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4 21:50:55

동경(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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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사로국
辰韓 斯盧國
BC 2c
경주
慶州
935
안동대도독부
安東大都督府
940
동경
東京
987
경주
慶州
1012
경주
慶州
1204
계림부
鷄林府
1308
계림부
鷄林府
1392
경주부
慶州府
1394
경상북도 경주시
慶州市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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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려 의장기.svg 고려삼경
동경 (계림부)
東京 (鷄林府)
<colbgcolor=#fedc89><colcolor=#670000> 장관직 동경유수
전신 금성(金城)
설치 987년
폐지 1308년
후신 경상도 경주부
현재 경주시
1. 개요2. 역사3. 여담

[clearfix]

1. 개요

고려 초중기의 주요 도시 3경[1] 중 하나로 현재의 경북 경주시 일대를 이른다.

2. 역사

고려 시기 신라는 멸망했지만 그 과정에서 왕건은 신라의 구 세력을 그대로 포용했고[2], 옛 신라의 수도 금성은 동경으로 개칭되어 고려 초중기 동안에는 계속 중요한 도시로 남아있었다. 사실 수도 개경에도 황룡사 9층 목탑보다 높은 건물은 없었을 정도니[3] 고려시대에도 신라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개경에서 온 사람들이 감탄할 정도로 크고 화려한 도시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가 개성의 동남쪽이라지만 동쪽보단 남쪽에 더 가까운데도 동경이라 이름 지은 이유에 대해, 주보돈 교수는 이미 신라 때부터 경주를 동경이라는 별칭으로 불렀기 때문에 고려에서도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4]

그러다 이후 무신집권기 신라부흥운동의 성격이 있었던 동경민란의 진압 이후 경주로 격하되어[5] 3경에서도 빠지고 '남경(서울)'이 추가되었고, 몽골 제국군의 침략으로 황룡사 목탑이 불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곧 동경으로 복권되어 원간섭기 이후의 외왕내제 체제가 붕괴되기 전까지 여전히 고려의 주요 도시로 기능했다.

다만 이러다보니 흔히들 고려 후기에 3경에서 동경이 빠지고 남경이 그 자리에 들어갔다는 식으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둘 다 떨어졌다. 고려사 지리지에 의하면 고려 후기 충렬왕 34년(1308년) 때 남경과 동시에 각각 계림부와 한양부로 격하되었다.

3. 여담

조선 시대에도 최상급 행정기관인 5개 부(府) 중 하나였을 정도로 위상은 상당했고, 경상도의 여러 도시와 더불어[6] 경상도 내에서 손꼽히는 도시였다.[7]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전국 도시들 중에서 최상위권에 위치할 정도로 위상은 여전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부산, 대구가 경주를 역전하여 전국 대도시의 위상을 뺏겼다. 심지어 예전만 하더라도 경주 주변의 외항으로 경주에 장 보고 문화생활하러 오던 옆동네 포항, 울산한테도 밀리는 지방 소도시로 전락하게 되었다(...). 역사유적들 많다고 재개발까지 제한된 지역이라 이후에도 이런 쪽으로 명성을 유지할듯싶다.

개의 품종 중 하나인 동경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조선 헌종 때인 1845년에 나온 경주지역 지리지 이름도 동경잡기(東京雜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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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경(개성), 서경(평양), 동경(경주). 후술되어있지만 이후 남경(서울)도 추가된다.[2] 다만 후백제 견훤서라벌 기습으로 이미 서라벌을 함락하고 약탈과 방화를 일삼은 전적이 있었다. 사실 이 사건 때문에 신라 지도부들이 완전한 고려 지지로 돌아섰다.[3] 개경에도 흥왕사처럼, 황룡사보다 옆으로 더 넓은 사찰은 있었다. 흥왕사는 조선의 경복궁과 맞먹는 면적을 자랑했다.[4] 그리고 평양이 개경의 서쪽보다는 북쪽에 가까운데도 고려시대에 북경이 아닌 서경이라 이름지은 이유도 엄연히 고구려와 신라를 모두 통합했다는 입장인 고려 정부가 신라의 옛 수도인 동경과 대등하게 대비하기 위해서 고구려의 옛 수도 평양을 서경으로 붙였다고 주보돈 교수는 추정하였다.[5] 고려, 조선시대에는 이런 식으로 반란이 일어나면 행정구역의 격을 낮추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경우가 밀성군(밀양)을 귀화부곡으로 격하시킨 사례다.[6] 대표적으로 상주시, 진주시, 안동시, 성주군.[7] 18세기의 인구 통계에 따르면 5번째로 인구가 많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