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19:24:15

짐이 곧 국가다

1. 개요2. 진위 여부3. 의미4. 형식5. 번역
5.1. 한국어5.2. 기타 언어
6. 유사 인용구7. 창작물에서8. 여담9. 외부 링크

1. 개요

L'État, c'est moi.

프랑스 왕국의 왕 루이 14세가 했다는 말로 유명한 문장이다. 1655년 4월 13일 프랑스 고등법원[1]을 굴복시키기 위해 법원을 찾아갔을 때 이 말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Bély 2005:47)[2] 후술하듯 "짐이 곧 국가다"라는 발언에 대해서는 진위 여부가 의심되지만 이 방문 자체는 역사적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이 발언은 이른 자료들의 경우 Erhard, C. D.(1791:30)[3] 등 18세기 말에 발견되곤 한다.
Cette monarchie fut pure et absolue. Elle reposa toute dans la royauté, et la royauté toute dans le roi (…) S'il voulut ménager le sang de ses sujets, ce ne fut ni par devoir ni par pitié, mais par intérêt de propriétaire. (…) Enfin le Coran de la France fut contenu dans quatre syllabes, et Louis XIV les prononça un jour : « L'état c'est moi. »
이 군주제는 순수하고 절대적이었다. 이 체제는 왕족에게 온전히 기초했으며 왕족은 왕에게 온전히 기초했다. (…) 설령 이 체제가 신민의 피를 아끼고자 했다면 이는 의무감 때문에도, 동정심 때문에도 아닌 단지 주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 마침내 프랑스의 쿠란은 4음절로 만들어졌고 루이 14세는 어느 날 이를 말로 내뱉었다. "짐이 곧 국가다."라고.
피에르에두아르 레몽테(Pierre-Édouard Lémontey)가 쓴 루이 14세에 관한 에세이(1818:325-327)[4]에서 이 문장이 인용된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쿠란에 비유하고 있는 것에서도 보듯 절대왕정의 왕권이 매우 강력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화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 아래에서도 다루듯 이는 실제 역사와는 매우 다르다.

2. 진위 여부

루이 14세가 실제로 이 발언을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법원에서 한 말이라면서 법원 기록에는 그런 말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주된 비판점이다. 오히려 루이 14세는 유언으로 "나는 죽지만 국가는 영원히 남는다(Je meurs, mais l'État demeurera toujours)."라고 한 것과 반대된다는 것이다.#[5] 이 발언의 진실 여부에 대한 지적은 일찍이 19세기부터 있어왔다(Marignié, Jean Etienne François 1818:12).[6]

한국 웹에는 볼테르루이 14세에 대한 흑색선전을 하기 위해 일부러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라는 견해가 소개되고 있다.# 볼테르의 인생을 보면 루이 15세가 파리 진입을 막은 적도 있는 등 프랑스 왕에 대해서 충분히 그만한 적의를 가질 만은 하다. 다만 일본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볼테르의 "루이 14세의 시대"[7](1751)에서 이 말이 나온다고는 하는데 영 찾기가 힘들고 영어 위키백과나 프랑스어 위키백과는 "짐이 곧 국가다"에 대해서 볼테르가 이 말을 실었다는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지 않다. 볼테르 역시 웹상에 가짜 명언이 많기로 유명한 사람이라서 좀 의심해볼 필요는 있겠다. 설령 실려있다고 해도 해당 책 자체는 역사적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이니 와전된 걸 실수로 실은 것인지 의도적으로 비난하려고 지어낸 건지 확실히 알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 le parlement voulut encore s’assembler au sujet de quelques édits, le roi partit de Vincennes, en habit de chasse, suivi de toute sa cour, entra au parlement en grosses bottes, le fouet à la main, et prononça ces propres mots. « On sait les malheurs qu’ont produits vos assemblées ; j’ordonne qu’on cesse celles qui sont commencées sur mes édits. Monsieur le premier président, je vous défends de souffrir des assemblées, et à pas un de vous de les demander. »
(…) 법원은 일부 칙령을 주제로 (왕을) 다시 만나기를 원했다. 왕은 사냥복을 입고 뱅센(Vincennes)[8]을 떠났고 측근 모두가 그를 뒤따랐다. 왕은 큰 장화를 신고 손에 채찍을 들고 의회에 들어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의 집회가 초래한 불행을 모두가 알고 있다. 나는 나의 칙령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중단하라고 명령하겠다. 의장(Premier président), 나는 당신이 집회를 수행하는 것을 금할 것이다. 너희 중 누구도 집회를 청하지 말라."
볼테르, 루이 14세의 시대(1751), 25장 위키문헌
이처럼 볼테르가 이 발언을 지어냈는가는 확실치 않으나 아래 O.Chaline & E.Dziembowski(2018)에서 언급한 대로 볼테르가 위에서 언급한 루이 14세가 고등법원에 간 상황을 적대적으로 묘사한 것은 사실이다. 모르긴 몰라도 "사냥복"(habit de chasse), "손에 든 채찍"(le fouet à la main) 등의 표현은 실제를 묘사했다기보다는 왕이 법원을 향해 간접적 폭력을 휘두른 것처럼 읽힌다.
« L'État c'est moi », que le roi n'a jamais prononcés lorsqu'il vint au Parlement de Paris, le 13 avril 1655. Préparés par les exagérations de Voltaire qui écrivit que le roi arrivait de la chasse le fouet à la main, ils sont en définitive énoncés par l'avocat lyonnais Pierre-Édouard Lemontey en 1818 dans son Essai sur l'établissement monarchique de Louis XIV et sur les altérations qu'il éprouva pendant la vie de ce prince : « Le Coran de la France fut contenu dans quatre syllabes et Louis XIV les prononça un jour : L'État, c'est moi ! ». Si le faussaire est bien oublié, aujourd'hui son invention n'a pas fini d'être utilisée... [프랑스어 원문]
왕은 1655년 4월 13일 고등법원에 왔을 때 결코 "짐이 곧 국가다"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볼테르가 루이 14세에 대하여 손에 채찍을 들고 사냥터에 왔다고 과장한 것을 필두로, 피에르에두아르 레몽테는 Essai sur l'établissement monarchique de Louis XIV et sur les altérations qu'il éprouva pendant la vie de ce prince 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위 피에르에두아르 레몽테 에세이 인용) 거짓말을 지어낸 사람은 이제 거의 잊혀졌건만 오늘날까지도 그의 창작은 그 쓰임을 잃지 않고 있다... [한국어 번역문][9]
프랑스 역사가 O.Chaline & E.Dziembowski(2018)[10]는 이에 대해서 "거짓말을 지어낸 사람은 잊혀졌는데 거짓말은 오래도 간다"라고 감상을 밝힌 바 있다. Bély(2005)에서 역시 루이 14세가 사냥복 차림에 채찍을 들고 "짐이 곧 국가다"라고 위협한 것은 속설일 뿐이고 실제로는 오랜 설득을 걸쳤다고 이야기한다.

여하간 누가 날조했는가는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한국에도 2020년대를 즈음해서는 이 말이 루이 14세가 한 말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점차 퍼져나가는 추세이다.

3. 의미

왕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발언으로 종종 인용된다. 루이 14세가 이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기에 절대왕정과 결부되어 주로 이야기되곤 한다. 그런데 위에서 보듯 루이 14세가 한 말이 아닐 가능성이 높으니 루이 14세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후대의 사람들이 절대왕정에 대하여 가졌던 인식을 보여주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위에서 보듯 피에르에두아르는 절대왕정이 이슬람교쿠란만큼이나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고 이 문장을 집어넣은 것으로 추측된다.

정작 당시의 실제 정치 상황은 이 문장과 매우 거리가 멀었다. 절대왕정 시절 왕좌는 국가의 표상이었지, 국가 그 자체와 동일시되지 않았다. 국왕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더더욱 국가와 동일시되지 않았다. 비록 현대식 입헌군주제 국가보다는 왕권이 강력했으나, 원칙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서유럽의 절대왕정은 왕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체제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서유럽의 정치학적 전통에서, 백성 전체를 종처럼 부리는 것은 동양식 군주정이라며[11] 부정적으로 보았다. 더 나아가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회는 국가란 국민이 스스로를 위해 계약을 체결하여 조직된 체계라고 보기에, 이 발언과 더욱 대척점을 이루고 있다.

다만, 국가 지도자는 국가와 동일시되지는 않더라도 국가와의 관계가 상당히 밀접한 것은 사실이다. 인민주권 개념이 대두하기 전까지 주권자는 곧 군주였고, 근대식 입헌군주정이 성립한 이후에도 그러한 관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부분적으로나마 남아있는데, 예컨대 영국 왕의 경우 해외 순방을 할 때 영국 여권을 지참하지 않는다. 이는 영국 여권은 명목상 왕의 신하인 외무대신이 왕의 이름으로 발급하는 것이기에 영국 왕은 신하의 도움 없이도 그 스스로 신분을 증명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실무적으로는 동행하는 경호원들이 영국 왕의 신분을 보증해주기에 여권의 유무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지만, 관념적으로는 이러한 배경이 흔적으로서 남아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국가 원수국민국가를 한 인격으로서 표상하므로 동일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징적으로 국민과 국가를 나타낸다.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행정부의 수반인 총리와 나란히 국왕 혹은 대통령을 굳이 두는 이유도, 하나의 인격으로서 국민과 국가를 표상하는 개인[12]인 고위 공직자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절차가 의전상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국민국가를 표상하는 개인'과 '행정부 수반'을 겸한다.[13] 국가 지도자에 대한 공격 시도는 선전포고와 동일하게 간주되는 것 역시 국가 지도자 개인과 국가가 오늘날에도 매우 깊은 연결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4. 형식

원문은 '국가, 그것은 나다'와 같은 도치 구문이다.

문장의 발음인 [le'ta sɛ 'mwa]를 프랑스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한글로 적으면 '레타, 세 무아'가 된다. '무아'[mwa]가 사실 1음절인 걸 감안하면 이 문구는 4음절이다. 그래서 위 1818년 에세이의 인용문에서는 "루이 14세가 어느 날 4개 음절(quatre syllables)을 말했다. L'État, c'est moi 라고."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5. 번역

5.1. 한국어

발언자로 알려진 루이 14세인 것을 반영해 황제만 쓰는 으로 번역한 것이 유명하긴 하나 프랑스어로는 아무나 쓸 수 있는 1인칭인 'moi'일 뿐이다. 사실 프랑스 왕국로마로 이어지는 정통성이 부족하여 제국을 칭하지 못하고 결국 왕국이 대혁명으로 멸망한 뒤인 나폴레옹 시대에 제국을 선포했단 것을 감안하면 황제만 쓸 수 있는 '짐'이 아주 딱 들어맞는다고 보긴 어려운 점도 있다.[14] 그런 역사적 사실과는 별도로 이 문장은 주로 매우 강대한 왕의 권력을 표현하려는 용도로 쓰이다 보니 황제의 1인칭 대명사인 '짐'은 이러한 목적에 매우 잘 어울리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한자문화권 이외 국가의 군주들의 1인칭 및 경칭을 '짐', '폐하' 같은 황제국 용어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긴 하다.[15] 아래 중국, 일본의 번역도 동일하게 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근대에 어디선가 朕이라고 한 것이 널리 퍼진 것 같다.

좀 더 고풍스럽게 '짐이 곧 국가이니라'라고도 한다. '짐이 곧 국가'라고 한 것도 있다. 한국어는 유독 어미가 발달한 언어이니 고어임을 반영하여 번역하는 선택도 가능한 것이다.

'짐 곧 국가다'와 같이 '-이'가 아니라 '-은'을 쓴 번역문도 있다. 교착어가 아닌 프랑스어에는 한국어의 주격 조사 '-이(가)/-는(은)' 대립과 바로 대응되는 표현이 없으므로[16] 어느 것이 더 원문의 뜻과 잘 대응되는지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검색 결과는 '짐이 곧 국가다' 쪽이 더 우세하다. 아무래도 '짐=국가'의 도식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인 것 같다.

원문에는 없는 부사 ''이 들어간 것도 특이하다. 도치 구문을 통한 강조를 살리려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한국어로 'A는 B다'는 고풍스럽게 'A는 곧 B다'라고 할 때가 있다. 한문의 'A는 B다' 문장에서 'A、卽…也' 식으로 을 넣는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17]

본 표제어는 이들 번역문 중 큰따옴표 검색 결과가 제일 많은 것으로 정했다. "짐이 곧 국가다"가 2022년 12월 기준 6만 여 건으로 제일 많다.

5.2. 기타 언어

영어로는 I am the state(나는 그 국가다)로 주로 번역한다. 영어와 프랑스어는 문법과 어순이 비슷하므로 직역하면 The state, it is me 정도가 된다.

일본에서 이 문구는 보통 "朕は国家なり"로 번역한다. なり는 오늘날 평서형 문장 종결어미 だ보다 좀 더 고풍적인 문어체이다. 한국어로 치면 '짐은 국가이니라'로 번역하는 셈이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교착어라서 인칭대명사와 종결어미의 변화로 고전적인 어투를 표현하는 것이 쉽다. 정작 프랑스어 원문은 그렇게 고풍스러운 어투는 아니고 현대적인 문장이다.[18] 한편 교착어인 일본어에서는 한국의 '-은'과 유사한 '-は'를 써서 번역한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어로는 朕即國家(짐즉국가, zhènjíguójiā), 다시 말해 위에서 설명했듯 한국어와 유사한 '짐이 곧 국가다'로 번역한다. 한국어, 일본어와 달리 교착어가 아니어서 격조사는 없다.

6. 유사 인용구

  • 한국 웹에는 루이 11세가 이와 비슷한 말로 "짐이 곧 프랑스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몇 개 나온다. 더 나아가서 "루이 14세에 이 말은 루이 11세가 한 말이 와전된 것이라더라"라고도 한다. 다만 본 문장에 대한 자료에서 루이 11세 발언의 와전 설은 전혀 나오지 않아 좀 더 검증해보아야 할 듯하다. 일단 언뜻 생각하기로 태양왕이라는 루이 14세조차도 "짐이 곧 국가다"라고 말하는 게 어폐가 있을 정도인데 루이 14세보다도 200년 전의 프랑스 왕인 루이 11세가 이와 비슷한 말을 하기는 더 어려웠을 것이다.
  • 루이 14세 이후에도 각국의 지도자들이 비슷한 투의 말을 한 적이 있다.
    • 훗날 프랑스대통령이 되는 샤를 드골은 1940년 11월, 영국의 외무 장관 앤서니 이든에게 "내가 곧 프랑스다.라는 말을 했다. 다만 이 말을 한 의도는 그 당시 영국과 미국에서 비시 프랑스를 회유해보려는 시도에 대해 비난하고 프랑스의 정통성이 자신에게 있음을 강경하게 주장하는 발언이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에 현재 프랑스 정치인들의 선거유세용 단골 표어 중 하나라고. 유럽연합 결성 이후에는 "내가 곧 유럽이다"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물론 유럽의 중심, 아니 세계의 중심이 프랑스라고 생각하는 프랑스인은 이런 표어를 기꺼워한다고.
    • 중화민국의 전 총통 장제스는 신생활운동을 비판한 외국 고문인 윌리엄 헨리 도널드에게 "나는 중국이다. 중국은 나 없이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 라는 말을 했다.
    • 일본 전 총리 아베 신조는 2019년 2월 "제가 국가입니다(私が国家です)"라고 하여 일각에서 루이 14세냐는 비판을 받았다(아베 신조/2019년). 다만 정말 자신을 국가에 동일시한 것은 아니고 단순한 말실수였던 듯하다.
  • 절대왕정 시대에 어록으로 다음 세 문장이 있다. 한국어 번역에 따르면, 프리드리히 2세루이 14세의 심부름꾼(the first servant)이며, 엘리자베스 1세는 루이 14세와 결혼했다고 할 수 있었다. 즉 프리드리히와 엘리자베스는 자신과 국가의 관계를 이야기한데 반해 루이 14세는 자기가 국가라고 하였으니, 루이 14세는 아내와 심부름꾼을 모두 얻은 것(...). 참고로 아래 영어 문장은 I am이라는 비축약형을 쓰는데, 영어에서 비축약형은 격식 있는 말투(Formal)이기도 하지만, 글에서 쓰이는 딱딱하고 강한 어조의 문어체적인 말투이기도 하다.
- 짐이 곧 국가다: I am the state (Louis 14th, 1643~1715)
- 짐은 국가의 심부름꾼이다: I am the first servant of the state (Friedrich 2nd, 1740~1786)||

7. 창작물에서

루이 14세 본인이 이 말을 실제로 했던 안했던 상관없이 루이 14세를 상징하는 말로 널리 알려져서 수많은 창작물에서 주로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막장 폭군, 독재자들이 주로 쓰는 대사로 많이 나온다.
  • 임금님전대 킹오저라클레스 하스티는 입버릇처럼 짐이 곧 국가라면서 백성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 스타워즈에서도 비슷하게 써먹었다. 시스의 복수에서 제다이 기사단클론전쟁을 기회삼아 공화국을 장악해나가는 쉬브 팰퍼틴 수상을 수상쩍게 보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아나킨에 의해 팰퍼틴이 사실은 시스라는 것이 알려지자 그를 죽이러 갔는데 이 때 팰퍼틴과 메이스 윈두 간에 설전 끝에 팰퍼틴이 한 말이 "내가 곧 의회야!(I am the senate!)"이다. 실제로 팰퍼틴은 행정부 수장이었을 뿐 아니라 입법부 기관인 의회와 사법부 기관인 법원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8. 여담

  • 본 문장에서 '국가'에 해당하는 표현인 État는 한국에서 쿠데타(coup d'État)로도 유명하다. 영어 state동원어이다. état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국가'의 의미로 쓸 때는 항상 첫 글자를 대문자로 해 État라고 쓰는 듯하다. 위 1818년 책이 쓰여졌던 시대엔 그런 관례가 좀 덜했는지 소문자 état로 되어있다.
  • 문명 시리즈는 게임 구조상 실제로 플레이어와 국가가 동일시되지만 이 멘트가 승리 인용구로 나오지는 않는다. 문명 5문명 6에서 루이 16세의 발언은 나오지만 루이 14세는 나오지 않는다.

9. 외부 링크



[1] Parlement de Paris. parlement는 오늘날 의회를 연상시키지만 앙시앵 레짐 하에서는 법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래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법원이라고 번역했다. 1661년 '고등법원'으로 직역될 수 있을 Cours Supérieures로 이름이 바뀌었다.# 참고로 현 프랑스 의회는 Parlement français라고 한다.[2] Lucien Bély(2005). Louis XIV : le plus grand roi du monde. Les classiques Gisserot de l'histoire. Éditions Jean-paul Gisserot. p. 279. ISBN 287747772X. Bely2005. 구글 도서[프랑스어][3] Erhard, C. D. (1791). Betrachtungen über Leopolds des Weisen Gesetzgebung in Toscana (Reflections on Leopold's Wise Legislation in Toscana) (in German). Richter. p. 30. #[4] Essai sur l'établissement monarchique de Louis XIV et sur les altérations qu'il éprouva pendant la vie de ce prince 구글 도서 제목을 적당히 구글 번역으로 돌려보면 "루이 14세의 군주제 수립과 그가 왕자였던 시절에 겪은 변화에 관한 에세이"이다.[5] 다만 유언과는 시점이 60년이나 차이나고 루이 14세가 불행한 말년을 보낸 것도 고려해야 한다.[6] Marignié, Jean Etienne François (1818). Le roi ne peut jamais avoit tort, le roi ne peut mal faire (The king was not wrong, the king can do no wrong). Le Normant. p. 12. #[7] Le Siècle de Louis XIV 위키문헌[8] 뱅센 성 문서[프랑스어] 현 행정구역 기준으로 뱅센 성은 파리 20개 구에 속하진 않으나 12구 바로 북쪽에 붙어있다. 루이 14세는 주로 이 성을 거처로 삼다가 이 시점으로부터 15년 쯤 뒤인 1670년 경 그 유명한 베르사유 궁전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9] 구글 번역을 적당히 수정하였다.[10] Deux monarchies plus proches qu'on ne le pense(생각보다 가까운 두 왕국). Michel Figeac (dir), État, pouvoirs et contestations dans les monarchies française et britannique et dans leurs colonies américaines (vers 1640-vers 1780), Armand Colin, 2018. 아마존 링크에 수록되었다. 미리보기로 확인 가능하다. 정확한 쪽수는 알기 어려우나 한 30페이지 정도 넘기면 나온다. 제목의 '두 왕국'은 영국과 프랑스를 의미한다.[11] 물론 실제 러시아든 근동이든 동아시아든 유럽인의 편견처럼 왕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체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유럽인이 동방의 체제를 그렇게 해석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페르시아의 강대함에는 감탄하였지만, 페르시아 신왕이 백성을 노예로 부린다고 생각하여 극도로 경멸하였다. 공치제를 발전시킨 스파르타든 민주정을 발전시킨 아테네든 자신의 체제를 페르시아와 다르다고 보았다. 이런 생각은 공화주의법치주의로써 더욱 심화되었고, 중세까지도 로마 제국(관념적으로는 망할 때까지 공화정이었다)자유도시(코뮌), 해양 공화국 등으로 계승되었으며, 원칙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국왕을 국가와 결코 동일시하지 않았다. 이는 국가신토와 현인신 및 국체론을 내세워 원훈회의와 중신회의 및 군부가 신민을 무제한적으로 압제한 근대 일본 제국보다 더 권력 분립적인 체제였다.[12] 참고: 일본국 헌법 제1조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13] 대한민국 헌법 제66조 ① "대통령은 …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14] 유럽에서는 황제만 쓸 수 있는 전용 인칭 대명사는 없다. 유럽권에서 군주들이 썼던 1인칭 복수형(장엄적 복수, majestic plural / pluralis majestatis)이나 3인칭화 등은 황제가 아니어도 쓸 수 있다.[15] 오히려 오랜 기간 동안 유럽의 유일한 황제였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이와 같은 강대한 권력을 보여주는 일화가 그렇게까지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강대한 권력은커녕 "신성하지도, 로마도, 제국도 아닌" 제국 말기의 다 망해가던 시기가 더 유명할 정도이다. 물론 신성 로마 제국/오해에서 보듯 이는 국가 멸망 직전의 모습이 과장된 것이고 전성기에는 프랑스 왕국 국왕보다 한 수 위의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16] 주로 한정성과 관련하여 관사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고 이야기되곤 한다. "연못에 개구리 있었습니다. 그 개구리...."와 같이 처음에 '-가'를 쓰고 그 뒤부터 '-는'을 쓰는 것은 영어에서 처음 소개할 때 부정관사를 쓰고 그 뒤부터 정관사를 쓰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다만 이 역시 '-가'/'-는'의 기능 중 하나이고, 정확히 부정관사/정관사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17] 일본 한문훈독에서도 이러한 경우에 卽을 'すなわち'로 읽곤 한다. 한국어로 치면 '곧'을 넣어서 읽는 식이다.[18] 사실 영어나 프랑스어는 인쇄 문화가 빠르게 발전하여 근대의 언어 변화가 동아시아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다. 영어도 발음은 대모음추이로 크게 변했지만 철자는 500년 전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시대와 큰 차이가 없다.(다만 셰익스피어 시대의 근대 영어는 크게 못 알아먹을 정도가 아닐 뿐이지 철자나 어휘들은 꽤나 고전적으로 보이긴 하다.) 반면 한국어나 일본어는 100년 전의 언어만 보아도 현대어와 매우 다르다. 본 발언이 있었을 1655년은 일본의 유명한 어구인 적은 혼노지에 있다(敵は本能寺にあり) 일화가 생겨난 1582년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데, 후자는 고전문법으로 되어 있으니 일본 사람 입장에서 비슷한 시기의 외국 인용구도 고전문법에 맞추어 번역하고 싶을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