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동준 VC · 2 허강준 · 3 홍재석 · 4 송주훈 · 5 이탈로 · 6 김정민 · 7 구자철 · 8 김건웅 · 9 유리 · 10 헤이스 VC 11 남태희 · 13 정운 · 14 서진수 · 15 홍준호 · 16 김태환 · 17 박주영 · 18 진성욱 · 19 김주공 · 21 안찬기 22 안태현 · 23 임창우 · 24 한종무 · 25 원희도 · 26 임채민 C · 27 전성진 · 28 김재민 · 29 김현우 · 30 최영준 32 이주용 · 34 박주승 · 35 조인정 · 37 여홍규 · 38 곽승민 · 39 백승헌 · 40 임준섭 · 41 김근배 · 47 카이나 · 73 갈레고 |
김학범 · 김정수 · 차상광 · 이상호 심영성 · 한정국 |
※본 문서는 간소화한 것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타 구단으로 임대한 선수는 제외했습니다. 임대 선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남태희의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둘러보기 틀 모음 | |||
개인 수상 | ||||
베스트팀 | ||||
| 2018 · 2019 |
제주 유나이티드 FC No. 11 | |||
남태희 南泰煕 | Nam Tae-hee | |||
<colbgcolor=#e1002a><colcolor=#fff> 출생 | 1991년 7월 3일 ([age(1991-07-03)]세) | ||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75cm, 73kg |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1], 윙어 | ||
주발 | 오른발 | ||
학력 | 금산초등학교 (1998~1999) 진주봉래초등학교 (1999~2004) 현대중학교 (2004~2007) 현대고등학교 (2007) | ||
등번호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2] | 8 | |
제주 유나이티드 FC[3] | 11 | ||
소속 | <colbgcolor=#e1002a><colcolor=#ffffff> 유스 | 울산 현대 (2004~2007) 레딩 FC (2007~2008) | |
선수 | 발랑시엔 FC (2009~2011) 레크위야-알 두하일 SC (2012~2019) 알 사드 SC (2019~2021) 알 두하일 SC (2021~2023)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23~2024) 제주 유나이티드 FC (2024~) | ||
국가대표 | 54경기 7골 (대한민국 / 2011~2022) | ||
병역 | 예술체육요원[4] | ||
가족 | 부모님 배우자 이나영 딸 남채아(2017년 10월 29일생) 아들 남유준(2019년 11월 20일생) | ||
링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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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국적의 제주 유나이티드 FC 소속 축구 선수. 포지션은 윙어이다.2. 클럽 경력
자세한 내용은 남태희/클럽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3. 국가대표 경력
자세한 내용은 남태희/국가대표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4. 플레이 스타일
볼을 다루는 기술, 특히 드리블 수준은 상당히 뛰어나다. 발바닥으로 볼을 긁는 컨트롤이 일품이며 주력 역시 굉장히 좋은 편. 경우에 따라 플레이 메이킹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경기를 보는 시야와 패스 실력이 준수하다. 그래서 미친 날엔 그야말로 카타르 메시, 남자르라는 소리가 나온다. 종종 2 : 1 패스 플레이를 통해 수비진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플레이도 보여준다. 속도 조절에도 능해 천천히 움직이다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것만으로 수비를 벗겨먹을 때도 있다. 킥력 또한 준수하여 프리킥을 전담하기도 하고, 주발은 오른발이나 왼발도 나쁘지는 않으며, 오프더볼 센스도 준수해 빌드업을 보조하는 역할도 괜찮게 소화하는 편이다. 국내에선 희소가치 높은 크랙 유형에 근접하는 자원.문제점은 크게 ‘판단력’, ‘피지컬’ 정도로 정리된다. 특히 높은 수준의 수비진을 상대할 때 약점이 도드라진다. 월드컵 2차 예선 아시아 수준의 수비에선 압박을 할지 지역방어를 할지 협동 수비를 할지 판단하고 준비하고 부분전술을 실행하는데에 걸리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 그 시간 동안 남태희는 공을 패스를 할지, 드리블로 미완성된 수비진을 헤집어 놓을지, 빠르게 치고 나갈지 판단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그 판단으로 크랙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최종예선 수준의 팀들은 더 빠르게 수비전술을 실행하기 때문에 공격수에게 노출하는 시간 여유가 더 적은데, 남태희는 판단의 속도가 다소 늦다보니 원터치로 풀어가야할 때 드리블을 한다거나, 드리블을 해야할 때 백패스를 한다거나 하는 판단미스을 자주 일으킨다. 카타르 리그 경기템포가 느리기도 하고, 또 본인이 더 빠른 판단이 요구되는 환경에 노출된 적이 별로 없다보니 현재의 상태에 고착된 듯 하다. 그리고 탈압박 능력이 생각보다 좋지 않은데 특히 강팀이나 압박을 잘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무조건 공기화에 백패스 머신이 된다.
플레이에서 이 판단력의 부재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퍼스트 터치인데, 남태희는 공을 받으면 거의 무조건 공을 멈춰놓고 플레이를 이어나간다. 선수들은 보통 적절한 퍼스트 터치를 이용해 공을 빈 공간에 놓고 전개를 한다. 압박과 같은 수비전술이 점점 세밀해지고 공간과 시간을 점유하는 싸움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해진 현대축구에서 이는 모든 상황에서 너무나도 큰 이점을 가져온다. 그래서 때때로 퍼스트 터치가 길어보이거나 투박해 보여도 경기의 흐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플레이를 가져올 수 있기에 선수들이 이런 퍼스트 터치를 가져간다. 남태희는 이런 모든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 퍼스트 터치를 가져가면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의 대부분을 잃어버리고 거의 항상 드리블로 수비수와 대치하게 되는 상황을 만든다. 물론 남태희의 공 다루는 실력은 참으로 높은 수준에 있고, 이렇게 수비수(들)를 뚫고 전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거의 기본 옵션으로 공격 전개의 템포가 죽고, 어떤때는 좋았던 전개가 통째로 날아간다. 아이러니하게 팀의 플레이를 희생시키고 본인의 개인기량을 부각시키는 플레이를 무의식적으로 이어가게 되는것. 이러한 단점이 확실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요코하마 참사이다.
이로 인해 발기술과 드리블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온더볼이 좋지 못하다고 평가받는 편이다.
몸싸움도 그리 강하지 않다. 물론 개인차 및 한계는 있겠지만, 피지컬은 노력과 훈련 여하에 따라 나아질 수는 있다.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았던 박주영도 모나코로 이적해서는 그 거친 프랑스 리그앙에서 피지컬을 키워가며 철저하게 현대 축구의 원톱 롤을 수행했다. 다만 그 대가로 유소년 레벨과 K리그에서의 기술적인 다재다능함이나 날렵함을 다소 상실했다는 평도 있기에, 장점을 보여주면서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선수 입장에서 쉬운 선택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여러모로 이재성과 비교해보면 재밌는데, 비슷한 포지션에서 활약하는 두 선수는 모두 몸싸움에 약점을 가지지만 남태희는 빠른 주력과 발기술을 무기로 삼았고 이재성은 남태희에 비해 발기술이나 주력이 좋진 않지만 대신 빠른 판단과 지능적인 플레이, 왕성한 활동량을 무기로 삼았다. 참고로 빠른 발과 정교한 발기술, 지능적인 플레이 모두 갖춘, 즉 이 두 선수을 합쳐놓은 플레이를 22살에(!) 했던 선수가 있다.[5]
이 때문에 대표팀에서는 김신욱 과 함께 약팀의 밀집 수비를 깨부수는 소위 양민학살이 가장 특화된 역할이다. 유럽파 주전 공격수인 손흥민, 황의조, 황희찬 모두가 상대방의 뒷공간을 이용해 침투하는 스타일이라 내려앉은 두줄 수비를 뚫는데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남태희는 아시아 최종예선 팀 수준만 되도 위 상기된 단점에 버로우 타기 때문에 김신욱이 좀 더 우선시 되고있다. 때문에 선수로서의 황혼기까지도 참여한 A 대표팀 메이저 대회는 2015 AFC 아시안컵이 유일한 상황.
하지만 벤투호에 들어오면서부터 입지가 바뀌었다. 벤투는 상대팀의 밀집수비를 높이와 힘보다는 빠르고 잦은 좌우 전환으로 부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김신욱의 활용도가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반면에 남태희는 공격형 미드필더나 공격적 성항의 중앙미드필더로는 이재성에게, 세컨톱으로서는 정우영 등에게 밀리는 모양새지만 남태희는 꾸준히 벤투호의 인재풀에 들어오곤 하여 벤투호의 황태자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곤 했다. 그러나 장밋빛 분위기도 끝까지 이어오진 못하고 2021년 9월을 마지막으로 이동경과 정우영 등에 입지를 내주며 다시금 월드컵 코앞에서 낙마하고 만다.
이처럼 장단점이 명확했던 탓에 런던 올림픽 멤버들을 우대하던 홍명보호조차 남태희만은 끝내 외면했을 정도였으며, 그래도 희소가치 자원으로서 슈틸리케호, 신태용호, 벤투호 가릴것 없이 신임 감독 부임 초반엔 눈에들어 쏠쏠히도 활용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플랜에서 멀어지고 메이저 대회 엔트리에 낙마하고 마는 일명 '개업화환 선수'로 굳어져버린 상황이다. 2차예선, 약체와의 친선전에서는 자주 기용하고 나름 쏠쏠한 활약을 선보이지만 그다음 강팀과의 친선전, 최종예선에서 활약이 미미해지고 월드컵 본선에도 가지 못하는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5. 대회 기록
5.1.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 올림픽 축구 동메달: 2012
5.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AFC 아시안컵 준우승: 2015
5.3. 알 두하일 SC
- 카타르 스타스 리그: 2011-12, 2013-14, 2014-15, 2016-17, 2017-18, 2022-23
- 에미르컵: 2016, 2022
- 카타르컵: 2013, 2015, 2018
5.4. 알 사드 SC
- 카타르 스타스 리그: 2020-21
- 에미르컵: 2020, 2021
- 카타르컵: 2020
5.5. 통산 성적
5.5.1. 국가대표
- 2021년 6월 9일 기준.
연령
|| 경기
|| 득점
||대한민국 | U - 17 | 4 | 0 |
U - 20 | 0 | 0 | |
U - 23 | 9 | 2 | |
A 대표 | 52 | 7 | |
통산 | 65 | 9 |
5.6. 주요 개인 수상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컵 도움상: 2006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컵 최우수선수상: 2006
- 카타르축구협회 선정 카타르 스타스 리그 MVP: 2016-17
6. 여담
- 2016년 6월 결혼[6]과 기초군사훈련을 위해 잠시 귀국하여, 4일 결혼식을 올린 후 13일에 53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하여 훈련을 마치고 다시 레크위야로 합류했다. 생활관 동기들의 증언에 따르면 안에서는 장기와 알까기, 족구의 1인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국가대표라는 이미지보다 친한 동네 형이라는 느낌도 있었다는 의견도 있었고, 훈련이 끝난 후 자기 생활관 동기들에게 밥[7]도 사주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훈련소 내에서도 동기들과 붙임성 좋게 지냈던 듯.[8] 그리고 1년 뒤 득녀를 하면서# 현재는 슬하에 1남1녀가 있다.
- 만약 K리그에 입성한다면 가고 싶은 팀은 본인이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울산 현대라고 밝혔다.[9] # 그래서 항상 울산 입단설이 자주 났었지만, 결국 일본 생활을 거쳐 울산이 아닌 제주에 입단해 늦깎이 K리그 데뷔를 하게 되었다.
- 나름 국대 경력이 있음에도 월드컵 대표로 한번도 뽑히지 못해 많은 아쉬움과 미련이 남아 있을것으로 보였는데, 조원희의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포르투갈과의 카타르 월드컵 조별 리그 3차전 경기에 직접 직관을 가서 대표팀을 응원하면서 팬의 입장에서 순수히 경기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영권한테 이전 양갈비를 사준 덕분에 골을 넣었다는 설명은 덤
- 카타르 시절 카타르가 워낙에 폐쇄적인 문화를 가진 이슬람 국가이기에 취미생활로 마땅히 즐길 게 없자 낚시를 즐기는 모습이 여러차례 포착되기도 했다.
7.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등번호 | 국적 | 포지션 | 한글 성명 | 로마자 성명 | 생년월일 | 신체 조건 | 비고 |
1 | GK | 김동준 | Kim Dong-Jun | 1994년 12월 29일 | 187cm, 88kg | |||
2 | DF | 허강준 | Heo Gang-Jun | 2002년 7월 1일 | 188cm, 80kg | |||
3 | DF | 홍재석 | Hong Jae-Seok | 2003년 7월 3일 | 188cm, 80kg | 임대 | ||
4 | DF | 송주훈 | Song Ju-Hun | 1994년 1월 13일 | 190cm, 83kg | |||
5 | MF | 이탈로 | Italo Moreira Barcelos | 1997년 8월 3일 | 190cm, 87kg | |||
6 | MF | 김정민 | Kim Jung-Min | 1999년 11월 13일 | 185cm, 75kg | |||
7 | MF | 구자철 | Koo Ja-Cheol | 1989년 2월 27일 | 183cm, 78kg | |||
8 | MF | 김건웅 | Kim Geon-Ung | 1997년 8월 29일 | 185cm, 81kg | |||
9 | FW | 유리 조나탄 | Yuri Jonathan Vitor Coelho | 1998년 6월 12일 | 185cm, 78kg | |||
10 | FW | 헤이스 | Isnairo Reis Silva Morais | 1993년 1월 6일 | 173cm, 73kg | |||
11 | MF | 남태희 | Nam Tae-Hee | 1991년 7월 3일 | 175cm, 73kg | |||
13 | DF | 정운 | Jeong Woon | 1989년 6월 30일 | 180cm, 73kg | |||
14 | MF | 서진수 | Seo Jin-Su | 2000년 10월 18일 | 183cm, 71kg | |||
15 | DF | 홍준호 | Hong Joon-Ho | 1993년 10월 11일 | 190cm, 77kg | |||
16 | DF | 김태환 | Kim Tae-Hwan | 2000년 3월 25일 | 179cm, 73kg | |||
17 | FW | 박주영 | Park Ju-Yeong | 2003년 4월 23일 | 187cm, 79kg | |||
18 | FW | 진성욱 | Jin Sung-Wook | 1993년 12월 16일 | 183cm, 82kg | |||
19 | FW | 김주공 | Kim Joo-Gong | 1996년 4월 23일 | 180cm, 73kg | |||
21 | GK | 안찬기 | An Chan-Gi | 1998년 4월 6일 | 187cm, 80kg | |||
22 | MF | 안태현 | Ahn Tae-Hyun | 1993년 3월 1일 | 176cm, 67kg | |||
23 | DF | 임창우 | Rim Chang-Woo | 1992년 2월 13일 | 184cm, 72kg | |||
24 | MF | 한종무 | Han Jong-Mu | 2003년 5월 2일 | 179cm, 70kg | |||
25 | MF | 원희도 | Won Hee-Do | 2005년 8월 1일 | 187cm, 71kg | |||
26 | DF | 임채민 | Lim Chai-Min | 1990년 11월 18일 | 188cm, 82kg | |||
27 | MF | 전성진 | Jeon Sung-Jin | 2001년 7월 19일 | 176cm, 66kg | |||
28 | MF | 김재민 | Kim Jae-Min | 2003년 3월 19일 | 179cm, 71kg | |||
29 | MF | 김현우 | Kim Hyeon-Woo | 1999년 4월 23일 | 180cm, 69kg | |||
30 | MF | 최영준 | Choi Young-jun | 1991년 12월 15일 | 181cm, 76kg | |||
32 | DF | 이주용 | Lee Joo-Yong | 1992년 9월 26일 | 180cm, 78kg | |||
34 | MF | 박주승 | Park Ju-Seung | 2003년 12월 26일 | 178cm, 68kg | |||
35 | MF | 조인정 | Jo In-Jung | 2005년 11월 8일 | 184cm, 75kg | |||
36 | FW | 김승섭 | Kim Seung-Sub | 1996년 11월 1일 | 177cm, 67kg | |||
37 | MF | 여홍규 | Yeo Hong-gyu | 2002년 5월 15일 | 171cm, 67kg | |||
38 | DF | 곽승민 | Kwak Seung-Min | 2004년 8월 24일 | 186cm, 80kg | |||
39 | FW | 백승헌 | Baek Seung-Heon | 2005년 1월 11일 | 172cm, 67kg | |||
40 | GK | 임준섭 | Im Joon-Seob | 2003년 8월 22일 | 194cm, 80kg | |||
41 | GK | 김근배 | Kim Geun-Bae | 1986년 8월 7일 | 187cm, 80kg | |||
47 | FW | 카이나 | Yoshino Kaina | 1998년 6월 28일 | 169cm, 66kg | |||
73 | FW | 갈레고 | Jefferson Galego | 1997년 4월 4일 | 176cm, 70kg | |||
<colbgcolor=#e51937> 구단 정보 | ||||||||
대표이사: 한중길 / 감독: 김학범 / 홈구장: 제주월드컵경기장 | ||||||||
출처: 제주 유나이티드 웹 사이트 |
[1] 파라과이 전에서는 기성용-이청용과 함께 삼각 편대로 뛴 바 있다. 즉, 중앙 미드필더로 뛴 것. 본 포지션이 아니니,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우려가 많았으나 전반에는 그야말로 갓태희였다. 후반에는 지쳐서인지 조금 플레이가 쳐져 있었다.[2] 조광래호에서 데뷔 후 19번을 자주 사용하다가 여러 번호를 거쳐 박주영이 대표팀과 멀어진 슈틸리케호에선 10번을 자주 달았다. 그러나 신태용호에선 대표팀에서 입지가 애매해져 이재성에게 10번 자리를 내줬고, 이후 이재성이 소집되지 않을 때만 10번을 달고 나머지는 주로 8번을 단다. 그래도 대표팀에서 애매한 입지에 비해 가끔 소집되면 기존에 8번을 썼거나 쓰게 될 선수를 밀어내고 8번을 다는 거 보면 최소한의 입지는 보장받는 듯하다.[3] 발랑시엔 FC - 19번
레크위야-알 두하일 SC - 19번, 10번, 25번
알 사드 SC - 19번, 9번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29번[4]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동메달[5] 이렇게 쓰면 이 두 선수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이청용이 엄청난 것 같겠지만 또 장단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킥력 같은 부분이 있다.[6] 이때 결혼식으로 인해 6월 국가대표 평가전을 6월 1일 경기만 소화하고 귀국했다.[7] 해운대구 좌동 NC백화점 애슐리[8] 이때 같은 런던올림픽 멤버였던 기성용, 윤석영, 박종우와 같은시기에 입소했다.[9] 참고로 남태희는 울산 유스인 현대중, 현대고 출신이다.
레크위야-알 두하일 SC - 19번, 10번, 25번
알 사드 SC - 19번, 9번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29번[4]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동메달[5] 이렇게 쓰면 이 두 선수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이청용이 엄청난 것 같겠지만 또 장단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킥력 같은 부분이 있다.[6] 이때 결혼식으로 인해 6월 국가대표 평가전을 6월 1일 경기만 소화하고 귀국했다.[7] 해운대구 좌동 NC백화점 애슐리[8] 이때 같은 런던올림픽 멤버였던 기성용, 윤석영, 박종우와 같은시기에 입소했다.[9] 참고로 남태희는 울산 유스인 현대중, 현대고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