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 아사히 신문이 2000년 투표로 선정한 "지난 1천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의 리스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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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 무라사키 시키부 | 시바 료타로 | 미야자와 겐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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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오 바쇼 | 다자이 오사무 | 마쓰모토 세이초 | 가와바타 야스나리 | 미시마 유키오 | |
<rowcolor=#fff>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아리시마 타케오 | 무라카미 하루키 | 엔도 슈사쿠 | 세이 쇼나곤 | 요사노 아키코 | |
<rowcolor=#fff>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모리 오가이 | 요시카와 에이지 | 오에 겐자부로 | 무라카미 류 | 이시카와 다쿠보쿠 | |
<rowcolor=#fff>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다니자키 준이치로 | 이노우에 야스시 | 미우라 아야코 | 아베 코보 | 다카무라 고타로 | |
<rowcolor=#fff>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후지사와 슈헤이 | 시마자키 도손 | 나카하라 츄야 | 고바야시 잇사 | 세리자와 고지로 | |
31위부터는 링크 참조. |
<colbgcolor=#000> 다니자키 준이치로 [ruby(谷崎潤一郎, ruby=たにざき じゅんいちろう)]|Jun'ichirō Tanizaki | ||||
본명 | 다니자키 준이치로 ([ruby(谷崎 潤一郎, ruby=たにざき じゅんいちろう)]) | |||
출생 | 1886년 7월 24일 | |||
일본 제국 도쿄시 니혼바시지구 니쵸메 14번지 | ||||
사망 | 1965년 7월 30일 (향년 79세) | |||
가나가와현 아시가라시모군 유가와라정 | ||||
직업 | 소설가, 수필가, 극작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 학력 | <colbgcolor=#fff,#191919>도쿄부립제1중학교 (졸업) 제1고등학교 (졸업)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국문과 / 중퇴) | ||
묘소 | 교토시 사쿄구 시시가타니노리 호넨원 도쿄도 도시마구 소메이묘원 지젠지 | |||
부모 | 아버지 다니자키 구라고로 어머니 다니자키 세키 | |||
배우자 | 이시카와 지요코 (1915년 결혼 - 1930년 이혼) 후루카와 스에코 (1931년 결혼 - 1935년 이혼) 모리타 마쓰코 (1935년 결혼) | |||
자녀 | 딸 다니자키 아유코 딸 다니자키 에미코 | |||
장르 | 소설, 희곡, 번역, 수필 | |||
등단 | 탄생 (희곡, 1910) 문신 (1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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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당시의 연극이나 구사 조시 에서조차 아름다운자는 모두 강자이고, 추한자는 약자였다. 그리하여 너나없이 앞을 다투어 아름다워 지겠다고 나서 더니 급기야 제 살 속에 색을 집어 넣기에 이르렀다. 강렬하고 현란한 선과 색이 그들의 몸에서 살아 움직였다.
그의 대표작 (문신)의 내용
일본의 소설가. 흔히 일본 탐미주의(耽美主義) 소설의 대가로 꼽힌다. 그의 대표작 (문신)의 내용
말년에는 노벨문학상 후보 명단에 올라간 적도 있을 정도로 그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높은 편이다. 만약 그가 1년만 더 살았어도 노벨문학상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아니라 다니자키에게 돌아갔을 거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1]
2. 생애
2.1. 학창시절
1886년 7월 24일, 도쿄도 주오구에서 태어났다. 5남 3녀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맏형이 태어난 지 3일만에 죽었기 때문에 그는 호적에 장남으로 올라갔으며 그래서 이름도 '준이치로(潤一郎)'가 되었다. 다니자키는 어머니 쪽의 성으로, 그의 아버지인 구라고로(倉五郎)가 유복한 상인이었던 다니자키의 외조부 규에몬(久右衛門)의 데릴사위로 들어가 어머니인 세키(関)와 혼인하였기 때문이다.다니자키는 1892년 소학교에 입학했으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나 유모와 한시라도 떨어지는 것을 꺼릴 정도로 응석받이였던 탓에 출석일수가 모자라 첫 해부터 유급을 하고 만다. 하지만 다음 해에는 학년 수석으로 2학년에 진급할 정도로 학교 생활에 적응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1897년에는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이미 훨씬 전에 사망한 외조부의 사업을 이어받은 다니자키의 아버지가 상업에 능하지 못하여 사업이 부진하였기 때문에 가세가 기울어 진학이 힘든 상황이었으나 큰아버지의 도움을 얻어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중학교에 다니던 중 여러 학생들과 함께 '학생클럽(学生倶楽部)'이라는 문학잡지를 자체 발간하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2.2. 문단에 데뷔
1908년 도쿄제국대학(현재의 도쿄대학)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3년 뒤인 1911년 학비를 미납하여 퇴학처분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 다니자키는 문단에 본격적으로 데뷔하게 되는데, 1910년 제 2차 '신사조(新思潮)'에 소설 『문신(刺青)』, 『기린(麒麟)』과 희곡 『탄생(誕生)』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이 때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나, 1911년 『소년(少年)』 등의 작품이 발표된 이후 소설가 나가이 가후(永井 荷風)[2]에게 격찬을 받으면서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탐미주의적인 작품을 써 나가면서 '악마주의 작가'로 불리며 문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한다.2.3. 결혼생활과 스캔들
1915년, 29세였던 다니자키는 9살 아래의 이시카와 지요(石川 千代)와 혼인하게 된다. 이듬해인 1916년에는 장녀 아유코(鮎子)가 태어났고, 1918년에는 조선, 만주를 거쳐 중국 각지를 여행하기도 한다. 당시 그의 조선 기행문은 <일본 작가들이 본 근대 조선>[3]이라는 책에 실려 있다.그러나 결혼 직후 다니자키는 자신의 기준으로 지나치게 정숙하고 순종적이었던 아내 치요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결혼한 이듬해였던 1916년 아내 지요의 여동생이었던 당시 14세의 소녀 세이코(せいこ)[4]의 양육을 맡게 되면서 점차 세이코에게 빠져들게 된다. 다니자키는 어머니 세키를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활달하면서 남성에 대해 지배적인 성격을 가진 여성을 좋아했던 것이다. 다니자키는 점차 세이코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에 따라 아내인 지요와의 사이는 악화되어 갔다.
그런데 이 때 다니자키의 친우였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사토 하루오(佐藤 春夫)는 다니자키에게 냉대받던 지요에게 동정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이 곧 사랑으로 발전하면서 삼각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아내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했던 다니자키는 사토에게 자신의 아내를 양도하겠다고 약속하고는 이것을 문단의 동료들과 여러 인사들에게 연하장으로 널리 알린다. 그러나 막판에 결심을 바꾸어 이 약속의 이행을 거절하는데, 격분한 사토는 다니자키와 절교하게 된다. 이것이 '오다와라 사건(小田原事件)'[5]이라 하여 일본 문단 내의 가장 큰 스캔들 중 하나이다.[6] 실연당한 사토는 꽁치의 노래(秋刀魚の歌)라는 자신의 작품에서 지요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둘은 1926년 화해하게 되고, 1930년 다니자키가 지요와 이혼한 뒤 사토가 지요와 재혼하면서 이 약속은 이행되게 된다.[7][8]사토와 치요 사이에 태어난 아들 마사야(方哉)의 이름은 다니자키가 지어주었다. 또한 사토의 조카인 동양사학자 다케다 류지(竹田龍児)와 다니자키의 딸 아유코가 결혼한다.
2.4. 간사이 이주 이후
다니자키는 1923년 간토 대지진을 겪고 난 뒤, 지진을 두려워하여 일가족 모두와 함께 그때까지 지진에서 안전하다고 알려진 간사이 지방으로 이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교토에 있다가 나중에는 고베로 옮겨 거주하게 된다. 이후 다니자키는 도쿄로 돌아가는 일 없이 계속해서 간사이 지방에서 거주하게 된다. 간사이 지방 이주 직후 다니자키 초기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치인의 사랑(痴人の愛)』이 1924년부터 연재되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처제 세이코를 모델로 한 소녀 나오미를 맡아 기르면서 자신의 취향에 맞게 길러 이상적인 여인으로 삼으려 하던 주인공이, 나중에는 도리어 자신을 가지고 노는 나오미에게 휘둘리면서도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다니자키의 작품 세계는 『치인의 사랑(痴人の愛)』을 경계로 해서 서양의 미를 동경하던 것에서 점차 일본적인 소재와 전통미를 추구하는 것으로 바뀌어가게 된다. 1928년 연재하기 시작한 『만지(卍)』와 『여뀌 먹는 벌레(蓼喰ふ虫)』가 그것이다. 『만지』는 레즈비언 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얽히고 섥힌 연애관계를 다룬 소설인데, 모든 내용이 여주인공의 1인칭으로 서술되어 있는 가운데 교코토바를 유려하게 구사하였고, 간사이 지방 상류 사회의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다룬 점에서 그의 문학에서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30년 아내 지요와 이혼한 다니자키는 1931년 후루카와 도미코(古川 丁未子)와 재혼하지만, 그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모리타 마쓰코(森田 松子)와의 관계가 깊어져서 도미코와 별거, 마쓰코와 동거하는 관계가 된다. 결국 다니자키는 1934년 도미코와 이혼하고, 1935년 마쓰코와 재혼하게 된다. 다니자키는 17살이나 어린 마쓰코를 숭배에 가까운 대상으로 생각할 정도였으며, 이러한 그의 여인숭배적인 생각은 『맹인 이야기(盲目物語)』, 『춘금초(春琴抄)』 등에서 잘 묘사된다.
이후 다니자키는 일본 전통 문화에 깊이 심취하게 되는데, 그가 『겐지 이야기』의 현대어역(譯)[9] 작업을 시작한 것도 이 시기(1935년)의 일이다. 다니자키 역(譯) 겐지 이야기는 1939년 초판이 출간되었으며, 이후에도 새로 번역하고 여러 차례 다듬는 등 다니자키는 겐지 이야기에 많은 애착을 보였다.
1942년부터 다니자키는 『세설(細雪)』을 연재하기 시작하나, 이것이 '전시 시국에 맞지 않는 내용'이라 하여 군부로부터 발간을 정지당하게 된다. 이후 1944년 사가판(私家版) 즉 자비출판으로 상권을 찍어 친구와 지인들에게 배부하였지만 이것도 군부에 의해 금지당하게 되었고, 『세설』 전권이 완성된 것은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인 1948년에야 가능했다. 『세설』은 간사이 지방에 거주하는 상류층 네 자매의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다니자키의 작품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잔잔한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네 자매의 모델은 세 번째 아내인 마쓰코의 자매들이라고 한다.
2.5. 말년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패전 이후 고혈압에 시달리며 한때 작품활동을 중지했지만, 1951년 『준이치로 신역 겐지 이야기(潤一郎新訳源氏物語)』를 발표하였고, 말년에도 그의 탐미주의적 감각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열쇠(鍵), 1956』, 『미친 노인의 일기(瘋癲老人日記), 1962』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식지 않는 왕성한 창작열을 선보였다.그는 1958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으며, 1960년에 또다시 노벨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는데 이때는 최종 후보 5명 중의 하나로 들어가기도 했다. 1965년 7월 30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향년 79세.
3. 작품 목록
3.1. 대표작
- 『문신(刺青)』(1910)[10]
- 『소년(少年)』(1911)
- 『작은 왕국(小さな王国)』(1919)
- 『치인의 사랑(痴人の愛)』(1925)[11]
- 『여뀌 먹는 벌레(蓼喰ふ虫)』(1929)
- 『만지(卍)』(1931)[12]
- 『맹인 이야기(盲目物語)』(1932)
- 『슌킨 이야기(春琴抄)』(1933)
- 『세설(細雪)』(1949)[13]
- 『소장 시게모토의 어머니(少将滋幹の母)』(1950)[14]
- 『열쇠(鍵)』(1956)[15]
- 『미친 노인의 일기(瘋癲老人日記)』(1962)
3.2. 주요 단편소설
표제 | 원제 | 출판 연도 | 발표 지면 | 번역 현황 |
문신 | 刺青 | 1910.11 | 제2차 신사조 | • 『다니자키 준이치로 단편집』(책사랑, 2014, 김용기 외 역) • 『문신』(어문학사, 2017, 경찬수 역) • 『소년』(민음사, 2018, 박연정 역) • 『슌킨 이야기』(문예출판사, 2023, 김영식 역) |
기린 | 麒麟 | 1910.12 | 제2차 신사조 | • 『다니자키 준이치로 단편집』(책사랑, 2014, 김용기 외 역) |
소년 | 少年 | 1911.6 | 스바루 | • 『문신』(어문학사, 2017, 경찬수 역) • 『소년』(민음사, 2018, 박연정 역) • 『슌킨 이야기』(문예출판사, 2023, 김영식 역) |
호칸 | 幇間 | 1911.9 | 스바루 | • 『다니자키 준이치로 단편집』(책사랑, 2014, 김용기 외 역) • 『문신』(어문학사, 2017, 경찬수 역) • 『슌킨 이야기』(문예출판사, 2023, 김영식 역) |
비밀 | 秘密 | 1911.11 | 주오코론 | • 『다니자키 준이치로 단편집』(책사랑, 2014, 김용기 외 역) • 『일본 명단편선 3』(지만지, 2017, 박은혜 외 역) • 『문신』(어문학사, 2017, 경찬수 역) • 『비밀이 묻힌 곳』(작가와비평, 2022, 안영신 외 역) • 『슌킨 이야기』(문예출판사, 2023, 김영식 역) |
증념 | 憎念 | ?1914 | ? | • 『일본 명단편선 5: 광기에 빠지다』(지만지, 2017, 김아령 외 역) |
금빛 죽음 | 金色の死 | 1914.12 | 도쿄 아사히 신문 | • 『금빛 죽음』(민음사, 2018, 양윤옥 역) |
창조 | 創造 | 1915.4 | 주오코론 | • 『다니자키 준이치로 단편집』(책사랑, 2014, 김용기 외 역) |
미남 | 美男 | 1916.9 | 신조 | • 『다니자키 준이치로 단편집』(책사랑, 2014, 김용기 외 역) |
인어의 탄식 | 人魚の嘆き | 1917.1 | 주오코론 | • 『금빛 죽음』(민음사, 2018, 양윤옥 역) |
기혼자와 이혼자 | 既婚者と離婚者 | 1917.1 | 오사카 아사히 신문 | • 『다니자키 준이치로 단편집』(책사랑, 2014, 김용기 외 역) |
마술사 | 魔術師 | 1917.1 | 신소설 | • 『금빛 죽음』(민음사, 2018, 양윤옥 역) |
어느 이단자의 슬픔 | 或る異端者の悲しみ | 1917.11 | 주오코론 | • 『이상한 소리』(창비, 2010, 서은혜 역) |
핫산 칸의 요술 | ハッサン・カンの妖術 | 1917.11 | 주오코론 | • 『춘금초』(책사랑, 2011, 동국대 근대문학회 역) |
전과자 | 前科者 | 1918.2-3 | 요미우리 신문 | • 『범죄 소설집 1』(책사랑, 2005, 김용기 역) |
두 명의 아이 | 二人の稚児 | 1918.4 | 주오코론 | • 『문신』(어문학사, 2017, 경찬수 역) • 『일본 명단편선 8: 일상을 발견하다』(지만지, 2021, 유미선 외 역)]] |
대낮 귀신 이야기 | 白昼鬼語 | 1918.5-7 |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도쿄 일일신문 | • 『범죄 소설집 1』(책사랑, 2005, 김용기 역) |
작은 왕국 | ちひさな王国 | 1918.8 | 주가이 | • 『고양이와 쇼조와 두 여자』(시와서, 2017, 박성민 역) • 『소년』(민음사, 2018, 박연정 역) • 『일본 명단편선 10: 구원을 향하다』(지만지, 2021, 허호 외 역) |
버들탕 사건 | 柳湯の事件 | 1918.10 | 주가이 | • 『범죄 소설집 1』(책사랑, 2005, 김용기 역) |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글 | 母を恋ふる記 | 1919.1-2 | 오사카 아사히 신문 도쿄 일일 신문 | • 『문신』(어문학사, 2017, 경찬수 역) • 『고양이와 쇼조와 두 여자』(시와서, 2017, 박성민 역) • 『일본 명단편선 9: 허무를 끌어안다』(지만지, 2021, 유미선 외 역) |
저주 받은 희곡 | 呪はれた戯曲 | 1919.5 | 주오코론 | • 『범죄 소설집 1』(책사랑, 2005, 김용기 역) |
후미코의 발 | 富美子の足 | 1919.6 | 유벤 | • 『일본단편소설 best 15』(거송미디어, 2005) • 『후미코의 발』(스토리하우스, 2009, 김정미 역) |
어느 소년의 두려움 | 或る少年の怯れ | 1919.9 | 주오코론 | • 『雪國, 여뀌먹는 벌레, 樓蘭』(고려출판사, 1976, 문태구 외 역) |
길 위에서 | 途上 | 1920.1 | 가이조 | • 『범죄 소설집 1』(책사랑, 2005, 김용기 역) • 『살인의 방』(이상미디어, 2019, 김효순 역) • 『간단한 죽음』(현인, 2022, 박현석 역) • 『슌킨 이야기』(문예출판사, 2023, 김영식 역) |
나 | 私 | 1921.3 | 가이조 | • 『범죄 소설집 1』(책사랑, 2005, 김용기 역) |
라도 선생님 | 蘿洞先生 | 1923.1 | 주오코론 | • 『다니자키 준이치로 단편집』(책사랑, 2014, 김용기 외 역) |
도모다와 마쓰나가의 이야기 | 友田と松永の話 | 1926.1-5 | 주부의벗 | • 『일본 명단편선 8: 일상을 발견하다』(지만지, 2021, 신중관 외 역) |
속 라도 선생님 | 続蘿洞先生 | 1928.5 | 신조 | • 『다니자키 준이치로 단편집』(책사랑, 2014, 김용기 외 역) |
삼인법사 | 三人法師 | 1929.10-11 | 주오코론 | • 『일본의 문학상이 된 작가들』(현인, 2018, 강성욱 역) |
맹인 이야기 | 盲目物語 | 1931.9 | 주오코론 | • 『요시노 구즈』(민음사, 2018, 엄인경 역) |
갈대 베는 남자 | 蘆刈 | 1932.11-12 | 가이조 | • 『슌킨 이야기』(문예출판사, 2023, 김영식 역) |
3.3. 주요 중·장편소설
표제 | 원제 | 출판 연도 | 발표 지면 | 번역 현황 |
신과 인간 사이 | 神と人との間 | 1923.1-1924.12 | 후진코론 | • 『신과 인간 사이』(책사랑, 2012, 동국대 근대문학회 역) |
치인의 사랑 | 痴人の愛 | 1924.3-6 | 여성 | • 『치인의 사랑』(책사랑, 2005, 김용기 역) • 『미친 사랑』(시공사, 2013, 김석희 역) • 『치인의 사랑』(민음사, 2018, 김춘미 역) • 『치인의 사랑』(새움, 2022, 장현주 역) |
만 | 卍 | 1928.3-1930.4 | 가이조 | • 『만 /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문학동네, 2012, 김춘미 역) |
여뀌 먹는 벌레 | 蓼喰ふ虫 | 1928.12-1929.6 |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도쿄 일일 신문 | • 『여뀌 먹는 벌레』(민음사, 2020, 임다함 역) |
요시노 구즈 | 吉野葛 | 1931.1-2 | 주오코론 | • 『요시노 구즈』(민음사, 2018, 엄인경 역) |
무주공 비화 | 武州公秘話 | 1931.10-1932.11 | 신청년 | • 『무주공 비화』(민음사, 2020, 류정훈 역) |
슌킨 이야기 | 春琴抄 | 1933.6 | 주오코론 | • 『춘금초』(책사랑, 2011, 동국대 근대문학회 역) • 『春琴抄』(영한, 2016, 고호석 역) • 『문신』(어문학사, 2017, 경찬수 역) • 『슌킨 이야기』(민음사, 2018, 박연정 역) • 『사랑의 여러 빛깔』(무블, 2020, 권희주 외 역) • 『슌킨 이야기』(문예출판사, 2023, 김영식 역) |
고양이와 쇼조와 두 여자 | 猫と庄造と二人のをんな | 1936.1, 1936.7 | 가이조 | • 『고양이와 쇼조와 두 여자』(하다, 2017, 이은숙 역) • 『고양이와 쇼조와 두 여자』(시와서, 2017, 박성민 역) |
세설 | 細雪 | 1943.1, 1943.3 1947.3-1948.10 | 주오코론 후진코론 | • 『세설(상, 하)』(열린책들, 2007, 송태욱 역) |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 少将滋幹の母 | 1949.11-1950.2 | 마이니치 신문 | • 『만 /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문학동네, 2012, 김춘미 역) |
열쇠 | 鍵 | 1956.1-12 | 주오코론 | • 『열쇠』(한빛, 1992, 신동욱 역) • 『열쇠』(지영사, 1992, 한혜숙 역) • 『열쇠』(책사랑, 2002, 김용기 역) • 『열쇠』(창비, 2013, 이한정 역) • 『열쇠』(민음사, 2018, 김효순 역) |
미친 노인의 일기 | 瘋癲老人日記 | 1961.11-1962.5 | 주오코론 | • 『미친 노인의 일기』(민음사, 2018, 김효순 역) |
4. 평가
다니자키의 소설은 탐미주의 문학의 극치로 꼽히는 경우가 많다. 그의 소설에는 아름답고 강인하면서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여성과, 그 여성에 대해 마조히즘적인 숭배에 가까운 애정을 보이는 남성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니자키의 작품에는 곳곳에서 여성의 발에 밟히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페티시즘, 즉 풋잡이 등장하는 경우도 꽤 있다. 이러한 마조히즘적 성향은 다니자키의 어머니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어 그의 인생 내내 여성관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그의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다.다니자키의 작품은 간토 대지진을 기점으로 해서 간사이로 이주한 뒤에 쓰여진 작품과 그 이전에 쓰여진 작품의 작풍이 나뉘는데, 대개 『미친 사랑(痴人の愛)』을 그 분기점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다니자키는 스스로 전기 작품들을 저평가해서 "자신의 작품으로서 인정하기 싫은 것들이 많다"고까지 하면서 전기 작품들을 흑역사 취급했고 이 때문에 전기 작품들이 저평가를 받아왔지만, 그 이후 연구자들에 의해 전기 작품들의 의의가 발굴되면서 현재는 이러한 평가는 보류되고 있는 추세이다. 다니자키 문학의 근간이 되는 여성숭배, 마조히즘, 페티시즘, 어머니에 대한 동경이 근친상간적인 애욕으로 이어지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는 묘사 등 대부분의 내용이 전기 작품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후기 작품들의 경우 일본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한 경우가 많으며, 특히 옛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이 많다. 그러나 전기 작품에서 보여준 탐미주의, 마조히즘, 잔학성, 에로티시즘, 여성숭배적인 성향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은 다니자키 문학에서 일관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니자키는 『겐지 이야기』의 현대어 번역자로서도 유명한데, 그의 번역은 요사노 아키코의 번역과 함께 겐지 이야기 현대어역의 양대 고전으로 불릴 정도이다. 다니자키의 번역은 고전문학의 전문가인 국문학 교수들의 조언과 감수를 통해 번역된 것으로 상당히 정확도가 높으며, 특히 원문의 느낌을 가능한 한 그대로 살리는 것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감각으로 재창작한 것으로서 문학적 가치가 높다.
문예적 관점에 대한 견해 차이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서신으로 자주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물론 험악한 소리가 오고 간 것은 아니고 둘은 친한 사이인 데다가 다니자키는 아쿠타가와를 선배 취급했고 아쿠타가와도 '다니자키 군'이라고 부르는 사이였다.
5. 그 외
아직 만 7세였던 1894년 2월 11일, 노즈 시즈다케(野津鎮武)라는 군인에게 납치당해 성추행을 당할 뻔한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이때의 일이 그가 만년에 쓴『유소시대(幼少時代)』(1955)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사회에는 아직까지 전근대적인 풍습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 어린 소년에 대한 성애(性愛) 또한 마찬가지였다.[16]다니자키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는데, 탐정소설에 관심을 가져 여러 단편들을 쓰기도 했으며, 이 작품들은 일본 추리문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에게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 소설들은 『범죄소설집(犯罪小説集)』으로 출간되기도 했으며,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어 있다.
영화에 관심을 보여 영화사에 소속되어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각본을 스스로 담당하기도 했다. 그가 각본을 담당한 첫 영화인 'アマチュア倶楽部(아마추어 클럽)'에서 다니자키는 자신의 가족들을 대거 출연시켰는데, 자신의 처제이자 내연 관계에 있던 세이코가 처음으로 발탁되어 주연을 맡게 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다니자키의 아내 지요, 딸 아유코가 엑스트라를 맡기도 했다.
일본 문단에서는 역시 탐미주의적 소설가로 유명한 미시마 유키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를 가장 잘 이해한 작가라고 평가하였다. 미시마 유키오는 다니자키의 문학을 매우 높이 평가했으며, 태평양 전쟁에 진 직후의 풍경을 두고 미시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본 남자가 백인 남자에게 졌다고 인식해 맥이 풀려 있을 때, 이 사람(다니자키 준이치로)은 혼자서 일본 남자가 거대한 유방과 거대한 엉덩이를 가진 백인 여자에게 졌다고 즐거워하는 관능적 구도로 패전을 바라보았다.
또한 미시마는 1958년 다니자키를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그의 이름을 딴 다니자키상이 제정되어, 뛰어난 작품을 남긴 작가들에게 수여되고 있다. 다니자키상을 받은 작가들 가운데 가장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 중 하나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
역사비화 히스토리아에서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이야기가 실렸는데 다니자키 역을 맡은 배우의 변태스러움과 문호로써의 진지함을 넘나드는 연기가 은근히 절륜하다. 다만 사토 하루오와 있었던 아내 양도 사건은 아예 빠지고 언급도 되지 않아서 왜곡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6. 매체에서
- 문호 스트레이독스 - 타니자키 준이치로(문호 스트레이독스), 타니자키 나오미, 하루노 키라코[17]
- 문호와 알케미스트 - 타니자키 준이치로(문호와 알케미스트)
- 절대가련 칠드런 - 타니자키 이치로, 우메가에 나오미
[1] 가와바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당시, 설국의 영문 번역자인 에드워드 사이든스티커(한국에서 등산중이었음)는 가와바타의 수상 소식을 듣고 미시마 유키오나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수상할 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인터뷰를 남겼다.[2] 처음에는 자연주의 문학으로 데뷔하였으나, 이후 탐미주의 소설로 전향하였다. 국내에는『묵동기담』이 번역되어 있다.[3] 이한정 동국대 일본학연구소 연구원과 미즈노 다쓰로 교토조형예술대 강사가 공동으로 엮은 책으로 2009년에 소명출판에서 출간. 다니자키 외에도 구니키다 돗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기노시타 모쿠타로, 나카지마 아쓰시 등 1891년부터 1941년까지 열세 명의 일본 작가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쓴 소설과 수필들이 번역, 수록됐다.[4] 예명 하야마 미치코(葉山 三千子)로 1920~1930년대 영화배우로 활동하였다. 다니자키의 소설 『치인의 사랑(痴人の愛)』의 여주인공 나오미의 모델로도 알려져 있으며, 상당히 자유분방한 여성이었다고 한다. 상당히 장수하였는데, 1996년에 만 94세로 사망하였다.[5] 당시 다니자키가 오다와라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6] 식민지 조선의 문학 잡지에까지 실렸을 정도의 센세이션이었다.사실 지금 봐도 엄청난 일이긴 하다 원산의 한 여학교에서는 아예 문학 교과서에 실려 있던 다니자키가 쓴 기행문을 빼버리기까지 했다나.[7] 사토와 재혼하기 전에 지요는 역시 다니자키와 아는 사이인 오쓰보 스나오(大坪 砂男)라는 남자와 밀통했다. 그리고 그와의 사이에 생긴 아이를 다니자키의 강요로 낙태했다는 추측이 있다.[8] 참고로 본명은 와다 로쿠로(和田 六郎)인 오쓰보 스나오는 에도가와 란포가 일본 전후파 5대 추리소설가 중 하나로 꼽은 단편 작가이며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 와다 슈(和田 周)의 아들, 즉 그의 손자가 바로 그 유명한 우로부치 겐이다!![9] 겐지 이야기는 무라사키 시키부의 장편 대하소설로, 천 년 전 헤이안 시대의 작품이기 때문에 일본인이라도 고문을 깊게 공부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문을 독해할 수 없다. 따라서 많은 현대어역이 나와 있으며, 이 중 한국에 번역된 김난주 역의 겐지 이야기는 세토우치 자쿠초(瀬戸内 寂聴)의 현대어역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10] 여담으로 사무라 히로아키가 학교 축제에서 이 작품을 동인지로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만화가를 지망하게 되었다고.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1966년도 영화 문신의 원작.[11] 2013년 시공사에서 번역되었다.[12] 문학동네에서 번역될 때는 한자를 그대로 읽어서 제목이 『만(卍)』이다. 『소장 시게모토의 어머니』와 합본.[13] 전권 발매 기준[14] 『만지』와 합본으로 2012년 문학동네에서 번역 출판되었다.[15] 1992년에 한영사에서, 그리고 2013년 창작과 비평에서 다시 번역 출판되었다.[16] 노즈는 청일전쟁 참전 이후 1896년 한국 주재 일본 공사관 무관으로 부임하였으며, 제1차 한일협약(1904) 체결 이후 한국의 군부 고문으로 초빙되기도 했다(당시 계급은 중좌(中佐 = 중령)). 무엇보다도 1907년 대한제국 군대해산에도 주요 역할을 담당하는 등 한국과 악연이 많은 인물이다.[17] 뒤의 두 인물의 이름은 <치인의 사랑>의 등장인물 이름에서 각각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