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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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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우구스투스 | 티베리우스 | 가이우스(칼리굴라) | 클라우디우스 | 네로
네 황제의 해 갈바 |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 비텔리우스
플라비우스 왕조 베스파시아누스 | 티투스 | 도미티아누스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네르바 | 트라야누스 | 하드리아누스 | 안토니누스 피우스 | 공동 즉위 루키우스 베루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콤모두스
비정통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다섯 황제의 해 페르티낙스 |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세베루스 왕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공동 즉위 게타 · 카라칼라
- 마크리누스 · 디아두메니아누스
세베루스 왕조 엘라가발루스 |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군인 황제 시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 공동 즉위 고르디아누스 1세 · 고르디아누스 2세 | 공동 즉위 푸피에누스(막시무스) · 발비누스 | 고르디아누스 3세 | 필리푸스 아라부스 · 필리푸스 2세 | 데키우스 | 공동 통치 데키우스 ·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 공동 즉위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 호스틸리아누스 · 볼루시아누스 | 아이밀리아누스 | 공동 즉위 발레리아누스 · 갈리에누스 |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 퀸틸루스 | 아우렐리아누스 | 타키투스 | 플로리아누스 | 프로부스 | 카루스 | 공동 즉위 누메리아누스 · 카리누스
비정통 스폰시아누스 · 실반나쿠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
- 카리누스 · 디오클레티아누스
서방 동방
양두정치 막시미아누스 양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두정치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우스 1세 |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 막센티우스 | 2차 재위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누스 1세 사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 갈레리우스 | 리키니우스 | 막시미누스 다이아 | 발레리우스 발렌스 | 마르티니아누스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공동 즉위 콘스탄티누스 2세 · 콘스탄스
비정통 마그넨티우스 · 율리우스 네포티아누스 · 베트라니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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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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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 그라티아누스 | 발렌티니아누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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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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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순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 아비투스 | 마요리아누스 | 리비우스 세베루스 | 안테미우스 | 올리브리우스 | 글리케리우스 | 율리우스 네포스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레오 왕조 레오 1세 | 레오 2세 | 제노 | 바실리스쿠스 · 마르쿠스 | 2차 재위 제노
동방
레오 왕조 2차 재위 제노 | 아나스타시우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유스티누스 1세 | 유스티니아누스 1세 | 유스티누스 2세 | 티베리우스 2세 | 마우리키우스 · 테오도시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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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클리오스 왕조 이라클리오스 | 공동 즉위 콘스탄티노스 3세 · 이라클로나스 · 다비드 티베리오스 | 콘스탄스 2세 · 콘스탄티노스 4세 · 이라클리오스 · 티베리오스 | 유스티니아노스 2세
20년간의 혼란 레온티오스 | 티베리오스 3세 | 2차 재위 유스티니아노스 2세 | 필리피코스 | 아나스타시오스 2세 | 테오도시오스 3세
이사브리아 왕조 레온 3세 | 콘스탄티노스 5세 | 아르타바스도스 · 니키포로스 | 2차 재위 콘스탄티노스 5세 | 레온 4세 | 콘스탄티노스 6세 | 이리니
니키포로스 왕조 니키포로스 1세 | 스타브라키오스 | 미하일 1세 랑가베스 · 테오필락토스 · 스타브라키오스
- 레온 5세 · 콘스탄티노스
아모리아 왕조 미하일 2세 | 테오필로스 | 미하일 3세
마케도니아 왕조 바실리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 레온 6세 | 알렉산드로스 2세 | 콘스탄티노스 7세 | 로마노스 1세 · 흐리스토포로스 레카피노스 · 스테파노스 레카피노스 · 콘스탄티노스 레카피노스 | 로마노스 2세 | 니키포로스 2세 | 요안니스 1세 | 바실리오스 2세 | 콘스탄티노스 8세 | 로마노스 3세 | 미하일 4세 | 미하일 5세 | 공동 즉위 조이 · 테오도라 | 콘스탄티노스 9세 | 2차 재위 테오도라
- 미하일 6세
콤니노스 왕조 이사키오스 1세
두카스 왕조 콘스탄티노스 10세 | 미하일 7세 · 콘스탄티오스 두카스 ·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로마노스 4세 · 레온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3세
콤니노스 왕조 알렉시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요안니스 2세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 | 마누일 1세 | 알렉시오스 2세 | 안드로니코스 1세
앙겔로스 왕조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3세 | 2차 재위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4세 | 알렉시오스 5세
니케아
라스카리스 왕조 테오도로스 1세 | 요안니스 3세 | 테오도로스 2세 | 요안니스 4세 | 미하일 8세
비정통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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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올로고스 왕조 미하일 8세 | 안드로니코스 2세 | 미하일 9세 | 안드로니코스 3세 |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요안니스 6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안드로니코스 4세 · 요안니스 7세 | 3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7세 · 안드로니코스 5세 | 4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마누일 2세 | 요안니스 8세 | 콘스탄티노스 11세
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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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ne collega: 동료 없이 단독 선출
  • ignotus: 불명
  • incertus: 불확실, 가이우스 세키우스 캄파누스가 계속 집권하였거나 아니면 불명의 다른 인물이 선출되었는지 불명확함
황제 겸 집정관 }}}
1년 1년 보결 2년 2년 보결 3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비니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라미아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푸블리우스 알페누스 바루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 발레리아누스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3년 보결 4년 4년 보결 5년 5년 보결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섹스투스 아일리우스 카투스 그나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볼레수스 가이우스 비비우스 포스투무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가이우스 클로디우스 리키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마그누스 가이우스 아테이우스 카피토
6년 6년 보결 7년 7년 보결 8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실라누스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아울루스 리키니우스 네르바 실리아누스 루킬리우스 롱구스 섹스투스 노니우스 퀸크틸리아누스
8년 보결 9년 9년 보결 10년 10년 보결
루키우스 아프로니우스 가이우스 포파이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파피우스 무틸루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말루기넨시스
아울루스 비비우스 하비투스 퀸투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퀸투스 포파이우스 세쿤두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퀸투스 유니우스 블라이수스
11년 11년 보결 12년 12년 보결 13년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게르마니쿠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실리우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가이우스 비셀리우스 바로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13년 보결 14년 15년 15년 보결 16년
아울루스 카이키나 라르구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센나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16년 보결 17년 17년 보결 18년 18년 보결
가이우스 비비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비비우스 마르수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세이우스 투베로
푸블리우스 폼포니우스 그라이키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볼루세이우스 프로쿨루스 게르마니쿠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리비네이우스 레굴루스
18년 보결 19년 19년 보결 20년 21년
가이우스 루벨리우스 블란두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토르콰투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바르바투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빕스타누스 갈루스 루키우스 노르바누스 발부스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막시무스 메살리누스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1년 보결 22년 22년 보결 23년 23년 보결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데키무스 하테리우스 아그리파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그나이우스 트레멜리우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가이우스 비비우스 루피누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가이우스 스테르티니우스 막시무스
24년 24년 보결 25년 25년 보결 26년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아비올라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우스 페트로니우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툴리쿠스
루키우스 비셀리우스 바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키피오 마르쿠스 아시니우스 아그리파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26년 보결 27년 27년 보결 28년 28년 보결
퀸투스 유니우스 블라이수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피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시에누스 크리스푸스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네르바 가이우스 벨라이우스 투토르
29년 29년 보결 30년 30년 보결 31년
가이우스 푸피우스 게미누스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루키우스 나이비우스 수르디누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루벨리우스 게미누스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세야누스
31년 보결 31년 보결 31년 보결 32년 32년 보결
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푸블리우스 멤미우스 레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섹스투스 테디우스 발레리우스 카툴루스 루키우스 풀키니우스 트리오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카밀루스 스크리보니아누스 아울루스 비텔리우스
33년 33년 보결 34년 34년 보결 35년
루키우스 리비우스 오켈라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파울루스 파비우스 페르시쿠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바레아 소라누스 가이우스 케스티우스 갈루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라이나스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티투스 루스티우스 눔미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노니아누스
35년 보결 36년 36년 보결 37년 37년 보결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섹스투스 파피니우스 알레니우스 가이우스 베티우스 루푸스 그나이우스 아케로니우스 프로쿨루스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세쿤두스 퀸투스 플라우티우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가이우스 페트로니우스 폰티우스 니그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게르마니쿠스
37년 보결 38년 38년 보결 39년 39년 보결
아울루스 카이키나 파이투스 마르쿠스 아퀼라 율리아누스 세르비우스 아시니우스 켈레르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퀸투스 산퀴니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푸블리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칼푸르니우스 세라누스 섹스투스 노니우스 퀸크틸리아누스 루키우스 아프로니우스 카이시아누스
39년 보결 39년 보결 40년 40년 보결 41년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코르불로 아울루스 디디우스 갈루스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라이카니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ignotus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페르 sine collega 퀸투스 테렌티우스 쿨레오 그나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41년 보결 41년 보결 41년 보결 42년 42년 보결
퀸투스 폼포니우스 세쿤두스 퀸투스 푸티우스 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오스토리우스 스카풀라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케스티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세이우스 바라누스 푸블리우스 수일리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카이키나 라르구스
42년 보결 43년 43년 보결 43년 보결 43년 보결
코르넬리우스 루푸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섹스투스 팔펠리우스 히스테르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세쿤두스 퀸투스 쿠르티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루키우스 페다니우스 세쿤두스 ignotus 스푸리우스 오피우스
44년 44년 보결 45년 45년 보결 45년 보결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시에누스 크리스푸스 푸블리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폼포니우스 세쿤두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티베리우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아일리아누스 아울루스 안토니우스 루푸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코르비누스 마르쿠스 폼페이우스 실바누스 스타베리우스 플라비아누스
46년 46년 보결 46년 보결 46년 보결 46년 보결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카메리누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퀸투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 가이우스 테렌티우스 툴리우스 게미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47년 47년 보결 47년 보결 47년 보결 47년 보결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칼페타누스 란티우스 세다투스 그나이우스 호시디우스 게타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마르쿠스 호르데오니우스 플라쿠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루키우스 바겔리우스 가이우스 볼라센나 세베루스
48년 48년 보결 49년 49년 보결 50년
아울루스 비텔리우스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퀸투스 베라니우스 루키우스 맘미우스 폴리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루키우스 빕스타누스 포플리콜라 메살라 빕스타누스 갈루스 가이우스 폼페이우스 롱구스 갈루스 퀸투스 알리우스 막시무스 마르쿠스 수일리우스 네룰리누스
51년 51년 보결 51년 보결 52년 52년 보결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파우스투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살비디에누스 오르피투스 루키우스 칼벤티우스 베투스 카르미니우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티티아누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바레아 소라누스
52년 보결 53년 53년 보결 53년 보결 54년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토르콰투스 푸블리우스 트레보니우스 푸블리우스 칼비시우스 루소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루키우스 살비디에누스 루푸스 살비아누스 퀸투스 하테리우스 안토니누스 퀸투스 카이키나 프리무스 마르쿠스 아시니우스 마르켈루스
54년 보결 55년 55년 보결 55년 보결 55년 보결
마르쿠스 아이풀라누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누메리우스 케스티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마르쿠스 트레벨리우스 막시무스
ignotus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55년 보결 55년 보결 56년 56년 보결 56년 보결
푸블리우스 팔푸리우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툴리쿠스 퀸투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갈리오 안나이아누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루푸스
티투스 쿠르틸리우스 만키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키피오 티투스 쿠티우스 킬투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프로쿨루스
56년 보결 57년 57년 보결 58년 58년 보결
루키우스 두비우스 아비투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아그리파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트라세아 파이투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카이시우스 마르티알리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
58년 보결 59년 59년 보결 60년 60년 보결
아울루스 페트로니우스 루르코 가이우스 빕스타누스 아프로니아누스 티투스 섹스티우스 아프리카누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벨레이우스 파테르쿨루스
아울루스 파코니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마르쿠스 오스토리우스 스카풀라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마닐리우스 보피스쿠스
61년 61년 보결 62년 62년 보결 62년 보결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 투르필리아누스 그나이우스 페다니우스 푸스쿠스 살리나토르 푸블리우스 마리우스 퀸투스 만리우스 타르퀴티우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유니우스 마룰루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카이센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벨레이우스 파테르쿨루스 루키우스 아피니우스 갈루스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 니게르 티투스 클로디우스 에프리우스 마르켈루스
63년 64년 64년 보결 65년 65년 보결
가이우스 멤미우스 레굴루스 가이우스 라이카니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무키아누스 아울루스 리키니우스 네르바 실리아누스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퀸투스 파비우스 바르바루스 안토니우스 마케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베스티누스 아티쿠스 푸블리우스 파시디에누스 피르무스
65년 보결 66년 66년 보결 66년 보결 67년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피우스 가이우스 루키우스 텔레시누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아프리누스 마르쿠스 아룬티우스 아퀼라 루키우스 율리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아니키우스 케리알리스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 가이우스 파키우스 아프리카누스 마르쿠스 베티우스 볼라누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67년 보결 67년 보결 68년 68년 보결 68년 보결
아피우스 안니우스 갈루스 티베리우스 카티우스 아스코니우스 실리우스 이탈리쿠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가이우스 벨리키우스 나탈리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베룰라누스 세베루스 푸블리우스 갈레리우스 트라칼루스 가이우스 루키우스 텔레시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69년 69년 보결 69년 보결 69년 보결 69년 보결
세르비우스 갈바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오토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루푸스 그나이우스 아룰레누스 카일루스 사비누스 그나이우스 아리우스 안토니누스
티투스 비니우스 (루피누스)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티티아누스 루키우스 폼페이우스 보피스쿠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아울루스 마리우스 켈수스
69년 보결 69년 보결 69년 보결 70년 70년 보결
파비우스 발렌스 그나이우스 카이킬리우스 심플렉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무키아누스
아울루스 카이키나 알리에누스 로시우스 레굴루스 가이우스 퀸크티우스 아티쿠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케리알리스 카이시우스 루푸스
70년 보결 70년 보결 71년 71년 보결 71년 보결
퀸투스 율리우스 코르디누스 가이우스 루틸리우스 갈리쿠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바수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ignotus 가이우스 라이카니우스 바수스 카이키나 파이투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그나이우스 페디우스 카스쿠스 가이우스 칼페타누스 란티우스 퀴리날리스 발레리우스 페스투스
71년 보결 71년 보결 72년 72년 보결 72년 보결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핌브리아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콜레가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무키아누스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바르바루스 퀸투스 율리우스 코르두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72년 보결 73년 73년 보결 73년 보결 73년 보결
섹스투스 마르키우스 프리스쿠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오쿨라투스 마르쿠스 아레키누스 클레멘스 섹스투스 율리우스 프론티누스
그나이우스 피나리우스 아이밀리우스 키카트리쿨라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카툴루스 메살리누스 퀸투스 가비우스 아티쿠스 […]m[…] ignotus
74년 74년 보결 74년 보결 74년 보결 7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아일리아누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퀸투스 비비우스 크리스푸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케리알리스 카이시우스 루푸스 ignotus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클로디우스 에프리우스 마르켈루스 […]on[…] (섹스투스 율리우스 프론티누스)
74년 보결 74년 보결 75년 75년 보결 75년 보결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툴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파트루이누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루키우스 파시디에누스 피르무스
76년 76년 보결 76년 보결 76년 보결 7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탐피우스 플라비아누스 갈레오 테티에누스 페트로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마르쿠스 폼페이우스 실바누스 스타베리우스 플라비아누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길로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77년 보결 77년 보결 77년 보결 78년 78년 보결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폼페이우스 보피스쿠스 가이우스 아룬티우스 카텔리우스 켈레르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 데키무스 유니우스 노비우스 프리스쿠스 (루푸스) 퀸투스 코렐리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아룬티우스 아퀼라 ignotus 루키우스 케이오니우스 콤모두스 루키우스 푸니술라누스 베토니아누스
78년 보결 78년 보결 79년 79년 보결 79년 보결
섹스투스 비툴라시우스 네포스 퀸투스 아르티쿨레이우스 파이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유니우스 카이센니우스 파이투스
ignotus ignotus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푸블리우스 칼비시우스 루소
79년 보결 80년 80년 보결 80년 보결 80년 보결
티투스 루브리우스 아일리우스 네포스 임페라토르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아울루스 디디우스 갈루스 파브리키우스 베이엔토 퀸투스 아우렐리우스 팍투메이우스 프론토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켈루스 옥타비우스 푸블리우스 클루비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아리우스 플라쿠스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라미아 플라우티우스 아일리아누스
80년 보결 80년 보결 80년 보결 81년 81년 보결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포스투무스 브라두아 섹스투스 네라니우스 카피토 마르쿠스 티티우스 프루기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실바 노니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로스키우스 코엘리우스
퀸투스 폼페이우스 트리오 루키우스 아킬리우스 스트라보 티투스 비니키우스 율리아누스 루키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베루코수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유베날리스
81년 보결 81년 보결 81년 보결 82년 82년 보결
루키우스 베티우스 파울루스 가이우스 스코에디우스 나타 피나리우스 루키우스 카르미니우스 루시타니쿠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세르바이우스 In]noc(ens)
티투스 유니우스 몬타누스 티투스 테티에누스 세레누스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움브리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 루키우스 살비우스 오토 코케이아누스
82년 보결 82년 보결 82년 보결 82년 보결 83년
[…]an(us) [가이우스 아리니우스 Mo]dest(us)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파트루니우스 마르쿠스 라르키우스 마그누스 폼페이우스 실로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ignotus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사투르니누스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퀴에투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루푸스
83년 보결 83년 보결 83년 보결 84년 84년 보결
마르쿠스 안니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테티우스 율리아누스 루키우스 칼벤티우스 섹스투스 카르미니우스 베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우르수스
가이우스 피시우스 사비누스 테렌티우스 스트라보 에루키우스 호물루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니그리누스 쿠리아티우스 마테르누스 가이우스 오피우스 사비누스 ignotus
84년 보결 84년 보결 85년 85년 보결 85년 보결
가이우스 툴리우스 카피토 폼포니아누스 플로티우스 피르무스 ignotus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율리우스 코르디누스 가이우스 루틸리우스 갈리쿠스 마르쿠스 아레키누스 클레멘스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갈리카누스 (마르쿠스 라이키우스 또는 푸블리우스 글리티우스) 갈루스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비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카툴루스 메살리누스 루키우스 바이비우스 호노라투스
85년 보결 85년 보결 85년 보결 86년 86년 보결
푸블리우스 헤렌니우스 폴리오 데키무스 아부리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살비우스 리베랄리스 노니우스 바수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세키우스 캄파누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헤렌니우스 폴리오 퀸투스 율리우스 발부스 [코르넬리우스] 오레스테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페트로니아누스
86년 보결 86년 보결 86년 보결 87년 87년 보결
incertus 섹스투스 옥타비우스 프론토 아울루스 부키우스 라피우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Ⅲ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크라수스 프루기 리키니아누스
퀸투스 비비우스 세쿤두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칸디두스 마리우스 켈수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티디우스 토시아누스 루키우스 야볼레누스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87년 보결 87년 보결 88년 88년 보결 88년 보결
가이우스 벨리키우스 나탈리스 가비디우스 테바니아누스 가이우스 킬니우스 프로쿨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Ⅳ 데키무스 플로티우스 그리푸스 퀸투스 닌니우스 하스타
가이우스 두케니우스 프로쿨루스 루키우스 네라티우스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미니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루필리우스 프루기 보누스
88년 보결 89년 89년 보결 89년 보결 90년
마르쿠스 오타킬리우스 카툴루스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 푸블리우스 살루스티우스 블라이수스 아울루스 비키리우스 프로쿨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Ⅴ
섹스투스 율리우스 스파르수스 마르쿠스 아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마르쿠스 페두카이우스 사이니아누스 마니우스 라베리우스 막시무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90년 보결 90년 보결 90년 보결 90년 보결 90년 보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푸시오 안니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루스티쿠스 퀸투스 아카이우스 루푸스 푸블리우스 바이비우스 이탈리쿠스 루키우스 알비우스 풀라이에누스 폴리오
세르비우스 율리우스 세르비아누스 가이우스 카리스타니우스 프론토 가이우스 아퀼리우스 프로쿨루스 그나이우스 피나리우스 아이밀리우스 키카트리쿨라 폼페이우스 롱기누스
90년 보결 91년 91년 보결 91년 보결 92년
마르쿠스 툴리우스 케리알리스 (또는 마르쿠스 투키우스 케리알리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데키무스 미니키우스 파우스티누스 퀸투스 발레리우스 베게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Ⅵ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카툴리누스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마리누스 푸블리우스 메틸리우스 사비누스 네포스 퀸투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92년 보결 92년 보결 92년 보결 93년 93년 보결
루키우스 베눌레이우스 몬타누스 아프로니아누스 루키우스 스테르티니우스 아비투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실라누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콜레가 티투스 아비디우스 퀴에투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켈수스 폴레마이아누스 퀸투스 유니우스 아룰레누스 루스티쿠스 퀸투스 페두카이우스 프리스키누스 섹스투스 루시아누스 프로쿨루스
93년 보결 94년 94년 보결 94년 보결 95년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라루스 섹스티우스 Na(so) 루키우스 노니우스 칼푸르니우스 토르콰투스 아스프레나스 마르쿠스 롤리우스 파울리누스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사투르니누스 루키우스 실리우스 데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도미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ⅩⅦ
[투키우스 Ceria]lis 티투스 섹스티우스 마기우스 라테라누스 가이우스 안티우스 아울루스 율리우스 콰드라투스 티투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스
95년 보결 95년 보결 95년 보결 96년 96년 보결
루키우스 네라티우스 마르켈루스 아울루스 부키우스 라피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폼포니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만리우스 발렌스 퀸투스 파비우스 포스투미누스
푸블리우스 두케니우스 베루스 루키우스 바이비우스 툴루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티투스 프리페르니우스 [파이투스]
96년 보결 97년 97년 보결 97년 보결 97년 보결
티베리우스 카티우스 카이시우스 프론토 임페라토르 네르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그나이우스 아리우스 안토니누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폴리나리스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icus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네라티우스 프리스쿠스 섹스투스 헤르멘티디우스 캄파누스
97년 보결 97년 보결 98년 98년 보결 98년 보결
퀸투스 글리티우스 아틸리우스 아그리콜라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 임페라토르 네르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페르 쿠르비우스 툴루스 섹스투스 율리우스 프론티누스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마테르누스 마르쿠스 오스토리우스 스카풀라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네르바 트라야누스
98년 보결 98년 보결 98년 보결 98년 보결 98년 보결
루키우스 율리우스 우르수스 티투스 베스트리키우스 스푸린나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피우스 아울루스 비키리우스 마르티알리스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루푸스 아킬리우스 [Pri]scus 코엘리우스 스파르수스
루키우스 마이키우스 포스투무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페록스 리키니아누스
98년 보결 99년 99년 보결 99년 보결 99년 보결
퀸투스 풀비우스 길로 비티우스 프로쿨루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팔마 프론토니아누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크레티우스 바르바 퀸투스 파비우스 바르바루스 발레리우스 마그누스 율리아누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페록스
푸블리우스 율리우스 루푸스 퀸투스 소시우스 세네키오 세네키오 멤미우스 아페르 아울루스 카이킬리우스 파우스티누스 ignotus
100년 100년 보결 100년 보결 100년 보결 100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네르바 트라야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우르수스 마르쿠스 마르키우스 마케르 루키우스 헤렌니우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아쿠티우스 네르바
섹스투스 율리우스 프론티누스 가이우스 킬니우스 프로쿨루스 폼포니우스 마밀리아누스 루키우스 파비우스 투스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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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율리우스 코르누투스 테르툴루스 루키우스 로스키우스 아일리아누스 마이키우스 켈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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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제6대 황제
갈바
Galba
파일:Roman_emperor_Galba,_Gustav_III's_Museum_of_Antiquities,_Stockholm_(20)_(35867773310)_edited.jpg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루키우스 리비우스 오켈라 술피키우스 갈바[1]
Lucius Livius Ocella Sulpicius Galba
출생 기원전 3년 12월 24일
로마 제국 테라치나
사망 69년 1월 15일 (향년 72세)
로마 제국 로마
재위 기간 로마 황제
68년 6월 8일 ~ 69년 1월 15일 (221일)
전임자 네로
후임자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부모 아버지 :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어머니 : 뭄미아 아카이카
배우자 아에밀리아 레피다
자녀 이름 미상의 아들 2명(親子)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 리키니아누스(養子)
종교 로마 다신교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황제에 오르기 전까지의 경력2.3. 황제 즉위와 몰락
3. 평가 및 이야깃거리4.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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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의 6대 황제. 네로 암살 후 로마 황제가 된 인물. 최초로 아우구스투스의 카이사르 가문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로마 황제이기도 하다. 로마 전통 귀족 가문 출신이며, 본명은 루키우스 리비우스 오켈라 술피키우스 갈바(Lucius Livius Ocella Sulpicius Galba)이다. 황제 즉위 후 이름은 임페라토르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Imperator Servius Sulpicius Galba Caesar Augustus).

서기 68년, 오늘날의 스페인 중부와 동부 지방에 해당하는 타라코넨시스 속주 총독으로 있을 당시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와 함께 네로 자살 후 혼란기였던 ‘네 명의 황제의 해’의 맨 처음으로 즉위한 인물이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Servius Sulpicius Galba)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 라치오주의 테라치나와 가까운 곳에 있던 시골 별장에서 BC 3년 12월 24일 태어났다. 위에 형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가 있었다. 형 가이우스 갈바는 재정 문제로 위기에 빠지게 되자 로마를 떠났다가 티베리우스가 속주 총독 명단에서 제외시키자 이를 비관한 끝에 자결했다고 한다.

수에토니우스는 갈바와 계모가 일찍부터 부도덕했다며, 갈바의 계모가 양자 앞에서 가운을 벗고 유혹했고, 갈바 역시 양모를 기쁘게 하고자 스스로 양모의 가문명을 넣고 이름을 바꿨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갈바가 어릴 때 친모가 젊은 나이에 죽어, 갈바의 아버지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는 갈바가 어릴 때 부유한 명문가 리비우스 가의 미인 리비아 오켈리나와 재혼했다. 계모 리비아 오켈리나의 집안은 갈바 가문보다 정치적, 사회적 명성이 훌륭한 가문인 리비우스 가문 출신이었다. 따라서 아버지 재혼 직후, 갈바는 일찌감치 그녀의 아들이자 그녀 친정 사람으로 입양돼, 이름을 루키우스 리비우스 오켈라 술피키우스 갈바(Lucius Livius Ocella Sulpicius Galba)로 바꿨다. 그리고 이 이름을 황제 즉위 전까지 계속 사용했다.

갈바의 가문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로마 명문 귀족 가문이었고 로마 상류층 내에서도 매우 부유했다. 그의 직계 조상 중에는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활약한 독재관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막시무스, 당대 최고의 웅변가로 이름을 날렸던 집정관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가 있었고, 그 외에도 원로원 소속인 인물들이 여럿 있었다. 갈바의 증조부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는 세르비우스 갈바의 손자였으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부관으로 갈리아 전쟁에서 활약했고[2], 갈바의 할아버지는 정치인이었지만 역사학자로서 당대에 명성이 자자했다. 갈바의 부친은 서툰 말솜씨를 가졌음에도 법정에서는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변론을 펼치는 변호사로 명성을 날렸다.[3] 아울러 갈바의 친어머니 뭄미아 아카이카 역시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카피톨리누스의 증손녀이자 코린트를 함락시킨 영웅 루키우스 뭄미우스의 증손녀였다. 이런 까닭에 갈바는 본인 스스로 입상을 세울 때 비문에 “퀸투스 카툴루스 카피톨리누스의 외증손자”라고 새길 정도로 친부모의 가문 모두 고귀한 혈통임을 자랑스러워 했다.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그가 소년일 때, 친구들과 황궁을 방문했다가 아우구스투스를 직접 만났다고 한다. 이때 소년 갈바는 아우구스투스에게 볼 한쪽을 살짝 꼬집힌 뒤 “이 녀석, 나중에 권력 맛을 조금 보겠구나”라는 말을 그리스어로 들었다고 한다.

2.2. 황제에 오르기 전까지의 경력

네로가 몰락했을 때, 갈바에 대한 기대치가 대단했던 것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이나 갈바의 즉위 전까지의 삶은 대단했다.

갈바의 본격적인 공직 생활은 티베리우스 황제 때부터 시작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티베리우스 말년에 그가 황제가 될 거라는 소문 탓에 죽을 뻔 했지만 티베리우스가 쿨하게 무시해서[4]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서기 11년 집정관으로 티베리우스 황제의 경쟁자였던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의 딸 아이밀리아 레피다와 결혼했다. 아내 아이밀리아 레피다와의 사이에는, 아들 두 명을 뒀는데 부인과 아들 모두 클라우디우스 1세 재위 연간에 사망해 일찌감치 홀로 됐다. 그러나 갈바는 재혼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관해, 수에토니우스와 같은 이들은 갈바가 노년이 되어 양성애 성향을 갖게 된 것을 증거로, 갈바가 여자보다 남자를 성적 대상으로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갈바는 적어도 친구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절까지는 사생활적인 측면에서 또래 귀족들이 흠으로 여길 만한 일을 극도로 사린 인물이었다.

갈바는 전형적인 명문 귀족이었다. 성품 자체도 크게 모나지 않았고, 예의바르고 교양도 풍부한 데다 법학 지식도 해박했다. 그렇지만 그는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 귀족들도 거의 하지 않던, 이미 없어진 관습조차도 아주 잘 따르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갈바의 집안 시종들은 공화정 중기 귀족의 시종들처럼 예법을 지켜야 했다.

그렇지만 이런 성향은 갈바가 늘 예의를 갖추고, 언행을 하는데 큰 힘이 됐다. 그는 노년에는 늘 과식을 하고, 겨울에는 해가 뜨기 전에도 음식을 먹으며 연회를 즐긴 악습으로 유명했으나, 중장년까지의 갈바는 엄격한 삶 아래에서 적절히 식사하고 저녁 식사를 하면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고 시종과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그들이 배를 굶지 않게 신경써서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하여 아우구스투스의 아내 리비아 드루실라는 진심으로 늘 예의를 갖춘 갈바를 칭찬했고, 죽으면서 공개한 유언장을 통해 자기 사람인 갈바에게 5천만 세스테르티우스라는 거액을 은사금으로 상속했다. 이는 아우구스투스 일가 남녀황족들도 비슷해, 황실 사람들은 그를 좋은 귀족, 훌륭한 협력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티베리우스는 갈바의 형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의 능력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의 어머니 리비아가 유언장에 적어 내린 갈바에 대한 은사금이 능력에 비해 과하다며 이를 크게 깎았다. 따라서 갈바는 50만 세스테르티우스만 받게 됐다.

갈바는 말년 머리숱이 거의 없는 대머리에, 손과 발은 통풍으로 굽어지고 변형돼 신발을 오래 신을 수도, 책을 펴고 들고 있을 수도 없었다. 오른쪽 옆구리에는 살이 늘어나고 혹처럼 커져서 붕대로 고정해 이를 숨길 수도 없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 그렇지만 그는 젊을 적에는 평균 키에 파란눈을 가진 평균 이상 외모의 로마 귀족으로, 대머리도 아니었고 구부러진 코를 가지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멋진 몸가짐을 가진 귀족이었다. 더욱이 칼리굴라 황제 시절에는 전차 경주와 전차 운전을 좋아한 황제와 레누스 강 전선에서 나란히 전차를 몰면서 전장을 지휘할 정도로 운동 능력도 상당했다.

이런 까닭에 한때 소 아그리피나는 자신의 재혼 상대로 유부남이던 젊은 갈바를 점찍고, 그에게 진지하게 접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그의 장모가 소 아그리피나를 공개적으로 질책하고, 황족인 그녀를 상류층 부인들이 보는 앞에서 때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의외로 상류층 여인들에게 아내와 사별한 뒤 재혼 상대로 거론되지 못했고, 즉위한 이후에도 홀로 살았다.

그는 법무관에도 못 올라간 할아버지와 달리 티베리우스-칼리굴라-클라우디우스-네로의 치세를 거치면서 법무관, 집정관(콘술), 황제 수행원, 군 지휘관, 원로원 속주 총독 등 로마 귀족들이 거칠 수 있는 ‘명예로운 경력’을 죄다 역임하며 좋은 평판을 얻었다. 또래 귀족들보다 이른 나이에 공직 경력을 시작한 그는 법무관 때 코끼리까지 동원한 축제까지 완벽하게 수행해냈고, 훌륭하게 법무관으로서의 업무도 수행했다. 이후 그는 네로의 친부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에 이어 집정관(콘술)이 되었고[5], 칼리굴라 생전에는 군대 지휘관과 속주 총독으로 있으면서 엄하고 고된 훈련을 시키는 등 군율을 엄하고 공정히 다뤄 칼리굴라와 원로원에게 칭찬을 받았다.

갈바는 황숙 클라우디우스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친구였다. 따라서 칼리굴라가 암살되고 클라우디우스가 제위에 오르자, 황제의 친구로 좋은 대우를 받았다. 허나 갈바는 오랜 친구인 클라우디우스 황제에게 충성을 다했고, 자신의 지위를 남용해 이득을 챙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서기 49년(혹은 50년 또는 51년) 경, 일시 은퇴해 공직에서 물러났다.

서기 54년 클라우디우스가 급사하고 네로가 친위 쿠데타로 소 아그리피나, 세네카, 섹스투스 아프라니우스 부루스에게 옹립되는데, 갈바는 59년(또는 60년), 네로의 명령과 간청 아래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속주의 총독으로 임명돼 다시 복귀하게 된다. 이때 그는 로마에선 상당한 고령인 육순이 넘었는데, 꽤 오랜 세월 동안 은퇴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행정 능력을 발휘해, 로마 원로원과 민중에게 이름을 다시 한번 알리고 큰 존경을 받았다.

2.3. 황제 즉위와 몰락

네로가 민심을 잃고 각처에서 반 네로 운동이 68년 갈리아 루그두넨시스 속주를 시작으로 불길처럼 일어났다. 이 당시, 이를 주도한 갈리아 루그두넨시스 총독 가이우스 율리우스 빈덱스는 3월 네로 탄핵을 외치며 봉기할 때 이를 이끌 적절한 인물을 급히 찾았다. 그리고 그때 그와 반 네로파들에게 평화로운 권력이양을 이룰 적임자로 선택된 사람이 바로 갈바였다.

타라코넨시스 총독이던 갈바는 고령임에도 빈덱스의 반란이 심각한 것을 알고, 대망을 품고 부랴부랴 빈덱스와 오토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그는 4월 3일 자신의 임지인 카르타고노바에서 황제를 자칭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갈바는 루시타니아, 바이티카, 이집트, 아프리카, 마우레타니아 총독들에게 서한을 보내 자신을 지지케 한 뒤 동의를 받아냈다. 아울러 그는 휘하에 단 1개 군단 밖에 없었음에도 다른 총독들이 자신을 지지한 것을 의식해 자신만만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라인 강 일대의 군단병들이 네로의 명에 따라 5월 빈덱스를 제압했는데, 그들은 고령의 갈바 대신 자신들의 사령관 루키우스 베르기니우스 루푸스를 황제로 옹립하려고 했다. 하지만 루푸스는 본래부터 제위에 야심이 없는 터라 이를 거절했고, 갈바의 제안도 무시했다.

한편, 로마에서는 네로의 악랄한 두 근위대장 중 가이우스 님피디우스 사비누스프라이토리아니를 장악한 다음 네로와 티겔리누스를 배신했다. 그는 갈바 지지를 선언했고, 원로원이 네로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할 때도 이에 충실히 따랐다. 따라서 국가의 적으로 선포된 네로는 절망감에 빠져 스포루스 등 자신의 애인들과 도주했다가 자살해버린다. 이렇게 네로가 몰락하고 자결하자 갈바는 원로원에 의해 황제로 추인되었다.

갈바는 명문가의 후손으로서 과거 명문가들이 권력을 독점하던 공화정 시기를 그리워하는 원로원이 선호하는 인물이었으며, 님피디우스 사비누스와 프라이토리아니의 지지를 받았기에 쉽게 원로원의 추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원로원이 인정했다는 것으로 인한 안도감 때문이었던지 몰라도, 갈바는 타라코넨시스 속주에서 로마까지 오는데 세 달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아울러 로마에 도착한 이후의 통치도 젊은 시절과 중장년기때의 그와 달리 훌륭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명문귀족인데다 엄청난 부자였던 갈바는 황제에 즉위했을 당시, 원로원과 로마 백성들의 기대는 상당했다. 그러나 갈바는 전임 황제인 네로와 마찬가지로 탐욕스러웠고, 이미지와 달리 사생활 역시 지저분하기에 그지 없었다. 먼저 그는 엄격한 규율을 강조했지만, 유연하지 못했다. 또 그는 민심 수습책으로 로마 황제들이 애용하던 보너스 지급을 거부하는 고지식한 면을 보였으며, 즉위를 도운 오토 등 공신들을 홀대했다. 거기에 갈바는 또 자신의 탐욕스러운 측근 인사들을 자신의 통치를 도울 제2인자로 기용하는 실책까지 저질렀으며, 네로의 악랄했던 두 근위대장들을 계속 기용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었다.

특히 갈바의 인사 기용 중 문제가 된 것은 갈바의 동성애인이자 남첩인 해방노예 이켈루스였다. 이 노예는 자신의 애인 갈바를 믿고 네로의 해방노예들과 측근들이 13년간 가져간 재물을 더 많이 가져가고, 7개월 만에 국고 안의 재물을 훔쳐갔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거기에 더해 갈바는 자신의 잠재적 정적이 고지 게르마니아군 사령관인 루푸스라고 생각해, 루푸스를 해임하고 본국으로 소환시켰다. 당시 라인강 일대 군단병들은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열성 지지세력이면서도 갈바가 어떻게 행동할 지 일단 지켜보자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던 터라, 루푸스 해임은 그들을 자극하고 말았다.

이런 까닭에 갈바는 그동안의 실적과 평판들을 깎아 먹었다. 또 갈바는 네로가 돈이나 물건으로 준 선물 가격을 22억 세스테르티우스로 환산해 이중 90퍼센트를 하사받은 이들에게 물어내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그는 프라이토리아니에게 주기로 한 충성 보너스과 상여금 지급을 거부하면서, "나는 원래 돈으로 병사를 사지 않고 징집한다"는 말까지 하면서 모든 병사들에게 상여금 지급은 없다고 한 뒤 진짜 돈을 주지 않았다. 이렇게 갈바는 이미지와 달리 무능하고 고집불통인데다 네로의 모든 것을 지우려고만 한 행동은 모두에게 실망감만 주게 된다. 그래서 즉위를 도운 오토 등 협력자들과 원로원, 라인 강 주둔 군단들을 모두 자극해서 결과적으로 자신의 명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따라서 이듬해인 서기 69년 1월 1일, 마인츠에 주둔하고 있던 라인 강 군단이 갈바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들은 처음에 갈바를 대신할 새 황제를 추대하는 문제를 원로원에 맡긴다고 결의했지만 원로원을 불신한 나머지 하루 만에 그를 뒤집고 저지 게르마니아군 사령관인 비텔리우스를 추대했다. 그리고 이 가운데 갈바에게는 1월 1일의 결의만이 전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가운데 갈바는 원로원을 안심시키기 위해 네로 시대에 일어난 피소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추방되었다가 귀국했던, 30살의 젊은 귀족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리키니아누스를 양자로 들인다고 선포했다. 피소 리키니아누스는 갈바와 마찬가지로 원로원 의원들이 선호하는 명문가의 자손이었는데, 그는 폼페이우스의 딸 폼페이아의 직계후손이자 크라수스의 직계손자로 칼푸르니우스 가문에 양자로 입적된 사람이었다[6]. 따라서 갈바는 이 조치가 원로원을 안심시키고 국정 불안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사별한 아내 레피다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이 모두 살아있지 않고, 손주들도 없다면서 후계자로 오토 대신 인품 좋은 피소를 선택한 것은 큰 실수가 되고 만다. 왜냐하면 피소는 좋은 혈통, 훌륭한 인품과는 별개로 오랜 기간 망명생활을 한 터라 지지기반도 없고, 망명 전에도 공직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중들과 원로원의 반응은 기껏해야 무관심이 다행일 정도로 좋지 못했고, 갈바의 평판은 그의 동성애적 성향 등과 맞물려 평판이 나아지지 않았다. 또 갈바에게는 원로원을 불신하는 태도로 나온 라인 강 군단을 달랠 수단이 전무했다.

결국 맨 처음 갈바를 지지했지만 그 대가를 받지 못했던, 오토는 1월 15일 오전 팔라티누스 아폴론 신전 제사 중 황제를 수행하던 일행에서 빠져나온 뒤, 준비된 가마를 타고 은밀히 로마 외곽을 빠져나와 근위대 병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사전 협의를 해둔 근위대에게 1월 15일에 황제로 추대되었다. 얼마 뒤 갈바는 황궁 안에서 오토가 근위대를 대동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애당초 갈바는 게르마니아에서의 군 경력도 눈에 뛸 성과를 얻지 못했고, 빈덱스와 오토가 추대한 덕에 황제 자리를 얻은 터라 반란군과의 교전 전략부터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황궁 문을 걸어잠구고 방어전을 펼치기 보다는 과감하게 반란군과 대치하고, 자신은 가마를 타고 대피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갈바의 이런 전략은 그가 가마를 타고 포룸으로 가는 순간 들통났다. 가마는 라쿠스 쿠르티우스 근처에서 제15군단 병사들에게 적발됐고, 갈바는 가마 밖으로 비참하게 내동댕이쳐진 다음 카무리우스라는 병사 손에 목이 관통돼 죽었다. 이때 갈바는 오토 측의 기병에 공격을 받고 동료 집정관인 자신의 측근과 양자로 들인 피소와 함께 포로 로마노에서 최후를 맞게 됐는데, 그의 양자 피소 역시 살해된 다음 목이 잘렸다. 그때 그의 나이 72세였고, 갈바의 목은 효수되어 깃대에 목이 걸렸다.

오토는 두 사람을 죽인 뒤, 피소 리키니아누스의 경우에는 곧 머리를 피소의 아내와 가족들에게 돌려줘 장례를 치르게 해줬다. 하지만 갈바의 경우에는 그 머리가 재산관리인 아르키부스가 몰래 빼내온 덕에 되찾았다고 한다. 남은 몸통과 함께 아우렐리아 가도에 위치한 황제 정원에 묻혔다.

3. 평가 및 이야깃거리

로마인들에게 네로를 제외한 네 황제의 해 동안 제위를 차지한 세 황제 중 비텔리우스 다음으로 평가가 좋지 않다. 황제 이전 업적은 누구나 인정하고 즉위 이후에도 인품에 대해서는 평가가 나쁘지 않은 편이나, 통치자로써는 부적격자였다는 데 당시에도 로마인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네로의 몰락이 시작된 68년 빈덱스의 반란 당시, 갈바는 타키투스가 기록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제국 통치의 최고 책임자로는 누구보다도 갈바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제위에 욕심이 있던 이들도 갈바를 앞세워 그를 중심으로 네로에게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갈바는 제위에 대한 야망만 남았을 뿐 젊은 시절 보여준 공정함과 엄격함, 성실함은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1년도 채 안 되는 통치 기간 동안 자신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사태를 스스로 불러들이는 실책을 저질렀고, 결국 이는 황제의 자리를 놓고 69년 12월까지 내전이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오죽했으면 타키투스로 대표되는 동시대 로마인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제국 통치의 최고 책임자로는 누구보다도 갈바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실제로 제국 통치를 맡겨보기 전까지는."라고 까였을 지 알만한 평가다. 이는 후대 역사가인 플루타르코스도 비슷하게 서술했다. 그는 갈바 전기에서 황제로서의 자질이 나쁘지 않았으며 의지도 충분했기 때문에 황제 자리에 오른 것에 대해서는 의도는 좋았다는 식으로 평가했지만 무기력하고 측근에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에 네로의 전철을 밟았다는 평가를 내렸으며,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아까워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그가 죽은 뒤에 그의 정치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촌평을 덧붙였다.

갈바의 업적은 뜻밖의 면에서 오래 살아남았다. 그는 제 7 게미나 군단을 포함하여 군단을 세 개나 편성했는데, 이들은 제정 내내 모두 제 기능을 발휘해서 후대에도 가끔 "갈바 군단들"로 불렸다. 이들은 3세기의 위기를 거쳐서도 존속해서 4세기 즈음에는 모두 정예 코미타텐세스 보병 연대로 개편되었고, 그 중 제 7 게미나 군단은 4세기 말까지도 히스파니아에 주둔하며 제국을 지켰다.

시기적으로 볼 때 갈바의 집권기는 공화정 시기부터의 내려온 정통 로마-이탈리아 명문가들이 제위를 차지해 그 주도권을 잡은 마지막 시기가 되었고, 그가 있던 네 황제의 해는 공화정 시대동안 원로원을 차지한 노빌레스의 시대가 끝난 사건이 되었다. 물론 노빌레스 출신으로 제위를 차지한 이들이 3세기까지 있기는 했다.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네르바루키우스 베루스, 3세기의 푸피에누스, 발비누스,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발레리아누스갈리에누스가 그들인데, 이런 경우는 극소수의 케이스였고 제국의 상류층과 귀족 지위를 얻은 이들은 프린켑스 체제 이후 등용되고 로마의 상류층을 차지하게 된 기사계급 출신들이었다. 그래서 이후 로마의 주도권은 이탈리아 레이테 출신의 플라비우스 가문[7], 그 다음에는 오래전 로마화된 서방 속주의 명문가 출신들에게 넘어갔고 세베루스 왕조 이후에는 촌뜨기 취급을 당한 발칸반도 출신 황제들이 연이어 제위를 차지하고 제국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게 된다.

4. 대중매체에서

영화 쿠오 바디스에서 네로 축출후 차기 황제 후보로 이 인물이 언급되며, 마지막 장면에 마차를 몰고 로마로 향하는 모습으로 잠시 등장하기도 한다. 폭군이 물러간 나라를 바로잡을 희망으로 비춰지긴 하지만 정작 권좌에 오른 뒤의 행적은 위에 상세히 서술된 바대로이다.

[1] 출생 당시의 이름은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Servius Sulpicius Galba).[2] 갈바의 증조부는 카이사르의 부관 출신이었지만 카이사르가 자신을 콘술로 추천해주지 않았다고 해서 카이사르를 배신하고 내전기 때 브루투스, 카시우스의 편에 가담했다. 그래서 나중에 페디우스 법에 따라 사형을 언도받았다.[3] 갈바의 아버지는 키가 작고 등에 큰 혹이 있어 꼽추같이 보인 인물이기도 했다.[4] 수에토니우스의 주장에 따르면 티베리우스가 이 말을 듣고 “괜찮다. 그 녀석을 살려줘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5] 갈바의 후임은 공교롭게도 갈바의 후임 황제인 오토의 아버지였다.[6] 칼푸르니우스 피소 가문은 공화정 시기의 유력 가문이었으며 원수정 시대에도 게르마니쿠스와 갈등을 빚은 BC 7년 집정관 그나이우스 피소, 네로에 대한 음모에 연루된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등 유력한 정치인들을 배출했다. 또한 피소의 본래 출신 가문은 크라수스 가문으로, 마찬가지로 유력한 가문이었다.[7]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