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라틴어: Marcus Plautius Silvanus | |
생몰년도 | 미상 ~ 24년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제국 |
가족 |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조부) 우르굴리나(조모)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아버지) 라티아(어머니) 푸블리우스 플라우티우스 풀케르(형제)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우르굴라니우스(형제) 플라우티아 우르굴라닐라(누이) 파비아 누만티나(첫 번째 아내) 루키아 아프로니아(두 번째 아내) 티베리우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아일리아누스(양자) |
직업 | 로마 제국 법무관 |
1. 개요
로마 제국의 법무관.2. 생애
플레브스 가문인 플라우티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현대에 발견된 라틴어 비문에 따르면, 그는 알려지지 않은 해에 법무관을 맡고 원로원 의원이 된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의 손자라고 한다. 어머니 우르굴리나는 리비아 드루실라 황후의 절친한 친구였고, 그 덕분에 아버지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는 기원전 2년 집정관을 역임하고 일리리아 대반란의 진압에 크게 기여했다. 어머니는 나이우스 라르티우스와 클로디아 풀크라의 딸인 라티아다.형제로 시칠리아 총독을 역임한 푸블리우스 플라우티우스 풀케르, 9살에 요절한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우르굴라니우스가 있었다. 누이 플라우티아 우르굴라닐라는 클라우디우스 1세의 첫번째 아내였지만, 어릴 적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다리 한쪽이 불편해 제위서열이 크게 밀린 클라우디우스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해방노예들과 바람을 피우고 임신 후 낳은 딸을 일방적으로 클라우디우스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등 물의를 벌이다가 형제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가 아프로니아 살인 사건에 연루되자 클라우디우스 1세와 이혼했다. 우르굴라닐라는 클라우디우스 1세와의 사이에서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낳았다. 아들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는 세야누스의 딸과 약혼했지만 배를 입에 던져 먹다가 목이 막혀 죽었다. 딸 클라우디아는 우르굴라닐라가 해방노예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었는데, 클라우디우스 1세는 자기 딸이라고 우기는 아내의 주장을 묵살하고 그녀를 우르굴라닐라의 문 앞에 눕혔다고 한다.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는 23년 사비니인의 고대 도시 트레불라 수페나스의 의원을 역임했고, 24년에 로마 시와 그 주변 지역의 일반 사법권을 담당한 프라이토르 우르바누스(Praetor Urbanus)를 맡았다. 한편, 그는 기원전 11년 집정관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또는 기원전 10년 집정관 아프리카누스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딸인 파비아 누만티나와 결혼했지만, 법무관으로 재임하기 전에 이혼하고 8년 집정관 루키우스 아프로니우스의 딸인 루키아 아프로니아와 결혼했다.
그런데 루키아 아프로니아가 창 밖으로 던져져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 실바누스는 자신은 그 때 잠들었으며,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살했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티베리우스 황제가 엄정한 조사를 명령한 결과, 실바누스와 아프로니아가 실랑이를 벌인 흔적이 발견되었다다. 이에 황제가 원로원에 재판을 의뢰했고, 재판에 회부된 실바누스는 유죄를 모면할 길이 없어 보였다. 그러자 실바누스의 할머니 우르굴리나가 그에게 단검을 보냈고, 실바누스는 단검으로 몸을 찔러 자살했다. 그 후 실바누스의 첫 번째 아내 파비아 누만티나는 "마법 주문과 물약으로 남편을 미치게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많은 학자들은 45년과 74년 집정관 티베리우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아일리아누스가 실바누스의 양자라고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