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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관


1. 개요2. 상세3. 여담4. 대중매체에서5. 참고 문서

1. 개요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최초의 한정식 전문점.

2. 상세

1903년(광무 7), 안순환은[1]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2] 조선 요리 전문점을 개업하고, '명월관(明月館)'으로 이름붙였다.[3] 1909년(융희 3), 관기제도의 폐지로 인해 궁에서 공연하던 기녀들이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모여들었고, 이를 계기로 명월관은 점차 번창하게 되었다. 2층 구조의 서양식 건물로 지어진 명월관의 1층은 일반 손님을 위한 공간, 2층은 귀빈석으로 운영되었으며, 별도의 특별실인 '매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은 일본조선의 고위 관료뿐만 아니라, 문인과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명월관은 단순한 요릿집을 넘어 다양한 행사와 연회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발전했다. 단체 회식뿐만 아니라 시내외 관광객을 위한 음식 준비, 회갑연과 혼례 등 주요 행사에 맞춘 연회 요리를 마련했고, 배달 서비스까지 운영하면서 고객 편의를 높였다. 특히, 특히 개량된 교자 음식을 비롯해 각국의 , , 음료, 양과자, 담배, 과일, 해산물 등을 판매하며 요릿집 이상의 역할을 하는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또한, 1913년부터는 본점뿐만 아니라 지점을 운영하면서 더욱 규모를 확장했다.

그 후, 안순환은 종로 인사동에 위치한 옛 순화궁 터에서 명월관 지점을 개점했다. 순화궁터는 원래 대한제국 황실의 궁터였으나, 1908년(융희 2년) 이윤용을 거쳐 그의 동생 이완용이 소유하게 되었고, 당시에는 이완용의 사유지였다. 이후, 이완용이 건물을 전세로 내놓았고, 이종구의 도움을 받아 안순환이 이를 임차해 명월관 지점을 운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919년 3월 1일에 이곳에서 민족대표 33인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3·1운동의 도화선을 당겼고, 그로 인해 명월관 지점은 곧 폐업하게 되었다. 그런데다, 1919년 5월 22일 오전 6시경, 본점의 요리점 뒤편 온돌방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건물이 전소되었다. 피해액은 약 6만 원이었으며, 이로 인해 영업을 일시 중단했다.

안순환은 장춘관을 운영하던 이종구에게 명월관의 간판을 넘겼고, 이종구는 이를 서울 돈의동 139번지에서 다시 개업하여[4] 명월관 별관으로 운영했다. 안순환은 1921년경 '식도원(食道園)'이라는 별도의 음식점을 개업하여 1929년까지 운영했다.

명월관은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장소로 활용되었다. 8.15 광복 이후에는 명월관의 대지와 건물을 이종구가 소유하고, 종업원들이 공동으로 영업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북한군이 명월관을 종로 지역의 사무 공간으로 사용했고, 인천 상륙 작전 이후에 후퇴하면서 건물을 불태웠다. 그 과정에서 이종구는 납북되었으며, 이후 그의 행방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3. 여담

  • 명월관은 연회와 대규모 모임이 자주 열리는 공간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그런만큼 과도한 소비 문화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잔치 음식처럼 다양한 요리가 제공되어 가격이 높았으며, 기생을 초대해 풍류를 즐길 경우, 비용이 더욱 증가했다. 당시 신문 기사에 따르면, 명월관과 같은 요리점에서는 짧은 시간에 거액이 소비되었고, 하룻밤 유흥비만 150~200원에 달할 정도였다.[5] 결국, 명월관은 단순한 요릿집을 넘어, 사치와 향락의 중심지로 인식되며, 조선 사회의 과소비 문화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 앞서 서술했듯이, 대표적인 친일파 이완용이 소유한 건물에서 〈기미독립선언서〉가 발표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난감해진(…) 이완용은 1921년 감리교 선교부에 건물을 매각했다.[6] 그 때, 명월관은 퇴거를 거부하고 영업을 지속했다. 이에 감리교 선교부 측은 술판이 벌어질 때마다 마당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영업을 방해했고, 이에 맞서 명월관 측은 영업이 끝난 새벽마다 선교부 숙소 앞에서 장구와 꽹과리를 치며 보복했다. 또한, 에는 감리교 깃발이, 에는 명월관 깃발이 번갈아 꽂히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감리교 선교부가 성조기를 내걸면서 이 대립은 감리교 측의 승리로 끝났다. 성조기를 함부로 내릴 경우에 외교문제가 될 수 있었으므로, 명월관 측은 결국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 간송미술관의 설립자인 전형필도 중요한 거래 등을 할 때 이곳을 즐겨 찾았다고 전해진다.
  • 일제강점기의 유명했던 기생이자 가객이었던 이난향의 증언에 따르면, 의친왕이 여기서 술을 마실 때, 종로경찰서고등계 주임 미와 와사부로가 옆 방에서 감시를 하는데도, 오히려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일제가 금지한 노래들을 큰 소리로 불렀다고 한다.[7]

4. 대중매체에서

  • 1993년 KBS1 드라마 〈일월〉의 주요 배경이다.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옛 정취가 남은 서울 삼청동의 대원각(현 길상사)에서 촬영했다.[9]
  • 2008년 OBS 시트콤 〈오포졸〉에서 나오는 기방의 이름도 명월관이나, 작품 설정상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 관련이 없다.

5. 참고 문서


[1] 대령숙수 출신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다. 안순환은 1898년(광무 2) 탁지부 전환국의 건축 감독으로 궁에 들어갔으며, 이후 판임관 육등과 전환국 기수를 역임했다. 이후, 궁중잔치 음식을 도맡았던 전선사(典膳司)의 최고책임자를 역임했다. 즉, 대령숙수가 나와서 요릿집을 차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식당 운영자로 명성을 날려 궁의 음식을 책임지는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출처: 〈왕의 요리사들, 근대를 열다〉, 《한겨레》, 2009년 3월 25일. ; 〈주영하의 음식 100년-(11) 조선요리옥의 탄생〉, 《경향신문》, 2011년 5월 17일.)[2] 현재 《동아일보》 사옥 자리.[3] 출처: 〈明月館紀念〉, 《대한매일신보》, 1908년 9월 18일. 1909년에 세워졌다는 말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4] 현재 영화관 CGV 피카디리1958 자리.[5] 출처: 〈勿驚!每夜萬圓〉, 《동아일보》, 1921년 3월 28일.[6] 매각 이후, 명월관은 태화여자관으로 활용되면서( 출처: 〈明月舘支店이 太華女子舘으로〉, 《동아일보》, 1921년 2월 27일.) '태화관'으로 불리게 되었고, 광복 후에는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으로 운영되다가 1980년 도시 개발로 철거되었으며, 현재는 태화빌딩이 들어서 있다.[7] 출처: 이해경, 2023,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유아이북스, 220쪽.[8] 출처: 〈明月舘從業員들 飛機基金을獻納〉, 《조선일보》, 1950년 3월 10일.[9] 《TV가이드》, 서울신문사. 1992년 12월 26일(제12권 50호), 42쪽.[10] 촬영지는 경기도 고양시 벽제에 있던 음식점 '강강술래'였다. 현재는 신식 건물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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