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아프로니우스 라틴어: Lucius Aproni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제국 로마 |
지위 | 에퀴테스 |
국가 | 로마 제국 |
가족 | 가이우스 아프로니우스(조부) 가이우스 아프로니우스(아버지) 루키우스 아프로니우스 카이시아누스(양자) 대 루키아 아프로니아(딸) 소 루키아 아프로니아(딸)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8년 |
전임 |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섹스투스 노니우스 퀸크틸리아누스 |
동기 | 아울루스 비비우스 하비투스 |
후임 | 가이우스 포파이우스 사비누스 퀸투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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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집정관.2. 생애
조부와 아버지 모두 가이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서기 8년 아울루스 비비우스 하비투스와 함께 보결 집정관에 선임되었으며, 9년 달마티아 총독에 부임했다. 14년 티베리우스 황제의 장남인 소 드루수스의 지휘 하에 판노니아에서 발발한 군단병들의 반란을 진압했으며, 14~15년 게르마니쿠스에 종속된 로마군 일부를 지휘해 체티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개선 훈장을 받았다.18년 누미디아 총독에 부임했으며, 20년부터 누미디아 반군 지도자 티파리나투스를 격퇴한 뒤 21년 로마로 귀환했다. 23년 티베리우스의 지시에 따라 베르베르인의 침략에 시달리던 아프리카 총독 루키우스 아엘리우스 라미아를 도왔으며, 28~29년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총독으로 부임해 28년 비두게네 전투에서 프리지아인을 격파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아들이 없었기에 카이시우스 가문의 일원을 입양했다. 루키우스 아프로니우스 카이시아누스라는 이름의 이 입양아는 39년 집정관이 되었다. 그리고 두 딸 대 루키아 아프로니아와 소 루키아 아프로니아가 있었는데, 대 루키아 아프로니아는 26년 집정관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그나이우스 코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에툴리쿠스의 부인이 되었고, 소 루키아 아프로니아는 24년 법무관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의 부인이 되었다.
그런데 소 루키아 아프로니아는 결혼한 해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남편에 의해 창밖으로 던져져 피살되었다.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는 자신이 잠들어 있어서 아내가 창밖으로 떨어진 이유를 알지 못하며, 아내는 아마도 자살했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티베리우스 황제가 엄정한 조사를 명령한 결과, 싸움의 증거가 발견되었다. 이에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를 모면할 수 없게 되자, 실바누스의 할머니 우르굴리나가 그에게 단검을 보냈고, 실바누스는 단검으로 몸을 찔러 자살했다. 실바누스의 첫 아내 파비아 누만티나는 "마법 주문과 물약으로 남편을 미치게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