의 아우랑제브 황제가 다리 부분을 파괴했다. 거기에 사암 재질의 특성상 오랜 세월 지진과 누수 등으로 훼손되었으며 이런 성질을 파악하지 않은 프랑스와 인도 유적보수단이 1940년대와 1960년대에 각각 시멘트 날림공사로 더 손상시켰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에는 내전이 진전되면서 석굴은 전쟁 물자창고로 사용되어 더 훼손되었다.
특히 이슬람은 그림, 조각, 상징물 같은 우상숭배를 금지하기에 이슬람에 장악된 타 종교 성상은 파괴당하거나, 좀 온건한 경우는 얼굴 부분만 훼손하거나 덧칠해 우상숭배 대상이 아님을 표시한다.[14][15][16] 그러나 탈레반처럼 이렇게 크고 오래된 유산을 아예 없애버리는 발상은 인류사에서 전례가 거의 없다.
2.3. 폭파 이후
바미안 석불의 복원 예상도 |
이슬람 공화국이 패망한 후, 재집권에 성공한 탈레반은 국제 사회의 제재로 자금난에 시달리자 바미안 석불에 대한 관광을 재개한다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국제 사회로부터 '정상 국가'로 인정받으려는 움직임의 일환으로도 해석된다. 파괴한 주체가 20여년만에 관광지화를 말하는 것에서 내로남불이라는 조소와 함께, 2021년 11월부터 방문객들은 탈레반에게 5달러의 입장료를 내면 석불이 있던 자리를 돌며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
3. 대중매체에서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의 캠페인에서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한 ‘오래된 상처’ 미션의 출발지로 등장한다. 물론 이때는 아직 완전히 파괴가 되지 않았으니 고증에 맞지만 문제는 그 이후 2025년 배경으로 같은 장소에서 아프간 반군을 격퇴하는 미션에서도 바미안 석굴이 파괴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 물론 복원이나 대체역사물 운운은 농담이고 그냥 1980년대 '오래된 상처' 맵을 돌려쓰면서 생긴 문제.1960년대 당시 유고슬라비아와 여러 나라 합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징기스칸에서도 나온다.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직접 촬영하다보니 드물게 그 당시 모습이 그대로 나오며 극중 테무진과 몽골군이 이 불상을 지나간다.
마르코 폴로 항목에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 마르코 폴로의 모험 한국어 영상에서도 이 석불 옛날 영상이 그대로 나온다.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3과 Europa Universalis IV에서 바미안의 특수 건축물로 나온다.
Rebel Inc.에서 반군의 석불 파괴 시도 이벤트의 모티브이며, 지역에 고대 성전 유적이 발견되는 이벤트가 반군 점령지에서 발생할 경우 석불 파괴 시도 이벤트로 변경된다. 이때 파괴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돈을 줘서 더 파괴를 못하게 막거나, 공개 석상에서 반군을 응징하겠다고 선언하거나, 아예 당장 군대를 몰고 가서 문화유산을 부수려 드는 반란군 놈들의 머리통을 날려버릴지를 선택할 수 있다.
4. 참고/관련 문헌
- <한겨레 21> 2001년 3월 13일자 기사#
5. 같이 보기
[1]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2]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3]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4]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5]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6]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7] 당시는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의 모하마드 다우드 칸 통치 시대였다.[8] 탈라스 전투 등을 거치며 중앙아시아가 7세기경부터 이슬람 세력에 정복되기 전까지 아프가니스탄 지역은 불교 문화권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지역이 페르시아와 인도 문화권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8세기에 기록된 왕오천축국전에는 불교가 쇠퇴하고 이슬람화되는 중간 상황이 기록되었고, 이후 불교는 유적 외엔 흔적도 찾기 힘들어진다.[9] 금칠이 되어있는 등 매우 화려했다고 언급된다.[10] 영상에서는 2001년 5월에 폭파되었다고 나오나 실제로는 2001년 3월이었다.[11] 특히 파키스탄은 당시 탈레반 정권의 유지를 지지하던 나라였음에도 반대했다.[12] 현재 이집트에서 고대 이집트 유적을, 이란에서 고대 페르시아 유적을, 이라크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아 유적을, 요르단에서 페트라 등 고대 나바테아 유적들을, 알제리와 튀니지에서 로마 제국 및 카르타고 시대의 유적들을, 튀르키예에서 로마 시대 유적들을,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 전래 이전의 사일렌드라, 마자파힛 시대의 유적들을 보존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13] 티베트 불교를 믿던 몽골군이 왜 굳이 이 불상을 파괴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앞서 말했듯 그들의 후손인 하자라족도 불상을 보호해왔었는데 말이다. 몽골군은 황룡사 9층 목탑을 불태운 전적도 있다보니 불교 유적이란것을 알면서도 타국의 유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 생각없이 무자비하게 파괴해버렸을 가능성이 크다.[14] 튀르키예 이스탄불이나 중국 위구르 등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처리를 볼 수 있다. 또한 페트라에 있는 알 카즈네 신전도 위에 석상은 얼굴 부분만 제거되었다. 페트라를 발굴하여 연구한 결과 이렇게 제거된 얼굴 부분만 따로 묻어 보관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도 얼굴 부분만 따로 보관하여 연구 중이다.[15] 이슬람 전통 그림 중에 얼굴에 베일을 쓴 무함마드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그 시대 사람들이 나름 머리를 굴려 모자이크를 하는 선에서(교리상 우상을 섬길 수는 없으므로) 끝낸 것이다.[16] 국내에도 방영되었던 NHK 장편 애니메이션 <마르코 폴로의 모험>에서도 무슬림들이 석불의 머리를 쪼개서 얼굴을 떨구는 장면이 나왔고, 그 뒤에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당시(80년대) 바미안 석불의 실사 영상과 안내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