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1-03 15:14:57

정조 한글어찰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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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해석]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4. 문화재청 소개글

1. 개요

정조국문어필첩(正祖國文御筆帖)이라는 명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정조 한글어찰첩은 조선의 22대 왕 정조가 5살 무렵인 원손시절부터 세손시절을거쳐 재위시절에 이르기까지 40여년에 걸쳐 외숙모인 여흥 민씨에게 보낸 간찰 14통을 모아놓은 서첩이다. 현재 경매를 거쳐 최종적으로 국립한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조 한글어찰첩은 2022년 보물로 지정됐다.

2. 내용


홍봉한의 큰아들 홍낙인의 처인 여흥 민씨에게 정조가 보낸 친필 편지들을 모아놓은 것으로 한글 편지 14통과 한문 2점으로 이루어져 있어 총 16점이 한 첩을 이룬다.

정조는 생전 외가 쪽에 약 1500여통의 편지를 보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정조 한글어찰첩은 그 중 외숙모에게 보낸 문안 한글 편지들을 모은 것이다. 2014년에 표암 강세황의 산수도, 장승업의 영모도 등 268점의 유물들과 함께 경매에 나온 적이 있다.

3. 외부 링크

4. 문화재청 소개글

‘정조 한글어찰첩’은 정조(正祖, 1752∼1800)가 원손시절부터 세손시절(1759년), 재위시절(1776∼1800)까지 국동 외숙모 여흥민씨에게 한글로 쓴 편지 14점과 대자(大字) 글씨 2점을 모은 서첩이다. 원손 시절에 쓴 편지, 예찰(睿札, 왕세손 시절 쓴 편지)과 어찰(御札, 보위에 오른 후 쓴 편지)에 이르는 글씨 등 시기를 달리해 50여년에 이르는 정조의 한글서체 변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궁중여인들의 글씨와 좋은 비교가 된다. 편지의 전반적인 내용은 주로 계절인사와 외숙모의 안부와 건강을 묻는 내용이 주를 이루며, 주로 조선정치사 측면에서 평가되어 온 정조에 대해 외가와 관련된 인간적인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조 한글어찰첩’은 정조라는 단일 국왕의 일생을 복원할 수 있는 편지를 모았다는 점, 왕이 직접 쓴 어필 한글 자료로서 글씨의 흔적과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학술자료라는 점, 그리고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장첩(粧帖)의 형태가 지닌 예술적 가치 등을 고려할 때 조선왕실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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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조는 8세에 세손에 책봉되었으므로, 자신을 원손이라 칭하는 이 편지는 세손 책봉 이전에 쓰인 것이다.[해석] 파일:attachment/f0018015_4ee6dcc1b0d7e_1.jpg
해석되지 않은 '상풍의'는 현대어로 옮기면 '상풍(商風)에', 즉 '가을 바람에' 정도의 의미다. 의역하자면 '날씨가 쌀쌀한데' 정도 되겠다.