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시니코프 경기관총(RPK)은 소련군의 분대지원화기로서 훌륭한 성능을 보여주었으나, 탄창으로 급탄한다는 한계로 인해 지속적인 화력 투사의 목적으로는 부적합했다. 때문에 소련군에서는 기존의 RPK를 기반으로 하되 탄띠 급탄을 가능하게 하여 효율을 높인 기관총을 만들고자 하였고, 이즈마쉬(현 칼라시니코프)에서 개발 작업을 시작했다. 일명 "포플린"이라고 일컬어진 개발팀에는 바실리 칼라시니코프[3], 미하일 드라구노프[4], 유리 알렉산드로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PU-1
포플린 프로젝트의 첫 작품인 PU-1은 당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한창 개발중이던 (이후에 RPK-74로 명명될) P-3 경기관총에 기반을 두었는데, RPK의 리시버와 조정간을 그대로 차용한 클로즈드 볼트 방식의 경기관총이었다. 가스조절기는 조금 더 강화되었는데, 탄띠 급탄식 총기는 탄창 급탄식에 비해 작동하는 데 더 강한 힘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탄창은 일반 RPK처럼 하부로 장전하는 방식이었으며, 탄띠의 경우 총기의 왼쪽 면을 통해 급탄하는 구조였다. 1975년에 테스트를 받았으나 지나치게 무겁고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이듬해인 1976년에 개량되어 다시 테스트를 받았으나, 여전히 함량 미달 판정을 받았다.
PU-2
이어서 1977년에 개발된 PU-2는 완전히 새로운 설계를 기반으로 했으며, RPK-74와는 공유되는 점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오픈 볼트 방식에 롱 스트로크 가스 피스톤 방식을 채용했으며, PU-1과 마찬가지로 탄띠와 탄창을 모두 급탄 가능했다. 다만 PU-2부터는 탄창 삽입구가 총의 왼편으로 자리를 옮겨 갔으며, 탄창이 꽂혀 있지 않는 동안에는 더스트 커버로 삽입구를 막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RPK와 마찬가지로 총열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지적을 받았고, 탄띠 급탄 기구의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해서 테스트에서 또다시 물을 먹었다.
PU-21
1978년에 개발된 포플린 프로젝트의 최종형 기관총인 PU-21은 PU-2를 기반으로 설계하되 탄띠 급탄 기구의 구조를 더욱 단순화하고 양각대 힌지를 총열 위에 달아서 안정성을 향상했다. 이어진 테스트에서 앞선 기관총들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으나, 이때 당시 소련군은 이미 해당 프로젝트에 흥미를 잃은 상태였으며, 당시 사용 중이던 탄창 급탄형 RPK-74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동시기에 탄띠 & 탄창 급탄 방식 혼용이라는 컨셉을 차용한 FN 에르스탈의 FN 미니미가 M249라는 명칭으로 미군 제식 경기관총에 채용되는 등 전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과 대조적으로, 소련에서는 PU-21을 끝으로 해당 컨셉의 기관총 개발이 중지되었다.
하지만 결국 RPK는 실전에서 한계가 명확했기에 소련 멸망 후 러시아에서 RPL-20을 개발해 제식으로 채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