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0 21:32:17

터틀맨

거북이 멤버
터틀맨† 지이 금비 수빈 이강

터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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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터틀맨
본명 임성훈 / Ieem Seong Hoon
출생 1970년 9월 3일
전라북도 전주시
사망 2008년 4월 2일 (향년 39세)
서울특별시 성동구 금호동
발인지 2008년 4월 4일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신체 170cm, 103kg, O형
직업 가수
가족 아버지 임백우[1], 어머니 백남, 임준환
종교 불교
소속그룹 거북이
포지션 서브보컬, 메인래퍼
취미 성대모사
특기 성대모사
데뷔 2001년 거북이 1집 앨범 [Go Boogie!]

1. 개요2. 사망3. 수상 경력4. 여담

1. 개요

룩한 인생, 고귀한 삶을 살며
그럼 (부끄럼) 없는 투명한 마음으로
내 삶이 끝날 그 마지막 순간에 나 웃어보리라, 나 바라는 대로
- 거북이, <빙고> 中[2]
대중들이 따라할 수 있는 랩이 진정한 랩이다.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래퍼. 생전 혼성그룹 거북이의 리더이자 래퍼로 활동을 하였다.

1970년 9월 3일,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육군 장교 아버지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전주시는 태어날 당시 아버지의 근무지로,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광주, 전주 등 지역을 옮겨가면서 근무해왔으며, 학창시절은 서울특별시에서 보냈다.

평택에서 목욕탕을 하던 어머니 백남의 도움으로 가수의 꿈을 키우던 그는 2001년, 거북이 결성/데뷔 후 리메이크[3]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사·작곡했다.[4] 특유의 굵직한 음색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과 리드보컬을 담당했으며, 2007년에는 기획사 부기엔터테인먼트를 창립했다.

그는 육군 대위전역했다. 즉 예비역 육군 장교였다. 사실 선천성 심근경색을 앓고 있었던 그는 병역 면제 판정을 받았지만, 당시 육군 소장 아버지[5]의 명예를 위해 자진 입대한다[6]. 계급이 계급이니만큼 최소 5년 이상 군복무를 했다.

터틀맨은 당시 거북이가 힙합을 주로 추구하는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임선영을 위해 발라드 파트를 넣어주는 배려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임선영은 터틀맨을 자기를 여기까지 키워 준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도 하고, 장례식에서도 펑펑 울며 슬퍼했다.

군인시절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여자친구가 성폭행을 피하려다 그만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터틀맨은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울먹였다고 한다. 여자친구와의 사별 후 터틀맨은 순정을 지키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에 대한 심정은 2집 '10년이 지났지만'이라는 노래에 담겨 있다. [7]터틀맨이 생전 제일 좋아했던 자신의 곡은 거북이에게 가요프로그램 1위를 안겨준 '비행기'가 아닌, 지금도 거북이의 대표곡으로 알려진 'Come On', '빙고', '싱랄라', '왜이래' 등도 아닌,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치는 '장군에게'였다는 사실을 그의 사후 지이가 밝힌 바 있다.

2. 사망

2005년 4월 2일 심근경색으로 인해 갑작스레 쓰러진 후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아오던 중 2008년 4월 2일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 때문에 오랜 활동기간과 꾸준한 인기로 인해 적지 않았었던 수익의 대부분은 심근경색 치료에 쓰이느라 많은 수익에도 궁핍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세상을 떠날 당시에도 약 4억 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고.

그가 세상을 떠난지 [age(2008-04-02)]년이 넘었지만, 음악사이트 및 유튜브에서는 거북이와 터틀맨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추모글들이 고인의 기일을 전후로 계속 올라오고 있다.

그의 유골은 경기도 안성시 유토피아 추모관에 안치되어 있으며, # 여담으로, 마왕 신해철과 배우 김성민이 안치된 장소와 같다.

3. 수상 경력

파일:나무위키+유도.png 거북이 멤버로서 수상한 부분은 거북이/수상 경력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4. 여담

  • 군인 집안인 만큼 매우 엄격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직업 특성상 아버지는 잦은 지방근무와 외출로 인해 거의 곁에 있지 못했고, 유년시절을 사실상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다시피 했다. 어머니는 보건소 직원으로 일하면서 두 형제를 키워왔다.
  • 그의 친형 임준환은 테니스 강사로 일하고 있다. 2008년경 모 테니스 관련 잡지에 한번 나왔다.#
  • 그리고 사망 후 유족은 그의 어머니와 형, 형수, 그리고 그의 조카(형의 자녀)[8]가 있다.
  • 2008년까지 김구라와 같은 소속사에 있었다. 김구라는 과거 신정환을 좋게 보지 않았는데, 1974년생인 신정환이 4살이 많은 터틀맨을 무시하고 하대[9]했기 때문이라고 라디오 스타에서 밝힌 바 있다.[10]
  • MC 스나이퍼의 6집에 수록된 'Letter To Heaven'에는 둘 사이의 일화가 가사 안에 있다. 실제로 터틀맨 생전 MC 스나이퍼는 터틀맨보다 무려 4살이나 어린 동생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친한 친구들 중 하나였다고 한다. 거북이 5집 음반에도 붓다베이비의 일원이었던 DJ Road가 스크래치 세션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친구여! 들리는가 진짜 남자의 노래가?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른 너만을 위한 군가
이젠 다신 볼 수 없지만 우린 너를 기억해
아쉬움은 남지만 만날 날을 기약해
- MC 스나이퍼, <Letter To Heaven> 中
  • 사망 3년 전(2005년)부터는 독실한 불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때 자신은 가수를 그만두었더라면 승려될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말년에 염주를 차고 활동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기도 하였다.


[1] 터틀맨과 같은 병세로 1997년 별세했다.[2] 가사를 세로로 읽으면 '거북이' 가 나온다. 이는 빙고의 다른 가사에서도 볼 수 있다.

질 것만 같은 행복한 기분으로
에 박힌 관념 다 버리고 이제 또
주먹 정신 다시 또 시작하면 나
루리라 다 나 바라는대로(헤이),
금 내가 있는 이 땅이 너무 좋아
민따위 생각한 적도 없었고요
같은 시간 아끼고 또 아끼며 나
상하리라 나 바라는대로(빙고).
터틀맨의 작사능력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3] 사계, 한동안 뜸했었지 등.[4] '모든' 곡은 아니고 1집 당시 삼속곡으로 잠시 활동했던 '순한 사랑'은 본인의 자작곡도 아니지만 리메이크 곡도 아닌 순수 오리지널 곡. 참고로 '순한 사랑'의 작사, 작곡, 편곡은 디스코파이터가 도맡았다. 랩메이킹에 한해서만 본인이 했을 듯.[5] 아버지도 터틀맨과 같은 병명으로 1997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아버지에 대한 마음은 2집 수록곡인 '장군에게'에 담겨 있다.[6] 요새 이런 방식으로 입대하면 국방일보 등의 언론에 100% 뜬다고 봐야 한다. 공익 출신이 부사관이나 장교로 재입대해도 마찬가지. 병무청에서 추진하는 '슈퍼 굳건이'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인물.[7] 이 곡이랑 4집 수록곡 '10년 전으로'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두 곡은 전혀 다른 곡이다.[8] 터틀맨이 사후 태어났기 때문에 한번도 마주치지는 않았다.[9] 신정환이 "거북아, 너 몇 살이니?" 이런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나중에 터틀맨의 나이를 알고 놀랐다고는 했는데, 사실 터틀맨이 신정환보다 늦게 데뷔한데다 나이에 비해 동안인 점도 한 몫 했다.[10] 터틀맨 본인 역시 신정환을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본 듯 하며, 5집 오방간다의 10번 트랙인 '인간이 돼라'라는 곡에서 "머리 크다, 내가 니 친구니, 거만"이라는 가사를 통해 신정환을 겨냥하는 듯한 가사를 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