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7-07-29 22:09:43

노벨상/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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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한국은?2. 문제점을 극복해야 한다
2.1. 문학상
2.1.1. 주장 1: 아직 한국의 문학작품들이 해외에 많이 선보이지 않았다.
2.1.1.1. 반론: 이미 해외에 소개된 작품이 결코 적지 않다.
2.1.2. 주장 2: 한국어 → 외국어 번역 문화가 성숙되지 않았으며, 한국어는 영어로 번역하기 어렵다.
2.1.2.1. 반론 2-1: 쉬운 말로 적은 수만 출판하면 가능성이 있다? (타당성 부족)2.1.2.2. 반론 2-2: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정서의 부재가 문제다.2.1.2.3. 대안: 작가가 처음부터 영어, 또는 주목받을 만한 언어로 쓰면 된다? (현실성 부족)
2.1.3. 주장 3: 문학은 단순히 종이 위 글자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인문학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2.1.4. 주장 4: 우리 문학의 세계 인지도와 관심이 높지 않다2.1.5. 주장 5: 한국인의 문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저조하기 때문에 한국 문학이 발달하지 못하고 있다 2.1.6. 종합: 한국 문학에 대한 세계의 주목을 끌 수 있게 해야 한다.
2.2. 물리/화학/생리의학상
2.2.1. 주장 1: 인적/물적 자원에 대한 투자가 너무 부족히다
2.2.1.1. 근거 1-1: 인적 자원2.2.1.2. 근거 1-2: 물적 자원
2.2.2. 주장 2: 언어의 장벽이 높다
2.2.2.1. 반론: 영어를 잘 하는 것은 필수조건이 아니다
2.2.3. 주장 3: 억압적인 위계질서 때문에 제대로 된 연구가 나올 수 없다
2.3. 경제학상2.4. 평화상

1. 현재 한국은?

없다.
노벨상 수상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아주아주 좁은 분야의 응용과학보다는 전 분야에 걸쳐 인류의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보편적 지식의 확장을 더 높게 쳐 주는데, 한국은 기초과학으로의 투자를 198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수준으로 그 역사가 아주 일천하다. 이런 연구일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데, 투자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누적 투자 총액이 크지 않고 결과물도 잘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과학 연구를 할 만한 상황이 된 지가 그나마 1990년대 중후반이고, 학문의 발전 양상을 보면 1세대는 교육 2세대는 연구를 3세대는 세계 수준의 연구를 하는데 한국은 주류 교수들이 2세대~ 2.5세대 정도다. 당연히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 힘들다. 한국은 정부가 수립된지 아직 70년 밖에 되지 않았고, 70년대까지만 해도 의식주의 해결 자체가 고민거리였던 나라이다. 따라서 초기의 한국의 과학자들은 아예 국가안보와 경제 건설에 즉각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양성되고 동원되었다. 그런 기억들을 고스란히 가진 중노년층이 아직은 사회 전반에 있어 많은 영향력을 지니다 보니 당장의 결과에 집착하게 되고, 전반적인 교육 방향도 그런 가시적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학생 육성으로 이루어지는 편이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 필요한 가치관과는 아직 거리가 먼 셈. 한국이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여유로운 사고가 먼저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그나마 상술했듯 몇몇 경우에 있어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고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

2. 문제점을 극복해야 한다

2.1. 문학상

이 분야에서는 매년 문학상 후보로 언론에서 주도적으로 설레발만 치면서 고은을 거론하는데, 그 이유로는 한국어권(수상자 없음)/비주류 언어권/동양-한자 문화권 출신자인 점, 그리고 그동안 시인 수상자가 많지 않았던 점을 고려한 안배 차원에서 수상 가능성이 상당히 높게 쳐주고 있었지만 2011년에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에게 상이 돌아갔고, 2012년에는 중국의 소설가 모옌이 수상하면서 향후 10년 안으로 다시 한자 문화권 작가에게 상이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데다가 고은의 나이가 2013년 기준 80세로 상당히 고령이기 때문에 수상 가능성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80년대 3S 정책 중 하나로 노벨문학상을 노려 군부 정권 독재에 대한 불만을 덮고 정권 찬양에 쓰고자 당시 한국소설들을 마구잡이로 번역하여 내놓던 적도 있었다. 문제는 이러면서 언론이 엄청 설레발을 떨었기에 김동리 작가는 살아 생전 자신의 소설 사반의 십자가가 노벨문학상에 근접했다느니 뭐니라는 말을 지겹게 듣어서 늘그막에 이걸 비판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선 아직 수상자가 없다보니 문학 관련 기사만 나오면 으레 노벨문학상과 관련짓곤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세계 도서 박람회가 열리면 '도서 박람회가 열린 나라에서 몇 년 안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경우가 많다'라든가. 시인 고은이 매년 후보에는 오르기 때문에[1] 해마다 시상식날만 되면 기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고은은 이로 인해 받는 엄청난 중압감 때문인지 떨어질 때마다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이 떡밥에 대해 제기되는 몇 가지 주장들과 반론들을 소개해 보자면 이렇다.

2.1.1. 주장 1: 아직 한국의 문학작품들이 해외에 많이 선보이지 않았다.

맞는 말이다. 한국은 지리적ㆍ역사적으로 서양 국가에 인지도가 낮았고, 따라서 한국의 텍스트가 서구권에 번역되는 일도 적었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며,[2] 여기에 기본적으로 한국어 사용자가 밀집되어있는 한국의 한국인은 인구수가 기껏해야 5천만 밖에 안 되어 서양 언어권 국가보다 인구가 적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 텍스트 번역 사례가 적으니 번역계의 노하우나 문학적 성숙도 기대하기 힘들고, 좋은 작품이 번역될 확률도 극히 낮아진다.

또 작품은 "번역하면 끝"이 아니다.산 넘어 산 책 역시 상품이기에 마케팅이 있어야 하는데 라이선스를 수입하는 해외 출판사의 입장으로서는 소비자들이 익숙한 국가의 서적을 들여오려하지 왠 생뚱맞은 국가의 책을 갖고오려 하지 않는다. 결국 소규모 해외 출판사들만이 틈새 시장을 노리고 라이선스를 가지고 오는데, 소규모 출판사는 대규모 출판사보다 마케팅에서 밀린다. 그리고 이런 소규모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노벨문학상 선정위원의 귀에까지 들어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2.1.1.1. 반론: 이미 해외에 소개된 작품이 결코 적지 않다.
피터 현이 《월간조선》에 연재한 회고록에 의하면 80년대 전두환의 사업 중의 하나가 본인이 정권 잡는 동안 한국인의 노벨상 최초 수상이었다.[3] 그래서 상대적으로 쉽다고 생각되는 문학상에 도전하였고 당시 유명작가들의 작품이 국가주도로 번역에 투입되었다.

비록 질은 대단히 낮았고 대부분 재미교포 2세대 교육용이거나 한국대사관 창고에서 썩는 경우가 많았지만, 어쨌거나 지난 수십년간 한국 문학계에서 질보단 양을 택하며 온갖 국가에 라이선스를 팔아넘긴 경우는 많다. 고은은 25작품이 영미판으로 번역되었고 이문열은 33작품이 번역되었다. 신경숙의 작품은 30개국 이상에서 출간되었다. 이외에도 다수의 문단 유명 작가들의 대표작이 영미판으로 번역되었다.

따라서 한국 문학이 외국에 많이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다만 인지도가 떨어져서 주목을 못 받는다는 말은 타당성이 있다.

2.1.2. 주장 2: 한국어 → 외국어 번역 문화가 성숙되지 않았으며, 한국어는 영어로 번역하기 어렵다.

역시 맞는 말이다. 번역은 문학 소통에 있어서 절대불가결한 입장을 차지한다. 실제로 해외 소개된 고은의 작품은 66종이지만 수준 높은 번역은 10%에 그친다는 평가다. 게다가 일본의 가와바타가 《설국》으로 문학상을 받았던 데는 미국인 번역가 에드워드 사이든스티커의 공이 절대적이었으며, 일본 원전보다 영역본이 낫다는 평까지 받았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손꼽히는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 역시 프랑스 번역가인 유수프 브리오니가 꾸준히 프랑스어권에 소개함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문제는 가장 공급이 좋은 한국인 출신의 한영 소설 번역자라 하더라도 보통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지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지는 않는 것이다. 영어를 이해하여 국어로 옮겨 쓸 수는 있어도 국어의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영어의 소설로 옮기는 것은 거의 영어권의 작가 만큼이나 고도의 영문학 소양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환경(문법 및 독해 위주의 영어 수업, 국어는 한국어로 유일, 영어권 인구수 극소, 이웃 국가 중 영어권 국가 전무, 유사이래 원어민 수준의 영어권 인구수가 사회에서 큰 비율을 차지한 적 없음 등등)에서는 이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4]

더불어 한국어 원어민과 영어 원어민이 상대의 언어를 배울 때에도 장벽이 있다. 한국어와 영어의 문법의 차이, 언어가 형성되어온 정서의 차이 등으로 인해 영어 원어민은 한국어 학습에 큰 어려움을 겪으며, 한국어는 학습 난이도가 그 무시무시한아랍어, 일본어와 함께 세손가락안에 꼽힌다.[5] 한국은 근 백년간 영어 관련 활동을 통해 비교적 높은 수준의 영→한 번역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한→영 번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어 원어민은 원작 수준의 영어 작문에 어려움을 겪고, 영어 원어민은 한국어 학습에 어려움을 겪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결국 번역 작업이 생기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은 되는 번역을 만들기 위해선 영→한 때처럼 평범한 번역자에게도 맡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극소수의 영어 및 한국어 모두를 섭렵한 재능있는 번역자에게 작업을 의뢰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이를 찾기란 힘들뿐더러 페이도 높고 소수가 대부분의 작업을 맡아서 할 수밖에 없으니 시간도 오래 걸리며 번역된 텍스트 수도 적어질 수 밖에 없다.
2.1.2.1. 반론 2-1: 쉬운 말로 적은 수만 출판하면 가능성이 있다? (타당성 부족)
이에 대해 비교적 쉬운 말로 적은 작품을 출판하면 되지 않냐는 반론이 있다. 예를 들어 헤밍웨이 같은 작가가 문장이 화려해서 찬사받은 게 아니다. 언어적 기교로 수상작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하지만 이것은 문학과 번역에 대해 무지에서 나온 잘못된 주장으로, 문학의 번역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문장이 화려하다거나 복잡한 부분 보다는 각 언어만의 고유한 정서를 담은 단어, 즉 타 언어에는 없는 단어나 타국에는 없는 관습을 옮겨오는 것이 주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쉬운말로 된 좋은 작품이 모두 잘 번역되었다면 세상 어느 언어의 문학인들 묻힐리가 없다.

또한 상술했듯 온갖 악조건들이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기본적으로 한국 문단의 힘이 세계 주류 문단에서 소리를 못 내고, 창작되는 작품 수가 적고, 소개되는 작품 수도 적고, 번역자 수도 적고, 최소한의 수준이 되는 역자도 부족하고, 작품을 받아주는 출판사도 적고, 그나마 그 출판사도 영세한데 이런데에서 세계 정상권 문학 수준에 닿는 주제의식, 사유, 통찰이 담긴 작품이 질좋게 뽑힌뒤 입소문이 탈 확률이 몇이나 될까?
2.1.2.2. 반론 2-2: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정서의 부재가 문제다.
번역이 안 되서 노벨상을 못 받는다는 주장은 아주 전형적인 근거없는 자국 우월주의다. 언어 이전에 정서가 있다. 인간으로서 보편적인 정서가 있다. 그런 보편적인 정서에 감동을 주지 않고서 어떻게 세계적인 대문호가 존재하겠는가? 물론 《홍루몽》 같이 자국 내에서만 극도로 찬양받는 작품이 있다. 하지만 한국문학은 한국 대중이 좋아하는가? 아니면 소수 교양인이 좋아하는가? 아니다. 오직 그걸로 생계 유지하는 밥그릇 종사자들만 좋아할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 문학은 고유하다기보단 폐쇄적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자폐적 자화자찬과 같다. 그리고 앞질러 말한 헤밍웨이도 영어권 외에 어떤 언어로 번역하든간에 보편적인 감동을 준다. 한국어 텍스트가 영어권에 소개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살펴본다면 영어권 내에서만 인정받아야한다. 왜냐하면 정서와 관습이 고유하다면 번역으로 옮기기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표현력을 지닌 셰익스피어 희곡도 마찬가지로 세계적 인정을 받고 있다.[6] 500년 전 봉건적 관습을 이야기했는데도 말이다!

쉬운 말로 된 좋은 작품이 한국어라서 번역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저 애초에 노벨상을 탈 만큼 좋은 작품이 없는 것일 뿐이다. 다른말로 못써서그런 것이다. 그리고 언어는 시대에 따라서 변한다. 일제 강점기만 거슬러올라가도 이해하지 못할 생소한 생소한 어휘가 굉장히 많다. 조선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면 내용 자체도 파악하기 힘들 정도이다. 우리도 우리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당착적 상황이 벌어진다. 결론적으로는 문학이 시대와 문화권 내에서의 한낱 유행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애당초 원작자의 느낌과 생각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면서 생기는 문제는 한국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어휘가 너무 다양해서 '노르스름하다'는 표현을 영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기에 노벨상을 못탄다는 얘기는 결국 자기위로와 변명에 불과하다. 반대로 따져보자면, Crimson이라는 단어를 보통 우리는 '진홍색'이라고 표현하는데 과연 정말로 진홍색이라는 번역이 Crimson에 대해 영어원어민이 가지고 있는 느낌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2.1.2.3. 대안: 작가가 처음부터 영어, 또는 주목받을 만한 언어로 쓰면 된다? (현실성 부족)
해외의 경우 무라카미 하루키 같이 영어로 저술하는 사람이 있는고로 충분히 시도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번역이 없어도 된다는 점에서 각광받을 만할 방법이다. 게다가 독자 수도 훨씬 많으니...[7] 다만 여기에도 한계가 제법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러시아 출신이지만 영어로 글을 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나, 체코 출신이면서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밀란 쿤데라 같이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활동한 문인들이 있지만, 대부분 "언어적 버프"를 적어도 하나는 받는 유리한 환경이었다.
  • 이민이나 망명으로 오랜 세월 살면서 패권국 언어를 습득했다.
  • 자기 모국어와 패권국 언어가 태생적으로 유사히거나, 인접국가라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쉽게 습득했다.
  • 자국에서 모국어보다 근처의 패권국(러시아 등) 언어를 더 보편적으로 사용했다 (자국 모국어가 따로 없는 경우도 포함).
  • 금수저 혹은 천재아님 둘 다라서 모국에서 양질의 패권국 언어를 조기교육 받았다.
  • 모국 고등교육으로 패권국 언어를 전공했다 [8].
  • 모국이 패권국이었으나 탄압으로 인해 해외로 망명하였고 이후 망명국에서 모국어로 활동했다.
그리고 한국과 영어의 언어 간 장벽이나 한국 내 영어 교육의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아시아에 속한 '한국인' 가운데 영미권 작가와 최소한 견줄 수 있는 수준의 문학 작품을 쓸 수 있는 영어 실력을 갖춘 사람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긴 힘들다.


아니면 국내에서 쉽게 배울 수 있으며 교류도 많고 영어(및 타 외국어)와 상호 번역되는 텍스트의 양과 질, 국제적 위상에서 차원이 다른 일본어나 중국어, 하다못해 한자로 저술하면 되지 않겠냐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 일본어: 일본어로 수준급 문학작품을 남긴 것은 문학에는 생명과도 같은 표현의 자유가 일절 존재하지 않던 일제시대 문인들 이야기다. 더군다나 한국인이 일본어를 "배울" 때 아주 고급스러운 를 이용한다는 점을 보자면 '문학적으로 뛰어난 글'을 쓰기에는 영 좋지 않은 상황일 수 밖에 없다...
  • 중국어: 극심한 검열 때문에 문학에는 생명과도 같은 표현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 백 번 양보해서 수상 직전까지 가더라도, 중국 맘대로 작품을 영원히 묻어 버리면 그만이라는 말이다.
    • 대만/홍콩 : 얘네식 "중국어 (?)"는 중화인민공화국과 극심한 차이가 존재하며, 인지도나 위상에서도 너무 밀려서 가능성이 없다. 대만이라도 쪽수가 남한 인구 반조차 못 미친다.
  • 한자: 국가간에 일관성이 떨어지며, 특히 일본과 인구빨이 넘사벽인 중국에서 각각 자기 모국어식대로 읽어버리므로 결과적으로 작품 자체의 정체성이 상실된다.

프랑스어 같이 영어 말고도 세계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가 여럿 있다지만, 국내에서는 전부 영어보다 익히기 훨씬 녹록지 않은 환경이기에 해당 언어를 전공이라도 하거나, 하다못해 해당 언어권에서 오래 살아서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고려할 수도 없다.

그리고 반기문은 외교관이지, 문학가가 아니다!

결론을 내자면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할지는 모르지만 실현 가능성은 가장 낮다고 봐야 한다.

2.1.3. 주장 3: 문학은 단순히 종이 위 글자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인문학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

사실 소개에서도 나오듯 노벨문학상은 인문학적인 상이기에 작가들이 화두로 던지는 사회문제와 인간문제가 얼마나 세계적 영향이 있는가와 밀접하게 관계된다.# 아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수상 이유와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절대적인 진리를 회의하고 숨겨진 상대적 진리를 찾는 것, 전통적 역사를 회의하고 밀려난 또다른 역사나 찢겨나간 개인의 역사를 추적하는 것, 경계를 허물고 해체하는 것, 말하자면 중심에서 벗어나 주변부를 조명하는 것이 요즘 세계 문학의 화두"라며 "특히 추리소설적 기법을 쓴 작품이 각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출처

2.1.4. 주장 4: 우리 문학의 세계 인지도와 관심이 높지 않다

  • 노벨상 얘기가 나올 때마다 번역이 얼마나 되고, 또 번역의 질은 어떻고 하는 얘기들이 많이 오가지만, 사실 단순히 번역만이라면 우리가 직접 돈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해낼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해외의 수준높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내야 하며, 연구자와 논문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서 노벨문학상이란 건 결국 해외에서의 인정이다. 근데 미국, 유럽의 유명 대학에서 연구자 한 명 없고, 논문, 평론이 거의 나오지 않는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는 건, 마치 네이처등 유명 저널에서 거론되지도 않고, 논문 인용횟수도 적은 물리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기적같은 얘기이다.[9] 또한, 학계에 권위를 인정받은 저명한 교수나 평론가중에서 "한국문학은 이런 것이다"라고 대변해줄 수 있는 친한파가 있다면 꽤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괜히 모 도박사이트에서 이상한 장난질하는 것보다 서구의 학자들을 한국 편으로 포섭할 수 있는 장기적인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2.1.5. 주장 5: 한국인의 문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저조하기 때문에 한국 문학이 발달하지 못하고 있다

  • 결국 노벨문학상은 국가 전체의 문학과 독서 문화 수준과 관계된다고 볼 수 있다. OECD 국가 중 1인당 한 달 독서량이 미국은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 중국 2.9권, 한국 0.8권이고 이는 유엔 191개국에서도 166위로 최하위 그룹이다. 그나마 읽는 책 한 권도 자기계발서이다. 문학 작품을 읽는 시간에 공부나 일을 하나라도 더 해서 성공하라는 관점이 많아서 결국 학생들은 입시를 위한 문제집을 읽고, 성인이 되면 자기계발서를 읽게되는 것. 심지어 베스트셀러에도 문학이나 기타 분야보다는 자기계발서가 많고 그나마 인기있는 문학 작품은 외국 문학이다. 잘 쓰는 법은 많이 읽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서구국가들은 독서나 문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나 인프라가 잘 되어있고, 동북아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중국이나 일본도 독서량이 한국보다 높다. ### 댓글참조 또한 인구수와 영토 크기를 고려해도 우리나라의 도서관 수는 여타 나라들보다 현저하게 적은 편이다. 문학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창구로써 기능을 하는 도서관과 접할 기회가 드물다는 것이다.
파일:vpwZZjn.jpg

2.1.6. 종합: 한국 문학에 대한 세계의 주목을 끌 수 있게 해야 한다.

모든 주장과 반론을 통틀어 보자면, 가장 큰 문제는 한국 문학이 세계에서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다. 한국 문학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증가한다면 자연히 국민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도 늘며, 문학의 발달은 쉽게 따라오게 된다. 한→영 번역의 질 향상은 그 다음이다.

노벨상은 하루 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지원과 투자를 바탕으로 꾸준히 한국 문학을 성장시킨다면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노벨문학상을 배출할 수 있을 것이다.

2.2. 물리/화학/생리의학상

그나마 문학계는 고은 같은 사람이 있어서 추측성 기사를 내 보내는 반면에 과학 쪽은 언론도 별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해서 과학 전문지가 아니고서야 설레발 기사도 거의 없다는 점(...).

물리학계의 경우는 노벨상 수상 시즌때마다 언론들이 설레발을 치지만 적어도 향후 5~10년간은 받을 일이 없다고 봐야 하며 한국의 연구 문화 특성상 노벨상이 나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한 때 그래핀 분야의 권위자인 김필립 교수가 수상후보로 언급되었지만 2010년에 러시아 출신의 두 과학자가 김 교수가 업적을 남긴 그래핀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고, 상을 받은 업적에 노벨상을 다시 줄 가능성은 드물기 때문에 앞으로 새로운 업적을 발견하지 않는 한 현재로선 수상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10]

화학 분야 후보로는 2014년부터 톰슨로이터에서 노벨상 후보자로 예측한 기능성 메조나노다공성 탄소물질과 제올라이트 분야의 개척자인 유룡 카이스트 교수가 노벨화학상 후보로 오른 적이 있으며, 이 분야는 아직 연구중이고 해당 분야의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는 없어서 현재 수상 가능성이 있기는 있다.

생리의학 분야는 CT, MRI, PET 의 대가로 인정받는 조장희 교수가 양전자 단층촬영기(PET)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업적이 있어서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다.

한국인은 아니지만 한국계 출신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게 거의 확실시 되었던 물리학자는 핵물리학의 재규격화와 게이지 이론등을 연구한 벤자민. W. 리 (이휘소) 박사가 있다. 미국 국적을 취득한 이후 노벨상 후보로 강력하게 노미네이트 되던 도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생을 마감했다. 그와 같은 연구를 함께 진행한 스티븐 와인버그셸던 그래쇼, 헤라드뤼스 엇호프트 같은 인물이 훗날 해당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보았을 때 리 박사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물리학 발전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었을 것 뿐만 아니라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있었을것으로 보아 과학계의 많은 아쉬움을 자아냈다. 애당초 이휘소 박사는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기 때문에 수상했더라도 그게 한국에 있어서 별 의미는 없지만....[11]

그래도 수상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며 국내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몇 년안에 수상이 가능한지 물어본 설문조사 결과, 6~10년 안에 수상할 것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 그리고 가장 유력한 한국인 후보로 김빛내리 서울대 석좌교수(IBS 연구단장)가 선정됐다. [12]

2.2.1. 주장 1: 인적/물적 자원에 대한 투자가 너무 부족히다

세계에서 인구 대비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그 다음은 독일이고. 그러나 독일, 일본, 한국 혹은 유럽의 많은 선진국에서는 고등학교 때 배우는 미적분[13] 미국에서 대학 과정 혹은 AP에서야 처음 배우며, 미국에서는 미적분을 암산으로 계산하면 수학의 신으로 추앙받는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가장 많이 나오는 비결은 무엇일까? 세계의 우수한 인재들이 미국 대학과 연구소로 몰리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의 측면에서 볼 수 있다.
2.2.1.1. 근거 1-1: 인적 자원
무엇보다 미국의 대학과 연구소는 상대적으로 교수를 비롯한 인적 구성원들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연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료들의 수준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점은 세계의 우수한 인재를 끌어모으는 데 중요한 원인이 된다. 결국 우수한 인적 구성원들이 있기 때문에, 계속 세계의 우수한 인재들이 몰리고, 그래서 다시 우수한 인적구성원이 갖춰지고.. 또 세계의 우수한 인재가 모이고... 결국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수한 인재를 끌어 모으려면 그곳에 가면 뛰어난 연구성과를 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야 한다. 우수한 논문을 쓴 교수를 데려오려면 여기서 연구를 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학술지에 논문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을 주면 충분하다.

거액 연봉을 주지 않더라도 그만한 확신을 줄 수 있다면 우수한 교수, 우수한 학생이 몰려들게 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그만한 수준의 연구실이 드물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 우수한 석사 졸업생들이 죄다 미국 박사과정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재가 미국 박사과정에 몰려 있기 때문에 우수한 논문도 미국에서 많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 중 상당수가 박사가 되고 연구를 하려는 진입 자체를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노벨상을 받으려면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가 필요하니 공부 잘 하는 학생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

단순히 우수 인재가 한국에 남는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한국 대학원생은 미국 풀펀딩 대학원생에 비해 보수가 적어, 공부해야 할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등록금 모두 대 주고 한 달에 250만원씩 착착 들어온다면 그런 아르바이트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할 수록 노벨상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2.2.1.2. 근거 1-2: 물적 자원
미국의 대학과 연구소는 연구자금이 풍부한 것[14]도 영향이 있다. 우리나라는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 뿐 아니라 물적 자원도 국가의 지위에 비해 상당히 미약하다. 수능 물리 강사인 정원재의 말에 의하면 그는 미국의 교육현장에서 역학 실험을 하는 것을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종이테이프를 조악한 카트에 연결해서 손으로 끌고 타점기록계로 이를 기록한 뒤 손으로 그래프를 그려 이를 분석하는 것이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보아왔던 실험 환경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마찰을 없앤[15] 경사면에 카트를 놓으면 경사면 양 옆의 적외선 센서가 이를 감지하여 컴퓨터로 그래프를 그려주고 사람들이 이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유럽 입자물리 연구소에는 직경이 20km에 달하는 입자가속기가 있지만 대한민국에는 오직 포항공대에 운동장 한 바퀴를 도는 크기의 입자가속기 밖에 없다고 한다. 이 경우 입자를 가속하는 데에 한계가 생기며[16] 이는 열악한 설비 투자의 한 단면일 뿐이다.

국내에서는 노벨상이 나올 정도의 연구를 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 한국은 오랜 기간 개발도상국에 불과했다. 노벨상급의 물리학, 화학, 생물학, 기초의학 등의 연구에 아무 수익 내지 않고 장기간 기다려 줄 만큼의 돈이 없다. 물론 2014년 들어서도 쉽지 않다. 대한민국과 동급의 경제력을 지닌 나라는 체코, 슬로베니아, 몰타, 키프로스,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등인데, 나라별로 다르지만 이 정도 경제력의 나라에서 노벨상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다른 근거로는 2015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와 비교해 교육열이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는 옆나라인 '중국'과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것을 들고 있다. 특히 일본은 이미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중국과 일본의 연구실 환경이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재정적인 부분, 장비 등에서 질적 차이가 있다는 점은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입시 위주의 교육 자체가 노벨상 수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재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2.2.2. 주장 2: 언어의 장벽이 높다

세계의 공용어나 다름없는 영어를 미국에서 쓰고 있다는 것도 큰 이유다. 언어의 장벽은 연구실의 인적 수준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외 석학이나 뛰어난 학생들이 오려고 해도, 영어로 생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꺼리는 것도 있다.

연구 기초 지식을 쌓는 노력에도 한 몫 한다. 학생 층에서 불만인 부분은, 토익 700~950점 정도라면 한국어 논문을 읽는 게 영어 논문을 읽는 것보다 10배는 빠르다. 반대로 교수급에서 언어 장벽에 대한 불만은 논문 읽기보다는 논문 쓰기 쪽에서 나온다. 토종 한국인끼리만 연구하면 원어민 교정을 받아봤자 언어적 이유로 리젝을 많이들 당한다. 억지로 원어민을 끼워서 내용을 쓰게 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 셈이다. 이렇게 탑저널에서 리젝을 당하면 인기없는 학술지로 다운그레이드해서 퍼블리시하게 되는데 그러면 노벨상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2.2.2.1. 반론: 영어를 잘 하는 것은 필수조건이 아니다
하지만, 동해만 건나가서 일본(일본어)의 사례를 비추어 보자. 실제 노벨상을 수상한 일본인 중에서 영어를 원어민에 준하는 수준(=원어민 고등학생급)으로 잘 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그렇다고 일본어가 세계 공용어의 반열에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며, 도리어 구미권 출신에게는 습득난이도 최고수준에 속하는 난해한 언어이다.

그런고로 외국어가 부족하더라도 학술적으로 발전되면 노벨상을 받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도 도쿄대나 교토대의 입시는 굉장히 어렵다. 이런 일본 명문 대학을 중심으로 100년 이상 축적되어 온 역량 때문에 일본어가 한국어보다 국제 무대에서 인지도가 차원이 다르고 영어와 상호 번역되는 텍스트의 양이나 질이 넘사벽급이다.

2.2.3. 주장 3: 억압적인 위계질서 때문에 제대로 된 연구가 나올 수 없다

대학원 내에도 똥군기라 할 만한 신분제가 있다. 이 때문에 대학원생들은 연구에만 집중하기가 힘이 든다.

석사 시절에는 박사에게 시달리고, 박사 시절에는 교수에게 시달리며, 초임 교수가 되어서는 정교수 승진을 결정하는 기존 정교수들에게 시달린다. 미국 대학원에 재직중인 사람들과 당연히 성과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위계질서는 입시와 큰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는데, 공부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여러 한국인 집단에서도 이런 군기가 관찰되기 때문이다.

2.3. 경제학상

2.4. 평화상

이미 한 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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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벨상 후보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매년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에서 순위권에 들었다는 것. 노벨상 항목 참조.[2] 한국의 해외 이미지는 극히 소수의 분야에 편중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소수만이 메이저 분야이고 이 분야들은 문학과는 별반 관련이 없다. K-POP, 삼성전자LG전자로 대표되는 하드웨어 전자 제품, 조선업 등.[3] 그가 꿈꾸던 최초의 노벨상 수상 한국인이 바로 전두환의 정적이었고 전두환과 투쟁한 공로가 인정된 사람이라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이다.[4] 대학수학능력시험영어 과목에서 영어 교수들이 직접 텍스트를 만들거나 한국인이 만든 영어 텍스트를 가져오지 않고 미국의 영자 텍스트를 가져오는 것이 이 때문이다.[5] 한국어 문서 참조.[6] 적어도 세익스피어의 희곡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다! 게다가 여전히 현대의 관객과 독자들은 햄릿의 고뇌에 공감할 수 있고 오델로의 몰락에 연민을 느낄 수 있다. 심각하면 무의미한 단어의 나열로 보이기 까지 하는 한국의 몇몇 문학들과는 달리.[7] 영어 원어민만 3억을 넘긴다![8] 참고로 본인이 언어 공부에 특별한 노력을 추가로 들인다든가 (단순히 어학연수 가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버프 없이 이것만 맹신한다면 잘 해 봤자 원어민 고등학생조차 못 따라잡는다.[9] 가수로서 상을 받은 밥 딜런도 이미 오래 전부터 강단에서 그를 시인으로서 인정하고 연구논문이 나오고 있었다.[10] 이 당시 네이쳐에 김필립교수의 수상 실패문제를 비롯해, 보도자료의 허술함등을 신랄하게 디스하는 기고문이 올라왔었다. 한국에서만 논란이 아니다[11] 여담으로 벤자민 리 박사의 죽음에 대해선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 호사가들의 대화거리가 되곤 하는데, 한국에서도 다큐멘터리로 다뤄진 적이 있다. 궁금하다면 찾아볼 것.[12] 사실 김빛내리 교수의 주 연구 업적인 마이크로 RNA 연구는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상 업적인 RNA 간섭(interference) 연구에 해당하므로 현재 수상 대상이 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해당 분야에서 훌륭한 선도적 업적을 남겼음은 분명하다.[13] 한국의 수학 교육과정만 지나치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학 항목 참조. 특히 프랑스의 경우 고등학교에서 대학 1학년 교양 수준의 학문을 떼고 대학에 진학한다.[14] 실제로 세계의 유수한 기업이나 갑부들이 대학이나 연구소에 기부금을 낼 때, 그 대학이나 연구소가 미국에 있는 경우가 많다.[15] 바닥에 작은 구멍이 여러 개 뚫려있어 그곳에서 바람이 나온다고 한다.[16] 원이 지름이 클 경우 가속 코스가 거의 직선에 가깝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가속할 수가 있으나 작을 경우에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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