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31 13:59:55

최형우/선수 경력/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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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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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11 2012 201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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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2013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2014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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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KBO 퓨처스 북부리그 타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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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KBO 퓨처스 남부리그 홈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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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KBO 퓨처스 남부리그 타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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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KBO 리그 신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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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KBO 리그 타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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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KBO 리그 최다 안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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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KBO 리그 홈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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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016 KBO 리그 타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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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KBO 리그 장타율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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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의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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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진갑용
(2011~2012)
최형우
(2013~2014)
박석민
(201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3번
정성열(2001) 최형우(2002~2005) 현철민(2006~200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4번
오상민(2002~2007) 최형우(2008~2016) 김헌곤(2017~ )
}}} ||
1. 개요2. 삼성 라이온즈 1기
2.1. 2002~2005 시즌
3. 경찰청 복무4. 삼성 라이온즈 2기5. 삼성에서의 기록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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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소속 외야수 최형우의 삼성 라이온즈 시절 기록을 담은 문서. 2002년 신인드래프트 2차지명 6라운드, 전체 48번으로 삼성에 입단해서 중간에 방출과 경찰청 복무시절을 빼고 2017년 기아로 이적하기 전까지 13년간 삼성에서 뛰었다.

2. 삼성 라이온즈 1기

2.1. 2002~2005 시즌

파일:external/pds.joinsmsn.com/201104051443771101_1.jpg

전주고를 졸업하고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당시는 포수였는데, 2002년 시즌 타율 0.400로 무명으로[1] 그리고 2002년 한국시리즈에도 출전하여 21년만에 우승에 기여하여 우승메달을 따냈다. 2002년 ~ 2005년까지 4년 동안 1군에서 대타와 대수비로 6경기에 출장해 7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여담으로 1군 첫 타석에서 2루타를 기록했다.

2군에서도 매년 2할 중후반대의 타율을 기록했고 2005년에는 남부리그 타율 2위(0.322)에 오르기도 했지만, 수비가 나아지지 않아[2] 결국 2005년 시즌이 끝난 뒤 삼성 라이온즈에서 방출당했다.

이후 싸이월드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이런 말하면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난 반드시 돌아온다..
날 배신했던 것에 대한 복수를 품고 반드시 돌아온다..
지금 있던 곳이 아닌 저 먼곳에서 이곳을 부수기 위해 칼을 갈 것이다.
반드시...반드시...반드시...언젠가는...복수한다...

참으로 오글거리는 단순한 허세글이긴 하지만, 지금 최형우의 위상 및 박병호김상현의 사례를 생각해볼 때 정말 저 글대로 상황이 바뀌었다면 삼성 입장에선 정말로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먼 훗날 진짜로 그렇게 되었다.

이후 세월이 훨씬 흘러 2023년 11월 18일 자 이대호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이 글이 다시 언급 되었는데 한창을 부끄러워하면서 제대로 읽지를 못했다. 또한 그럼에도 삼성에 재입단하게 된 이유로는 본인의 낯가림이 심한 성격으로 인해 새로운 곳을 가야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타 팀보다는 그래도 본인의 입단 동기들이 여전히 팀에 남아 야구를 하고 있었던 부분도 영향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타 팀에서는 계약을 한다해도 연봉이 높아봐야 3천만원이었다면, 삼성은 5천만원을 부르다보니 당시로서는 금전적으로 굉장히 쪼들리던 상황에서 결국 복수한다는 마음을 접었다고.[3]

3. 경찰청 복무

방출 후 상무 입대를 타진했으나 이마저도 탈락하면서 선수 생활에 큰 위기가 닥쳤지만, 때마침 경찰청의 창단 소식에 곧바로 지원하여 합격, 창단 멤버로 입단하게 되었다.[4] 타격 자질을 살리고 수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김용철 당시 경찰청 감독의 권유에 따라 외야수로 전향했다.

경찰청의 중심 타자로 활약하면서 1년차에는 팀 내 타율 1위(0.344)에 홈런 공동 1위(11홈런) 등을 기록했다. 경찰청 2년차인 2007년에는 2군 북부리그에서 타율 1위(0.391), 최다 안타 1위(128안타), 최다 2루타 1위(41개), 홈런 1위(22홈런), 타점 1위(76타점), 득점 1위(72득점), 장타율 1위(0.731) 등 타격 부문 7관왕을 달성하며 그야말로 2군 북부리그를 평정했다.

경찰청 복무를 마칠 즈음, 경찰청 김용철 감독은 최형우가 제대 후 갈 팀이 없을까봐[5] 최형우의 연고 팀인 KIA에 언질을 넣었으나, 긍정적인 답변을 했던 서정환 감독이 사임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이후 SK 와이번스 스카우터들이 최형우를 주목했으나 김성근 감독의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아서 영입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6]. LG 트윈스에서도 데려가려는 듯 했으나 나가리.

이때 마침 경찰청 경기를 보러 간 김응용 사장이 "쟤 아직 우리 소속이지?"하고 같이 간 삼성 프런트 직원에게 물었고 깜짝 놀란 프런트 직원이 부랴부랴 계약에 나섰다. 최형우는 예전에 같이 뛰던 들 생각에 삼성과 계약했다. 방출된 팀에 다시 입단한 드문 케이스. 이때 삼성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것에 대한 최형우의 답변은 "날 버린 팀을 후회하게 해 주려고."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본인을 영입하려다가 그만둔 팀들로 표적을 바꾼 듯 하다. 여튼 최형우를 다시 데려온 건 김응용 당시 사장의 공로다.[7]

4. 삼성 라이온즈 2기

4.1. 2008 시즌

전체적으로 노쇠한 삼성 타선의 젊은 피 중 하나로 활약하면서 최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마쓰이 히데키를 닮아서 나온 별명이다. 마쓰이처럼 우투좌타라는 점도 같다. 재밌는 건 점점 스탯도 마쓰이 히데키를 닮아간다! 2009년도 즈음 해서 나온 이야기가 점점 더 확실한 현실이 돼 가는 실정.

시즌 초반에는 대타로 시작했지만, 원래 우익수를 볼 예정이었던 외국인 타자 제이콥 크루즈가 아킬레스건 때문에 1루수로 출장하면서 우익수로 출장하게 되었다.

팀 중심 타선에 자리잡아 홈런(19홈런)과 타점(71타점) 부문에서 팀 내 1위를 차지하면서, 중고 신인이지만 규정상[8] 신인왕 자격이 있는 것으로 판정되어 2008년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올랐다. 게다가 다른 후보인 KIA 타이거즈김선빈LG 트윈스정찬헌이 예상 외로 부진했기 때문에 2008년 신인왕 후보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최고령 신인왕이 됐다. 이 기록은 2011년 배영섭이 경신한다. (현 최고령 신인왕 수상자는 신재영)

4.2. 2009 시즌

2009년에는 시즌 중 한때 백업 포수난으로[9] 다시 포수로 기용될 계획도 있었지만 트레이드로 채상병이 합류하면서 외야수로 고정되었다.

팀의 4번 타자로 자리잡아 타율·출루율·장타율 모두 성장한 모습을 보였지만, 부족한 수비능력과 삼성의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 걸려있던 2009년 가을 동안 4번타자의 이름에 걸맞지않은 모습을 보여준 점(2009년 9월 타율 0.172 4홈런 12타점) 때문에 최잉여라는 별명이 굳어졌다.

4.3. 2010 시즌

2010년 4월 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홈런을 친 후 가면라이더 세레머니를 했다. 그것도 가면라이더 V3의 세레머니여서 한국 야구 선수 중 최초로 특촬물 덕후가 나왔나 싶었지만, 오치아이 코치 때문에 한거라고 한다.[10]

2010년 6월 10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발 김광현의 구위에 눌려 노히트 노런의 굴욕을 당하기 직전 9회 2사 이후에 신명철이 볼넷을 골라낸 후 3구째를 노려쳐 안타를 쳐냄으로써 굴욕적인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디씨 야구 갤러리에선 SK갤을 제외한 7개 구단이 하나가 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으며 도마 최형우, 구국의 열사 최형우 등 큰 호응을 받고 있다.

9월 17일 KIA와의 경기에서 김상현의 타구를 쫓다가 벌러덩…. 두 팀이 4블론을 주고 받으며 벌인 병신매치에 마지막 정점을 찍었다. 덕분에 패전투수가 된 김효남은 최형우를 썰어버릴 듯한 표정으로 쳐다 보았고 그는 알을 품는 최디슨이란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이 날 경기 한 장 요약

그리고 그날 밤, 베이스볼 투나잇 야의 변두리 야구의 주제는 야 웃음이 나오냐였다.

최형우는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2타수 6안타 1홈런 3볼넷 4타점 5득점, 타율 .273, 장타율 .545, 출루율 .36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최형우는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3타수 3안타 2볼넷 1희생플라이 1타점, 타율 .231, 장타율 .385, 출루율 .313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최형우는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35타수 9안타 1홈런 5볼넷 1희생플라이 5타점 5득점, 타율 .257, 장타율 .486, 출루율 .341을 기록했다.

4.4.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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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성적 타/출/장 .340/.427/.617 OPS 1.044 163안타 30홈런 118타점 WAR 7.64 wRC+ 182.2를 기록했다. 홈런왕, 타점왕, 장타율왕을 수상하며 3관왕에 올랐고 데뷔 이후 처음으로 골든 글러브도 수상하였다. 아쉽게도 이대호가 타격왕을 가져가며 트리플 크라운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2016 시즌과 함께 최형우의 양대 커리어하이로 꼽히는 시즌이다. 그리고 이 시점을 기준으로 최형우는 리그 최고의 좌타거포 외야수에 등극하게 된다.

4.5.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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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진을 겪으며 무너지는듯 했으나 여름에 맹타를 휘두르며 결국 투고타저의 리그 속에서 .271의 타율과 14홈런, 77타점이라는 준수한 성적과 한국시리즈 2홈런 9타점이라는 흠좀무한 활약을 펼쳤다.

4.6.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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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성적 29홈런 98타점으로 지난해의 부진을 잊고 4번타자로서의 부활을 알렸다. 아쉽게 30홈런 100타점에는 실패했는데 두산전 한 어린이팬의 기행[11]이 없었다면 30홈런 100타점 달성에도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매우 뛰어난 성적을 올렸으므로 시즌 후 골든글러브 수상에는 성공하였다.

4.7.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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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할 30홈런 100타점과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여전히 리그 최고의 외야수임을 입증했다.

4.8.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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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성적을 보면 3-30-100을 달성하고 또한 외야수 중 홈런 1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9월 이후와 한국시리즈에서 최악의 부진을 보인 탓인지 골든글러브 수상에는 실패했다.[12]

4.9.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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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즌과 함께 최형우의 양대 커리어 하이 시즌으로 꼽힌다. 또한 삼성 라이온즈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된 해이다. 아쉽게도 3-30-100-100과 본인의 커리어 첫 트리플크라운은 하지 못했다.[13] MVP 수상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었으나 더스틴 니퍼트에게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다.

5. 삼성에서의 기록

삼성에서의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2삼성 라이온즈 4 5 .400 2 2 0 0 0 0 0 0 .800 .400
20031군 기록 없음
20042 2 .000 0 0 0 0 0 0 0 0 .000 .000
20051군 기록 없음
2006군복무(경찰 야구단)
2007
2008삼성 라이온즈 126 384 .276 106 24 0 19
(5위)
71 68 3 54 .487 .364
2009113 415 .284 118 24 0 23 83 70 1 62 .508 .375
2010121 420 .279 117 29
(4위)
1 24 97
(4위)
71 4 79 .524 .389
2011133 480 .340
(2위)
163
(3위)
37
(2위)
3 30
(1위)
118
(1위)
80
(4위)
4 81 .617
(1위)
.427
(3위)
2012125 461 .271 125 27 1 14 77 51 2 60 .425 .348
2013128 511 .305 156
(2위)
28
(3위)
0 29
(2위)
98
(2위)
80
(4위)
2 54 .530
(3위)
.366
2014113 430 .356
(5위)
153 33
(4위)
0 31
(5위)
100 92 4 57 .649
(4위)
.426
2015144 547 .318 174
(5위)
33 1 33
(5위)
123
(5위)
94 2 82 .563 .402
2016138 519 .376
(1위)
195
(1위)
46
(1위)
2 31 144
(1위)[14]
99 2 92
(4위)
.651
(2위)
.464
(2위)
통산 1147 4174 .314 1309 283 8 234 911 705 24 621 .553 .398


[1] 2002년 타율 1위는 규정타석을 넘겨 채운 장성호 (0.343)선수였다.[2] 특히 송구 부문이 문제였다. 포수로 어깨는 강한 편이었는데, 본인 말로는 연습 때는 잘하다가도 실전 경기에서는 야수 키를 넘기는 송구를 종종 했다고. 경찰청 입단 테스트 때 최형우의 송구를 본 정현발 코치는 학창 시절이나 프로에서 송구 때문에 된통 혼난 적이 있는지 그게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3]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방출되고 막노동을 하다가 경찰청 야구단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입대를 할 정도로 금전적인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4] 창단 동기로는 김태완최진행 등이 있다.[5] 타격7관왕이긴 했지만 문제는 수비였다. 이재원이 그랬듯 타격은 문제없는 선수도 수비가 안돼서 1군에 대타로만 쓰거나 2군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2군기록이 아무리 좋아도 1군에서도 100% 연결된다는 보장도 없다.[6] 김성근의 돌직구2에서 김성근 감독 본인이 언급한 내용으로, 당시의 결정을 김성근 감독은 아직도 후회한다고 밝혔다.[7] 선동열의 공로라고 날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믿지 말고 거르자.[8] KBO 규정상, 신인왕은 그 해에 데뷔한 선수뿐만 아니라, 처음 계약 후 5년 이내, 30이닝(투수)/60타석(타자) 이내 출장한 선수도 수상할 수 있다. 이 때, 국방부/행안부 퀘스트 플레잉 타임은 계산하지 않는다.[9] 주전 포수였던 진갑용은 손목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고, 백업 포수였던 현재윤마저 부상을 당한 상황이었다.[10] 삼성은 대개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하는데, 이때 쉬는 날에 최형우나 박석민 등은 빠칭코를 많이 한다고. 이때 이들이 한 빠칭코 기계가 가면라이더 캐릭터가 나오는 것이었고, 이를 본 오치아이 코치가 재미삼아 최형우와 박석민에게 가면라이더 피규어를 선물했다. 그 이후에 저런 세레머니를 하게 되었다.[11] 홈런성 타구를 잡으려 글러브를 뻗다 공을 쳐내는 바람에 홈런을 2루타로 바꿔버렸다.[12] 심지어 이용규보다도 표를 적게 획득했다.[13] 타율, 타점은 1위로 충족하나 홈런에서 이 부문 1위인 최정, 테임즈와 9개 차이인 31개로 7위에 머물며 결국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참고로 득점 1위는 121점을 기록한 정근우.[14] 역대 단일시즌 타점 2위이자 삼성라이온즈 한시즌 최다타점 1위인 이승엽의 2003년 144타점과 타이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